o 과 제 명 : 신화와 영화 (18쪽에서 108쪽)[ 요 약 ]1. 니콜라우스 쿠사누스의 “낙원의 경계는 반대들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반(反낙원인 지옥에 가는 데 반대들의 결합이 나타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이런 반대들의 결합을 다시 커츠의 ‘왕국’ 에서도 만나게 된다. 처음 월라드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하는 여러사람들 중에 흰 진흙을 칠한 사람들 앞에서 물이 불타고 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가? (18쪽)2. 영화에서 왕의 죽음 후에 따르는 땅의 질서나 심판의 날 뒤에 새롭게 열리는 하늘과 땅에 대한 소망은 나타나지 않는다. 키잡이의 시신은 생명을 얻기 위해 고향 땅으로 떠나가는 대신 물속으로 가라앉을 뿐이다. (24쪽)3. 아이스퀼로스는 그 왕가에 특별했던 신체적 특징들 중 머리카락과 발자욱을 또, 청년이 입 문양을 이용했다. 소포클레스는 아가멤논왕의 유품인 반지를 이용했고 에우리피데스는 오레스테스의 미간 흉터를 이용했다. (33쪽)4. 처음 월라드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무리들 중 흰 흙을 칠한 사람들 앞에서 물이 불타고 있던 것을 기억하는가? 사실적으로 말하면 기름 무리가 물 위에 쏟아져 불타고 있다고 해야 하지만,그 장면이 회괴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반대들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대들의 결합은 영화의 초부터 주어져 있었다.5. 이 영화는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고, 그렇게 때문에 통속한 전쟁 영화가 되기를 면했다. 이 공포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이 세계의 한 진실의 한 면에 대한 것이다.갈대로 만들어 조류(潮流)에 띄워 보낸 아도니스의 머리가 그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먼나라 사람들에게 정확히 일주일 뒤면 도달하지 않았던가?커츠의 책 속에 아무렇게나 쓰여져 있던 낙서같은 모든 것을 쓸어 버리라는 메시지는 쓰러진 제사장-왕 커츠가 발견한 이 세계의 진실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24쪽)6. 따라서 그 범죄자의 모습은 가족들에게는 보기만 해도 불러일으킬만한 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가족에게의 접근이 아니다. 그래도 처음으로 자신의 처지를 납득했던 사람은 아내였다. 주인공은 그 범죄자가 자신과 다르니까 몰래 피를 뽑아내어 검사할 것을 제안하고 이전과 다른 행동방식에 다소 의구심을 가지고 있던 것을 따른다. (33쪽)7. 여기까지는 거의 순조롭다. 그러나 꿈은 자기나름의 반응 방식이 있고, 그래서 꿈꾸는 자를 배반한다. 킬러가 일이 잘 될 경우 떨어뜨려 놓기로 한 파란 열쇠는 다이안이 꿈속에 들어오기를 원치 않았을 텐데도 모양을 달리하여 리타의 지갑 속에 들어와 있었고 일단 이 열쇠가 나타난 이상, 결국 그것이 맞아 들어갈 상자가 또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상자가 나타나 는 순간 다이안의 달콤한 꿈은 끝날 수밖에 없다. (48쪽)8. 치히로가 들어갔던 마을이 거품경제 시대의 테마파크이다. 아버지밑에서 일본 경제의 성쇠를 보는 사람,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목욕탕에서 자본주의 경제의 일면을 보는 사람, 심지어는 이름을 빼앗고 마구 부려먹는 목욕탕 마녀 유바바)에게서 착취하는 자본가의 모습을 보는 사람도 있다현대인의 고독을 보는 사람, 그리고 주인 허락도 없이 남의 음식을 먹고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의 운명에서 탐욕에 대한 경고를 보고, 치히로에게 예절교육을 시키는 유바바의 모습과 요즘 아이들의 무례에 대한 감독의 개탄을 보는 사람,높고 동그란 눈으로 그려진 두 마녀와, 서구식으로 꾸며진 아기 방에서 ‘투항’ 하겠다는 의사를 발견하는 사람 등이 그렇다. (59쪽)9. 이틀동안 신들에 대한 제사가 두 번이나 있었던 네스토르의 집과는 달리 신의 딸 헬레네와 영원한 삶을 약속 받은 신의 사위 메넬라오스의 집은 ‘좋은 저승으로 해석되는 나우시카아의 집이나 바람들의 왕 아이올로스의 집과 비슷하다. 금과 은으로 치장된 이 집의 벽은 환히 빛나고, “온통 햇빛이나 달빛 같은 광채가 가득 차” 있었으며 한편으로 딸을 시집보내고 또 동 시에 며느리를 들이느라 잔치준비 중이었던 것이다. (74쪽)10. ‘죽은 자의 시각’ 은 영화의 시작과 끝에만 자주 자주 되풀이 된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주인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위에서 본 장면도 주인공이 마음을 두고 있는 딸 친구 안젤라의 나체신(나신), 장미 잎에 묻혀 욕조 속에 몸을 뒤척이는 모습도 내가 보기에는 누워 있는 이 허공에 떠올리는 모습이다. (85쪽)11.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독자들이 이상한 장면과 마하치게 된다. 이십년 만에 거지모양을 하고 집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활쏘기 대회에 참가하여 활에 별 어려움 없이 시위를 얹고, 과녁을 꿰뚫고 곧바로 자기 아내와 아들을 괴롭혀온 백명이 넘는 구혼자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또 곧 이어 오디세우스가 목욕하고 아내가 낸 수수께끼를 풀고, 부부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는 것도 다 알 것이다. (102쪽)12. 주인공은 두 달 전에 동생의 편지를 받았고 국경을 통과하려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이란에서 귀국하는 피난민 친척 일가에 얹혀, 그 집 넷째 부인인 모양을 하고 함께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이 가족은 떼강도를 만나 모든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빼앗기고 이란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주인공은 할 수 없이 한 소년을 종으로 고용하여 혼자 떠난다. (108쪽)13. 젊은 영웅이 듣는 이야기도 시간이 갈수록 어둔 곳으로 들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우선 헬레네가 트로이아 성안에 정탐하러 들어온 오디세우스를 만났던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메넬라오스가 자신들이 목마 안에 숨어 그 성안으로 들어갔을 때의 이야기를 한다. 다음 이야기는 메넬라오스가 이집트의 파로스 섬에서 바람이 불지 않아 발이 묶였을 때 바다의 노인 프로테우스를 붙잡아 미래에 대해 물었던 사건이다. (85쪽)[ 독 후 감 ]최근 개봉영화 ‘죄와벌’에서 우리가 죽어야만 겪을수 있는 이야기들을 상상에 의해서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우리는 약간의 신화를 믿고 그 신화를 재미있어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이루어질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고 하는 성경이 있지만 아직도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그래서 신이 등장하고 기적을 행하고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할 것이다.그럼에도 신화는 고고학자의 연구 대상인 화석이나 퇴적층보다도 덜 실증적이고 더 추상적이지만 아직도 문화적 영향력은 강력하다.어떻게 머리로서 믿지 않으면서 정서적 영향력은 유지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신화가 세대를 거듭하며 겹겹이 쌓아온 인류의 유산, 즉 문화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화는 초기에는 당연히 신화였을 것이다. 그것은 믿음이었고 신앙 혹은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교육의 소재였다. 신화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영화는 과학의 산물이지만 반대적인 신화를 수용했다.그렇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신화와 영화는 상통하는 바가 있다.‘지옥의 묵시록’에서 월라드는 커츠 대령의 왕국에 잠입하여 그를 제거할 기회를 노린다. 그가 처음 커츠의 왕국에 들어갈 때 장면은 인상적이다. 처음 월라드 일행이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무리 흰 진흙을 칠한 사람들 앞에서 물이 불타고 있던 장면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물론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기름 따위가 물 위에 쏟아져서 그것이 불타고 있다고 해야 하겠지만,어쨌든 그 장면이 기괴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것이 바로 반대들의 결합이기 때문이 다. 사실 이러한 반대들의 결합은 영화의 초입부터 주어져 있었다. 월라드가 새 임무를 받으러 갔을 때, 장군은 이 전쟁을 혼란 된 것으로 그러니까 선과 악 정의와 부정의가 구별할 수 없이 뒤섞인 것으로 규정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지옥이라 는 틀 속에 있었던 것이고,커츠는 그 어둠 중에서 한 가운데에,즉 *heart of darkness’ 에 있는 것이다. (나는 위에서 “저승”이란 말을 슬그머니 “지옥”으로 바꾸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 시 언급하겠다. 어쨌든 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을 만든 사람은 “현 대의(혹은, 현재의) 묵시록”이라는 직역을 피하고 대신 “지옥”이 란 말을 넣음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한 가지 (올바른) 해석을 부여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