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로벌 매너인가?국제화. 세계화 시대를 맞아 어느 때보다도 국가와 국가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개인간의 국제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지구촌 세계인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 이른바 국제매너의 필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훌륭한 전통 예의범절이 있지만, 세계인을 상대로 하는 보편적 예의 범절과의 방식과는 다른 면이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의 예의범절은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가족 단위의 성격이 강한 반면, 서양에티켓은 실질적인 것으로 대인 관계와 사회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훌륭한 인간관계는 좋은 만남에서 시작되고 성공적인 비즈니스 또한 첫 만남에서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첫인상이 중요한 것이다. 깨끗한 용모와 더불어 세련된 매너와 화술, 빈틈없는 에티켓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며, 좋은 만남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할 것이다.◎ 국제 매너의 필요성인간을 가리켜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간단히 말해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 혼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며, 그로써 그 개인의 삶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사람은 동물들과는 달리 혼자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가 없으며, 대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필연적인 요소이기에, 사람은다른 사람들 간의 교류와 접촉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도리를 한자 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예(禮)’라 하고 서양 문화권에서는 ‘에티켓(etiquette)' 또는 ’매너(manner)'라 한다.이러한 예의, 나아가 예의범절, 서양 문화권의 에티켓, 매너 등의 가치관은 인간이 2인 이상 모여 하나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영위하면서부터 자연스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사람들 간의 교류관계 하에서 서로 상대방에게 갖추어야 할 말투나 몸가짐, 행동 따위를 어느 정도 정해진 꼴로 규정하고 이를 실천해왔다.즉 예절, 같은 뜻의 매너는 무리 지어권마다 천차만별인 범지구적인 사회에서 그래도 만국공통으로 통용되는 원칙이 하나 있다면, 인사를 포함한 상대방에 대한 어떠한 예절이나 매너는 그 속에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만큼 상대방을 존중해야 진심으로 우러나온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며, 이것은 동서고금을 통한 예절의 근본 뜻이다.인간을 가리켜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간단히 말해 사람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있어도, 그 개인 혼자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의 관계 하에 존재하며, 그로써 그 개인의 삶도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이처럼 사람은 동물들과는 달리 혼자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가 없으며, 대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필연적인 요소이기에, 사람은다른 사람들간의 교류와 접촉과정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도리가 있게 마련이다. 이 도리를 한자 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예(禮)’라 하고 서양 문화권에서는 ‘에티켓(etiquette)' 또는 ’매너(manner)'라 한다.이러한 예의, 나아가 예의범절, 서양 문화권의 에티켓, 매너 등의 가치관은 인간이 2인 이상 모여 하나의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영위하면서부터 자연스레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사람들간의 교류관계 하에서 서로 상대방에게 갖추어야 할 말투나 몸가짐, 행동 따위를 어느 정도 정해진 꼴로 규정하고 이를 실천해왔다.즉 예절, 같은 뜻의 매너는 무리 지어 사는 사람들이 서로간에 직접 부딪히면서 체득하고 학습한 일종의 생활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에 이러한 예절 역시 사람들간의 사회생활상 안에서 매우 커다란 약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예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곧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도 그리 크게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인간의 사회나 생활양식이 그 시대와 환경이 분화?발전되는 과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변천해 왔듯이, 그와 동시에 예절과 매너 역시 시대와 환경에 맞추어 복잡하고 다양해졌으며, 지금까지도 바뀌어 가고 있다.나아가 예절, 매너는 각각의 문화권에 따라 그 나라, 방에게 피해를 주지 마라.여섯째, 여성을 존중하라일곱째, 양보하는 미덕을 가져라.여덟째, 공중도덕을 지켜라.① 인사 매너동양에서는 몸을 낮추는 절과 같은 인사 형태가 발달한 반면, 서양에서는 악수, 포옹, 볼키스, 윙크, 제스처 등의 인사를 많이 한다. 특히 프랑스 인들은 아는 친구를 만나거나 헤어질 때, 두 뺨에 키스를 하는데 이를 ‘비즈(bise)'라고 부른다. 뺨끼리 살짝 부딪치는 것이고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파리 사람들은 대개 2회 양쪽 볼에 부딪치는 식으로 인사한다.이러한 인사매너에서 악수는 매우 큰 비중을 갖고 있다.악수는 국제비즈니스 사회의 격식과 사람간의 친근한 정을 함께 담고있는 인사법으로서 사회활동과 사교활동의 문을 여는데 매우 중요한 행위이다. 서양에서는 악수를 사양하는 것을 실례로 여기므로 외국인과 만났을 때는 친분의 정도를 떠나 형식으로라도 그에 응해야 한다. 악수를 할 때에는 정중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해야 하며, 자연스러운 표정과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누구를 소개받거나 자신을 소개할 때 가장 많이 하게되는 것 또한 악수인데, 악수할 때는 반드시 일어서서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면서 부드럽게 미소 띤 얼굴로 손을 가볍게 쥐는 것이 좋은데, 이는 상대방의 눈을 보지 않고 하는 악수는 큰 실례가 되기 때문이다.악수에도 순서가 있는데, 악수는 상호 대등한 의미이지만 먼저 청하는 데에는 나름대로의 순서가 있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첫 째, 여성이 남성에게둘 째,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셋 째, 선배가 후배에게넷 째, 기혼자가 미혼자에게다섯째, 상급자가 하급자에게그러나 국가원수, 왕족, 성직자 등은 이러한 기준에서 예외가 될 수 있다.여성이라고 지나치게 힘없이 손을 내밀거나 느슨하게 잡는 것은 무기력하거나 소심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으며 때로는 상대를 경멸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상대의 손을 가볍게 잡고 부드럽고 정겨운 인사말을 건네면 된다. 인종과 국적, 언어를 넘어 눈빛으로 주고받는 마음의 교감처럼 더욱 중요한 것머니에 손을 넣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는데, 이는 상대의 시선을 피하면 호감이 없거나 정직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오해하기 때문이다.대화할 때 상대의 주위를 환기시키기 위해 옷자락을 잡아당기거나 어깨를 툭툭 치는 행위는 실례이며, 실수했을 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감사하다는 말들은 정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만국 공용어라고 이야기하는 제스처는 외국에서 유용하게 쓰일 때가 많겠지만,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잘 알아두는 것이 좋다.실례로 손가락으로 하는 링 사인이 대부분 OK로 받아들여지지만, 남부 프랑스에서는 무가치함을 뜻하고, 남미에서는 음탕하고 외설적인 사인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2. 일상생활의 예절 (방문 매너)방문 시 특히 신경 써야 할 것은 시간에 대한 에티켓이다. 어떤 경우이든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겠지만 특히 방문에 있어서는 약속을 한 시간에 필히 도착하고자 하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다.서양에서의 사교방문 시간은 대개 점심식사 후부터 저녁식사 전까지로 되어 있는데, 방문에 가장 적당한 시간은 오후 4시 - 6시 사이이다. 그러나 반드시 미리 상대방의 편리한 시간을 알아보고 방문시간을 약속하는 것이 예의이다. 특히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같이 ‘시에스타'라고 불리는 낮잠을 즐기는 관습이 있는 나라라면 이 시간은 피하는 것이 예의이다.처음으로 방문한 경우 15 - 20분 정도의 대화시간이 가장 적당하나 꼭 그만큼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되도록 짧은 시간 내에 용건을 마치고 일어서는 것이 좋다. 여러 사람과 방문한 경우 주인을 혼자서 독점하듯이 긴 시간 이야기하는 것은 곤란하며, 방문 중 주인의 다른 손님이 찾아왔을 때는 당황해 하지말고 차후의 방문의사나 명함을 남기고 나서도록 한다.방문 시간이 아주 짧지 않다면 남자는 외투를 벗는 게 상식이지만, 여성은 외투, 장갑을 벗지 않아도 무방하다.서양인들은 파티, 회의, 새로운 업무일정을 갑자기 통보 받으면 불쾌하고 당황스러워한다. 이에 공식적인 초대라면 적어도 10일 전에기를 먹지 않는다.①레스토랑에서의 예절우선적으로 사전 예약이 필수적 요소이다. 사전 예약을 해두면 편리할 뿐 아니라 식사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다. 예약 시에는 이름, 연락처, 일시, 인원, 그리고 중요한 접대인 경우라면 예산까지도 미리 알려준다. 예약 시간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며, 늦어질 경우 사전 연락이 없으면 예약 자체가 취소되므로 미리 전화 연락을 해둔다. 레스토랑에 들어갈 때나 연회에 참석할 때는 모자나 코트, 가방 등의 짐은 클라크 룸 (cloak room)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핸드백은 화장품이나 손수건 등 곁에 두어야 하는 물건들이 있어 맡길 수 없으므로 등뒤에 놓거나 의자 밑에 놓아둔다. 긴 장갑을 끼었을 경우에도 이를 핸드백 속에 넣거나 핸드백과 함께 의자 뒤에 놓으면 된다.대개의 레스토랑에서는 매니저가 테이블까지 안내해 의자를 빼준다. 이 자리가 상석이므로 그 모임의 주빈이나 여성이 먼저 앉도록 한다. 입구에서 먼 곳, 벽을 등지거나 전망 좋은 곳이 상석이며 통로 쪽이 말석임을 좌석배치의 기본으로 알아두자. 퍼스트 레이디가 기본이므로 여성은 웨이터나 남성이 의자를 빼주면 앉고, 이후 남성이 앉는다. 남성은 자신의 왼쪽에 앉을 여성의 의자를 가볍게 끌어 내주어 앉도록 배려한다. 앉을 때에는 테이블에 바짝 당겨 앉지 말고, 식사를 편안하게 즐기기 위해 테이블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도록 한다. 주먹 두개 정도의 거리가 적당하다. 의자에서 몸을 흔들거나 다리를 꼬거나 흔드는 것은 보기 좋지 않다. 팔꿈치를 테이블 위에 세우거나 턱을 괴는 행위도 삼가며, 식사 중에는 가볍고 재미있는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입에 넣은 채 이야기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식사 테이블에서 화장을 고치고 립스틱을 바르는 것도 보기 좋지 않으므로 화장실을 이용하도록 한다.계산은 커피나 후식을 거의 마신 후 적당한 때에 앉은자리에서 하도록 한다. 각자 내는 경우라도 그 자리에서 한 사람이 대표로 내고 밖에서 정산을 하는 것이 예의이다. 팁은 계산을 끝낸 후 계산서를 다시 줄 식
*저자소개조셉 콘라드 (Joseph Conrad) - 1857~1924. 폴란드 태생의 영국소설가이다. 해양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선원생활에서 시작하여 선장이 되었다가 작가로 전향했다. 19세기와 20세기를 잇는 영문학의 중요한 거봉으로 부상했다.이상옥 -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영문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 ,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 , , , , 등이 있다*감상글두개의 감상글이 있습니다.좋은걸로 선택하셔서 보시면 되겠습니다^^1.암흑의 핵심은 제국주의를 비판한 정치?사회소설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탐험되지 않은 아프리카 즉 인간의 어두운면을 나타내는 자아의 드러나지 않은 거친 면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게 옳겠다. 주인공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암흑`에 뛰어들어 그 `암흑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을 탐색한다. 그 안에서 콘래드는 성찰적인 대사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사상을 전하는 것이다. 책은 총 3장까지로 페이지 수가 적어 읽는데는 다소 어려움이 없었다. 또 수업을 듣고 책을 보니 집중력도 높아졌고 결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빨리 눈으로 확인 하고 싶어 눈을 땔수가 없었다.배에서부터 말로의 항해는 시작된다. 네명의 사람과 동행한 그는 선원들에게 신임의 화신이 된다. 그의 등 너머에는 어두움이 있다는 것을 아직은 알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류의 강기슭을 덮고 있던 어둠이 찾아오고 강물에도 변화가 찾아와 그 평온함은 차츰 빛을 잃으며 점점 심오해진다. 이는 암흑의 중심에 점점 가까워 지고 있다는 것으로 느낄수 있다. 해가 지고 강물에 어두움이 내려 강변에 등불이 나타나며 항로를 따라 배가 움직이며 수상쩍은 빛으로 훤하게 비치는 그곳은 두려움의 존재로 그들앞에 다가온다.이 책의 화자는 말로이다. 내가 말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로의 콩고 여행기를 듣는 것이다. 말로라는 사나이는 어릴 적 품은 꿈대로 아프리카 콩고로 떠난다. 그는 전공을 살려 선장으로 일하고 배를 고치는 동안 말로는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드문드문 커츠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던 것이다. 강을 따라 올라가면 밀림 깊은 곳에 그가 있다는 것과 그곳에서 상아를 내보내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된다. 결국 말로가 콩고의 선장으로 임명된 것은 커츠를 그곳에서 데려오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주목 할 것은 커츠라는 사람이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갖게 되는 커츠에 대한 사상 욕망 능력 등이 하나의 목소리를 통해 큰 힘을 발휘하게 되고 주인공 말로는 그것을 통해 자기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커츠가 암흑의 힘을 대표하는 목소리 의 주인공이라면 말로는 그것의 힘을 이겨내고 또 다른 목소리의 주인공이 되어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는 화자가 된다. 그것은 암흑 속에서 느끼는 어떤 두려움보다 더욱 강한 힘을 가지게 되면서 사람들을 암흑의 핵심 속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유능한 탐험가인 커츠의 일은 아프리카 밀림으로 가서 상아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일을 누구보다도 멋지게 처리한다. 말로는 그를 구출하러 가면서 그에 대해서 듣게 되는데, 그것은 모두 칭송뿐이었다.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절대 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암흑의 핵심 속에 있는 그의 모습은 도덕적 개념이 붕괴된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커츠는 사람의 목숨을 벌레 죽이듯이 했고, 상아를 위해서 원주민들을 부려먹었다. 그리고 총으로 하느님같은 권능을 부렸는데,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악마에 대한 두려움의 복종이었다. 커츠는 그런 선과 악의 극단 사이의 혼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반미치광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스스로의 인생을 "무섭다"로 정리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 만약 내가 암흑의 오지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자리 잡게 된다면, 그곳이 내가 가지고 있는 존재감마저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라면 아마도 나는 나도 모르게 이끄는 힘에 의해 나 자신을 맡겨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콘래드는 어떠한 결론이나 희망을 말아야할 영역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커츠의 정신상태를 보면서 “그가 처해있는 암흑은 도저히 침투할 수 없는 암흑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결코 그런 암흑 상태에 놓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헛된 욕망은 빛 속에 자리 잡을 때보다 어두운 암흑 속에 자리 잡을 때 가장 큼 힘을 발휘하게 때문이다. 칠흑 같은 밤 일수록 더욱 빨리 빛나는 태양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암흑의 핵심을 통해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2.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원작 소설. 제국주의를 비판한 정치?사회소설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아프리카로 대변되는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한 성찰로 읽는 것이 더 옳다.탐험되지 않은 아프리카의 오지는 자아의 드러나지 않은 거친 면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암흑`에 뛰어들어 그 `암흑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을 탐색한다. 소설의 주된 흐름을 잇는 `말로`의 이야기는 말로 개인의 체험담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 이야기를 듣는 이들(독자를 포함하여)을 그 안에 함몰시키는 힘이 있다.그가 이야기하는 체험의 묘사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이루며 단단한 문체를 감싸 안는다. 그 안에서 콘래드는 소설의 스토리가 아닌 성찰적인 대사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사상을 전하는 것이다.조셉 콘라드는 탈식민주의 문학론을 적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탈식민주의 문학론은, 제3세계의 근대문학이 서구에 의해서 이식되었다는 논리에 대한 반론으로, 아시아 및 아프리카의 문학적 전통을 되살리고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조셉 콘라드를 포함시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생각된다. 무엇보다 조셉 콘라드가 활동했던 시기는 그러한 주장이 제기되기 이전이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물론, 문학적인 발굴, 혹은 재발견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작품 속에 구현된 작가의 창작의도를 학대해석하는 오류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작품 속에서 그가 백인들이 만들어놓은 문명사회와 그들이 진행하고 있는겨져 있는 이기심과 오만이라고 판단된다. 즉, 그의 눈에 들어왔던 것은,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하는 이들의 고통이 아니라, 그들의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 내비치는 광기였다.어쨌거나 그 역시 문명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침략하고 약탈했던 또 다른 가해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반성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 탈식민주의 논리를 강요하는 것은, 집에서 기르는 토끼에게 왜 울타리를 뛰어넘지 못하느냐고 강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흔히, 독자들은 작가에게 그가 속한 환경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어찌 그런 것이 가능하겠는가? 독자는 선지자도 구도자도 도덕군자도 아니다. 그는 다만 남들보다 더욱 예민한 눈으로, 스스로를 반성하는 자일 뿐이다. 이러한 주장이 작가들에게 면죄부가 되어서는 않되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무리한 짐을 짊어지기를 강요하는 것도 역시 억지이다.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비록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겠지만, 작가가 이 작품에서 이야기한 것은, 탐욕으로 미쳐가는 인간의 광기이다. 그 탐욕은 식민주의의 이기적인 속성에 의해서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나고는 있지만, 그것만을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보다 보편적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이러한 보편성이 이 작품에 대한 재해석의 여지를 만든다고 하겠다. 이 작품이 영화 '죽음의 묵시록'의 원작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이야기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영화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베트남 전쟁 역시 변종 식민주의 정책이 만든 비극이지만 말이다.(그렇다고 '죽음의 묵시록'을 떠올리면서, 이 작품을 읽지는 마시길. 주제와 몇몇 극적인 장치를 제외하면 둘은 완전히 별개의 이야기이니까.)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선과 악을 염두하고 살면서도, 정작 그 기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을 시작의 [암흑의 핵심]은 그런 생각들을 정리 할 수 있도록 하나의 좋은 예시를 주었다.우선 제목부터가 독특하다. - 암흑의 핵심. 언뜻 보기에는 악의 정수, 순수한 악을 지칭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암흑의 핵심에 있는 것은 선과 악의 공존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이 창조한 그런 것이 아니었으며,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이 책의 화자는 말로이다. 내가 말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로의 콩고 여행기를 듣는 것이다. 말로는 숙모의 도움으로 선장이 되어 콩고 상류에 있는 커츠라는 사람을 구출하러 간다. 우여곡절 끝에 그를 구출하지만, 커츠는 배 안에서 자신의 인생을 "무섭다"로 정리하며 생을 마감하고, 말로는 그 경험을 통해서 자아성찰을 한다는 다소 밋밋한 내용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 할 것은 커츠라는 사람이다.커츠는 제국주의식 유능한 탐험가다. 그의 일은 아프리카 밀림으로 가서 상아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일을 누구보다도 멋지게 처리한다. 말로는 그를 구출하러 가면서 그에 대해서 듣게 되는데, 그것은 모두 칭송뿐이었다. 천사에게 내리는 거룩한 칭송 말이다.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절대 선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암흑의 핵심 속에 있는 그의 모습은 도덕적 개념이 붕괴된 미치광이 같은 모습이었다. 커츠는 사람의 목숨을 벌레 죽이듯이 했고, 상아를 위해서 원주민들을 부려먹었다. 그리고 총으로 하느님같은 권능을 부렸는데,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악마에 대한 두려움의 복종이었다. 커츠는 그런 선과 악의 극단 사이의 혼돈을 감당하지 못하고 반미치광이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스스로의 인생을 "무섭다"로 정리한 것은 당연할 지도 모른다.선과 악이 공존하는 암흑의 핵심에서, 선과 악을 구분 짓는 것은 한 줌 농담 같은 이념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이념에 따라, 원주민들은 밀림이 주는 이념에 따라, 똑같은 행위를 선과 악으로 나누었다. 때문에 커츠나 말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것은 비단 그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의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그런 ?
자유란 무엇인가?우리가 흔히 ‘자유롭다’라고 할 때는, 특정한 구속이 없어진 것에 초점을 맞추어서 언명하는 경우나 또는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명하는 경우 등. 이 가운데 하나를 염두에 두고 표현하고 있다. ‘자유롭다’라는 말이 역사적으로는 단순히 인간의 법적인 권리와 의무를 노예의 것과 대비시켜 표현되던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 말을 점차 법적 지위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에게 어울리는 일련의 특성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었다. 그러므로 자유란 단순히 일이나 문제의 좌절이 없을 때 성립되는 것이라고 보는 가운데서도 자유의 탁월성을 부각시키려는 노력이 계속 이루어져 왔다. 자유교양교육이라는 말에서처럼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전형적으로 속박이나 강요가 없다는 뜻으로서, 특히 타인이나 다른 권위에 의한 구속이 없다. 둘째, 무지로부터의 자유라는 뜻이다. 셋째, 무엇에 대한 자유이다. 어떤 조건이나 상황을 스스로 선택함으로 얻게 되는 자유를 말한다.따라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의미는 어떤 조건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소극적 자유를 가리킨다면, 세 번째 의미는 어떤 조건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존재를 형성해 나간다는 적극적 자유로 해석된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람이 자유에 대해 언급할 때, 특정한 욕구에 대한 장애들 가운데서 그가 싫어하는 어떤 것이 제거되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다른 장애인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자유롭다고 주장할 수 있다. 자신의 자유는 전적으로 장애를 제거하는 것으로 확보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 구속의 부재라는 의미의 소극적 자유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적극적 자유와는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하겠다. 좀더 살펴보면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가 그렇게 쉽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구속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우리가 원하는 어떤 일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특정한 장애 때문에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는 경우를 쉽게 가정해 볼 수 있다. 여기서 구속이란 우리가 무엇을 하고자 할 때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가하는 것이므로,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은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말로도 얼마든지 이해될 수 있다. 만일 나로 하여금 어떤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가 아무것도 없다면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에게 무슨 일을 할 자유가 있다면 나에게는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어떤 장애도 없는 것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면 무엇으로부터 자유를 배제한 무엇을 할 자유란 논리적으로 연계되어 있으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를 배제한 무엇을 할 자유란 있을 수 없는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무엇으로부터의 자유와 무엇을 할 자유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상호 연관되어 있으며,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자유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자유의 의미와 관련해서 또 한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구속이라는 개념이다. 이것은 한 개인이 외부로부터 제약을 받는 경우에만 성립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한 개인의 내적인 요소가 자기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구속의 개념에는 외적인 구속뿐만 아니라 내적인 구속도 성립될 수 있다. 심신의 질병이나 고질적인 열등한 욕구 때문에 자신의 자유가 구속당한다면, 그것은 내적인 구속이 될 것이다. 물론 외적인 구속과 내적인 구속을 구분하는 일이 자아의 경계를 어디로 볼 것인가 하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지만, 의미상의 구분은 충분히 성립될 수 있다. 따라서 구속에는 내적인 적극적 구속, 내적인 소극적 구속, 외적인 적극적 구속, 외적인 소극적 구속이 있다.
경동교회경동 교회는 전쟁 후 임시로 지은 가건물로서 사용되다가 창립 20주년인 1965년부터 옛 건물을 헐기로 의견일치를 보았으나 새로운 교회당 건립은 많은 난항에 부딪힌다. 이를 위해 세 가지 방안이 제시되는데 모든 건물은 전면적으로 보수하는 방안, 대지와 건물을 매각하고 이전하는 방안, 현장소에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는 방안이 거론되었다. 이들을 면밀히 검토한 끝에 현 장소에 선교 100주년을 기념하는 새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기로 결정하였다. 1979년 11월 11일 교인들이 3억 5천원을 헌금하고 1980년 1월 1일 건축 위원회를 구성하여 교회당 신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김수근이 이 교회의 설계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공간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던 양우석이 교회의 장로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주선으로 당대의 카리스마적 존재였던 김수근과 원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후 1980년 2월 공간 연구소와 설계 계약이 체결되고, 그해 8월에 설계가 완료되었다. 이런 형태의 교회 건축이 지어질 수 있었던 것은 강원룡과 경동 교회가 가지는 독특한 성격 때문이다. 강원룡과 경동교회는 한국 개신교의 여러 교파 가운데 진보적인 그룹을 형성하는데, 그들이 끈질기게 추구해온 신앙은 "바로 역사의 현장 속에서 교회는 무엇인가? 라는 물음과 그에 대한 응답이었다." 이미 도래해 있지만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많은 현실참여를 시도하였고, 따라서 이 교회는 보수적인 교단들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하였다. 이런 교회의 성격은 교회 건축에도 반영된다. 건축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건축이 가지는 보편성뿐만 아니라, 교회가 발을 디디고 있는 바로 이곳, 즉 한국의 특수성도 큰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처음의 디자인 방향은 대지가 도심에 위치하기 때문에 도시적인 맥락을 존중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로에 면해 있는 부분을 계단식으로 처리하여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개방하고자 했다. 이런 생각은 경동 교회의 정신과도 부합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 기능상 상당한 무리가 따랐다. 또 이 개념은 종교 건물로서 가져야만 하는 경건한 분위기를 상당히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초기에 계획한 계단식 건물 개념은 옥상 채플로 대체되고, 건물은 도시 맥락과는 완전히 단절된, 오히려 차별성이 강조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옥상 채플은 공간이 제안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교회측에 의해서 매우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진 개념이다. 이것을 강원룡은 "두 가지 의미, 즉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와 아울러 전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예배와 축제를 뜻한다." 고 받아들였다. 한 여름밤 젊은이들이 별을 보면서 예배를 보는 모습은 분명 인간에 대한 신의 축복으로 여겨질 만한 것이다. 옥상 채플은 지상으로부터 솟아 오른 매스들로 둘러 싸여서, 더욱 아담한 공간으로 승화된다. 이 매스들은 중앙의 한 점으로 수렴되도록 고안되어 중심을 향한 강한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에서 교회 전면의 두 개의 매스는 다른 것보다 더 높이 돌출 되어 있어서 복잡한 도심에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 대지가 협소하여 십자상을 세울 곳이 마땅치 않으므로 이들을 이용하여 교회의 강한 이미지를 주려고 하였다. 김수근이 지은 모든 종교건축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특징은 독특한 외부 공간 개념이다. 이 개념을 처음 생각한 의도는 신성한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예배 자체도 중요하지만 예배를 드리러 가는 마음도 건축화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건축에 있어서 가장 뚜렷하고 오래 된 전이의 문제는 종교건축에서 잘 나타난다.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극 복 할 수 없는 관계를 다루고 있으며 '성과 속'이라는 개념으로 구체적인 표현이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입 공간은 이 두 개념 사이의 전이 공간으로 상반된 두 상황의 극단적인 충돌을 막는 완충 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하며, 동시에 진입 행위 자체가 신으로 향하는 하나의 종교적 행위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실은 우리의 사찰 건축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과 같은 여러 산문을 통과하면서 체험하는 공간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일단 일주문을 들어서면 유인감을 느끼게 되고, 변화로운 진입과정이 전혀 지루함이 없이 즐겁게 전개된다. 특히 경사가 급한 곳에 세워진 사찰의 경우 지형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더욱 드라마틱한 공간을 구성하게 된다. 대지를 조성하기 위해서 여러 개의 단을 형성함에 따라 "진입축 선상에는 하나의 독립된 기능을 가진 건물보다는 각 단마다의 여러 건물들을 시각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건물을 배치하는 것이 한국 사찰에서의 일반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국 건축의 특징을 현대화시키기 위해서 부심하고 있었던 김수근에게, 성과 속을 매개하기 위해서 제안된 진입 공간의 개념은 매우 적절한 아이디어로 비추어졌고, 이후 그가 설계할 종교 건축물에서 매우 유용한 건축 개념으로 적용된다. 경동 교회의 외부 공간은 매우 특징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이 공간을 삽입하는 방법이 여기에서도 더욱 세련된 방법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도로에서 들어서는 입구 부분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그리고 이곳에서 교회의 출입구까지는 폭 3m정도의 계단이 교회 건물과 대지 경계 사이의 좁은 공간을 이루면서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다. 복잡한 세속에서 벗어나 신성으로 가기 위해서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곳이다. 이 길은 신자들에게는 골고다 언덕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세속에 더러워진 자신을 돌이키며, 회개하는 층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외부 계단은 계속해서 관리실 동과 옥상 채플로 연결된다. 계단을 올라서 건물 내부에 들어서면 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빗줄기가 십자가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측면을 따라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힘차게 솟아오르면서 신자들의 눈앞에 다가온다. 이들 각 마디마디에는 천장이 뚫려서 성당 내부에 신성한 빛을 투과하고 있다. 경동 교회의 외관은 적벽돌을 잘라서 거친면을 밖으로 하여 쌓았다. 흡사 첨성대의 곡선이 부드러워 보이는 것이 장대석을 쌓아서 거친면 때문에 부드러워 보이듯이 경동 교회의 외관 또한 거친 벽돌로 인해 더욱 고운 질감을 나타낸다. 또한 경동 교회의 내부는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엄숙한 분위기를 유도하고 있으며 조금씩 그리고 부드럽게 쏟아지는 빛이 마치 예수님이 부활을 상징하는 것 같으며 예배드리는 신도들에게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제공해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합장한 손 모양의 외관과 성스러운 분위기의 내부가 잘 조화되어 훌륭한 종교 건축물을 이루고 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동 교회의 가장 중요한 공간인 옥상 채플을 공연장으로 활용하고 게다가 천장까지 덮어서 이제는 별을 보며 기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우선 교회당의 외형과 내부에 다양성 속에 일치를 나타내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강조했다. 교회의 메인 타워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역사의 현장에 임해오는 것을 기원하는 모습을 나타냈고 교회당 내부는 교회가 지니는 다양한 측면을 조화시켰다. 먼저 예배에 있어서의 수직선 적인 측면과 수평선적 측면의 조화라 하겠다. 제단 뒷면은 삼위일체하나님을 향한 수직선을 높게 하고, 그 꼭대기는 하늘을 통해 햇빛을 하나님의 은총과 영광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인간과 하나님사이를 이어놓는 십자가를 그 벽에 달고, 사람들이 앉는 장소는 수평선적 측면을 최대한 살리려 했고, 교회당 천장의 가로보도 그 형상의 하나다. 제단에는 설교대를 중심으로 성찬대와 세례대를 좌우에 설치하여 성례전과 설교의 조화를 나타내고, 단상에는 좌석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목사는 설교하고 성례를 집행하는 성직자인 동시에 일반신도와 같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신도인 것을 나타내려 했다. 또한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조화를 시도했다. 교회에 모여 들어오면 제단 위의 하나의 십자가와 마주치나 예배가 끝나고 나갈 때는 여러 가지 색깔모양의 십자가형상을 그린 스테인드글라스에 마주서서 나가게 된다. 이것은 2000년간 교회의 선교를 위해 십자가를 진 사람들의 후계자로서 각기 제 십자가를 지고 역사를 현장으로 나가는 것을 뜻한다. 또 하나는 예배당입구와 큰 길 사이의 좁은 계단길이다. 한 계단 한 계단 명상과 회개를 통한 예배준비를 하면서 예배당 입구로 들어가며, 예배가 끝난 후 십자가를 지고 세상을 향해 행진하는 결단을 계속 다짐하며 층계를 거쳐 세상 속에 들어간다. 예배와 축제를 위한 열린 공간인 옥상교회도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하겠다.
1. 서론호주제 폐지를 둘러싸고 정부와 사회 각계 각층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회의 일부분에서는 이미 ‘호주제는 폐지되어야만 한다. 그건 기정사실화 된 논의’라며 호주제 폐지를 당연히 여기는 듯한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과연 호주제는 폐지되어야만 하는가?1960년 민법전이 시행된 직후부터 호주제 폐지론이 주장되어 왔으나,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사이의 민법개정을 통하여 호주의 권한은 거의 다 삭제되었고, 강제상속이었던 호주상속(당사자의 의사에 의하여 호주의 지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함)도 임의 승계제도로 바뀌는 등 호주제도가 크게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계혈통의 계승자인 호주를 중심으로 하여 구성되는 관념적인 가족단체를 의미하는 '가'제도는 여전히 민법전에 남아 있으며, 그 '가'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남자 우선의 호주승계제도 역시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우리는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에 기초"한 가족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 호주제가 폐지되어야 할 이유는 여러가지로 설명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호주제는 우리의 전통과는 무관하며, 일제에 의해서 강제이식된 제도라는 논의가 있었으며,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보아도 변화된 오늘날의 사회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법적인 측면에서도 호주제는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다. 호주제로 말미암아 여자는 남자가 주인인 '가'에 속하는 종속적인 존재이며, 대를 잇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들이 있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아들숭배풍조가 만연하게 되고, 남성우월주의가 깊숙히 뿌리 내리게 된 데에는 법의 책임도 크다. 헌법이 인간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여성과 남성을 명백하게 차별하고 있는 호주제가 계속 존속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우리 사회에서 헌법이념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논증하기 위하여 호주제의 일원이므로 가족법은 국민의 생활과 의식과 행위에 깊은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가족법 원리는 가족과 사회와 국민의식을 형성하는 요인이기도 하다.국가의 근본법인 헌법은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최고의 가치지표로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가족법도부부평등을 그 원리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동성동본불혼제와 호주제도로 대표되는 가부장적인 제도들이 가족법에 남아 있다. 그나마 동성동본불혼제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 이제 가족법에서 폐지될 운명에 있으며, 호주제도는 1991년 개정법에서 호주 권리의 대부분과 의무가 삭제된 채 앙상하게(?)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흔히 공허한 제도, 있으나 마나한 제도라고 한다.그런데 불행히도 이들 가부장적인 제도들은 강행규정이기 때문에 강한 상징성을 지닌다. 한 사람의 출생(호주 또는 가족으로)에서 혼인(동성동본불혼제, 혼인시 처의 부가 입적)과 사망(호주승계순위)에 이르기까지 당사자의 의사여하에 불구하고 가족법과 호적법 규정이 당연히, 강제적으로, 상호 보완적으로 적용되는 동안에 부계혈통중심사고는 국민생활의 일부분이 되고, 잠재적 의식을 형성할 뿐 아니라 사회의 분위기와 관행을 형성하여 왔으며, 오늘날도 그러하다.호주제는 한 가족 집단에 호주가 있어 그 가족에 대하여 일정한 권리와 의무로서 가족구성원을 지배하며 통솔한다는 종적인 사고를 내포하고 상징하며, 호주의 지위가 아들로 이어진다는 원칙을 통해 남성우월과 여성경시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따라서 이 제도의 현실성 여부나, 호주권의 강약에 관계없이 호주제에 담겨진 종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사고와 여성을 열등시민으로 규정하는 법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존엄과 평등권에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호주제도는 출생, 혼인, 이혼 등 국민의 일상생활에서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자녀는 출생하면서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하며(민법 781조), 혼인하면 아내는 시가에 입적함으로, 함께 사는 어머니와의 관계는 주민등록상 동거인으로 표시될 뿐이다.이혼하는 여성과 재혼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그들의 자녀는 호적상 함께 사는 어머니나 어머니의 남편을 따라 호적을 옮길 방법이 없다. 부계혈통중심의 호주제와 호적법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가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이 호주제도는 국민의 신분변동에 대한 공적인 문서인 호적제도에 의해 지지되고 보완되어 그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통해 이 사회에 종적이며 권위주의적이며 남성중심적인 물결을 주도하여 왔던 것이다.그뿐 아니라 호주제도는 세법이나 각종 사회보장법, 그리고 국제사법에도 그 영향을 미쳐 출가외인을 차별하고, 부부중 아내를 차별하며, 부계혈통중심적 법제도의 원인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호주제는 그의 강행성으로 인해, 역기능이 잠재화한 반면에 호주제가 지니는 것으로 오해된, 어른에 대한 공경사고는 미덕으로 포장되어, 결국 신민법 제정이래 지금까지의 세월동안 오랜 폐지에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 건재함을 과시하여 왔다. 그러나 호주제는 과거의 윤리이며, 낡은 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이제 호주제도를 폐지하고 부부친자중심의 가족제도와 호적법으로 탈바꿈할 때, 진정한 개인의 존엄과 남녀평등과 민주화는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2) 외국의 호적제도가. 일본일본의 구호적은 우리나라와 같았지만, 일본이 전쟁 후 민법을 개정하여 호주제도를 폐지하고 '호주와 가족'이라는 장을 완전히 삭제하고, 가족이라는 용어도 민법전 속에서 사용하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호주제도와 가제도의 폐지로 호적도 폐지되었다. 그리고, 새로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으로 하는 호적을 창설했다. 구체적으로 혼인으로 부부는 하나의 성(씨 : 氏)을 정하도록 하고(부부동성제도), 이 성을 호적의 편제기준으로 하여 호적은 부부와 그들과 동일한 성을 칭하는 자녀로 편제(동성동적원칙)한다. 그리고, 혼인한 모든 자녀는 신호적을 편제한다(3대호적금지).이러한 일본호적은 부부동성제도로 인하여 90%이상의 여성이 남편따라서, 과거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병탄되기전에 중국영향을 받아 시행하고 있었던 호구조사식인 호적제도가 기술적으로 발달했다. 이 제도는 주민등록제도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즉, 중국은 호구등기기관과 혼인등기기관을 따로 두고 있다. 호구등기기관에서는 호구부를 작성하고 이 호구부에는 가구주와 그 가구원의 출생, 사망, 전입, 전출사항을 명시한다. 혼인과 이혼은 혼인등기기관에 신고하고, 이 신고에 따라 혼인등기기관은 혼인증이나 이혼증을 발급하고, 당사자가 이 증서를 호구등기기관에 보이면, 호구등기기관은 이 사실을 호구부의 혼인상황란에 표시한다. 부부는 동적하지 않고, 자녀는 원칙으로 모의 호구부에 기록한다. 중국의 호적제도는 거주이전의 제한과 관련한다.다. 독일독일에서는 개인별, 사건별 편제방식에 따라 출생, 혼인, 사망의 각 사건마다 호적부를 작성한다. 따라서, 출생부, 혼인부, 사망부가 존재한다. 그리고, 개인의 이러한 사항을 일람하여 파악하기 위하여, 이러한 호적부간을 연결하는 난외부기방식을 채용한다. 나아가, 가족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가족부도 작성한다. 가족부는 혼인으로 개설하고, 부부와 미혼자녀의 신분사항을 기록한다. 출생부, 혼인부, 사망부에서 가족부에 기록할 사항을 통지한다.라. 프랑스프랑스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개인별, 사건별 편제방식에 따라 호적부를 편제한다.프랑스는 호적제도로서 신분증서제도를 두고 있고, 출생증서, 혼인증서, 사망증서, 인지증서 등, 다양한 증서들을 작성한다. 이러한 증서에 기록한 사항을 일람하여 파악하기 위하여, 역시 난외부기방법을 채택하며, 나아가 출생증서에 다른 증서사항을 난외에 대부분 부기하여 출생증서의 일람으로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가족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가족대장을 각 가정에 발급하여 보관하도록 하고 있다.마. 미국미국은 철저한 사건별 기록제도를 가지고 있어, 출생, 혼인, 사망에 따라 각각 증명서를 작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증명서간에 연결은 없다. 이혼은 법원에서 하고, 그 기록은 법원 시대인 지금 우리가 우리의 부모 조부모를 공경하는것이 호주제도를 잘 인식하여서 인가?이것은 인륜도덕의 문제와 행정의 문제를 동일시 하는 시각은 참으로 비합리적이다.우리나람 사람의 인구수 만큼의 이름을 기록 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성함을 기록하고 거의 뭐 족보도 아닌것이 출가하였다고 빨간줄로 그어버리고 이게 뭔가.. 출가한 누이가 출가한 여동생이 이제는 가족이 아니란 말인가?이러한 호주제도는 남자 중심으로 남아선호사상을 가중시키고 더 나아가서는 세상의 수많은 여아들이 공기한모금 호흡못하고 저세상으로 가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는 비인간적인 제도라는 것이다.우리나라사람은 예로부터 웃어른을 공경하고 예를 알고 행하는 민족이라 하였는데.. 그 옛날에 호주제도는 없었다. 다만 가르치고 다듬고 그것도 가정에서 뿐만이 아닌 지역 사회에서 가르치고 다듬고 하였다.지금은 어떠한가? 감히 약한 이를 괴롭히는 불량한 아이들을 보고 이를 따금하게 가르치는이가 있는가? 호제제도가 있는 지금. 호주제도의 페지가 도덕성의 상실을 가중 시킨다는 이야기는 합리적이지도 그 말에 일리가 있지도 않는 이상한 생각인것이다.호주제도는 남녀를 떠나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통제의 수단이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다.호주제를 반대하는 나의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자 한다.첫째: 호주제는 남자 성만을 사용하므로 양성평등에 어긋난다.한 가족 집단에 호주가 있어 그 가족에 대하여 일정한 권리와 의무로서 가족구성원을 지배하며 통솔한다는 종적인 사고를 내포하고 상징하며 호주의 지위가 아들로 이어진 다는 원칙을 통해 남성우월과 여성경시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따라서 이 제도의 현실성여부나 호주권이 강약에 관계없이 호주제에 담겨진 종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사고 와 여성을 열등시민으로 규정하는 법 제도는 헌법이 보장하는 개인의 존엄성과 평등권에 조화될 수 없는 것이다. 현행 민법상 호주제도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에 기한 가족제도이므로 절대 폐지되어서는 안된다는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