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세계화와 변화하는 세계우리의 인류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비유해 설명한다면 근대사회의 발전은 거의 막바지라고 할수있는 11시 59분 30초 에 시작하여 30초동안 발생했던 사회 및 환경에서의 변화는 그 이전 23시간 59분 30초 동안 발생했던 변화량을 능가할 만큼 엄청난 것이다.산업화를 계기로 2백년전까지 인류의 역사를 지배했던 사회 형태를 전멸시키고 산업사회로 접어든다. 산업사회는 최초의 민족 국가였고 더욱 분명한 경계선을 서로를 구분하는 정치적 공동체이다. 민족국가의 정부는 자신의 국가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법률을 통해 시민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권력을 행사한다. 오늘날 세계의 거의 모든 사회들은 민족국가이다.많은 발전속에서 힘 있는 나라는 작은 나라를 군사력을 이용해 많은 식민지들을 건설하였고 어느나라는 부를 얻고 어느나라는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20세기초 주요사회 유형들 간의 대조점을 부각하기위해 제3세계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세계는 산업화된 나라들이고 2세계는 사적 소유와 경쟁적인 기업의 역할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나라이며 3세계는 개발 도상국을 칭한다. 아직도 이런 세가지 세계 모델은 사회학 교과서에서 아직도 쓰이고 있지만 오늘날에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없어지고 자본주의를 많이 받아들이면서 이러한 용어들이 많이 퇴색이 되었다. 그리고 서열을 나누는것 같아서 비판하는 문제점도 있다. 제3세계 개발도상국들은 경제적으로 1세계들처럼 많이 발전하지는 않았지만 일부는 성공적이 산업화 과정을 통해 극적인 경제성장을 하였다. 이러한 국가를 신흥 공업국이라 부불린다. 이처럼 많은 세계는 자본주의를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루어나가며 경제적으로 성장을 하고 세계화를 이루어 나가고있다. 세계화를 이루어 나가는 이유 하나중에 초국적 기업들을 들수 있는데 세계화를 추동하는 많은 경제적 요소들 가운데 초국적 기업의 역할이 크다. 초국적 기업은 여러나라에서 생산을 하거나 판매하는 기업이다. 코카콜라,GM,애플 등 여러 가지 기업들이 있고 그들은 세계 시장과 세계적인 이윤을 추구한다. 초국적기업으로 인한 세계화 즉 단일화 되어가고 서로간의 교류가 생기고 무역으로 인한 서로간의 이익증대 등이 발생하지만 역기능도 있다. 초국적기업의 횡포를 들수 있는데 기업이란 것 자체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을 특성으로 가지기 때문에 그 기업들은 여러나라에 손을 뻗쳐 이익을 생산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노동력착취가 일어나게 되고 최소한의 임금을 가지고도 부려먹을수 있는 후진국에서 싼값에 어린아이등등을 고용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비인권적인 측면 등 횡포가 심하게 된다. 초국적 기업은 권력도 막강하여 그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한다. 예를 들면 애플 회사의 공장의 경우 많은 근로자들이 투신 자살 하는 사례가 뉴스를 통해 나오기도 하고 다른 나라 작은 기업들을 인수해 핵심기술만 빼내 다시 파는 초국적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있다.
독후감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교회를 다녔지만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교회를 다니지 못했다. 대학교를 기독교 대학을 들어오고 난후 기독교 관련 수업과 채플 등을 듣게 되면서 다시 한번 기독교에 대한 이해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저번 학기에는 기독교와 문화를 들었는데 기독교에 대한 역사와 수많은 다른 종교의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기독교가 지향하는 목표와 정신을 더욱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학기에는 이번 강의인 성서와 문학을 배우고 있는데 성서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고 성서에 담긴 뜻과 의미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그래서 이번 중간 과제를 성서에 관해 이해하기 쉽게 나온 책인 “새내기 성서 속에서 길을 찾다”를 읽고 과제를 하려한다.책에서 보면 지하철이나 가게에서 성서를 읽는 장면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고 나온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장면을 쉽게 보지 못한 것 같다. 주말에 교회 근처를 지나가면 성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봤어도 평소에 거리에서 읽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요즘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성서는 물론 다른 책들까지도 거리에서 책을 보고 있는 드물다. 영어공부나 시험공부 때문에 책을 보는 사람은 많이 보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는 아는 할머니께서는 몸과 마음이 힘들 때 마다 성서를 자주 찾아보시고 힘을 내신다고 한다.성서는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과 책에서 본 내용같이 세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2008년 기준 2,479개로 번역이 되어있다. 그리고 성서는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나뉜다. 성서에는 또한 많은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나 성서는 어떠한 측면으로 보면 결점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진솔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새내기 성서 속에서 길을 찾다”를 읽으면서 성서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 나처럼 교회를 다녔던 사람도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수업이나 책을 보지 않으면 전혀 몰랐을 사실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성서에 관한 재밌는 사실과 역사를 알 수 있어서 나의 지식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거 같다.또한 책에서 예수는 사실일까, 신화일까? 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금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실제 인물인가, 신화적 인물인가? 하는 논쟁을 하고 있다. 책에서 신약성서를 제외하고 몇몇 고대 자료에서 예수에 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나온다. 그리고 많은 증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예수의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신화일지 모르지만 예수는 분명히 역사 속에서 살았고 인류에게 지대한 가르침을 남긴 분임은 확실하다고 나온다. 또한 나는 비록 기독교를 지금은 다니지도 않고 이런 증거 자료를 보지 않아도 예수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힘이 들거나 뭔가를 간절히 이루고자 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그렇게 기도를 드리면 내가 하고자하는 일에 힘이 되고 용기가 솟아나는 걸 느낀다. 진짜 하느님이 존재하고 예수님이 존재 하셨기에 이 기도가 통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기독교를 믿고 다니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 만약 허구적인 면이 있었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를 믿고 따르진 않았을 것이다. 다들 예수를 믿고 기독교가 진실이 묻어나고 좋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에 기독교는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주고 따르는 종교이기에 예수는 실존적 인물이라고 자신한다.그리고 책에서 예수께서는 많은 기적을 행하셨다고 나온다. 그 중에 병자를 고치는 기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복음서에 있다고 한다. 이걸 본다면 우리는 쉽게 예수님은 병을 고쳐주시는 분으로 생각 할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그것을 믿는 자는 낫게 되며 병이 낫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 할 수도 있다. 사실 내게 와서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하느님의 그러한 능력의 믿음을 가지고 나서 병이 고쳐졌다고 하는 사람을 가끔 본 일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그들이 분명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 일거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오히려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병을 낫게 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그 토록 말하는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라고 생각한다. 즉 천국에서는 그러한 질병이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을 괴롭히는 악한 질병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완전히 무력해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라 생각된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이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방문한 이야기가 나온다. 거기서는 여러 병에 걸린 사람들 자기의 질병을 낫게 하기 위해 모여 있었는데 그 병자들은 자신의 병을 고치는 일이 천사나 물 또는 못에 빨리 들어 갈 수 있는 활동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병을 말 한 마디만으로 고치게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지 않았다. 분명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병 또한 고쳐주기를 바랬을 것이다. 예수님 또한 병을 고쳐주시고 그러한 믿음을 바라셨다면 분명 모든 사람들을 빠짐없이 고쳐주려고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하시지 않으셨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한 사람의 병을 고치셨으나 그 메시지는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 것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는 것은 천사나 물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깨닫기 바라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먼저인가? 왠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 같지만 그 것을 깨달음에 있어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 같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한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보이는 능력에만 치중한다면 신앙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둘이 무엇이 다른가? 분명 예수님께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지 않았다면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예수님께 있어서 병을 고치는 일은 아주 작은 일에 불과 하다고 생각한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십자가에 매달리신 일을 생각해 보라.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병 고치는 자로만 생각하는 일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천국으로 이어져 나의 질병 따위가 낫게 되는 것과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능력이 나의 믿음의 근원을 만든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분명히 이해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책 후반에 보면 바울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나온다. 바울의 내용을 보고 나는 그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서 배울 점 가운데서도 가장 큰 것은 용기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당시 바리새파 사람으로서 당대의 대학자였으며 자신의 유대교를 수호하기 위해 처음에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당시로서는 최고위의 학자로서 많은 존경을 받았던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이 믿고 있던 유대율법의 잘못을 깨닫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 뒤를 따른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그저 단순한 제자가 된 가정으로 넘기기 쉽지만 이는 실로 대단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단순히 자신이 가진 부만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바꾸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만일 현재 세계적으로 최고 권위를 가진 학자이자 교수가 다른 새로운 학자의 이론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틀린 것을 인정하고 또한 그의 제자가 된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수 있을까? 예수님이 펼친 말씀은 분명히 바울이 알고 있던 유대율법과는 대조적이었음에도 자신의 사상과 신념의 잘못됨을 깨닫고 그것을 수긍하고 받아들이는 용기를 발휘한 것이다. 용기란 단순히 악한 적에게 힘으로 맞서 싸우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잘못된 점을 인정하고 바꾸어 나가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참된 용기인 것이다. 우리는 바울에게서 무엇보다 이런 용기를 배워야한다. 물론 그의 실천력과 굳은 의지 결연함 등도 배울 점임에는 틀림없지만 그의 용기는 우리시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은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문화등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로인해 조선을 안으로부터 붕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19세기 후반에 맞이한 위기의 근원이 되었다. 또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으면서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조선에 직접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로인해 조선의 개국과 이에 따른 외세의 위협이 생겨나면서 조선의 내적 위기를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수준으로 만들었다. 19세기 후반 들어 조선 내부에서 나타난 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징후는 증가하고 있던 농민운동이다. 1862년 진주민란이 발생하였는데 이것이 조선 체제의 안정성을 밑으로부터 깨어지는 큰 계기였다. 진주민란이후 농민운동의 발생횟수는 증가하였고 개항이후 많아지면서 동학농민운동까지 발전되었다. 농민운동의 발생은 조선의 내적 모순을 잘 보여주는데 농민경제의 파탄, 국가재정의 빈곤과 함께 신분질서의 변화로 인한 체제의 안정성 약화 등으로부터 기인한다. 우선 농민경제의 파탄과 국가재정의 빈곤은 농민의 생산이 국가의 세금으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부패, 즉 삼정의 문란에서 나왔다. 각 관료들과 이서계급의 부정은 물론 조세제도의 문제였다. 신분질서의 변화로는 조선의 정치구조가 신권이 강화되면서 분권화된 상태를 띠면서 지방정치에서도 향촌사회에 대한 정부의 침투가 한계를 드러냈다. 따라서 향촌사회를 통제했던 사족세력은 지방정체에서 상당한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사족들은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로 인해 효율적으로 향촌사회를 지배했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제도가 안정된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를 겪게 되어 양반의 증가와 천민의 급격한 감소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더 이상 신분질서에 근거한 사족들의 통제력이 행사되기 힘들어졌다. 변화를 통해 천민들과 부농들은 신분을 탈피하거나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지만 이러한 좋은 측면에도 불구하고 조선사회의 체제유지라는 측면에서는 이 변화는 체제의 안정성에 결정적인 위협요인이 되었다. 또한 이런 내부적 위기요인에도 불구하고 버티던 체제가 19세기 후반에 더해진 바깥으로부터 압력으로 인해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들은 조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중 일본이 조선에 대해 다른 곳 보다 적극전인 태도를 보였고 일본의 공세의 의해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인해 외국에 문을 열게 된다. 이 조약은 조선을 일본의 영향력 아래 두려는 계략이었고 이것을 계기로 다른 국가들과도 비슷한 내용의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중국을 세계의 중심을 알고 지내왔던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었고 바깥세계의 일들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체제의 위기가 새로운 차원으로 상승 되었다. 이처럼 일본의 침투로 우리는 결국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은 근대화의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이전과는 다른 사회로 끊임없이 바뀌어갔다. 이 시기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들이 추구한 근대의 모습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었으며 실현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갑오개혁일 것이다. 이들은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구적 근대를 정치, 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실현하려 했으며 신분제를 해체하고 과거제도 폐지했다. 이러한 근대의 도입은 갑오개혁이 끝나면서 중단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후에도 근대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었다. 또한 갑오개혁 세력 다음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보수세력들은 광무개혁을 통해 새로운 근대의 도입을 하였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조선은 식민으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조선이 식민지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농민, 정치 엘리트, 지주, 그리고 보수적 유학자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하려 했고 동시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갔다. 조선도 다른나라들인 러시아와 중국의 근대화 경로처럼 농민들이 주체가 된 밑으로부터의 혁명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조선에서도 농민들은 동학농민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조선사회의 변혁을 시키려 했고 프러시아와 일본의 경우처럼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근대화 된 것처럼 조선도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을 통해 조선사회의 근대화를 추진했다. 또한 영국, 프랑스, 미국은 부르주아지가 주체가 되어 근대가 발전한 것처럼 조선도 개항과 함께 농업자본으로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지로 성장할 잠재력을 지닌 지주계급이 형성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개별적 사회변혁 노력이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만 조선의 전통적 농업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수 있을 정도로 효과적이지는 않았다. 조선은 같은 시기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지만 서로 하나로 묶일 수 없었다. 연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구성원을 다르게 규정함으로써 위기극복을 위한 이들의 노력이 한계를 보였고 농민들과 사회적 정치적 엘리트들은 사회개혁의 진행방향과 진행방식에서 서로 모순을 일으켜 양립 불가능한 대립구도를 형성했다. 근대의 도입을 통해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결합되지 못함으로써 조선의 근대는 불완전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미완의 근대가 그 이후 새로운 사회적 환경을 맞으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발현되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선은 식민화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