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컴의 이해] ‘텔레비전에 대하여’를 읽고‘텔레비전에 대하여’라는 제목은 매스컴의 이해라는 수업의 특성 상 읽기 전부터 이미 텔레비전의 매스컴으로서의 역할에 대한 비판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지은이가 프랑스인이므로 프랑스의 매스컴으로써의 텔레비전에 관한 내용일 것이라는 추측이 들었는데 다만 읽는 과정에서 든 생각은 실제 내용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로 쓰여 진 원작의 내용 형식 역시 단순하리라 짐작되지만 한국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너무 직역을 한 나머지 본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아쉬움이었다.이 책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을 글로 옮긴 것으로 다시 말하면 저자는 텔레비전 속에서 텔레비전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었다. 저자도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마음껏 비판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면서까지 방송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는 프랑스의 텔레비전을 비판하고 있지만) 프랑스 방송사(콜레주 드 프랑스)는 분명 한국의 그것보다는 훨씬 열린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텔레비전에 대하여’는 가장 먼저 텔레비전 속의 보이지 않는 검열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저자는 시간 제약이나 정치적, 경제적 제약 등에 대한 검열들을 예로 들며 말하고 있는데 검열이라 함에 있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법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을 정당화 시켰던 한국의 과거 독재정부나 그 이전의 일제 강점기 하의 정치적 검열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현대 한국사회에서 시청자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시간의 제약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치적인 언론 플레이나 경제적인 제약에 따른 문제들은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다 할지라도 언론의 특성 상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또 점진적인 개혁은 몰라도 혁신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은 존재하지도 않고 실행할 수 있지도 않으나 나날이 시청자의 교육의 정도가 높아지고 지식수준이 올라가고 있으므로 이러한 문제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 기대 할 수 있다.그러나 시간 제약의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의 제약은 시청자로 하여금 사고를 마비시켜 버리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데 시간의 제약은 방송제작의 근원적 문제인데다 사고가 마비됨으로써 방송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나 생각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리는 점은 인간에게 있어 불가항력적이라 이것은 개선하기가 매우 힘들다. 서로 경쟁하는 방송 속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많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빠른 시간동안 내보내고 시청자들은 그것에 대해 비판하거나 깊이 있게 생각하지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수용해버리고 마는 것인데 흔히 TV를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멍하게 쳐다보고만 있던 경험이 있는 것과 같다. 또 이러한 시간제약의 검열은 시청자의 사고를 피상적이고 무디어지게 만든다. 한사람이 강도를 당해 중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얼마나 끔찍하고 안타까운 일인가? 하지만 이러한 뉴스를 들으며 안타까운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뉴스는 또 다른, 더 자극적인 기사를 방송하고 이러한 방송 앞뒤에는 오락프로가 방영된다. 사람들은 심각한 기사를 듣고도 생각 없이 넘겨버리고 웃는다. 그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 라기 보다는 그럴 수도 있다는 이야기 이상으로 큰 임팩트를 갖지는 못하게 되는 것이다.이런 문제는 요즘 많이 비판하는 방송 질의 저하와도 많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는 TV를 켜면 대부분의 좋은 시간대에서 오락프로그램이 방송된다. 이런 오락프로그램들이란 대개 실제로는 각본으로 짜여 진 연예인들끼리의 남녀 짝짓기나 연예인들의 사적인 경험 이야기, 혹은 가학적인 게임들이다. 이런 프로그램들은 시청자들을 즐겁게 한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삶에 있어서 웃음이란 생활의 활력소로서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들은 TV를 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어느 조사에서는 한국의 제1여가가 TV시청이라는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그런데 이 많은 시간을 단순히 웃고 만다면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그 웃음의 질을 생각해 볼 때 더욱 그렇다. 연예인이 사석에서 겪었던 창피한 일들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될 것인가? 또 연예인들이 가학적인 게임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으로 다가올 것인가?이러한 문제는 책의 내용처럼 각 방송사마다 시청률의 경쟁 때문일 것이라 생각된다. 시청률은 그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생존을 둔 경쟁에서 밀려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청률에 대한 과도한 경쟁은 나름대로 공영방송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있는 KBS까지 휩쓸리는 정도에 이르렀다. 살아남아야 하는 당위성을 인정하여 준다하더라도 TV 속 프로그램의 질에 대한 문제는 많은 부분 방송사에 물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방송사들이 단순 오락적 프로그램을 주 무기로 경쟁한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단순 오락적 프로그램들은 들인 노력에 비해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단순한 여가선용차원을 넘어선 물건이다. 어린아이들은 텔레비전을 통해 사회화에 영향을 받고 어른들은 사고의 틀에 있어서 큰 영향을 받는다. 프로그램 제작과정에서 방송사가 그리고 방송 제작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확실한 인지를 가지고 단순 오락적 프로그램들이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질 좋고 각 방송사마다의 개성을 가진 프로그램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방송사들은 나름대로 자사를 대표하는 슬로건들이 있다. 공영방송 KBS, 문화방송 MBC 등이 그 예인데 이런 슬로건들은 각 방송사들의 성격을 표현하고자 지어진 것들이다. 따라서 방송사들은 각각 자신만의 모토를 가지고 운영해나가고 있다는 뜻인 것이다. 그러나 실제 방송은 좀체 그런 것 같지가 않다. 한 방송사에서 소위 히트를 치면 다른 방송사들도 줄줄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편성, 제작한다. 각각이 지닌 확고한 개성이나 차이가 없어지고 마는 것인데 이러한 문제점은 저자가 말한 것처럼 모두 새롭고 놀라운 것을 찾으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모두 똑같아져 버린 것의 한 예가 될 것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시청자들은 쉽게 식상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는 데 그 속도에 맞추려다보니 타 방송을 모방하는 지름길을 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방송사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 모든 방송사가 비슷한 편성으로 방송을 진행해 나가면 시청자 입장에서는 채널을 돌려도 다 같은 프로그램 밖에 볼 수 없어지고 더욱 쉽게 식상함을 느낄 것이다. 그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의 유행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방송제작에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부담감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 모방이란 창조의 어머니이나 표절은 범죄이다. 우리나라 방송은 최근 들어 종종 표절 논란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내부에서의 모방도 모자라 아예 다른 나라의 프로그램의 형식을 그대로 다와 제작하는 것은 위법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의 한국의 이미지에까지 손상을 주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