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동의보감’을 읽고내가 의과대학에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중 하나를 준책이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었다. 왜였을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이 책을 선택한 이유 말이다.생각해보면 동의보감(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은 나와 꽤 오랫동안 관계를 맺고 있는 듯 싶다. 이미오래전 어렸을 적에는 마냥 재미있는 소설중의 하나로서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는 추천 교양도서로 지금은 독후감을 쓰기 위해 다시 읽고 있다. 그러나 다른 도서와는 다른 면이 동의보감에는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또한 새로운 감동이 항상 내 가슴을 상쾌하게 채워주는 이유는 나도 잘은 모른다. 아마도 ‘허 준’이라는 한 인간이 지니는 묘한 끌림과 그의 인간성이 범인의 것과는 다름에 그를 부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을 읽음으로써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리라. 그는 백성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하였으며 환자를 진정으로 소중히 여길 줄 아는 희생정신이 있었다.각설하고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면서 ‘허 준’이라는 인물에 대해 새로운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저자의 서설에서도 밝힌바가 있는 정일품 보국숭록대부에 양평군이라는 작호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중인의 신분으로 정일품까지 오른 것은 이례적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는 조선 중기로서 신분차별이 극에 다른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업적이 뛰어나더라도 타고난 신분의 한계를 초월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어미가 천인임에 자손대대로 천인일 수밖에 없었던 ‘허 준’이 천인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의원 취재에 입격하는 길 뿐이었다. 내가 의과대학에 진학한 이유도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고려대상이 되었음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시 어의였던 ‘양예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종오품이라는 관직이 양반이 아닌 신분으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였던 것 같다. 아마도 사대부라는 작자들의 반대가 심했던 까닭이리라. 그러나 ‘허 준’은 당시의 그러한 관습이 모두 무시된 관직에 있었다. 명종 조에신 3등에 책록되어 양평군에 피봉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로부터 추론해볼 때 ‘허 준’의 그와 같은 특별한 관직은 당시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함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허준은 피난을 가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홀로 의서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진정으로 의학을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이 소설 동의보감은 조선조를 통틀어 최고의 의서라는 「동의보감」을 편찬한 '허 준'이라는 인물을 일대기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그러나 단지 ‘허 준’의 행적이나 저작에 관한 해설과는 전혀 다른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허 준’의 한 인간으로서 의술을 배우게 된 계기와 그 과정에서의 한 인간의 고뇌를 담고 있다. 또한 유의태 라는 훌륭한 스승과 만나고 또 김민세, 안광익 등과 같은 최고의 명의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사상과 그들의 행동으로부터 그가 느꼈던 감정들을 한 인간으로써 서술해놓았다. 즉, ‘허 준’의 업적보다는 인간적인 면에 비중을 둔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작가의 작고로 연재되던 소설이 끝마침을 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끝난 것이다. 이 책에서는 ‘허 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의업을 시작하게 된 동기 ,배우는 과정, 내의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임진왜란중의 행동에서 작가의 작고로 그 내용이 끝나있다. 그 다음 내용은 다른 역사책들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여러 작가들이 써놓은 요약집을 읽어보았다.이 글의 주제는 글의 제목대로 불꽃처럼 살다간 ‘허 준’이라는 조선조 최고의 명의의 생애이다. 그리고 ‘허 준’의 생애를 통해 ‘허 준’의 정신이 오늘날 다시 피어오르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현재도 음지에서 아픈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의사와 그 밖의 봉사자들이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단지 명예를 위해서라면 정치를 하면 되고 돈을 위해서라면 장사를 하면 된다. 의학이라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이다. 따라서 이 학문에는 다른 어떤 목적이 먼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없다. 우리가 행동과학을 배우는 이유도 나중에 의사가 되어 환자의 육체적인 병뿐만 아니라, 환자의 마음과 인생을 볼 수 있게 교육하는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환자의 어려운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의사에게 환자는 실망하기 마련이다. 환자- 의사의 관계는 악화될 수밖에 없고 환자는 결국 병원을 떠나고 싶어졌다. 사람은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신뢰하고 그 곁에 있어 싶어 한다. 환자는 신뢰하는 의사에 대해 치료적 명령을 잘 따른다. 즉 의학적 처방에 대한 순응도가 높아진다. 최근 의학교육에서 환자- 의사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치료를 위해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소설 동의보감은 전반적으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남을 도우려는 사람, 가능한 남을 도우려는 사람 등 지금도 볼 수 있는 따뜻한 인간들이 주인공과 배경인물이 됨으로써 허준이라는 인간을 잘 표현한 것뿐만 아니라 의술을 배우려는 사람이 가져야할 자세, 아니 모든 사람이 가져야할 바람직한 자세를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런 바람직한 인물에 대비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인물들이 주변인물로 설정이 되어있다. 이러한 점은 이 소설에 더욱 현실감을 주는 사실이며 이러한 인물들로 인해 주인공의 바람직한 점이 더욱 부각되고 또 본받고 싶은 행동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의사중 에서도 환자의 입자을 우선시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자신의 경제적 이익등을 더 추구 하는 사람도 있다. 의사도 직업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보상을 얻고자 함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환자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이 소설에선 ‘허 준’이라는 인물의 설정이 매우 현실감이 있게 설정되어있다. ‘허 준’이란 인물이 처음부터 본받을 만하고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무례하고 또 약간은 이기적인 부분도 있고 보통사람처럼 욕심도 약간은 있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변해가게 되었다. 그 주변에는 그의 아내, 유의태, 김민세, 안광익 등의 사람들이 있었다 대었던 부술에 미친 사내 안광익, 사랑을 위해 궁궐 담을 넘은 궁녀 정씨, 양예수의 눈에 띄어 차기 어의자리가 보장되었으나 자신의 아들을 죽인 원수의 아들을 양자로 맞아들이고 천형이라는 대풍창(나병) 환자들을 돌보는 김민세와 같은 사람들을 보며 차츰 자신도 이들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허준이 심의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주위의 훌륭한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무엇보다 의원의 자세를 알려주고 그 경지를 지도해주고 자신을 희생해 가며까지 제자를 위해 또 모든 아픈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제공하였던 유의태가 있었기에 ‘허 준’이라는 인물이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해볼수록 유의태의 그러한 행동은 정말 대단한 희생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해부학 실습은 한 우리도 선뜻 시신기증을 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일반인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 내 육신을 내놓아 미래의 의대생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시신기증 서약도 의사로서의 바람직한 자세가 될 수 있을 것이다.하물며 당대에 있어서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는 자체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책의 시작은 ‘허 준’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한 때는 양반이었지만 천인의 신분으로 떨어진 어머니와 용천 군수 사이에 태어난 서출로서 역시 천인일 수밖에 없었던 ‘허 준’은 그러한 울분을 술과 파락호와 같은 생활로서 해소해나가고 있었다. 양반자제들과 글도 함께 배웠건만 함께 과거를 볼 수 없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당시의 그러한 차별은 너무나 당연한 환경이었으므로 그러한 차별에 별다른 저항적인 생각이 그리 널리 퍼지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허 준’은 그러한 자신의 신분을 어떻게든지 벗어나려고 의식적으로나마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의대생들은 의대를 졸업한 후 수련의가 되는 과정이 정해져있어 비교적 정해진 살게 되지만 항상 주어진 일에 노력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나 자신의 개발을 른 사람들로부터 경계의 대상이 된다. 그 후 낮에는 약초를 캐고 그 후에는 약재창고 일을 하던 중에 우연히 유의태가 아들의 취재 준비를 위해 도움을 주는 소리를 엿듯게 된다. 그 후로 계속 그러한 일을 반복하면서 의원으로서의 도리와 기초적인 지식을 얻게 된다. 여기서 유의태가 아들 도지에게 묻는 말이 수많은 의원중에 여덟가지 의원이 있다며 그 부류를 묻게 된다. 유의태는 그 여덟가지 의원중에서 심의만이 본받을만한 의원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유의태가 진정 병자들을 어떻게 돌봐오고 생각해왔는지를 잘 알 수 있었다. 그는 진정 환자에게 선(善)을 행하는 인물이었다. 아들에게 환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르치기 위해 애를 쓰려는 한 어버이의 노력도 볼 수 있었다. 예부터 의술은 인술이라 일컬어왔다 인이란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요 자비이며, 인술이란 환자에 대하여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기술을 의미한다. 그러나 도지는 유의태가 바라는 그릇은 아니었나 보다. 그에겐 아버지의 그러한 사랑이 없었다. 유의태가 말하는 심의란 대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늘 마음이 편안케 하는 인격을 지닌 인물로 병자가 그 의원의 눈빛만 보고도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경지로서 그건 의원이 병자에 대하여 진실로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고서야 가능한 품격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심의의 단계야말로 모든 의술을 공부하는 사람이 과거에도 지금도 또 앞으로도 영원히 바라보아야 할 단 하나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허준이 유의원 집에는 지내는 동안 아내는 삯바느질을 하여 집안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허준은 이후 도지의 방에 들어가 몰래 책을 가져와 보던 중 들키게 되나 그 일로 인해 오히려 도지와 친구사이가 되고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허준의 허름한 집으로 급한 환자가 오게 되고 자기는 의원이 아니노라며 거절하는 허준은 어쩔 수 없이 환자를 보게 된다. 그 후 종종 환자가 드나들게 되는데 허준을 시기하는 패거리의 고자질로 스승앞에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예상외로 허준의 처다.
주제 :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 있어서의 꿈의 의미와 기능 고찰들어가는말 : 우리는 꿈을 꾼다. 거의 매일같이 꾸는 사람도 있으며 꿈을 꾼 기억이 별로 없는 사람도 있다. 꿈의 내용도 제각기 다르다. 내가 어릴때 꾸던 엉뚱한 꿈을 어른들께서는 개꿈이라고 하시곤 했다. 또한 산모가 아이를 가지게 될 때 꾸는 꿈을 예로부터 태몽이라고 하였고, 돼지꿈을 꾸고 금전적인 이득을 봤다는 사람들 얘기도 가끔씩 볼 수 있다. 가끔은 꿈을 꾸고 나서도 꿈의 내용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과연 꿈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프로이트의 꿈 연구는 꿈에는 의미가 있으며 모종의 심리학적 원칙에 의해서 꿈꾸는 사람의 깨어있는 삶의 맥락속에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부조리하고 생소해보이기만 하는 꿈은 학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프로이트의 분석에 나타난 꿈의 의미를 알아보고, 그에 따르는 기능을 고찰해 보기로 한다.본문꿈의 특성과 무의식의 반영프로이트가 꿈의 의미를 연구한 것은 노이로제 연구의 준비였다. 꿈의 연구는 노이로제 연구의 가장 좋은 대상일 뿐만 아니라, 꿈 자체가 노이로제 증상이고, 게다가 꿈은 건강한 모든 사람에게도 나타난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꿈은 일반적으로 기억해 낼 수가 없으며, 사소한 단편적인 것까지 잊어버린다. 그러므로 이러한 재료를 해석하는 것이 과학적 심리학이나 환자의 치료에 기초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비판을 깊이 있게 받아들인다면 회의에 빠지게 된다. 꿈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바로 꿈의 다른 특징들과 마찬가지로 꿈의 한 특징인 것이다.대개 고대 민족은 모두 꿈에 커다란 의의를 부여하여 실제적인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후 어떻게 하여 해몽이 쇠퇴하고, 꿈이 신용을 잃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꿈에 대한 흥미가 차츰 미신으로 떨어지고 무지한 사람들의 손으로 돌아가 버렸다. 자명종의 소리에 반응한 세 가지 꿈을 보면 이런 꿈에 공통적인 것이 있다. 결말이 언제나 하나의 소리에 유래하고 있으며 눈을 찾아볼수 있다. 꿈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생각나지 않는 기억들을 활용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중요하고 특이한 사실이다.) 최면 상태와 수면 상태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실제로 최면은 인공적 수면인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암시를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꿈을 꾼 사람에게 질문했을 때 떠오르는 연상은 단 하나이며, 그 외에 다른 연상은 없다는 것을 사실로서 인정해야 한다. 떠오른 하나의 연상을 출발점으로 하여 연상의 흐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인데 이런 연상은 이미 완전히 자유로운 것이 아니며, 마치 꿈의 요소에 대한 연상에 묶여 있듯이 묶여 있는 것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멜로디도 어떤 관념의 흐름에 의해서 규정되며 ,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 자유로이 떠오른 연상이 이와 같이 규정되어, 일정한 연쇄에 이루어서 배열되어 읊는 것이다' 혹은 '무의식적이다'라는 말을 사용한다.꿈이란 어떤 다른 것, 즉 무의식의 왜곡된 대용물 이며, 이 무의식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꿈을 해석하는 과제가 된다. 그런데 꿈의 해석을 연구하는 동안에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이 있다.1. 합리적이거나, 불합리적이거나, 선명하거나 결코 꿈의 표면적인 뜻에 개의해서는 안 된다.2. 꿈의 어떤 요소이건 그 대용 관념이 떠오르도록 연구의 초점을 모아야 한다.3.목적하는 숨은 무의식이 저절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된다.꿈을 꾼 사람이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못마땅해 할 필요는 없다. 꿈을 꾼 사람이 예비지식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꿈의 해석이란 이에 반항하는 하나의 저항을 어기고 행하여지는 것이며 비판적 항의는 이 저항의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저항이라는 역학적 관념을 끌어넣는 순간에 이 저항이라는 인자가 양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꿈을 골라서 기법을 시험하고, 이에 대한 지금까지의 기대가 충족되는지 어떤지 살펴보는 것이 좋다. 문제를 쉽게 만드는 방법은 꿈 전체를 해석하는 대신 해석을 꿈의 개개 요소에 한정 해석에 있어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점은 꿈이 몇 군데서 탈락, 그것도 기억의 탈락이 아니라 내용의 탈락이 있다는 사실이다. 말살된 대목이 있는 것은 그 부분을 억제하는 동기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꿈의 일부를 왜곡시키는 것을 우리는 '꿈의 검열'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내용에 탈락이 있는 부분은 언제나 이 검열 탓인 것이다. 이와 같이 재료를 생략하고 변형하고 고치는 일이 꿈의 검열 의무이며, 꿈에 왜곡을 일으키는 수단이다. 기실 꿈의 검열이야말로 꿈을 왜곡시키는 장본인의 하나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검열의 대상이 되는 의도들은 내적인 입장에서도 설명이 되어야 한다. 이 의도는 어디까지나 비난할 만한 성질의 것으로 윤리적, 사회적, 미적 관점에서 혐오스러운 것이며,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생각지 않으려 한다거나 혐오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하게 하는 것들이다. 특히 검열을 당하기 때문에 꿈속에 왜곡되어 나타나는 소망은 방종스럽고 체면도 없는 이기주의의 표현이라 하겠다. 그러나 내용이 악에 넘친다고 해서 꿈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꿈은 무해한 기능, 아니 오히려 수면이 방해되지 않도록 하는 유익한 기능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런 내용의 흉악성은 꿈의 본질이 아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악에 관해서 우리가 상당히 길게 역설하는 까닭은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을 부인함으로써 인간의 정신생활은 물론 개선될 리 없으며 또한 이해할 수도 없게 된다. 우리가 일방적인 윤리 평가를 버릴 때야말로 인간성에 있어서 선과 악의 관계에 대한 올바른 공식을 얻을 수 있다.꿈의 태고성과 유아성꿈의 작업에서의 잠재의식을 어떤 다른 표현 양식으로 바꾸는 데에서 이 표현 양식은 인류가 오래 전에 극복한 지적 발달의 한 단계, 다시 말해서 상형문자 상징 관계의 시대, 아마도 우리의 사고 언어가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사용되던 것에서 유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꿈의 작업의 이와 같은 표현 양식을 태고적, 또는 퇴행적이라것이다. 우리는 소망의 유래를 지적하기에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 이 나쁜 소망의 충동은 과거, 흔히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유래하고 있다. 이 소망 충동이 있다는 것을 현재는 알지도 의식하지도 않지만, 전에는 그런 소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의식했었다는 증명이 된다. 계속해서 배척 소망을 문제 삼아 그에 대해 설명하기로 한다. 이 배척 소망이 바로 꿈을 꾼 사람의 끝없는 이기심 탓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이 배척 소망이 바로 꿈의 형성자라는 사실은 알려져 있다. 누군가가 우리 인생을 막는다면-이것은 인간 관계가 복잡해지면 많아지는데-꿈은 그 방해자가 아버지이건 어머니 건, 가령 형제자매이건 부부 건 그 사람을 죽이려고 생각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간의 본성이 이처럼 악한 것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 이런 식으로 꿈을 해석하지 않았던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소망의 기원을 과거에서 찾게 되면 이와 같은 이기심이나 소망 충동이 근친자에게 향해지더라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개인의 과거의 한 시기를 알 수 있게 된다. 이 어느 시기란 바로 유아기의 초기이다. 대개의 경우는 현저한 이기주의의 소질, 즉 이 소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평소의 관찰에 의하면 양친과 다 큰자식들 사이의 감정 관계가 사회에 의해서 세워진 이상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으며, 그 감정 관계에 얼마나 많은 적의가 작용하는가, 그 감정관계에 효성이나 사랑의 충동을 덧붙여 억누르지 않는다면 적의가 얼마나 나타나기 쉬운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적의의 동기가 무엇인가는 잘 알려져 있는데, 동성이 서로 반발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딸은 어머니를 자기의 의지를 속박하고 성적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의 요구를 지키게 하는 감시인이라 생각하면서 갈등이 표출된다.) 아들의 입장에서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사회적 구속의 화신이다. 아버지란 아들의 자유로운 의지 활동과 어릴 때의 성적 향락 및 돈의 사용 등을 방해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유로워 지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얼마나 강력하게 금지되어 있는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정신분석 연구 결과, 근친상간적인 애정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처음에 있다는 것, 그리고 후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에 대해 저항이 나타나는데, 그 저항이 어디서 유래하는가는 개인 심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 결과를 두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꿈이 하는 일의 퇴행성은 형식적인 동시에 실질적이기도 하다. 이 퇴행성에 의하여 우리의 관념은 원시적인 표현 양식으로 번역됨은 물론 원시적인 정신 생활의 모든 특징, 즉 자아의 그 예전의 강대성과 성생활의 원초적 충동들이 다시 소생되며, 만일 상징 관계를 태고적인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면 인류의 태고의 지적 소산도 다시 눈뜨게 한다.2.오늘날의 우리는 일찍이 우리의 지배적이고 독재적이었던 이 옛 유아적 특징을 모두 무의식 속에 넣어 무의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고쳐 확대해야 한다. 무의식은 독자적인 소망 충동, 독자적인 실현 양식, 보통의 발동하지 않는 독자적인 심적 메커니즘을 가진 특수한 심적 영역을 말하는 것이다.소망 충족어린이의 꿈에서 프로이트는 꿈의 작업의 목적은, 잠을 방해하는 심리적 작용을 소망 충족으로 제거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왜곡된 꿈은 그 꿈을 해석하기 전에는 어린이의 꿈과 같다고 말할 수 없었으나, 우리의 예상은 처음부터 왜곡된 꿈이라 하더라도 어린이의 꿈과 같은 견지에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소망 충족의 학설을 부정하고자 하는 태도는 분명히 꿈의 검열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즉, 검열을 받은 이 소망을 부정하는 태도의 대상적 발로인 것이다. 꿈이 소망 충족이라면 꿈속에 고통스러운 감정이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다.첫째, 꿈의 작업이 소망 충족을 이루는 데 완전히 성공하지 못한 결과, 꿈의 잠재의식의 고통스러운 감정 일부가 현재몽에 남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꿈을 분석해 보면, 이와 같은 꿈의 잠재 의식은 그것에서 만들어진 꿈보다 훨씬 고통스러웠이다.
음양에 대하여만물은 모두 음적인 것과 양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음은 내성적이며 에너지가 낮고 수렴하는 특징을 가진다. 또한 물질적인 것(음식)과 지속적(만성)인 것도 해당된다. 그에 반해 양은 외향적이면 에너지가 높고 발산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현상적인 것(활동)과 순간적(급성)인 것도 해당된다. 중요한 것은 음양은 상대적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B라는 사람이 C라는 사람보다는 외향적이지만 A라는 사람보다는 덜 외향적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B는 C보다는 양적이지만 A보다는 음적 이다. 즉 음양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다.음식은 에너지가 되기 위한 source이다. 그러므로 음의 성질을 갖고 E는 활동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양이다. 양은 위로 향하는 것, 음은 아래로 향하는 것을 뜻하므로 하늘은 양, 대지는 음이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대지로 떨어지므로 음을 향하며 대지의 생명체들은 하늘을 향하므로 양을 향한다. 즉 음양은 상호 보완적이다.음양의 운동과 변화를 구체화한 것은 춘하추동의 절기다. 봄에는 양이 발생하고 여름에는 양이 무성하고 왕성하며 가을에 음이 발생하고 겨울엔 음이 극성하다. 양은 밖으로 나타나는 상이고 음은 안으로 갈무리하는 상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면 만물이 발생하고 꽃이 피며 생기가 넘친다. 이는 양이 밖으로 표출되고 생동하는 모습이다. 여름이면 양이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만물이 무성하게 성장한다. 가지가 무성하고 잎이 만발하는 것은 양의 조화가 절정에 이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가을이 되면 만물이 시들고 열매가 무르익는다. 이는 음이 태동해서 만물을 거두어들이고 내실을 다지는 형상이다. 겨울이면 음이 극성하게 된다. 안으로 갈무리하는 음이 판을 치므로 만물이 지하로 갈무리되고 죽은 듯이 자취를 감춘다. 양이 나타나면 모든 만물이 나타나고 음이 나타나면 만물이 쇠퇴하고 거두어지며 음이 극성이면 만물이 갈무리 되어 꼭꼭 숨어버린다.음양의 조화는 하루에도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양이 태동하는 아침이면 태양이 뜨고 양이 극성하는 정오엔 태양이 하늘높이 중천하며 음이 극성한 밤이면 태양이 지하로 갈무리 되어 캄캄한 밤이 된다.음과 양은 육신과 정신으로서 생명을 창조하는 절대적 요소라 볼수 있다. 음은 물이요 물질이며 형체인데 반해서 양은 불이요 정신이며 기체다. 산소와 수소의 결합에 의해 물이 생기듯이 음과 양, 물과 불, 물질과 정신, 형체와 기체의 결합에 의해 생명체를 포함한 만물은 창조되고 탄생한다. 남녀사이에선 남자로 능동적이고 여자는 피동적이듯이 음과 양 사이에선 양이 동하고 음은 응한다. 물은 가만히 있는데 태양이 빛을 발사해서 물을 밝혀주고 뜨겁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의 자궁속에 정자를 발사하는 것과 똑같다. 정자를 받은 난자는 정자를 부화해서 생명을 잉태한다.오행은 음과 양으로 짝을 짓고 (목,화,토,금,수) 상부상조하는 상생으로 공존하는 것이 생리이듯이 인체의 장부는 음과 양으로 부부가 되고 공존한다. 처녀인 金은 총각인 木과 상생하고 성남인 火는 성녀인 水와 화합하듯이 처녀인 폐金은 총각인 간金과 상생하고 성녀인 신水는 성남인 심火와 평생 해로한다. 폐金은 기를 갈무리하고 간金은 혈을 갈무리한다. 기와 혈은 한 쌍의 부부로서 서로 의지하고 공생공사한다. 혈은 기를 생해주고 기는 혈을 생해주며 혈은 기를 통해서 숨을 쉬고 순환하며 대사하듯이 기는 혈을 얻음으로써 생기가 나고 기화작용을 할 수 있다. 인체는 혈기에 의해서 영양을 섭취하고 왕성한 동시에 운동하고 변화하는 순환과 대사를 계속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할 수 있다. 육신을 먹여 살리는 것은 신장의 정이요, 정신을 먹여 살리는 것은 심장의 신이다. 정은 기름이요 신은 불꽃이다. 기름은 불꽃에 의해서 생기를 얻고 얼지 않듯이 불꽃은 기름에 의해서 연소되고 빛을 밝힐 수 있다. 수와 목은 천생연분인 부부로서 절대로 떨어져 살 수 없듯이 정과 신은 수와 화로써 화합하면 살고 떨어지면 죽는다. 水생火하고 火생水 함으로써 정과 신은 생생불식하고 인체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만약 수의 혈이 부족하면 어찌 되겠는가? 이는 수분이 부족한 나무와 같다. 가지가 마르고 잎이 지는 동시에 생기를 잃고 시든다. 가지가 마르고 시들면 굳어짐으로써 운동이 불가능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음양오행의 진리는 우주를 비롯해 만물이 어떻게 해서 창조되고 발생하며 운동하고 변화하는 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인간은 육신이란 음과 정신이란 양으로 구성되고 존재하듯이 우주만유는 하나같이 음과 양의 화합에 의해서 생성되고 존재하는 것이다. 남자인 양고 여자인 음이 만나면 반기고 사랑하며 마침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상부상조하며 공존한다. 이를 상생이라고 한다. 상생이란 출생하고 생산하는 것보다 같이 생존하고 공존하는 것을 뜻한다. 음과 양이 만나면 저절로 사랑과 정이 발생해서 기뻐하고 즐긴다. 이는 천지만물의 음양의 조화다.우주와 인생과 자연이 음양의 법칙에 의해서 창조된 음양의 조화요 소생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는 우주와 인생과 자연이 따로 있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하나의 뱃속에서 태어나서 하나의 젖줄과 넝쿨에 의지하고 있는 하나의 형제요 동포라는 것이다. 생성과 존재의 법칙이 같기 때문에 인생을 알면 자연과 우주를 알 수 있듯이 자연을 알면 인생과 우주를 알 수 있다. 인생은 소우주요 대자연이듯이 우주는 곧 자연이요 인생이며 자연은 곧 소우주요 인생인 것이다. 음은 양에 의지하고 양은 음에 의지하듯이 인생과 자연과 우주는 저마다 혼자서는 살수 없이 그 무엇에 의지하는 상대성 원리를 존재조건으로 하고 있다. 스스로 발생하고 존재하는 자생자와 자존자는 절대자로서 상대성원리를 초월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러한 절대자는 없다. 있다면 그것은 상대적으로 발생하고 존재하는 상대자의 생성과 존재법칙인 상대성 원리 뿐이다. 만유는 상대성 원리에서 생성되고 존재하는 그의 조화다. 그 상대성이란 바로 음양이요 水火다.주위에서 인지할 수 있는 음양의 예시우주: 우(宇)라고 하는 것은 시간의 다른 말인데, 곧 왕래고금(往來古今: 옛날과 현재를 왔다 갔다하는 개념)을 일컬으며 이는 陽에 속한다.주(宙)라고 하는 것은 공간의 다른 말인데, 곧 상하사방(上下四方: 위, 아래와 전후좌우의 6合 공간구조)을 일컬으며 이는 陰에 속한다.인간은 시공간을 떠나서는 존재도 사유도 할 수 없다는 말은 곧 인간은 우주를 벗어나서는 존재도 사유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우주(宇宙)는 시공간이며 시공간은 우주 자체라는 것이다.여름에는 땅의 경우 표면이 뜨겁고 속은 차가운데, 겨울은 그 반대이다. 동굴을 보면 여름에는 서늘하고 겨울에는 따스하지 않은가?이것이 바로 음양의 작용을 항상 中으로 돌리려는 태극 현상계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배추(陰): 배추는 푸른색으로 陽인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양기운이 응축되어 쭈글쭈글하다. 즉 잡아당기는 기운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잡아당기는 기운이란 당연히 수축하는 기운이며 음기운을 말한다. 따라서 배추를 먹으면 몸이 약간 서늘해져서 잠이 오게 된다.무우(陽): 무우는 색깔이 흰색이라 陰인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뿌리는 강하게 분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뿌리로부터 줄기와 잎파리들이 분산되어 나오기 때문에 로 되어 있으며 곧 뻗어나가는 기운이 강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기운을 퍼지게 하는 작용이 있어 陽에 속한다. 따라서 陰人들에게 좋다.돼지(陰): 돼지는 한문으로 해(亥)라고 쓰는데, 곧 북방의 水氣를 나타낸 것이다. 그 생긴모양을 모면 두리뭉실한데 탄탄하여 중심으로 당기는 힘이 강하다. 발굽도 2개로 갈라져 陰氣를 지니고 있음을 뜻하며 실제로 고기가 익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음기가 강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북방의 차가운 성질을 그대로 지녀 그 고기의 본성이 차갑고 또 추우면 옷을 많이 입는 것처럼 욕심이 많아 사욕이 강한 동물이다. 이 돼지는 강한 불기운을 지니고 있는 소주의 안주로 알맞다. 물론, 양주나 보드카같은 술안주로도 좋다.닭(陽): 닭은 돼지와 반대로 뜨거운 성질이다. 날개가 달려 상승하는 기운이 강하며 닭살이라는 것은 알고보면 양기가 과다하게 분출하는 모습을 말한다. 한의학적으로 우충(羽蟲)이라 하여 火에 속한다. 닭고기를 陽人이 많이 먹으면 木火기운의 과항작용으로 인하여 중풍, 뇌출혈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체질적으로 음인인 사람이 먹으면 좋으나 양인에게는 좋지 않다. 음식에서 맥주와 같이 음기를 지닌 식품(맥주는 보리로 만들어지는데 보리는 가운에 홈이 있으며 갈라져 있어 陰에 속한다.)들의 안주로 알맞다.양은 홀수이고 음은 짝수이다. 양은 밖으로 발산하고 음은 안으로 수축을 한다. 홀수는 모두가 양성이고 짝수는 모두가 음성이며 발산하고 돌출한 것은 양성이요 수축하고 갈라진 것은 음성이다. 조물주께서 인간을 생물의 으뜸으로 삼는 동시에 여성과 남성을 음과 양의 기본이요 모범이며 대표로 삼았다. 남성의 성기는 홀수이고 돌출인데 반해서 여성의 성기는 짝수이고 안으로 갈라졌다. 양은 능동적이고 음은 피동적이다. 남성은 능동적으로 사랑하는데 반해서 여성은 피동적으로 사랑한다. 남성은 밖에 나가서 빵과 부를 생산하는데 반해서 여성은 가정헤서 살림을 하고 남성이 생산한 빵과 부를 알뜰하게 갈무리하고 아껴쓴다.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비유를 한것입니다.)
목차1. 의학전문대학원의 정의2. 의학전문 대학원의 도입 배경3. 현 2+4년제와 4+4년제 각각의 장단점4. 나의 생각1. 의학전문대학원의 정의전문대학원이라 함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 직업분야 인력 양성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석사 및 박사학위를 수여하기 위한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의학전문대학원이라 불리는 특징적인 학제는 현 의사 양성 방식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학제이다. 현재 의학전문대학원이라 불리는 학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93년 교육부의 대학원 제도 개선 시행방안에서 대학원 제도 개선 방안의 하나로써 건의되면서부터이다.그러다가 1996년 대통령 산하 교육개혁위원회에서 대학교육 개혁을 위한 개혁 방안의 하나로써 의예과+본과라는 현행의 의과대학 학제와 병행하여 의사를 양성하는 또 하나의 학제로 '의학전문대학원'이라 처음 명명된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용어이다.의학전문대학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개략적인 의미와 특징은 고교 졸업 후, 의예과에 입학하여 의예과 과정을 마치고 본과 진학 후 의사가 되는 것-의예과 2년+본과 4년이 아닌 의과대학 통합 6년 과정의 학제를 시행하는 학교도 있다-이 아니라, 타 학부과정(이를 현행 체제에서의 의예과 과정으로 생각하면 된다)을 이수하고, MEET(Medic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라 불리는 의학입문시험을 거쳐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은 바로 현행 의과대학의 본과과정에 해당하는 과정-의학전문대학원-을 이수하여 의사가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예과 대신, 학부과정을 거친 후 의학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의학전문대학원의 특징이라 하겠다. 즉, 의학전문대학원의 기본 의미는 의학 교육기본과정을 현재의 학부과정에서 대학원과정으로 인정, 승격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2003년 대학 입시에서 대학 정원이 수험생수를 초과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학부과정을 이수함에 따라 학부과정은 고등교육 혹은 전문교육이라기보다는 미국에서와 같이 교양과정(Liberal Art)이며, 의사와 같은 전문인력은 전문교육과정 즉, 전문대학원(Professional School)에서 양성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졸업생들에게 수여되는 학위를 전문학위(의무석사)로 수여하는 것도 의학전문대학원의 특징 중 하나이다. 이는 미국의 의과대학 및 호주의 몇몇 의과대학에서 실시하는 제도와 거의 동일한 제도이다.2. 의학전문 대학원의 도입배경고학력 사회가 되면서 질 높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좀더 전문성 있는 의료 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사회의 지도층으로 인식되는 의사를 기술만을 습득하는 ‘기술사’가 아닌 교양? 도덕성을 겸비한 ‘인술사’로 양성시키기 위한 목적도 있다.또한, 현재 직업보장형 진로시스템으로 인한 예과생들의 면학열 저하현상을 시정하고 의학 전 교육에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과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효과도 있다. 그리고 복합학위 과정 개설로 현행 학사 단계 의학교육으로는 도입 불가능한 의과학자, 의법학자, 의경영학자 양성과정을 만들 수 있다.대학특성화 측면에서 보면 의과학자 등을 양성하는 연구중심대학과 일반진료인 양성에 치중하는 진료중심대학으로 각각 특성화 시킬 수 있다.대학 입학 경쟁 완화의 기능도 있다. 대학입학 단계에만 한정되어 있던 의사양성교육 입문과정을 대학원과정으로 확대하여 대학입학 단계에 집중된 과열경쟁을 완화할수 있다.뿐만 아니라 이과 졸업생들 중 우수인력의 의과대학 집중현상을 방지함으로써 간접적인 기초학문 보호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3. 현 제도(2+4)와 의학전문대학원(4+4)의 장단점현 제도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에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11년이면(6+1+4) 전문의 자격을 취득할 수 있게 된다. 반면 진로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예과 때 학구열이 저하될 수 있고 자신의 가치관이나 철학을 가질 기회가 많지 않다. 의학전문대학원이 시행되면 일단 학사졸업을 한 뒤 진학하기 때문에 의학을 접하기 전에 자신만의 철학을 의학적 기초학문과 같이 갈고 닦은 뒤에 좀더 전문적인 의료기술과 학문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기초학문과 실용학문이 현재처럼 경쟁관계가 아닌 상호보완 관계가 될 수 있다.그러나 현 제도 하에서 고등학교가 대학진학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듯이, 의학전문대학원이 시행되면 학부가 대학원 진학을 위한 도구로 파행될 수 있다. 특히 이공계의 우수인력이 대부분 의전대에 입학하는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또한 학비가 더 비싸고 교육기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저소득층이 의사가 될 기회를 좁혀버릴 수 있다. 그리고 MEET 시험의 준비기간 장기화와 의사의 양성기간연장으로 전반적인 의사인력의 노령화가 올 수 있다.4. 나의 생각의학전문대학원의 취지는 긍정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현실과 약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의전대의 가장 큰 취지는 임상의만이 아닌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교양? 도덕성을 갖춘 의학도 양성에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실시로 이 같은 목적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의예과 입학을 위한 경쟁이 치열하듯이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을 위한 경쟁도 치열할 것이다. 의전대 입학을 위해서 지원자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생물과 화학에 관련된 과목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하고 학점도 잘 받아야 하며 MEET 시험 준비와 영어공부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일종의 고시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과연 교양을 쌓고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지 의문이다. 또한 지금 편입을 통해 의대에 입학한 사람들도 대부분 개원의의 길을 걷고 있다. MEET라는 시험을 통해 힘들게 의대에 들어온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경제적 보상이 적은 연구 분야 로 선뜻 나가려 할 가능성은 적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경제적 보상을 얻으려는 것을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본래 취지와는 어긋나게 된다. 이것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학비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립대학의 의전대 1학기 등록금이 가천의대의 경우 1천만원에 육박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렇게 되면 의대지원은 부유층만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 빈부에 따라 최소의 기회조차 박탈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의사인력의 노령화 문제가 있다. 현재 한 의전대 입학자 평균 연령이 32세라는 기사를 읽었다. 이들이 전문의 과정을 마치면 마흔이 넘게 된다. 과연 지적인 능력이 감퇴할 수 있는 시기에 의대 ? 전문의 공부를 얼마나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시된다. 실제로 의전대 입학자들이 학습 능력에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글도 있었다. 마흔이 넘어서 사회로 진출하면 경제력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의사에게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의사도 경제인중의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학습기간이 늘어났으므로 당연히 진료 수가의 인상을 요구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들에게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6년제 의대의 본과 과정과 의전대의 교육과정은 큰 차이가 없다. 그 말은 의료 서비스의 차이를 가져오기 힘들다는 말도 된다. 현재 의사양성제도의 문제는 교육과정과 그 방법에 있지 학제에 있지는 않다. 교육부에서는 전문의 과정을 1년가량 줄이는 절충안을 발표하기도 했으나 예전과 달리 졸업 후 교육이 더욱 중시되고 실제로 그것을 위해 4,5 년이 소요되는 현재에서는 의학 전 교육기간을 줄이는 것이 더 합당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부의 주장은 현실과 괴리가 있다. 이공계 분야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재 이공계의 우수 인력이 의?치학 전문대학원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고 한다. 서울대 자연대에서 절반가량이 의전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리도 있었다. 의전대 준비를 하는 학생들이 학부공부에 전념하기는 힘들것이며 이는 이공계의 교육을 부실화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인 이공계의 우수인력을 사장 시킴으로서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할 수 있다. 이처럼 긍정적인 효과 보다는 부정적 효과가 대두되는 상황에서 교육부의 무조건적인 의전대 전환 강요는 타당성이 적어보이며 의료계와의 충분한 조율을 거친 후의 학제 개편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