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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슈킨, 푸쉬킨에 대하여
    푸슈킨이 가지는 러시아의 문학사적 의의를 한마디로 한다면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예술적 완성과 러시아 근대문학의 전통과 사실주의 문학을 확립한 것이다.그의 천재성은 나폴레옹 전쟁에 수반된 민족적 자각과 민족적 기운이 고조되는 가운데서 꽃피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는 이 역사적 시대의 러시아 국민사상과 감정의 최대 표현자로서 국민문학의 창시자가 되었던 것이다. 국민생활과의 밀접한 유대, 시대의 선구적 사상의 반영, 그 내용의 풍부성, 이런 면에서 그를 따를 러시아 시인은 없다. 그가 다루는 범위도 당시 러시아의 모든 계층의 생활과 역사적 사건, 또한 러시아의 소수 민족과 서구와 동방의 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그는 와 라지시체프 작품의 전통을 이어받음으로써 문학이 사회의 정신적 발전 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민적 사업이라는 것을 자각한 최초의 러시아 시인이기도 하다.퓨슈킨은 러시아작가들 중 가장 우뚝 솟은 최고의 시인이며 작가로 인정을 받고 있다.러시아 문학사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영문학에 있어서 셰익스피어의 그것에 곧잘 비유되고 그에게 부여된 ‘국민 시인’이라는 칭호도 그의 작가로서의 비중을 잘 말해준다.하지만 그의 작품을 단지 러시아 작가만으로 국한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즉 그의 작품은 러시아적이면서도 인간 보편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그의 문학의 세계적인 문학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런 푸슈킨이 가지는 의의를 설명하고자 한다.푸슈킨외의 많은 작가들이 러시아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19세기 초엽의 푸슈킨만큼 많은 영향을 남겼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당대 유명한 평론가 벨린스키는“푸슈킨에 대해 쓰는 것은 러시아 문학 전체에 대해 쓰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푸슈킨 이전의 작가가 푸슈킨을 설명하는 것처럼 푸슈킨은 푸슈킨이후의 작가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이것은 푸슈킨의 문학사적인 첫 번째의 공적으로 볼 수 있는 근대 문장어의 확립과 새로운 국민문화의 창조를 들 수 있다학적인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를 후기 낭만주의 문학의 완성자라고 할 수 있듯이 푸슈킨은 시인의 예전자적 위치를 지키고 있으며 자유에 대한 동경을 그의 작품들 속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문학적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러시아 리얼리즘과 근대 민족문학을 낳았다는 평가는 바로 그의 많은 작품속에서 보이는 화자들의 객관적이로 관찰자적인 입장들에서 보이는 바로 사실주의 적인 그의 문학세계를 잘 말해주고 있다.특히 비극 [보리스 고두노프]는 작가 자신이 대단히 만족해한 작품으로서 러시아 리얼리즘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되어지고 있다. 더구나 이 작품에서 푸슈킨은 러시아, 유럽 희곡이론을 주도면밀하게 실험했다. 그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체험을 이용하면서 그 특유의 독특한 러시아적 희곡체계를 실현 시켰다.네 번째로는 모든장르의 활용 및 새로운 장르의 개척이다. 사랑과 우정과 젊음의 노래와 자연시, 제까브리스트에 대한 공감을 담은 송시,정치시 , 철학시, 시에 관한 시, 민요구, 경구등과 같은 서정시, 그리고 1820년대부터 쓴 빛나는 서사시는 푸슈킨 시가 가지는 형식의 완벽성과 내영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 그의 시에는 주면의 사물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응시와 사랑, 모순적인 현실세계에 대한 아픔과 희망, 인간의 내면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 대한 아픔과 희망, 인간의 내면세계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속에서 조화와 자유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하다. 때로는 어둠의 그림자와 절망의 음조가 울리기도 하지만, 빛과 같은 밝음과 낙관주의가 우세하게 나타난다.다섯 번째는 푸슈킨 자신의 실험정신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험정신이라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특별히 지목할 수는 없지만 푸슈킨의 다른 특징들과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가령 모든 장르의 문학을 시도 했다는 것이나 모든 문예사조를 이용했다고 하는 것, 그리고 예브게니 오네긴과 같이 운문형식의 산문의 소설을 썼다는 것을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답일 것이다.여섯째로 현실주의적 모습과 역사민은 도덕, 역사의 범주 내에서 예술적 고찰의 필수요소가 된 것이다.푸슈킨이 러시아 문화의 큰맥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푸슈킨의 작품은 러시아 고전주의에서 시작해서 낭만주의를 거쳐 사실주의까지 이어주는 문예사조의 통합을 이루어낸 사람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남들이 몇세기에 걸쳐서 이루어 낸일을 그는 짧은 일 평생을 통해서 이루어 낸것들에는 모든 문예사조를 섭렵하면서 이루어 낸 것이다. 모든 문학장르를 쓴 것과 실헙정신을 가진 문학인이란 것을 차지하더라도 그에게 현대에까지 남아있는 가장 큰의의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의 역사주의 적이고 현실 주의적 모습이 아닐까한다.러시아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러시아의 과거, 현재, 미래를 설명할 수 있는 러시아의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1. 러시아에서의 푸슈킨 컬트러시아인들은 자신들의 유전자 속에 푸슈킨에 대한 사랑이 입력되어 있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때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한다. 비단 러시아문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 나라와 이러저러하게 관련된 외국인들이라면 러시아인들의 푸슈킨에 대한 광적인 숭배와 그에게 바치는 무한한 애정을 목격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세계문학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 진기한 현상을 러시아인들의 비논리적 성향이나 특유의 과장된 논리 또는 그들의 극단적 사고를 반증하는 일련의 현상들의 하나로 간주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흥미로운 현상을 외국인의 관점으로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잘 알려진바, 푸슈킨은 이미 살아생전부터 수많은 신화를 낳은 주인공이었으며, 시인의 신화화는 그의 탄생 200년을 훌쩍 넘긴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초에 마야코프스키가 푸슈킨을 ‘현대성의 기선’에서 내던져 버려야한다고 주장한 이래로, 푸슈킨은 종종 현대 시인들의 패러디와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지만, 이 또한 시대를 초월한 시인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자 또 다른 형태의 신화화된 시인의 형상을 드잠시 유보되는 듯하며, 벨린스키가 장담했던 “세계 시민”로서의 자격도 절반만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는 슬라브주의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와 러시아 문학의 고유성을 강조하는데 지치지 않았던 비평가 벨린스키의 조금은 과장된 주관적 견해의 소산에 불과한 것일까.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러시아에서의 푸슈킨 숭배는 광적인 과장이며 수사에 그치고 만다.한편, 한국어 푸슈킨 전집의 역자가 전집의 서문에서 푸슈킨을 알아나갈수록 “경외심과 환희”를 점점 더 강하게 느꼈다고 술회한 점을 상기해본다면 러시아어와 러시아 문학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푸슈킨은 밋밋하고 재미없는 작가로 여겨지지만, 러시아 문학을 깊이 있게 접하여 알게 된 이들이라면 푸슈킨에게 바쳐진 러시아문학 제 일인자의 월계관을 기꺼이 인정하게 된다는 식의 상투적인 논리가 성립된다.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은 계속해서 발전·변형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러시아의 푸슈킨 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설명은 기존의 적지 않은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밝혀두어야 할 점은, 이 글이 그 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리기 위한 무모한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러시아의 대중적 푸슈킨 신화가 학문적 관찰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며,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은 푸슈킨의 시학 전반에 대한 보다 더 다층적인 이해를 가능케 해주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는 것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아울러, 이 글이 대명사로서의 푸슈킨과 고유명사로서의 푸슈킨이 공존하고 있는 흥미로운 러시아의 문화적 토양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2. 푸슈킨 현상푸슈킨이 하나의 현상이 되었음은 고골에 의해 일치감치 감지되었다. 1834년 그는 푸슈킨을 “러시아 정신의 한 특수 현상”이자 “유일한 현상”으로, 그리하여 “아마 2백년 후에 가서야 나타나게 될 러시아인의 모습”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고골이 2백년이라는 숫자에 실제적인 함의를 둔 것인지, 혹은 최종본선에 올라 장장 6일간 푸슈킨에 대한 퀴즈를 풀었다. 최종결승에 오른 참가자들에게 방송국측은 ‘민간인 푸슈킨학자’라는 명예로운 명칭을 부여하였다. 대회 이후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푸슈킨으로 맺어맺어진 우정을 다지며 자신들만의 푸슈킨 연구 성과를 모은 문집 ?정말 멋진 푸슈킨!?을 발간함으로써 민간 푸슈킨 출판물의 학문적 기원을 다지게 된다.러시아 예술가들도 자신만의 푸슈킨 형상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1890년 모스크바 중심가에 세워진 그 유명한 푸슈킨의 동상을 시작으로, 역시 모스크바에서 1999년 시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동상을 세우는 등, 러시아 전역에 걸쳐 수많은 푸슈킨 동상 및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그림의 동상은 진지하고 사실적인 재현이 주를 이루었던 이전의 푸슈킨 동상들에 비해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시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들의 관심을 끈다.잘 알려진 바, 러시아 전역에 걸쳐 푸슈킨의 이름을 딴 지명과 거리, 박물관, 극장 등의 건물, 다양한 공산품 등은 이루 다 나열하지 못할 정도로 많다. 이 중 특기할만한 몇 가지만을 나열해보도록 하자.모스크바에는 푸슈킨의 이름을 딴 광장과 거리, 박물관이 있으며, 페테르부르그에 위치한 러시아아카데미 산하 러시아문학 연구소는 이라 불린다. 그밖에도 시인이 옮겨 다니며 살았던 아파트나 머물렀던 지방의 숙소들은 거의 모두 다 박물관으로 지정·운영되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 사실주의 소설의 효시라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푸슈킨의 소설 ?고 이반 페트로비치 벨킨의 이야기?의 4번째 이야기인 ?역참지기?의 배경이 되었던 페테르부르그 근교에 역참지기의 오두막집을 재현한 ‘역참지기의 집’ 박물관이 1972년 문을 열었다. 페테르부르그 근교 소재 ‘짜르스코예 셀로’에는 시인이 다녔던 리쩨이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1937년 푸슈킨 사망 100주년을 맞아 ‘푸슈킨 시’로 개명된 뒤 이제는 ‘푸슈킨’이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소도시가 되었다. 다.
    인문/어학| 2011.07.14| 6페이지| 1,500원| 조회(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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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체코 정치,수도,프라하의 봄,스포츠 레저,관광지
    목차1. 체코정치개관2. 체코의 프라하의 봄3. 체코의 수도 프라하4. 체코의 음식5. 체코의 스포츠와 레저6. 체코의 관광지7. 참고1. 체코정치개관체코는 1992년 12월 16일 채택된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국가 수반으로 상원?하원으로 구성된 의회와 최고 국가 기관인 수상이 이끄는 내각, 그리고 최고 사법 기관인 대법원으로 이루어진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으며 상원?하원 합동 회의에서 선출된다. 대통령은 국군 통수권과 수상을 비롯한 정부 각료의 임명 및 해임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현재 대통령은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인데 극작가 출신인 그는 1989년 공산 정권 붕괴에 결정적 기여를 하였고, 1990년 최초의 자유 총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벨은 1993년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면서 체코의 초대 대통령에 연임되는 등 체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입법권은 상?하 양원에 부여된다. 하원은 2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6년 임기의 상원은 81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그 가운데 3분의 1은 2년마다 선출된다. 법률 제정권, 대통령 선출권과 예산 심의권, 조약 비준권 등을 갖는다.내각은 국가 최고 행정 기관으로서 수상과 각료는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내각은 하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현재 수상은 사회민주당의 블라디미르 스피들라이고, 4명의 부총리직과 17개의 각료직로 구성되어 있다.사법부는 법치주의에 기반을 두고 독립되어 있으며 대법원, 고등 법원, 지방 법원, 군법원의 4단계 사법 체제와 15명으로 구성된 헌법 재판소를 두고 있다.지방 행정 조직으로는 행정 구역상 70개의 군(Okresy)과, 프라하 및 브르노 2개의 특별시와 12개의 시로 구성되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동?서?남?북?중부 보헤미아 지역과 남?북 모라비아 등의 7개 지역(Kraj)으로 나누어지고, 그 밑에 오크레시(Okresy)라는 하부 지역으로 구성되는 등 명확한 행정 구역 책정이 이루 않고 있다.벨벳혁명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민주화를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1990년 1월1일 대통령이 된 하벨은 사면령을 발표하여 기존에 투옥되어 있던 정치범 등 2만여명을 석방하면서 그 첫 발을 내딛은 체코슬로바키아는 비밀경찰의 해체, 후삭을 포함한 22명의 전직 고위관리를 제명하며 신 선거법을 채택하여 3월6일에는 1948년 이래 최초의 자유선거를 6월에 실시하기로 결정한다. 또한 국가명칭을 체코와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바꾸면서 양 공화국간의 동등한 위치임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중앙계획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사기업을 허용, 개인의 자본 투자 허용 등의 법안을 통과시키며 경제적 개혁의지를 드러내었고, 정치적 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게 된다.2. 체코의 프라하의 봄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자유화운동. 이 운동을 막기 위하여 불법침략한 소련군의 군사개입사건을 포함하여 체코사태라고도 한다. 1956년 소련 내에서 스탈린 격하운동이 있은 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주의자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정책이 계속되었고 체코슬로바키아 국민들의 민주·자유화의 열망이 점차 고조되어 갔으나, 노보트니 정권은 이를 외면한 채 소련만을 추종하였다. 1960년대 이에 반발한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식층이 중심이 되어 민주·자유화의 실현을 위한 조직적인 운동을 펴기 시작하였다. 이 물결에 밀려 마침내, 1968년 1월 노보트니 당 제1서기가 물러나고, 개혁파의 둡체크가 당 제1서기를, 체르니크가 수상을, 온건파 스보보다가 대통령직을 각각 맡았다.이들 개혁파는 1968년 4월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 중앙위 총회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 즉 민주·자유화노선을 제창하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그 내용은 재판의 독립, 견고한 의회제도의 확립, 사전검열제의 폐지, 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보장, 국외여행 및 이주의 자유보장, 경찰정치의 부활저지, 경제계획의 추진,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서의 연방제로의 이행, 자주독립에 대한정책 추진 등이다. 따라서 사실상 검열제가 폐지되고 많은 정당·정치단체가 부활되었으며, 의회는 활발한 논의와 비판의 광장이 되었다.이러한 자유화를 위한 정책적 변화가 있자 온 국민은 프라하의 봄이라 하여 공산체제로부터의 탈바꿈을 환영하였다. 그러나 소련은 이러한 체코사태가 동유럽 공산국가들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여, 이 체제변화를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의 이탈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불법으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다. 1968년 8월 20일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5개국군 약 20만 명을 동원하여 침공함으로써, 이 자유화운동을 일시에 저지하고, 개혁파 주도자들을 숙청하였다. 1969년 4월 소련은 둡체크를 강제 해임시키고 후임 서기장에 후사크를 임명하였으며, 개혁파를 추종한 50여만 명의 당원을 제명 또는 숙청하였다.3. 체코의 수도 프라하프라하는 유럽 여러 도시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이다. 카프카가 일생 이곳을 못 벗어난 이유도 그 때문이고 모차르트가 자기의 음악을 진정으로 인정해주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프라하 시민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이유이다. 물론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프라하는 악의 도시라고 했고〈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체코 작가 밀란쿤데라는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도시라고 했지만 프라하는 이제 탈 공산주의 이후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프라하 주변의 누드 촌 이나 호숫가에서 아담과 이브의 삶을 즐기는 나체 족을 볼 수 있다. 프라하와 체코의 지방 도시들을 매년 여름에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했다. 많은 사람들이 옛 동구권 국가 중에서 체코가 가장 빨리 유럽을 따라잡으리라고 점치고 있는 사실이 실감났다. 배낭을 메고 부쿠레슈티, 소피아, 베오그라드, 모스크바, 상페테르부르크, 민스크, 키예프, 탈린, 리가, 빌나, 바르샤바, 크라코프, 부다페스트, 빈, 암스테르담, 프랑스푸르트, 퀼른, 본 등지에서 민박을 하면서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다른 동유럽 도시에 비해 프라하는 가게마다 풍부한 물건, 식서비스도 눈에 띄게 달라졌고 모든 곳에 생기가 돌았다. 제2차 세계대전 전 빈보다 더 잘 살던 체코인들 자존심의 영향인지 자본주의의 장점을 재빨리 수용하고 있었다.수많은 여행객(한 해 동안 체코슬로바키아를 찾은 관광객은 인구 1천 5백만의 3배가 넘는 5천만여 명이라고 한다)이 프라하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있었다. 고색 창연한 역사적 건물들이 새로 단장되고 조약돌 골목길마다 프라하에서 음악적 성공을 거둔 모차르트 탄생 2백주년을 기념해 음악회, 오페라 공연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또 프라하가 낳은 금세기 최대 부조리 작가의 한 사람인 카프카가 지난 40여 년 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다가 이제 재평가되고 있었다. 그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여름 내내 개최되고, 그가 살던 건물에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거의 매일 저녁 여러 소극장에서 온갖 무언극이 공연되고 있어 어린이들과 함께 온 관광객이 프라하의 예술을 만끽하고 있었다. 팬터마임의 대가 얀 슬라데크의 귀국 공연 티켓은 구입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다.프라하의 거리를 걷노라면 누구나 이상야릇한 기분에 젖어든다. 여름 내내 축제 분위기가 프라하 전체를 감싸 안는다. 그래서 예부터 프라하는 몇 번 가도 처음과 같은 감동을 자아낸다고 한다. 매일 저녁거리에는 새롭고 즐거운 일이 벌어진다. 로마네스크·고딕·바로크·로코코·클래식 건물 사이를 지나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다.프라하는 굽이쳐 흐르는 블타바 강변의 구릉지대 이곳저곳에 둥근 형태의 종탑과 첨탑, 둥근 지붕이 석양에 금빛으로 반짝이며 나란히 서 있다. 정말 괴테가 '황금의 도시'라고 칭송한 것이 실감이 난다. 강 동쪽 구 시가지로 가는 조약돌길, 돌계단에 고풍스런 가로등이 운치를 자아낸다. 한편 강 서쪽 말라 스트라나 지구에는 목이 좋은 술집, 금과 대리석으로 만든 휘황찬란한 바로크 풍의 성당들이 즐비하고 언덕길을 따라 옛날의 부귀를 자랑하듯 조각작품과 야외음악당을 갖추고 있는 호화로운 요정과 나란히 서 있다. 이 궁전들은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외국 대사관, 정부의 부처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과 구 시가지를 잇는 14세기 카렐교는 프라하의 명물 중 명물이다. 작가들의 작품에, 화가들의 화폭에, 음악가들의 멜로디에 새겨진 중세 교량양식의 전형인 이 돌다리는 양난간에 여러 세기에 걸쳐 세운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의 조각들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옛날에 마차가 다니던 이 다리는 현대 인도로만 사용되고, 다리 위에는 거리의 악사, 가난한 화가들이 푼돈을 모으는 낭만적인 풍경이 벌어진다.다리에서 강변을 따라 눈길을 돌리면 성 십자가 성당과 국민극장의 돔, 구 시청사의 탑과 천문시계, 틴 성당의 쌍탑, 화약고의 탑 등이 눈길을 끈다. 또한 건물 내부의 채색유리, 여러 조각으로 장식된 성당의 건물은 물론이고, 프라하의 거리도 옛 중세 때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프라하는 한마디로 인간이 창조한 온작 건축양식의 보고다. 조약돌길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러운 발 마사지 탓에 다리의 피로도 잘 느끼지 못한다.역사이래 한번도 불도저 식 정책을 편 도시 계획자가 없었다. 지난 공산주의 정권이 지하에 멋진 지하철을 건설해 시민들의 교통문제를 해결한 것을 제외하고는 별 신통한 현대적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자유화 이후 몰려드는 관광객을 수용할 새로운 호텔이 도시 주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 고작이다. 19세기에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국민극장, 예술의 전당, 국립박물관, 스케타나 기념 박물관 등 대표적인 체코 민족주의 상징의 건물이 완성되어 체코 건축의 재건이 황금기를 이루었다. 금세기 초에도 고딕 양식의 근대화로 알려진 스페인의 건축가 무디조의 발코니가 있는 건축물과 보고로서 매력적인 수도가 되었다. 프라하는 현재 인구 120만 여 명의 이상적인 도시로서 1천여 년 체코 역사의 중심지였다. 또한 14세기 카를왕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어 이곳을 제국의 수도로 정해서 슬라브와 중부 유럽 권에 최초로 대학을 건립하는 등 체코 중세문화의 전성기에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사회과학| 2011.07.11| 5페이지| 1,500원| 조회(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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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스캇펙 박사의 아직도 가야할 길 독후감
    -아직도 가야할 길-경영학과 3학년 06017101 이 소영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고 나서 머리가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이 책과 같이 인생의 지침서로 분류되는 책들은 평소에 나의 마음의 시야에서 멀찍이 밀어 두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목부터가 너무 지루하게 생겼다. 아직도 가야할 길.. 처음에는 어디를 가길래 아직도 가야한다고 하는지.. 사람을 볼때 외모로 첫인상을 보듯 나에게 첫인상은 지루해 보이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길, 열심히 살아봐라' 라는 의미로 나는 해석했다. 하지만 읽으면서 머리가 아팠던 만큼 독후감에 으레 쓰는 상투적인 말 같지만 느끼는 점이 많았다. 단순한 지식을 습득하게 해주는 책의 역할을 넘어서 나에게 자신의 삶을 재조정 해보라는 의미로도 다가왔고 한편으로는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작은 것들에 의미를 새롭게 부여하면 그 작게 보였던 것들은 다른 방향으로 새로워 진다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정신적으로 안정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근본적이고 속시원한 답을 해주는 것 같기도 했다. 또 내가 기독교인 면에서 볼 때에는 사랑에 대해서,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준 것 같다. 아마 정신과 의사인 저자가 수많은 임상적인 데이터를 근거로 썼기 때문에 더욱 현실적으로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누구나 어느 면이던 게으름과 안일함 그리고 혼돈스러운 면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무수한 부정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아마 그런 무질서 상태로 안주하려는 힘을 갖고 있다. 이런 강한 힘을 거슬러 올라가 정신적인 진화를 이루려는 노력은 많이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거기에는 진정한 기쁨과 만족감이 있다고 스캇 펙은 힘주어 강조한다.정신분석의인 그는 우리가 우울증, 알 수 없는 공포감, 불안 등에 시달리는 것은 무의식에서 주는 메시지를 억압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불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애써 외면하며 자기 계발을 제쳐두고 사는 여자, 자기 사회의 기대에 맞춰 사는 남자 등 지은이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이렇게 무의식과 화합하지 못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우리가 우리의 진정 원하는, 내면 깊은 곳의 요구를 무시할 때, 무의식은 정신적 이상 징후를 통해 이를 알려준다. 이는 우리가 무의식의 욕구를 무시하고는 진정한 삶의 만족을 결코 얻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교수님께서 내가 '이해하는 나'와 무의식의 '모르는 나'를 말씀하셨고 5세 때 엄마가 남자와 도망을 가서 이러한 사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다른 식으로 기억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때 이 사람은 무의식의 '모르는 나'가 상처를 간직한 채 자라 결국 어떻게든 표현을 하게 된다. 저자의 환자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상처와 고통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이 책을 읽고 나는 고통을 겪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불필요하지만은 않으며 오히려 가치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막상 닥쳤을 때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을 당면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데 대한 고통을 체험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 역자가 "반드시 글 속에 숨어 있는 뜻이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향상시키도록 삶을 깊이 반성하게 하는 책"라고 하는 말이 지당한 말임을 책을 읽고서 느끼게 되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훈련' 이라는 것도 이 것에 대한 네가지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먼저 첫째로는 즐거움을 나중에 갖도록 자제하는 것이다. 우리가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룬다는 것은 하루하루의 생활 가운데서 괴로운 일과 즐거운 일을 계획적으로 짜되 고통을 먼저 겪은 뒤 즐거움을 갖게 된다면 더 잘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떠올랐다. 마시멜로 이야기. 정지영의 대리번역으로 논란이 되었던 그 책 말이다. 마시멜로를 아껴두었다가 끝내 참아 하나를 더 받은 아이가 성공 하는 것 처럼 인생의 즐거움은 때로는 독이기에 그것을 나중으로 아껴두는 것이 나에게 결과적으로 좋다는 것이다.둘째로는 자신이 책임을 지시키지 않으려면 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한다면 뒤로 미뤄지는 일도 없어 질 테니 말이다. 이 이야기에 동감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항상 생활 속에서 느끼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사소하게는 아침에 일어나는 것에서부터 씻는 것, 밥 먹는 것, 귀찮아서 뒤로 미루고 또 미루고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의 책임은 회피하고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이것 저것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나의 책임을 모르는 척 할 때가 많다. 정작 자기 책임은 회피하면서 잘못된 결과의 탓은 세상이나 남에게 돌리는 때도 많았다. 나는 그 누군가 말했듯 “네가 문제를 해결에 참여하지 않으면 네가 문제의 일부가 되고 말 것이다.”라는 말을 기억해야 할 것같다.셋째로는 진실에 헌신하는 것이다. 우리가 현실을 감수하고 파악하려는데 노력을 하면 할 수 록 우리의 지도는 명확해 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을 보는 낡은 견해 즉 전이에 빠져 심각한 정신질환에 빠질지도 모른다. 나는 진실이나 현실이 고통스러운 것, 즉 실비아 플라스의 비유처럼 진공의 병속에 갇혀져 현실의 지도를 수정하는 것을 피하고는 했었다. 하지만 나의 지도를 개편하려면 진실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불편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야 하며 현실의 진실을 찾는데 도움이 된다면 그 불편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서 환자가 현실과 대결하는 괴로움을 견뎌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넷째로는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용감한 사람들은 계속해서 완전히 정직하려고 애쓰고 그러면서도 필요할 때에는 적절히 진실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도 지며 우리의 책임이 아닌 것은 적절히 거절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균형잡기' 이다. 현실에서 이 ‘균형잡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줄 나는 알고 있다. 무 나 자신만을 위해 살려고 하면 사람을 잃게도 된다. 우리는 잘못된 것을 잘 발견해서 그것을 포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갈등 속에서 피치 못하게 무엇인가를 포기하게 되면 우리는 우울에 봉착하게 된다. 이 우울은 정상적인 것이다. 포기는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을 알 때 치유될 수 있다.이 모든 것을 실천하기에는 내 삶이 너무 부족하고 자신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1장에서 소개한 것들이 정말 잘 실행된다면 나는 훈련을 잘 받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같다.'훈련'에서는 인생은 여러 상황에서 훈련을 통하여 더욱더 가치있게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데 박사는 이 훈련을 하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은 연인간의 사랑이나 부모 자식간의 사랑, 그리고 친구간의 우정과 같은 것이지만 박사는 자신과 타인의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보고 있다. 박사는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려면 진정한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을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라고 했는데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까 박사가 말한 사랑에 대한 부연 중에 행동을 유발하는 강한 욕망인 의지적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고 빠진다는 것 자체는 부분적이고 일시적인 자아 영역의 붕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이 참사랑에 도달 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경험이긴 하지만 이것은 결코 참사랑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이제까지 한 사람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에 빠졌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그래서 '내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느낌은 아직 참사랑에 이르기에는 부족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또한 의존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흔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을 받거나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게되면 비관하고 세상이 끝나버린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는데 이는 이것이 절대 사랑이 아니라고 단언하고 있다. 특히 이런 것에 장랑 받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사랑하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쉽게 우울증에 빠지고 또다시 의존할 누군가를 찾아다니고 이런 비참한 생활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사람들에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면 당신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라고 한다. 이는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다. 자기 자신이 사랑 받을 가치가 없는 사람인데 어떻게 타인에게 사랑 받기를 원한단 말인가. 한 번도 타인을 먼저 사랑해서 배려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과연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겠냐는 말이다. 그는 또한 자기 희생을 사랑으로 간주하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이기보다는 학대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박사는 이를 마조히즘으로 설명하고 있다. 순수한 사랑은 자신을 확대, 충만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을 희생하거나 학대할 필요는 없다.사랑은 느낌이 아니다. 박사는 이를 우리가 애착과 사랑을 혼동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애착과 사랑은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는 생명이나 영혼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애착을 하고 있으며 둘째는 우리가 다른 인간에 애착을 한다고 해서 사랑에 필수적인 그 사람의 정신적 발전을 위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한다. 셋째로 애착의 강도는 지혜나 책임의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단지 그 사람을 향한 애정정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반드시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꼭 강조되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열정만을 불태우다가 끝내는 책임지지 못할 일을 하고서는 책임을 회피하며 뒤돌아서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박사는 또한 사랑과 애착을 구별하는 열쇠는 의지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의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듯 사랑과 사랑이 아닌 것은 막연하게 추상화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첫째, 둘째 이렇다.
    독후감/창작| 2008.05.26| 4페이지| 1,500원| 조회(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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