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사 조별답사 보고서]우리나라 대표 서원인 소수서원을 통해서 본 서원의 역사와 의의답사개요서원은 조선시대 각 지방의 인재양성과 사림정권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16세기 들어 교육과 제사를 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한 서원은 이후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그 수를 늘리며 크게 발전해왔다. 이 과정에서 서원은 유학발전을 촉진하고 향촌문화를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수많은 관료와 석학들을 배출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로 갈수록 면세특권을 이용한 재산축적으로 국가경제를 위축시키고, 붕당정치를 강화시키는 역기능이 나타났고, 이는 국력쇠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 서원의 변화에 대해 알아보고 이를 조선시대 국력과 정치상황에 연관시켜 살펴보고자 한다.소수서원은 1542년 세워진 조선 최초의 서원이자, 퇴계 이황의 주청에 의해 임금으로부터 직접 편액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다. 또한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가운데서도 예외를 인정받을 만큼 오랜 시간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아온 사원이며 지금까지도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등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원에 대한 조사를 하기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생각되어 답사장소로 정하였다. 답사는 3월 1일 공휴일을 이용하여 다녀왔으며, 고속버스를 타고 영주터미널로 이동한 후 택시를 타고 소수서원을 방문하였다. 소수서원을 직접 답사하고 근처의 소수박물관을 관람하여 소수서원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았다. 또한 선비촌을 방문하여 영주지역 선비과 일반 민중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하고 풍기, 영주지역에서 유명한 인삼요리와 묵밥을 먹어보았다.서원의 역사적 배경 (사전조사내용)서원답사에 앞서 서원에 관련된 역사적 배경지식을 조사하였다. 이를 발표 프레젠테이션에 정리하였으나 시간관계상 설명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정리하여보았다. 사전조사내용은 크게 유학의 발전과 서원의 기능, 서원의 발전과정, 소수서원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고, 아울러 붕당정치의 폐해와 이에 따른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살펴보았다.유학의 발전과 사림인 소윤이 몰아내게 되는데 이것이 을사사화이다. 이것은 외척간의 갈등에서 발단이 되었지만 결국 사림간의 갈등으로 일어난 사화에 가깝다.서원의 발전과 기능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관학의 부진사림의 성장과 세력강화 목적붕당 세력간의 경쟁의식문중의 선현을 모시면서 가문명예양반 자제들의 직접적인 교육목적1) 서원의 발전과 발전배경1550년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이 사액을 받아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이 된 이후 서원의 수는 가파르게 증가하였고, 그 규모 또한 점점 커졌다. 이러한 서원의 발전이 있을 수 있었던 배경을 위의 그림과 같이 5가지 정도로 들어보았다.1. 관학의 부진조선 왕조의 위정자들은 유교를 지도 이념으로 내세워 신분적 명분론으로 지배질서를 부여하였다. 유교정치는 유교적인 윤리관을 기본으로 삼는 윤리 정치를 이상으로 내세워 그에 따른 사회질서의 확립을 위해 성균관, 학당, 향교 등 관학 교육을 강화하고 유학서적, 유교 의례서 등의 보급에 힘썼다. 그러나 관학이 출세 도구로 변질되기 시작하였고, 향교의 교육은 크게 질이 저하되어 선비들이 관학 교육에의 참여를 기피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연산군은 성균관을 연회 장소로 사용하였고 학자들의 독서를 금하기조차 하였다. 이 때문에 관학은 극도로 퇴락해 갔고 참교육의 장이 요청되는 현실이었다. 거기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관학인 향교가 많이 소실되었는데 국가에서는 경제적인 곤란으로, 복구할 사정이 못되어 향교가 오랫동안 방치된 것이 서원의 증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2. 사림의 성장과 세력 강화 목적정몽주, 길재 계열의 선비들은 조선건국과 수 차례 반정과정에서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의 논리로 재야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해왔다. 이들이 김종직의 정계진출을 계기로 성리학적 이념을 내세워 훈구 세력과 대립하여 4번에 걸친 사화를 유발하였는데 이로 인해 심한 타격을 입어 사림들은 세력을 키우기 위한 궁극적 방안을 모색하였다. 서원은 명목상 교육시설이었으므로 반대세력으로부터의 견제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서원을 지방에 근거를 두기 때문에 매우 경제적이며 실리적인 정책을 추구하였으며, 이들이 일부 남인세력과 함께 조선 후기 실학을 일으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다양한 개성을 지닌 성리학풍이 각지에서 형성되면서 정파가 생기게 된 것이다.붕당 정치의 전개와 폐해1) 붕당정치의 전개1. 동인과 서인의 대립성리학을 중시하는 사림파는 크게 동인과 서인으로 나누어지는데, 동인은 서경덕, 조식, 이황을 따르는 학파이고, 서인은 이이와 성혼을 따르는 학파이다. 동인과 서인은 김효원과 이조전랑 임명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동인의 대표 인물은 김효원 이고, 서인의 대표 인물은 심의겸 인데, 김효원은 한양에 동쪽에 살아서 동인이고, 심의겸은 서쪽에 살아서 서인이다. 김효원은 사림 중에서도 능력 있고 청렴한 선비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런데 왕실 외척출신 선비인 심의겸이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는 것을 반대하여 대립하였다. 그러나 결국 김효원이 이조전랑이 되었다. 그 후 김효원이 진급을 하여 후임인사를 논할 때, 심의겸의 동생 심충겸이 후보에 올랐으나 김효원이 거절을 했다. 이에 심의겸과 그 추종자들은 김효원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이에 앞서서 김효원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심의겸을 비난하였다.2. 동인의 분열정여립은 본래 이이와 성혼을 따르는 서인이었는데 동인이 집권하자 탈당하고 동인에 입당했다. 그래서 정여립은 서인으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았다. 정여립은 선조 때에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수령과 감사가 고향까지 그를 찾아갔다. 그 과정에서 정여립은 대동계를 조직하게 되고 대동계는 모반의 증거가 되었다. 정여립 모반사건의 결과 서인이 집권하게 되었다. 정여립의 모반사건은 서인의 리더인 정철이 조사를 하였다. 동인은 항시 서인세력을 누르고 싶어 했는데, 때마침 왕세자 책봉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선조의 아들인 광해군과 신성군의 책봉문제에 대해 동인과 서인의 입장이 갈라서게 되었다. 서인의 리더인 정철은 광해군을 지지했고, 동인의 리더인 이산해는 신성군을 지지하였다. 선조는 광해군주민들은 국가의 조세와 부역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서원의 노비로 들어가 군역이나 부역을 회피하여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그러나 당쟁의 격화로 서로 자기네 세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중앙의 고관이 향촌의 서원에 유사로 추대되었고, 서원 구성원은 과거시험이나 벼슬자리를 얻는 데 필요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호응하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 상황이었다.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촌사회에서 서원이 누리는 권위는 대단하였으며 바로 이 점이 사회적 폐단을 일으키는 근본요인이었던 것이다.2) 서원을 철폐하려는 노력들1. 숙종숙종 초기만 해도 서원에 대한 옹호론이 계속 되었지만, 숙종 때 서원에 대한 견제가 시작 되었다. 이 때 전라감사 민진원은, 조정에 알리지 않고 사사로이 서원을 세우는 경우 지방관을 논죄하고 수창유생을 정거시킬 것을 상소하였다. 이에 왕이 찬동함으로써 서원금령이 강제성을 띠게 되었다. 특히 예조판서 민진후의 요청으로 1714년 이후부터의 첩설을 엄금하고 사액을 내리지 않을 것을 결정하였다. 이어 1717년에는 8도의 관찰사에게 숙종 29년 금령 후 창건된 서원에 대한 조사를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1719년(숙종 45)부터 왕이 하나하나 존폐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경상도의 경우에는 훼철을 단행하기까지 하였다. 비록 숙종이 죽고 이러한 노력들이 다시 줄어들었지만, 서원에 대한 견제를 시작했다는 것에서 큰 의의가 있다.2. 경종경종 때 사액서원의 면세지를 3결로 확정하되, 토지는 서원자체에서 마련할 것이며 위토가 3결에 차지 못한다고 해서 민전을 점거하는 일이 없도록 규정하였다(종래는 사액서원에 대하여 토지 3결을 편액과 함께 사급한 것으로 보고 이것이 사액서원이 가지는 특전이라고 하였으나, 실은 국가로부터 토지지급은 없었고 여기서 보듯이 단지 면세권만 3결에 한하여 지급하였던 것이다). 이어 서원구청을 금단하고 원속·보노 등을 일체 폐지하는 등 강경책을 썼으며, 특히 대사성 이진유의 주장으로 1703년 이후의 첩설서원은 그 편액을 철거하게 하였에는 공신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들은 임금의 즉위를 도운 공으로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행사하였는데 이들을 훈구라고 하였다. 이들의 횡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므로 성종과 중종은 이들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그 당시의 신진 세력인 사림들을 등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조선의 개국에 반대했던 정몽주, 길재 등의 제자로 향촌에서 성리학에만 전념하던 선비들이었다. 그러나 훈구의 반발로 일어난 무오, 갑자, 기묘, 을사의 네 차례의 사화로 인해 사림들은 큰 화를 입게 되고 사림인 이황, 서경덕, 조식 등의 학자들은 ‘왜 우리가 이렇게 화를 당해야 할까’ 를 고민하면서 각자 자신의 고향에서 학문 연구(성리학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로써 그 때까지 완벽한 학문으로 완성되지 않았던 성리학은 이 계기를 통해 학문적인 완성을 보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시기에 서원이 임금에 의해 사액을 받았다는 것은, 훈구와 사림들의 싸움에서 사림들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탄압받던 사림들이, 혹은 그들의 질서 운용방식이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건이었던 것이다. 점점 시대는 사림들의 주자성리학적 정치론을 인정했던 것이다.소수서원과 관련된 인물위에서 언급한 역사적 의의를 가지는 소수서원과 관련된 인물들로는 회헌 안향, 근재 안축, 안보, 신재 주세붕, 퇴계 이황 등이 있다.회헌 안향1) 회헌 안향회헌 안향은 우리나라에 중국의 주자학을 최초로 유입 보급해 이 땅에 유풍을 진작한 장본인이다. 그는 고려 말기 개혁세력이었던 지방 중소지주 출신으로 주자학을 도입 소개한 학자이다. 고려의 지배 이데올로기였던 불교의 관념적, 현실 부정적 철학을 극복하기 위하여 중세 봉건사회의 보편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주자학을 도입 소개하여, 고려 말기의 유학진흥에 크게 공헌했다. 또 불교는 인륜관계를 무시한 오랑캐의 종교라고 혹독하게 비판하고, 효-충-신-경-성 등의 유학적 덕목을 강조했다. 특히 선불을 이론적으로 배척한 주자학에 심취하여 주자를 공자에 비교하여 높이 평가하고 주자전서와 .
일반물리실험Ι[ Mechanical Energy Conservation ]윤춘섭교수님, 김태훈조교님20090645 이상봉실험 : 2009.3.3 오후1시제출기한 : 2009.3.10 화요일1. Introduction◎ 이번 실험은 역학적 에너지 보존법칙을 단순히 운동에너지와 위치에너지로만 증명하는 것을 벗어나 회전에너지를 포함한, 이전의 실험보다 다양한 경우에서도 역학적 에너지가 보존됨을 보이는 것이 목적이다.2. Theory◎ 이번 이론적 배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관계식을 사용할 것이다.항목관계식회전운동에너지회전관성각속도선속도 회전운동에 관한 관계식◎ 이 실험에서 역학적에너지 보존법칙을 사용하면 다음과 같다.◎ 세부적인 이론식을 유도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우리가 이번 실험에서 구해야할 것 중에 직접 손으로 조절해서 얻어야 할 실험 결과가 있다. 바로 레일의 원을 돌 수 있는 가장 낮은 높이의 점을 찾는 것이다. 먼저 먼저를 원을 돌 수 있는 가장 낮은 높이라고 잡고, 원의 최고 높이점을 t라 잡은 후, 역학적 에너지 보존법칙을 이용해서 t점에서의 역학적 에너지를 표현하면………(1′)식을 세울 수 있다. 여기에서 잠시 멈추고 알고 가야할 것이 있는데 t는 원의 최고 높이점이기 때문에 원심력이 중력에 의해 가장 많이 상쇄되고 가장 적은 수직항력이 나머지 원심력과 상쇄된다. 그리고를 구하는 원리가 수직항력이 0이 될 때 원을 돌 수 있는 가장 낮은 높이라는 것이다. 이를 이용해식을 세울 수 있고 이 식을 이용해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각속도는 (e)에서임을 알 수 있고, 회전관성은로 주어져있으므로 위의 식 (1′)에 방금 구한과, 그리고를 대입해주면∴………(1)이렇게 (1) 식을 유도할 수 있다.◎ 이제 식(1)을 통해 레일의 원의 가장 낮은 점에서의 속도를 구해보자. 레일의 원의 가장 낮은 점 b의 높이를 0이라 잡고 그것에 대한 역학적 에너지 식을 표현하면 다음 식과 같이 표현할 수 있다.여기에서 회전 관성와 각속도식을 위의 식에 대입하면................(2)이렇게 (2)식을 유도할 수 있다.◎ 공이 레일을 탈출하는 지점인 c에서의 속도와의 관계식을 구해보자. 우선 b점에서의 역학적 에너지와 c점에서의 역학적 에너지가 같으므로 이와 같이 표현할 수 있다.여기에식과식을 각각 대입하면………(3)이렇게 (3) 식을 유도 할 수 있다.는 레일을 떠난 직후의 물체의 속도,(단,는 x축에 대한 레일의 각도)◎ 마지막으로 c점에서 튀어나간 공의 궤도방정식을 유도해보자. 이번 실험에서는 이 값을 실제로는 측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론값은 이 식을 통해 알 수 있다. 구하려는 식은 공이 레일을 벗어난 직후의 운동을 나타내는 식이므로 일종의 포물체 운동으로 생각할 수 있다. 즉 x축 방향으로 등속도 운동, y축 방향으로 중력가속도로 등가속도 운동을 함을 알 수 있다. x에 대한 y의 위치를 나타내는 식을 유도하기 위해, 레일의 끝을 좌표 원점으로 잡은 식을 변형하여 t에 대한 식을 만들고, 이 t를 레일의 끝을 좌표 원점으로 잡은 식의 t에 대입하여 y-x함수를 구하면,………(4′)………(4)이렇게 식(4)가 유도됨을 알 수 있다.3. Experiment set-up and procedure◎ 실험방법(1) 오른쪽 그림과 같이 실험을 세팅한 후 I-CA system으로 관찰한다. 레일의 반지름 r과 같은 상수를 미리 측정해놓는다.(2) 공이 낙하 후 회전 트랙을 완전히 돌 수 있는 높이의 최소값 hi를 구한다. 이 때 여러번 반복실험을 통해서 최소 높이를 알아낸다.(3) 최저점에서의 속도를 구한다. 이것은 데이터를 구한 후,로 구한다.(4) 책에는 s를 구하는 과정도 있으나 이번 실험에서는 생략하였다.4. Result and analysis◎ 이번 실험에서 결과 및 분석에 필요한 상수는 다음과 같다.항목상수값공의반지름0.0155m레일의 반지름0.15m공의 질량0.02701kg 실험에 필요한 상수값◎ I-CA system을 통해서 얻는 값은 t-x, t-y값뿐이다. 레일에 진입하기 직전의 지점을 알기 위해서는값을 구해야 한다. 실제로데이터에서 각각의 시간간격 당 평균속도를 구해서 활용할 수도 있다. 또 한가지 방법으로는 엑셀을 이용해서 t-x, t-y 그래프의 일부분씩을 잘라서 추세선 식을 구한 후 활용하면 보다 편하게 활용할 수 있다.◎ b점에 처음 진입할 때의 속도는그래프를 미분하여 가장 큰를 가지는 시간을 구하고 그 때의 데이터를 읽으면 된다.◎ 이번 실험에서는 실제 측정하지 않았지만 레일 끝 점에서의 속도도 구할 수 있다. 피사체가 b점으로부터 약 0.1초 후에 c점에 도달하는 것을 피사체의 이동 경로가 찍힌 사진을 통해 알아낸 후 이를 통해서 위와 같은 방법으로 구할 수 있다. 이번 실험에서 실제로 측정하지 않았으므로 이론값만 구할 수 있다.◎ 우선 실험을 통해 나온,그래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T-X 그래프 T-Y 그래프 X-Y 그래프그래프를 통해 구슬이 지나간 경로를 유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C점에 도달하는 시간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 또한,그래프에서 휘어진 부분은 레일을 통과하는 부분이며 그래프상에서 레일에 도달하는 시점을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는 있으나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서 앞에서 언급한 방법대로 시간을 구하고 그 때의 값을 읽을 것이다.◎ origin 을 이용해 미분데이터를 얻으면 다음 표와 같다. 데이터가 길어서 일부분만 짤라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Time(s)dx/dtdy/dt025.15152-2.069630.03327.85517-18.54140.06737.29456-21.66270.150.33333-31.34850.13361.90642-40.11230.16768.20945-49.52140.278.68182-59.57580.233102.0606-55.65730.267108.3485-58.80880.3106.9849-72.12120.333126.8717-77.15060.367130.0383-92.86280.4134.6364-103.5760.433151.0098-102.2280.467157.828-96.12170.5191.5303-122.9090.533231.7906-146.0820.567200.4118-108.3090.6197.9242-47.48490.633214.08651.32398 미분데이터◎ 이번에는 T-X, T-Y그래프에서 레일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부분만을 잘라서 그래프로 나타내고 추세선 식을 구해보았다. T-X 그래프의 일부분 T-Y 그래프의 일부분◎ 이제 위에서 구한 미분데이터와 추세선 식에서 얻은 레일에 도달하기 직전의 시간를 구하면 다음과 같다.추세선 식을 미분해서origin 미분값레일에 도달하기 직전0.920.86 레일에 도달하기 직전의 시간◎ 이제를 알았으므로 이론적를 구해서 미분식에 대입한 실험값와 비교해볼 수 있다. 우선 실험적으로 구한와 레일 반지름을 통해 알 수 있는 이론적를 비교하고 각각을 통해 나온를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다.이론값실험값오차40.5cm47.797cm18.01%2.3672.7014.19%와의 실험값, 이론값, 오차 E-T 그래프◎ 마지막으로 이 실험의 목적인 에너지 보존법칙을 확인하기 위하여 전체 역학적 에너지를 구해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을 시간 별로 계산하여 E-t그래프를 그려보았다. 대체적으로 전체 역학적 에너지가 보존됨을 알 수 있으나 군데군데 에너지변화가 급격한 부분이 있는데 특히 급격히 감소하는 부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