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약의 뒷골목 풍경을 읽고...>Ⅰ. 들어가며많은 사람들이 성경 읽는 것을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이유는 익숙하지 않은 지명 그리고 이름들, 우리에게는 멀게 만 느껴지는 문화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어렵고, 단순히 글만 읽다가 지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어려움을 단번에 깨고 있다. 당시의 풍습, 정치,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어려운 학자들의 언어가 아니라, 쉬운 일상의 언어로 풀어준 고마운 책이다.보이지 않는 뒷골목에 감추어진 새로움이 있는 것처럼 믿음과 진리라는 실재 속에 감추어진 고대 이스라엘의 배경과 사람들의 문화 및 삶을 들여다보며 구약의 뒷골목을 여행해본다.Ⅱ. 줄거리이 책은 땅과 사람, 생활과 풍습, 성과 에로티시즘, 그 나라와 정치, 신앙과 종교. 총 다섯 개의 파트로 나뉘어 내용이 전개된다.첫 번째 파트는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로 주로 구약의 배경에 대해 다루는데 성서의 배경은 고대 서아시아. 지금의 중동이며,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문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반드시 그 주변 민족들의 종교와 문화, 정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한다. 구약성경의 원어는 히브리어이며 사실 히브리어는 거의 죽어서 더 이상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사어였지만 1948년 놀랍게도 모국어로 다시 부활이 되었다.성서에서 가나안이라 불리던 약속의 땅, 이 곳 팔레스타인 지역에 관한 이야기, 이스마엘의 후손인 이슬람교도들과 유대인들과의 갈등 및 거주민들 양날의 칼인 고고학과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을 이야기 하며 성경은 읽고 이해하는 책이 아니라 듣고 깨닫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조한다.두 번째 파트는 생활과 풍습에 관한 이야기로 성경을 읽으면서 엿볼 수 있는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 생활의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구약성서 시대의 집 구조와 성문 앞의 중요성, 우물, 가구와 먹을거리 그리고 의복 장신구들에 관한 내용과 장례풍습 및 농업과 토기장이의 내용을 다룬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도 춤이나 음악을 즐겼으며, 단 그들이 춤과 음악이 종교-절기 의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제약이 있었지만 그들은 빡빡한 신적 속성을 뚫고 인간의 유락만을 위안 춤과 음악을 여가활동으로 승화시켰다. 심지어 종교적 영역으로 여겨지던 제비뽑기까지 놀이가 되었는데 이 놀이의 이면에는 하나님이 그 ‘우연’까지 주관하신다는 절대적 신앙이 있었다. 또 하나 결혼에 관한 내용은 유대전통에서 그들이 권장하는 결혼은 친족결혼, 즉 동족결혼인데 이것은 재산을 지키려는 경제적 유익과 연결된다.세 번째 파트는 성과 에로티시즘에 관한 이야기로 죽음과 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여자와 남자의 대결로 이어진다. 성경 속의 대표적인 남녀 영웅인 삼손과 들리라를 등장시켜 남자에게는 힘과 용기가. 여자에게는 지혜와 관능미 그리고 모성애라는 영웅의 자질이 있으며. 또한 남성 중심적인 이스라엘의 사회풍조 속에 통쾌한 복수를 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네 번째 파트는 그 나라와 정치에 관한 이야기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필요에 따라 뭉치며 결속을 다지던 사사기의 열두 지파체제가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시행착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미 퇴락하는 사사시대의 끝물에 지도자가 된 사무엘이 우왕자왕 하는 모습, 옛 전통의 지파동맹체에서 본격적인 정치체제의 왕국으로 넘어가는 과정, 다윗의 ‘우리가 남이가’ 정치가 낳은 성공과 실패의 결과물등 순수한 믿음의 이야기가 아닌 일반적인 정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정치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법인데 이 책에서는 무시무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구약성서의 법, 지루한 율법등의 오해를 풀며 율법의 완성은 사랑임을 강조한다.다섯 번째 파트는 신앙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로 많은 종교의 신화와 다르게 여호와만 섬기는 유일신 사상을 증명하며, 믿음의 선조들-엘리야 선지자가 목숨을 걸고 싸웠고 호세아 선지자가 굴욕을 견디며 선포하여 피와 눈물의 투쟁을 통해 지키고 보존하여 늘날까지 우리에게 전수된 것을 말해준다. ‘오직 여호와’ 신앙의 힘은 믿음의 선진들의 견딤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역사서도 과학서도 아니다. 성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역사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고백하는 간증이다. 하나님이 성경구절을 통해 전달하시려는 진정한 메시지는 그 ‘내용’에 담겨 있다 문체는 그저 이 내용을 전달하는 옷일 뿐인데 문체에 따라. 다른 번역의 성경을 읽으면 은혜롭지 못하다고 한다. 읽지 말고 들어야 한다. 읽지 말고 듣자. 그러면 문자주의의 오류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문자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
변화의 시작 하루1%프롤로그모든 성공에는 작은 시작점이 있다.엄두를내지 못하던 일도 주변의 누군가가 그 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도전의지가 생긴다. 그래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최고의 증거는 바로 다른 사람들이 이미 그것을 해냈다는 사실이다.” 변화의 시작은 하루 1%로 충분하다. 하루 1%만 투자하면 개인이든 조직이든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1장 크게 생각하기아~ 미치겠다! 나 정말 훌륭한 사람인데!- 정신 속에 깊이 박혀 우리를 지배하는 그 무엇?'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규정하면 우리 모두는 그것이 옳든 그르든 상관없이 그것과 일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에 대한 믿음이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고 나아가 운명까지 결정하게 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규정 효과라고 한다. 내성적인 성격을 바꾸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스스로를 내성적인 사람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른 내일을 살고 싶다면...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주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창의적인 사람은 스스로를 창의적이라고 규정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신을 창의적이지 않다고 규정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바뀌면 우리의 행동은 그 새로운 정체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동적으로 바뀌게 된다.- 넓게 규정해야 큰일을 하게 된다.성공하는 개인과 기업은 자신과 자신의 일을 남과 다르게 규정한다.- 제가 어떻게 책을 쓰겠습니까?직접 해보지 않고는 그 누구도 자기 안에 어떤 재능이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우리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에 있다. 우리의 견해 중 가장 중요한 견해는 자신에 대한 견해이고, 평가 중 가장 중요한 평가는 자신에 대한 평가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자신을 다르게 규정해야 한다.친구의 비웃는 표정 때문에...- 왜 자꾸 지각을 하그렇다면 그것은 그대가 아직 상대에게 제대로 된 이유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로드맵 덕분에 술을 끊었어요!- 내 삶의 내비게이션, 인생 로드맵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지만, 자기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의미 있는 목표도 없이,, 일에 대한 철학도 없이 그냥 열심히만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도 네비게이션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인생목표와 달성경로가 포함된 인생 로드맵이다.-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은가?원하는 것을 얻는 첫 번째 단계는 원하는 것을 정하는 것이다. 목표를 알고 있다면 현재 위치에서 목표에 이르기까지의 타임라인을 긋기가 훨씬 쉬워진다. 인생로드맵을 곁에 두고 매일 아침 그날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면서 하루를 시작하자. 저녁에는 그 일을 제대로 했는지 자문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하자.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스스로도 놀랄만한 일을 해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경로우대, 집어치우고 꿈을 찾아 다시 뜁시다엉뚱한 곳으로 가고 싶지 않다면 목적지를 정하고 길을 떠나야 한다. 목표가 만들어지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만나고 생각하는 사람이 달라진다. 목표는 사람이 만들지만 일단 목표가 만들어지면 목표가 사람을 이끌기 때문이다.하루 종일 매상 올릴 방법을 찾다보니...- 생각의 끈을 놓지 마라많은 사람들이 재미가 없어서 몰입하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몰입하지 않으면 그 일을 좋아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그 일로 성공할 수도 없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그 일이 좋아졌고, 그래서 성공했다고 말한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을 얻기 위해 하루 몇 시간이나 그와 관련된 생각을 하는가? 원하는 것만 얻고 싶다면 원하는 것에 대한 생각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하루 1%라도 목표와 관련된 일을 하자아무리 바빠도 하루 1%(15분)만이라도 10년 후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이 시간만큼은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뺏기면 안 된다. 날마다 목표와 관련된 책 한 페이지라도상관 없을 것 같은 초라한 노년의 모습을 앞당겨서 지금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2장 작게 시작하기이 작은 일이 얼마나 큰일로 이어질지는...-동전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즉각적인 고통을 피하고 즐거움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더 큰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때 즉각적인 욕구 충족여부에 기준을 둔다. 반면 소수의 성공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초기의 차별화된 친절과 서비스가 연쇄반응을 일으키면서 점차 증폭되어 시간이 지나면 걷잡을 수 없는 파생효과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게 행동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게 된 진짜 이유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일로 인해 크고 작은 수많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파생효과(derivative effect)라고 한다. 수없이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에디슨을 버텨낼 수 있게 한 것은 바로 이 ‘파생효과 노트’였다. 에디슨은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전구 발명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파생효과들을 글로 정리했다.-실패했을 때의 부정적인 파생효과를 상상하라실행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의 하나는 변화하지 못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끔찍한 상태와, 변화를 시도해서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상태를 대비시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정신적 대비기법이라고 한다. 자신이 결심한 일을 해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긍정적 파생효과가 크면 클수록 결심을 실천에 옮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실천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끔찍한 부정적 파생효과도 강력한 자극이 된다. 그래서 목표를 달성했을 때의 최고의 상태와 그렇지 못했을 때의 최악의 상태를 대비시켜보는 것은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더욱 더 강력한 실행 동력을 만들어낸다.딱 오늘 하루만!- 왜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일까?꼭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선뜻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왜 시작도 하지 못하e)를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다. “계획이 미래의 의사결정에 관련된 것이라는 생각은 틀렸다. 그러니 우리는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내일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내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부자들은 응답속도가 빠르다성공한 사람들이 더 한가해서 그럴까? 아니다. 그들은 어차피 할 일이라면 ㅃㆍㄹ리 처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삶에서 가장 파괴적인 단어는 ‘나중’이고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단어는 ‘지금’이다. 실패하고 불행한 사람은 ‘내일’ 하겠다고 말하고,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은 ‘오늘’실천한다. 그러므로 ‘나중’과 ‘내일’은 패자들의 단어이고, ‘지금’과 ‘오늘’은 승자들의 단어다.-우리 인생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죽음에 대한 직면은 삶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증가시켜 세상과 삶에 대한 조방에 급지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그동안 집착했던 부질없는 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그동안 받았던 축복을 돌아보고 자연 환경을 새롭게 자각하게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일에 감사하고 그동안 소홀히 했던 소중한 사람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된다. 삶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대는 지금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겠는가? 후회는 아무리 ㅃㆍㄹ라도 늦지만, 실천은 아무리 늦어도 빠르다.남자 울렁증? 세 번의 실험으로 극복!-실패란 단지 다시 시도해보라는 뜻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일로 실패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 실패 때문에 좌절하고 어떤 사람은 몇 번의 실패에도 다시 도전해서 성공한다. 그들은 실패를 단지 다시 시작하면 되는 실험일 뿐이라고 생각한다.-실패란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일 뿐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의식적으로 그 상황을 실험 대상이라고 규정하면 우리에게는 몇가지 변화가 일어난다.첫째,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고 도전하기가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결심을 실천해서 성과를 만들어 내려면 반드시 두 가지 심리적 과정이 필요하다.첫째, 목표를 정해야 한다. 이것을 목표 의도 또는 결심이라고 한다.둘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행 경로를 찾아내야 한다. 이를 실행 의도 또는 액션플랜이라고 한다.액션 플랜을 만다는 것은 의외로 쉽다. 결심이나 목표를 ‘if~ then' 가정문으로 바꾸면 된다. 예를 들어 아침 운동을 하기로 결심하는 경우, 'if:알람이 울리면 ~ then:벌떡 일어나서 운동화를 신고 골목을 한 바퀴 돈다’라고 구체적인 과정을 상상하면 된다.- 액션플랜만으론 부족하다. 백업플랜을 준비하라살다 보면 아무리 비장한 결심을 해도, 아무리 멋진 액션플랜을 마련해 놓아도, 이따금씩 예상치 못한 돌발 사태가 발생하여 우리의 의지를 꺾는다. 반면 성공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무엇을 결심하건 가능한 돌발 사태를 모두 예상해본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여 돌발 사태를 모두 예상해본다.결심을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이처럼 돌발 사태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데, 이를 백업플랜 이라고 한다.- 영리한 토끼와 정복자 나폴레옹의 공통점돌발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낙관적인 플랜-A는 대부분 실패한다. 최적의 조건만을 전제한 탓이다. 반드시 실천하고 싶다면 실천을 방해하는 돌발 사태에 대한 대비책, 플랜-B를 마련해야 한다. 플랜-B는 하나에 그치면 안 된다. 가능한 모든 돌발 상황을 고려하여 플랜-C, 플랜-D, 플랜-E....를 만들어두어야 한다.-그대의 신년 결심, 안녕하십니까?어떤 분야든 성공한 사람들은 거듭된 실패에도 재도전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그 자리에 섰다. 결심을 실천에 옮겨 성과를 낼 수 있는 제대로 된 액션플랜과 백업플랜을 준비하여 다시 도전하면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했던 사람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3장 다시 도전하기빅토르 위고는 왜 몽땅 벗었을까?- 조금만 더 놀면 안 될까요?실패하는 사람에게는 오만가지 다.
서문이 책에서의 논지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될 것인데, 먼저 선교사들의 부유함에 대한 본질과 범위 그리고 상황이 서술될 것이다. 다음으로 서구 선교사들이 자신들 개인의 물질적, 경제적 이득을 얻는 것으로 여기는 특권의식이 현대 선교사 시대의 초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이 좋은 점에서든, 나쁜 점에서든 서구 선교사들의 사고와 전략 그리고 정책의 핵심에 매우 깊숙이 박혀 있다는 것을 다룰 것이다. 이러한 격차에서 비롯된 다양한 결론들, 그러니까 그것이 예견되어진 것이든 예견되지 않았든, 의도적이든 우연이든, 중심적이든, 지엽적이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일부가 탐구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부유한 선교사가 부딪치게 될 관계의 문제와 소통의 문제 그리고 신학적인 도전들이 고찰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적 부유함의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하는, 서구 선교사들의 일부지만 수만 명의 선교사들이 따르고 있으며, 따랐던 것이 확실히 어렵겠지만, 희망의길, 좁은 길이 제시될 것이다.제1장 서구 출신 부유한 선교사의 실제와 정도미국과 캐나다가 부유한 나라라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나라들이 파송하는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상대적인 재원과는 관계없이 세계 대부분 사람들의 기준에서 봤을 때 부유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선교사의 부유함에 대한 부작용들은 전반적으로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다.제2장 선교사의 부유함을 가능하게 한 역사, 문화적 배경컴퓨터도 비행기도 없던 지난 세기. 서구의 항구에서 작별해야 했던 선교사들이었지만 그때 당시 수준치고는 아주 풍족한 채비를 갖추었다. 예를 들어 동아프리카로 향하는 아무리 간소한 선교사 일행들일지라도 수백 명의 고용인에서 때로는 수천 명의 현지인 짐꾼들이 필요하였고 자신들의 선교 물품을 옮기는데도 어떤 경우는 수개월이나 소요되었다. 또한 그들의 수준을 현대 미국이나 유럽 선교사들의 수준과 비교해 보아 보잘 것 없고 형편 없을진 몰라도, 당시 아프리카 사람문명 그리고 힘에 대한 서구의 생각들이 선교사의 이론과 실천에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데 이 같은 생각이 선교사들 자신의 상대적인 부유함에 대한 인식들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를 측정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다. 부유함은 문명에 영향을 끼치는 기독교적 영향의 부산물이었다. 선교사들은 부유해지기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기독교를 전해주었고 그들 자신들의 부유함이 어떤 의미에서는 기독교 문명을 판단하는 “제1호 증거물”이었기 때문에, 서구의 부유함을 아예 포기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선교를 배신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제3장 선교사의 부유함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들서구 선교사들의 노력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선교사업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선교사의 부유함에 대해서만큼은 언제 어디서나 끈질기게 제기되는 주제이다. 선교사들은 해외에서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불러일으키는 오해를 잘 알고 있다. 한 선교사는 “선교사와 사치스러운 생활”애 관한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선교지에 가는 초임 선교사들이 그곳에서의 선배 선교사들이 누리던 전반적인 평안한 생활에 놀라곤 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서구 선교사들은 자신들은 자신들이 구축한 강력한 방어막이 공격받을 때, 양털 깎는 사람 앞의 양처럼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교사들은 비난받을 때에 적극적으로 자신들을 방어했기 때문이다. 서구 선교사들의 방어와 그 비판자들의 반박을 다룬 문헌 가운데 높은 생활 수준을 비난하는 것에 대한 답변들을 편의상 네 개의 이론적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경제적, 가정적 사회적 그리고 전략적이다.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서구 선교사들의방어는 매우 현실적이고 건전한 사고에 기초하고 있다.제4장 선교사의 부유함에서 발생하는 관계의 파괴들서구 선교사의 부유함은 적어도 여섯 가지 방식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틀어지게 하는데, 이것들은 그리스도께서 따르던 무리들에게 모법을 보이셨던 활동 방식과 대조적이다.-부유함과 선교사의 절연절연되다는 단어는 ‘섬으로 들어가다’라는 뜻을 -선교사의 공식적 업무의 맥락에서만 가난한 사람들과 관계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선교사들의 사회생활에 참여하려 한다면 그 작업들은 상호간에 난처함을 줄 뿐이다. 선교사들과 현지 개종자들 사이에 경제적 차이가 존재하는 한, 사회적 형제사랑은 방해받게 될 것이다.경제적 양극화와 부유하기 때문에 우월하다는 착각지금도 자신의 우월감을 과도하게 표출하는 경우가 있지만, 보통은 그런 경우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다. 150년 전엣 서구인들은 현지인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우월감을 표출하였다.부유함과 불신관계오늘날 서구 선교사들과 제3세계 사람들 사이를 분리시키는 격차가 더욱 심화되는 한편으로, 의심과 불신의 사회적인 역학관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를 논의하는 것은 어리석고 무익한 일이다. 오늘날에는 당시처럼 어떤 선교사들도 선교사들 단체의 일원이 된다고 해서 사회적으로 신분상승을 가져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19세기와 마찬가지로 20세기에도 서구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특권적 지위가 혹시나 무너질까봐 본능적으로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데, 이것을 숨기기 위해 원주민들이 이기적이고 속물근성이 있으므로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눈가림을 하고 있다. 이것은 특히 서구 선교사들과 토착 복음전도자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이지만, 동시에 바로 서구 선교사들 자신들 사이의 재산상 차이가 크게 벌어진 경우의 관계성 문제이기도 하다.부유함, 부러움, 그리고 적대적인 관계들부유함에는 사회적 이득이 따른다. 또한 사회적 이들에는 개인의 완전과 힘이 따른다.-여기서 힘은 좀 더 덜 가진 자를 지배하는 힘이고 그들 자신의 운명을 지배하는 힘이며 선택의 힘이다. 부러움은 우리가 우리 주변 사람들의 성공이나 행운을 목격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갈브레이스가 기록하는 것처럼, “부러움은 가까운 이웃들에 관해서만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부자를 향한 감정이 아니다.경제적 격차가 실재하는 데에 따할 만한 선교사의 삶에서 분리될 수 없다.복음을 전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해할 수 있고 본받을 수 있는 믿음을 실천해야만 한다. 복음을 전달하여 믿게 하는데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복음 전도자들이나 선교사들의 상대적인 부유함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모범으로 삼고 있는 신앙을 따라 하기 위해서는 그들 수준에 어울리는 풍부한 물질적 재산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선교사의 부유함에서 발생하는 전략적 손실선교전략은 기독교 선교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기술이나 과학이다. 선교전략은 선교사가필수적으로 시도해야 할 사항이라서 대부분의 서구 전교사들은 그것에 대해서 한마디씩 할 정도로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1. 서구 선교사 전략의 특징은 고가의 과학기술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가의 기계들이 선교사들의 전문적인 사역들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속도와 편리함을 증대시켜주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들의 사적인 용도로도 쓰일 만큼 유용하지만, 그러한 장치들을 소유하고 다루는 것은 흔히 선교사들과 선교사들이 섬기는 사이의 거리를 더 벌려 놓기 때문에 독립적이고 과학기술적 삶을 누림과 동시에 고립을 촉진시키고 있다.2.부유함에 의존하는 전략들은 서구 선교사들이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 모방할 수 없고 모방되어서도 안 된다. 가장 최초의 선교사들은 광활한 제국주의자 로마 제국의 변방에 불과한 구석지고 가난하며 외국에 의해서 통치되고 점령된 지역의 주민들이었다는 사실이 드물게 기억될 뿐이다. 서구 기독교 정신에 깊이 뿌리박힌 선교에 대한 인식은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권력의 중심지로부터 지배받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로 자연스럽게 그리고 아주 효과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으로 보인다.3. 좀 더 가난한 교회들과의 교류에 있어서 참으로 형제 같은 관계를 맺는 선교전략들은 선교기관들과 교회들의 관점에서 볼 때, 대체로 실망스럽고 종종 쓸모없다. 돈은 권력을 주고, 권력은 지배를 낳는다. 불평등한 관계 사이에서의 참된 동반자 관계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4. 서구된다면, 북미 출신의 수많은 선교사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탐욕스러운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3. 안정적이고 독립적이며 편안한 선교사가 과연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할 어떤 마음을 가질 수 있는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관계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구약에서 안전과 부는 거의 필연적으로 어리석으면서도, 영적으로 불행을 초래하는 독립심을 심어주는 것으로 나타난다.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려도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은 문제이다. 왜냐하면 예배 모습이 엄청난 감동과 열정을 보여주어도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아주 좋지 않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부와 가난에 대한 성서의 입장부와 가난 그리고 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성서적 가르침은 풍부하고-적어도 특권층의 시각에서는-고통스러울 정도로 뚜렷하다. 성서는 어떤 면에서 메시지, 문체, 인격, 능력, 그리고 시대가 각기 다를 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상황들에 그리고 상황에 대해 썼던 저자들에 의해서 써진 거북하고 불규칙적인 책이다.-부자가 위안을 받는 구약의 가르침1. 사적재산은 잘못이 아니다. 도둑질을 배상하고 금지하는 성서의 명령은 사적 소유권에 신성함을 부여하는 것이다.2. 부는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개인적이나 집단적인 부러움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비참하다고 그저 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제일 행복한데, 현재가 안정되어 있고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이 없는 사람들이다.3. 의인은 번성할 것이다. 자신들의 의로움 때문에 반드시 번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구약의 공통적인 가르침은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드에게 그에 따른 보상을 확실하게 약속에 준다.4. 사람들의 빈곤에 대한 책임은 때때로 자신들에게 있다. (잠6:6-11)5. 가난과 빈곤한자들이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법이 없다. 부자들을 위한 성서 말씀의 대부분이 그 당시의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부유했던 솔로몬 왕이 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자가 위안을 받는 신약의 가르침신약에는 가난한 현장에서 살아가다.
제 1 부 새로운 예배의 필요1.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경험적인 차원에서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 할 수 있다.첫째는 세상 문화와 동떨어진 교회의 폐쇄적인 경향 때문이었고, 둘째는 상실된 교회의 영성과 대책에 대한 세상의 물음에 해답을 주지 못하는 교회, 그리고 부정적인 교회 상에 대한 것들 때문이었다. 셋째는 예배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넷째는 교리적인 문제들이 이유였고 마지막으로는 현실적으로 만나고 있는 삶의 무게들 때문이다.결국 청년들이 교회로 나오기 힘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외적인 요인으로 시대의 변화로 인하여 종교 다원주의 상황이 매우 자연스러워졌음을 의미하는 것과 내적인 요인으로 교회의 모습들이 문화 적대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견지했다는 것을 말한다.2. 변화되지 않는 교회많은 청년들이 교회 안에 존재하지만 수동적인 태도를 가진채 소극적 교인으로 남아있다. 이들이 아직도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이유는 여전히 부모의 영향력 때문이다.그렇다면 청년들이 교회로 들어오지만 동시에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종교가 나름대로 호감이 갈만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교회는 지금까지 청년들을 만족시킬만한 최소한의 것도 제시하지 못했다.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최소한 두 가지 관점에서 청년들을 충족시켜야 한다.첫째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상황 속에서 세상에 대하여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둘째로, 개인의 상황과 시대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높은 영성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이 두 가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예배의 문제이다. 특히 청년 구도자들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그동안 어떠한 변화를 이루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쓸모없는 변화를 이루었다고 단언한다.경배와 찬양, 농구골대 설치, 카페시설 등 교회들의 나름대로의 문화적인 노력을 하였지만 다음의 세 가지 이유로 실패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첫째, 청년의 문제를 교회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기 때문이다.둘째, 문화의 속성을 이해하지 않은 채 변화를 준비하지 않고 흐름을 뒤쫓아 가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본질을 놓친 접근을 한 것이 문제였다.결국 필요한 것은 문화보다 예배이고, 이 둘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한 예배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관점에서 문화의 ht을 입은 새로운 예배 갱신이 필요한 것이다.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청년 구도자들이 신앙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예배이다. 물론 그것은 이율배반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문화와 예배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3. 새로운 교회와 새로운 예배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열린 시대에, 새롭게 성격화 되어 버린 청년, 청장년 세대들이 교회를 이탈하고 출석하기를 주저하고 있다면 분명히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예수의 성육신 정신을 좇아 교회는 새로워져야 하며, 그 변화 중의 하나가 예배의 형식이라면 당연히 새로워지는 것은 주님의 지상명령에 충실히 하는 것일 것이다.어떤 의미에서 지금은 전쟁 상황과 같은 시기처럼 절박하기 때문에 낭만적으로 복음을 접근할 때가 아니라 초대 교회처럼, 혹은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 들어올 때처럼 복음을 위하여 복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매우 적극적이지만 동시에 관대함과 포용력을 가진 접근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그렇다면 새로운 교회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하는 것인가? 새로운 교회는 과거의 패러다임에 익숙해 있는 우리가 만나고 있고, 만나게 될 미래 앞에, 즉 “저 건너편의 세계를 위해 재창조되고 재도입된 교회를 말할 것이다.”21세기 변화된 상황에 맞고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교회들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현재 가장 영향력 있게 활동하고 있는 교회 형태는 구도자 중심의 교회들이다. 구도자 중심의 교회들이란 사용자 중심의 친근한 교회라고 좁혀서 이야기 할 수 있다.그렇다면 사용자 중심의 교회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여섯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첫째, 적극적으로 사역을 진행하고 동기를 부여한다.둘째, 프로그램보다 사람을 우선시 한다.셋째, 교회의 한계를 파악하고 타겟 그룹과 목표를 집중한다.넷째, 타협하지 않고 복음에 기초한 질적인 사역을 중요시 한다.다섯째, 주일 예배 이상의 개념으로 신앙은 복음을 전하는 삶의 양식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마지막으로 비판의 성역 없이 매우 자유로운 비판과 평가구조를 가지고 있다.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말하기 때문에 모든 기존 원칙들을 폐기하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복음을 따라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기본적인 전제하에 주임의 성육신 원리를 따라 상황화 하는 것이 필요하다.이러한 것은 전제로 했을 때 새로운 교회에 필요한 중요한 원칙들은 첫째로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성육신의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에 교회로 들어오지 못하는 불신자 혹은 청년구도자를 사랑해야 한다, 셋째로, 잃어버린 청년들을 향한 민감한 목회를 해야한다. 복음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문화 사역의 자유함이 생길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의 우리 청년들에게 지금까지의 예배는 몸에 맞지 않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지 못하였다. 이제는 이러한 예배가 총체적 경험을 창조해 낸 예배로 바뀌어야 한다. 수동적인 전달 형식의 예배에서 참여하는 차원으로서의 동역하는 예배가 바로 총체적 경험을 이끌어 내는 예배이며, 청년 혹은 청소년 세대들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 중심의 비주얼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이제 남은 것은 은유, 이미지 등으로 묘사되는 문화에 익숙한 청년들을 위해 예배를 디자인 하는 것이다. 결국 예배는 은유를 통한 이미지를 잘 준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관점에서 열린 예배는 매우 유용한 예배인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건강한 이미지를 만드는 공장이어야 하고, 세상에서 문화를 이끌어가고 생산할 수 있도록 건강한 이미지를 가진 사람들을 양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제 2 부 열린예배의 근거와 논쟁4. 열린예배의 필요사실 열린예배는 크리스천들이 드리는 하나님을 높이는 의미의 예배는 아니다. 단지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한 복음 전도적인 관심에서 출발한 것이다. 열린예배가 구도자 중심의 예배라고 한다면, 구도자란 어떤 사람을 이야기 하는가? 구도자란 영적으로 갈구하는 사람들을 부른다. 한국의 경우 열린예배를 드리는 많은 교회들의 현상이 고무적인 모습이긴 하지만 열린예배가 영원히 최상의 방법은 아니다 단지 열린예배는 가장 동시대적인 방법을 택하고 있을 뿐이다.열린예배는 처음 시작 될 때 구도자예배로 불리워 졌지만 한국에 들어오면서 이름이 열린예밸 바뀌었다. 열린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정리할 수 있다.첫째는 순수하게 구도자들이다. 둘째는 구도자들에게 우호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고, 셋째로 기존교인을 중심으로 한 현대적인 예배로서 정리 된다.5, 열린예배 논쟁열린예배의 시작이 한 명의 영혼이라도 효과적으로 구원하기 위한 전도목적에서 출발하는데 동의하지만, 가장 큰 논쟁이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예배라 칭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열린예배의 시도가 하나님께 어떻게 하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관심보다 교회성장의 측면에서 회중들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것이 아닌가 하는 동기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셋째로, 정작 더 큰 논쟁의 이유는 예배 행위가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열린예배이기 때문에 교인들을 모아들이기에 급급한 교회성장 제일주의의 산물일 수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예배의 대상자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불신자 혹은 구도자들이 과연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함께 설령 예배를 드려진다고 할지라도 그 예배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예배인가 하는 문제와 예배의 중심이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인간에게 초점을 맞춘 예배가 예배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오경의 구조와 내용Ancestral History of Israel(Gen.12:1~50:26) 족장전승족장사는 인간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가정을 신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한다. 가정에 관한 이야기들이 하나님에 관해서도 말한다는 사실이 그 점을 뒷받침 한다. 가장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대들의 연속과 사회적인 일체감은 하나님의 말씀과 행동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들 간의 관계는 하나님의 행동에 의하여 확립되고 유지된다. 그런 의미에서 족장사는 세 세대에 걸친 가족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현대적인 의미에서의 전기 자료(biography)인 것은 아니다. 족장들이 소개되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조상들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기들의 정체성(identity)을 발견하다. 인간의 삶은 여전히 세대들의 연속을 통하여 경험되는 까닭에 개별적인 존재에 대한 개념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족장사와의 연결은 그들의 이야기가 말해질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 조상들에 관한 기억이 세 세대에 국한된다는 것은 여기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족장들의 이름이나 세 세대가 연속된다는 사실은 족장 전승의 가장 초기 단계에 속한 것들이다. 족장사의 삼중 구조는 족장들의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 될 것인가를 알 수 있게 한다.족장사의 배경과 연대족장들의 이야기에 대한 연구는 고대 근동지역에 대한 고고학적인 연구 결과가 족장사와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새로운 연구 방법의 일차적인 목적은 평행자료들을 근거라 하여 족장들의 이야기나 족장사에 나오는 인물들이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입증하려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방법의 한계는 그러한 평행 자료들이 거의 예외 없이 족장 설화들의 개별적인 요소들하고만 관련되어 있지 족장 설화 전체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연구 방법은 족장들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놀랍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대 근동 고고학과 언어학은 족과 후손의 약속14:1~24아브라함과 주변 나라의 왕들15:1~6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15:7~21약속과 그에 따른 표징16:1~16하갈 : 이스마엘의 출생17:1~27아브라함과 맺은 계약18:1~16a세 사람의 방문 : 아들 약속18:16b~33소돔의 멸망에 관한 아브라함의 질문19:1~29소돔의 멸망과 롯의 구원19:30~38롯의 딸들 : 모압과 암몬20:1~18아브라함과 아비멜렉21:1~7이삭의 출생21:8~21하갈과 이스마엘의 추방과 구원21:22~34아비멜렉과 갈등 및 합의22:1~19아브라함의 제사22:20~24나홀의 후손23:1~20사라의 죽음과 매장지24:1~67리브가의 구혼25:1~18아브라함 이야기의 결론이 본문 전체는 족보들을 기본 틀로 가지고 있으며, 세대들 간의 연속성 문제를 다루고 있다. 사라가 잉태하지 못했다는 11:30의 설명은 이삭의 출생과 결혼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서론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주제는 한 가족이 다음 세대로 생존해 가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다양한 위협들은 개별적인 설화들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따라서 아들을 주리라는 약속은 그러한 주제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요소이다. 약속의 주제야말로 족장들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실마리와도 같다. 이 주제는 더욱 확대되어 족장사를 민족의 역사와 연결 짓는 새로운 기능을 수행한다.(12:1~3) 족장들에게 주어지는 약속들은 12~15장 전체에 골고루 나타나지만, 특히 중앙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15장과 17장)25~36장 - 야곱과 에서25:19~28에서와 야곱의 출생25:29~34팥죽 한그릇26:1~35이삭과 아비멜렉27:1~45축복을 빼앗긴 에서27:46 ; 28:1~9떠나는 야곱 및 에서의 아내들28:10~22벧엘에서의 아곱의 꿈과 서원29:1~30야곱과 라반; 레아와 라헬과의 결혼29:31~30:24야곱의 아들들의 출생과 이름들30:25~43야곱이 라반을 이김31:1~54라반으로부터 도망치는 야곱32:1~22에서를 만나이 둘은 25~36장을 하나의 가족 역사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이곳의 여행 기록문들은 12~25장의 여행 기록문들과 다소 다르다. 그 여행 기록문들은 “도망과 복귀”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27장에서 시작하여 33장에서 끝을 맺는다. 이 주제는 짧은 설화가 보다 큰 설화 덩어리로 확대되게 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본 설화 전체의 주제는 두 형제인 야곱과 에서의 갈등에 있다. 그 안에 야곱과 라반 사이의 갈등이 삽입되어 있고 또 그 안에는 레아와 라헬 사이의 갈등이 삽입되어 있다. 12~25장이 오랜 시기에 걸친 세대 간의 연속성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25~36장은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생존과 지위를 위한 갈등들을 다루고 있다. 창세기 29~31장과 29:21~30~24은 갈등 주제의 변형형태에 해당한다. 앞 본문(조카와 삼촌 사이)에서는 양식(food)문제가 중심내용을 이루고 뒷 본문(두 여인 사이)에서는 사회적인 지위와 신분이 중심 내용을 이룬다. 하나님 현현과 성소에 관한 28,32,35장의 설화들은 본래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의 독립적인 설화들이었으나 편집 과정에서 현재의 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37~50장 - 요셉37:1~36요셉과 그의 형제들38:1~30유다와 다말39:1~23요셉과 그의 주인의 아내40:1~23요셉이 두 관리의 꿈을 해석함41:1~57파라오의 꿈과 요셉의 신분 상승42:1~38형제들의 첫 번째 이집트 여행43~45두 번째 여행43:1~34출발,도착,식사44:1~13은잔44:14~34요셉의 형제들; 유다의 제안45:1~15요셉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냄45:16~18귀향 및 야곱에게 전할 메시지46:1~47:12야곱이 이집트로 감; 요셉과의 해후46:1~7야곱의 이집트 여행; 하나님의 현현46:8~27이집트로 간 이스라엘의 아들들46:28~33이집트 도착; 해후47:1~12요셉의 가족 봉양; 야곱이 파라오를 축복함47:13~26요셉이 백성들을 파라오의 종으로 삼음47:29~48:22야곱의 유언47:29~31야곱이 요셉에게 자신을 어떻게 하여 평화의 회복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잘 보여 준다. 이 설화는 두 개의 확장 부분을 포함한다. 그 하나는 요셉의 출세(39~41장)에 관한 것으로서 맨 아랫 동생이 왕궁에서 권력과 부의 상층부에 오르게 된 주제에 기초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두 차례에 걸친 요셉 형제들의 여행(42~45장)으로서, 가족 설화를 정치 설화와 연결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두 번에 걸친 여행이 지연되면서 기장감도 고조되지만, 그 긴장감은 45~46장에서 해소된다. 저자는 가족 단위의 생활 방식을 왕정 시대의 정치적인 삶과 연결시키기 위해 가족 설화를 정치 설화와 결합시켰다. 이 두 설화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인 성장 과정의 두 단계를 반영하고 있다. 족장과 왕정의 시작이 그렇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한 형제가 다른 형제들을 다스릴 수 있느냐는 문제가 큰 쟁점이 되었다.(37:8). 이 문제는 요셉 이야기를 구성하는 두 부분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Ⅲ.신학문제역사성 문제양식비평과 전승비평은 독립되어 있던 이야기와 전승들이 후대에 이르러 역사적 사건이나 문학적 사건에 의해 결합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론들에 의하면 본문에서 발견되는 연대기는 실제 사건이 아니라 후대의 편집이나 융합에서 비롯된 것이다. 족장 이야기의 역사성에 관한 회의론은 양식과 전승비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율리우스 벨하우젠도 아브라함 이야기가 ‘임의로 고안되어진 것이거나 무의식적으로 꾸며진 것’일 수 있다고 말함으로써 족장 이야기의 역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1885,p.320).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 이야기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 유대교 신앙에 제공하는 증거였다. 그 외의 학자들에게는 족장 이야기의 역사성이 더욱 중요했다. 이러한 논의는 특히 1970년대와 1980년대초에 활발하게 일어나 지금까지 수 많은 연구서들이 출간되었다. 이 쟁점은 복합적인 것이다. 족장 이야기 안에 나타나는 이름과 관습이 기원전 20세기의 것과 일치됨을 보여주려는 시도 외에도, 아브라함을 성서 외험한 상황에 처해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한 것이 두 번이고(12:10~20 ,20:1~18) 이삭과 리브가에 대한 것이 한 번(26:1~11)이다. 이러한 일에 대해 어떤 사전 설명도 나타나지 않는다. 자료비평 학자들은 이러한 유형의 불일치되는 부분을 다른 자료나 전승에서 유쾌한 이야기로 본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우르 출신이라는 전승은 'P'자료에 속하고 하란 출신이라는 전승은 'J'자료에 속한다. 사라를 누이라 속인 세 번의 이야기는 구전(口傳)에 속한 것으로서 창세기 12:10~20이 기본 전승이고 창세기 20:1~18과 26:1~11은 그 전승을 윤색한 것으로 여겨진다.Ⅳ.신학사상약속족장들의 모습들은 역사적인 사건들로서 전승에 의하여 “족장의 하나님”을 위하여, 더 정확히 말해, 본래 “족장들의 신들”을 위하여 의존하고 있는데, 그 신들은 일련의 팔레스타인 땅의 성소들에서 확고한 예배를 받으며 그때그때 그들의 숭배자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하나님” 혹은 “야곱의 하나님”으로서 불려져서, 개별 조상들은 우선 간단하게 우리에게 명백하며, 장소와 결합된 이 예배 혹 저 예배의 창시자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가졌으며 전승에서 계속 살아남게 되었다. 특별한 양식으로 된 예배들의 고유한 형태는, 즉 - 분명 부족의 예배의 형태로 - 분명 널리 선포 되면서 이스라엘 지파들과 함께 그 땅으로 들어온 이 형태는 신과 그 신을 숭배하는 자들 사이의 인격적 관계의 요소를 통하여 표시되었으며, 그리고 그 신은 무엇보다도 - 그 땅에서 방목 교체의 과정에 확고한 지위를 차지했던 그룹들의 역사적인 상황을 통하여 조건 지워진, 주요 관심사에 일치하게 - 땅의 소유와 많은 후손들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 즉 땅의 소유를 즐거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제시하였다.땅, 자손야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이 되라고 말씀하셨다(창12:2). 이 약속은 1절에 “야웨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