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the fliesWilliam Golding의 인간관.‘인간은 본래 선한가, 아니면 악성을 갖고 태어나는가.’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하는 논쟁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현재에도 꾸준히 논의 되고 있는 문제다. 이 논점에 대해 William Golding은 ‘만약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에 6~13세 가량의 남자 아이들만 떨어트려 놓는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가정을 토대로 인간 본성에 대해 토로하고 있다.일반적으로 순수한 영혼이라고 상징화 되어있는 천사같은 어린 아이들이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어떤 식으로 변화되어 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잔인한 폭력성과 야만성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섬에 불시착한 아이들은 초기에는 이성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하고, 어른들의 사회를 모방하려 한다. 그 예로 11page에서 Piggy가 ‘Make a list. We ought to have a meeting'라고 회의를 제의하거나, 22page에서는 무리의 chief를 vote를 통해 선출하는 민주주의를 따라하고 있으며, 32page에서 발언권을 얻기위해 conch를잡은 사람만 이야기 할 수 있는 Rule이나 그밖에 여러 가지 지켜야할 Rule을 만들자고도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Piggy에게는 아이들의 관리를, Jack에게는 사냥을 맡기는 등 아이들의 역할분담도 이루어 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이들이 이전의 문명사회에서 지내왔던 것처럼 잘 해나갈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이는 듯 하다. 이곳에서 conch는 아이들을 불러모으는 역할과, 발언권을 얻을수 있는 역할, 그리고 주로 무리의 chief인 Ralph가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질서와 이성, 권위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문명사회의 특징으로서 아이들이 conch를 따르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 문명사회에서의 이성과 지식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나 이러한 질서는 오래가지 못한다.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수 없는 야생에서 아이들은 점차 무질서한 생활을 하게되며,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려 한다. 54page에서 아이들은 오두막 짓기를 돕지 않으며, 결국 79page에서 보는것과 같이 그들이 지켜야하는 문명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위생 규칙마저 무너뜨리고 만다. 즉, 문화생활에서 상당히 도퇴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의 야수성이 눈을 뜨는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돼지를 잡는 행위는 원시생활로의 퇴화과정을 더욱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사냥을 하게 되면서 더 무시무시해지는 무기의 발전과, blood의 속성 자체가 또다른 피를 부르는 동시에 인간의 내면의 폭력성을 부추기며야수성을 한층더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3page에서 새끼돼지를 눈앞에 두고도 죽이지 못하던 Jack이 이제는 64page에서 보는것처럼 얼굴에 paint칠을 하고, 춤을 추고 이상한 웃음과 소리를 내며 사냥을 갈구하고 있는 것을 미루어 보아 문명사회인이라기 보다는 거의 야만인에 가까워 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한번의 살생을 시작으로 더 많은 meat, hunting, blood를 탐하게 됨으로써 그들의 본성을 좀더 폭력적으로 변모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게 된다.또한 무질서한 상태와 야생의 생활이 지속되면서 점차 아이들에게는 정체를 알수 없는 beast에 대한 공포심이 피어나게 되는데, Golding은 이 beast의 정체를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야수성과 그로 인한 폭력성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 되어 진다.이렇게 볼 수 있는 근거를 몇 개 들자면 첫째로 83page에서 beast가 무엇을 먹느냐는 질문에 돼지라고 대답함으로써, 돼지를 잡아먹고있는 아이들 역시 beast가 될 수 있다는 전제를 제시해 놓고 있으며, 84page에서는 Piggy가 공포에 대해 "Unless we get frightened of people" 라고 언급하면서 사람이 사람을 두렵다고 생각하는 것이 fear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는 자신들이 두려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인간내면에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어떤 면을 간접적으로 표현한것임을 알 수 있다. 결정적으로 144page에서 beast가 Simon에게 "you'll only meet me down there-"라고 한 말에서 보여 지듯이 아래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beast의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결국에는 이러한 인간의 beast가 마침내 어린 아이들로 하여금 인간을 죽이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데, 152pag의 첫 살인 장면은 아이들이 storm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써 원시적인 춤을추고 무언가를 제물로 바치고 싶어하는 등 영국아이들이 그들의 조국이 경멸하고 무시했던 식민지 원시인들처럼 행동하며, 그 제물로써 Simon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그들의 teeth와 claws만으로 소리없는 살인행위를 저지르며 이자체가 마치 사냥감을 사냥하고 있는 beast로 보여 진다. 두 번째 희생역시 Roger의 내면에 잠재하고 있던 학대하고 싶은 폭력성이 문명의 힘으로는 더 이상 control되지 못하고 발현되어, Piggy를 살해하고 마는 것이다. Roger는 더 이상 Piggy와 Ralph를 자기네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즉 Otherness를 느끼는 것이다. 이는 현실 세계의 전쟁에서 어떻게 인간이 같은 인간을 죽이는 것을 서슴없이 행할 수 있는 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이다.이미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아이들은 이제 Jack을 선두로 세우고 적극적인‘인간사냥’을 나선다. 여기서 잠시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Jack패거리와 Ralph무리와의 대립구도인데, Ralph는 무엇보다도 Resque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으며, 내면의 본성과 맞서서 자신들이 문명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반면 Jack은 23page와 55page에서 보여지듯이 처음 섬에 도착했을때부터 Resque보다는 돼지를 잡는 사냥을 일순위로 생각하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야수성을 겉으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다. Golding은 바로 이들의 대립을 통해 어리석은 군중과 독재자의 속성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이곳의 아이들은 현실세계의 군중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Piggy와 Simon을 제외한 아이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며 눈 앞에 닥친 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작 필요한 Resque를 주장하는 Ralph보다도 자신들의 야성의 본능을 만족 시켜줄 수 있는‘Hunting’에 충실한 Jack에게 끌리는 것이다.마침내 아이들의 지지를 얻은 Jack은 194page에서 Ralph를 가리켜 아이들에게“I told you - he's dangerous.” 라며 사실무근의 공포를 심어주어 세뇌시키는 수준에 까지 이른다. 아이들은 Jack의 tribe에만 속해 있으면 공포로부터 안전하다고 믿고 있으며,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Ralph가 자기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Jack이 폭력으로 자신들을 지배하더라도 그것에 따르고, 인간사냥을 하는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는 것이다. 즉, Jack은 현실세계에서의 어리석은 군중을 이끄는 일종의 독재자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양상의 하나를 보여준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극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베니스의 무어인인 오셀로장군은 흑인으로, 당시 무어인을 비하하는 경향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출중하여 귀족의 딸인 아름답고 순수한 데스데모나와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이를 시기하던 이아고는 오셀로를 파멸로 몰아갈 계획과 음모를 세우고, 그때문에 오셀로는 자신의 충신이라고 믿었던 이아고의 계략에 빠져 아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했던 손수건이 결국 그녀를 의심함에 확신을 가져다 주는 결정적 오해의 소지가 된다. 이아고가 오셀로의 귀에 질투라는 독을 흘려넣음으로써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는 내용이다.현재 연극의 경향이 고전극을 현대식에 맞게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각색되어진 내용안에는 원작의 본질적인 내용은 거의없고 결론적으로 원작의 제목만을 빌려오는 작품들이 많다. 이 극의 기획의도는 그런 작품들과 차별하여, 세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최대한 정확하게 해석하고 연출해서 현대인에게 세익스피어의 풍미와 깊은 감동을 주자는 것이다. 이러한 기획의도 때문인지는 몰라도, 실제로 극에서의 무대연출 방법이나 극의 캐릭터들은 상당히 고전적이고 전형적이다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세익스피어의 진정한 풍미와 감동을 주기에는 조금 부족한 면이 보인다.가장 아쉬웠던 점은, 인물들의 고통과 서로간의 갈등이 뚜렷하게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순전히 작품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을 탓할수만도 없다. 그러나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그작품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전달 되느냐의 차이는 매우 크다. 우선 오셀로를 연기한 김명민씨는 수년동안 세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을 맡아온 만큼 오셀로의 감정변화가 깊이있게 와닿는다. 반면 김효서씨가 맡은 데스데모나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순수함만이 너무 강조되어 현실감이 없고 그야말로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인물로만 느껴진다. 또한 극의 비중있는 이아고역시 한없이 교활하기만한 평면적인 인물로 다가오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극중 에밀리역을 맡은 장설하씨의 연기는 그야말로 훌륭했다. 극 초반에는 세 중심인물에 비해 뚜렷한 특징이 없는 인물처럼 보였지만 극 중반부터 드러나기 시작해서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에밀리의 격정과 슬픔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표현해주었다.다음으로 극의 무대장치를 보자면, 이 극에서 조명의 역할이 매우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아고가 독백하는 장면에서는 조명이 항상 그를 집중적으로 비추고, 데스데모나의 죽는 장면은 무대벽에 순간의 번쩍이는 조명을 쏨으로써, 그 클라이막스를 표현했다. 대부분의 극의 긴박함이나 절망스러운 분위기를 무대벽면에 조명을 비춤으로서 나타냈는데, 어떤 분위기냐에 따라서 조명의 색이 다르기는 했지만,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의심하며 그녀가 다른 남자와 있는 것을 상상하는 장면이나, 인물들의 죽음에는 전체적으로 붉은톤의 조명이 쓰였다. 조명을 쓰는 무대기법은 상당히 전통적인 방법이지만 이 극에서는 조명, 즉 시각적인 일부분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다른 감각의 표현이 거의 강조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단조롭게까지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