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 E P O R T근대와 주체, 정체성은 왜 논의의 대상인가?근대와 주체, 정체성은 왜 논의의 대상인가?“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했다.” 고 한다. 현대 사회의 변화를 역사,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살펴보려면 근대의 상황을 알아야한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와 더불어 기존 지식의 패러다임이 붕괴되고 탈냉전 이후 국가 관계들의 변화가 각 국의 국가 정체성을 재정립하게 만드는 상황, 탈산업사회, 정보화 사회에 들어서는 상황 등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에서 정체성과 주체에 대한 이야기는 빠질 수 없으면 그러한 것에 대한 고찰은 현재에 대해, 더 나아가서 미래의 변화에 대해서도 분명 선구적인 안목을 제공할 계기를 줄 것이다. 본 고에서는 교재와 자료에 있는 내용을 통해 근대와 주체, 정체성은 왜 논의의 대상인지 생각해보도록 하겠다.1. 에서소쉬르는 현대 언어학의 창시자이며 구조주의적 인식방법을 최초로 확립한 구조언어학자이다. 전통과 중세, 현대의 이론과는 다르게 소쉬르는 언어연구에 있어서 모든 유형의 언어외적 지시대상에 대한 고려를 중지한다는 입장이었다. 언어학적 기호의 의미는 능기와 소기간의 자의적 결합을 통해서 언어체계 그 자체 안에서 결정되고 개별적 기호의 의미도 언어체계 내의 다른 기호들과의 차이에서 온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의미자체를 고정시킨 소쉬르의 입장은 비록 그것이 언어체계에 내재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의미의 재현가능성을 은연중 전제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후기구조주의 사상가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부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언어체계 밖의 모든 실재로부터 언어의 자율성을 개념화 한 것은 획기적 진일보였다. 소쉬르의 랑그와 빠롤, 그리고 능기와 소기의 관계와 그 본질에 대한 내용은 정체성과 그 주체의 실재가 언어학에서도 논의되는 만큼 근원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모든 관계는 문화적 자의성의 산물이며 사회적 관행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개개인은 그런 구조 안에서 주체적으로 정체성을 지니고 있기에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소쉬르의 주장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현존하는 어휘를 연쇄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뿐만 아니라, 같은 계열의 어휘들 중에서 적절한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 한다는 것이다. 이는 언어를 이루는 구성요소 그 자체의 본질적 가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러 관계적 구조에 의하여 언어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데리다는 언어의 의미는 객관적 실재나 주체와는 별개로 언어체계내의 기호들 간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는 소쉬르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능기와 소기간의 서열적인 고정관계, 언어체계의 구조에 고정된 의미의 중심이 있다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 모두 주체의 각각의 정체성을 관계로 의미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관계 안의 개개의 주체와 정체성은 관계를 이루는 요소로 중히 다뤄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2. 에서포스트모더니즘의 직접적인 선구형태는 구조주의라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의 영향으로 언어에 기초한 모든 사회, 문화 체계에 대한 신학적이거나 형이상학적 이해가 배격되었고, 본래 모든 언어의 공통적 구조를 찾겠다는 취지를 넘어서 언어, 문화적 상대주의가 열려졌다. 미셀 푸코는 근대에서 억압의 주체는 바로 인간 자신이라고 보고 이를 살해하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근대인은 이성에 따라 알고 행동하는 이성적 자아요, 모든 사물을 객체로 만드는 주체이다. 근대인은 해방의 주체인 동시에 억압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료타르에 의하면 세상이 본래 하나로 이루어진 전체가 아니라 파편이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는 분산된 세계를 총괄하고 하나로 묶고자 하는 거대 담론 대신 다양한 언어의 유희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존재의 본질은 분쟁이며 전체성의 파괴는 본연으로 돌아가는 바른 방향이다. 자크 데리다의 경우 의미의 다양성의 보증으로 의미를 모으는 것이 아니라 흩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리차드 로티는 누구도 객관적으로 진리를 검토할 입장에 설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두가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참여하는 열린 대화의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 모두 근대 주체의 중요성, 정체성의 실재를 파악하려고 노력한 연구들이다.또한 포스트모던적 대화로 비판과 대안에 대해 살펴보면 가다머는 진리추구는 관찰의 대상인 객체나 관찰자인 주체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전통복원에 전념하며 실천의 회복만이 그 해결책이라고 보는 것이다. 폴 리쾨르는 신뢰가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고 하면서 프로이트의 심리분석의 방법을 중시하며 단순한 의미론적 분석을 넘어 이중적 의미의 해석학에 착안한다. 하버마스는 비판이론의 대표적 계승자로 모든 구성원이 완전히 열린 분위기 속에서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고 거기에 기초해서 유토피아를 건설하려고 한다. 서구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 이래로 근대 세계는 나름대로 진리탐구를 위한 철학적 토대를 단단히 구축해왔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다시 해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을 받아 보편적 진리의 발견이란 가능성이 부정되고 있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자명한 진리의 발견과 그에 입각한 현실 설명 자체만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근대적 주체(인간)의 정체성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우리는 ‘나는 내가 생각한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는 명제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렇기에 오늘날 정체성의 혼란에 직면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혼란은 과거 근대의 논의들을 참조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안적 미래를 구상함이 옳다. 인간의 정체성을 비형이상학적 존재로서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에 있는 것으로 상정하거나 인간이 의사소통적 사회적 존재로서 타자와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조건을 수립해야 할 존재로 상정하거나 당분간 이 사이에서 탐구해야할 문제인 것이다.3. 에서정체성에 관한 문제는 최는 학술계에 주요한 화두 가운데 하나로 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면서 전 지구적 정체성의 위기를 거론하고 있다. 현대성의 문제와 더불어 자아,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 저술, 사회철학의 관점에서 근대성, 주체의 해체 문제와 더불어 정체성의 변화를 다룬 저술 등 끊임없는 정체성에 대한 고찰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저술이 입장이 다르듯 정체성의 개념 정의 또한 모호하다.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철학의 자아 이해와도 무관치 않기에 그 개념 정의는 매우 다의적일 수밖에 없는데 사회심리학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아와 정체성 개념에 대해 간단한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것에 따르면 자아와 정체성은 사적 정체성 대 사회적 정체성의 개념의 관계로 다루어지고 있다.4. 에서요즘의 해체주의적 경향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은 이야기로 근래의 해체주의가 시간을 다루는 역사적 사실들 간의 인과관계들을 해체시키듯이, 그리고 과거의 역사가 오류였다고 말하기라도 하듯 영화의 줄거리 구성은 사실의 단편조각들이 시간을 거꾸로 놓아졌으며, 기표가 기의를 미끄러지듯 영화의 주인공은 확정적으로 밝혀지지 않는 진실을 찾듯 존 G를 추적하고, 관객은 진실에 관한 퍼즐 맞추기를 해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디지털 사회가 쌍방향적 소통을 실현하듯이 영화감독의 의도와 관객의 이해가 소통 또는 교차되도록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푸코는 우리가 속해있는 시대의 에피스테메, 즉 근대, 근대성을 설명하면서 유한성의 문제를 제기하며 근대의 인간은 한편으로는 역사를 갖고 주권적 위치를 선언하다고 하지만 그 사실은 다른 한편에서 인간이 각각의 역사에 종속되어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게다가 그는 본질적으로 죽음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는 레니가 자기가 취급하는 정보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주체의 위치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가 취급하는 정보들에 종속되고 주기적으로 망각에 빠지는 상황과 같다. 또한 레니는 결정적인 고통의 순간에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불사하겠다고 하며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강한 의지를 비춘다. 이는 역설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완전한 자아의 정체성의 정의도, 인간의 완전한 사고의 안정성도 아직 찾을 수 없었다. 개인과 사회가 분리되기 어렵듯이 해체주의 시대의 우리도 시간적 지속성의 기억이 와해됨에 따라 합리성을 가장한 모습들을 여기저기서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그대에게오월입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는 또다시 그때처럼 햇살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푸르른 오월이 찾아왔습니다. 제가 언제나 좋아했던 오월의 햇살은 마음속에 다시 스며든 것입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건 간에 늘 그리는 마음은 항상 똑같았던 것 같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당신이건만 항상 곁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당신도 제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너무 서두르는 것일까요?하지만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면 꼭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오월은 설레는 달이고, 늘 그래왔듯이 기다리겠습니다. 조급함은 금물이니까요. 천천히 밤새 사랑의 불을 밝히고 자기를 사랑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면 서서히 빛을 잃은 나의 마음은 죽어가겠지요. 그래도 내 사랑 당신이 찾아오기만을 언제나 기다릴 겁니다. 언제나 목숨도 걸 수 있는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바보로 남아있겠습니다. 운명을 믿는 당신이라면 꼭 한번쯤이라도 저를 찾아주겠지요.만약 오지 못하는 상황일지라도 제 마음속의 운명 같은 당신과의 사랑에 대한 감정은 비록 환상일지라도 남아있을 겁니다. 늘 꿈꿔왔던 오월처럼 푸르른 사랑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곁에서 함께 할 수 없는 것이라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운명적인 사랑을 말입니다. 이러한 기다림이 바보 같을지라도 나만큼 당신이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지요. 따스한 오월의 햇살이 세상을 감싸듯이 저의 마음도 감싸줄 수 있죠? 부족한 저에게도 당신에게 이러한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른이 되었다고 알려주는 듯합니다.이러한 편지글로 제 마음속의 모든 것을 표현하지는 못하겠지만 당신은 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믿겠습니다. 사람의 감정이란 제 자신조차도 모르는 것이라지요. 인간으로써 이러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 참으로 자랑스럽고 행복한 일입니다. 당신이 오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김기중 시집 감상문현재 가르침을 받고 있는 교수님의 시집을 읽고 감상하기란 여간 부담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시작하기가 이렇게 뜸이 들여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기회로 인해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이 더 생기고 시를 통해 교수님의 지난 세월과 사상을 알아볼 수 있어 좀더 가까워진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감상문을 적어가면서 나의 교수님이지만 여기서는 한 시인의 시집을 감상하는 것이므로 시인으로 칭하겠다.특정 시만을 꼽아 보던 버릇으로 감상하던 것을 벗어나서 이번에는 시집 한 권을 모두 감상해보았다. 시인 또한 나의 꿈이지만 그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기에 이번 과제가 매우 신중하고 뜻 깊은 것이었다. 비록 그래서 좀 늦어졌지만 말이다.중학교 때부터 문예동아리에서 끄적거려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자기 자신의 작품만큼은 어느 누구보다 애착을 가지고 문집을 만들 때보면 작품의 순서 또한 고민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시인의 말부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머리말에는 대부분 이야기하듯 써 내려가기 마련인데 시인은 시 한편을 적어놓았다. 이 시야 말로 시인의 시집을 내는 당시 상황의 모습과 그의 생각을 집약해놓은 것이 아닐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시가 참 마음에 들었다. 귓속으로 길 하나가 가만히 열리지만 조용하다는 그 길이 왠지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정말 제대로 된 표현인 것 같다. 그리고 혼자 남은 귓속 풍경이 금붕어가 오래 헤엄치는 어항 속 같다는 표현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현대의 복잡하지만 혼자만의 길을 가는 외로운 세상을 나타낸다고 생각해보았다.이 시집은 1부에서 4부까지로 나뉘어있다. 모두 좋은 시들이었지만 각각의 주제가 있는 만큼 그 주제의 시와 시집명인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을 중히 생각하고 읽게 되었다. 그리고 각 주제별로 처음 위치한 시들 또한 중히 생각했다. 처음은 누구든지 신중하고 중요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주제로 넣었다는 것과 그 주제의 처음으로 위치하는 시들은 시인 자신이 참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란 뜻이 아닌가. 그래서 그 시들을 중심적으로 보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우선 ‘1부 면벽의 날들’에서는 처음으로 ‘동생의 바다’라는 시가 실려 있다. 듣기로는 시인에게는 아픈 동생이 있었는데 이 동생으로 인해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이 시에서는 지은이의 고향 부산의 모습과 동생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리고 ‘면벽의 날들’은 현대 세상을 약간은 비판적인 모습으로 보고 있는 듯 하다.묵묵히 은박기둥에 서있는 당신, 생이 함정처럼 마련한 삼매엔 아랑곳없이 떠밀리며 가는 사람들 뒤로 텔레비전에서나 여전히 행복한 모습인 현대를 느끼고 있다. 현대사회를 참 잘 그린 것 같다. 그리고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에서는 시집 제목을 썼을 만큼 참으로 좋은 작품인 것 같다. 제목도 특이하다. 푸른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 이 얼마나 짧다면 짧은 시간 아닌가. 그 사이의 거리풍경을 2,3연에서 너무나도 잘 나타냈고 이런 일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며 푸른 신호를 희망으로 여기는 의미 있는 시였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숨은 뜻이 있는 듯하다.그리고 ‘2부 감나무가 있는 풍경’에서는 처음으로 ‘목련’이란 시가 있다. 목련은 하얀 꽃이건만 여기는 고통 끝에 가슴에 총 맞은 듯 붉게 피었다고 한다. 뭔가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듯한 시였다. ‘감나무가 있는 풍경’에서는 감나무 아래 두 남자에게 끄나풀에 목 매인 큰 개들이 있는 것을 보고 그 끄나풀이 자신에게도 묶여있고 그걸 쥔 이의 속뜻이 먼산바라기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감나무 아래서 세상의 한쪽 끝과 다른 한 끝이 만나는 걸 보았다고 했다. 그 감 속에는 씨앗들이 가만히 감추고 있는 걸 보았다고도 했다. 이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세상의 압박 속에 살아가면서 세상이, 아니면 자신이 모르게 단단히 감추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세상의 모든 인간들에게는 이런 감나무가 있는 풍경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3부 길 위의 날들’의 첫 번째 시는 ‘한길 쪽으로’이다. 한길 쪽으로의 계속되는 반복에서 장마 그친 뒤 쨍쨍한 길 위를 눈도 귀도 없이 꿈틀거리며 젖은 땅을 찾아가는 지렁이 한 마리를 그리며 한사코 한길 쪽으로를 외친다. 우리도 아마 이렇게 어두운 세상을 한길 쪽으로 유유히 살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른 길인지도 모른 체. 또 한길 쪽으로는 무섭게 질주하는 세상을 말이다.‘길 위의 날들’이란 시는 세 페이지나 차지하는 무척 긴 산문시였다. 이 시집에서는 길 위에서의 일상적인 일들이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가 가장 그런 경향이 뚜렷하다. 우리가 흔히 길 위에서 보는 짧은 치마를 입고 춤을 추며 휴대폰을 판매하는 여자들. 자신은 돌아갈 집이 있는 건 다행이라 생각하며 걸어가며 추운 길거리에서 속으로 때려치우고 싶지만 무언가 계속 소리치고 있을 그 여자들을 생각하며 답답하고 막막한 세상을 금방 벗어나게 해 줄 것처럼 떠도는 말들이지만 아무 데도 데려다 주지 않는다는 길 위의 날들이라 하고 있다. 이 얼마나 현실적이면서 삭막한 현대를 표현하고 있는가. 나는 추상적인 생각의 표현만을 주로 써봤던지라 이런 현실의 모습을 담아낸 시를 쓰는 것은 참으로 어렵게 생각한다. 그래서 시인의 이
주제 : 우리가 영화를 보고 감동하게 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 심리학적 이론과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시오.#서론#우리는 문명의 발달로 현대 사회 언제 어디에서 누구나 영화란 매체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 영화로 인해 우리의 삶을 보고 느끼며 간접체험을 하기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한다. 영화는 삶의 반영이며 우리의 이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영화란 매체를 보면서 인간으로서 인체반응을 보이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감정이 있는 동물인 인간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런 변화를 느끼며 감동하는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마 있다 하더라도 깊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을 것이다.우리는 현재 심리학을 배우고 있기에 이번 기회로 인해 그 이유를 깊게 생각해 보기로 한다.#본론#1. 영화와 감동1) 영화의 정의영화의 사전적 의미는 연속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을 스크린에 투영, 움직임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장치 및 그렇게 만든 작품이다.영화의 발명물체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재현코자 하는 인간의 꿈은 태곳적부터 있어 왔다. 지금부터 2∼3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에스파냐 알타미라의 라스코 동굴에는 다리가 8개인 황소의 벽화가 있는데, 이는 바로 인류의 그와 같은 꿈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1초에 24개의 정지된 화상을 연속적으로 돌려 인간의 잔상 현상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가 발명되기까지는 기원 2세기부터 시작하여 무척 오랜 시간이 흘러야만 되었다.구체적으로는 완구식 움직임을 보여주는 장치인 타우마트로프나 페나키스트로스코프, 그리고 주트로프 등 19세기에 들어와 움직이는 그림을 보여주는 기계가 나타났지만 영화의 발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사진술의 발명이었다.1823년 프랑스의 N.니에프스와 다게르 등에 의해 사진술이 발명되었고, 1878년 미국인 E.마이브리지가 24장의 달리는 말의 모습을 촬영한 데 이어, 프랑스인 J.E.마레이가 사진총을 고안해냈으며, G.이스트먼이 셀룰로이드에 의한 ‘롤 필름’을 제조한 데 힘입어 에디슨이 혼자서 움직임을 볼 수 있는 키네토스코프를 1889년에 발명하였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완구식 원리와 사진술과 필름 및 위에 든 그 동안의 몇 가지 실험 등을 이용하여 프랑스의 L.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라프라는 촬영기와 영사기를 발명하여, 95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는 영화를 공개하기에 이르렀다.에디슨은 이보다 1년 늦게 여럿이 볼 수 있는 비타스코프를 발명했고, 이어 독일의 E.스클라다노브스키와 영국의 R.W.폴은 각각 독자적으로 비오스코프를 발명하였다. 이렇듯 영화는 19세기가 거의 끝날 무렵 비슷한 시기에 여러 나라에서 과학문명의 발달이 가져다준 필연적인 산물이었다.2) 감동의 정의감동의 사전적 의미는 깊이 느끼어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우리는 영화 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사람으로서 감정의 변화로 감동을 받곤 하는데 감동이 되거나 너무 기쁘거나 슬프거나 그런 기분의 변화가 생기면 눈물샘에 연결된 자율신경계(교감신경, 부교감신경)의 작용으로 눈물의 분비가 많아지게 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로 인체 내에서는 감정적으로 수많은 작용을 하며 반응한다. 그로인해 우리는 감동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2. (심리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우리가 영화를 보고 감동하게 되는 이유(우선 심리학이란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구조와 정신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이다.)1) 인간의 지각과 감각을 통해영화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접하게 되는 것인데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신체 사용으로 인해 지각과 감각을 통해서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감각'은 감각기관에서 비롯되는 원초적인 감각자료에 대응하는 주관적 느낌이라 할 수 있으며, '지각'은 이러한 자료들을 조직하고 해석하여 외부 대상을 인식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감각수용기에 들어온 자극을 이해하는 과정을 지각이라 할 수 있고 감각은 주로 감각기관이나 수용기에서의 물리적인 활동인 반면 지각은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하며 동일한 감각이라도 다른 지각을 줄 수 있는 것이다.각자의 지식과 경험 등 많은 것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지각자의 심리적인 요인들도 많은 관여를 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지각자의 동기, 기대, 성격, 그리고 어떤 문화적 환경에서 살고 있는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즉, 사람이 지각한다는 것은 감각기에서 외부의 물리적 정보를 수용하는 것 이상의 감각자료에 대한 해석과정이 포함되고, 그러한 처리 과정 중에 지각자의 여러 심리적 요인 및 과거의 경험, 지식 등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 하게 된다.이러한 인체적으로의 감동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2) 경험에 대한 기억의 과정을 통해사람들을 인생을 살아가면서 저마다의 추억을 만들어가며 기억하게 된다. 인간의 뇌의 기능은 기억을 담당하는 것도 있기에 영화를 보며 자신의 기억 일부분이 떠올라 감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았을 때 비슷한 경험을 보거나 비슷한 상황일 경우 대뇌가 작용하여 그런 자신의 일을 건드리고 감정의 변화를 일으킨다.3) 공감대 형성과 감정이입을 통해공감이란 타인의 사고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이며, 감정이입이란 타인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 작품 등에 자신의 감정이나 정신을 이입시켜 자신과 그 대상물과의 융화를 꾀하는 정신작용이다.독일의 심리학자 T.립스의 용어이다. 예를 들면 일몰을 장엄하다고 느끼는 것은 일몰을 바라보는 자신의 감정을 투입하는 것이거나 일몰의 장엄함이 자신 속에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립스는 이를 일종의 유추작용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M.셸러는 이를 유추와 같은 간접적인 것이 아니라 보다 직접적인 공감이라고 보고, 어떤 사람의 얼굴빛에서 그 사람의 따뜻함이나 심술궂음을 직접 느끼는 것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H.베르너는 그와 같은 직접적 지각을 상모적 지각이라고 하였다. 이는 감정과 지각이 분화되지 않은 현상이다.J.P.슈피겔과 P.마호토카는 학생에게 고갱의 그림 《시장》을 보여 주고, 그림 속에 있는 6명의 여인의 자태에서 무엇을 느끼는가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결국 동일한 자태를 보고도 여러 가지 다른 해석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즉, 보는 사람의 감정이 이입된 것이다.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주제통각검사’도 감정이입작용에 기초를 둔 것이다. 지금은 타아의 지각에서 감정이입설보다 공감설이 인정되고 있다.또한 퀼페는 감동을 ‘공감적 상태감정’이라고 했고, 심리학자인 알프렛 아들러는 “순수한 관심이 상대를 감동시킨다.”고 했다. 감동은 감정이입과 공감을 통해 타인의 것이 나의 것으로 되어 녹아들게 해 준다. 감동은 ‘움직임’이며 이 움직임 안에서 모든 삶의 흐름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수한 관심’은 상처 난 마음까지도 치유시켜 준다. 이는 ‘감동’이라는 열쇠만이 열 수 있는 문이기도 하다. 감동은 어떤 이성이나 논리에 부합되는 것이 아닌, 순수한 관심과 사랑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힘이다.그리고 동화성향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식이나 감정이 포함된 정세를 접하게 되면 자신도 그 의식이나 감정과 같은 상태로 유도되어 가는 경향이 있는데 남들이 웃으면 자기도 웃게 되고 남들이 울면 자기도 울음이 나오게 되는 것이 그것이다.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어떻게 분류되는 것은 아니지만 슬프다, 혹은 기쁘다라는 식의 언어적 약속에 따라 표현한다. 그러한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부득이한 이별, 죽음 같은 것에서는 다시 만나지 못함에 슬퍼하고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보았을 때 공감 하게 되는 것이다.
상 소 문- 윤춘년상소(尹春年上疏)를 중심으로 -1. 상소문의 특징국왕의 말이 곧 법인 근대 이전의 중앙집권 국가에서 신하들이 국왕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도(正道)의 정치를 이상으로 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려는 국왕이라면 자신에게 거슬리는 이야기도 들어주겠지만, 그렇지 못한 왕일 경우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간언(諫言)을 올려야 했을 것이다. 또한 성군(聖君)이라 할지라도 신하가 국왕을 앞에서 아뢰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국왕에게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인 방식으로 나타내기 위해 글로 쓰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바로 상소문이다.1) 상소문의 개념기본적으로 상소(上疏)나 상서(上書)는 같은 의미를 지녔다. 모두 신하 또는 백성이 군주(임금)에게 올리는 문서라는 뜻이다. 그러나 미묘하게 다른 차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구분은 다음과 같다.? 상서(上書) : 황제에게 올리는 글. 상주(上奏)와 같은 뜻.? 상소(上疏) : 왕(제후)에게 올리는 글.고려는 후반기에 원나라의 간섭을 받을 때를 제외하고는 황제국을 자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직 제도도 황제국에 준해 마련되었고, 기타 여러 용어들이 황제국의 위상에 걸맞게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최승로(崔承老:927-989)가 올렸던 글도 상서라고 지칭되었다. 이런 상서와 상소의 차이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의미 변화를 겪게 된다.? 상소(上疏) : 왕에게 올리는 글. 주로 관리 및 양반들이 공적인 일에 관해 올림? 상서(上書) : 국가의 잘못된 행정으로 백성들이 입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양반층이) 올림? 상언(上言) :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올림. 상서와 달리 피지배층(하층 백성)이 올림이렇게 상소가 제일 높은 글, 상서가 그 다음, 상언이 가장 낮은 단계로 변화한다. 또 임금에게 올리는 문서를 상소라고 하고, 대리청정중인 왕세자나 왕세손에게 올리는 문서를 상서라고 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사용되던 뜻과 조선시대에 사용되던 뜻이 많은 차이를 보이게 그래야만 뒤에 왕의 노여움을 사는 일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2) 표현양상ⅰ. 논지 전개방식 : 구체화전언을 드러내는 방식, 즉 전체적인 논지의 흐름이 서두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전언이 글이 후반부로 가면서 점차로 드러나는 형식이다. 이러한 논지 전개 방식을 구체화 내지 초점화의 방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선후 개념을 도입하면, 선논거 후결론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이러한 전개방식을 사용한 이유는 상소문은 수신자인 왕이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절대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결론을 미리 제시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구조화하는 방식보다는 선논거 후결론의 방식을 취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상소문의 내용이 지속적으로 왕의 관심을 끌어야 했을 것이고, 단도직입적으로 주장을 제시하는 방법보다는 우회적인 방법 내지 완곡한 내용 전개가 효과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ⅱ. 전제)의 활용의문문은 상대방의 의견을 묻는 형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형식에 비해 공손한 표현이다. 그러나 의문문의 형식 자체가 응답형식을 미리 규정하는 특성을 갖기 때문에 수신자의 자유로운 답변을 보장해주진 않는다. 이러한 특징은 예법상의 공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의도하는 내용을 받아들이게 하는 특징이 있다.그런가하면 이러한 의문문은 거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전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의도하는 내용을 무리 없이 전달할 수 있게 한다. ‘철수가 과자를 먹었니?’라는 의문문의 형식은 최소한 ‘누군가가 과자를 먹었다.’는 앎이 전제되기 마련이다.수신자인 왕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근본적인 것을 인정하도록 하기 위해, 즉 행동의 변화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의 인지적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기 위해, 전제화라는 전략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ⅲ. 권위적 논거의 활용신의 생각에는 요새 살육을 당하고 사로잡힘을 입은 자는 모두 선왕(先王), 선후(先后)의 적자(赤子)입니다. 적자가 그 무리와 함께 도적에게 죽고, 사로잡히고 양인?노비 등이 모두 왕에게 상소할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양반들의 의사소통 창구였다. 우리역사에서 상소문은 단순한 정치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식이 갖는 불의에 대한 항거이며, 자기표현의 장이며, 백성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출구였다.2. 윤춘년의 소개 및 상소의 역사적 배경윤춘년(1514-1567))은 조선 명종대의 학자요 정치가다. 그는 권신이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사림세력과 충돌하며 갈등하던 조선 중기에 권신의 편에 붙어서 권력을 행사하였다. 정치사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우리 비평사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출판문화사의 측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다.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그이지만 그에 관한 학계의 관심과 논의는 기대 이상으로 부족하다. 최근 그가 편집하여 간행한 김시습의 『금오신화』 판본이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쏠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미완의 문집『학음고』가 학계에 소개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이렇게 그의 존재가 몰각된 것은 정치적 실각이후 핍박하고 정권을 농단하는데 기여한 그의 행적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행적으로 인하여 그가 한편으로 성취해놓은 업적까지 덮어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윤춘년은 자가 언구(彦久), 호가 창주(滄洲), 또는 학음(學音)?무심도인(無心道人)이고 본관은 파평으로, 윤안인의 아들이다. 계묘년(1534) 식년시에 갑과로 문과에 급제하였고 옥당에 올라 사가독서에 선발되었다.(명종3년) 이러한 이력을 통하여 그가 역량이 있는 문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1545년에 윤춘년은 윤원로를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려) 대윤일파를 제거하는 일에 앞장섰다. 이 상소문을 시발점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을사사화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친족인 윤원형이 정권을 차지하였고 윤춘년은 그 수족이 되어 갑자기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그는 윤원형이 몰락하고 사림이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서기 전까지 대사간, 대사헌, 부제학, 이조판서 등이 현직을 두루 지냈다. 그는 외직을 거의 역임하지 않고 그리고 윤춘년은 사화를 도운 행위를 가리기 위한 교활한 간계가 있다고 비난받기도 하지만 학문이 깊었고 문장에 능하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명종대는 성리학이 큰 세력을 확장시키는 시기였는데 윤춘년은 이러한 때에 독특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시의 음악미를 주장하는 이론이 그가 주장한 대표적인 것이었는데, 시는 음악적 화성을 완벽하게 추구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문자의 소리는 시어의 고저, 장단 같은 개별글자에 외재화된 소리를 넘어서 일종의 내재적 율격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그는 성율학에 대하여 깊이 천착하였고, 스스로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다고 자부하였다. 이이나 노수신 등 일부는 그런 윤춘년을 건방떠는 자라고 백안시하였으나 당시의 많은 젊은 시인들은 그런 윤춘년에 경도하였던 것으로 파악한다. 그의 독특한 시론은 합리적인 측면을 갖고 있었다. 남들의 비난에도 그의 시를 보는 안목의 특출함은 자타가 인정하였고 특히 성율에 대해 정통하다는 기록이 많은 잡기에 실려 있다.이러한 성율학 천착과 연관되는 것이 문학이론서의 간행이었다. 그는 정치가였음에도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져 문학서의 간행에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였고 그가 간행한 책은 출판의 역사에서나 우리 문학사, 비평사의 전개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것이다. ) 특히, 그의 시화5종은 시화가 ‘견문을 넓히고 담론의 소재마련에 보탬을 주는’ 한계를 벗어나 창작의 비밀과 방법을 설명하고 문학이론을 설명하는 조직적, 체계적 이론의 세계를 마련하는 장이었다는 점에서 문학이론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 문학이론의 세계가 겉으로는 수필적이고 비평적인 면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같은 형식주의적 이론이 잠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윤춘년은 1565년 예조판서로 있을 때 윤원형이 제거되자 파직당하고 향리에 은거하였다. 성격이 경박하고 자부심이 강하여 일찍부터 대학자로 자처하는 등 공명심은 많았으나, 주색을 즐기지 않고 비교적 청렴·결백하였다고 하며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3. 윤춘년상소의 내용 및격적으로 소윤이 대윤을 제거하는 을사사화가 발생한 것이다.2) 글의 표현 구성(1) 예절과 최상의 존경의 표현전하께서는 중종대왕의 아드님이요, 인종대왕의 아우로서 대통을 이어 받았습니다.이는 명종의 권위적 위치를 밝히며 중종대왕의 적통이며 또한 대왕대비(문정왕후)와 인종에 대한 예를 지켜야 할 것을 전제하고 있다.① 엎드려 원하옵건대, …② … 신이 이 말을 들은 뒤로 음식이 목에 내려가지 아니하고, 마음의 아픔은 다할 수 없었으나 용서하고 참은 것도 오래였으니 신의 죄도 큽니다. …③ 신의 한 몸은 족이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④ 근래에 살육한 후에 선비의 사기가 꺾여서 바른 말을 구하기를 비록 간절히 하나, 한 사람도 항의하는 상소를 올리는 이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습니까, 선비의 기상을 배양하고 국맥을 유지하는 것이 당면한 급선무입니다.임금 앞에서 신하의 신분으로 자신을 낮추고(①), 임금에 대한 충심을 표현하며(②,③), 자신의 본분을 다하고 있음(④)을 알리고 있다.(2) 유교적 질서의식의 강조보통 사람의 마음으로도 부모를 능욕하는 사람을 보면 보복할 바를 생각하는데 하물며 대왕대비는 만세에 여희)(춘추 시대 진 헌공의 부인)의 이름을 입었사오니, …… 국사(國史)에서도 혹 갖추어 기록하지 못하여 중종대왕은 길이 진 헌공이 되고 대왕대비는 길이 여희가 될 것이며, …대왕대비(문정왕후)가 여희의 이름을 얻고, 중종대왕이 진 헌공이 됨은 명종에게는 유교적 질서에 어긋한 것이다. 유교적인 가족 관계의 기본 구조의 특징은 부모와 자녀의 수직적 질서를 강조하는 것이고, 그 도덕규범은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로 지적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교적 명분을 통해 윤원로의 죄를 상기시키고 있다.(3) 수사법의 사용여희와 신생의 일은 만고에 슬프고 처량하오니 사람이 떳떳한 천성을 지녔다면 누가 통분하지 않겠습니까.①대왕대비를 여희라고 지목한 것이 오직 윤임의 말이겠습니까. 실은 윤원로가 지목한 것입니다.설의법의 형식을 도입하여 그 내용이 명시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