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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Kohlberg의 도덕성 이론
    과목명교 육 심 리 학담당교수정 정 애Kohlberg의도덕성 이론과나의 도덕성학 과국어교육과학 번20051641이 름류 총 아제 출 일10월 12일Ⅰ. Kohlberg의 생애Jean Piajet은 도덕발달 심리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연구를 확대했을 뿐만 아니라 보완함으로서, Piajet만큼이나 도덕발달이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Kohlberg이다. Lawrence Kohlberg (1927-1987)는 미국 뉴욕 주 브론실에서 출생하였다. 1945년, 똑똑하고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인 메사추세츠의 엔드버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그 후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이스라엘 난민을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나르는 운항기의 부조종사가 되었다.상선에서 근무를 한 후, 1948년 아주 좋은 성적으로 시카고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심리학과에 진학하였다. 처음 임상심리학에서 관심이 있었지만, 곧 Piajet에 흥미를 느끼고 도덕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 결과를 박사논문으로 씀으로써 새로운 도덕성 발달단계이론의 성립을 보았다. 1958년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논문이 나온 이래 20 여 년 동안 피험자들을 대상으로 종단연구를 했고, 예일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여 하버드대학에서 교육학과 사회심리학을 가르쳤다. 유년기에서 성년기에 이르기까지 도덕발달의 단계들을 확립하는 이른바 도덕성 발달이론을 일관되게 탐구했던 그는 30여 년간 화려한 학문적 공헌을 하였으며, 1987년 5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저서로 「도덕발달의 철학」, 「도덕발달의 심리학」, 「교육과 도덕발달」 등이 있으며 Kohlberg는 Piajet의 전통을 이은 학자로서 도덕성 발달단계이론을 수립하였다. 인지 심리학의 기수인 Kohlberg의 도덕교육이론은 인지심리학의 기본명제들에 기초하였다. 그는 교육의 과업을 개인의 심리적?인지적 구조와 사회적 환경의 상호작용에 의해 촉진되는 도덕발달의 자연적 과정을 자극하는데 있다고 보았다.Ⅱ. Kohlberg의 도덕성 이론1. Kohlberg: 인지적 도덕 발달 이론Kohlberg와 그의 동료들은 수십 년 동안 인지적 도덕 발달 이론에 대해 연구해 왔는데, 그 이론은 국제 학계에서 상당한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이론은 Dewey의 심리학적 저술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Piajet의 선구적인 연구에도 힘입은 바가 크다.Kohlberg는 보통의 아이들과 사회적으로 고립된 아이들을 동등한 비율로 표집하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피아제 연구의 결점들을 극복하고자 시도하였다. 또한, Kohlberg는 피아제의 경우처럼 단순히 덕과 악덕, 그리고 협동과 공평과 같은 개념들보다는 정의의 원리에 보다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Kohlberg의 연구 결과들은 상대적인 가치들보다는 오히려 문화적으로 보편적인 도덕발달의 단계들을 보여 주고 있다. Kohlberg에 의하면, 그의 이론은 심리학적인 동시에 철학자이며, 그의 연구 결과들은 고정된 도덕적 규칙들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도덕 발달을 조장하기 위하여 계획된 도덕 교육의 철학을 생성하고 있다고 한다. Kohlberg는 도덕성 및 도덕 발달에 대한 철학적 개념이 요구된다는 점, 도덕 발달은 불변의 질적인 단계들을 거친다는 점, 도덕 발달은 사고와 문제 해결을 촉진시킴으로써 조장된다고 믿고 있다.2. Kohlberg의 3수준 6단계의 도덕성 발달 이론Kohlberg의 연구는 세 개의 도덕적 수준에 할당된 여섯 가지 발달 단계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후에 3년 간격을 두고 실시된 재검사 결과들은 도덕 발달이 3수준 6단계를 거치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다.1) 제1수준, 전인습적 : 전도덕성이 수준에서 어린이는 선과 악, 또는 옳고 그름에 대한 문화적 규범과 표지에 반응을 나타내지만 어린이는 이러한 규범에 대하여 신체적이거나 쾌락적인 행동의 결과(처벌, 보상, 호의의 교환 등)로써 또는 규범과 표지를 선언하는 신체적 세력자의 힘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도덕적 선악의 개념은 있으나, 준거는 권위자의 힘이나 개인적 욕구에 관련시켜 해석한다. 이 수준은 둘로 나뉜다.(1) 1단계( 주관화 - 복종과 처벌지향 )3세-7세에서 나타나는 이 단계는 행동의 방향이 벌과 순종을 향하여 있다. 행동에 대한 물리적 결과가 그 행동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나 가치와는 상관없이 그 행동의 선악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처벌을 회피하기 위함과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은 처벌과 권위에 의한 기본적 도덕 질서를 존경한다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다.(2) 2단계( 상대화 - 상대적 쾌락주의 )자신의 욕구충족이 도덕 판단의 기준이며, 욕구 배분의 동기는 있으나 자신의 욕구충족을 우선 생각한다. 8세-11세의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이 단계는 순진한 도덕적 상대주의(naive instrumental relativism)에 있게 된다. 올바른 행동은 개인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며 때로는 타인의 필요도 채원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관계는 시장에서의 관계와 같다. 공평, 상호성, 평등한 분배 등의 요소가 있지만 이것들은 항상 신체적이며 실용적인 치원에서 해석된다. 상회성도 “네가 내 등을 긁어 주었으니까 나도 너의 등을 긁어 줄게.”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충성이라든가 감사, 정의의 문제로 해석되지 않는다.2) 제2수준, 인습 수준 : 타율 도덕성이 수준에서는 개인의 가족과 집단과 국가의 기대를 유지하는 것이 즉각적이며 명백한 결과와 상관없이 가치 있게 지각되는 단계이다. 이러한 태도는 개개인의 기대와 사회질서에 순응하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사회 질서를 충실히 지키는 태도 즉, 질서를 잘 지키고 지지하며 옳다고 인정하는 태도이며 그 사회에 속한 사항이나 집단과 동일시하는 태도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대나 기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며 사회질서에 동조하고자 하고 힘 있는 사람과의 동일시를 하려한다. 다른 사람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사회 지향적 가치기준을 갖는다. 이 단계 역시 둘로 나뉜다.(3) 3단계 ( 객체화 - 착한 소년, 훌륭한 소녀 지향 )12세-17세의 청소년에게 나타나는 이 시기는 상호 인격적 일치가 나타난다. 청소년은 다른 사람의 관점과 의도를 이해할 수 있고, 고려할 수 있다. 정의는 항상 다른 사람을 부정하고 해치지 않는 옳은 것에 대한 인습적 형상(image)을 포함한다. 아무리 반항적인 청소년일지라도 항상 그들의 도덕적 개념을 유지해 주는 동년배 집단이 있게 마련이다. 이들의 도덕적 판단의 특징적인 결과는 보다 덜 반 항적인 청소년들과도 마찬가지이다. 선한 행동은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거나 도움을 주며 또 그들에게 시인 받는 행동이다. 많은 사람이 따르며 “당연하게” 여기고 취하는 행동이다. 행동은 동기에 의해 판단될 때가 많다. “선의로 했다”는 말이 처음으로 중요한 의미를 띄게 되는 시기이다. 시인을 받는 길은 “훌륭하게”되는 데에 있다.(4) 4단계 ( 사회화 - 사회질서와 권위 지향 )이 단계는 18세-25세의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이 단계에서는 권위, 고정된 규칙, 사회질서 유지에 적응하려는 경향이 있다. 옳은 행동이란 사진의 의무를 다하며 권위를 존경하고 주어진 사회 질서를 그 질서 자체를 위해 유지하는 일이다. 정의는 자신의 의무를 행함으로, 자기 자신의 사회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소수의 권리에 대한 예리한 감각은 없다. 가장 성숙한 측면이 탈인습적 측면이다. 여기에서 도덕적 관습이 이해된다. 그러나 다른 것을 고려하는 것도 역시 중요하다.3) 제3수준, 후인습수준 : 자율도덕성이 수준에서는 일정한 타당성을 갖고 적응시킬 수 있는 도덕적 가치와 원칙에 대해 그 원칙을 따르는 집단이나 개인의 권위, 개개인이 집단에 대해 나름대로 갖고 있는 일체감 등과 관계없이 그 정의를 내리려는 노력이 명백하게 엿보인다. 자신의 가치관과 도덕적 원리원칙이 자신이 속한 집단과 별개임을 깨닫게 되면서 개인의 양심에 근거하여 행위를 하게 된다.(5) 5단계 ( 일반화 - 민주적 법률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공리주의, 가치기준의 일반화를 추구한다. 25세 이상의 시기에 나타난다. 이 단계의 사람들은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상호 유익을 위하여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므로 소수까지 포함된 모든 개인의 권리가 인정되는 것이 모두의 관심거리가 된다. 올바른 행동은 사회전체가 면밀히 조사하여 의견의 일치를 본 수준에서 정의 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가치와 의견의 상대성과 이에 따라서, 합의 과정의 규칙에 대한 강조 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헌법에 다라 민주적으로 합의된 것과 관계없이, 권리는 개인의 가치와 의견과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법적인 관점을 강조는 하지만(4단계인 법과 질서의 단계에서와 같이 법과 질서를 엄격하게 유지하고자 했던 것보다는) 사회전체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으로 생각해낸 결과에 따라 법률을 바꿀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법적인 영역을 벗어나 자유로운 합의와 계약이 의무라는 구속요인이 된다.(6) 6단계 ( 궁극화 - 보편적 원리 )옳은 것에 대한 정의는 논리적인 이해와 보편성과 일관성에 호소하는 본인 스스로 택한 원리에 일치해서 양심이 내린 결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원리들은 정의와 인권의 상호성과 평등성과 개개인들로서의 인류의 존엄을 존경하는 보편적 원리들이다. 법이나 관습 이전에 인간 생명이 관여된 문제로서 생명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보편적 도덕원리를 지향한다. 스스로 선택한 도덕 원리, 양심의 결단에 따른다. 제 6단계에 있어서 보편적 도덕의 원칙을 인식하게 된다. 사회적 질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회와 모든 사람을 결속시키는 도덕적 원칙에 대한 존중이 극에 달하게 된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지고의 측면에 인도하기 때문에 의무적이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의 정의는 모든 주장에 대하여 동등하게 생각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이 결코 수단으로만 여겨지지 않고 목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교육학| 2007.05.09| 6페이지| 1,000원| 조회(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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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답사보고서 - 강릉 선교장
    과 목 명교 수 명강릉 선교장을 다녀와서< 활래정 전경 >이 름학 과학 번제 출 일< 강릉 선교장을 다녀와서 >10월 28일, 점심을 먹고 역사의 길잡이 과제를 하기 위해서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선교장으로 향했다. 따뜻한 날씨를 기대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지만 그다지 좋은 날씨는 아니었고, 옷차림 때문인지 조금 추운 느낌까지 들었다.우리 넷은 답사지를 정하는데 조금 언쟁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볼 것이 많다는 이유에서 선교장으로 정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요즘 TV 인기드라마 ‘황진이’ 촬영을 이곳에서 한다는 점에 조금 더 선교장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다.택시를 타서 기사 아저씨께 선교장에 가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께서는 가는 도중에 선교장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듯이 이것저것 많은 설명을 해 주셨다. 선교장뿐만 아니라 오죽헌이나 경포대 등 강릉의 유적지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계신 것 같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의 문화 ? 유적에 대해서 많이 알고 계신 기사 아저씨를 보면서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던 내 자신에 대해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경상북도 문경이 고향인데, 그곳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문경에서 제일 유명한 문경새재에 대해서도 그다지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강릉 역시 일 년 반 가까운 시간 동안 살면서 뭔가를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 조금 후회스럽고, 그런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견학하고 이 기행문도 최선을 다해 작성할 것이라 마음으로 다짐을 했다.택시에서 내려 표를 사서 들어가 보니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선교장의 평면도였다. 어디로 먼저 들어가야 할까 하는 생각에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한 아주머니께서 다가오셨다. 무슨 이름표를 달고 계신 것이, 분명 이곳에 일하고 계신 분으로 보였다. 역시나 아주머니께서는 이곳 선교장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해 주시겠다며, 선교장의 유래, 역사, 우리의 견학 코스, 각 건물 등의 각각의 포인트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서 우리의 선교장 탐방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선교장(船橋莊)은 세종대왕의 형인 효령대군의 11대손에 의해 처음 지어져 무려 10대에 이르도록 발전되어 증축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 5호로 지정되어 개인 소유의 국가 문화재로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선교장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뽑히기도 하였다고 하셨는데, 안채, 마당, 활래정 호수, 뜰, 사당 등 하나하나 그 아름다움에 시선이 머물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택시 아저씨께서는 선교장을 설명해 주시면서 방이 아흔아홉 칸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선교장의 직원 아주머니께서는 방이 아흔아홉 칸이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를 한 칸으로 보는데 그 칸이 아흔아홉 개라고 설명해 주셨다. 또한 선교장이라는 이름은 경포 호수를 가로질러 배로 다리를 만들어 건너 다녔다 하여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 그 호수는 모두 논이 되었지만 여전히 선교장의 운치는 한국 제일이라고 할 만큼 아름다웠다.선교장은 안채주옥을 시작으로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랑채, 행랑채, 사당들이 지어졌고 큰 대문을 비롯한 12대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대장원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입구에는 인공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활래정이라 이름을 지었는데 활래정의 네 기둥이 연못에 담가져 있다. 활래정에서부터 시작해 민속놀이 하는 곳 까지 아주머니의 간단한 설명을 다 듣고 난 후 우리는 견학을 시작했다.먼저 우리가 둘러 본 곳은 입구의 바로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는 활래정(活來亭)이었다. 활래정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의 이름은 월하문(月下門)이었다. 누구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달 아래의 문이라 해석하며, 그 문 밑에서 사진을 찍었다. 월하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호수와 땅에 반 씩 걸쳐서 지어진 활래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못해 아쉽다아주머니께서 활래정에서 방문 밖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일품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러했다. 호수 중간쯤에 소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는데 활래정 방에서 문을 열고 보면 정말 근사한 한 폭의 소나무 그림처럼 보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활래정은 다른 정자들과 달리 정자 안의 방이 온돌방이었다. 보통의 정자라고 생각하면 경치를 감상하기 위한 작은 공간인데 이곳은 두 칸의 온돌방과 물 위에 떠 있는 넓은 마루가 있으며, 방 아래쪽에는 온돌을 위한 아궁이가 있어 조금 신기했으며, 조금 특이했다.이 곳 연못은 서쪽 태장봉이라는 곳에서 끊임없이 내려오는 맑은 물이 연못을 거쳐 경포호수로 빠져나간다고 되어있다. 또한 이 연못에는 연꽃잎들이 많았는데, 꽃피는 시기가 아니라 그런지 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연꽃잎으로 메워진 호수를 활래정에 앉아 본다면...’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광경이었다. 다음에 오면 꼭 그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활래정을 빠져 나오면 넓은 잔디밭이 보였다. 옆에 있던 한 꼬마아이가 축구공을 찾을 정도로 잘 정리되고 넓은 잔디밭이었다. 그곳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작은 우물이 보였고, 우물의 오른쪽에는 아직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선교장의 외별당(外別堂)이 있었다. 맏아들의 신혼살림이나 작은 아들의 분가 이전에 사용하던 건물이며, 손자들도 사용했다고 한다. 그 곳의 별채는 지금도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어 출입은 할 수 없고, 외별당의 문간채 쪽에서 잠깐 지나가면서 사진만 찍을 수 있었다. 별채 입구에는 테두리가 쳐져 있었고, 마당에는 많은 장독들이 놓여있었으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나 하려는 듯이 방 입구에는 신발이나 신문 등 일상 물건들이 놓여있었다.외별당을 빠져나와 들어간 곳이 동 별당(東別堂)이었다. 그곳은 집안의 잔치나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되었고 방과 마루의 모든 벽체가 문으로 되 어 있어서 활달하고 개방적인 선교장 가족들의 성품과 면모를 보여주는 곳 이었다.▶ 동별당의 모습동별당의 뒤쪽에 있는 언덕위로 자그마한 사당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곳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다. 선교장 집안 선조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으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고 한다.동별당의 왼쪽으로 거의 ㄷ자 모양을 하고 있는 건물이 선교장의 중심, 안채주옥(安砦主屋)이다. 방이 4개나 되고, 고방이나 다락, 창고까지 합하면 거의 10칸정도 되어 보였다. 이곳은 1703년 선교장 건물 중 최초로 건립한 건물이며, 이 씨 가의 큰살림을 맡은 부인들의 거처이다. 그런 만큼 부엌도 두 개나 되었다. 다른 것 보다 안채주옥은 부엌이 잘 되어 있는것 같았다. 부엌이 매우 넓었으며 수납공간도 많았으며 아궁이도 두 개씩 있었다. 이곳의 방에는 침대도 있었으며 여러 가지 수납장으로 보이는 가구도 많았다. 지금 사람이 살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구조도 편리해 보였으며 모든 것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안채주옥의 왼쪽으로 나가면 이 씨 가의 서고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던 서별당(西別堂)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공부방으로 사용되었던 만큼 건물 제일 왼쪽에 있는 서고가 매우 넓었고 안은 들여다 볼 수 없었지만 두 개의 방에는 작고 아담한 옛날의 책상과 작은 책꽂이가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서별당의 맞은편에는 연지당(蓮池堂)이 있었는데, 그곳은 집안 살림을 돕던 여인들의 거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들이는 곡식이나 금전을 받을 때 사용하였고 마루는 창고로 쓰였다고 한다. ‘토지’와 같은 사극 드라마에서 본 듯한 장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주인댁에서 일하는 여인들이 물건을 받아서 나물도 다듬고 이것저것 일도 는 그런 장면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닐 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상상을 하면서, 혹은 뭔가 장면을 떠올리면서 견학을 하니 꼭 곁에 사람들이 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조선시대로 견학을 온 것처럼.서별당과 연지당 사이에 있는 문으로 빠져나가면 큰 건물이 있는데 그곳은 열화당(悅話堂)이라고 하는 곳이다. 그 건물 앞에 보이는 커다란 테라스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는데, 그것은 조선 말기 러시아 양식의 건축물로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지어준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1815년에 지어진 건물로서 선교장 주인 남자의 거처였다고 한다. “일가친척이 이곳에서 정담과 기쁨을 나누자”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대청이 매우 넓고 방 앞에 또 하나의 마루가 있어 매우 시원해 보였다. 지난 여름을 떠올려 보면서, 나도 이런 곳에서 여름을 났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화당과 테라스다음으로 우리 발길이 옮겨 간 곳은 중사랑(中舍廊) 이었다 이곳은 이름에서 보여 지듯이 선교장 손님맞이에 주로 사용된 건물이며, 전국의 학자, 풍류객들과 교분을 나누던 곳이었다고 한다. 별로 특별한 것은 없어보였으며, 방문이 열려 있었으나 방안도 몇 장의 이불 외에는 텅 비어 있었다. 뭔가 특별한 것을 찾으려던 내게 눈에 띠는 게 있었다. 바로 여기저기에 달려 있는 전등들 이었는데, 밤에도 이곳이 개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밤에 오는 방문객들을 위해 달아 놓은 듯 했다. 그 때 또 하나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선교장 안내장이었는데, 중사랑, 연지당, 행랑채에서 숙박이 가능하다는 것 이었다. 별로 비싸지 않은 돈을 들이고 이런 곳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랐으며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해 보고 싶은 체험이라고 생각했다.중사랑의 반대편 쪽에는 행랑채(行廊)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길쭉한 일자형 건물이었는데 방이 많았다. 신분이 낮은 손님과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건물에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이 두 개나 보였는데, 안채로 가는 안대문과 사랑채로 가는 큰 대문을 따로 두어 남녀유별을 보여주는 듯 했다. 이 곳 역시 투숙이 가능한 곳이라 방안이 깨끗이 잘 정돈되어 있었고 문을 활짝 열어 그 안을 공개해 놓았다.
    인문/어학| 2007.05.09| 7페이지| 1,000원| 조회(1,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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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신라향가와 고려속요
    1. 모죽지랑가去隱春皆理米 간 봄 그리매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모든 것자 우리 시름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람 나토샤온兒史年數就音墮支行齊 즈지 샬쯈 디니져目煙廻於尸七史伊衣 눈 돌칠 사이예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맛보압디 지조리郞也慕理尸心未 行乎尸道尸 낭이여 그릴 마자매 녀올 길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다봊 굴허헤 잘 밤 이시리▶작품개괄-작가 득오-제재 죽지랑의 인품-주제 화랑 죽지랑에 대한 추모의 정-특징 1.인품이 뛰어난 화랑의 세계를 보여 주는 순수 서정적인 향가2.여성적인 감정 표현을 보여 주는 순수 서정시-의의 1.주술성이나 종교적 색채가 전혀 없는 개인의 정회가 깃든 서정 가요이다.2. 낭도의 세계를 보여 준 작품이다.▶배경설화 : 죽지랑은 이름난 화랑이며 장군이었다. 아버지가 미륵상을 세운 뒤 그 공덕으로 태어났다고 하는데,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우고 벼슬이 이찬에까지 올랐으며, 미륵의 화신으로 여겨질 정도로 높이 숭앙된 인물이다. 작자인 득오는 원래 죽지랑의 낭도였다가 익선에게 매여 고난을 겪던 중 죽지랑이 이끌고 온 무리들에 의해 구해졌으며, 그 후 득오가 죽지랑을 추모하는 마음에 지은 노래이다.▶이해와 감상 : 이 노래에는 죽지랑에 대한 사모의 정이 시 전체에서 간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노래는 죽지랑과 고락을 같이하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시작된다. 죽지랑을 사모하는 간절한 이러한 마음은 당시 의리에 충실하고 의리를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화랑의 정신에서 비롯되었다. 더구나 자신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찾아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의 죽음 앞에서 그를 추모하는 마음은 남다를 것이다.2. 헌화가紫布岩乎 寸 希 딛배 바회 갖해執音乎手母牛放敎遣 자바온 손 암쇼 노해시고吾 不喩 伊賜等 나할 안디 븟흐리샤든花 折叱可獻乎理音如 곶흘 것가 받자보리 다.▶작품개괄-작가 실명노인(失名老人)-성격 민요적, 4구체-주제 꽃을 바침, 아름다움 찬양-의의 신라인의 소박하고 보편적인 미의식을 보여 주는 서정시▶배경설화 : 성덕왕대에 순정공이 강릉 태수로 부임해 바닷가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얼어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가다'라 하였다. 동요가 대궐에까지 알려져 임금은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었다. 공주가 귀양처로 가는데 서동이 나와 함께 가고자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지는 모르나 믿고 기뻐하여 그를 따르게 되었다. 그 후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가 맞는 것을 알았다.▶이해와 감상 : 의 내용은 남녀상열의 행동을 직설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것은 서동이 당시에 전승되어 불려 지던 민요를 입수하여 그 가사에 서동과 선화공주만을 바꿔 소원성취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래서 이 노래는 동요적인 단순성은 발견되지만, 깊은 문학적 해석은 보여 지지 않는다.6. 혜성가舊理東尸汀叱 옛날 동쪽 물가乾達婆矣游烏隱城叱 兮良望良古 건달파의 논 성을랑 바라고,倭理叱軍置來叱多 왜군도 왔다烽燒邪隱邊也藪耶 횃불 올린 이여 수풀이여.三花矣岳音見賜烏尸聞古 세 화랑의 산 보신다는 말씀 듣고,月置入切爾數於將來尸波衣 달도 갈라 잦아들려 하는데,道尸掃尸星利望良古 길 쓸 별 바라고,彗星也白反也人是有叱多 혜성이여 하고 사뢴 사람이 있다.後句 達阿羅浮去伊叱等邪 아아, 달이 떠가 버렸더라.此也友物比所音叱 兮叱只有叱故 이에 어울릴 무슨 혜성이 함께 하였습니까.▶작품개괄-작가 융천사(融天師). 신라 진평왕 때의 승려-성격 주술적-제재 혜성의 출현-주제 혜성의 변괴를 없애고 왜병의 침략을 막음▶배경설화 : 신라 진평왕 때 거렬랑, 실처랑, 보동랑이라고 불리는 세 명의 화랑이 금강산으로 놀러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혜성이 나타났다. 이런 천체의 괴변은 국통에 불길한 변란을 가져온다고 생각한 세 화랑은 놀러가는 것을 중지하고 산을 내려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왜병이 온다는 것이다. 이에, 융천사가 단을 쌓고 목욕한 후 이 노래를 지어 부르니, 혜성이 사라지고 국토를 침범한 왜병도 물러갔다고 한다. 이에 임금이 크게 기뻐하여 화랑들에게 금강산에 놀러가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이해와 감상 : 풍류를 즐기려던 화랑들이 혜성을 보고 그것을 중단하고 나라의 걱정을 하였다8행 인품의 추모(답사)4. 제9-10행 인품의 찬양(결사)-특징 1.’제망매가’와 함께 표현 기교 및 서정성이 돋보인는 향가의 백미.2.’사뇌가’라는 명칭이 붙어 ‘찬기파랑 사뇌가; 라고도 함.3.대상과의 문답을 통해 찬양의 효과 극대화.4.계절의 변화에 따른 인생의 무상감을 고도의 상징 수법으로 표출함.-의의 제망매가와 함께 표현 기교 및 서정성이 돋보이는 향가의 백미▶배경설화 : 이 노래는 유사 경덕왕 충담사조에 실려 있으나 직접 관련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고, 안민가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경덕왕이 충담에게 묻기를 기파랑을 찬양하는 노래가 그 뜻이 높다고 하는 데 과연 그러냐고 하니 충담이 그렇다고 하였다. 기파랑은 이름으로 화랑인 줄 알며 이 노래에 의해 찬양할 만한 일이 있는 줄 아나 그가 화랑으로서 어떤 일을 해서 찬양을 받았다는 내용은 알 수 없다.▶이해와 감상 : 신라 시대의 화랑이었던 기파랑의 높은 인격을 흠모한 충담사가 그의 인물됨을 자연물에 빗대어 찬양한 노래이다. 화자의 대상에 대한 예찬의 태도를 보여주며, 향가 특유의 숭고미를 자아내고 있다. 또한 이 노래는 자연물의 대조를 통해 그리움의 시적 대상인, '기파랑'을 '하늘에 높이 뜬 달과 같은 숭고함', '수풀과 같은 깨끗함', '냇가의 자갈과 같은 원만함', '잣나무와도 같이 시련을 이겨내는 꿋꿋함'을 지닌 화랑으로 형상화되고 있다.11. 풍요來如來如來如 온다 온다 온다.來如哀反多羅 온다 서러운 이 많아라.哀反多矣徒良 서러운 중생의 무리여.功德修叱如良來如 공덕 닦으러 온다.▶작품개괄-작가 만성 남녀(萬城 男女) / 양지(良志) 선덕여왕 때의 승려-주제 공덕을 닦음으로써 극락 왕생을 기원함-의의 현존 향가의 민요적 형태를 가장 잘 보여 줌▶배경설화 : 선덕여왕 때에 석양지라는 중이 있었다. 그는 잡예에도 능통하였으며, 글씨와 그림 솜씨도 능통해 영묘사의 장륙삼존상, 천왕사 전탑의 기와, 천왕사 탑 밑의 팔부신장은 모두 그가 만든 것이다. 그가 영묘사 장륙삼존상을 만들 때 입정에서 랑이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는 속담과 의미가 통하는 것 같다. 사람에게 그토록 강한 신념을 부여하는 것은 어떠한 사실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현재의 행동이 값진 미래와 서로 통한다는 믿음에 기인하는 듯하다.1. 정과정내 님믈 그리자와 우니다니산 졉동새 난 이슷하요이다.아니시며 거츠르신 달 아으잔월 효성이 아라시리이다.넉시라도 님은 한대 녀져라 아으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과도 허믈도 천만 업소이다.말힛마리신뎌살읏븐뎌 아으니미 나랄 라마 니자시니잇가.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작품개괄-작가 정서-주제 충절, 연군지정(戀君之情)-특징 1. 3단계의 시상 전개.2. 귀양지에서 쓴 유배 문학의 원류.3. 임금을 그리는 충신연주지사임.4. 신충의 ‘원가(怨歌)’ 와 내용면에서 통함.-의의 1.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는 3단 구성의 가요2. 충신연군지사의 원류3. 유배 문학의 원류▶정서가 역모에 가담하였다는 죄명으로 귀양을 가게 되자 의종은“오늘은 어쩔 수 없으나 가 있으면 다시 부르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서가 아무리 기다려도 의종의 소식이 없어서, 정서는 의종에게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약속을 상기시키고자 이 작품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형식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향찰로 표기되어 전해지는 향가는 아니지만, 10구체 향가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3단 구성이나‘아소 님하’와 같은 여음구는 모두 향가의 영향을 입은 것 이으로 볼 수 있다. 또한, 내용면에서는 신충의‘원가’와 비슷하기도 하다. 즉 이 노래는 향가라는 기존 장르의 양식적 변용에다 당대의 유행민요를 복합적으로 수용하여 창출한 독특한 형태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이 작품에는 형식의 흔들림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러한 형식의 흔들림이나 격조 낮은 표현은 시각에 따라 형식의 자유로움과 표현의 진솔함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왜냐 하면, 그 자유로움과 진솔함은 곧 고려 속요의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이 향가에서 고려속요로 넘어가는 중간 지점에 놓여 있음을 나매 브롤 즈슬 디뎌 나샷다.아으 動動다리.四月(사월) 아니 니저 아으 오실셔 곳고리새여.므슴다 錄事(녹사)니만 나랄 닛고신뎌.아으 動動다리.五月(오월) 五日(오일)애, 아으 수릿날 아참 藥(약)은즈믄 핼 長存(장존)하샬 藥이라 받잡노이다.아으 動動다리.六月(유월)ㅅ 보로매 아으 별해 바룐 빗 다호라.도라보실 니믈 젹곰 좃니노이다.아으 動動다리.七月(칠월)ㅅ 보로매 아으 百種(백종) 排(배)하야 두고,니믈 한 대 녀가져 願(원)을 비삽노이다.아으 動動다리.八月(팔월)ㅅ 보로만 아으 嘉排(가배) 나라마란,니믈 뫼셔 녀곤 오날날 嘉俳샷다.아으 動動다리.九月(구월) 九日(구일)애 아으 藥이라 먹논 黃花(황화)고지 안해 드니 새셔 가만하얘라.아으 動動다리.十月(시월)애 아으 져미연 바랏 다호라.것거 바리신 後(후)에 디니실 한 부니 업스샷다.아으 動動다리.十一月(십일월)ㅅ 봉당 자리예 아으 汗衫(한삼) 두퍼 누워슬할사라온뎌 고우닐 스싀옴 녈셔.아으 動動다리.十二月(십이월)ㅅ 분디남가로 갓곤 아으 나살 盤(반)잇 져 다호라.니믜 알패 드러 얼이노니 소니 가재다 므라삽노이다.아으 動動다리.▶작품개괄-작가 작자미상-형식 월령체→ 1년 열두 달로 나뉘어 구성된 형식의 시가를 달거리 또는 월령체라고 한다. 고려 가요인 '동동',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하는 '관등가'처럼 임을 여읜 여자가 열두 달 명절마다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것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승되어 왔다. 현존 민요에도 이러한 달거리는 많이 있는데, 그 내용에 따라 '청상요(靑孀謠)'라고도 한다.처럼 열두 달에 하는 농사일을 서술한 달거리도 있다. 이러한 달거리의 가사 작품을 일명 '십이월령가'라고도 한다.자연(계절의 변화)과 인생을 견주어서 나타내는 달거리 형식은, 읊고 있는 내용을 더욱 절실히 전달해 주고, 인생에서의 문제가 자연의 변화에 비유되어 작자의 정서를 고조시키게 하는 효과가 있다.-성격 이별의 노래, 민요풍, 송도가-주제 송도, 애련-구성 전 13연으로 된 분절체, 사사인 1연과 본사 12연으로 구노동요
    인문/어학| 2007.05.09| 20페이지| 1,500원| 조회(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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