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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암 박지원
    연암 박지원목 차1. 머리말2. 답사일정2.1 연암 박지원 사적비3. 생애와 연보4. 연암의 문학4.1 대표작품, , 4.2 안의에서의 문학작품4.3 연암 문학의 성격 및 의의5. 맺음말※참고문헌강의명 :교수님 :학 과 :제출일 :1. 머리말연암 박지원은 18세기 조선이 낳은 위대한 문학가이다. 박지원의 문학적 탁월성은 당대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그에 필적할만한 작가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연암은 문학가인 동시에 위대한 학자이자 사상가였다. 연암의 위대성은 『연암집』이 증명하고 있다. 『연암집』에는 그의 시문과 함께 『열하일기』 및 『과농소초』등 그의 전 저작물이 담겨 있다. 「박씨전」,「허생전」등 교과서에 실려 특히 널리 알려진 작품들도 『연암집』에 수록되어 있다. 연암의 문학적 위대성과 학문적 위대성은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이『연암집』속에 통일되어 있는 사실이 주목할 점이다. 이러한 그의 업적을 높이 여겨 연암을 조사하게 되었으며, 조사하는 과정에 연암 박지원의 고향은 서울 서대문 근방이지만 생가의 위치가 불분명했고. 그가 홍국영의 세도를 피해 살았던 황해도 '연암협'과 묘소가 있는 '장단' 땅은 북한지역이라 답사가 불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또한 연암 박지원이 5년간 현감으로 지냈고 작품 「박씨전」을 창작해낸 함양 '안의마을'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었고 결국 '안의마을'은 박지원의 삶과 문학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답사지 임을 알게 되었다.이러한 연유로 안의를 답사지로 정하게 되었으며 본고에서는 연암의 고전문학답사지인 안의를 중심으로 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2. 답사일정답사 날짜 : 2010년 5월 2일 일요일모이는 장소 : 대구대학교 인문대학 로비조원 : 김정희, 석미란, 양소, 오정대, 웅군걸, 왕가용, 이민경, 조대근, 최민선, 현은애답사자 : 김정희, 석미란, 양소, 오정대, 웅군걸, 이민경, 조대근, 최민선, 현은애회비 : 총 200000원 (1인당 20000원)회비 사용 내역 : 렌트비 11만원 (주말, 12시사적 기념물이 될 연암 박지원 선생의 사적비를 세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박지원 선생은 조선 후기의 탁월한 실학파 학자이며 우리 역사상 최대의 문학가의 한분이시다. 열하일기를 비롯하여 선생이 남긴 수많은 글들을 편편이 경세제민(經世濟民)과 이용후생(利用厚生)의 뜻을 담고 있어서 민족사의 창조적 발전에 기여한 바가 매우 컸었다. 이러한 선생의 업적을 특히 우리 고장에서 기념하게 되는 까닭은 선생이 우리 고장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1792년에서 1796년까지의 오년동안 선생은 안의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행정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겨 놓았을 뿐 아니라 평생 가슴속에 품고 있던 자신의 실학을 유서 깊은 이 고을에서 실천에 옮겨 볼 수 있었으며 작품 활동에 있어서도 대표적인 저작의 대부분을 이 때 이루어 놓았던 것이다.이제 선생이 이 고장에 남긴 뚜렷한 자취를 대강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선생이 저작활동을 통해 이 고장을 빛낸 점이다. 선생이 이곳에 있을 때 지은 저작으로 선생의 문집인 연암집에 수록되어 전하는 것만도 40여 편이 된다. 그 가운데는 국계민생에 관련한 중요한 글이 다수 포함되어 있고 이곳에서의 치정치민의 과정에서 쓰인 것 그리고 안의를 비롯한 함양 거창 합천 등 우리 고장의 아름다운 산수와 문물에 구체적으로 연관된 내용 등이 그 대부분이다. 또한 선생은 이곳에서 자신의 문집을 정리하면서 편제에 인상 각선본 공작관문고와 같이 이 곳 관아 건물의 명칭을 붙여 자신의 안의 시절을 기념하였다. 이러한 저작 활동을 통하여 당시의 일류문인들이 이곳을 찾아오게 하였고 그 결과 우리 고장이 당시 우리나라 문학의 중심지로 여겨지게까지 하였다. 다음은 선생이 평소에 깊이 연구하였던 과학기술을 이 고장에 접목시킨 점이다. 이용후생의 학에 특히 힘을 기울였던 선생은 부임하자 곧 북경에서 체득한 지식으로 공장에게 직접 기술을 가르쳐 풍구직기용미수전유전 즉 베틀 양수기 물레방아 등 새로운 창안에 의한 생산기구를 제작하여 사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관아의 부속 조국을 문명화하기 위하여 특히 이용후생의 학문연구와 새로운 기운의 문학운동에 오로지 바친 것이다. 그리하여 상공업의 발전을 위한 유통의 확대와 기술의 혁신에 크게 공한하였고 이러한 신기운의 형성과 함께 나타나는 근대적 체질이 새로운 인간형들을 소설문학으로 형상화하였다. 서울의 도시적 분위기에서 자라난 선생은 일찍부터 민족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상인 수공업자들과 교-는 한편 실학을 가지고 서민들에게 이바지하려 하였으니 이것은 선비로서 자기 임무를 자각한 때문이었다. 또한 선생은 중세적 권위주위와 고시적 명분론에서 탈피하여 모든 사람들이 봉건적 속박을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려야 할 것을 주장하였으며 이를 훌륭한 문학작품으로 그려 놓았던 것이다. 이들 작품은 신선한 구성과 사실적 수법을 그리고 풍자와 해학으로 깊이 서민적 정취를 묘사하여 정통문학의 완강한 성벽에 도전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선생은 민중들과 호흡을 함께 하며 자기 시대를 개척해 나간 사상가요,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선생의 생장지인 서울에는 격심한 변천으로 아무런 흔적도 찾을 길이 없으며 선생의 묘소도 휴전선 북쪽에 있어 가 볼 수가 없으니 선생의 거룩한 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곳은 오직 우리 안의뿐이다. 이에 선생이 재임 시에 손수 지은 관아의 부속 건물들이 있었던 옛터 이곳 안의초등학교 교정에 선생의 사적비를 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선생을 통하여 민족사의 선진대열에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일깨우고 다시 이 시대의 발전에 창조적으로 기여할 힘의 줄기가 될 것을 다짐하면서 여기 이 돌에 우리고장 전체 주민들의 마음을 새기는 것이다.(-이 글은 여주 이우성이 지었고, 진양 하한식이 썼으며 진단학회와 국문학연구회, 한국사연구회, 한문학연구회, 다산연구회, 연암 박지원선생 사적비 건립추진위회에서 세웠음.)3.생애와 연보< 생애 >박지원 (1737~1805)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소설가이다.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어려서 아버8세) 과 를 지었다.1765년(29세) 금강산을 유람하였다. 삼일포, 사선정 등 금강산 일대를 두루 돌아보고, ‘총석정 해돋이〔叢石亭觀日出〕’를 썼다. 이 글은 《열하일기》에도 수록되어 있다. 판서 홍상한이 이 작품을 격찬했다고 한다. 을 지었다.1767년(31세) 아버지 박사유가 65세의 나이로 죽었다. 장지 문제로 녹천이유 집안과 시비가 벌어졌다. 이 일로 상대방의 편을 들어 상소를 올렸던 이상지가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 것을 보고 이때부터 연암도 스스로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 , 을 지었다.1780년(44세) 삼종형인 금성도위 박명원을 따라 북경으로 갔다. 5월에 떠나 6월에 압록강을 건넜고, 8월에 북경에 들어갔다가 열하에 들러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0월에 귀국하였다. 돌아오자마자 《열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 을 짓다.1783년(47세) 벗이었던 담헌 홍대용이 53세에 죽었다. 이 충격으로 이후 연암은 음악을 끊었다. 《열하일기》의 첫 편 ‘압록강을 건너서〔渡江錄〕’의 머리말을 썼다.1791년(55세) 한성부판관에 임명되었다. 모함을 받아 강등되어 겨울에는 안의현감으로 부임했다.1792년(56세) 1월, 임지 안의에 도착. 안의는 거창현과 함양군을 이웃에 두고 있었으며 당시 인구는 5천여 호였다. 현감으로 있는 동안 현풍 사람 유복재를 죽인 범인에 대해 논한 ‘답순사논현풍현살옥원범오록서[答巡使論玄風縣殺獄元犯誤錄書]’와 밀양 사람 김귀삼 살인 사건을 논한 ‘김귀삼의 살인 사건[答巡使論密陽金貴三疑獄書]’과 함양 사람 장수원의 살인 사건을 논한 ‘장수원의 강간 미수 사건[答巡使論咸陽張水元疑獄書]’과 밀양 사람 윤양준의 살인 사건을 논한 ‘답순사논밀양의옥서[答巡使論密陽疑獄書]’와 함양 사람 조판열의 죽음을 논한 ‘답순사논함양옥서[答巡使論咸陽獄書]’ 들을 썼다. 삼종질 박종악이 우의정에 임명되자 취임을 축하하면서 ‘천하 사람의 근심을 앞질러 근심하시오[賀三從姪宗岳拜相因論寺奴書]’를 썼고, 벗 김이소가 우의정에 임명되자 ‘화폐가 흔한가 귀한가[賀金右相履라가 망한 지 130여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명이 중국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믿는 조선의 세태를 비판한다.그는 “명나라 왕실이 오히려 압록강 동쪽에 존재”하고 있으니, 자신이 명나라 연호 ‘숭정’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힘이 약해서 비록 저 오랑캐를 물리쳐 중원 땅을 깨끗이 청소하여 전통의 문화제도를 회복할 수야 없겠지만 모두가 숭정이라는 연호라도 존숭하여 중국을 보존하려는 까닭”이라고 비틀어 적는다. 압록강을 건너면서는 압록강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경계임을 상기하고는, 그 경계란 언덕이 아니면 강물이니, 도(道)라는 것은 바로 강물과 언덕의 중간 경계에 있다고 설파한다. 무릇 천하 인민의 떳떳한 윤리와 사물의 법칙은 마치 강물이 언덕과 만나는 피차의 중간과도 같은 것이라는 논지다. 이렇게 약 5개월 동안의 중국 체험을 적은 일기 형식의 견문기와 지식인과의 필담, 문예적 산문, 소논문, 소설, 시화 등이 어우러진 방대한 분량의 여행기인 는 이전의 중국여행기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체제와 내용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은 풍자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사상적으로 실학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성격으로는 풍자적으로, 무위도식하는 무능한 양반과 분수없이 신분 상승을 꾀하려는 상인계층을 풍자하고 있다. 특징으로는 몰락하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 모습을 비판, 풍자하며 전대에는 불가능했던 평민 부자로 대표되는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고 있으며, 독특한 풍자와 해학으로 근대 의식을 보여준다. 또한 소재를 현실 생활에서 취하고 사실적인 태도로 묘사하며 ‘도둑놈’이라는 표현을 통해 전횡을 일삼는 양반을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있다. 주제로는 양반들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생활에 대한 비판과 풍자를 하고 있다.줄거리로는 강원도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학식이 높고 현명하며 정직하고 독서를 좋아하고 손님들을 초대하여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부임하는 신임군수들은 몸소 찾아가서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양반은 너무 가난하여 관가에서 내주는 환자를 타먹고 살았다. 이있다.
    인문/어학| 2010.05.22| 11페이지| 1,000원| 조회(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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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종교와 문화
    한국의 역사와 문화제5장 종교와 문화종교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신을 모시고 숭배하며 선을 추구하는 사상체계’ 로 종교의 성립요건은 교주, 교리, 교단이다. 이러한 종교는 교리의 발전과 함께 문화도 동시에 발전을 가져왔다. 고대사회에서는 우리의 고유신앙이 이어졌으며 삼국과 고려시대에는 유교와 불교가 병존하고, 도교가 또 하나의 종교로 기능하면서 한국의 종교와 그것에서 파생되는 문화를 천 년간 폭넓게 발전시켰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성리학이 국가의 정치이념으로 채택되면서 오백년간 국가의 이념이자 백성을 교화하는 사회이념으로도 작용하여 한국사회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은 지대하다. 이후, 조선말에는 서구의 문물이 전파되면서 천주교가 전래되며 부분적으로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서양의 문화를 수입하는 창구의 역할을 하면서 발전하였다. 또한 동학과 기독교, 원불교가 전래되거나 창립하면서 보다 다양화된 종교상을 보이며 현대에 이르기까지 존속하고 있다.1. 고유신앙한국의 고유신앙은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의 신앙을 말할 수 있다. 이 신앙은 부분적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생명력 있게 전승되고 있으나 구석기시대에 나타나는 신앙의 면모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신석기 이후 시대의 고유신앙은 크게 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테미즘으로 구분해 볼수 있다. 우선 샤머니즘은 선신을 믿으며 악신을 무당의 주술로 추방하여 복을 비는 신앙이다. 즉 샤먼이라는 주술자를 통해서 신과 연락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의 샤머니즘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단군신화의 제례와 신앙의 형태에 근원이 있다고 하는 것이 통례이며, 삼국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남자를 일컫는 ‘박수’와 여자를 말하는 ‘무당’이라는 명칭으로 전례되고 있다. 다음으로 나오는 것은 애니미즘인데 이것은 모든 자연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 신앙이다. 크게 자연숭배와 정령숭배, 동식물 숭배 등으로 나누며 거대한 돌이이나 해와 달 또는 산과 같은 자연을 숭배하는 것이 보통이다. 끝으로 토테미즘은 특정한 동물을 자기의 조상으로 숭배하는 사상으로, 고조선 건국신화에 나오는 곰과, 호랑이가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신앙은 고대국가가 발생하고 왕족이 시조신으로 추앙되면서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삼한의 상달고사 등의 제천행사로 발달이 되었지만 새로 전래된 불교와 유교가 국가의 지도 이념이 되면서 점점쇠퇴하게 된다.2. 불교불교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외래종교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사상으로 한국사의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현재까지도 계승되고 있는 종교이다. 석가모니가 진리를 깨우친 뒤 대중의 교화를 위해 설법한 가르침을 근거로 하며 크게 대중의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대승불교와 개인의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소승불교로 나눈다. 불교의 전례는 삼국시대로 고구려는 소수림왕2년에(372) 전진의 순도에 의하여 전래되었으며, 백제는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하여 침류왕 원년(384)에 전례 되었고 신라는 고구려의 묵호자가 눌지왕(417~457)연간에 전례하였으나 귀족의 반대가 심하여 법흥왕 때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되었다. 삼국의 불교는 고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왕즉불 사상과 호국사상으로 접목되었다. ‘왕은 부처다’라는 왕즉불 사상은 왕권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전생의 쌓은 덕이 현세에 왕이나 귀족으로 출생한다는 윤회설은 그들의 신분에 당위성을 제공하였다. 불교에서는 의상과 원효의 업적이 주목되는데 의상은 우주의 만물은 서로가 원인이 되어 생겨나고 융합하여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으로 분열된 국가를 통일하는 정신이념으로서의 화엄학을 체계화하고 원효는 중생도 누구나 아미타불만 암송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사상을 내세워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또 의천은 고려전기에 화엄종과 법안종이 대립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화엄종 입장에서 교종을 통일하고, 나아가 교종과 선종을 겸하여 수행해야 한다는 교관겸수를 내세웠다. 삼국의 불교문화재는 고구려의 청암리사지, 정릉사지 등에서 8각탑지가 조사되었으며, 백제지역에서는 정림사, 미륵사, 왕궁리사지 등이 조사되어 백제의 불교문화를 살펴볼 수 있고, 신라에서는 황룡사, 분황사, 사천왕사 등이 건축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주자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탄압 하는 숭유억불정책을 시행하여 불교가 쇠퇴하였으나, 세종 말년에 내불당을 짓고 명종 때에는 승과가 부활하는 등 불교가 되살아나기 시작하였으며, 임진왜란 때에 승병을 조직하여 전공을 올리는 것에 힘입어 화엄사, 선암사, 통도사 등의 대형 사찰이 중창되었다. 현대는 승려의 수행 공간인 사찰을 템플스테이, 숲속 걷기 등을 통하여 일반인과 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익힐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3. 유교유교는 공자를 시조로 하는 중국의 대표적인 사상이며 고려시대 불교와 함께 이 시대를 대표했던 사상이다. 불교가 신앙생활을 대표하였다면 유교는 정치 이념을 제공하고 도덕과 윤리의 기반이 되어 정치, 교육, 윤리 등 외적인 현실문제에 대한 사상을 제공하였다. 유교가 도입된 것은 불교보다 이른 시기이나 불교에 압도 되었다가 전제왕권이 확립되고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이 설립되면서 발전을 하게 되었다. 태조 왕건 이후 역대의 왕들의 유교 장려는 정치적 이념으로서 그 지위를 확고히 하였고 국자감과 향교를 통하여 유학의 전변은 확대되었으며, 과거제를 통하여 유교경전이 더욱 널리 읽히게 되었다.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이 펴지면서 유교는 부흥하게 되고, 중엽에 이르러서는 성리학에 의하여 조선의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퇴계와 율곡이 기본 이론을 확립 하게 된다. 또 서당, 4부학당, 향교, 성균관 등 조선의 모든 교육기관에서 유교는 교육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국가관과 사회를 교화하는 기본적인 교육요소로 남아 기능을 하고 있다.4. 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는 천주교와 개신교로 구분하여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먼저 전래 되었다. 천주교는 종교로써 전래되기에 앞서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먼저 이해되었다. 즉 허균이 명에서 천주교 서적을 들여오고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소개하면서 학문으로써의 서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학문으로써 전래된 천주교가 종교로써 받아들여 진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견해가 있다. 그중 하나인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돌아와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 전래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천주교는 평등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양반계층보다는 중인과 양인계층에서 많은 호응을 받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대되어 갔으며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마카오에서 귀국하여 활동하면서 신자들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 조상제사에 대한 문제가 발생하면서 양반의 비판이 이어지고, 병인사옥과 기해사옥 등이 가해지면서 교세가 많이 약해지게 되었다. 또 천주교는 종교 활동 이외에도 고아원, 양로원, 나환자 정착마을, 결핵요양원 등을 설립하여 사회복지 활동 면에서 큰 기여를 하였으며, 전래된 이후 사회개혁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나아가 충효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구세복음사상을 수용하려는 모습도 보이며 한국의 전통을 중시하면서 이 사회에 정착하였다.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 성립된 기독교 교단으로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에 의해서 전래되었으며 대한제국시기 왕실의 의료부분에 대한 책임을 맡으면서 종교인이기 보다는 의료인으로써 더 많이 인식되고 이를 기반으로 가톨릭에 비해 비교적 탄압 없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특히 선교 활동을 통하여 한글을 보급하고 근대문명을 소개함으로써 서구 민주주의의 보급과 애국계몽 운동에 기여하였다.
    인문/어학| 2010.10.19| 2페이지| 1,000원| 조회(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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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 소논문
    채만식 풍자의 전략과 풍자의 파탄- 목 차 -1. 들어가는 글2. 채만식 연혁3. 문학적 특성1) 리얼리즘2) 풍자3) 고전문학 전통의 계승4. 채만식의 풍자1)「태평천하」의 풍자의식2)「논 이야기」의 리얼리즘과 풍자5. 친일과 풍자의 파탄6. 문학사적 의의와 한계7. 나가는 글※참고문헌과 목 명 : 한국현대 작가론강의시간 :담당교수 :소속학년 :학 번 :제 출 자 :제 출 일 :1. 들어가는 글채만식은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격동의 시기를 살아온 인물이다. 즉 조선 전체의 체제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일제의 식민 적 재편성이 급속히 진행 되는 상황에서 성장기를 보내며 자라온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의 인식 속에는 긍정적 지향 대상으로서의 일본과 부정적 배제 대상으로서의 일본이 뒤섞였을 것이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채만식의 태도는 긍정적 수용, 적대적 저항, 그리고 긍정과 저항을 오가는 동요와 동요하는 자신에 대한 냉소라는 여러 차원이 동시에 오가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속에는 반일 적 요소와 친일적 요소가 동시에 들어나기도 하고 식민지 체제에 동화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환멸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 가지 면이 공존하는 채만식의 문학은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친일이라는 논쟁은 어디까지가 친일이고 어디까지가 아닌지를 나누는 기준이 매우 주관적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모호한 사실이다. 이렇듯 그를 단순히 친일작가로 규정짓는 것은 어떤 시각에서 본다면 매우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게 친일 작가가 아니라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리하여「논 이야기」와「태평천하」를 중심으로 그의 풍자에 대해서 알아보고 친일의식에 대해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2. 채만식 연혁채만식은 1902년 전북 옥구군 취산리에서 상당한 부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나 1905년을 전후해 일제의 조선토지수탈 계략에 의해 그의 집안은 경제적 몰락의 길로 접어든다. 채만식의 집안은 양반 선비도, 하층 빈민도 아니고 친일도 항일도 은 리얼리즘의 전통 위에서 식민지 부르주아의 삶이 지닌 부정적 모습을 보여주는 식민지 현실에 굴복하고 타협하는 속물주의 등을 비판, 풍자하며 식민지 자본주의 하에서 물신화되어가는 인간과 그들의 비극적 운명들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2) 풍자1930년대 중엽 이후 더욱 가중된 일제의 억압으로 직접적인 현실비판이 용이하지 않은 시대적 상황 때문에 문학의 표현방법 역시 궤도수정이 불가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채만식은 '풍자'의 방법을 통해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함으로써 문단과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다고 볼 수 있다. 채만식은 일제의 탄압과 검열이 심화되는 객관적 정세를 나름대로 돌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구태의연한 소설방법론으로는 리얼한 현실을 문학에 담을 수 없음을 인식한 것이다. 말하자면 채만식은 압박이 강화되던 당시의 식민지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으며, 이런 시기에 작가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지의 직설적 표현이 불가능했던 당시의 상황에서, 그의 문학은 한편으로 검열을 의식해야 했고, 자기 문학의 전면적 중단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를 항상 전제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택하게 된 것이 풍자였고, 그것은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나마 현실을 작품에 담을 수 있는 방향이었다. 따라서 채만식의 풍자문학은 당시 문단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고뇌의 결과로 선택되어진 문학양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3) 고전문학 전통의 계승채만식은 창작방법의 문제를 고민하던 중, 조선 고전문학의 재발견을 택했다. 고전문학의 인물들을 차용한 채만식의 기법은 패러디가 많다. 과거인물의 이미지를 차용해서 형상화한 인물은 패러디가 지니는 이중적 성격으로 인해 과거 텍스트와의 유사성보다는 차이를 산출한다. 이 차이는 독자의 의식에 각인된 고전인물의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이루어진다. 독자는 패러디된 인물의 성격과 행동을 고전인물의 그것과을 치면서,“이놈의 세상이 어느 날에 망하려느냐!”고 통곡을 했습니다.그리고 울음을 진정하고도 불끈 일어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오―냐,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고 부르짖었습니다.폐정과 악습으로 인한 아버지의 몰락을 보면서, “우리만 빼놓고 어서 망해라” 식의 이기주의는 일제 치하의 윤직원의 삶에서 극단화된다. 나라가 망하고 일본에 예속되어도 그는 민족적인 불행과 무관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사실이며 더구나 재산이 날로 번창해 간다는 사실이다. 그는 대지주로서 작인들로부터 소작료를 받고 사채놀이를 함으로써 자신의 안락을 추구하는데 성공한다. 민족을 외면하고 자신의 이기주의에 탐닉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일들을 범하게 된다. 첫째, 족보에다 도금을 한다. 이른바 족보상의 양반 가문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향교의 직원 벼슬을 사서 자신의 명예를 획득한다. 소설상의 명칭이 윤직원인 것은 이 때문이다. 셋째, 아들·딸들을 양반의 자녀와 결혼시켜 상대적인 양반의 위치를 확보한다. 넷째, 두 아들 종식, 종학을 군수와 경찰서장으로 출세시켜 현실적인 권세를 누리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1930년대의 이상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다. 채만식은 이러한 일들을 통해 당시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의 시대상은 일본의 전쟁 수행 때문에 한국의 농업은 소작농과 일본인 지주만 늘었을 뿐 경제 상태는 악화일로에 있었고 중국과의 전면전이 일어나자 한국은 한층 더 비참한 모습으로 일본에 예속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채만식의 소설들이 이러한 암흑기를 배경으로 한 것들로서 대부분 두 개의 서로 상반된 계층이나 사상의 대립갈등에 의한 역설이지만 태평천하는 하나의 인물을 그 시대적 상황 속에 투영시킴으로써 발생하는 자기모순의 풍자를 노린 점에서 독특하다. 이는 손자 종학의 사회주의가 할아버지의 퇴행성을 풍자하며 긍정적 가치로 부상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손자 종학이 조부의 열망을 배반하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백성은 죽어야 모른 체를 하고 하는 나라의 백성으로도 살아 보았다.채만식은 「논 이야기」에 등장하는 고을 원과 이방으로 대표되는 농민을 괴롭히는 관료들에 비판적 시각을 보인다. 한생원의 젊은 시절이기도 했던 구한말에는 관료들의 횡포가 다방면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특히 토지세인 ‘전정’, 군역제도인 ‘군정’, 곡식대여제도인 ‘환곡’ 이 세 가지 정책, 즉 ‘삼정’은 조선후기로 들어서면 관청과 아전들에 의해 그 질서가 어지럽혀져 농민들에게 큰 부담이 된다. 이것이 이른 바 ‘삼정의 문란’인 것이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외척 세도정치의 폐해가 전국 각지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한편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수입은 감소되는 반면에, 구휼 등에 쓰이는 재정 지출은 크게 늘어 국가 재정이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 이에 따른 세금의 증가로 관리들의 수탈이 극심해져 농촌 사회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게다가 관리들과 결탁한 양반이나 지방 토호들의 횡포까지 자행되어 농민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가 없었다. 동학란 또한 이러한 지배층의 폭압과 폭정에 못이긴 농민들이 일으켰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 조선은 내적으로는 부패한 관료들과 외적으로는 강대국의 압력에 시달린다. 결국 1910년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한일 합방이다. 경술년(1910)에 일어난 국가의 치욕적인 사건이라 하여 경술국치라고도 한다. 이때부터 1945년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의 식민통치가 이루어지게 된다.“허 그거 온 참…… 저어 공주 한밭(大田)서 무안 목포(木浦)루 철로(鐵路)가 새루 나는데, 그것이 계룡산(鷄龍山)앞을 지나 연산(連山)·팥거리(豆溪)루 해서 논메(論山)·강경(江景)으루 나와 가지고, 황등장터를 지나게 된다네그려.”“그런데요?”“그런데 철로가 난다 치며 그 십 리 안짝은 논을 죄 버리게 된다는 거야.”…(중략)…“말끔 다 칙량을 하구, 말뚝을 박아 놓구 한걸…… 황등장터 그 일판은 그래, 논들을 못 팔아 난리가 났다니까.”채만 영이 서기 전 혼란한 틈을 타서, 잇속에 눈이 밝은 무리들이 일본인 농장이나 회사의 관리자와 부동이 되어가지고, 일인의 재산을 부당 처분하여 배를 불린 일이 허다하였다. 이 산판사건도 그런 것의 하나였다.채만식은 우리 농민에게 가장 절실했던 문제인 토지문제를 국가가 해결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해방이 되어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와 다를 것 없이 여전히 잇속 빠른 사람들에게만 유익한 행정부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한생원에게 있어서는 나라가 바뀌어도 자신의 땅을 빼앗겼던 구한말이나 수탈을 겪었던 일제 식민지 치하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권력에 협착한 모리배들에 대한 분노와 함께, 이들 모리배들을 처단하기는커녕 비호해주는 듯한 국가의 정책부재와 그 효용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국가의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당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농민들에게 있어서는, 토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공간적 배경 또한 채만식의 리얼리즘적 성격을 드러내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작품 내에서 주인공 한생원이 살고 있는 마을의 위치는 확실하게 드러나 있지 않으나, 제시된 문장으로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금강(錦江) 어귀의 항구 군산(群山)에서 시작되어 동북간방(東北間方)으로 임피읍(臨陂邑)을 지나 용말로 나온 행길이, 용말 동쪽 변두리에서 솜리(裡里)로 가는 길과 황등장터(黃登市)로 가는 길의 두 갈랫길로 갈리는, 그 샅에 가 전주집이라는 주모가 업을 하고 있는 주막이 오도카니 호올로 놓여 있었다.위의 문장에 제시된 것처럼 작품의 주요 무대가 되는 배경은 전라북도 군산 부근의 한 농촌마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앞에서도 계속 언급했듯이, 군산이라는 공간은 구한말에는 동학란의 영향을, 일제 강점기에는 미곡 수탈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그러한 공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 채만식의 현실 반영 의지가 투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5. 친일과 풍자의 파.
    인문/어학| 2010.10.19| 9페이지| 1,500원| 조회(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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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화성
    박화성(朴花城) (1904. 4. 16 ~ 1988. 1. 30.) - 근대 소설가1. 활동 및 약력1904. 4월 16일(음) 박운서와 김운선의 막내딸로 목포에서 출생1915. 목포 정명여학교 고등과 졸업1918. 숙명여고보 졸업, 천안과 아산의 보통학교에서 교편 잡음1922. 영광중학교 교사로 부임. 조운(曺雲) 등 文友들과 문학수업1925. 단편 가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지에 게재- 문단에 등단1926. 숙명여고보 신학년제 4년 졸업, 일본여자대학 영문학부 입학1929. 동대학 영문학부 3년 수료, 단편 발표1932. 한국여성 최초의 장편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간행1933. 이후 중편 , 장편 , 단편 등의발표 후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항거하여 각필1947. 첫 단편집 간행1955. (1955)을 시작으로 (1956), (1957),(1958) 등 장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장편시대의 막을 열었음1958. 목포시 문화상 수상1960. 등의 장편을 연재1961. 이화여자대학교 제정 문학선구 공로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피임1962. 장편발표1963. 국제 P.E.M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피임. 장편 연재1964. 회갑기념으로 간행1965. 한국여류문인회 초대 회장에 선임, 자유중국 부인작가협회 초청으로 대만 방문1966. 한국예술원 회원에 선임,뉴욕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세계연차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단편 으로 제3회 한국문학상 수상1968. 한국친화회(韓國親和會) 초청으로 일본에서 문학강연회 좌담회를 가짐,제3단편집 발표1970. 제15회 예술원상 수상1974. 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 포장,고희 기념으로 수상집 간행1977. 제4단편집 간행1984. 제24회 3ㆍ1 문화상 수상 이후 등 단편을 발표.1988. 1월 30일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 집필하시다가 돌아가심.2. 박화성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1) 한국현대문학사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작가새로운 사조와 사회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친 1920년대는 전통과 새로운활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당대 여직공들이 겪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비참한 생활고를 여성적 시각에서 상세하게 묘사만 하고 있을 뿐, 빈궁현실을 타개해 나갈 수 있는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빈궁의 원인을 계급적 모순에서 찾고 울분과 원망의 소극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후 박화성 선생은 민족주의적이고, 역사성이 강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여성문학의 선구자로서 꾸준한 활동을 펼쳤다.1920년대 말 이후부터 1930년대 초기에 조선 노동운동은 1920년대의 투쟁경험의 축적과 공황과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여러 조건의 변화 속에서 이전의 어떤 시기와도 다른 일련의 새로운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쟁의의 건수가 1931년에 최고를 기록했고, 쟁의가 일어난 지역은 조선 북부지방에 집중했고 다음은 남부지방, 중부지방 순이었으며 쟁의 참가자의 직업별 분포는 전 산업부문에 걸쳐 있었다. 노동쟁의 발생에 관한 현실을 직시하고 여성동우회에 관련하여 활동한 박화성은 여성해방의 개념도 계급해방을 전제로 하는 여성해방 쪽으로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따라서 그녀의 본격적인 소설문학은 데뷔 이후 발표한 1931년의 하수도 공사 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비평가와 학자들이 1930년대의 여성작가로 박화성을 최정희, 강경애, 백신애와 함께 분류하지만 여직공들의 노동조건 등에 대한 비참한 현실고발에 초점을 맞춘 ?추석전야?로 그는 1930년대의 다른 여성작가와는 그 출발년도에서 분명히 다르다고 볼 수 있다.2) 작가생활 60여 년의 장수 작가, 장편소설을 집필한 최초의 여성작가박화성은 1925년에 ?추석전야?( 조선문단 )를 발표한 이후 1988년 1월에 향년 여든 다섯의 고령으로 작고하기까지 단편 67편, 중편 3편, 장편 19편을 발표하였다. 박화성은 60여 년의 창작활동을 통해 한국여성문학을 이끌어온 대모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장편소설을 발표했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1932년 에 연재한 「白花」라는 작품이다.'백화'라고 하는 허구적인 인물을 형상화가 되고, 어떻게든 그녀를 흔들어보려는 시대와 사람들 속에서 그녀가 고고하고 기품 있는 존재가 되기까지의 시련과 고통을 이 작품은 그리고 있다. 간신배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백화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박해를 받으며 몰락하여 끝내 기생이 된 허구적 여성소설을 리얼하게 묘사하였다. 여기서는 개인의 불행이 민족의 불행과 유기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한 여성의 불행을 민족적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식민지 현실에 직접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던 당대에 고려 말의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을 묘사하면서 개인의 불행이 사회구조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우회적으로 묘파한 정치 사회면을 거론한 소설이다. 따라서 한국여성 현대문학사에서 제1기의 여성문인인 김명순, 나혜석이 단편소설 내지 콩트로 당대 사회구조속의 여성문제를 단편적으로 다루었다고 한다면, 비록 역사소설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당대 모순의 확대된 문제로써 박화성의 ?백화? 연재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3. 작품1) 하수도 공사(1) 줄거리뼈가 닳도록 외상 일을 하다가 동맹 파업을 하게 된 노동자들의 대표로 선출된 동권의 강력한 호소로 일이 해결되고, 삼백 명의 노동자들은 책임자인 북천의 언약을 듣고서야 파업을 풀 수 있었다. 이로써 동권은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게 된다. 어느 날 동권은 길을 가는 도중, 회순의 친구이자 동권의 애인격인 용희를 만난다. 용희의 계획적인 의도로 그녀의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된다. 동권이나 용희는 이렇게 다정하게 앉아 오순도순 말을 나누는 것이 꿈과도 같이 생각되었다.그러나 동권은 용희와 계층 간의 갈등을 느끼게 되었고 그러한 계층 간의 갈등이 용희를 적극적으로 대할 수 없게 작용하게 된다. 한편, 하수도 공사의 임금을 지불할 날이 되자, 노동자들은 임금을 받으러 약속 장소인 ×상점으로 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격렬한 항의에도 임금을 계속 미루어 온 업자 측에서는 이 날도 3일 이내에 전액을 지불하겠다는 조건 하에 전체 금액에서 크게 모자라는 6백원을 지불한다. 그러나 3일 이내에 전액을 지불하겠다는 약속동안 검속 취조했으나 소득이 없자 정씨를 검거하려는 것이다.정씨를 잃어버린 후로 동권은 자기의 온몸을 의지하고 있던 골격이 부서진 듯이 마음을 지탱할 수가 없었다. 12월 하순, 만 일년만에 하수도 공사는 완전히 끝났다.한편, 동권은 용희를 탐내던, 당시 권력층의 아들(대학생)이 용희 부모에게 청혼한 사실을 알게 되자 용희의 진심을 알고자 그녀를 방문한다. 동권은 용희가 그자와의 결혼을 결코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결혼 문제보다 더 절박한 문제로 자신은 이곳을 떠나야 함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이튿날 용희는 이별과 만남의 암시를 주는 한 장의 편지를 받는다. 결국 동권은 용희에게 스스로 개척하는 여성이 될 것을 당부한 뒤 고향을 떠나게 된다.(2) 요점정리ㆍ시점 : 3인칭 전지적 시점.ㆍ배경 : 목포항의 하수도 공사장.ㆍ주제 : 빈한한 사회 현실과 계층간의 갈등 표출.ㆍ인물 : 동권 - 일본 동경에서 고학으로 공부한 가난한 지식인 청년.용희 - 동권의 이웃에 살며 동권을 사랑하는 처녀.(3) 이해와 감상이 작품은 목포 항구에서 벌어지는 하수도 공사를 소재로 다룬 역작이다. 하수도 공사를 실업자 구제라는 명목으로 벌였으나 결국은 청부업자나 자본주의자들의 이익으로 돌아가고 말았다는 비화이다. 작가 자신도 말했듯이 일종의 체험 소설의 성격을 지닌 작품이다.박화성이 몸소 공사장에 출두해서 생생한 취재를 하여 창작한 만큼 는 사실성을 충분히 살려내고 있다. 그녀의 초기 작품은 이같이 대부분 공장이나 농촌을 소재로 하여 빈민들의 참상을 통하여 불붙는 의기를 드러내는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또한, 현실을 힘차게 고발하면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긍정적인 결말을 보여 주는 것도 박화성의 특징이라 하겠다.어쨌든 이 작품의 문학사적 가치 또한 노동자를 통하여 현실 문제를 제기했다는 차원에서 사회의식의 노정을 엿볼 수 있는 점과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는 결말 처리가 자연스럽다는 데 있다.(4) 리뷰는 작가의 고향 목포에서 유달산록(山麓=산기슭)을 잘라 대규모의 하수도를년 만에 정의 가족과 함께 귀국했다. 동경으로 떠나기 전부터 기울기만 하던 동권의 집 가세는 이제 오직 목수인 아버지의 날품팔이만으로 호구하는 형편이 되어 있어 동권은 할 수 없이 노동판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자들은 밀린 임금을 받는데 정의 지도와 동권의 활약이 컸음은 물론이다.장맛비가 계속되어 일터에 나갈 수 없을 때 동권은 노동자들의 한바?飯場?로 가서 알아듣기 쉬운 말로 잉여가치의 이야기도 하고 계급적 초등지식을 넣어주거나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할 때 그러기에 그렇게 한탄들만 할 것이 아니라 당신들도 생각이 있어야 한단 말이요 하고 일러주기도 한다.의 인물구조는 마치 사제관계의 고리처럼 보인다. 동경에서 사회과학 연구를 하다가 귀향한 정이라는 지도적 인물이 동권과 사상적 계보에서 사제관계로 변모했고, 동권과 노동자들의 관계도 동료에서 사제관계로 변화되며, 동권과 융희의 연인관계도 사제관계로 된다. 여동생 희순과 동권의 관계 역시 사제관계 형태가 된다. 사제관계라 이름 할 수 있는 이러한 인물구조란 지도하는 내용의 절대성을 전제로 한다. 잉여가치, 계급적 초보지식 등과 부하린, 레닌, 막츠 등의 이름에서 이 지도내용이 마르크시즘인 것을 알아차리게 되나 이 지도내용은 동권이의 행위를 통해서 그 성격이 보다 선명해진다. 작품 첫 부분, 동권이가 일인 경찰서장을 만날 때, 통역을 통하여 말을 하게 되는 자리인지라 서동권이는 속으로 합당치 못하게 생각하였다. 서장이 자기 동무들에게는 하대하는 말을 쓰고 중정대리에게는 경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단히 비위에 거슬렸다 고 하는 데서 조선인을 하대하는 일인서장에게 분대하는 것이라든지, 가난하고 무력한 노동자들에게 보이는 친화감 등에서 항일 저항의식과 반 부르주아적 의식을 살펴보게 된다.더구나 몇 차례 격문사건으로 정이 체포, 입감된다든가 이 격문사건에 자신을 참여시키지 않았음을 섭섭하게 여긴 동권이 고향을 떠나 역시 당당한 일꾼이 되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맥락에서, 이들이 식민지 현실을 부정하고 진다.
    인문/어학| 2010.06.14| 6페이지| 1,000원| 조회(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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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나다 코리안
    '가나다 KOREAN’교재에 대해서본 교재는 영문판, 중국어판, 일본어판 총 삼개국어의 언어로 출판 되며 초급1?2, 중급1?2, 고급1?2 전6권의 책으로 되어 있고 대상은 초등교육용 이다. 대부분의 내용이 실생활 용어로 구성된 회화문으로 되어 있어 기본 적으로 말하기와 듣기 교육이 중점으로 되어있다. 거기에 회화의 내용들도 일상적인 내용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서 배운 즉시 활용이 용이하고 한국문화도 함께 체험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좋은 듯하다. 총 25개의 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과부터 25과까지 기본적인 인사로부터 시작해 안부 묻기와 길 묻기 시간 묻기 약속잡기에 물건구매 까지 구성 되어 있으며 각과는 회화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데, 5개의 과가 끝날 때 마다 읽기, 쓰기, 듣기로 나누어 복습 및 학습자가 교재 학습내용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반복 학습하는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좀 더 자세하게 교재의 내용을 분석하면 각과의 기본이 되는 회화의 내용은 특정한 상황과 배경이 사전에 제시 되어 있고 등장인물이 등장 하여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을 바탕으로 한 단락의 대화가 끝나고 나면 그 후로는 대화 내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단어들의 정리 및 설명 그리고 대화 속에 나타난 문법들을 설명하며 모든 설명이 끝난 뒷장으로는 앞서 배운 형식과 비슷한 유형으로 학습자 스스로 생각해서 풀어 보는 문제들이 뒤 따른다. 이렇게 하나의 과가 끝나고 나면 쉬어가는 부분으로 한국의 문화 또는 한국에 대한 정보를 실어 학습자의 집중력 환기와 한국어에 대한 흥미를 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다. 이런 한국문화 코너의 내용들로는 한국의 가족명칭 설명, 세계지도 속에 있는 한국, 또 각종 스포츠 한국 명칭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가나다 KOREAN’은 ‘청화 식 교수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각 과에서 여러 상황을 부여하여 다양한 분야의 대화를 할 수 있어 학습자에게 실제적인 한국어 사용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리고 회화에 그치지 않고 단어 정리와 문법을 함께 수록하여 학습자의 한국어 응용력을 높이 수 있어 유익하긴 하지만 초급 수준에서 ‘ㄷ’, ‘ㄹ’등의 불규칙 등의 초급수준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포함되어 있어 조금은 수준 측정을 잘 못 했다는 생각도 든다. 또 아무래도 회화식의 정해진 내용에 청화이다 보니 학습자의 사고에 제한을 두어 창의적이 학습과는 약간 거리가 있으며 어려운 문법 설명과 회화내용이 한국문화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교사 없이 학습자 혼자서 학습하기에는 약간 어려움이 따를 듯 하다. 초급편이기 때문에 이미 짜여 진 대화 내용을 학습자가 역할을 바꿔가며 이야기 하고 들으며 반복 숙달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하나 책의 후반부 정도에서는 학습자에게 과제를 주고 그 과제를 수행하면서 스스로 대화 내용을 만들어 보게 하는 방식을 한과에서 두과정도 넣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한국어 문화소개에 관한 것들도 한국의 산 소개, 가족명칭 소개 같은 내용도 좋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다른 나라와는 다른 좀 특이한 내용들은 소재로 하였다면 좀 더 학습자의 흥미를 유도하고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행여나 할 수 있는 실수들도 본 교재의 학습을 통하여 예방 하여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 하며 보완점을 하나 더 추가 하자면 초급과정의 교재이기 때문에 회화와 문법의 내용은 좀 딱딱 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중간 중간 게임을 첨가하거나 노래를 이용하여 교수의 보충으로 사용하였다면 학습자도 한국어 학습에 더 흥미를 가졌을 것이고 어렵고 재미없는 암기부분이나 문법 부분도 좀 더 쉽고 즐겁게 학습자가 학습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인문/어학| 2010.05.22| 1페이지| 1,000원| 조회(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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