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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배구의 이해
    0. 들어가며배구는 공을 이용하여 남녀모두 쉽게 접할 수 있는 운동이다. 따라서 학교에 입학 한 후 누구나 경험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배구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두 팀이 볼을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고 서로 쳐서 상대방 팀의 코트에 떨어지게 하는 구기경기이다. 발리볼이라고도 하며, 6인제와 9인제가 있으며, 한 팀은 공을 3번 접촉한 뒤에는 반드시 그물 너머로 되돌려보내야 한다.1. 역사1) 배구의 역사1895년 미국의 매사추세츠주(Massachusetts) 홀리오크시(Holyoke)에 있는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기독교청년회) 체육부장인 윌리엄 모건(William Morgan)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서 창안하였다. 처음에는 1팀이 5명으로 이루어져 21점제로 시작되었으나, 1918년 6인제·15점제·로테이션제라는 6인제 국제규칙이 확립되었으며, 2000년 1월 1부터는 새로운 규칙이 제정되어 국제경기가 진행된다.1917년 무렵 YMCA를 통해, 또는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군을 통해 유럽지역에 전해졌으며, 1916년에는 YMCA와 미국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대학체육협회)가 공동으로 규정집을 발행하였다. 1922년 미국 최초의 전미배구대회가 YMCA 전미체육위원회 주최로 뉴욕시(New York) 브루클린(Brooklyn) 중앙YMCA에서 열렸다.1920년대 중엽에는 비공식적인 전미배구위원회가 결성되었으며, 1928년 USVBA(United States Volleyball Association:미국배구협회)가 결성되어 규칙을 제정하고 경기를 관장하는 기구로 인정받았다. 1928년부터 USVBA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4년과 1945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전미남자배구선수권대회와 35세 이상이 참여하는 전미성인 남자배구선수권대회를 개최하였다.여자대회는 1949년에 시작되었고 30세 이상이 참여하는 성인여자 대회는 1977년에 추가국인 반하트(Banhart)에 의해 12인제 배구가 처음으로 소개되었다. 또 하나는 당시 제일고보 체육교사인 스기하라가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1925년 10월 4일 경성 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지금의 경기여자고등학교) 교정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전조선신문사 주최로 제1회 전조선 배구·농구대회가 열렸다.1928년 조선체육협회 주체로 10월에 거행된 조선신궁종합경기대회 때부터 배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지만, 이때부터 광복 전까지는 학교체육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기내용면에서도 상당히 발전하였고, 참가팀과 대회 수도 늘어났다. 이 시기에 활약했던 선수들은 모두 해방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배구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 선수들 가운데 철도국의 박계조와 안종호는 우리 배구사에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박계조의 배구에 대한 열정은 1962년 박계조배 배구대회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안종호는 한국사상 처음으로 심판이 되었다. 1945년 11월 20일 KVA(Korea Volleyball Association:대한배구협회)가 발족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배구열은 전국체육대회와 1956년 10월에 창설된 전국남녀 종별 선수권대회 등을 통해서 9인조 배구의 전성기가 펼쳐졌으며, 1960년에는 6인제로 바뀌었다.1958년 5월 제3회 아시아경기대회에는 6인제만을 출전시켜 남녀 모두 은메달을 차지함으로써 아시아에서의 2위의 지위를 확보했으며, 국내에서는 1959년 제40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처음으로 6인제 경기를 정식으로 채택하였다. 또한 1959년 10월에는 정식으로 FIVB(Fdration Internationale de Volleyball:국제배구연맹)에 가입하였다. 1964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일본 도쿄에서 열린 올림픽경기대회에 참가하여 남자 10위와 여자 6위의 성적을 거두었다.1969년 12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3회 아시아 청소년배구대회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일본을 물리치고 남녀팀이 함께 우승하였으며 1970년 코트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열기를 띠었다. 그동안 파워와 조직력을 위주로 했던 플레이는 세계적 기류에 맞춘 힘과 높이의 배구로 전환되었다.1976년 제21회 몬트리올(Montreal) 올림픽경기대회에서 한국 구기사상 처음으로 여자배구에서 동메달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2000년 제27회 시드니(Sydney) 올림픽경기대회에서 남자배구는 9위를 하였으며, 여자배구는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24년 만에 메달획득에 도전했으나 힘과 높이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여 출전 12개국 가운데 8위에 그쳤다.2000년 현재 남자실업팀에 7개팀, 남자대학팀에 7개팀, 여자일반부에 5개 팀 등 19개 팀이 활동하고 있다.2. 시설 ·용구1) 코트6인제 경기에서 코트는 남녀 모두 길이 18m, 너비 9m의 직사각형 구획선으로 둘러싸였으며, 구획선으로부터 최소한 3m의 프리존이 있어야 하고 코트 면위 7m까지에는 어떠한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된다. FIVB(Fdration Internationale de Volleyball:국제배구연맹)이 주최하는 국제경기에서 프리존은 사이드라인으로부터 최소한 5m, 엔드라인으로 부터 8m가 되어야 하며 또한 코트 면위는 최소한 12.5m까지의 공간에 어떠한 장애물도 있어서는 안된다. 올림픽경기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사이드라인으로부터 6m, 엔드라인으로부터 8m가 되어야 한다. 코트의 중앙에는 코트를 둘로 가르는 센터라인이 있고, 그 센터라인에서 각각의 엔드라인 쪽으로 3m 떨어진 곳에 어택라인이 그어져 있다. 어택라인은 룰에 정해져 있는 후열 선수가 어택라인보다도 앞으로 나와 네트 쪽의 지역에서 공격하거나 블로킹하는 동작을 방지하기 위한 표시이다.선수들은 경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는 중앙선을 넘어갈 수 없으며, 구획선은 흰색이어야 하고 코트와 프리존의 색은 각각 달라야 한다. 코트의 표면은 균일하고 수평하며 평탄해야 한다. 경기자가 부상을 당할 위험물이 있어서는 안되며, 거칠거나 젖었거나 미끄러운 표면에서의 경기는 금에어리어 라인 등은 긋지 않는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네트를 맬 기둥과 심판이 설 자리를 마련하려면 실외코트인 경우 구획선에서 3m 이내에, 실내코트인 경우 구획선에서 2m 이내에 장애물이 있어서는 안된다.또한 마음놓고 공을 서브하고 리시브하여 넘길 때 공이 천장에 닿지 않고 경기를 하려면 코트 위에 최소한 7m 높이까지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또한 국제경기 때에는 사이드라인으로부터 5m, 엔드라인으로부터 8m의 프리온이 있어야 하며, 코트 면당 12.5m까지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9인제 경기에서 코트는 서브존이 없으며, 양 사이드라인 내 엔드라인 뒤쪽에서라면 어디에서나 서브할 수 있다. 어택라인은 없으며, 페니트레이션 폴트는 적용하지 않는다. 사이드라인으로부터 최소 3m, 엔드라인으로부터 최소 5m의 프리존을 둔다.2) 네트네트의 높이는 네트 꼭대기에서 코트 중앙의 바닥까지를 말하며, 청소년이나 낮은 네트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6인제인 경우 남자일반은 2.43m, 여자일반은 2.24m, 고등학생 남자 2.4m, 고등학생 여자 2.2m, 중학생 남자 2.3m, 중학생 여자 2.15m, 초등학생 2m이다. 9인제의 경우 네트 중앙에서 남자일반 2.38m, 여자일반 2.15m, 고등학생 남자 2.25m, 고등학생 여자 2.05m, 중학생 남자 2.15m, 중학생 여자 2m, 초등학생 1.9m이다.네트의 길이는 9.5m, 너비는 1m이며, 그물망은 가로와 세로 각 10㎝이며 네트 상단에 5㎝ 너비의 밴드를 두 겹으로 붙여야 한다. 네트는 어느 부분이든 똑같은 높이가 되게 수평으로 쳐야 하며, 양쪽 사이드라인 곧바로 위 부분에는 네트 위 끝에서부터 아래 끝까지 너비 5㎝의 흰 천으로 된 사이드마커가 부착되어 있어, 심판들은 서브된 공이나 상대편 코트로 넘어간 공이 그 바깥쪽 가장자리를 따라 네트 위로 80㎝쯤 뻗어 있는 유연한 안테나 안으로 들어갔는지 바깥쪽으로 나갔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안테나는 길이 1.8m, 지름 약 1㎝의 것으다양한 색상이 조합된 것도 사용되고 있다. 공식 국제경기에서 사용되는 볼의 외피의 재질이나 색상 등은 FIVB(Fdration Inetrnationle de Volleyball:국제배구연맹)의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공의 둘레는 65∼67㎝이어야 하며, 무게는 260∼280g이어야 한다. 볼의 내부 기압은 0.30∼0.325㎏/㎝(294.3∼318.82mbar 또는 hpa)이어야 한다. 배구경기에 사용되는 모든 볼은 둘레·무게·기압·형태·색상 등이 같은 규격이어야 한다. FIVB에서 주최하는 국제경기에서는 3개의 볼이 사용된다. 이 경우 6명의 볼키퍼는 프리존의 각 코너에 1명씩, 그리고 주심과 부심뒤에 1명씩 있게 된다.9인제인 경우 볼의 바깥둘레는 일반남녀 및 대학생 66(±1)cm, 남녀 고등학생 63(±1)cm, 남녀 중학생 63(±1)cm이고, 무게는 일반남녀 및 대학생 270(±10)g, 남녀 고등학생 250(±10)g, 남녀 중학생 200(±10)g이다.4) 복장팀마다 통일된 청결한 복장으로 출전하여야 한다. 선수는 셔츠·팬츠 및 뒤꿈치가 없는 고무나 피혁제품으로 된 가벼운 신발을 갖추어야 한다. 또한 시합중에 부상의 원인이 될 염려가 있는 보석·핀·팔찌·팔목시계나 고리가 달린 혁대 등을 부착해서는 안된다. 선수는 가슴과 등에 번호를 붙이는데 1∼15까지의 숫자를 골라서 쓴다. 등번호는 글자너비 2㎝, 글자높이 15㎝, 가슴번호는 글자너비 2㎝, 글자높이 8∼15㎝로 되어 있어야 한다. 주장선수는 왼쪽 가슴에 번호색과 같은 것으로 가로 8㎝, 너비 1.5㎝의 주장마크를 달아야 한다.3. 경기방법 ·규칙1999년 9월 7∼8일 스위스 로잔(Lausanne)에서 열린 FIVB(Fdration Internationle de Volleyball:국제배구연맹) 경기규칙위원회에서 새롭게 경기방법과 규칙이 개정되어서 2000년 1월 1일부터 공식적으로 세계 및 국제대회와 모든 국내대회에서 의무적으로 적용되었다.첫째, 랠리포인트 스코링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즉 매다.
    예체능| 2006.12.17| 6페이지| 1,000원| 조회(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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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감상문
    불필요한 질문을 던진 ‘일요일의 불청객’을 관람하고보통 공연장을 찾을때는 원하는 것을 선택하여 찾아간다. 이번 연극은 과제였다. 오랜만에 보게되는 연극이라는 설레임은 있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사전에 연극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가려했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백지상태에서 찾은 서원대학교는 우리학교와는 다르게 북적이는 학생들과 활기찬 마당이 보였다. 흰 공연복을 너풀거리며 공연을 홍보하러 다니는 배우들의 모습이 보였다. 잊고 있던 대학 문화를 통해 예전에 다녔던 대학 생각이 났다. 대학생이 되면 연극무대에 서보고 싶다는 학창시절의 꿈 때문에 새내기때 우리극회 ‘살판’이라는 동아리방의 문을 두드렸었다. 결국 무대에는 한 번도 서보지 못하고 운동권 선배들과 각별한 친분만 쌓여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유인물을 들고 뛰어다니며 갖가지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났다.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것,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 ,낯선 타인에게 말을 건다는 것에 두려움보다는 기대로 설레여 했던 그리 오래되지 않은 기억들이다.공연장은 역시나 소극장형식이었다. 무대 한 켠에 마련된 음악을 담당하는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직접 건반을 두드리며 음악을 삽입하는 모습은 색달라 보였다. 저러다가 실수를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추어들이 하는 공연이라 당연히 실수를 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모양이다. 몇몇 배우들의 발성이나 부정확한 발음은 아쉬운 부분이 였지만 극의 중심을 이끌어가는 주인공 ‘이주몽’역을 맡은 배우의 진지한 태도는 가슴에 남았다. ‘이주몽’은 남의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심지어 한집에 사는 아내에게 조차 일상을 들여보이고 대화하며 생각을 공유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안전선을 넘어버리면 적당히 돌려보낸 후 세상을 원망한다. 나 좀 가만히 내버려두지 못하겠냐면서 말이다. 이주몽은 결국 꿈에서 벌을 받는다. 어처구니 없이 범죄자가 되어 감옥에 갖혀 사형을 선고받게된다. 그가 자신의 상황을 변호할 수 없는 동안 이주몽의 주변인간들은 멋대로 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는다. 아무도 그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주몽을 곤란에 빠뜨린 그림자는 “너는 나쁜놈”이라고 말한다. 아무에게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주몽은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인다. 죄를 뉘우치는 것도 같고 체념하는 것도 같다.어려워 지기 시작했다. 남에게 도움은 주지 않았지만 피해도 주지 않은 그의 삶이 비난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앞에서 나는 망설이기 시작했다. 청주교대에서 늦은 출발을 하는 나에게 새롭게 맺어지는 인간관계는 부담스러운 일이였다. 누군가가 내 안에 들어 오려 시도했을때 사람에게 상처받았던 지난 기억을 애써 끄집어내며 밀쳐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내 것을 내놓고 베푼다는 것에 인색해진 자신을 발견하고도 모른척 짐짓 혼자 살기에도 버거운 세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 하곤했다. 그런 나에게 ‘일요일의 불청객’은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개구리얼굴을 하고 이주몽 주변을 애워싸고 그의 말은 들어보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대는 사람들은 섬뜩해보였다. 연극을 다 본 후에야 든 생각이지만 내가 이주몽이 아닌 개구리들 중 한명이 되어 외적인 것으로 누군가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판단해 버린 경험이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주몽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주몽의 주변인이기도 한 것이다. 연극은 나에게 답은 주지 않고 불필요한 질문을 던졌다.
    독후감/창작| 2006.12.17| 1페이지| 1,000원| 조회(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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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가족
    ‘모두가 행복한 가족만들기’페미니즘 시각으로 본 가족1.들어가며어린이날 행사나 실습기간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서 꿈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몇몇의 적지 않은 아이들은 좋은 엄마와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그렇게 좋은 가족을 만들고 싶다는 욕망, 가족의 좋은 구성원이 되고 싶다는 욕망은 끊임없이 재탄생된다. 태어나면서 부터 한 가족에 속해서 자란 후 적당한 시기가 되면 새로운 가족을 꾸린다. 우리는 이 단순한 명제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가족이라는 단어가 그리는 따뜻함, 편안함, 안식처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갈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제는 가족의 해체가 화두가 되고 있는 시대다. 가족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증거로 높은 이혼률, 편부모가족의 증가, 독신자의 증가, 기혼여성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어머니들의 취업증가 등을 이야기 한다. 가족해체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족의 실체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부여된 이미지인 따뜻한 안식처가 환상일 뿐이라면 그 환상이 권위와 복종의 관계로 누군가의 처절한 희생에 기반 하여 만들어 진 것이라면 우리는 과연 그 환상을 지켜내는 것이 옳은가?2.본론가. 가족이란 무엇인가전통적으로 가족은 결혼이나 혈연관계로 형성된 경제적 단위이나 주거생활 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호적법에서 가구는 ‘주거와 가계를 같이하는 자’ 또는 ‘독신으로서 주거를 가지고 단독생활을 영위하는 자’를 말한다. 가구를 이와 같이 정의할 때, 가족은 1가구를 구성하는 가족과 가족원이 2개 또는 그 이상의 가구에 나뉘어 속하는 가족으로 구분하여 생각할 수 있다.인류학자 머독은 가족은 “ 주거를 공동으로 하고 경제적 협동과 출산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 이라고 규정하면서 사회적 안정된 성관계를 갖는 최소한 2인의 남녀를 포함한 성인들과 그들이 출산 혹은 입양한 자녀들이 포함된다고 하였다. 이에 비해 이효재는 가족은 “ 일상적인 생활을 공동으로 영위하는 부부와 자녀아니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가족을 연대의식에 의해 정의함으로써 다양한 가족형태를 포괄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가족을 기능에 의해 정의하는 대표적인 입장은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적 가족관이다.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적 입장은 가족이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래서 가족내 의 남편과 아내의 성별분업은 기능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본다. 아울러 가족은 기존의 사회체제를 안정시키고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가치관을 자녀에게 내면화 시키는 사회화의 기능을 한다고 보았다.또 다른 기능주의자 말리노브스키의 기능주의 이론은 가족이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인 자녀양육을 수행해내는 기구이기 때문에 인간의 보편적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녀양육이라는 기능에서 도출된 증거들을 주장했다. 기능수행에 관련된 그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첫째 가족이 자녀양육의 책임을 수행하려면 구성원과 비구성원을 구별함으로써 자녀양육에 대한 책임이 누군가에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이 경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둘째 가족원들이 함께 있을 수 있으며 자녀 양육에 관련된 일상적인 작업이 이루어 질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셋째 가족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애정을 느낀다고 지적하며 오랫동안 자녀양육에 힘쓴 부모들은 자신의 애정과 자녀의 애정을 통해 보상을 받는다고 했다.이렇듯 가족을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제도로 규정하는 것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오고 있는데 말리노브스키와 같은 기능주의가 같는 결함은 어떠한 제도가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능이 있다는 것은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기능이 수행되지 않거나 그 기능 때문에 제도가 존속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이러한 가족의 기능은 산업화와 함께 변화하였다. 광범위한 친족체계 속에서 산업화와 함께 핵가족이 등장했고 가족은 사회질서의 기본 세포로 등장했다. 과거에 성적기능 , 성원의 재생산 양육 경제적 기능 교육적 기능, 종교적 기능등 다양한 기능들을 포괄하고 있었지만 직장과 가정이 분리되면서 경제적기관들로 이전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가족의 기능으로 성적기능과 ‘휴식처’ ‘안식처’로서의 정서적 기능이 강조되고 있다.가족을 바라보는 관점들을 살펴보면서 19세기 후반 등장한 새로운 관점들 중 하나인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갖는 관점은 우리에게 시사 되는 바가 크다.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라 가족이 변화했으며 19세기 가족의 형태와 문제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정한 형태로 보았다. 전가족의 임노동자화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고용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가족의 해체는 우리에게 환상처럼 심어져 있는 부르주아의 가족에 대한 예찬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의해 등장하는 가족의 구조를 해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엥겔스는 계급별 가족의 실상을 보여주면서 가족 안에서 여성의 위치를 규명하는데 힘을 쏟았다. 엥겔스는 부르주아 계급의 가족에서 여성은 착취자의 이미지 보다는 노예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보았다. 여성의 살림살이는 공적 성격을 상실하면서 사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인같이 되었다고 보면서 여성의 결혼을 장기적인 매춘으로까지 보고 있다.19세기 주장된 한 학자의 이론이 매우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쉽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가족 안에서 여성에게 주어진 의무와 역할이 피착취자로 규명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라는 가사노동은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여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이루어 진다. 더불어 가족안의 여성의 역할은‘어머니’라는 이름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천부적으로 타고난 능력과 의무인 것처럼 부여되고 전업주부가 아닌 일하는 여성일 경우에는 일과 가사 일을 모두 병행해야 하는 과업이 부여되기까지 하는 것이다.나. 가족이데올로기의 모순비뚤어진 모성신화몇 년 전 인기를 끌며 신문에 연재되었던 ‘광수생각’이라는 4컷 만화에서 ‘어머니를 닮는 아내’라는 만화가 실린 적이 있다. 요지를 살펴보면 어머니는 언제나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시고는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할 때 불고기 반찬을 싫어하고 생선은 머리 부분만 좋아한다는 내용과 함께적으로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 가구중심으로 수행되는 생산노동이 점차 줄어듦으로써 공사의 분리는 더욱 공고해졌다. 여성과 남성의 영역이 더욱 공고하게 분리됨에 따라서 여성의 삶은 아이, 남편, 집으로 한정하게 되었다. 집안에 머무르는 여성은 이상적으로 말해서 정서적 생활을 제공하는 전문가이며 비인간적인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사회로부터 가족원을 안락하게 쉴 수 있게 만드는 전문가였다. 이런 이상적인 여성상은 부르주아계층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넓게 퍼져나갔다. 이러한 여성의 역할은 급변하는 사회에 안정감을 부여해주는 것으로 평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적영역도 의사나 교육자와 같은 전문가들에 의해서 여성들만이 공유하고 전수했던 전문지식들이 잠식당하기 시작하면서 여성들은 자율성을 상실하는 대신 새로운 역할이 강조되게 된다. 그것은 가정교육의 중요성과 가정의 신성화로 이어졌으며 가정교육의 책임은 여성에게 떨어졌다. 여성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모성신화이다.비뚤어진 모성신화는 여성의 불행에서 그치지 않고 자녀에게 까지 이어진다. 어머니의 희생과 그로인한 보상심리를 충족시켜주어야 할 의무가 자녀에게 부여되는 것이다. 모성이 여성의 본능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서있다. 필립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을 보면 모성이란 단어가 옥스퍼드 사전에 등록된 것은 18세기 이후라고 한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태어난 영아가 약하면 영아살해가 빈번히 일어났고 중세 르네상스시대에는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지 않고 유모 손에서 자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런 과거에 지금과 같은 절대적인모성이 존재했을까? 아동이 자신의 이름을 명명받는 순간에 모성이란 단어도 같이 형성되었다고 생각한다. 근대이후 가족체계라는 것이 산업인력으로서의 충원을 위해 여성을 사적 영역으로 밀어 넣고 모성이란 단어를 탄생시켰다고 생각한다. 백번 양보하여 임신을 통하여 열 달 동안 몸의 일부처럼 아이를 품고 있었던 여성이 갖는 애정은 어느 정도의 친밀감과 애착성 인 것처럼 당연시 되며 강요되는 사회 통념에 있다.가족안의 파시즘조선시대 이후 한국 사회는 대체로 부계혈통주의를 따르면서 장자상속을 우선시 해왔다. 그런데 일제시대 이후 호주제도가 법제화 되면서 부계중심 장자중심의 혈통체계가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가부장권이 강화되고 남성 중심의 문화가 강조되어 여성들의 권리가 억압받아 왔다. 부계혈통을 특권화 하고 있는 호주제도는 산업화되고 민주화된 현대사회에서 많은 성차별적인 문제점들을 낳았으며 여성들의 지속적인 ‘호주제 폐지운동’에 힘입어 ‘호주제 폐지’를 현실화 하기에 이르렀다. 혈연중심주의 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파시즘의 문화를 양산한다. 혈연중심주의 적인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파시즘을 증명하는 극단적인 사례는 바로 가정폭력이다. ‘북어와 여자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한다.’ 라는 말을 기억하는가. 비유를 통해 하나의 관용어구가 만들어질 만큼 가족 안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행 할 수 있는 권한은 폭력에 까지 미쳤다. 혈연 중심의 가부장적인 가족제도 안에서 우두머리 격인 가부장에게 종속된 여성과 자녀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획득하기 어렵다. 우리는 수세기에 걸쳐 남성은 한 개인으로 여겨지는 반면 여성은 전체를 한 무리로 취급할 수 있다는 인식이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여성을 어떤 역할 수행자로 생각하려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성은 이러한 체제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비난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근본적으로 변화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관점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저울질하면서 얻고 있는 이득보다는 감당해야 하는 부담감과 책임감을 더 크게 인식한다. 그리고 그러한 부담감과 책임감을 안고 있는 것이 스스로의 우월한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자위한다. 결과적으로 남성은 자신들의 우월한 지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남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존경, 이득, 기회가 조금만 손상되어도 그 손실을 중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자신의 이익이나 기득권 유지가 예전 같지 않다고 생뿐이다.
    사회과학| 2006.12.17| 5페이지| 1,000원| 조회(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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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과학]수상한 과학을 읽고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수상한 과학을 읽고얼마 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팀에 난자를 제공했던 여성 2명이 국가와 난자채취 의료기관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한 기사를 접하고 며칠 후 서울 여의도에 갔다가 황우석 박사 지지자들의 천막농성 현장을 보게 되었는데 상반된 두 상황이 현재 생명공학을 둘러싼 혼란에 빠진 우리들의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물론 ‘황우석 사태’가 신문지 1면을 장식하던 때는 지났다. ‘영웅’으로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던 사람이 사기꾼으로까지 몰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여성의 난자 매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일단락 된 듯 보이지만 논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난자를 제공했던 피해 여성 2명은 난자 제공 후 심각한 신체적 휴우증에 시달리고 있고 불임이 될 수도 있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다.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확실한 정보도 없이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고 자신의 난자를 제공한 탓에 그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참으로 답답했다. 무지와 맹목적인 믿음이 나은 이러한 참담한 결과의 피해자는 비단 이 두 여성 뿐이 아닐 것이다. 과학의 힘이 인간에게 장밋빛 미래를 선사 할 것이라는 환상은 우리 모두에게 주입되어지고 있으며 이 순간에도 지구 곳곳에서는 이러한 맹목적 믿음으로 자신의 몸을 기꺼이 실험에 제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몇 년 전부터 생명공학은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신의 영역이라 믿었던 생명을 인간이 자의대로 다룰 수 있다는 주장은 분명 매력적이다. 생명공학이라고 하면 황우석 사태나 복제인간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고 우리와는 아직 먼 얘기라 느끼기 때문인지 그 이면에 숨겨진 위험성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도 무지한 것 같다.그러나 생명공학으로 인해 우리가 선택해야 할 많은 것들은 이미 코 앞에 와 있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 유전자 조작을 한 콩과 옥수수가 무방비로 수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지만 곧 잠잠해진 일이 있다. 유전자 조작 생물체는 기존의 생물체 속에 전혀 다른 생물체의 유전자를 끼워 넣음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성질을 갖도록 한 생물체를 말한다. 그런데 농업 분야에서는 유전자 조작 농작물이 주로 제초제나 해충에 저항성을 갖도록 만들어진다. 즉 농약을 한번만 뿌리면 잡초는 죽어도 농작물은 끄덕 없도록 만들어 지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적은 양의 농약을 사용하여도 농작물을 잡초와 해충으로부터 지킬 수 있으니 농약 사용량은 줄고 농작물 생산량은 늘어나는 획기적인 발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자 조작 생물체를 개발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과 생명공학자들의 이러한 논리에 반하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유전자 조작 생물체가 갖고 있는 저항성 유전자는 생태계 속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수상한 과학’에서 제시하고 있는 ‘멕시코의 옥수수 소동’ 이 이러한 가능성의 증거라 하겠다. 이런 가능성은 잡초나 해충도 이러한 저항성 유전자를 갖게 만들 수 있으며 이는 더 강력한 농약을 사용하게 될 위험을 부른다. 이 뿐 만 아니라 유전자 조작 식품을 인간이 먹을 경우 어떠한 바이러스나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에 대하여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부족한 정보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조작 식품은 이미 우리 밥상에 올라와 있다. 우리 두부의 80% 이상이 유전자 조작식품이라는 통계는 2000년 이전의 발표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들이 어떤 독성을 갖고 있는지 모르는 채 열심히 웰빙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이런 상황이 답답한 노릇이긴 하지만 유전자 조작 식품을 골라 낼 수 있는 능력이 일반 사람에게는 없다. 식품의 포장에 적절한 표기가 되어있지 않으므로 가려낼 재간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신체에 해가 가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골라 먹을 수 있는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 조차도 박탈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당장 밥상에 올라오는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서 문제가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숨가쁘게 진보하고 있는 과학으로 인해 복제인간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공상 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단어가 아니다. 복제 양 ‘돌리’부터 우리의 복제 송아지 ‘ 영롱이’의 등장까지 언론에서는 성공에 기뻐하고 축하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졌다. ‘황우석 사태’때는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한 가수가 다시 걸을 수 있음에 대한 희망을 내비쳤다. 이렇게 배아복제는 인간의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연구되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겠지만 아마도 지구 곳곳의 연구는 여전히 활발할 것이다. 난자 추출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심각하지만 복제된 배아에게 어떤 지위를 줄 것인가도 문제다. 더 나아가 인간이 복제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동물을 비롯한 생명체가 복제되어 모체와 동등한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생명체의 가치는 모체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이러한 많은 논란의 정점에 서 있지만 과학의 힘은 거스를 수 없다며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는 생명과학기술의 근본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최근 이야기 하고 있는 'FTA'와도 그 연관을 찾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상품을 파는 곳이라면 세계 어디에도 경계가 없어야 한다는 주장아래 다국적기업은 더 많은 이율창출을 위해 기계적으로 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에 따라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안에서 생명윤리가 지켜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이고 생명과 자연이 상품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 가능 할 수 있는 사상은 이분법적 세계관에서 그 뿌리를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고로 존재한다.’ 라는 명제로 유명한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주체인 나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 즉 자연과 환경등을 죽어있는 물체들로 대상화했다. 생각하고 있는 정신이 중요하고 정신과 육체는 불리되어 인간과 그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 분리된 세계관은 무엇이든 돈만 있으면 구입 가능하다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고 이러한 가치관은 자연과 생명을 수단으로 바라보게 한다.생명과학기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배아복제가 난치병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나 유전자 조작식품이 인류의 식량을 증대 시킬 수 있다는 이유를 앞세워 실험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인류에게 주어져 있는 식량의 양은 현재 인류의 1.5배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수준이다. 지구 한편에서는 비참하게 굶어죽는 아이들이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다이어트와 음식물쓰레기에 골치를 썪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 않는가. 이것이 과연 부족한 식량의 문제인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증대된 식량의 양이 이러한 양극화의 유일한 해결책은 분명 아닐 것이다. ‘황우석 사태’의 본질적인 문제는 실험결과의 진위여부가 아니라 배아복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다. 우선 배아의 지위에 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에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인간의 필요라는 목적에 의해 생명을 자의로 탄생시켜 이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또 하나의 의문점은 새로운 생명과학기술이 실용화된다면 우리 모두가 그 혜택을 받을 수 있느냐는 점이다. 실제로 치료 현장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기술 자체의 실용화뿐만 아니라 접근가능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이 접근가능성에서 가장 큰 제약은 아마도 비용일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이 비용이라는 제약이야말로 기술개발을 실현시키는 데에서는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과학기술이 경제적 잠재력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고비용의 상품이 되어야 하며, 실제로 한국의 많은 과학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면 곧이어 특허를 신청하고 이것은 “한국 과학기술의 쾌거”로 신문지 1면에 대서특필된다. 기술개발과 특허, 그리고 그로 인한 높은 비용으로 기술의 접근이 제한된 잘 알려진 예가 에이즈 치료제와 백혈병 치료제이다. 특허가 보장하는 독점판매 그리고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전 세계에 동일하게 책정되는 높은 가격으로 제약회사의 이윤 창출에 생명을 맡겨야 하는 상황은, 새로운 기술이 실용화되어 우리 곁에 올 때 아마도 제일 먼저 맞닥뜨리게 될 문제일 것이다. 새로운 생명과학기술에 대한 연구에 많은 공공 재정을 지원하는 것은 그것이 공익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이루어지는 데 그 연구의 결과가 특허로 이어지고 그 혜택의 제약을 가져온다면 ‘인류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해서’라는 정당성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6.06.25| 4페이지| 1,000원| 조회(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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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방송]장화홍련을 통한 매체분석
    고전소설 ‘장화홍련’ VS 영화 ‘장화홍련’매체를 달리하는 서사물간의 상호 비교 분석매체를 달리하는 서사물을 비교분석하기 위해서 적절한 작품을 선정하기 위해 첫 모임을 가졌다.내가 ‘장화홍련’을 처음 의견으로 제시한 이유는 영화와 고전소설이라는 매체와 시대적 배경이 다른 차이점이 분석하기에 흥미로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두가지 다 담고 있는 내용이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 특이한 분위기 즉 공포스러운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다.하지만 미처 공포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조원들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주제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급히 주제를 설정하게 되면서 좀 더 주제선정에 대하여 논의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주제 선정 후에는 각자 두 작품을 감상하고 나름의 분석을 한 다음 모이기로 했는데 작품은 오래전에 이미 접한 조원들이 대부분이었고 분석을 위해 자료까지 찾아보고 다음의 모임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그러나 나는 다음 모임이 진행되기 전 주말에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였고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후에 모임에서 결정된 것을 듣게 되었는데 각자가 준비한 내용을 토대로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분석을 할 것인지를 정하고 각자 의 역할을 분담하였다는 이야기 였다. 그리고 내가 맡은 부분은 고전소설 ‘장화홍련’과 영화 ‘장화홍련’의 매체에 따른 차이점을 조사하는 것이었다.고전소설에 대한 여러 사람의 다른 분석과 감상평을 찾아보고 영화 ‘장화홍련’ 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찾은 자료를 나름의 기준을 정하여 정리하고 필요할 수 있는 다른 자료를 요약정리를 맡은 조원에게 보냈다. 파워포인트와 보고서에 필요한 자료요약 정리를 맡은 조원들의 준비과정을 지켜보며 도왔다.고전소설 ‘장화홍련’은 어릴 적부터 쉽게 접하는 낯익은 내용이다. 다른 이름으로 ‘아랑의 전설’이라는 고전은 드라마 ‘전설의 고향’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내용이다. 철산 땅에 사는 좌수 배무룡은 늘그막에 장화와 홍련을 두게 되나 부인 장씨가 세상을 떠나 후취로 허씨를 맞아들인다. 허씨는 용모도 흉악하지만 마음씨마저 간악하여 두 딸을 학대하였다. 이러한 계모의 구박과 모해를 견디다 못 해 장화는 연못에 투신자살하고 홍련 역시 죽은 언니를 그리다 못해 같은 연못에 빠져 죽는다. 이러한 이야기도 있지만 장화가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졌다는 누명을 씌운후 집에서 내쫓고 이를 슬퍼하며 뒤따르는 홍련마저 내쫓은 후 계모 허씨의 아들을 시켜 목숨을 빼앗아 연못에 빠뜨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죽는 과정이야 무엇이든 억울하게 죽은 두 자매의 영혼은 원한을 풀고자 새로 부임한 부사를 찾아가나 부임하는 부사마다 겁에 질려 죽고 만다. 그러던 중 담이 큰 정동우가 자원하여 철원부사로 부임한다. 그는 이들 망령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계모를 처형한 뒤 연못에서 두 자매의 시체를 건져내어 무덤을 만들어 준다. 그 뒤, 배좌수는 다시 장가들어 두 딸의 현신인 쌍둥이 딸을 낳게 된다. 이들은 자라서 평양의 거부 이연호의 쌍둥이 윤필, 윤석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가 기본적인 내용이다.‘아랑의 전설’과 같이 내용은 동일하나 주인공이 두명이 아니라 한명이라는 차이점이 있고 가해자, 악인이 계모가 아닌 평소 여주인공을 흠모하던 하인이라는 것도 다른점이다. 영화 ‘장화홍련’은 등장인물은 같지만 내용전개는 다르다. 배경이 현대라는 것도 분명한 차이점이고 내용이 전하는 메시지 자체가 고전소설처럼 ‘권선징악’만을 이야기하는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서는 영화개봉 후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일었었다.아버지와 병든 어머니, 그리고 두 딸(수미,수연)이 살고 있다. 어머니는 정신병 증세가 있었고, 막내딸은 많이 약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간호사(여기서는 계모)를 데리고 온다. 큰 딸은 계모에게 아빠를 빼앗겼다고 생각하고 어머니 또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장롱 안에서 목을 메어 자살을 한다. 우연히 그 장면을 둘째딸이 발견하게 되고 장롱이 쓰러지면서 어머니를 구하려다가 수연도 그 곳에 깔린다. 이 소리를 들은 계모가 위층으로 올라가 상황을 살펴본다. 수연은 장롱 밑에서 계모의 다리를 보았지만 계모는 모르는 척 돌아가고 양심의 가책으로 다시 돌아서다가 마침 큰 딸 수미와 마주친다. 수미는 왜 올라왔냐며 신경질을 부리고 화가 난 계모는 언젠간 이 날을 후회할 것이라며 돌아선다. 그렇게 친어머니와 수연이는 죽고만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수미는 죄책감에 빠져 미치게 된다.(여기서는 이 상황으로 미친 수미의 상상들이 영화의 주요 틀이 된다.) 정신병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수미는 여전히 수연이가 살아 있고 자기는 수연이가 몸이 약해 서울의 병원에 갔다가 같이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어딘지 모르게 지나치게 친절한 계모가 맞아주지만 수연은 새엄마가 무서워 입도 뻥긋 못 하고 수미는 매일 새엄마에게 신경질을 부린다. 그리고 집에는 하나둘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수연이는 이미 죽었다고 아빠는 수미에게 말한다. 수미는 새엄마가 수연이를 죽였다고 생각하여 새엄마가 수연을 때려죽이는 상상을 하고 새엄마도 정신이 점점 이상해지는 듯하더니 새엄마 앞에 간호사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분명해진다. 즉, 수미는 1인 3역을 한 것이다. 수연이도 됐다가 수미도 됐다가, 새엄마도 됐다가 혼자서 상상을 하며 간호사가 서울에서 내려오면서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현대 공포영화는 분명히 상업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자극적이고 윤리적으로 논란이 될 만한 소재를 이용하기도 한다. 영화 ‘장화홍련’의 내용에 대한 위의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큰딸 수미와 아버지의 근친상간이 영화의 핵심소재이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집안의 불행이 내용전반에 깔려 있는 공포의 근본원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미 내용만으로도 두 작품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매체가 다름으로 인해 나타나는 차이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어서 매체를 기준으로 하여 비교분석을 해보았다. 두 작품은 시대가 다르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서도 차이점이 있기 때문에 매체의 차이로 인해 다르게 드러나는 매 장면을 잡아내어 비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영화 ‘장화홍련’이 갖고 있는 영화로서의 특징을 분석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영화는 평면적인 고전소설에 비해 시각적 효과와 청각적 효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더군다나 고전소설의 경우 내용전개 자체가 매우 단순한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용전개에 있어서 긴장감이 떨어지게 되지만 영화는 매 순간 관객의 긴장을 놓게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영화 ‘장화홍련’은 공포영화라는 특징에 맞게 시각적 효과를 이용하여 그 공포감을 극대화 하려 하였다.먼저 극 중의 주요 배경인 집은 일본풍의 목재 건물로 아르누보 풍의 벽지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기이한 원색풍의 현대적 실내구조의 모자이크 등은 무미건조하고 다소 음침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 때문에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한 가족 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행복하지 않고 냉랭하고 쌀쌀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영화 속에 귀신은 총 세 번 등장한다. 싱크대 밑에서 등장하는 손을 불쑥 뻗는 귀신, 침대 끝에서 고개가 꺾인 채 솟아오르는 귀신, 옷장 속 이불에서 기어 나오는 귀신이다. 혼령의 모습이 아니라 목이 꺾인 상태나 팔의 색깔이 소름끼치는 푸른색을 띄어서 공포감을 더해준다. 검은 의상 역시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일조한다.영화 속에서 새엄마가 작은 딸을 때려 죽여서 자루에 넣은 장면이 나온다. 사실 큰딸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 큰딸 스스로가 새엄마라고 생각하고 인형을 작은딸로 착각하여 저지른 일이다. 마룻바닥이 흥건하게 적 붉은색으로 물든 상태에서 살점과 피로 얼룩진 자루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은 관객에게 충분히 시각적 효과를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이와 같은 시각적인 효과보다 더욱 관객을 자극시키는 것은 사실 청각적 효과이다.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욱 긴장감을 주게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청각적 효과에는 먼저 아버지의 면도하는 장면을 통하여 살펴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면도 장면에서는 다른 외부 소리는 일체 들리지 않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쓰윽쓰윽 수염을 깎는 소리만 들린다. 얼마 후 밖에서 새엄마와 큰딸이 말다툼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면도칼 소리가 합쳐진다. 실제로는 없는 계모에 대한 큰딸의 정신 혼란 상태를 칼소리를 통해 섬뜩하게 표현하는 효과를 준다. 이 외에도 영화에는 여러 과장된 소리가 등장한다. 오래된 문과 마루 외골격에서 들리는 삐걱대는 소리, 음침한 집과 대조적으로 평화로운 풍경소리, 의자를 뒤로 넘기는 소리, 예민하게 들리는 물건들을 내려놓는 소리, 문을 닫는 소리, 커튼을 젖히는 소리, 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 사람의 숨소리, 삐익삐익 새가 우는 소리, 세면대에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 주전자의 물 끓이는 소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고요한 가운데 울려 퍼지는, 일상적인 소품들을 이용한 음향효과들은 자칫 지루해 질 수 있는 평범한 모습들에서도 관객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고 긴장을 유지하는 역할과 동시에 영화 전반에 공포감을 부여해줌으로써 공포영화로서의 틀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영화음악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음악은 총 세 곡이다. 이 세 곡을 상황에 따라 다른 속도, 다른 분위기로 편곡하여 다양한 악기들로 들려준다. 이 음악들은 클래식을 기반으로 마이너 코드들만을 사용하여 시종일관 우울하면서 서정적인 분위기를 영화 전반에 깔아준다. 이런 효과를 이용함으로써 보통의 공포영화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외에도 음울하면서 애절한 감정을 관객에게 부여해주는 역할을 한다.
    사회과학| 2006.06.25| 4페이지| 1,000원| 조회(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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