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한 전쟁(Just War)은 전쟁의 정당성(Justice of war)과 전쟁에서의 정당성(Justice in war)이란 두 분류로 구분된다. 전자는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가에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전쟁이 발발했을 때 싸우게 될 수단에 관해 어떤 도덕적 제한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정당한 전쟁의 이론은 폭력과 전쟁을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조건으로 제시한다. 전쟁행위의 원인, 전술과 수단은 그것이 자연법적 법규범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정당한 전쟁의 이론은 실제로 비인간적 폭력행위인 전쟁을 이성적으로 제한하는 데 비교적 기여하였다. 다시 말해 전쟁도 평화의 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전쟁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정당한 살인은 가능한가라는 질문과 유사한 성격의 것이다. 전쟁은 수많은 인명을 직접 살상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살인에 다름 아니며, 또한 인간의 생존의 기반인 경제적 토대와 사회하부구조를 무참히 파괴한다는 점에서 간접적 살인이기도 하다. 전쟁은 국가들 사이에 일어나는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살인행위이다. 프로이센의 군사전략가인 폰 클라우제비츠(von Clausewitz)는 전쟁을 “적에게 우리 뜻의 실현을 강제하기 위한 폭력 행위”로 정의하면서 “단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속”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전쟁은 질적으로 변모하였다. 이전의 전쟁이 군대와 군대간의 싸움을 의미했고, 민간인의 희생은 절제되었던 반면, 20세기의 전쟁은 목표의 달성을 위해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잔혹한 모습을 띠었다. 바야흐로 “학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민간인과 군인의 구별 없이 인간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공습, 그리고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절멸시키는 가공할 핵폭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파괴적 상상은 끝이 없어 보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당한 전쟁이건 아니건 전쟁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전쟁은 정신적 피해와 물적 피해를 발생 시키는 등 수 많은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갈뿐더러 엄청난 자원낭비, 자연 파괴 등 많은 피해를 발생시킨다.그 예로 미국과 이라크간의 전쟁을 볼 수 있다. 일단 이라크 전쟁을 정당하다고 보는 입장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첫째로 미국은 세계의 경찰국가라는 걸 말할 수 있는데 여기에 의한다면 후세인의 독재와 이라크 민중의 탄압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된다. 대량 살상 무기의 존재는 큰 문제가 되지 않고 단지 이라크의 후세인이 장기 독재를 하면서 이라크 국민들에 대한 공포와 탄압 정치를 인권유린이라고 본다면 미국의 전쟁은 경찰국으로서의 의무이고 여기에서 이라크 전쟁은 정당성을 갖게 된다. 둘째, 미국 안전의 위협이다. 미국, 호주, 영국 등은 타국이 자국을 직접적으로 침략하지 않았더라도 자국의 위협이 될 것 같은 경우에 먼저 선제공격을 하는 것도 합법적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프랑스, 러시아 등은 자국이 공격당했다는 전제가 없는 한 타국을 공격하는 것은 일종의 범죄라고 인식하고 있다. 즉, 미국이 이라크를 위험 국으로 분류하고 자국의 안보에 걸림돌이 된다고 인식해버리면 그들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위법성이 없으며 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당성과 정통성이 확보되게 된다. 국제법상 침략전쟁을 위법으로 전제한다 하더라도 미국 최고법이라 할 수 있는 연방법에 자국 안보 위협국에 선제공격은 정당하다는 식의 판례나 인식이 존재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인간 기본권에 관련된 국제법은 각 국가의 최고 법에 준한다는 생각이 논의되고 있을 뿐 공유된 인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서 말했듯이 전쟁자체가 정당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라크 전쟁은 당연히 정당하지 못한 부도덕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일방적인 살육의 전쟁이었고, 성폭력 등의 온갖 인권유린이 난무하는 부도덕한 전쟁이었으며 이는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전쟁이었다. 이라크 민중의 존엄성을 짓밟았고 실제의 부도덕한 전쟁 속에서 미군들의 존엄성도 파괴되어 갔다. 이처럼 이라크 전쟁은 명백하게 반 평화적인 전쟁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전쟁은 정당한 전쟁론에 비춰봤을 때에도 전혀 정당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라크 전쟁의 이유는 정당하지 못했고, 의도 또한 정당하지 못했다. 그리고 유엔의 동의를 얻지 못함으로써 합법적 권위에 의한 선전포고도 하지 못했다. 또한 이라크 전쟁은 최후의 수단으로써 이루어진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패권주의의 발현이었고, 석유확보 전쟁이었으며, 미국의 자본의 이익 추구를 위한 전쟁이라고 생각한다.이러한 이라크 전쟁과 같은 전쟁이 정당화 될려면 다음 두 가지 경우에만 가능하다. 첫째, 유엔헌장의 7장에 따라 안전보장이사회는 합법적인 강제수단의 사용을 결의할 수 있다. 둘째, 유엔헌장 51조는 국가들로 하여금 “무장 공격을 당했을 경우 개별적?집단적 자기방어를 위한 자연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자위권은 “안전보장이사회가 세계평화와 국제적 안보의 수호를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강구할 때까지”만 인정된다. 유엔헌장은 자기방어를 위한 폭력의 사용에 있어서도 개별국가들에게 관대하게 권한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안전보장이사회의 역할을 우선시함으로써 유엔에 의한 폭력의 독점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가 정당한 전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국가들 사이의 폭력사용은 특정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사태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강제수단의 사용을 결의했거나, 또는 침략전쟁에 대한 자기방어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유엔헌장이 정당한 전쟁을 이와 같이 협소하게 정의한 것은 전쟁수행의 권리가 한 국가 또는 몇몇 국가들의 동맹체에 의해 침탈되는 것을 방지하고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원국들을 통한 타협과 이해조정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20세기 초반의 참혹한 세계대전이 전쟁을 “정치의 연속”으로 이해한 19세기 권력정치의 궁극적 소산이었다는 사실을 전후 국가세계가 간파한 결과이기도 했다. 2003년 3월에 시작된 이라크전쟁은 유엔헌장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은 침략전쟁들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이 침략전쟁들이 냉전체제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살아남은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수행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은 이 모든 전쟁에서 나름대로의 명분을 내걸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지구화된 시대의 세계정치의 장으로서 유엔이 발전하는 데에 결정적 장애일 뿐만 아니라, 지난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구축된 인류의 평화에 대한 합의를 깨뜨리는 심각한 도전을 의미한다. 강대국의 이해와 전략 때문에 전쟁이 허용된다면 21세기의 세계질서는 유엔과 국제법 이전 시기의 “힘의 논리”로 후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아무리 지난한 과정이었을지라도 인류의 역사는 “권력이 강한 자” 또는 “힘 센 자”의 자의적 지배를 제한하려 노력해온 과정이었고, 사회적 합의와 법에 기초해 권력을 통제하는 것을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정착시켰고 여전히 정착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보다 더디기는 했지만 국제관계에서도 일어났으며, 유엔과 국제법은 그 변화의 소중한 결과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바로 이점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없이 전쟁을 수행한 미국의 논리는, 법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깡패집단의 행동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특정 국가가 자의적으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장한다면, 도대체 누가 정당한 전쟁을 결정할 것인가? 만약 또 다른 국가가 미국의 행동을 흉내 낸다면, 무슨 논리에 근거해 그 국가를 비난하고 제재할 것인가? 정당한 전쟁의 원칙을 지켜내는 것은 전쟁이 다시금 대외정치의 수단으로 복귀하고 있는 21세기 벽두에 평화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중대한 과제이다.
팔레스타인분쟁 06164171. 유대교와 이슬람교 이윤기1) 이슬람교를 부정한 유대교유대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일신교의 계율 종교이며, 그 원전으로 삼는 것이 바로 율법이다. 그리고 이슬람교도 역시 아브라함의 종교라고 내세우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같은 신을 신앙하는 종교 동지가 되겠지만 본가인 유대교로서는 그렇게 보지 않으며, 이슬람교 역시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교조 마호메트가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신의 아들이라고 내세우지는 않지만 스스로를 ‘마지막 예언자’로 칭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예언자가 또는 구세주가 등장하여 유대민족을 신의 이상국가로 반드시 인도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유대교로서는, 이것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는 망발이며 마호메트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사기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그 마호메트가 신을 아라비아어로 알라라고 부르고, 그 알라가 새로 자신에게 강림해서 말씀을 전하여 코란이 성립되었다고 공언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도에게 이 코란의 계율이야말로 신의 계율이기 때문에, 마치 신이 두 곳에 존재 하는듯한 환상을 준다는 것도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모두가 유대교에게는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만스러운 행위로 보이는 것이다.2.팔레스타인 지역-예루살렘1)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는 모두 중동에서 탄생했다. 또한 천지를 창조한 유일신을 숭배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얻는다는 공통된 구조를 갖고 있다. 세계의 시작과 끝이 있으며 최후에 신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종말관도 같다. 그러므로 이 세 종교는 한 뿌리에서 나온 유일신교로서 서로 형제 관계라고도 할 수 있다. 유대교도에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은 신이 내려준 ‘약속의 땅’이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대 민족이 조상의 땅인 팔레스타인에 자신들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한 시오니즘 운동에서 비롯되었다.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언덕의 명칭이다. 예루살렘에는 유대교 신전의알 아크사 이슬람 사원, 바위의 돔, 에티오피아 교회, 콥트교회 등 소수종파의 것까지 합하면 ‘성지의 박물관’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2)구약성서 창세기 15장 18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준다고 약속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이 오늘의 팔레스타인이다. 히브리족은 4000년 전 팔레스타인 지역에 들어와 B.C. 18세기부터 16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족장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히브리민족이 이후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대인이다. 그 후 이들이 기나긴 이산의 고통을 겪게 된 것은 A.D. 72년경 로마에 의해 극심한 박해를 받고 완전히 패망하여 고향에서 쫓겨나 세계를 방랑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19세기말까지 이 지역은 팔레스타인들의 독차지가 되었다. 유태인에게 예루살렘은 ‘3000년 전부터의 수도’였다. 어쨌든 다윗왕이 이곳을 수도로 정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 그 후 다른 종교의 교도들에게 몇 번이나 파괴되었는데, 그 첫 번째는 기원전 586년 바빌로니아의 네브카드네자르 2세의 정복이다. 이때 유태인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소위 ‘바빌론 포수’이다. 그리고 ‘네브카드네자르의 재림’을 자칭하는 후세인 대통령으로부터도 공격을 받은 적도 있다.3)과거 기독교 로마 교회에 의한 십자군 원정은 사실상 이슬람교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같은 피해자라는 관계에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대하여 공동으로 투쟁한 것은 아니다. 사실 당시의 유대교는, 굳이 이슬람교가 유대교를 상대할 만큼 큰 교단이 아니었다. 때문에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평화롭게 공존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은 유혈의 연속이었다. 유태, 기독교를 극복하는 종교로서 등장한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이슬람 군단은 638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그리고 뒤이어 1099년에는 십자군에 의해 점령되어 다수의 주민들이 학살당하였다. 그로부터 약 100년 후인 1187년, 아랍의 영웅 리쿠드는 물론 여당인 노동당까지 이 전적으로 같은 입장이다.3. 본격적인 갈등의 서막-시오니즘유대교와 이슬람교 종교 대립의 무대가 팔레스타인이 된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유대교가 현실적인 영토로 삼고 있는 곳이 이 지역 외에는 없고, 또 이 땅에 3대 일신교의 공통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캐보면 영토문제에서 시작되었으며 처음에는 종교분쟁이 아니었다고 한다. 선주 팔레스타인인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에게 강제로 빼앗긴 영토를, 또는 국제연합에서 선주민 정착구역으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이 점령한 구역을 돌려받으려는 데서 발생한 영토분쟁이었다. 선주 팔레스타인인의 종교는 대부분이 이슬람교지만 그중에는 기독교 신자가 섞여있고,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PFLP)을 이끄는 하바슈등은 그리스 정교도이다. 그 영토분쟁이 서서히 유대민족 대 아랍민족이라는 민족분쟁 또는 종교분쟁의 색체를 띠게 된 배경은 유대민족국가인 이스라엘의 독선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16세기 이후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며, 1918년 이후에는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았다. 1881~82년, 이 시기를 전후로 해서 러시아와 동유럽에서의 유대인 배격이 심해져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시아 내의 유대인에 대한 집단적 반유대운동을 계기로 헝가리 출신의 오스트리아 거주 유대인이자 언론인인 헬센이 세계의 유대인에게 호소하여 1897년에 스위스의 바젤에서 제 1회 시온이스트회의를 소집, 유대인들의 조국복귀운동이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발족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부터 1945~1946년까지 ‘유대국민기금’과 ‘팔레스타인,유대식민협회’의 기금모금으로 토지를 구입하기도 하였다. 세계 각지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히틀러에 의한 유대인 탄압을 겪고 나서 유럽에서 백인들에게 박해받던 유대인들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자신들이 2000년 전 쫓겨났던 팔레스타인 땅으로 모여들어 이곳에 조국을 건설하겠다며 터키가 독일, 이탈리아 측에 참전하게 됨에 따라 영국은 오랜 기간 오스만의 지배하에 놓여 있었던 아랍세력을 독려하여 오스만에 대항하도록 하여 터키를 내부어세부터 붕괴시키려고 했다. 이는 친영 세력으로 하여금 영국의 식민전략상 요충지를 점령시키고 그들에게 전쟁 후 독립을 약속한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서신은 카이로에서 근무하던 이집트총독 맥마흔이 1915년 7월부터 1916년 3월 사이에 당시 하심가문의 좌장이자 아라비아 반도 히자즈 지방의 통치자였던 후세인 국왕에게 10여회에 걸쳐 보낸 편지로서 터키에 대항하여 참전할 경우 영국은 전폭적으로 지지할 것이며, 전후 아라비아의 독립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서신은 사실상 제 1차 세계대전시 아랍의 희망을 담보하는 중요한 서신이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모호하여 그 후 계속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그 이유는 영국으로서는 반 터키 전선형성이 시급한 상황에서 구체적인 협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황급히 추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은 아랍권에는 별다른 언질도 주지 않고 후세인-맥마흔 서한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영국은 프랑스 대사에게 후세인-맥마흔 교섭을 알리고 영국과 프랑스 간의 의견조정을 제의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이 아시아-터키의 분할에 관한 밀약에서 오랫동안 분쟁의 불씨가 된 팔레스타인의 대부분의 지역은 영, 프, 러 3국이 공동으로 신탁통치할 것을 비밀리에 약속되었다. 이는 후세인-맥마흔 서한에 약속되었던 아랍인에 의한 아랍국가 수립 약속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외교적 배신행위였다. 이 협정은 분명 전리품 분배협정으로서 영국과 프랑스양국은 이 협정에 근거하여 터키 소속의 아랍지역을 분할하였다. 이 비밀협정은 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다가 10월 혁명 이후 1917년 출범한 소비에트 정부가 이를 발표하여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였으며, 특히 아랍인들의 강렬한 의분을 자아냈다. 그 후 영국은 유대인들의 동 지역을 결국은 영국의 뜻대로 영국의 위임통치령으로 결정하였다. 그 뒤 영국의 위임통치규약에서도 유대인의 민족국가 건설의 근거를 승인하였다. 당시 영국은 팔레스타인에 아랍인 64명, 유대인 5만600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은 나치의 유대인 박해와 더불어 독일에서의 학살을 피하여 독립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처절한 결심으로 팔레스타인에 몰려들면서 늘어났다. 제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넘기고, 유엔은 1947년 11월 ‘결의안 181호’를 채택해 팔레스타인 땅을 아랍인 국가와 유대인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을 ‘국제관리지구’로 한다는 분할안을 채택하였다. 당시의 유대인은 60만, 아랍인은 129만명으로 인구상으로는 아랍인이 2배 이상 많았으나, 동 분할안은 아랍국 대 유대국의 영토를 44%대 56%의 비율로 유대인 국가에 오히려 많이 배정하여 유대인에게 유리하고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게는 매우 불리하고 불공평한 것이었다. 이에 이스라엘인들은 이 안을 받아들였으나 아랍인들은 이를 당연히 거부하였다. 그 후 아랍인들과 유대인들간의 충돌과 테러가 격화된 가운데 영국군은 위임통치의 종결을 선언하고 군대를 철수해 버렸다. 유대인의 지도자 벤구리온이 다음해인 1948년 5월 14일 국경선도 부분명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공화국을 선포하자, 자신의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크게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5. 4차례의 중동전쟁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에서 탄생한 팔레스타인 게릴라와 그 대표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섬멸하기 위해 국외인 요르단과 시리아, 레바논까지 공격하고, 한편 국내에서는 예루살렘의 완전 독점을 노리고 이슬람교의 성역을 모욕하는 등 아랍지역의 전 이슬람교도를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팔레스타인인 측에 이슬람교의 전투 집단이라고 주장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이 가세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해 아랍제국은 어디까지나 아랍인의 토지에 유
1.이상주의(1)등장배경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이후 약100년 간 유럽에 비교적 평화스러움을 가져다주었던 세력균형체제가 1차 대전의 발발로 붕괴되고 새로운 제국주의가 등장하자 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 세력균형체제가 치명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상주의는 1차 대전 후 전쟁방지라는 세계적 관심사를 반영하여 등장했으므로 목적론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그 결과 어떻게 전쟁을 방지할 수 있을까 라는 목적이 연구의 전체적 방향을 결정했다. 이상주의자들은 국제연맹의 창설과 국제법과 같은 제도의 수립을 지지했으며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단합하여 평화를 지키고 부당한 침략을 격퇴시키기 위한 장치로서 집단안전보장제도의 수립을 희망했다. 이상주의들은 이처럼 전쟁의 불법화와 국제경찰의 설립 등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치중했다. 그러나 2차 대전에 이르는 일련의 사태와 2차 대전의 발발 자체는 이상주의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직시하게 하였다. 이상주의자들은 1차 대전 후와 마찬가지로 집단안전보장제도의 이점과 국가의 행동을 제한하는 국제사회에 있어서의 법의 지배에 확신을 가졌으며 민주주의 국가는 평화 지향적이란 판단 하에 민주주의의 확산을 추구했다. 이처럼 이상주의는 1차 대전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뿐 아니라 국제연합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 1941년- 1947년에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2)특징이상주의의 사상적 배경으로는 18C의 낙관적 계몽주의, 19C 자유주의, 그리고 20C 윌슨의 이상주의를 들 수 있다. 이상주의자들은 인간은 선하며 이타적이고 상호 협조?협력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제 1차 대전과 같은 전쟁의 재발을 막는 데 있었으며, 평화적인 국제관계의 변화를 위해서 일련의 규칙 과 절차 의 확립을 강조하였다. 이상주의자들은 국제법, 국제기구, 국제여론을 통해 세계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고 보고 평화의 보장을 위한 최선의 절차와 기술적인 문제를 중시하였다. 인상주의 학파는 개인과 인류라는 기본명제에서 연역된 국제평화를 중시하고 국제법이나 국제여론, 그리고 국제기구의 역할을 강조하는 한편, 국가 간의 권력상황을 상대적으로 경시하였다. 예컨대 국제연맹 설립에 관한 영국의 하원연설에서 세실경은 여론법정 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이 패권을 추구하게 되자 이상주의는 점차 설득력을 잃고 그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현실주의가 제시되었다.(3)비판E. H. Carr는 이상주의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이상주의들이 현실 보다는 당위 그리고 실행 가능한 것 보다는 바람직한 것 에 집착한다고 지적하고 있고 이상주의자들이 그들의 이상 뒤에 집단적인 자기중심적 이익이 숨겨져 있음을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이상주의자들은 또한 국가의 운영자들이 거의 완벽한 행동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어 정치적인 일 즉 정치사에 있어서의 필연과 우연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무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이상주의자들은 갈등보다는 협력, 자기중심적 이익보다는 유대 그리고 불화보다는 조화에 편도 되어 있어 역사와 인간성에 대한 이해를 거의 하고 있지 않다고 카는 지적하고 있다.2.현실주의(1)등장배경현실주의는 이상주의 실패로 인한 2차 대전의 발발과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반발로서 등장하였다. 2차 대전 후 얼마동안은 국제법과 국제연합과 같은 국제기구 등에 기대를 거는 이상주의가 현실주의와 더불어 존재했으며 국제정치이론에 있어서 제1차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의 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주의자들이 이상주의의 법률적 그리고 도덕적인 접근법을 부인하고 권력의 정치 및 권력에 의한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 반면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주의의 권력정치가 전쟁을 야기한다고 보고 현실주의의 비판에 맞서 현실적인 이상주의 즉 이상주의의 현실주의 를 강조했다. 1929년- 1932년의 세계공황의 도래와 더불어 윌슨의 이상주의에 기초한 평화유지 노력이 여지없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일본, 이태리, 독일의 재무장과 이들 3국의 국제연맹 탈퇴와 같은 일련의 도전에 의해 집단안전보장체계가 붕괴되고 국제연맹은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홉스와 루소의 비관주의가 카, 모겐소, 그리고 쉬바르젠버거 등의 저작에 다시 등장했으며 나아가 2차 대전의 종결과 더불어 시작된 동서 양쪽 진영 간에 치열한 냉전과 핵병기의 출현 등은 전통적 현실주의 접근법에 설득력을 더해갔다. 이처럼 전통적 현실주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편견을 지니고 있는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이상주의에 대한 도전으로서, 미국이 대소정책을 형성하고 국제정치학 이론을 구축하는 데 있어 무시해온 권력에 대한 적절한 배려와 권력의 관점에서 정의된 국익의 추구를 촉구했다.
로크는 절대군주 체제와의 대립?투쟁에서 승리한 부르주아 계급의 정치의식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는 그 이전의 누구보다도 자유보장을 국가의 최고 목적으로 삼았다. 인간은 단지 그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에 관한 자기 자신의 이성적 관념에 따라 자기 자신의 인생을 최대로 자유롭게 영위하도록 허용되어 있다. 그것이 인간의 권리이다. 로크의 정치사상은 홉스의 정치사상과 마찬가지로 평등하고 불가침이며 이기적인 인간의 자기보존권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자기보존권의 핵심은 재산소유권이다. 로크에 의하면 소유권과 자유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재산은 자유에 대한 수단이다. 로크의 정치사상은 사적 재산소유권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는 근대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원류이다. 자연상태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고유물과 신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입장에 있다. 자연상태는 또한 평등의 상태이기도 하다. 각각의 개인들은 노동의 성과인 사유재산을 소유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일체의 권력과 지배적 권한은 상호적이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제약하는 것은 자연법이고, 인간의 이성이야말로 자연법이다. 자연상태에서 이성을 지닌 모든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며 독립적인 존재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자연상태는 불편한 것이다. 자연법을 위반한 범법자들, 즉 재산권을 침해하는 자들을 처벌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상태의 문제점과 불편함을 치유할 수 있는 방책이 바로 사람들 사이의 사회계약에 의해 권력을 지닌 시민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사회계약에 의해 성립된 시민정부의 목적은 자연상태에서의 문제점과 불편함을 제거할 법과 질서를 확립하는 데 국한되고, 소극적인 정부가 필요할 뿐이다. 정치권력이 해야 할 일은 시민들의 재산의 안전한 보호 외에는 없다. 국가는 오로지 개인들의 사유재산 보호를 위한 존재일 뿐이다. 재산권의 보호를 위해서 시민정부의 통치는 군주제여서는 안 된다. 또한 시민정부에 있어서도 권력자들은 개인들의 재산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로크에 의하면 입법권이 시민사회?국가사회의 최고권력으로서 확립될 때만 재산보호라는 정치권력의 목적은 안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 입법권은 피치자 또는 시민들의 재산에 대한 치자 또는 정치권력자들의 탈취를 방지하는 도구이다. 이러한 로크의 군주적 정치권력자에 대한 견제는 혁명권을 승인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시민들의 자연권을 침해하는 군주적 권력에 대해서 시민들은 혁명권?저항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로크의 정치사상은 오로지 재산을 가진 부르주아 계급에 국한된 것이었다. 로크는 자유를 단지 재산?외적 재화의 확보와 그 보호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권력을 남용하는 통치자에 대한 저항권은 그 문제에 대해 지적이고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공동체, 즉 교육받고 재산 있는 사회계급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의 불평등한 분배를 당연하게 인식했다. 그는 부를 재분배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재산 없는 노동계급은 시민사회의 완전한 성원의 일부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노동계급은 시민으로서가 아니라 부를 축적하기 위해 부르주아 계급이 사용할 수 있는 실제적?잠재적 노동력을 가진 신체로서만 간주되었다. 결국 로크의 정치사상은 철저히 부르주아 계급의 독재를 옹호하고 있다. 로크의 정치사상에 대한 이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로크는 근대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였다. 그의 정치사상은 모든 정치사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고 현실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의 정치사상은 몽테스키외와 같은 18세기 계몽주의 정치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영국의 자유주의 발전과정에서 사상적 주류를 형성하였다. 나아가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인권선언에 대해서도 대단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정치사상은 입헌정부론, 종교적 관용론, 대의제도론, 사유재산론과 같은 근대적 정치이론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을 통해 서구사회는 자유주의에 대한 기치를 올렸다. 청교도 혁명 후 명예혁명 시기까지 자유주의는 혁명적 경향을 띄고 있었으나 부르주아 계급이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명예혁명 이후 자유주의는 온건?보수화되어 갔다. 이러한 가운데 자유주의는 권력을 장악한 시민계급에 의해 보수적 자유주의로 서서히 변질되어 가는 경향을 드러냈고, 홉스는 이러한 보수적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 자유주의 사상가였다.홉스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사회계약론과 주권론이다. 홉스는 국가와 군주권의 철저한 세속화를 지향하였다. 국가의 의의는 인간생명과 사유재산 등의 보호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의 평등을 선언하고 사회계약 이론에 입각한 근대적 국가 이론의 원형을 제시하였다. 홉스는 인간을 물질적?자연적 ?동물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을 제약하는 일체의 도덕과 규범을 거부하였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이기적이고, 인간의 최고선은 자기보존이다. 그런데 자연 상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 이러한 상황은 인간이 자기보존 욕망을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기에, 인간은 자신들의 안전을 바라는 평등한 개인들 사이의 사회계약에 의해 국가를 성립한다. 그리고 계약의 확실한 이행을 위해 강력한 정부를 원하게 되고 이에 따라 국민들은 자신들의 자연권을 사회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주권자에게 자신들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이를 위임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권자들은 국민들에게 제약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정치사상은 절대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홉스의 정치사상은 국가의 권위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표면적으로 인정했을 뿐이다. 그의 정치사상은 절대로 절대주의가 아니다. 국가의 정당성은 그 의무수행에 있다. 국가의 의무란 자연 상태의 극복이다. 국가권력은 개인들의 자기보존의 자연권을 사회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만 정당성을 가진다. 의무에 태만한 국가에 대해 국민들은 복종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 어느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인간의 천부적 권리는 어떠한 사회계약에 의해서도 폐기될 수 없다. 즉 국가권력과 법의 권위는 오직 그것이 개별적?이기적 인간의 안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정당화될 수 있을 뿐이다. 홉스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에 복종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들에게 보호를 주기 때문에 불가피하다. 국민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주는 국가권력에 대해서만 그러한 한도 내에서 충성을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만약 주권자가 보호를 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위해를 가한다라면 시민은 불복종의 자유를 지닌다. 또한 국가는 국민들의 사적인 영역에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홉스의 국가이론의 핵심은 재산소유권의 보장에 있다. 자연 상태에서는 소유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권력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으면 어떤 것이 자기의 것이고 남의 것인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재산권은 오로지 국가권력?국가주권의 확립의 산물이다. 홉스에게 국가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고, 사람들 사이의 계약을 확실히 유지하기 위한 수단, 즉 단지 개인적 안전과 행복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영화 불편한 진실을 보고0616417 이윤기평소 환경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나는 학교 교양 과목으로도 환경과 산업, 산업기술과 윤리 등 환경과 관련된 교양을 자주 들어 왔었다. 그리고 오늘 인간과 환경이라는 과목을 통해 불편한 진실이라는 영화를 교수님에게 소개 받고 보게 되었다. 불편한 진실은 미국 전 부통령이자 환경운동가인 앨 고어가 나와서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환경위기를 인류에게 알리고자 강연을 한 것을 영상 한편으로 만들어서 영화화 한 것이다.이 영화의 첫 화면은 깨끗한 자연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리고 곧 이어 앨 고어가 등장하게 된다. 영화는 주로 엘 고어의 강연을 보여주며 간간히 앨 고어가 겪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 선거 때의 이야기를 비춰서 지구온난화와 환경문제와 연결하여 이야기를 해준다. 이런 도입은 내가 영화를 더욱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영화 불편한 진실에서 엘 고어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에 대해서 심각하게 말한다. 일단 처음에 지구온난화가 일어나게 되는 이유를 말해주는데 지구에 태양이 비춰지게 되면 태양 복사열은 광파의 형태 지구에 덥히게 된다. 그리고 복사열의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적외선 형태로 다시 방출된다. 흡수되는 일부의 복사열과 적외선이 온실가스로 두꺼워진 대기권 층에 의해 대기 안에 갇히게 된다. 이것이 지구 온난화의 시작이라고 앨 고어는 설명한다. 이 지구 온난화가 일어나게 되는 이유만 보니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뒤에 지구 온난화에 의해 세계 각국의 방하지대에 있는 얼음이 녹아있는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면서 왜 지구 온난화가 우리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 많은 재난이 발생 하게 되는데 앨 고어는 과거의 사진과 오늘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과거에는 얼음이 남아 있었지만 지금의 사진에는 온난화 현상으로 얼음이 녹으면서 얼음이 점차 사라진다고 말한다. 사진을 보니 지구온난화가 내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6년을 살면서 날이 더워진다고는 생각을 했으나 이렇게 지구에 악영향을 미칠 줄은 이 장면을 통해 알 수 있었다.그 뒤 지구온난화가 주기적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자료를 보여주면서 지금을 보면 편차가 심하다고 얘기를 한다. 그래프를 보니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 지구온도가 올라가는 것이 확실하게 내 눈에도 보인다. 이 수치로 올라간다면 50년 안에는 엄청난 수치로 올라간다고 한다. 이후 나는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구 온난화는 지구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까? 영화에서 앨 고어는 설명한다. 지구가 생긴 이후로 가장 더운 10년은 지난 14년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 더운 기간 동안 인도는 50도의 폭염이 생겨났으며, 미국은 38도의 폭염이 일어났다. 또 한 유럽의 폭염으로 35000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온 상승은 해수온도를 상승시키며 허리케인을 생성시킨다. 브라질은 최초로 허리케인이 발생을 하여 많은 피해를 겪었고 미국은 카트리나라는 허리케인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이렇게 지구온난화는 많은 피해를 일으킨다. 물론 비를 뿌리기도 하지만 가뭄도 동반한다. 영화에서는 최대의 호수였던 채드호를 보여주며 최근에는 거의 다 말라서 없어졌다고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앨 고어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겪는 곳은 북극이라고 말한다. 현재 북극의 만년빙의 두께는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고 한다. 40년간 40%나 감소한 것이다. 이 추세로 가면 50~70년 안에는 북극 빙하는 사라질 것 이라고 한다. 이 얼음이 녹으면 지구에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북극곰은 얼음이 없어 계속 헤엄을 치다가 지쳐서 모두 죽을 것이고 또 한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 할 것이고 바다 부근의 땅은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침수 영상은 처참하다. 땅의 대부분이 물에 빠진다. 앨 고어 이 모든 것은 인구가 증가 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이 말은 인간에 의해서 지구온난화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그래프를 자세히 보면 1900년 초부터 인구가 늘어나고 지구의 온도 또 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조금씩 조금씩 늘어 난 것이다. 앨 고어는 개구리를 사람에 비교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에는 방어를 하지만 천천히 오는 충격에는 방관을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약점이다. 100%가 아닌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말에 굉장히 공감이 가는 것 같다. 나 또한 100%가 아닌 것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아플 때에 100% 심하게 아픈 것이 아니면 병원에 가지를 않고 그냥 방치한다. 나중에 심하게 아프고 나서 후회를 하게 된다. 그리고 지구온난화처럼 돌이킬 수 없이 고생하게 된다.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정도가 지구온난화가 발생하면 일어나게 되는 현상을 영화에서 보여 준 것이다. 정말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심각하다고 생각된다. 그냥 일상생활처럼 지구온난화를 신경도 쓰지 않고 흘려보낸 것 같다. 만약 정말 지금 빙하가 녹아서 당장 물이 차오른다면 어떨까? 그리고 엄청난 기후변화로 미국과 같은 허리케인이 우리나라에 온다면 어떨까? 매년 여름 장마로 침수되는 한국을 보게 되는데 허리케인이 오게 된다면 정말 엄청난 피해가 올 것이다. 이러한 재난을 보여주는 장면을 보니 문득 이때까지 봐왔던 재난 영화가 떠오른다. 투모로우, 2012등등.. 평소에 그냥 재밌게 봐왔던 영화들인데 불편한 진실에서 앨 고어가 설명하는 장면들을 보니 재난영화는 단순히 영화가 아니라 우리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영화에서 두 가지 아이러니한 장면도 나오는데 첫째는 교토의정서에는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미국이 속해 있지 않다는 장면이다. 왜 미국은 속해있지 않는 것 일까? 나는 문득 그 이유가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져 찾아보았더니 그것은 바로 약육강식과 같은 것 이였다. 미국은 자국의 산업보호차원에서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고 하는데 미국이 워낙 강대국이다 보니 면전에 대고 충고하는 국가들이 없다고 한다. 강자는 세상을 지배하고 약자를 지배하는 원리이다. 이것에 대해 미국은 다른 방법으로라도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엘 고어는 말한다. 그래도 몇 개의 주는 서로 연합하여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며 미국의 도시들이 힘을 쓰기로 했다고 말한다. 그나마 이것을 보니 그래도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