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1. 교과서 선택을 둘러싼 ?우리들?과 ?저들?Ⅰ. 머리말일본에서는 신자유주의와 신국가주의, 그리고 역사수정주의가 밀접히 결합하면서 그 세력을 키우고 있다. 2005년 8월 12일 (http://www.tsukurukai.com/)의'개정판 새로운 역사교과서' 가 채택되었다. 이는 채택되는 경위 자체뿐만 아니라 스기나미꾸의 결정을 둘러싼 채택파와 채택반대파의 언설, 그리고 여기에서 자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런 문제와 관련한 논의들이 인터넷에 나타나는데 적대자를 비웃음의 대상으로 만드는 는 방식이다. 이는 논의 자체를 말살시킨 채 누군가를 배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Ⅱ. 는 채택파(http://blog.livedoor.jp/asapykadan/)라는 블로그가 있는데, 이 블로그는 아사히신문을 '좌익'신문으로 여겨, 그 투고란에 실린 '좌익'적인 투고 작품을 보면서, 그것을 조소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삼고있다. 8월의 페이지를 보면, 라는 작품이 조소의 대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이는 당연히 스기나미꾸의 역사교과서 채택을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이 센류는 비웃음을 당한다. 블로그의 운영자는 특별히 이 작품의 투고자가 교원이라는 점을 들추어내어 비웃고 있으며 이 사람이 투고하였던 기사를 찾아내어 역시 조소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이 비웃음의 대상으로서 가능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대상을 싸잡아서 손가락질하듯이 비웃는다. 지배적 이데올로기가 여하에 따라 유지, 강화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음은 당연하다. 여기에서는 '조소'의 대상을 찾아내어 그것을 음으로써 를 확인한다. 이런 타자화의 방식은 논의를 거부하고 일순간 타자를 만들어내어 배제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폭력적이다. 그런 까닭에 를 부리는 순간 곧장 저들에게 헤게모니가 넘어갈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Ⅲ. 는 채택반대파예전에는 좌익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바로 진보적임을 의미하였고, 때로는 지식인임을 의미하였다. 즉 '분위기를 잘 는 경우의 전형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채택반대파가 ?은 채택추진파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채택파가 거의 독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타자화의 방식으로 타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동시에 그 폭력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채택반대파의 운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채택반대파의 운동에 있어서는, 중요한 캠퍼제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폭력성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Ⅳ. 맺음말을 대신하여평화주의를 자인하는 운동 측이 자기가 적대세력으로 간주하는 측과 마찬가지로, 폭력적인 타자화의 전술을 무의식적으로 채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또한 평화주의 운동이 ??한 전술에 있어서도 완전히 뒤쳐져 버린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본래 ,,를 함의하고 있는 를 교권이 독점해 왔다는 사실과 관계있다. 교원이야 말로 그 자체로 권력의 최전선임에도 불구하고, 을 특권적으로 말해왔다. 학교교육을 통해 타자화되었다고 느끼고 있는 자들의 르상티망, 원한, 증오, 질투 등의 감정이 반복되어 마음속에 쌓인 상태는 그런 르상티망을 인 교원이 만들어 냈을 가능성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2. 일본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한국근대사 서술과 역사인식Ⅰ. 머리말2001년 일본중학교 검인정 역사교과서의 왜곡문제를 둘러싸고 한 ? 일 양국간에 격렬한 논쟁이 전개된 데 이어 고구려 ? 발해 역사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으로 한 ? 중 양국간에 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졌으며, 올해 재검정을 통과한 후소샤 등 일본중학교 검정교과서 합격본의 내용과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3국간의 역사전쟁이 더욱 격렬하게 재연되고 있다.따라서 본고에서는 일본중학교 검정교과서 중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후소샤 간행 의 한국근대사 서술과 그에 나타난 역사인식을 고찰하는 데 역점을 두고자 한다.Ⅱ. 지정학적 관점에 입각한 한반도 ‘팔뚝’(위협)설 조장후소샤의 현행본(2001)은 이란 항목에서 “일본은 유라시아 대륙에서와 중국 등 강대국이 한국을 침략 ? 지배하게 되면 일본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전제 아래 한국을 장악하는 것은 침략이 아니라 자국을 방위하기 위한 정당행위라고 합리화하는 매우 위험한 이론이다. 더욱이 이러한 한반도 위협설은 초역사적으로 전시기에 일괄해서 적용하려는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인식은 향후 한일관계와 동아시아관계를 전쟁으로 얼룩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경계해야 하며 일본의 안전을 해치는 위험한 나라라는 그릇된 선입감을 학생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크다.Ⅲ. 일본의 한국독립 보존 및 근대화 후원 강조1. 강화도사건과 조일수호조규후소샤의 현행본은 이란 항목에서 청일수호조규(1871) ? 대만출병(1874) ? ??처분(1879)의 과정을 설명한 뒤 “한편 이에 앞서 일본 군함이 조선 강화도에서 측량을 하는 등 시위행동을 하였기 때문에 조선 군대와 교전한 사건(강화도사건, 1875년)을 계기로 일본은 다시 조선에게 국교 수립을 강요했다. 그 결과, 1876년 ??????가 체결되었다. 이것은 조선에 불평등한 조약이었으나, 오랜 현안이었던 조선과의 국교가 수립되었다”고 서술하였다.문제시되는 점은 강화도사건의 내용이 본문에서 측면으로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일본이 무력을 동원해서 조약을 체결했던 과정을 전혀 서술하지 않은 채 조일수호조규 제1조(“조선국은 자주의 나라”)의 조항을 “청조의 지배로부터 조선을 떼어놓으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평가함으로써 일본의 한국침략 의도를 은폐하면서 마치 한국을 청국으로부터 독립시켜 주었다는 측면을 강조하려 했다는 데 있다.2. 임오군란과 갑신정변후소샤의 현행본은 이란 항목에서 “일본은 조선의 개국 후, 그 근대화를 돕기 위해 군제 개혁을 지원했다. 조선이 외국의 지배에 굴하지 않는 자위력 있는 근대국가가 되는 것은 일본의 안전에 있어서도 중요했다. 그런데, 1882년, 군제 개혁에서 소외당한 일부 조선군인의 폭동이 발생했다(임오사변)”고 서술함으로써 마치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를 지원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일본이 개국 후 한국의 군대는 친일파를 철저하게 탄압했다(갑신사변)”고 서술하였다.이 내용은 일본의 시각에 편중해서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청일 양국의 대립 구도 속에서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본받아 추진되었다가 청국의 군대에 의해 진압된 ‘사변’으로 서술됨으로써 한국사의 전개를 내부의 주체적 동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세에 의해 좌우되었다는 논리가 관철된다.Ⅳ. 한국침략 은폐 및 전쟁 미화1.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후소샤의 현행본에서는 이란 항목에서 “1894년, 조선 남부에 동학난(갑오농민전쟁)이라고 불리는 농민폭동이 일어났다. 동학당은 서양의 크리스트교(서학)에 반대하는 종교(동학)를 믿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외국인과 부패한 관리 추방을 목표로, 한때는 수도 한성에 육박하는 기세를 보였다. 약간의 병력밖에 지니지 못한 조선은 청에 진압을 위한 출병을 요청하였으며, 일본도 갑신사변 후 청과의 합의에 따라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일청 양군이 충돌하여 일청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하였다.이 내용에는 일본이 전쟁을 유발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파병한 후 한국을 지배하려 했던 사실을 은폐한 점 등 사실 자체가 잘못 기술되어 있었다.또한 청일전쟁의 개전 원인과 과정을 생략한 채 단지 “일청 양군이 충돌하여 일청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역사적 사실과도 어긋날 뿐 아니라 원래 전쟁할 의사가 없었던 일본이 청 ? 일 양군의 충돌로 부득이하게 전쟁을 벌였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한국침략에 대한 계획적인 무력도발을 은폐 ? 호도함과 동시에 청일전쟁을 정당화하려는 논리에 바탕을 두었다고 볼 수 있다.2. 러일전쟁러일전쟁은 러 ? 일 두 제국주의 열강의 한국 쟁탈 전쟁이자 영 ? 러 대립을 배경으로 열강들이 개입된 제국주의 전쟁이었으며, 한국의 식민지화를 꾀했던 일본제국주의와 이에 격렬하게 대항했던 한국국민 간의 전쟁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소샤 교과서의 합격본에는 러일전쟁의 본질을 파악할 만한 내용이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러일전쟁의 주목적은 일본이 한 한국침략을 합리화 ? 정당화하기 위해 지정학적 관점에 입각한 한반도 ‘팔뚝’(위협)설을 조장하고 있다는 점이다.후소샤 교과서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서술하면서 한국침략을 은폐하고 전쟁 자체를 미화하는 논조를 펼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내각이 내각탄핵으로 궁지에 몰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없고, 그 원인으로 ‘폭동’인 ‘갑오농민전쟁’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텐진조약을 군대 파견의 근거로 삼은 다음 청 ? 일 양군이 충돌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서술하였다.이와 같이 후소샤 교과서를 비롯한 일본중학교 검인정교과서의 근본적인 문제는 단순히 몇몇 용어나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인식의 문제이다. 만약 이처럼 왜곡된 역사인식이 일본 청소년들에게 뿌리를 내린다면 미래의 한일관계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따라서 앞으로 역사교과서 문제는 동아시아 각국이 지닌 역사인식의 차이를 해소해 나가면서 평화와 공존을 전제로 다함께 공유할 수 있는 역사를 서술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3.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와 그 전망Ⅰ.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의 현황그 동안 한국정부는 일본정부에 대해 25개 항목, 기타 교과서 10개 항목을, 중국정부는 8개 항목을 수정하도록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해석과 표현의 문제’, ‘명백한 잘못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제도상 기술을 요구할 수는 없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워 이를 전면 거부하였다.한국과 일본의 정상은 앞으로 ‘한일역사공동연구기구’를 설치하여 이 교과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도록 합의하였다. 이것은 역사를 정치 ? 외교의 현안에서 분리하여 학문 ? 교육의 문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일 양국은 아직도 ‘한일역사공동연구기구’에 참여할 위원조차 인선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2001.3.20).Ⅱ. 등장의 일본적 배경① 국가가 국내외 정세의 변화를 교묘하게 활용하여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전략적 차원의 움직임이다.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걸프전쟁은이다.
역사수업의 방법Ⅰ. 역사수업의 설계1. 수업설계의 개념- 수업설계 : 효율적인 교수-학습을 위하여 수업의 목표, 내용, 방법, 평가 등을 조직하는 것.- 수업체제 구성 요소 : 학습자, 교사, 학습목표 및 내용과 방법, 각종 교수매체와 학습보조자료, 교육장소와 학습환경 등- 수업설계는 궁극적으로 수업지도안의 형태를 갖추게 됨.- 수업지도안의 단계 : 계획, 진단, 지도, 발전, 평가- 수업계획과 설계의 목적 : 최선의 교수-학습활동을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음.2. 역사수업 설계의 유의점① 수업내용과 목표를 다같이 중시하는 수업설계가 필요하다.② 고정된 형식에 따른 수업절차를 세우기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융통성을 가질 수 있는 수업설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③ 가르치는 입장의 수업지도 계획뿐만 아니라 학생 입장에서 학습과정에 대한 이해와 계획이 필요하다.④ 전통적인 역사수업 과정이나 방법에서 과감히 탈피할 필요가 있다.- 역사수업에서 교사에게 필요한 지식① 내용지식 : 교사가 가지고 있는 역사지식의 양과 구조.② 교수내용지식 : 가르치기 위한 내용지식으로 학생들에게 교과를 이해하게끔 제시하고 조직하는 방식을 포함.③ 교육과정지식 : 일련의 교수 프로그램과 그에 관련된 교육과정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의미.3. 역사수업 설계와 교실의 대화구조- 교사의 발문 : 교사는 다루는 역사지식의 내용과 종류에 따라 그것에 접근하는 형식과 방법을 달리 함. 교사가 학생들에게 단편적인 사실을 이해시키려고 할 때는 연상의 원리가 사용① 사고유도 : 사실적 연계 구조(정답을 미리 상정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면 학생의 사고를 일정한 틀과 범위 내에 제한하는 한계)② 이해추구 : 다양한 역사지식간의 상호관련을 간결한 논리로 설득시켜 이해시키고자 함.- 가치적용의 단순화를 경계해야 함.Ⅱ. 역사수업 모형1. 교수-학습 활동 유형(1) 강의식 수업- 교사가 학생들에게 역사적 개념, 인물, 제도, 사건 등을 말로 설명하는 방식- 교사의 폭넓은 역사지식과 논리적인 설명 능력을 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내용을 사고하고 그 의미를 발견하는 기회를 주도록 해야함.(2) 문답식 수업- 교사와 다수 학생들과의 발문과 응답이라는 대화식 수업방법.- 문답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지식이나 현상에 대하여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고, 개념이나 원리 등에 대하여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인식을 할 수 있음.- 제한형 질문 : 학생들의 단순기억을 요구하는 단답형 질문- 확장형 질문 : 학습자로 하여금 추론, 분석 등의 폭넓은 사고를 유도하는 질문.(3) 탐구식 수업- 학습자가 특정 주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자료를 통해 검증을 하는 학습활동을 말한다.① 문제의 인지② 가설의 설정③ 자료수집과 분석④ 가설의 확인이나 수정⑤ 일반화(4) 토론식 수업- 어떤 주제에 대한 논쟁이나 논의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 내거나 서로 다른 관점의 차이를 명확하게 하는 방법.- 교사와 학습자, 학습자들간에 인지적이면서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학습공동체의 장이 된다. -> 집단학습 과정- 장점①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 합리적 사고 능력, 추리능력을 기르게 함.②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논리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게 함.③ 민주시민의 기초능력으로, 적극적이며 비판적인 생활 태도를 익히게 함.④ 논란이 되는 문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함.⑤ 학습자 상호간에 정보를 주고받는 기회를 제공하며,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해줌.⑥ 다른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를 배양할 수 있다.- 교사의 유의점① 적절한 주제 선정 : 논쟁거리가 풍부한 내용, 수업목표와 내용, 학습자의 능력, 흥미에 적합해야 함.② 토론의 목적과 목표를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정해야 함.③ 토론주제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알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자료 및 매채를 이용하거나 견학을 통해 단서를 얻도록 한다.④ 주제에 적당한 토론방식을 정하고 토론시간을 예측하여 고지한다.⑤ 좌석 배치⑥ 토론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이유를 자세히 밝히도록 지도⑦ 토론 진행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⑧ 진행과정에다.(5) 역할극-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조건 속에서 행동 결정을 추체험해보는 과정.- 역사의식을 증진시키고 역사지식을 함양함.- 역할극이 끝난 후 토의를 통해 대안을 모색 : 학생들의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데 도움- 상황을 가정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통해 역사적 인물의 역할을 간접 경험하게 하는 점이 특징(6) 시뮬레이션- 실제 상황과 유사한 학습환경이나 이에 토대를 둔 학습활동.- 과정 : ①도입-> ②참여자 훈련-> ③모의학습 운영-> ④참여자의 결과보고① 도입 : 시뮬레이션의 상황 설정 - 역사적 상황을 선택, 단순화 시켜 학습상황으로 설정② 참여자 훈련 : 시뮬레이션의 형태와 규칙, 과정을 정하고 상황을 분석하여 시뮬레이션에 필요한 인물을 선정한 후 역할을 분배③ 모의학습 운영 : 실제로 시뮬레이션이 전개되는 단계. 학생-연기, 교사-원만한 관리④ 참여자 결과보고 : 경험을 교환, 대처방안 논의(7) 제작학습- 역사학습은 만들기, 그리기, 스크랩북 제작, 독후감 쓰기, 논술문 쓰기, 답사보고서 작성 등 학생들의 다양한 제작활동을 포함한다.2. 내용구성 유형(1) 사실학습- 역사사실(누가,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가)을 다루는 수업- 과거의 사건이나 상황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한 것 보다는, 행위의 주체와 사건의 시점 및 장소 등 매우 확실한 기록에 기초한 것. -> 역사가의 판단에 의해 기술된 내용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료나 증거를 통해 입증된 것.-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실간의 인과관계 및 사실의 의미를 개념과 이론을 통해 추구해야 한다.- 교사 : 역사사실 중 역사이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한 것들을 선별하고 그러한 사실들의 연관관계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개념, 일반화 법칙의 방향과 내용을 설정.- 사실학습의 의의 : 단순히 역사적 사실 자체를 전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으로 역사를 인식하고 역사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있다.(2) 개념학습- 역사개킴으로써 새로운 역사지식을 생성하고 일반화를 형성하는데 활용된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의미로 개념화 작업을 하며, 교사는 학생들의 개념이해 및 분석과정을 돕는다.(3) 주제학습- 단일한 역사적 사실이나 개념, 사건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역사 영역이나 문제를 학습내용으로 다루는 것. -> 심화학습- 해당 주제에 대한 논의와 탐구가 필요한 이유가 내재되어 있어야 함.ex) 고대 지중해 세계 -> 지중해세계 고대인들의 신화와 의식(4) 시대학습- 역사학습에서 개별적인 사실, 개념들에 대한 이해는 궁극적으로 한 시기 혹은 한 시대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역사시대 : 국가단위, 지역단위, 문화권 단위 등으로 나뉘어짐.(5) 인물학습- 역사는 기본적인 인간과 그 행위에 대한 탐구이므로 인물학습은 인간의 과거 행위와 실천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역사학습의 중요한 방법이다.- 목적 : 인물의 사고와 행동이 추출된 시대 배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 인물 행위의 의도, 전개과정, 결과 등을 분석하는 탐구능력을 배양하며, 역사 속에서 인간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함양하는데 있다.(6) 비교학습- 역사학습에서는 한 지역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다는 사실들만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들간의 관계를 밝히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다른 국가나 지역 또는 문화권의 역사와 비교하여 이해하는 것이 필요함.- 비교는 우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유사점과 차이점, 그 원인을 규명하고 비교의 대상에 대해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Ⅲ. 학습지도안 작성1. 학습지도안의 필요성- 학습지도안 : 각 단원별 교수-학습의 절차를 단위 시간 별로 미리 계획하여 실제 수업 진행을 원만하게 이끌기 위한 계획안이다.- 각 단위 수업을 대상으로 하여 수업의 목표, 수업 내용, 진행 방법, 교수-학습자료, 평가방법 등을 계획하여 서술. -> 시나리오- 융통성 있게 수업과정이나 방법을 바꿀 수 있는 대안 마련이 필요.2. 학습지도안의 실제- 학습지도안은 실제로 수내용 등이 첨부되기도 함.Ⅳ. 역사수업 방법의 개선과제1. 교사의 실천적 의지- 교사 스스로 수업을 개선하려는 동기와 의욕을 갖는 것이 역사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다.2. 효과적 교수법의 개발- 교사들의 자율적인 수업개선 노력에 대한 교육관청과 기관의 지원 필요.-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수업평가가 좋은 예.Ⅴ. 역사학습평가의 원리1. 학습평가의 개념- 학습평가 : 학습자의 행동변화 및 학습과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교수프로그램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을 준다. 즉, 학습평가는 교육의 과정 속에서 교수와 학습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며 학생의 학업성취에 도움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평가결과에 비추어 학습목표의 달성 여부를 확인하고, 교사의 지도계획과 수업방법을 반성하며, 개선할 점을 찾아서 교수-학습 과정을 수정, 보완해야 함.-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평가기준과 도구의 제작이 시급 : 일반적인 지필평가 외에도 과정평가 혹은 수행평가의 활용이 중요시 되고 있음.- 평가도구 : 타당도, 신뢰도, 객관도를 갖추어야 함.- 상대평가(규범지향평가): 상대적 서열에 의해 판단. 교육의 목표가 달성되었는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학생들을 분류하는데 주된 목적. 교육과정과 교육평가 사이에 불연속성을 형성하여 구속하는 역작용을 낳게 됨.- 절대평가(목표지향평가) : 학생의 성취를 확인해서 해석하고 그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평가의 전 과정이 언제나 교육목표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2. 역사학습과정의 평가(1) 진단평가- 학습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학습자의 초기 학습상태 측정.- 학습 지식과 기능을 학생들이 소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하고 해당 수업내용에 대한 흥미, 적성, 기능과 같은 특성을 판단한다.(2) 형성평가- 수업의 전개과정 중에 학생들이 이해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을 하거나 과제를 제시하여 학생들의 답변을 유도함. (피드백 제공)- 학업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이며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바람직함.(평가.
아편전쟁과 ‘문호개방’에 대한 중국의 역사교육과 역사인식1. 머리말2.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기본 관점3.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흐름4. 맺음말 : 중국의 ‘문호개방’과 동아시아1. 머리말① 문제제기 : ‘문호개방’의 이해는 곧, 근현대사 전체의 서술 구조와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전통시대 동아시아 국가의 종주국임을 자부하였던 중국은 ‘문호개방’ 이후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반식민지’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였다. 중국은 근대 이후 이러한 자국의 역사상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② 연구범위 : 아편전쟁으로 인한 중국의 ‘문호개방’에 대해, 중국의 역사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왔고, 그 역사교육의 근거가 되는 주류 역사학계의 역사인식을 알아보고 크게 문화대혁명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검토하고자 한다.2.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기본 관점→ 마오쩌둥의 관점과 마르크스 주의① 판원란 : ?중국근대사?(1945)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대량의 역사자료를 분석 연구함으로서 제국주의 침략적 본질, 청정부의 제국주의에 대한 태도, 중국 인민의 민족 민주 혁명 등을 서술하고 있으나, 의화단 운동에서 그친다.② 후셩 : ?제국주의와 중국정치?(1948)는 마르크스주의와 마오쩌둥 사상을 지도 원리로 제국주의와 근대 중국 정치의 관계를 분석한 것으로, 아편전쟁이래 제국주의의 침략적 본질을 폭로하고 제국주의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일부 지식인들이 미국 정부에 대해 갖고 잇던 우호적 입장을 비판하려는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있었다.3.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의 흐름1) 사회주의의 길 탐색기(1)문화대혁명 이전 시기(1949~1965)① 역사교육의 기본 방향- 사회주의 중국의 초급중학 역사교육은 공산주의 교육과 노동 인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국 역사는 각 민족 공통의 역사 그대로 세계 문화 발전에 공헌한 유구한 역사임을 주지시키며, 특히 아편전쟁 이후 중국 근현대사를 중시하고 있음.- 구체적으로 아편급중학 교과서에서 추가적인 내용) 아편전쟁 이전 중국의 자본주의 맹아문제를 다루고 있다. “명조 후기 중국 봉건사회 내부에 이미 자본주의 맹아를 잉태하고 있었고, 청조에 자본주의 맹아는 완만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전제 하에, 수공 공장이 있었으나, 청정부의 페관 정책은 중국의 대외무역에 영향을 주어 공상업 발전을 막는 작용을 하였다고 한다. 아편전쟁의 경과에 대해서도 청정부의 타협과 대비하여 애국적인 군관·인민의 항쟁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아편전쟁 전후의 유신사상에 관한 내용도 추가 언급 되었다. 외국 자본주의 침략은 중국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와, 일부 지식인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정치 개혁과 외국 정황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들의 사상은 “진보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전제하면서 대표적 인물로 공쯔전·린쩌쉬와 웨이위안을 예로 들었다.③ 역사인식- 후셩은 1954년 ?역사연구?의 창간호에서 ?중국근대역사의 분기문제?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중국 근대사 분기를 태평천국운동-무술변법과 의화단운동-신해혁명의 소위 “3차 혁명고조”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3차 혁명고조론이 채택되고, 시기 구분에서 오사운동을 획기로 하여 1840~1919년까지를 근대 구민주주의 혁명시기, 1919~1949년까지를 현대 신민주주의 혁명의 시기로 규정하게 된다. 1949년 이후는 ‘당대’라는 표현을 쓴다. 이에 의하면 중국의 아편전쟁과 ‘문호개방’은 반식민지 반봉건사회의 개시, 근대의 시작, 반제 반봉건투쟁을 알리는 대사건으로 규정된다.- 연구의 주제 5가지 : 한민족 형성 문제, 농민전쟁의 형식 문제, 봉건토지 소유제 형식 문제, 자본주의 맹아문제, 시대구분에 대한 문제.- 토론의 논점은 중국 봉건사회에 존재하는 자본주의 맹아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맹아의 출현 시기가 언제인가에 집중되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명청 맹아설을 주장하였다.(2)문화대혁명 시기와 그 여파(1966~1980)① 역사교육의 기본 방향-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관찰하고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게 한다. 4. 사회발전 규율 교육, 혁명전통 교육, 애국주의 교육, 국제주의 교육을 진행한다.- 교육대강의 특징 : 마오쩌둥 사상을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역사인식과 교육의 과오가 마오쩌둥 때문이 아니라, “류사오치?린바오와 소위 사인방이 산포한 유심사관”때문이고, “특히 사인방 반당 집단의 역사 위조와 영사사학의 독소”에서 연유된 것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오히려 마오쩌둥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전략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② 역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 문화대혁명 종결 직후 편찬된 1980년 고급중학 교과서 : 중국이 낙오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제국주의 침략과 통치 때문이고, 중국 인민을 압박하는 세 가지 큰 산은 제국주의?봉건 반동세력?관료 자본주의다. 아편전쟁은 제국주의 열강에 패한 ‘굴욕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제국주의의 침략에 굳건히 대항한 ‘투쟁의 역사’로 변모한다. 아편전쟁 이후는 반제 반봉건 투쟁의 과정만을 초지일관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전의 교과서와는 달리 양무운동에 대한 언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③역사인식-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마오쩌둥의 근대사 관련 논술과 후셩의 3차 혁명고조론 등을 토대로 근대사에 대한 기본 인식체계가 형성되었다. 비록 역사 연구에서 정치적 기준이 중요한 작용을 하였지만, 제국주의 침략사?인민 해방투쟁사 등의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근대사 연구를 위한 각종 자료집이 대량 공간되었다.- 1957년 이후 반우파 투쟁이 시작되면서 상위웨는 「중국혁명과중국공산당」에서 봉건제도는 주?진 이래 3천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마오쩌둥의 주장과 어긋나게, 「중국역사강요」(1955)에서 위?진 봉건론을 주장하였다는 이유로 수정주의자?반마르크스주의자?반마오쩌둥 사상가 등으로 비난받았다.- 1965년 11월 사인방의 한 사람인 야오원위안이 「신편 역사극『해서패관』을 평함」(1965)이란 글을 통해, 『해서패관』의 작자인 우한을 공격한 사건은 문화대혁명의육의 실시,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과 함께 “인류의 화평과 진보 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역사적 책임감의 배양을 강조.- 교육내용에서 이전 시기와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점은 시대구분론 : 아편전쟁에서부터 중화인민공화국 탄생 시기까지는 “반식민지 반봉건시대”이고 중화인민공화국 이후 시기는 “사회주의 시기”이므로, 사회구성체에 따른 구분에서도 “반식민지 반봉건시대”를 근대와 현대로 나누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수용하여, 1840~1949년을 중국 근대 역사 시기이면서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하고, 근대사를 구민주주의 혁명 단계와 신민주주의 혁명 단계로 나누며, 1949년 이후를 중국 현대사의 시작이며 사회주의사회로 규정하였다. 아편전쟁과 ‘문호개방’에 대해서는 이전의 내용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2) 역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① 1990년대 교과서-1997년 초급중학 교과서 : 교육대강의 방침에 의거하여 1840년에서 1949년까지를 중국 근대 역사 시기이면서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하였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 특히 자세하다. 런쩌쉬의 금연 활동을 상세히 언급하면서, 후먼의 아편 소각 사건을 금연 투쟁의 위대한 승리로, 또한 외국 침략에 반대한 중국 인민의 강인한 의지로 설명하고 있으며, 이 투쟁을 승리로 이끈 런쩌쉬를 중화민족의 영웅으로 부각하고 있다. 아편전쟁의 패배라는 ‘굴육의’ 역사는 중국 인민의 애국주의 정신의 표현으로 변모되고, 런쩌쉬가 파직된 후 영국과 담판한 치산과 이산 등의 관료는 타협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아편전쟁은 반식민지 반봉건사회, 반제 반봉건 투쟁의 개시라는 점에서 “중국 역사의 전환점”이고 중국 근대사의 시작이라고 규정하였다. ‘문화에 대한 강조를 반영하여, 교과서에서도 청조의 문화를 크게 3장으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 그 중 학술과 교육제도 방면에서 “진보적 사상가”로 린쩌쉬 외에 공쯔전과 웨이위안을 거론하고 있다.-1993년 고급중학 교과서 : ·아편전쟁이 ‘굴욕스럽게’ 패배한 전쟁이 아니라, 애국 장령과 인민채서용에 관한 내용은 빠져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개량주의 사상에서 양무운동의 사상이 중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② 현재 교과서- 2002년 초급중학 교과서『중국역사』(8학년 상책) : 반제 반봉건 투쟁과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중국 근대의 “두가지 기본노선”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봉건사회에서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이행되는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난징조약에 대한 분석을 통해 비록 형식상 독립의 국가이지만 정치적으로 외국의 간섭을 받고, 자연경제의 특징인 봉건사회가 외국 자본주의의 충격으로 완전한 봉건사회도 아닌, 이로 인해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가 되었음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2002년 고급중학 교과서『중국근대현대사』: 아편전쟁의 영향은 1.사회성질의 변화-경제상 자급자족의 봉건경제가 지배적이었으나, 전쟁 이후 서방 자본주의 국가가 침략적 특권을 이용하여 중국에 상품을 팔고 원료를 약탈함으로써 중국 시장을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편입시켰고 중국은 반식민지 반봉건사회가 되었다. 2.사회모순의 변화-지주계급과 농민계급의 모순에서, 외국 자본주의와 중화민족의 모순, 봉건주의와 인민 대중의 모순으로 변화하였다. 3.혁명임무의 변화-전쟁 이전은 봉건 통치를 반대하는 것이었으나, 전쟁 이후 외국 자본주의 침략에 반대하고 또한 본국의 봉건 통치에 반대하는 두 가지 혁명 임무를 지게 되고, 중국은 구민주주의혁명 시기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편전쟁은 중국 역사의 전환점이고 중국 근대사의 시작이라고 규정하였다.- 결론 : 이상의 교과서 서술에서, 중국의 근대는 아편전쟁에 패배한 굴욕의 역사가 아니라 중국 군민이 침략과 약탈에 저항한 역사이고, 중국의 선진 지식인은 아편전쟁을 계기로 서양 열강의 침략에 대해 “사이장기이제이”의 책략을 제시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이 된다. 중국 민족은 아편전쟁과 ‘문호개방’이후 반제 반봉건투쟁을 전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구의 신사상 곧, 자본주의와 근대화의 실현을 위해 분투하였다는 말이 된다. 곧, 중국의 아편전쟁과 ‘문호개되었다.
북한의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1. 머리말2. 주체사관 확립기(1960년대 후반~1980년대 전반)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3. ‘조선민족제일주의’ 제창기(1980년대 후반~현재)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4. 맺음말1. 머리말- 1876년 조선은 일본과 조일수호조규(‘강화도조약’)를 체결함 : 근대적 의미의 문호 개방- 당면과제 : 반봉건·반외세 민족운동을 통해 자주적인 근대 민족국가 수립하는 것→ 실패 : 일본제국주의에 국권을 강탈- 문호개방의 의미 : 외국과의 무역한다는 의미를 넘어 국가구조를 전면적으로 근대적인 체제로 재편성하는 결정적인 계기 마련했다는 의미에서 한국사상 근대의 기점으로 평가- 문호개방의 성격을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가 존재함. → 특히 해방 후 남북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의 문호개방에 대한 인식은 커다란 편차 보임.① 논문의 전개- 북한은 ‘주체형’ 사회주의 국가로서 당과 최고권력자의 통치이념이 직접 역사연구와 교과서의 서술에 투영되어 있으므로 교과서를 중점으로 두되, 북한의 통치이념과 역사교육, 그리고 개설서 혹은 연구서의 유기적인 관련성을 분석.- 북한의 통치이념이 시기별로 어떻게 전개되고, 그와 관련해서 역사교육을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가 검토.② 분석 범위- 1980년대 이후 출판된 교과서들을 중심으로 서술배경과 내용을 분석.③ 논문의 목적- 문호개방에 대한 북한의 역사인식과 그 특징을 올바로 분석하여 남한 및 관련 국가들의 그것과 비교·분석을 통해 각국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인식 도출,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비롯한 세계평화를 모색하는 출발점.- 문호개방에 대한 북한의 역사교육과 역사인식이 내재되어 있는 역사 담론의 변화 구조를 해명하는 실마리 제공.2. 주체사관 확립기(1960년대 후반~1980년대 전반)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1) 주체사관의 확립과 역사교육① 역사교육의 목적 제시- (1967.12 최고인민회의) 김일성 : “주체사상을 모든부문에 훌륭하게 구현”할 것- (1968 조선로동당 교육부문 일군들에 행한 연설) 김일성 :을 위주로 서술되며, 근대는 1860년대부터 반외세·반봉건 투쟁의 역사로 규정할 수 있다.2) ?조선력사?(1981)의 문호개방 인식① 주체사관은 역사발전의 기본동력을 “역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위한 투쟁”에 있다는 전제 아래 시기구분의 기준을 사회경제 구성이나 계급투쟁의 변화·발전이 아닌 인민의 주체와 혁명의 성격으로 삼았다.② 주체사관은 근대사의 성격을 반침략·반봉건의 부르주아민족운동의 역사로 규정하고, 그 기점을 문호개방이 아니라 1860년대 반침략투쟁의 시작으로 설정하였다.③ 단점 : 유물사관에서는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변혁이 무엇에 의해 일어나는지, 또 계급투쟁의 기본동력은 무엇인지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④ 적용 : 이러한 주체사관에 입각한 근대의 기준은 1970년대 이후 발관된 모든 역사책에 적용되었고, 1981년에 간행된 고등중학교 4학년 역사교과서 ?조선력사?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⑤ 서술 내용- ‘미제침략선호의 침입과 놈들의 강도적 만행’에 대항하여 전개된 인민의 투쟁이 자세히 서술 : 김일성 일가가 근대 이후 제국주의-특히 미국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주도하였음을 강조하여 서술되어 있다.- 병인양요에 대한 인민들의 투쟁과 승리는 민족의 단결된 힘과 애국심을 보여주었으며 자본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각성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 : 남연군묘도굴사건에서 독일인 오페르트를 거론하지 않은 점에서 보면 ?조선력사?는 ‘미제날강도놈’의 ‘흉악’성을 부각시키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미양요에 대한 인민들의 투쟁에 대한 서술 : 인민들의 투쟁을 강조한 나머지 척화비의 건립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무관하게 파악하고, 나아가 그 건립시기도 신미양요 초기로 앞당기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이틀동안의 치열한 싸움(광성보전투)에서 무리죽음을 당한 미제침략자들은 더는 싸울 생각을 못하고 강화도에서 도망치고 말았다”는 등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하고 있다. 이는 거듭되는 침공을 모조리 물리치고 커다란 승리를 이룩하였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침략성과 민비일당의 무능부패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조미조약의 결정적인 배경이었던 청국의 ‘이이제이’정책에 입각한 알선과 권고, 개화파의 자주적인 조약 체결 노력 등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되어 있지 않다. 조미조약은 미제침략자들에게는 일방적인 특권만을 주고 조선에서는 이와 같은 특권을 보장할 의무만을 규정한 강도적인 불평등 조약이며 그 영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조청상민수륙무영장정에 관해서는 청나라 침략자들이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여 여러 가지 권리를 빼앗아냈다고 기술하였으며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민비일당의 무능과 부정부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임오군란 후 청·일 침략군이 서울에 주둔하면서 전횡을 부리는 ‘한심한 형편’에 놓이게 된 동시에 “민가일당의 투항주의적 정책은 미제를 비롯한 구라파자본주의나라들의 조선침략을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3) ?조선전사:근대편1?(1980)의 문호개방 인식① 19세기 중엽 이후 3.1운동까지 근대 시기를 다룬 ?조선전사?근대편(1~3)의 핵심을 추려내서 정리한 저서가 이종현의 ?근대조선역사?(1984)이며 내용상 거의 차이가 없다.② “조선인민의 근대역사는 외래자본주의를 반대하는 반침략투쟁으로 막을 열게 되었다”는 점 강조되었다. 즉, 1860년대가 식민지반봉건사회의 기점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반침략 민족운동의 발생, 발전이라는 주체적 측면에 입각해서 근대의 기점으로 설정되었으며 문호개방보다 그 이전의 반침략운동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③ 서술 내용- ‘미국해적선’ 제너럴 셔만호의 침입은 ‘60년대 미국자본주의의 아세아침략의 일환’으로서 자본주의열강의 침략을 반대하는 첫 애국적이며 정의로운 민족적 투쟁이었고 ‘김일성동지의 증조할아버지인 김응우선생님’의 지도와 지휘가 강조.- 프랑스침략자들이 무력침공을 감행한 병인양요, 미국 날강도들이 획책한 의 남연군묘도굴사건, 제너럴 셔만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된 호사건 등 서양침략자들의 도발책동에 대항한 인물들의 투쟁도 상세히 서술.- 호 국주의를 조선과 더 나아가서는 아시아침략의 ‘돌격대’로 이용하였다는 ‘미일침략자들의 공모결탁’을 강조.-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급속하게 반식민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어감으로써 민족적 모순과 계급적 모순이 첨예화되는 상황을 조성하였고, 그 결과 인민의 반침략투쟁이 강화되는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 강화도조약 이외의 조약에 관해서는 그 체결과정은 물론 내용마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조미조약에 관해서는 투항주의적 민씨 통치집단이 반역적 책동을 감행함으로써 인민들의 반침략·반정부투쟁을 촉발·강화시켰다고 언급하였다.- 김옥균 등 개화파가 국내시장 보호대책을 강구하는 배경으로 “는 봉건중국(청나라) 정부의 관료인 리홍장의 투항주의적 로선에 추종하여 다른 제3의 세력을 끌어들여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책동하던 리유원, 리최응 등의 사대투항주의적 통치집단은 리홍장과 결탁하여 구미침략자들에게도 문을 열어줄 음모를 1881년부터 본격적으로 꾸미기 시작하였다”고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3. ‘조선민족제일주의’ 제창기(1980년대 후반~현재) 역사교육과 문호개방 인식1) ‘조선민족제일주의’의 제창과 역사교육① 등장배경(위기) : 1980년대 후반 북한은 대외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추진과 구소련 및 동구권의 붕괴로 국제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고 누적된 저성장과 침체로 인한 경제난, 남한사회의 상대적인 발전 등으로 체제존립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양되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통치이념의 핵심으로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등장하였다.② 민족주의를 전면화한 목적은 자주성을 강조하는 데 있었다. ‘제일’이라는 것은 김일성과 주체사상, 북한식 사회주의제도를 의미한다. 주체사상과 마찬가지로 ‘조선민족제일주의’는 궁극적으로 김일성·김정일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귀결된다.③ 역사교육의 목적 : 역사교육의 목적이 김일성보다 상대적으로 김정일의 역할과 그에 대한 충성과 효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조선혁명’을 수행하며 ‘공산주의자’ 혹은 ‘공산주의혁명가’를 양성하기 보 ‘개화파의 형성’으로 나뉘어 장을 달리하고 장 제목에서도 자본주의 침략을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 앞에 배치됨으로써 그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요컨대, 시종일관 봉건적 착취와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대한 인민들의 투쟁에 초점을 맞춰져 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지만, 1981년판보다 1988·1993년판이 미국의 침략성과 이에 대한 반미투쟁의 역사를 더욱 강조하고 있으며, 제국주의 침략에 앞서 개화사상이 자발적·자주적으로 발생·발전했던 측면을 부각시켰다.② 서술 내용- 1988년판은 1981년판보다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선정적으로 표현하였다. 김응우 선생님의 지도 아래 평양 인민과 군인들이 투쟁에 나섰던 측면을 강조하였고 특히 호 사건에 관해서는 그 과정이 상세하게 다루어졌을 뿐 아니라 1981년판에서 서술되지 않았던 김응우의 활동과 역할을 강조하였다.- 1993년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소결론 부분에서 호의 격퇴는 “조선인민이 미국침략자들에게 두 번째로 가한 가장 심대한 타격”이었으며, 김응우선생님께서는 인민들의 투쟁을 승리에로 이끄셨다는 구절을 첨부하여 의미를 높이 평가하였다.- 남연군묘도굴사건에 대해서는 밤새도록 도굴작업을 했지만 새벽까지도 묘를 다 파헤치지 못하였다고 객관적으로 서술되었다가 다시 삭제되었으며 독일인 오페르트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침략자에 대한 적개심 혹은 반미감정을 강렬하게 표현하였다.- 1981년판과 비교해보면, 초지진전투에서 “적 100명을 섬멸하였다”는 내용이 추가되면서 손돌목·광성보전투의 상황이 비슷하거나 좀더 왜곡되게 서술된 반면 여전히 척화비의 건립을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과 무관하게 파악하면서도 그 건립시기는 신미양요 직후로 올바로 비정하였다. 특이할 만한 점은 전쟁 후 미국이 “조선봉건정부에 또다시 불평등조약을 강요하는 협박장을 보냈다. 그러나 조선봉건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절하였다”고 서술함으로써 비록 ‘봉건정부’로 규정하면서도 그 반침략적인 태도를 새롭게 포함하였다는 것이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을
포스트모더니즘 철학1960년대부터 미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대두된 포스트모더니즘은 절대적 믿음, 절대적 진리에 대한 회의에서 시작되었다. Lacan은 그동안 자신의 판단을 지배(구조주의)해왔던 다른 문화로부터 ‘나’를 해체(탈구조주의)하여 자신에게서 소외된 문화를 복권시켜야 한다고 했으며, Foucault는 한 사회가 받아들이는 진리체계란 그 사회가 허용하는 참의 집합이고, ‘참’으로 규정되는 것은 일정한 권력효과를 부여받는다고 하여 지식은 권력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푸코(Michel Foucault)의 훈육론은 지식은 권력 관계, 규율적 권력, 파놉티콘(panopticon)기능을 가진다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tprl 후반기의 인간 생활양식의 변화를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등장한 문화논리이자 사상체계이며 사회운동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생활과 직접적 관계가 있고 직접 확인될 수 있는 건축분야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에 무용, 미술, 문학 등의 예술영역으로 확산되었고 철학, 사회학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논리에 관련 있는 사상가로 Nietzche, Deleuze, Lyotard, Derrida, Lacan(라깡), Rorty(로티) 등이 있으며 기호학, 해체론, 정신분석학, 고고학, 계보학, 허무주의 등이 포스트모더니즘 문화논리의 정립과 관련이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교육과 관련시킨 학자는 Lyotard의 지식론, Derrida의 해체주의의 교육과정 이론에의 적용 등이 있다.일반적인 특징은 추상성, 체계성, 총체성, 절대성, 객관성, 보편성을 거부하고 우연성, 다원성, 비교불가능성을 강조한다. 절대적, 객관적, 보편적 지식체계에서 상대적, 주관적, 다양성을 추구하며 주체적 자아가 해체되는 문화이다. 인간주체, 개별적 자아에 회의, 대중들이 유희적 행복감을 향유하는 문화(여가,레저), 행위와 참여의 중시, 전통적 계급질서의 붕괴와 새로운 계급의 출현, 탈장르화의 확산 등이다. 탈이데올로기 사회, 후기 자본주의적 소비사회, 디지털 영상정보사회, 신중간 계급사회, 신과학사회, 다원문화사회의 문화적 패러다임, 사상운동 및 사회혁신 운동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개성과 연대의식을 강조한다.철학적 특징은 보편적 지식의 전달보다 국지적 지식의 이해를 더 중시한다. 절대적 진리 대신에 개인적 국지적 진리를 옹호하며 사회를 구성하는 각 집단의 문화적 전통, 배경을 중시한다.(소수집단:3세계, 여성, 흑인, 아동) 문화속 작은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다. 또한 상대적 인식론(소서사적 지식관) - 거대서사보다는 소서사가 정당화 된다.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 자신의 주변적인 문제에 관심을 둔다. 중심성, 자아성 보다는 주변성, 타자성을 중요시 하고 전체화를 추구하는 거대담론에 반대한다. 상대주의적 특징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청조주의 : 지식이나 인간 인식에 있어서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기초가 존재한다는 근대철학의 기본 가정이나 신념을 정초주의라는 이름으로 비판하고 반정초주의를 그들의 기본 입장으로 표방한다.- 가치중립적 성격- 절대적 진리에 대한 회의 : 해석학적 관점, 가치개입적 성격(개별성, 개성존중, 민주주의)- 소여성(절대적으로 주어진 것에 대한 인정)의 부정과 가치부하설- 진리의 우연성과 상호비교 불가능성 : 비이성주의- 이성과 확실성에 대한 전통 철학적 관념에 대한 강렬한 도전과 거부 표방- 문화적 상대주의를 추구한다.다양성의 특징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탈 정형화를 추구하는 다원주의 논리-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신이란 절대성과 확실성보다는 다양성 추구에 토대를 둔 삶의 방식이다.- 총체성, 전체성 보다는 국부성, 편파성 : 모든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 대신에 다양한 의견, 권리를 인정한다.- 사회의 통합이 아닌 다양화를 지향한다.- 탈정형화 탈정전화를 추구하는 다원론적 문화 : 고정관념 탈피또한 반 합리주의 철학적 특징도 있는데 인간의 합리적, 이성적, 의식적인 것을 주체로 여기는 모든 이성중심주의를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모든 유형의 형이상학적이고 허구적인 이원적 대립을 해체하며 사고의 획일성을 지양하고, 정보화에 따른 사고의 파편화, 다양성을 추구한다. 보편적 이성의 계발을 통한 개인과 사회의 진보라는 계몽주의적 신념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탈근대화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적, 이론적 틀로서 계몽적 근대화 계획을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헤겔, 막스가 주장했던 역사적 진보사관(절대정신, 유물론)을 거부하며 자연과학에 대한 낙관적 발달관 붕괴한다.교육원리의 교육적 의의는 교사와 학생간의 끊임없는 대화, 토론을 통하여 공동으로 지식, 가치를 탐구하며 창조하고 재창조해 나가는 동반자적 관계이다. 교육 내용으로서의 지식의 상대성을 갖고 있고 과학적 지식(객관적 지식)에 의해 소외되었던 일상 생활 속에서 터득한 지식(주관적 지식)을 학교교육에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 포스트모던한 태도는 풍부한 상상력을 학습시키는 방법이 동원되어야 하며 타자성 전략(수요자 중심 학습)을 통해 기존의 획일적 교육지배를 위한 체계,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포스트모던한 교육학은 미성숙자로서 학생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포스트모던 상황은 공교육의 재개념화를 요청한다. 전환기 사상으로 태동한 포스트모더니즘은 기존 교육사상과의 접점을 마련해야 하며 한계적 인식태도, 다원적이고 유동적인 열린 인식태도, 열린 지식관을 중시한다. 또한 전통적 교육의 획일적, 일방적 방법을 교사와 학생과 학생간의 개방적이고 비판적인 대화와 토론, 협동, 자율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탐구의 방법을 중시하고 언어가 인간행위의 핵심이라 하여 학생들간의 공동학습, 협동학습을 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