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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환학생 신청 자기소개서
    자 기 소 개 서‘꼭 필요한 사람이 돼자.’ 라는 가훈아래 2남 2녀중 막내로 태어난 저는 어렸을때부터 화목하고 즐거운 집에서 자랐습니다. 엄격했지만 호탕하셨던 아버지 아래서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을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검소하시고 부지런하셨던 어머니로 인해 어려움의 시기도 무사히 견뎌낼수 있었습니다. 호탕하신 아버지는 저에게 일의 추진력을 배울수 있게끔 하셨고, 근면하신 어머니는 저에게 삶의 지혜를 배울수 있게 하셨습니다. 형제가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 늘 즐겁게 사는 방법을 터득할수 있었고, 남달리 깊은 형제애 속에서 남들과의 관계에 대한 내면적인 면도 자연스럽게 몸소 익힐수 있었습니다.어렸을때부터 발표하는것을 좋아했던 저는 과제를 맡아 해결하는것을 즐겼습니다. 무언가를 신중히 생각하고 남앞에서 발표할수 있다는것은 저에게 하나의 큰 즐거움이였습니다. 그러면서 남들앞에서도 저의 의견을 말하는데 어색함이 없었습니다. 또한 청소하는것을 좋아했던 저는 청소반장을 도맡아 하며 남들이 꺼려할지 모르는 청소를 앞장서 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들과의 교우도 더욱 돈독히 키워나갈수 있었고, 더 활발한 성격을 키워나갈수 있었습니다. 학교생활을 하며 무언가 배우고 익히는것이 좋았던 저는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그안에서 보람도 느낄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의 짜여진 수업과 짜여진 배움의 길에 대해서는 한편으로는 회의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하고싶은 공부를 몸소 배우며 열정을 쏟아부을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하나의 큰 기쁨이였습니다. 대학생활을 통해 저는 평소 좋아하던 시를 쓰며 여유롭게 즐길줄 아는 넓은 마음을 얻을수 있었고, 사진을 찍으며 건축물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도 하였습니다. 삶의 여유를 알게되면서 좀더 여유롭게 나의 삶을 가꿀수 있게 되었고, 그것이 더 나아가 ‘유성구 노인복지회관’에서의 봉사활동이라는 뜻깊은 기회로 이어나가게 되었습니다.대학교 1학년생활을 마치고 저는 군대에 들어가게 되었고, 항공부대에서 승무원의 일을 수행하며 군생활에 임했습니다. 군생활을 통해 몸소뛰고 익히는 체험학습을 배우게 되었고, 뭐든지 도전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우선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후 바로 복학하여 새롭게 지낸 대학교 생활은 저에게 하나의 도전이였습니다. 도전의식과 함께 참여적인 자세로 많을 학습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저의 이상을 높이기 위해 힘썼습니다.‘카네기 리더쉽 프로그램’을 통해 좀더 적극적인 마음가짐과 리더로서의 자질을 배울수 있었고, ‘하이테크 마케팅 전문가과정’을 통해서 좀더 발전된 경영인으로의 자세를 키워 나갈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Triple A’라는 학내 영어회화 동아리를 통해서 영어실력향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여러 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성실함을 배우기 위함이였습니다. 이것이 저를 한단계 발전된 모습을 이룩할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기타| 2010.08.01| 1페이지| 3,000원| 조회(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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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환학생 영문 학업계획서
    교환학생 신청시영문으로 작성했던 학업계획서입니다
    기타| 2010.08.01| 1페이지| 3,000원| 조회(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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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곤지키야사 ppt
    콘지키야샤(金色夜叉)이와나미 문고판의고전주의(擬古典主義)의고전주의 문예사상. 의고주의(擬古主義) 라 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1880년대 말기(메이지 20년대 초두)부터의 국수주의적 대두에 의해 나타난 고전회귀의 경향. 이하라 사이카쿠(井 原西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오자키 고요(尾 崎紅葉), 고다 로한(幸田露件)등의 소설가. 오 치아이 나오부미(落合直文) 등 시인의 일파에 대해 붙여진 이름.오자키고요(尾崎紅葉)일본의 소설가, 수필가, 하이쿠[俳句] 시인. 본명은 도쿠타로[德太郞]. 일본의 근대 문학 개척자 중의 한 사람이다. 1885년 친구들과 함께 거의 20년 동안 일본의 소설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친 잡지 겸 문학 결사인 겐유샤[硯友社]를 조직했다. 그는 에도 시대 (1603~1867) 문학을 공부하여, 17세기의 작가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킴으로써 사이카쿠의 날카로운 감각과 자신의 시적인 유미주의를 혼합시켜 낭만적 사실주의를 창조했다. 또한 새로운 구어체 문학 운동에 적극적이었는데, 그의 정교한 문체는 사랑 의 테마와 여성 묘사에 안성맞춤이었다. 젊은 작가들이 열렬히 그를 추종해 모여들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문하생 은 낭만주의 단편 작가 이즈미 교카[泉鏡花]와 자연주의 소설가 도쿠다 슈세 이[德田秋聲]였다. 〈두 여승의 참회 二人比丘尼色懺悔〉(1889)〈침향 목침 伽羅枕〉(1890) 다정다한 多情多恨〉(1896) 〈마음의 어둠 心の闇〉(1903) 〈콘지키야샤 金色夜叉〉(1897~1902)콘지키야샤 (金色夜叉) 형성배경1897년 1월부터 1902년 5월까지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 에 연재하였고, 1903년 1월부터 3월까지 《신쇼세츠[新小說]》 에 발표하였다. 1898년에 전편, 1899년에 중편, 1900년 후편, 1902년 속편, 1903년 속속편 등 5책을 슌요도[春陽堂]에서 간행 했다. 작가의 최후의 대작으로 신문 독자들에게 널리 환영받았지 만, 1903년 오자키 고요가 위암으로 죽음으로써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그의 최후를 장식하기에 알맞은 대작(大作)으로 많은 이목을 집중시켰다. 종래의 작품보다 시야도 넓어지고 극적 변화 도 많은 사회소설로, 문하(門下)인 오구리 후요(小栗風葉)의 손으 로 끝이 맺어졌다.콘지키야샤 (金色夜叉) 줄거리일찍이 부모를 잃은 칸이치는 시기자와 집안의 배려로 그 집에 거처하며 대학에 들어가면 시기자와의 딸 미야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 미야도 칸이치를 사랑했지만, 은행가의 아들 토미야마와 결혼한다. 돈 때문에 가장 소중한 사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칸이치는 학업을 그만두고 고리대금업자가 되어 사회에 복수하려 한다. 미야는 결혼 후에도 칸이치를 잊지 못하고 편지를 보내다가 어느 날 그에게 찾아와 잘못을 빌지만 칸이치는 용서하지 않는다. 후에 칸이치는 토미야마에게 버림받은 미야의 처지를 알게 되고 그녀의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주요 대목「 미야, 내년 정월 오늘밤, 내 후년의 오늘 밤...10년 후의 오늘밤... 내 눈물로 저 달 을 흐리게 할테니.. 」 「 いいか宮さん。来年の今月今夜、再来年の 今月今夜、10年後の今月今夜、僕の涙で きっとこの月を曇らしてみせる。」참고자료아타미(熱海), 칸이치・미야 동상, 미야의 소나무장한몽(長恨夢)1913년 5월 13일에서 동년 10월 1일까지 매일신보 (每日申報)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일본작가 오자키고요[尾崎紅 葉]가 쓴 《콘지키야샤(金色夜叉)》를 번안한 연애소설이다. 후반 부에서는 작자의 창의가 가미되어 원작보다 내용이 풍부하다. 13 년 11월 4일 임성구(林聖九)의 혁신단(革新團)이 상연하였고, 30 년 12월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되어 여러 판을 찍었다. 당시 여러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려 사랑에 대한 새로 운 풍조를 불러일으켰던 작품이다. 이와 같은 큰 인기에 힘입어 영화화, 혹은 가요화되기도 하였으며, 15년에는 속편이 매일신보 에 다시 연재되기도 하였다.콘지키야샤, 장한몽 비교오자키 고요가 일본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을 당시에는 청일 전쟁의 승리가 일본 국민의 국가 의식을 앙양시켰고, 이에 따라 사상계에는 국가주의적인 풍조가 대두하게 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부의 지식계급 사이에서는 낭만주의적 개인주의도 대두하던 시기에, 바로 오자키 고요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콘지키야샤를 번안한 장한몽 이 조선에 등장할 때 조선의 상황은 일본의 상황과 다르게 일제 강점기의 패배주의가 팽 배했던 시기다. 같은 스토리가 양 국가의 상황과는 달리 미묘한 차이로 다르게 받아들여 진 것이다. 물론 공통적인 것은 자본주의의 유입에 따른 각가지 모순과 갈등, 금전주의 황금 만능주의가 만연했던 시기였다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갖은 자`의 여유에서 나오는 로맨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이와 다르게 조선은 `못 가진 자`의 비참함에서 나오는 거의 국가적 패배감이라고도 불릴 수 있을 만한 정서가 담긴 로맨스 라는 생각이 든다. 나라를 빼앗긴 민중의 설움과 김중배에게 농락 당하는 순애를 투영시 키고 있다. 번안자가 옛 애인을 위해 순결을 지키고자 하는 순애의 모습에서 민족의 순 결 즉 아이텐티티를 지키려고 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결부시켰을 개연성도 있다고 볼 수 있다.참고자료오자키고요(尾崎紅葉) 장한몽 표지 삽화 영화포스터{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10.08.01| 10페이지| 2,000원| 조회(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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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일어감상문
    誰でもいつも平凡な日常の中での逸脱を夢見たりする.しかしそんな想像の中Aliceみたいな事は起こらない.それでもこんなにまるで起きるような神秘な話はいつも私をときめくようにする.私はこの映画を見る前から,私がもし過去に帰ることができたら,
    독후감/창작| 2010.08.01| 1페이지| 1,500원| 조회(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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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에 투영된 재일한국인의 정체성 연구
    목 차Ⅰ. 서 론………………………………………………………………………??2Ⅱ. 본 론1. 재일한국인 의식 형성의 배경………………………………………22. 시기에 따른 재일한국인 문학의 변화………………………………53. GO 를 통해 본 현재 재일한국인의 현실(1) GO 의 표면적 특징…………………………………………………6(2) 작품 속에 드러난 재일한국인의 의식……………………………84. GO 와 Revolution No.3 ? Run! boys, run! 의 비교?분석…12Ⅲ. 결 론………………………………………………………………………17*참고문헌……………………………………………………………………18Ⅰ. 서 론유미리(柳美里), 현월(玄月), 양석일(梁石日),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가 아쿠타가와 상)을 비롯한 일본문단의 주요 문학상을 수상한데 이어, 이들 중 몇몇의 작품이 일본 독서시장에서 호응을 얻으면서 재일한국인 문학이 주목되고 있다.일본의 근대문학은 순문학(純文?)과 대중문학으로 구분된다. 1920년대 중반 이후의 일본 문학에는 순문학이 ?리얼리티?를 추구해 온 반면, 대중문학은 재미를 추구해 왔다는 상식적인 관념이 자리잡고 있어왔다. ‘순문학이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라는 말은, 순문학 작가들이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나 본래적인 자신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창작을 해왔다 라는 말과 서로 통한다 할 수 있다. 일본 문학의 풍토 안에서, “진실한 (본래의) 자기를 그린다.”는 순문학의 시도는 단지 작가의 일상 생활을 그리는 것으로 왜소화함으로써 결국 사소설이 순문학의 중심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왜소화’라는 사소설의 이러한 경향은 반드시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김달수나 이회성, 김석범 등과 같은 재일 한국인 작가부터 이양지나 유미리 등과 같은 그 아래 세대 재일 한국인 작가까지에게서 보이는 사소설적 경향은 이들을 논리적으로 일본 순문학의 중심부에 자리잡게 해 준다.)90년대 중반까지 재일 한국인 문학은 어디까지나 일본문학계의 중심에서 멀리 떨주어진 전제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세대이다. 재일한국인의 정주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일본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가 일본인을 주로 포함한 다른 외국인과 국제결혼을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은 국제결혼은 ‘민족’에 집착하면서 재일 생활을 일시적인 체류라고 생각해 온 제1세대가 노령화하고, 그 비율이 감소함에 따라 더욱 박차가 가해졌다.한민족은 1945년 8월 일본제국이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하여 태평양전쟁이 종결됨에 따라 35년간 지속된 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그 결과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형성된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지배와 관리 그리고 억압도 일단 실질적으로 종식되어야 했으나 그 법적 지위는 명확하지 않았다.1952년 4월 28일 평화조약의 효력 발생과 함께 일본 국적을 이탈하여 재일한국인은 확실하게 외국인이라는 지위에 놓이게 되었지만 조국의 남북분단에 의한 국적 호칭과 한일회담의 결렬에 따른 두 나라간의 합의 지연으로 그 법적 지위는 불안정하였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강요당했다.이런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조국을 떠난 동포들은 조국을 등져야 했던 까닭과 조국의 참담한 정치적 사회적 형편도 자세하게 썼으며 조선사람이 조선인의 육신, 언어, 관습을 가지고 외국인들의 문화 속에서 맨몸으로 뿌리 없이 살아야 하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기록했다. 남북 분단 때문에 본국의 작가들이 쓰지 못했던 이념의 횡포와 상처가 어떤 것인지도 알렸고 분단이 그들 재외 동포들에게 어떤 형태로 고통을 주는지 그 실상도 자세히 썼다.) 침략자의 나라, 민족적 굴욕을 안겨준 적의 나라에서 살아가야만 했던 재일동포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그곳을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방 이후 저 어수선한 해방정국의 사회적 혼란과 분열 때문에 일본으로 떠나는 사람마저 늘어났다. 일본의 남북 등거리 외교에 영향을 받아 교포 사회도 민단과 조총련으로 분열되고, 남북의 정치적 영향과 변화에 따라 동포 사회는 덩달아 부단히 고통을 받아왔다. 보이즈 런 과 GO 는 설정상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주인공이 일본인에서 재일 한국인 고등학생으로 변경되어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 차이는 가족,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크게 다루어져 있다는 점이다.작품 GO 의 첫 번째 특징은 대단히 빠른 이야기의 속도감에 있다. 이 속도감은 주인공의 아버지를 묘사하는 방법에 잘 나타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우선,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소위 ‘재일조선인’으로 마르크스를 신봉하는 공산주의자였다고 소개된다. 그 아버지는 4년 전에 텔레비전의 여행프로그램을 통해 하와이의 풍경을 보고 나서 돌연히 하와이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는, 그것을 이유로 조선국적(朝鮮?籍))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또한 아버지는 젊었을 때 열렬한 정치 활동가임과 동시에 프로 권투 선수이기도 했다. 반면 그는 초등학교밖에 졸업할 수 없었지만 독학으로 마르크스를 읽고, 니체의 ‘짜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을 쉽게 읊조릴 수 있을 정도의 인텔리이기도 하다. 소설의 막판에서, 60에 가까운 아버지는 아들과 싸우다가 완벽하게 아들을 다운시킨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가 갑자기 국적을 바꾼 것은 하와이 따위에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들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어서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런 아버지의 다양한 모습이 속도감 있게 제시된다.두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유머감각이다. 다음과 같이 아버지가 조선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는 계기를 제시하는 예를 주목해 보자.어머니는 아버지가 무너지려는 것을 보고는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뒤로 돌아가 무작정 등을 밀었다.“베를린의 벽은 무너졌고, 소련도 이미 없는데…. 지난번에 텔레비전으로 말하는 것을 듣다 보니 소련이 붕괴된 것은 추위가 원인이었더라. 추위는 사람의 마음을 얼게 하는 거야. 主義도 얼어붙고 마는 거잖아.” 애절한 어조였다. 그대로 계속하고 있으면 ‘도나도나’라도 노래하기 시작할 기세였다.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있었던 아버지가 얼굴을 들어 텔레비전의 화면으로 시선 환경에서 깨어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아버지에게 권투를 배우기 시작한 첫 날의 일이었다.“왼팔을 앞으로 똑바로 뻗어봐.”“팔을 뻗은 채로 몸을 한 바퀴 돌려봐.”“지금 네 주먹이 그린 원의 크기가 대충 너란 인간의 크기다. 그 원 안에 꼼짝 않고 앉아서 손닿는 범위 안에 있는 것에만 손을 내밀고 가만히만 있으면 넌 아무 상처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겠냐?”“권투란 자기의 원을 자기 주먹으로 뚫고 나가 원 밖에서 무언가를 빼앗아 오고자 하는 행위다. 원 밖에는 강력한 놈들도 잔뜩 있어. 빼앗아 오기는커녕 상대방이 네 놈의 원 속으로 쳐들어와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갈 수도 있다. 게다가 당연한 일이지만 얻어맞으면 아플 것이고, 상대방을 때리는 것도 아픈 일이다. 아니 무엇보다 서로 주먹을 주고받는 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도 넌 권투를 배우고 싶으냐? 원 안에 가만히 있는 편이 편하고 좋을텐데.”나는 아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배울 겁니다.”)지금까지의 스기하라의 모습은 그의 크기만한 원 속에서 안전하게 순응하며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권투를 배우기로 결심하면서 앞으로 그를 보호하고 있던 틀 밖으로 나가서 그의 크기를 넓힐 것을 다짐한다. 이 부분에서는 이전의 재일한국인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과는 확연하게 다른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이 그들의 운명이고 벗어날 수 없는 것이라 체념하며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그들의 자세를 낮추며 살아왔던 것에 비해, 이제는 자신의 크기를 넓히기 위해 지금까지 자기 주변에 둘러져 있던 틀을 뚫고 나가려고 할 만큼 의식이 성장했음을 보여준다.그렇지만 일본에서 그들의 현실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법적으로는 권리에 있어서 일부 제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한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재일한국인을 바라보는 인식에서도 그들의 의식은 드러난다.“너희들 같은 사회의 쓰레기는 길가로 걸어야지!”우리는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느냐고는 생각지 않았다을까 하고.“대학에 가서 뭘 해. …… 대학 같은 거 회사원 양성소나 다름없잖아. 그런 데 볼 일 없어.”“순신은 회사원이 싫은 거로구나.” ……“뭐 싫은 건 아니야. 가능하면 일류 기업에 들어가서 사장 같은 거 해보면 좋지.”“취직 차별 때문에? 지난번에 텔레비전 보니까, 특집 프로그램에서 이제는 취직 차별이 없어졌다고 하던데”“신경 써줘서 고마워. …… 암만 그래도, 내가 일류 기업에 들어갔다고 쳐, 그래도 사장은 절대 될 수 없어. 텔레비전에서 무슨 소리를 하든,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야.”“불공평하다니까.” 히로시가 담배 연기를 토해내면서 말했다.“하지만, 그게 현실인걸.” 순신이 담배에 또 불을 붙이고 말했다. “일본 사람이 같은 일본 사람을 차별하는데, 외국인을 차별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공부만 잘하면 이 나라의 지배층에 속할 수 있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아. 공부를 잘해도 일본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구. 나는 어차피 무엇이 돼야 한다면 최고가 되고 싶어. 하지만 정상적인 길을 걸어서는 최고가 될 수 없지. 그래서 나는 대학에도 안 가고 취직도 안 할 거야.”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인용한 부분을 보면 순신의 험악한 인상과 폭력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재일 한국인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를 작가가 객관적으로 서술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Revolution No.3 의 주인공은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는 재일 한국인의 모습을 순신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또한 세 번째에 인용한 부분은 GO 에서도 보이듯이 그들이 받는 차별을 무덤덤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재일 교포 1세대부터 계속해서 받아온 차별 속에서 어쩌면 그들은 그것이 그들의 숙명이라 생각해서 그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Revolution No.3 의 순신과 GO 의 스기하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순신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제약을 벗어나려 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순응하며 자신의 살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반해 스기.
    인문/어학| 2010.06.26| 19페이지| 3,000원| 조회(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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