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다야마 가타이 作)이 책은 얇고 작아서 읽는데 큰 부담이 없었다. 처음 시작부터 굉장히 독특하다. 주인공에 대한 묘사나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라던지가 없고 바로 한 남자가 여자를 잊게 다고 하는 내용부터 나온다. 전체적인 내용은 도키오 라는 작가가 요시코 라는 어린 여성을 좋아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요시코 에게는 다나카 라는 남자친구가 있고 도키오 역시도 3명의 자식과 아내와 함께 한다. 그래서 요시코 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한다. 자신은 다만 다나카와 요시코의 신성한 사랑의 증인이라는 명목 하에 그녀를 감시한다.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그녀를 집안에 두지만 2층 집에 머무는 요시코에게 다가가고 싶어 그는 많이 참는다. 결국 어린 나이에 사랑을 하게 된 그녀는 그 사실을 부모도 알게 되고 결국 그녀는 다나카와의 더 많은 발전이 있기 전에 그녀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가고 도키오는 그녀가 있던 방에서 그녀의 냄새를 찾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책을 읽는 내내 세세한 심리묘사와 배경묘사를 통해서 직접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 질투심과 아쉬움과 회한이 하나가 되어 회오리바람처럼 머릿속을 회전했다. 도의심도 뒤섞여 더욱더 불꽃이 격렬해졌다, 불쾌감이 강렬하게 몰려온다. 등의 심리적 묘사는 도키오의 사랑하지만 억제해야하는 그의 마음 상태를 세심한 터치로 묘사하므로 써 도키오가 요시코를 얼마나 사랑하는가도 느낄 수있다. 또한 사랑할 기회도 업이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그 일생을 맡긴 운명 등의 내용을 통해서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도한다 책을 읽는 내내 배경묘사는 직접 이야기가 쓰인 곳을 다녀온 느낌을 주는데 밤의 분위기라던 지 집안의 분위기 혹은 플랫폼의 묘사 등은 너무도 상세해 영화를 보는 느낌을 준다.그리고 무거운 이야기라기보다는 누군가에게서 직접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을 준다. 당시의 신여성은 무엇인가를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대화를 통해 알려주고 도키오는 외국소설을 많이 접함으로써 그러한 서구적인 신식적인 것에 영향을 받아 요시코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수있다. 요시코와 도키오 두 인물모두 처음엔 보수적인 면을 탈피한듯 하나 이야기의 후반, 요시코의 사랑이 깊었음을 나타낸 이후부터는 내면묘사에 있어서 모순적인 면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신식을 추구하면서도 구식적인 발상을 하는 것을 볼수 있다. 작가는 중간 중간 들어가서 사건의 묘사 이후 문제 제기를 하기도 한다. 남자가 가장 많이 맛보는 생활의 고통 일에 대한 고민 성욕으로부터 생기는 불만족 등이 무서운 힘으로 가슴을 압박했다하면서 처음부터 이야기의 끝까지 35세의 도키오가 아름다운 힘 요시코에게 어떻게 사랑을 느꼈는가 보여준다 여기서는 황야 같은 마음에 꽃이 피고 다 녹슬어 버린 종은 다시 울리려고 했다. 라는 식으로 꾸며 써서 이뤄질 수 없고 부정한 사랑을 아름답게 승화하기 까지 했다. 독특한 구성이라면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직접 실으면서 이야기를 그냥 던져주는 식이 아닌 우리스스로가 이야기 속으로 자꾸 빠져들게 만드는 구성법을 이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은 이야기 끝까지 이용되는데 이 책의 독특함을 자아낸다고 생각한다.
▶ 들어가는 말일본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몇 해 전 일본여행 이후로 관심은 높아졌다. 그때는 단순히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그래서 일본어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가 사학과를 진학하여 그래서 일본문화라는 수업을 듣게 되었고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한일 우호의 해’라는 말이 우스울 정도로 예민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수업을 통해서 일본이란 나라와 나 자신간의 관계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나우시카의 분석과 감상일본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최고봉인 미야자키 하야호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게 되었다. 제목을 통해서 바람계곡에 사는 나우시카라는 사람의 이야기 겠거니 하면서 보게 되었고 또한 미야자키의 작품이라는 것에서 더욱 흥미를 가지며 보았다. 나우시카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산업문명이 붕괴하고 그로부터 천년 후 금속조각으로 황폐해진 대지를 독을 가진 균류가 장악하기 시작했고 이 균류들은 썩은 바다 ‘부해’라 불리는 숲을 이루어 인간생존 위협을 하게 된다. 거대한 지렁이 오무가 사람을 위협하고 부해의 독가스로 인해서 마음대로 숨을 쉴 수 없고 방독면을 쓰고 생활은 한다. 바람계곡은 바다로 부터 불어오는 바람 덕분에 부해의 유독성 가스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곳 사람들에게 바람이란 자연의 혜택 그 자체인 것이다. 대지는 어둡고 푸르른 녹음의 기운이란 느낄 수 없는 분위기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르키메니아의 군사들의 습격을 받는다. 나우시카의 아버지 '질'은 이 과정에서 살해당하고 나우시카는 도르키메니아에 인질로 끌려가게 된다. 도르키메니아의 비행정으로 이동하는 도중 이들은페지테의 왕자 '아스벨'이 조종하는 건쉽(전투기)의 공격을 받는다. 한 차례의 공중전이 벌어지고 도르키메니아의 비행정은 대부분 격추되다. 또한 아스벨의 건쉽도 격추된다. 나우시카와 아스벨, 두 사람은 모두 부해에 추락하게 되고 나우시카는 곤충들로부터 아스벨을 구해준다. 부해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된 두 사람. 그들은 그곳에서 부해의 비밀을 알게 된다. 부해는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복구하기 위해 존재하며 부해의 식물들이 흙과 물을 정화하여 깨끗한 지하수를 모든 생명에게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무는 이러한 부해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붉은 머리를 하고 활발하며 바람을 타고 다니는 나우시카가 바람의 계곡을 다시 부활하게 하는 이야기이다.기독교를 종교로 삼고 있는 나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이야기가 예수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처음에 볼 때에는 그냥 생각 없이 보았는데 여러 번 다시 보면서 느낀 것은 작가가 의도했겠지만 예수의 삶과 나우시카를 연결시켜 내용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우리 삶을 구원하듯 나우시카도 바람계곡의 구원자 인 것이다. 예수님과 나우시카를 비교하여 표현해 볼 수 있었다.먼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의 개념이다. 구원자 예수를 잉태 할 것을 천사들이 성모마리아에게 예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선택 받은 자, 기름부음을 받은 리더 역할을 하게 될 구세주를 말한다. 나우시카에서도 눈이 안 보이는 노파가 나우시카에게 집에 걸린 그림을 보며 말한다. ‘푸른 옷을 온 몸에 두르고 황금벌판에 온다. 잃어버린 황금대지와의 인연을 다시 맺으도다.’ 이 말은 오랜 전설 속에서 예언자가 나타나서 황량하고 쇠퇴해지며 황폐해진 세상을 다시 깨끗이 해 줄 그런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설만은 아니기를 빌면서 나우시카는 그림을 유심히 쳐다본다.다음은 종말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사람들이 제멋대로의 욕심을 부리게 되는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그러한 종말의 과정이 보인다. 군사대국 '도르키메니아'의 대형비행정이 추락한다. 이들은 불의 7일간에 사용되었던 거대한 생체병기인 거신 병을 페지테를 함락시킨 후 탈취하여 이것을 부해와 오무를 없애는 데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비행성이 와서는 침략해서 바람계곡을 부해를 태우면 태양이 온다. 오무 무리가 분노하여 땅을 뒤덮고 파괴된다. 라고 노파가 말을 남긴다. 이처럼 노파의 말대로 거신 병을 구해서 부해와 오무를 없애고 인간만이 있는 인간의 세계를 만들자. 라는 욕망으로 도르키메니아의 정복자는 숲을 완전히 불태운다. 이로 인해 부해와 오무로 인하여 황폐해진 세상에 마음껏 숨 쉬지 못했지만 그러나 바람의 계곡만은 바람으로 인하여 독가스가 다른 곳에 비하여 적어 살기 좋았다. 그러나 그나마도 대기의 분노로 인하여 바람계곡의 바람이 멈춰서 더욱 살기가 힘들어졌다 이러한 불의한 인간의 욕망이 종말을 불러오게 되었다.여기서 영웅적 행위를 볼 수 있다. 이 또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속하시어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손과 허리 발에 못을 찢으시며 십자가에 죽게 되신 모습과 비슷한 행위를 볼 수 있다. 나우시카는 오무와 부해의 마음을 헤아릴 수있는 초능력을 가진 공주이다. 나우시카는 특별한 족속 왕족이라는 운명을 타고 났기에 자기 스스로 온몸을 다해서 당당히 맞서 빨간눈의 분노로 찬 오무를 가라앉히고 이러한 초자연적 행위로 대기의 분노도 잠식시켜 오무의 빨간 분노의 눈이 다시 초록의 눈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바람계곡를 구하게 된다. 그러나 다른 인간들을 대신해 오무의 무리에게서 사망하게 된다.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나시어 다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처럼 나우시카 역시 마을 사람들을 위해서 죽었지만 다시 살아나게 된다. 오무에게서 신비로운 노란색 줄기가 나와서 공주를 뒤덮고 그 줄기 하나하나가 노란빛을 내뿜고 나우시카가 정화되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난다. 나우시카가 일어나서 걷고있는데 노파의 예언대로 파란옷을 입고 오무의 노란 줄기 하나하나가 모여서 빛으로 황금들판을 만들고 있었다. 전설속에서 모두가 꿈꿔온 그사람은 나우시카 였던 것이다. 나우시카가 걸으면서 다시 바람계곡의 하늘은 맑아지고 바람이 다시 불기 시작했다. 처음에 마을의 분위기와는 달리 오무의 포자로 아름답게 꾸며진 바람계곡으로 변화였다. 이러한 예수 삶과도 비슷하여 비교해 볼 수 있지만 또한 불교의 ‘공(空)’사상도 담아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부해의 위는 더러운 독가스로 인해 숨을 쉴 수가 없고 또한 사람들에게는 악의 요소이지만 그러나 부해의 그 밑바닥에는 맑고 시원한 공기가 나오고 깨끗하며 푸름을 느낄 수 있었다. 부해는 악도 아니며 또 선도 아닌 그 위의 ‘공’의 상태다고 볼 수 있다.여러 측면, 여러 종교의 사람들에게 작가 자신의 의견,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해서 누가 어떤 종교에서건 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종교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여 부담스럽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이렇게 다양한 사상까지 넣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부해의 밑에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가 있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다는 장면 또 깨끗한 물에서는 아름답게 자라고 독소도 없는 포자의 모습에서 남자가 만든 애니메이션이지만 감성적이고 아름다웠고 오무를 달래는 모습과 작은 동물들고 가여이 여기는 마음이 보기좋았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산과 산 그리고 계곡 절벽, 하늘을 나는 모습을 보며 어린시절 느껴보았던 하늘을 놀고싶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애니메이션은 이처럼 사람을 여리고 감성적이게 하는 것 같다.작가 자신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이 애니메이션을 돌려보고 또 돌려 보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냐 하는 것에 따라서 여러 가지의 내용으로 시사하는 바가 많아 내 나름대로의 주제를 정해보았다.첫째는 환경오염의 문제점을 시사한다. 부해가 나쁜 독가스를 뿜고 오무의 포자가 나쁜 종자가 되어 사람을 위협하는 것을 이것이 더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무의 포자는 왕국 밑에서 끌어내온 지하수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상태의 꽃과 나무였다. 이 만화는 허구이지만 우리가 지금처럼 환경을 소중히 하지 않고 방치한다면 방독면을 쓰고 다녀야 하는 극한 상황에 달 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또한 부해가 더러워진 사회를 정화시키고 그러한 부해를 보호하는 오무의 모습에서 사람과 자연간의 공생관계도 엿볼 수 있다. 또한 환경오염과 함께 자연을 사랑하라는 말을 전하고 있는것 같다. 화난 오무도 잠재울 수 있고 동물들과 괴물을 악하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대화하며 나는 너의 친구라고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아이들로 하여금 나우시카 같은 마음씨 자연을 보호하며 아끼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것 같다. 나우시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주인공을 닮으려는 아이들의 심리를 잘 파악하는 것 같다.두 번째로는 사람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 욕심을 버리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우시카에서는 서로 땅을 차지하려고 군대를 보내어 싸움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곤충들을 건드리게 된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삶에서도 나타나는데 부시가 군대를 통하여 처참히 몰살시키는 것을 보면서 사람간의 악한 마음이 더욱 안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크게 보자면 전쟁을 반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도르키메니아 라는 군사대국을 설정하여 그들로 하여금 황폐해진 세상을 더욱 살기 힘든 환경을 만들게 하고 또 보는 이로 하여금 그러한 상황을 비판하게 하여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려 한다. 전쟁이라는 것의 파멸이 얼마나 상상을 초월하는 지 덧붙여 핵무기의 생산이 생산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사람들에게도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반전주의를 표방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욕심을 버리고 인간과 인간 그 자체를 사랑하는 박애의 정신도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 들어가기 전에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서는 후기인상주의 세잔느, 고갱과 함께 하는 화가의 한명으로 그리고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이상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그림이라고는 해바라기 외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가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고흐를 기억하고 칭송하고 있다. 왜일까?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부분 속에서 고흐는 뛰어난 면모를 보인 것일까. 그의 인생과 그 속에서 나타낸 그의 작품들, 작품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고흐의 인생에 대해고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외모는 초록색 눈동자와 붉은 수염 든든한 어깨를 가진 건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짧게 깍은 머리카락은 숱이 성글었다. 가끔 이맛살을 찌푸릴 때면 굵은 주름이 가로로 패였다. 입술은 꾹 다물고 미소가 인색하였다. 그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고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다. 붓을 쥐는 손이 너무 예민해서 붓을 아예 던져버리고 엄지손가락에 물감을 듬뿍 묻혀서 찍어 바르는 습관이 있었다. 잘 씻지 않은 고흐는 늘 지저분했다.고흐는 1853년 봄 3월 30일날 태어났다. 이듬해 그날은 그의 형이 죽은 날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그의 이름도 형을 불렀던 같은 이름인 고흐를 붙여주었다. 어린시절 그의 성격은 말 수가 적고 표시가 나지 않은 아이였다. 자연에 대해 잘 알고 그러한 자연을 즐길 줄 아는 아이였다. 19살 고흐는 나중에 자신이 화가가 될 것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또 자신의 그림을 위한 박물관이 세워질지도 말이다. 그는 단지 화랑에서 일하는 점원이었고 명품을 복제한 판화나 들여다 본 것이 미술에 대해서 가진 지식의 전부였다. 그가 처음부터 그림을 그리려고 맘먹은 건 아니 였던것 이다.항상 조용했던 고흐는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다. "태양도 큼직하게 번쩍거린다. 고지를 파랗게 덮었던 잔설이 햇빛을 당하지 못하고 녹는 것을 보았어" "숲에 들어서면 울창한 나뭇잎에서 에메랄드처럼 순결한 파랑색이나" 등등 그는 자신의 동생 테오에게 아름다운 표현의 편지를 썼다. 도 어쩌다 본 그림속의 노인과 개의 그림을 보고도 그는 연민의 감정을 느끼며 자신의 외로움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히 자신이 느끼는 것을 진실 되게 동생에게 전했다.여자들을 꽤 좋아했으나 항상 실패하고 짝사랑으로 끝났다. 그는 아를르 시내 중심의 대성당 쪽에는 아름다운 아를르 처녀들을 구경하기 좋아하는 장소여서 자주 찾았 갔었다. 또 영국으로 갔다가 하숙집 딸인 외제니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외제니는 고흐를 피했고 고흐가 종교에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네덜란드에 가서 만난 사촌여동생을 사랑하게 되었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고 여동생은 그를 멀리했다. 그런던 그에게도 사랑이 나타나는데 시골처녀 마르고이다. 고흐는 마르고와 결혼하고자 했으나 고흐의 부모님이 반대했다. 실의에 빠진 마르고는 자살을 기도했으나 목숨은 건졌다. 그러나 고흐와의 사랑은 끝나고 고흐는 다시 이전처럼 홀로였다.고흐가 외제니를 잊기위해 기독교에 귀의하고 그는 목사의 길을 걷기 위해서 암스테르담 대학교의 신학부에 입학하려고 했다. 입학시험을 위해서 3달의 시간 내었지만 그는 낙방했다. 그래서 보리나주 교회를 찾아가서 탄광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그는 고아부들에게 성서를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광부들과 둘러앉아서 예배를 인도하는 일이나 병든 환자를 위로하고 간병하는 일을 통해서 자신에게도 기쁨과 위안이 되었다. 고흐는 가장 가난한 자보다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었고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고통스러워했다. 그러한 그를 교회에서는 부담스럽게 여겼다. 여자 때문에 선택한 종교 마져도 그의 곁을 떠났다. 신앙으로부터 결별하게 된 고흐는 아무런 충동에나 휩싸이고 방황하게 되었다.그때 그는 그림을 그릴 것을 결심했다. 테오의 편지를 보면 자신이 연필을 손에 꼭 쥐고 있으면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무력감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고 했고 이것이 자신의 길이라고 말했다.그가 그림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맘을 먹고 그림을 보러 다니면서 고흐는 어느 전시관에서 고갱을 만난다. 전부터 고갱을 기억해두려 했는데 실제로 그를 만나고 서로를 칭찬하며 백년지기 처럼 친하게 지낸다. 그림을 한창 하게된 고흐는 외벽을 노랑색으로 칠한 노랑집을 만든다. 고흐는 화가들이 모여서 작업할 수 있는 공동체를 구상했고 이곳에 그의 친구 고갱을 부를 마음에 들떴다. 그리고는 이제나 저제나 고갱을 기다렸다. 친구를 맞이할 채비를 하느라 노란집을 구석구석 열심히 치우고 닦으며 대청소했다. 결국 고갱은 빚진 것을 청산하고 노란집에서 고흐와 함께 작품세계를 펼쳐나간다. 하지만 고갱은 고흐가 사랑한 아를르 다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또 그곳을 떠나려고만 했다. 고흐는 고갱의 마음 붙여보게 하려고 애썼고 그런 고흐를 고갱은 불편하게 생각했다. 고갱 마저도 그를 떠났다. 고흐는 그동안의 억누르며 참았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베어버렸던 것이다. 그뒤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하며 그를 피했다. 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웃들의 눈초리가 견디기 힘들고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쳐다봐서 그림을 그리고 힘들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의 요청에 의해서 요양원에 가게 되었고 발작 증세와 회복이 되풀이 되는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고흐는 자신이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했다. 하는 일마다 무엇 하나 되는 일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런 문제없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자신의 운명은 자꾸만 불행이 자신을 쫒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힘들 일이 있더라고 꿋꿋이 살자꾸나! 이야기 했다. 하지만 그를 압박한 감정을 이기기 어려웠는지 마지막으로 ‘까마귀가 나는 보리밭’을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죽음을 선택했다.▶ 인생을 나타낸 그의 그림고흐는 그토록 진지했던 기독교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방황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길을 그림이라고 믿었고 그게 또한 자신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꾸준히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습관은 훗날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고 자살하는 그날까지 이어졌다.고흐는 날씨가 궂으면 외출을 삼가고 집에 있었다. 그런 날은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면서 자화상을 그렸다. 붓을 들지 않고 헛되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다. 또한 그는 낯선 색깔, 천박한 색깔,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색을 통해서 그림을 그릴때 는 여러 가지 생각하고 배우는 것이 많아 좋다고 했다.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화가라는 사실을 좋아했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는 화면위에 물감을 두텁게 발랐다. 또 울퉁불퉁한 밭이랑을 붓으로 곡괭이 삼아 일구듯이 그렸다.고흐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솔직한 감정을 속이지 않았다. 느끼면 느끼는 대로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붓을 움직였다. 다른 화가들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그렸지만 고흐는 마음으로 느낀 것을 고스란히 표현했다. 마음의 눈으로 읽을 수 있는 더 중요하고 더 본질적인 것을 그리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가식과 허상에 불과하고 보이지 않는 지신일 화가가 참으로 그려야 할 대상이라고 믿었다.그는 아를르 시내의 미술 재료를 취급하는 화구상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그림 밑칠을 주문하는 데만 몇 주일씩 걸려서 애벌물감으로 밑칠을 하지 않고 물감을 직접 먹여서 그림을 그리는 적이 많았다.고흐가 활동할 당시 일본미술이 이따금 수입되어졌다. 고흐는 일본판화를 보고는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일본 미술에 심취되었고 아를르에 있으면서도 자신은 지금 일본에 살고 있노라고 했고 또 일본을 가고 싶어 했다. 그가 아를르로 간것도 자연을 한층더 밝은 곳에서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일본의 판화화가들이 느끼던 것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서 였다. 그가 말하는 일본 화가들은 예술가의 영혼이 말할 수 없이 섬세하고 마음이 소박하며 손이 빠르다고 했다. 그는 그런 일본판화를 모아서 그대로 베껴 그리기도 했다. 고흐는 순수한 미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고 단순한 만큼 강렬한 색채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그린 자신의 초상화는 동양인처럼 눈 꼬리가 올라간 쪽눈으로 자신을 그렸다.고흐는 구필화랑에서 일하면서 프랑스 바르비종 화파의 그림에 눈을 뜨게 된다. 바르비종 화파가 그린 수수하고 흙내음 나는 전원적인 그림을 맘에 들어했다. 그는 아를르와 프로방스에 자리잡고 주로 그림을 그렸다. 그곳에서 고흐는 바르비종화파의 그림 처럼 프로방스 지방의 추수장면을 주로 그렸다. 그는 영국인의 다리라고 불리우는 ‘랑글로아’ 도개교를 단숨에 다섯 점을 그리게 되는데 해질녘의 노을빛을 받아서 도개교의 윤곽이 또렷하게 떠오르는 배경을 맘에 들어 한다. 도개교 빛에 두 연인이 지나가는 모습을 그리려다가 그 부분에 빨래를 펑펑 두들려 대는 아낙네를 여럿 그린다. 그는 작품하나를 완성하고 자신의 그림을 바라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또 곧장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쓰고 나서는 그의 동생을 위해서 다리를 또 그리게 된다. 일부로 동생에게 보낼 그림에는 첫 그림보다 꼼꼼하게 공을 들였다. 아낙네의 옷도 곱게 그리고 도개교를 지탱하는 아름드리나무도 밝은 노랑으로 칠해서 더욱 아름답게 표현했다. 자신을 항상 믿고 돌보아주는 테오를 많이 사랑했나보다.고흐는 늪지 풍경 ,말없이 일하는 농부들, 허름한 농가 그림을 즐겼고 그것은 그가 농부들과 함께 있을 때가 제일 편해서였다. 어느 농부의 움막을 찾아가 감자먹는 가족들을 그린 그림도 이 시기에 그린 것이다. 고흐는 그 가족의 얼굴을 감자처럼 울퉁불퉁하게 그렸는데 그것은 땅속 깊숙이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농촌 풍경을 그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바르비종 화파의 그림을 닮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