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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홀리스틱 교육으로 본 사회과 교육의 미래 전망
    홀리스틱 교육으로 본 사회과 교육의 미래 전망
    *사회과 교육에 대한 접근 방법사회과 교육에 대한 방향과 나의 철학을 제시하기 위해 미래의 교육관으로 각광받고 있는 ‘홀리스틱 교육관’을 전망을 보기 망원경으로 삼았다. 기존에 있는 다른 교육관을 끌어 들여 나의 꿈을 제시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나의 꿈’에 대한 정립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고,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형성해온 교육관을 미루어 볼 때 가장 밀접한 관련성을 가진 사상이 바로 ‘홀리즘’이었다.보고서의 서론 부분은 학문의 패러다임적 전환을 설명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세계관으로 ‘홀리즘’을 개관할 것이다. 그리고 본문에서 홀리즘을 교육의 영역에 한하여 설명한다. 이와 연관하여 사회과에 대한 전망을 하기 위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기존의 사회과에 대한 비판을 알아본다. 그리고 본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과와 홀리스틱 교육관과 접목하여, 사회과의 비전을 제시한다. 나아가 홀리스틱 관점에서 변화하여야 할 ‘새로운 교사관’을 제시한다.결론에서는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고, 동시에 보고서 작성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감상을 쓴다.序1. 패러다임의 전환, 그리고 사회과 교육교육 철학이나 교육의 방향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농경 사회 시대에는 농경 사회 시대에 적합한 교육이 있었고, 산업 사회 시대에는 산업사회 시대에 적합한 교육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봉거주의 사회에서와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교육은 각기 그 시대의 특징에 맞게 이루어져 왔다. 그렇다고 하여, 교육이 그 시대의 체제와 문화에 적응하는 기능에만 충실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시대에나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도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여 왔다. 특히 민주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다양하고 깊이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렇게 교육을 받는 사람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 더욱 주요한 관심사가 되었고, 교육에 대한 기대도 한층 더 높아지게 되 각자의 주체가 되는 ‘다수다양체’의 확산적 사회를 일컫는다.현대 사회의 변화는 곧 교육현장, 즉 학교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우리는 달라진 학교의 형태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즉, 학교는 일원적이고 일방향적인 의미전달의 장이 아니라, 매우 다원적인 의미 소통의 장이 될 것이다. 또한 학교는 죽은 학습 경험을 제시하기 보다는 살아있는 학습 경험을 제공하는 생태지향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즉, 을 살아가기 위한 교육의 현장으로서, 의 기준으로서 학교교육의 의미는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살아있는 교육 현장으로서 다양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주는 역할은 사회과 교육이 행하는 핵심역할이 될 것이다. 즉, 사회과 교육은 기존의 학문의 분할에 그쳤던 죽은 지식의 영역을 새로운 삶의 의미 있는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높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本0. 홀리스틱 교육비전표 2 홀리스틱 교육 비전 선언 『시카고 선언』 제1원칙. 인간성의 최우선제2원칙. 인간 개개인의 존중제3원칙. 경험적 학습의 중시제4원칙. 홀리스틱 교육으로서의 패러다임 전환제5원칙. 교사의 역할을 재인식하여야 한다.제6원칙. 선택의 자유제7원칙. 참된 민주사회의 창조제8원칙. 지구시민교육제9원칙. 공생을 위한 생태교육제10원칙. 정신성과 교육홀리스틱(holistic)은 ‘홀리즘적인’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어의 ‘홀로스(holos, 전체)'를 어원으로 하고 있으며 전체(whole), 건강(health), 낫게하다(heal), 신성한(holy) 등의 파생어를 가지고 있다. 이는 홀리스틱 교육(Holistic Education)이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생태계와의 관계 등 ’관계성'을 중시하는 교육으로 그 속에서의 균형과 포괄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홀리스틱 교육 이론의 근간이 된다.위의 10가지 원칙은 1990년 6월에 홀리스틱적인 교육으로서의 전환을 지지하는 80명의 교육자가 세계 각지에서 국경을 넘어 시카고에 모여 발표한 선언이다. 롯되었다. 헌트와 메트카프에 따르면 각 사회마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터놓고 자신의 신념을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예컨대 우리사회의 경우, 지역감정 문제나 남북문제, 동성애 문제, 언론문제, 반공이데올로기, 충효, 종교 등 타인에게 자신의 소신을 완전히 드러내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있다. 헌트와 메트카프는 이와 같이 한 사회가 그 구성원들이 터놓고 반성적으로 논의하기가 어려운 주제들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에 전체주의적 잔재가 많이 남아 있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와같이 모순된 문제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마음속에만 간직한 채 밖으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정신건강에도 해롭다고 한다. 때문에 사회과에서 이러한 닫혀진 세계에 있는 주제들을 끄집어내어 반성적으로 탐구시키는 것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개개인의 정신적 문제를 해소하는데도 크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나. 교육적 목적에 따라 단순화된 사회과학사회과를 “교육적 목적에 따라 단순화된 사회과학”이라고 정의하는 입장에 속하는 주장이다. 요컨대 사회과는 여러 가지 사회과학적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이며, 다만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여 단순화 또는 번역한 것이라는 것이다. 사회과를 이렇게 규정했을 경우 시민적 자질의 육성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목표가 제거되기 때문에 보다 교과의 성격이 명확해지는 장점이 있다.사회과를 단순화된 사회과학이라고 보는 관점은 특히 1960년대에 주목을 받게 된다. 1960년대는 미국 교육전반에 걸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각 학문의 구조와 방법론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이 크게 유행하였다. 교과서에서 가르쳐지는 지식들은 그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의 과정을 거치면서 각각의 지식들이 서로 연관을 갖게 되고 그 결과로서 사회적 현상에 감추어진 하나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이와같이 ‘의미’를 얻기 위해 사실적 지식들을 조직하는 도구가 기본개념이나 핵심적 아이디어인데, 이과 교육은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음을 소홀히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자칫 편향된 시각을 심어주고 자신과 다른 소수의견에 대해 비민주적 태도를 견지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집단 형성을 위한 교육은 개인의 발달이나 자아실현이라고 하는 교육의 근원적 측면을 소홀히 할 가능성이 있다.이러한 연유에서 최근 집단 형성을 위한 사회과교육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과 교육이 다양한 개인적 삶과 세계관을 존중하고 개인의 복지에 공헌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특히 최근의 다문화주의, 페미니즘, 비판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유행과 관련이 적지 않다. 또 사회과 교육의 개인적 적절성을 추구하는 입장이 ‘교수’보다는 ‘학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구성주의’와도 관련이 있다.2. 사회과 교육의 미래전망. 사회과 교육의 목적에 대한 방향 설정현대 사회과 교육은 ‘민주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시민성의 함양’이라는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목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과 교육이 참된 민주시민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 자질을 기르기 위한 교과라는 데에는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기르기 위한 교육적 행위는 시대마다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면 그러한 비판을 바탕으로 사회과 교육의 목적에 대한 홀리스틱 교육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자.0) 인간성의 최우선 원칙교육이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성장의 가능성을 키워 가는 것이어야 한다. 학교는 학습자 전원이 참된 의미로 배우고 전인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촉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곧 사회과 교육은 자기의 가족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또 세계 속의 사람들, 나아가 지구라는 행성, 그리고 우주와 자신의 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지금까지 근대의 공교육은 인간성을 최대한 개발하는 것을 제 1의 목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회과 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교과에서 인간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과 교육은 이제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통합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문제를 깊게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생태학적인 홀리스틱 세계관은 이러한 모순점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가. 사회과 교육에 학습 내용 및 방법에 대한 제안표 3 교육내용 및 방법에 대한 홀리스틱 교육관의 접근종래의 학교교육홀리스틱 교육론학력의 요소주의적 이해학력의 전체적 이해사실, 일반법칙, 명시적인 지식의 중시정신성, 의미, 가치, 암묵知, 각성의 중시교육내용의 교과목으로 분할ㆍ단편화총합학습, 경험적 학습에 의한 교과의 통합지적 작업에 의한 학습 중시직관, 신체, 이미 등, 다각적 접근.객관적 평가, 측정, 수량화ㆍ수학적 기술.상호 주관적 평가, 시적, 산문적 기술경쟁원리상호의존, 상호부조효율성 결과 중시과정중시.고정적 스케줄, 시간표, 계획성만남, 유연성, 유동성, 비연속성.표준화된 일원적 기준ㆍ학습방법.다원적 기준ㆍ다양한 학습형태다수의견, 표준적ㆍ중심적 학습자의 존중소수의견, 이질적ㆍ주변적 학습자의 존중3)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교과서근대의 사회과 교육은 사회생활에 단순히 적응하기 위한 사회기술로 시작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판적 접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과 교육에서 아동의 관심이나 흥미에 대한 고려는 매우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단순하게 사회지식위주의 주입과, 사회과학적 지식의 경험은 아동들을 그들의 사회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주된 이유가 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교육방법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홀리스틱 교육에서는 기존의 죽어있는 교과서를 반대한다. 즉, 배우는 것을 여러 가지 감각을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세상에 대처해 나가는 것으로 볼 때, 이성중심적인 교육은 지나치게 편향적인 교육방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홀리스틱 교육에서는 살아있는 경험을 중시한다. 예컨대, 사회과에서 산림훼손에 대한 공부를 할 때 홀리스틱 교육방법은 산림을 관리하는 사람과 직접 살고 함께 일하면서, 삼림에 대한 한다.
    교육학| 2009.09.13| 11페이지| 1,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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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자살에 대한 철학적ㆍ시대적 고찰
    자살에 대한 철학적ㆍ시대적 고찰 평가A+최고예요
    序1. 배경최근 ‘한강다리 자살 신드롬’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자살은 사회 신분을 망라하고 유행하고 있다.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 정몽헌, 안상영 부산시장, 박태영 전남지사 등 고위 고위급 인사의 자살을 비롯해 공공성의 신분을 띤 영화배우 이은주씨의 자살 등 자살은 사회 여러 계층에서 마치 유행성 질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자살은 2004년 암ㆍ뇌혈관질환ㆍ심장질환 다음으로 높은 사망원인 4위(1만1천523명)를 차지했으며 이에 더하여 자살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헝가리를 제치고 한국은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률이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한국은 세계에서 놀라만한 경제성장률을 선보임과 동시에 그와 맞물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살증가율’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다. 국민의 35%로 정도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통계가 있으며, 이는 자살 문제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한가를 여실히 증명해 주는 자료라 할 수 있다.본 장에서는 자살을 역사적으로 조명해 봄으로써 시대에 따라 자살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보고, 오늘날 이론적으로 자살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이해하고자 한다.시대에 따라 자살은 끝없이 변하는 하나의 고려대상이다. 예를 들어서, 자살은 의학적으로 정상과 병리로, 사회학적으로 규범과 아노미(무규범)로, 정치학적으로 개인과 사회로 설명된다. 또 철학은 자유와 자기상실로, 심리학은 삶의 충동과 죽음으로, 문화는 열정과 거부로 자살을 파악한다. 우리는 이러한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 대해 알아봄으로써 자살에 대한 재인식의 기회와 더불어 자살의 대한 확장된 사고를 갖게 될 것이다.本1. 자살(suicide)의 의미1)어원적 의미자살의 어원은 라틴어의 sui(자기 자신을)와 cædo(죽이다)의 두 낱말의 합성어로서, “인간이 스스로의 명백한 의지와 힘으로 자신을 죽여 버리는 행위”이다. 즉, 자살이란 그 원인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당사자가 자유의사(自由意思)에 의하여 자신의 목숨을 끊는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서, 타인의 강요가 개입된 모든 장애물을 통과하면서 일체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인격과 자유와 존엄과 관심사를 유지하는 해결책이 되었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허용한 것은 아니었다. 고대 로마에서는 노예를 하나의 소유물로 인정했기 때문에 노예의 자살은 법으로 금지하였다.2)중세가. 교회의 자살 추방모든 인간은 신이 세운 나라에 속해 있다. 그러므로 속세의 질서가 부여하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든 시도는 신에 대한 기독교적 의무를 손상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취급 받았다.① 아우구스티누스 ‘신국론’ : 중세 교회의 도덕 원칙을 밝힌 「신국론」에 자살을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살인으로 규정했다. 그는 십계명의 제6계명을 뒤집어서 설명했다. 성경에 ‘네 이웃을 살인하지 말라’가 아니라 ‘살인하지 말라’고 적혀 있는 것은, 성경이 인간을 죽이는 모든 행위를 살인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자살하는 사람들도 살인죄를 짓는 것이라고 역설했다.② 토마스 아퀴나스 : 아퀴나스는 자살을 자연에 대한 범죄, 인간 공동체와 신에 대한 범죄라고 보았다. 파리 대학 교수였던 그는 모든 생물은 자연에 따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생명을 보존하려고 노력하는데, 자살을 기도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념에 영향을 받은 아퀴나스는 “어떤 것이든 부분은 전체에 속한다. 인간과 인간의 생활양식에 그 말을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인간은 사회의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 그 자체로 사회에 속한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사회에 부당한 짓을 하는 것이다.나. 추앙받는 죽음과 조롱받는 죽음중세에는 자살에 두 얼굴이 존재했다. 즉 추앙받는 죽음과 조롱받는 죽음이다. 자살은 각 계층에서 골고루 일어나는 현상이기는 하지만, 수도사나 기사의 자살은 보통 사람의 자살과 다른 척도로 판단되었다. 노동자나 농민의 자살은 비겁하고 신을 외면한 짓으로 평가되었던 반면, 수도사의 자살은 믿음을 고수한 순교로, 기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영웅시 되 자살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는 해석이 널리 퍼져나갔다.나. 계몽주의자살에 거부감을 갖는 이들도 물론 있었지만, 대부분의 철학들은 자살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① J. J. 루소(1712~78) 인간이 불행한 처지나 질병으로 사회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자살을 허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사회계약론』의 저자였던 그는 인간에게 자신의 죽음을 완전히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개인은 사회와 일정한 “계약관계‘에 있으므로 사회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② 볼테르(1694~1778) 볼테르는 삶을 등지려는 사람의 결정을 인정했다. 『철학사전』에서 그는 육체적인 단련, 음악 듣기, 사냥, 연극 관람, 사랑스러운 연인을 만나기 등을 자살 방지법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8일은 기다리라고 권유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죽고 싶은 의지가 사라지지 않으면, 자살 충동을 더 이상 잠재우기 어렵다고 보았던 것이다.③ 흄(1711~76) 그는 교회를 통해 자살을 비판하는 것은 미신이라고 주장한다. 『자살에 대한 단상』에서 그는 자살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므로 신에 대한 죄가 아니라고 했다. 자연 법칙에 위배되는 것이 죄라면, 자살뿐아니라, 집을 짓는 것, 지나치게 건강을 지키려는 행위,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행위도 비난받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무능력한 인간, 즉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에 짐만 되는 존재가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빨리 자살을 기도하는 것이 사회에 도움을 주는 행위가 아닌가? 라고 역설적으로 비판하였습니다.④ 올바크(1723~89) 『자연의 체계』에서 그는 자살도 자연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찾고자 노력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거부하려는 성질이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자기에게 해로운지 저울질 하게 되는데, 때로 자유분방한 태도를 보였지만, 자살을 진실로 자유로운 활동으로 이해하지는 못했다.가. 베르테르의 자살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 세대의 정신적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18세기 말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대신 해 주었다. 사랑과 절망, 사람들 사이의 이해 부족으로 생긴 마음의 골, 억눌러왔던 사고와 가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 젊음 그리고 죽음 등이 베르테르의 우울한 표현 속에 다 녹아들었다. 당시 베르테르의 세계관은 많은 젊은이들에게 살아가야 할 삶의 기준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소설 속 주인공을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나. 미화된 죽음 : 충동적인 감정적 삶을 인정하고 계몽주의 의사들에게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되어 왔던 망상을 미화시키는 과정을 거치면서, 낭만주의 시대 사람들의 자화상과 세계관에는 자살이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제 자살이 굳이 금기로 묶어둘 일이 아니라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했다.5)빅토리아 시대(19세기의 자살)가. 고전적 도덕 가치와 규범의 붕괴 : 고전적으로 내려오던 기독교의 도덕 가치와 규범도 차츰 풀어졌다. 1841년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는 『기독교의 본질』에서 종교를 인간적인 그리움의 반영이자 임의로 만들어낸 신에 대한 소망의 반영이라고 보았다. 또한 18세기에 찰스 다윈은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탄생』으로 후기 진화론을 만들어내면서 인간이 창조물의 우두머리라고 가르친 교회에 정면으로 맞섰다. 의심과 불안감은 그때까지 지속되던 종교적 신뢰의 틈을 파고들었다.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은 규범의 상실과 사고의 중심축을 잃어버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은 신은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나. ‘자살’에 대한 객관ㆍ학문적 분석의 시대 : 클라우디아 라케이세(Claudia Lachaisse)와 요제프 티솟(Joseph Tissot)같은 사회학자들은 가난한 노동자들이 자살자의 과반수를 차지한다고 결론지었다. 공업화 우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선량하고 유능한 시민이 되기 위해 청소년들은 체제에 순응해야 했고, 지나치게 방대한 학과 공부를 감당해야 했다. 백과사전식 지식을 강요하고 기계적인 학습을 반복시키는 것이, 판단력과 비판력, 책임감을 키워주는 교육보다 앞서 나갔다. 부모나 교사들은 혼란에 빠진 청소년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정과 학교는 막 눈뜨기 시작한 성욕과 젊음을 제대로 발산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을 더욱 숨막히게 해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다. 청소년기 자살에 대한 조망은 1906년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의 『수레바퀴 아래서』)에 잘 나타난다.3. 자살의 사회적ㆍ생물학적ㆍ심리적ㆍ철학적 측면1) 자살의 사회학적 측면(E. 뒤르켐)가.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아마도 자살에 관한 사회에 대한 영향에 대해 가장 방대한 연구를 한 사람은 바로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에서 인간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사건들을 연구하였는데 인간이 자살하는 이유는 바로 가족, 종교, 사회와의 끈이 약해졌을 때이며 이혼 사별 등은 자살에 가장 취약한 사건이 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그는 처음으로 인간의 자살을 네 가지로 종류로 나누었는데, ‘이기적 자살 (자기 중심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정신동요성 자살). 숙명적 자살’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뒤르켐의 자살이론을 바탕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 자살을 접근해 보도록 한다.나. 자살의 종류① 이기적 자살(egoistic)일상적인 현실과 좀처럼 타협 또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자살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예컨대 정신질환자의 자살도 이런 경우에 속한다. 개인의 내적인 고통으로 인해 더 이상 살 의지를 잃었을 때 행하는 자살이 대부분이다. 아마도 우울증 환자가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영화배우 이은주, 장국영의 자살이 대표적인 예이다.② 이타적 자살(altruistic)이기적 자살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 또는 집단에 결론
    사회과학| 2007.11.21| 9페이지| 1,000원| 조회(1,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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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철학]영화 불을 찾아서의 철학적 이해
    [철학]영화 불을 찾아서의 철학적 이해
    Quest For Fire(불을 찾아서)- 장자크 아노1. 작품 설명1)인물대사가 있어도 하나도 해석할 수 없는 원시언어로 각색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설명하기 앞서 인물이나 부족에 대한 언급을 해 놓는다.가. 부족① 울람족 : 동굴거주부족, 불을 찾기 위한 탐험댈르 보내는 부족(나오, 이카, 가우)② 크잠족 : 식인종, 사람고기를 즐겨 먹는 종족③ 이바카족 : 철새 섬기는 부족, 집단거주지역(움집 형태의 촌락체)에서 문명화된 삶을 영위. 불을 피우는 기술, 집과 그릇문명을 소유한 세련된 부족.④ 네안데르탈인 : 불을 억기 위해 울람족을 공격. 다른 부족에 비해 덜 문명화됨나. 주요인물① 나오 : 불을 찾기 위해 나서는 울람족 탐험대의 대장② 아무카 : 불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곰의 굴에서 격투를 벌여 살아난 울람족 전사③ 가우 : 야생적인 면을 가진 울람족 전사. 나중에 이카와 교미를 하려다 실패.④ 이카 : 식인종에게 먹힐 위험에 처하게 되지만, 울람족의 전사들에게 구출되어 결국 울람족 전사 나오를 사랑하게 됨. 나중에 울람족에게 불을 피우는 기술을 전달2)사건8만년 전 어느 평화로운 부족(울람족)이 다른 원시인 부족(네안데르탈인)의 습격과 늑대들의 공격으로 '불'을 잃게 된다. 그 시절의 '불'이란 생존의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불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난 중에 살아남은 부족 원시인들은 거처를 옮기고 이들 중 세 사람(나오, 아무카, 가우)이 불을 찾아 떠나게 된다. 이들은 사자의 공격을 받고 나무 위로 피신하고 맘모스와의 만남과 한 떠돌이 여자 원시인(이카)이 합류하는 등 여러 모험을 겪던 중 결국 불을 가진 어느 부족(크잠족)으로부터 불을 얻는다. 돌아오던 중 여자 원시인이 자신이 살던 부족(이바카족)으로 돌아가고 그녀를 데리러 가던 일행은 문명이 발달된 그녀의 부족으로부터 불을 만드는 방법을 보게 된다.이들은 불을 가지고 돌아오던 중 곰의 습격으로 한 사람(아무카)이 심한 부상을 입고 불을 원하는 다른 원시인들의 공격해한다. 컴컴한 산 중에 불이 빛난다.3)배경8만년전 거대한 미지의 세계에서의 인간의 생존은 바로 불을 소유하고 있는 자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이 인간들에게 불이란 거대한 신비를 지니고 있었으며 아무도 그 창조의 근원을 알아내지 못한 때였다. 불은 자연으로부터 가져와야했고 바람과 비로부터 보호하고 다른 종족으로부터 지켜야만했다. 불은 힘의 상징이었고 생존의 길이었다. 이 불을 갖고 있던 자는 곧 생명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2. 철학적으로 본 인간의 존재(영화를 바탕으로)1)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가. 동물적 본능을 지닌 ‘가우’동물적인 캐릭터로 대표되는 가우. 가우는 네안데르탈인이 침입하기 전 빨래하는 여성을 보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교미를 한다. 그러한 광경에서 우리는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는 동물적인 행위를 보고 충격을 받게 된다. 그것은 현대에서 이루어 질수 없는 행위로 강간의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시시대에 개인으로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은 만큼, 그 때 동물적인 교미는 극히 집단적인인 종족 보존 측면이 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된다.또한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 여성원시인의 행위를 보고 우리는 묘한 당혹감을 느낀다. 이것은 법률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원시시대를 기초로 했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우리는 아직 객체화 되지 않는 인간의 무리들을 발견하며, 원시집단체계의 부족에게 보여지는 생물학적인 면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나. 인육을 먹는 크잠족(식인종)선사시대 이전에 인육을 먹는 인종이 있었다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인류가 점점 문명화 될 수록 식인 풍습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선사시대이전에 식인풍습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속에 적응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육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인육은 풍족한 부족에게는 금지될 수 있겠지만 공격성이 부족하고 미개한 문명으로서 존속 자체가 어려운 부족에게는 가능하였다.종족의식(인간으로서) 전혀 없던 크잠족. 그들은 동물보다 더 가치 인간의 모습이다. 즉, 불을 소유하지 못한 울람족의 세 청년이 사자에게 쫓기는 모습이라든가, 곰과 싸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원시적인 이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이 과연 동물과 비교해서 우월한 종인가에 대해 고민한다. 결국 이러한 고민에서 우리는 인간이 사회성을 갖지 않는 이상 다른 동물과 비교했을 때 전혀 우월할 수 없는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가진 사회로 인해 다른 동물들과의 다툼에서 인간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그러한 사회성이 발달하지 못한 원시시대에서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대등하거나 나약한 존재로 부각된다. 우리는 이곳에서 장자크 아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즉 인간이 원시시대로 돌아가 지금 가진 기술과, 문명과 문화들, 그리고 사회를 모두 제거해 버린다면 인간은 사자보다도 나약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2)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가. 인육먹는 것을 거부하는 사피엔스(울람족)우리는 영화에서 배고픔에 지친 울람족 전사들이 불씨 에서 남은 고기를 먹다가 해골이 발견되자 그것을 뱉어 버리고 매우 흥분하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울람족에게서 원시시대에도 도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생물학자 다윈은 ‘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열등한 종족들이 세계 도처에서 고도로 문명화된 종족들에 의해 멸망했을 것이다.’는 말을 통해서 호모사피엔스를 생존경쟁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존재로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정신적 특징을 끝내 진화론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즉, 어느 정도 도덕성을 가진 종족인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크잠족같은 식인종에게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다만 우연의 소산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즉, 적자생존에서 도덕은 배제해야 할까?이러한 설명이 현재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천부적으로 이성적이었다는 다른 철학자들의 견해에 동감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이 좀 더 우위를 차지할 수 않고, 세 명만을 보내는 것이라든가, 여행도중 부상당한 동료를 버리지 않고 끌고 오는 경우는 인간에게 이성적인 면이 있다는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다. 문명을 전달하는 이바카족불씨를 창조하는 기술, 집과 그릇을 만든는 문명을 가진 이바카족. 그리고 그곳에 유혹되는 나오. 나오는 그곳에 양질의 종자를 제공해 주었다는 이유로 불씨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된다.즉, 이바카족이 나오에게 불씨 만드는 방버을 가르쳐 주는 것은 서로를 위해서 하는 행위 즉, 이타적인 행위인 것이다.그런 이타적인 행위는 인간이라는 종족이 얼마나 서로에게 우호적인가를 보여준다. 이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못한다. 물론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이 이러한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찾고 있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장면에서 인간이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하는 이성적인 측면을 발견하게 된다.3)종교적 존재로서의 인간가. 맘모스와 교류하는 나오, 그 믿음은 어디에서 나오는가?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이 부분을 선택했을 것이다. 나오가 크잠족과 맞서는 상황에서 보여준 행위. 손에 마른 풀을 쥐고, 긴장된 시선으로 맘모스에게 다가갔던 모습. 그리고 서로 눈을 마주치며, 간절한 믿음을 보여주는 나오의 눈빛.그것은 인류가 가진 최초의 믿음이 아니었을까? 영적 교류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동물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원시인들이 어떻게 해서 생존했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의 가능성을 하나 더 발견하게 된다.특히 지금의 종교와 비교할 때 그것은 단지 생존에 직접적인 생각을 띄었을 뿐 하나도 다르지 않다. 즉, 맘모스가 자신의 종족을 구해주리라는 믿음은 토테미즘과 나아가 샤머니즘에 관계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원시시대에 있어서 너무나 나약했고, 부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의 부족을 지켜주는 강한 무엇인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깨닫고 믿음을 다시 재확인 하는 작업을 통해서 부족간에 서로 영적인 교류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나. 철새의 이동과 . 하지만 그러한 무늬 속에는 철새가 물가에서 생활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들은 그러한 믿음에서 종교적으로 자기 주변을 날고 있는 철새를 섬기지 않았을까?이 영화에서 종종 보여주는 장면이 매우 종교적인 신비감을 주는 것은 이러한 바탕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4)유희적 존재로서 인간가. 웃음을 창조하는 이카‘인간은 웃을 수 있는 존재이다’ 라고 누군가 주장했다. 이 말은 참 마음에 와 닿는다. 특히 웃음을 가지고 임ㅆ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거의 100%로 가깝다. 그러나 인간이 웃음을 창조해 내는 존재라는 것은 어떤 의심의 여지도 없는 사실이다.우리는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웃음의 정체를 살필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웃음 짓을 수 있게 되었는가를 약간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이카가 울람족의 세 동료들과 여행하는 도중 잠시 쉬고 있을 때, 뒤에 잇는 바위에 돌을 굴려 가우의 머리에 떨어뜨린다. 그러자 가우는 멍청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며 하늘을 쳐다본다. 그 모습을 보고 이카는 처음으로 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그 웃음은 나오, 아무카에게 옮겨지고 결국 돌을 맞은 가우까지 웃는 것이다.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웃음을 짓을 수 있었다는 것은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이러한 창조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고도화 되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서도 이러한 웃음을 창조할 수 있는 호모 사피엔스가 우리의 조상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5)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교미를 거부하는 이카물론 교미라는 것은 인간에게는 쓰지 않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랑을 내포하지 않는 교미가 많기 때문에 ‘교미’라는 단어를 쓰기로 한다. 살아이라는 단어는 ㅓ떤 대상이 대상화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동물세계에서도 암컷이 수컷의 일방적인 구애행위에 맞추어 교미를 무조건 허락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원시인도 아마 그렇게까지 동물의 범주를 벗어난 행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다.
    사회과학| 2006.10.03| 6페이지| 1,000원| 조회(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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