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
검색어 입력폼
  • narrative 영작문
    9/18 Narrative writing assignment 2008-91688 Sang-kyu Yoon (English Literature)DrugI have got an unforgettable experience when I travelled in Australia last year. I ended up in Sydney and looked round many places such as Opera house and Darling harbour for four days. An accommodation I had stayed at was quite big on amongst many accommodations around Sydney so I could meet a lot of travellers from various countries. Talking to one whose mother tongue is English was very so precious that I eagerly tried to chat with those people. After two days, some of them became my friends and let me get along with them. In this case, smoking cigarette was absolutely useful because many people in Sydney were smokers and many of them took drug as well. While I played with them, they sometimes talked about taking drugs and recommended me to take it which was very cheap but I did not. The cigarettes I smoked for four days were probably over 8 packs. Most foreigners treated me nicely and I also could enjoy not only playing some games and drinking but also talking to them and playing a card game. After four days, the journey finished, I packed up to leave and headed for the Sydney airport. The time was pretty tight and I had to finish boarding pass in a hurry. With suddenly alarming sound, I was forced to stop at luggage checking area. One of staffs instructed me to open my all luggage and looked in every nook and corner. I kept asking why I should be examined but he just said drug. What is more, a drug-sniffing dog was coming to me to taste any trace of drug although I had not taken any drug at all. I could hardly be nervous and worried. One thing popped up in my mind at that moment. I might take a drug when I borrowed a couple of cigarettes from foreigners who played with me. Staying where I was for about thirty minutes, I had to wait for the staff that would bring the result. Finally, I turned up that I had been naturally clean. It was really terrible and terrifying day.Self-analysingBrainstorming; 1)호주에서 겪은 마약사건은 사건을 시간 별로 잘 나타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친구생일파티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나열하는 것도 Narrative라고 생각했다. 3)추석 동안에 했던 일들을 순차적으로 나열한다면 좋은 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Making topic sentences: I have got an unforgettable experience when I travelled in Australia last year. 호주에서 있었던 사건을 말 할 것임을 나타내주는 문장으로 광범위하지 않게 하였다.Supporting details: 마약이라는 주제와 함께 왜 마약이 이번 사건과 연관이 있는지를 알리기 위하여 그 전에 있었던 일들을 쓰면서 연관성을 주었다.
    인문/어학| 2010.06.17| 1페이지| 1,000원| 조회(128)
    미리보기
  • Young goodman brown 번역본입니다^^ 평가A+최고예요
    Young Goodman brown (젊은 굿맨 브라운)젊은 굿맨 브라운은 해질 무렵 세일렘 마을의 거리로 나섰다. 문간을 넘어선 후 그는 자기의 젊은 아내와 작별의 키스를 나누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페이드란 이름이 매우 잘 어울리는 그의 아내는 길거리로 예쁜 머리를 내밀어 남편인 굿맨 브라운을 불렀는데, 그때 그녀의 모자에 달린 분홍빛 리본이 바람에 나풀거렸다.“가장 소중한 이여” 그녀는 입술을 그의 귓가에 대면서 부드럽고도 약간 슬프게 속삭였다. “해뜰 때까지 당신의 여행을 연기하시고 오늘밤은 제발 집에서 주무세요, 외로운 여인은 이런 저런 생각과 악몽에 시달려 때때로 스스로를 두려워하니까요”“내 사랑, 나의 페이드.” 굿맨 브라운이 대답했다. “1년 중 모든 밤중에 오늘밤만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오. 당신이 부르는 것처럼 떠났다가 되돌아오는 나의 여행은 지금부터 내일 아침 해뜰 무렵까지 이루어져야 한다오. 자, 내 사랑, 예쁜 아내여, 우린 결혼한지 석달 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나를 의심하는 거요?”“그렇다면 신의 축복이 있기를!” 분홍빛 리본을 단 페이드가 말했다. 나중에 돌아오셨을 때에 나의 여행은 모든 것이 아무일 없기를 빌겠어요.““아멘!” 굿맨 브라운이 말했다. “페이드, 기도를 하고 일찍 자도록 해요. 그러면 당신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그렇게 해서 그들은 헤어졌다. 젊은이는 계속 그의 길을 가다가 회관 모퉁이 부근에서 뒤를 돌아 보았을 때 분홍빛 리본을 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우울한 자태로 서서 아직도 자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페이드의 머리를 보았다.“불쌍한 페이드!”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이 그를 가책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런 용무 때문에 그녀를 떠나 오다니, “나는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 게다가 꿈 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내 생각건대 그녀가 말할 때 그녀의 얼굴에는 근심이 있었지. 마치 꿈이 오늘밤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경고라도 해준 듯이 말이야. 하지만, 아니야. 그것을 생각만 . “여행의 시작 치곤 너무 느린 발걸음이군. 자네가 벌써부터 피곤하다면 내 지팡이를 짚게.”“동행자여.” 하고 느린 걸음을 완전히 멈추고 브라운이 말했다. “여기서 당신을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켰으니 이젠 전 다시 돌아가야겠습니다. 당신도 알겠지만 이 일이 걸려서 망설여집니다.”“그런가?” 뱀 지팡이를 짚은 그가 웃는 것을 그만두고 대답했다.“그렇지만 걸으면서 생각해 보기로 하고 같이 걷지, 내가 너를 확신시키지 못하면 돌아가도 좋다. 우린 지금 숲길을 겨우 조금밖에 걷지 않았잖은가.”“너무 멀리 왔어요! 너무 멀리!” 무의식적으로 다시 걸음을 걷기 시작하며 젊은이는 소리질렀다. “내 아버진 이런 볼일로 숲 속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구요. 내 할아버지도 그러셨어요. 우린 순교자의 날 이후로 항상 정직하고도 선량한 기독교인이었죠. 난 아마 이 숲길을 온 브라운 집안의 첫 번째 사람일 것입니다, 또...”“이런 사람과 길을 같이 가다니라고 말하고 싶은 거겠지.” 브라운이 멈칫하자, 그가 말했다. “잘 말했네, 굿맨 브라운! 자네 집안이 청교도 가문이라는 것은 나도 잘 알지. 이건 말하기에 사소한 것이 아니지. 보안관이었던 자네 할아버지가 세일렘의 거리에서 퀘이커 교도 여자를 그렇게 사정없이 매질할 때 내가 좀 도와주어지. 또 필립왕의 전쟁 때, 자네 아버지가 인디언 마을에 불을 지를 때, 내 난로에서 불이 붙은 송진으로 마디를 만든 횃불을 내가갖다 주었다네. 그들은 둘 다 내 좋은 친구들이었지, 그리고 이 오솔길을 따라 유쾌한 산책을 했고, 자정이 지난 뒤 즐겁게 돌아가곤 했다네.난 그들을 봐서 자네와 친하려고 하는 거라네.““당신이 말씀하신 대로라면.” 하고 굿맨 브라운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그것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종류의 소문이 조금이라도 떠돌았다면 그들은 뉴잉글랜드에서 추방되었을텐데요. 우리는 기도하는 민족이고, 선행을 일삼으면서 그런 악한 짓을 싫어했지요.”“악한 짓이든 아니든 간에.” 하고 뱀같이 생긴 지팡이를 짚은 늙은테니까.”젊은이는 옆으로 비켜나서 자기의 동행이 길을 따라 능숙하게 나아가 늙은 여인에게 지팡이 거리만큼 접근한 것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그녀는 그토록 나이든 여인으로서는 보통이 아닌 속도로 열심히 길을 가면서 불확실한 몇 마디 말들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늙은이는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어 뱀의 꼬리처럼 보이는 부분으로 그녀의 움츠러든 목을 건드렸다.“악마!” 경건한 늙은 여인이 외쳤다.“독실한 클로이스 부인께서 옛날 친구를 알아보시는군?” 그 나그네가 그녀와 마주 보며 꼬불한 지팡이에 기댄 채 말했다.“아, 그렇고 말고요, 나리가 아니신가요?” 그 훌륭한 부인이 소리쳤다.“역시 그렇군요. 내 옛날 친구인, 저 어리석은 친구 굿맨 브라운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차리셨군요. 그런데 -나리께서 이걸 믿으실까요? - 내 빗자루가 이상하게 사라져 버렸답니다. 아마, 내 생각에, 저 목매달지 않은 마녀, 코리 있잖아요, 그 여자가 훔쳐간 것 같아요. 내가 스몰리지의 즙과 양지꽃의 즙, 그리고 늑대의 독을 모조리 섞어 기름 발랐을 때...”“좋은 밀가루와 막 태어난 아기의 기름을 섞어서 말이지.” 하고 늙은 굿맨 브라운의 모습이 말했다.“아, 나리께서도 그 비법에 대해 아시는군요.” 하고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늙은 여인이 크게 외쳤다.“제가 말씀드린 대로 모임의 준비는 모두 되었답니다. 그런데 타고 갈 말이 없어서 걸어가기로 마음을 바꿨지요.오늘밤 회합엔 근사한 젊은이가 온다고 하더군요. 자, 이제, 나리의 팔을 좀 빌려주세요. 그러면 눈 깜짝하는 순간에 그곳에 갈 것 아니겠어요.”“그렇게는 안 되겠소.” 하고 남자가 말했다. “내 팔을 빌려 줄 순 없고, 클로이스 부인, 대신 나의 지팡이를 내줄 테니 쓸테면 쓰구료.”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지팡이를 그녀의 발아래 던졌다. 그것은 마치 옛날에 지팡이의 주인이 이집트의 마술사에게 빌려주었던 지팡이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생명을 가진 듯이 보였다. 이런 사실에 대해, 굿맨 브라운은 그것을 현실로 생각할 수 없었다. 그가 놀라서 들의 말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모습이 길옆에 있는 작은 나뭇가지들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들이 지나왔을 저편의 밝은 하늘로부터 오는 한 줄기 희미한 빛으로도 그들의 모습을 알아볼 수는 없었다. 굿맨 브라운은 몸을 구부리기도 하고 발끝으로 서보기도 하면서 나뭇가지들을 옆으로 젖히고 머리를 내밀어 그림자들을 식별해 보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목사와 구킨 집사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고서 그는 더욱 당황했다. 그들은 어떤 안수식이나 교회 회의에 갈 때처럼 평온하게 말을 타고 흔들거리면서 가고 있었다. 아직 그들의 소리가 들리고 있을 때, 말 탄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나뭇가지를 꺾으려고 멈추었다.“목사님.” 하고 집사의 목소리 같은 소리가 말했다. “안수식과 이 모임, 두 가지 중에서 오늘밤의 이 모임에 빠지는 것보다 안수식을 놓치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우리 회원들 중의 몇몇은 팰모드나 그 너머에서 오고, 다른 사람들은 코네티컷이나 로드아일랜드에서 온다고 하더군요. 인디언 주술사도 오고요. 그들 역시 우리들만큼 악마에 대해 잘 알고 있지요.더군다나 오늘 밤 성찬식에는 웬 젊은 여인도 온다더군요.““매우 잘 됐소. 구킨 집사!” 목사의 엄숙하고 늙은 목소리가 대답했다. “서두릅시다, 그렇지 않으면 늦겠소. 당신도 알겠지만 내가 회합장에 도착하기 전에는 아무 일도 안 되오.”다시 말발굽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공허한 대기 속에 그토록 낯설게 울리던 목소리들은 지금껏 한 번도 교회가 세워진 적이 없고, 외로운 기독교인이 와서 기도를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숲을 뚫고 사라져갔다. 그렇다면 저 성직자들은 이교도의 황야 깊숙이 들어가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젊은 굿맨 브라운은 마음에 무거운 통증을 느끼고 땅바닥에 주저앉을 것만 같아 나뭇가지를 붙잡고 기댔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자기 위에 진실로 천국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 의심했다. 그의 머리 위에는 푸른 하늘이 있었고, 그 안에서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천상에 천국이 있고 지상에 페이드가 있다면 인간을 악으로 인도하는 본능을 따라 여전히 앞으로 돌진하고 있었다. 숲 전체는 공포스런 소리들-나무들이 삐걱거리는 소리, 야생 짐승들의 울부짖는 소리, 인디언의 고함소리들로 가득 찼으며, 때때로 불어오는 바람은 머나먼 교회의 종소리처럼 울리면서 여행자를 향해 으르렁거렸는데, 그건 마치 모든 대자연이 그를 경멸하면서 비웃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그 장면 속에서 가장 공포스런 존재였기 때문에 다른 공포스런 것들로부터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하! 하! 하!” 바람이 자기를 비웃을 때 굿맨 브라운은 울부짖었다. “누가 제일 크게 웃나 들어보자. 너희들의 악마의 비법으로 나를 놀라게 할 생각은 하지 마라. 오라 마녀여, 오라 마법사여, 오라 주술사여, 악마대왕이라도 오라, 여기 굿맨 브라운이 왔다. 그가 너희를 두려워하는 것만큼 너희들도 그가 무서울 게다.”사실, 이 괴기스런 숲 속에서 굿맨 브라운의 모습만큼 무시무시한 것은 없었다. 새까만 소나무들 사이를 뚫고 날면서 발광하듯 지팡이를 흔들고 영감처럼 떠오르는 끔찍한 불경스런 말을 외치면서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웃음소리의 메아리가 퍼져 마치 악마가 그를 둘러싸고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형상을 한 악마라도 마음속으로부터 분노하고 있는 그의 모습보다는 덜 무서울 것이다. 그런 악마적인 힘으로 나는 듯이 달려 드디어 나무들 사이에서 떨면서, 그는 바로 자기 앞에 있는 어떤 붉은 불빛을 보았다. 그것은 개간지에 떨어진 나무줄기나 나뭇가지가 불태워지면서 하늘을 향해 타는 듯이 붉은 빛을 던져 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휘몰아쳤던 태풍 뒤의 고요함에서 잠깐 멈춰서는, 먼 곳에서 들려오는 여러 사람들이 부르는 듯한 엄숙한 찬송가 소리 같은 것이 점점 커지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 곡조를 잘 알고 있었다. 그 곡조는 마을의 예배당에서 듣던 합창곡 중의 하나로 매우 친숙한 곡이었다. 가사는 무겁게 가라앉아 사랴져 버렸으나 합창은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목소리라기보다는 다.
    인문/어학| 2008.10.28| 8페이지| 1,000원| 조회(2,109)
    미리보기
  • 프랑스 혁명(68혁명)
    “얻은 것인가 잃은 것인가”프랑스68항쟁 (자율운동 보고서)과 목 명:사회조직론학 과:영어영문학과학 번:200313512이 름:윤상규제 출 일:2006년 10월 10일담당교수:윤수종*서론리포트를 쓰기에 앞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설명해주신 자율운동에 대하여 잘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인의 도움으로 68이라는 숫자가 갖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또 68이라는 숫자가 자율운동가 어떠한 관계인가를 곰곰이 살펴보니 전 세계 적으로 일어났던 운동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정치의 전복?책의 전편인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68혁명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자율운동이 프랑스의 학생운동과 꽤 적합하다는 생각다. 게다가 나는 현대에 와서 발생한 프랑스의 학생 운동과 비교해보니 새로운 느낌이었다. 현대사회의 척박함 내가 우선인 사회 속에서 산다는 것을 느꼈다. 68년이면 우리나라도 5.16 군사정변을 거쳐 과도기를 거치고 있을 시기라고 생각했다. 68년도에 일어난 운동은 프랑스 뿐 아닌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어디에도 다 적용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시기적으로 세계에서 모두 항쟁의 원인인 전쟁, 독재에 대한 저항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집단 등 기존의 사회 질서에 대한 반대, 학생들의 자율운동 소수민족 여성 등 이 모든 이유에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언급하셨던 전염효과라는 것이 있었기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 될 수 있었을 것이다.1학년 때 미학이라는 과목을 수강을 했었는데 그곳에서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배웠었다. “안토니오 그람시”라는 이탈리아의 공산동의 이론을 퍼트렸던 사람으로 기억을 한다. 그가 말한 헤게모니 개념은 법이나 국가 기관 등을 통하여 지배계층을 확대하고 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서 시민들에게 그것을 정당화 시키고 이해시키는 개념이라고 배웠다. 그러한 개념에 대한 반대가 68운동의 한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산업화 이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에 산업화가 당연히 자신들에게 이로운 것이라고을 때부터 5.18운동에 참여하셨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내가 말을 알아먹을 수 있을 때부터 민주항쟁에 관한 민중가요라는 것을 듣고 따라 부르고 해서 남들보단 많이 경험을 하였다고 생각했다. 광주시민이었다면 그 때 누구도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군사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민을 무차별하게 학살 했던 사건이지만 그 가치는 뒤늦게 90년대 들어와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한 운동이 있었기에 우리도 또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후 우리나라는 전 김영삼 대통령 정권에서 IMP라는 경제 위기를 맞고 노동자들의 많은 희생을 가져왔고 고 학력자 들도 직업의 불안정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능력을 더 극대화 시켜야하고 대학의 학점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요즘은 사회의 제도에 대한 운동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우선시 되어가고 있고 극소수의 학생들만 한총련 남총련 등 조직 속에서 또 새로운 이념을 추구해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가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남에 의해서 남이 하니까 이런 식의 사고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이러한 대학생들의 사회적 무관심과 수동적인 모습은 획일적인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에도 원인이 있다고 본다. 대학 진학에 모든 것을 올인 해야 하는 그러한 실태가 우리나라 교육이다. 암기식 공부에서 대학이름이 정해지는 순간 자신의 인생의 절반을 판가름하는 그러한 사고 세계의 흐름에는 많이 뒤쳐져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뒤늦게 고민을 할 때 쯤 이러한 고민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용히 할일을 하는 사람과 조금이라도 조직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운동하는 학생들이 있다. 즉 이런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 같다. 결과물은 없지만 무언가를 향해 끝없이 노력하는 모습 말이다.이런 현실은 프랑스의 68혁명과 비교를 하면 우리가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상이한 길을 거쳐서 자의식을 획득한 세대들 간의 통일성이 주요 동력이 된 68혁명은 물질적 빈곤을 잘 몰랐던 일으켰다.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We are soldier 라는 영화를 봤었다. 이 영화는 미국과 베트남의 전쟁을 정말 실감 나게 보여준다. 얼마나 치열했는지 얼마나 끈질긴 저항이었는지를 잘 나타낸다. 또 마지막에 베트남 장군의 “절대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더 커져가는 반전의 감정은 탈중심화를 외치는 신좌파의 성향과도 연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각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 내가 68운동을 공부하면서 새로 배운 것은 핑크 플로이드라는 가수와 “비틀즈”의 “존 레논” 도 이러한 반전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새롭게 들은 사실이지만 충분히 놀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세계적으로 그 정도가 어떠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아폴로8호의 달 착륙, 마이크로컴퓨터의 시판 등 제 3차 산업 혁명이 실시된다. 이에 새로 필요해지는 사회적인 조건들 즉 대학들의 급속한 성정, 노동자 계급의 향상 소비사회의 공고 등 많은 것들이 요구되어진다. 이에 사람들은 급격히 변화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고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로도 대중적으로 시위를 할 수 있게 된다.2. 프랑스의 1968년 항쟁드골의 공화정이 수립되고 나서 프랑스는 2차대전과 식민지 독립전쟁의 피해를 거의 회복하고 있었다. 또 피해를 회복해가는 과정에서 빠른 경제성장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공산주의에 불만을 가진 청년들은 빠른 산업화에서 자주적인 힘을 잃고 미래에 대한 전망조차도 그리 밝은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가 발단되면 사람들의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회사가 많아지고 공장이 많아지면 그만큼 돌아가는 자본이 많을 것이다. 이에 노동자 계급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빈부의 차가 심해진다. 산업화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걸지 않았었고 이데올로기 종언이라고 말을 했던 학자들도 그 반발을 예상치 못하였다. 또 당시 프랑스는 상당히 풍요로운 상태였다. 하지만 급격한 사회 변화에 사람들은 새로운 사회 질 청년세대의 정치적 열기와 유토피아적 이념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 청년세대가 바라는 이념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드골의 공화정이 먼저 무너져야 가능했을 것이다. 이후 사회당이 정권을 잡아 많은 부분의 개혁이 이뤄지지만 1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1968년 5월 프랑스의 이 운동은 파리 근교의 낭테르 대학에서 기숙사의 운영권을 쟁점으로 학생과 학교 측의 마찰에서 비롯된 사건이었다. 그 시작은 아주 작은 규모였다. 그러나 대학운영에 대한 불만은 프랑스의 비현실적인 교육체계에 대한 비판, 더 크게 보자면 정치적 기득권 세력에 대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다. 학생들의 길거리시위와 경찰과의 충돌사태는 노조와 많은 지식인이 참여함으로써 기존 사회체제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급진적인 저항운동의 성격을 가지게 된다. 즉 대중적인 운동이 되는 것이다. 오랜 계획이 아닌 모두의 자발적 동기 부여에 참여한 것이기에 조직성은 떨어지지만 그 효과는 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2. 68항쟁의 내막1968년 5월 2일 낭테르대학의 기숙사 운영권을 쟁점으로 시작된 운동은 다음날에는 소르본느 대학에서 집회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고 학생들은 라틴가로 나와 길거리 시위를 벌이게 된다. 라틴가는 파리의 쉥미셀 지방이다. 다음날 4일에는 소르본느 대학이 파업에 이기지 못하고 휴강을 한다. 이에 학생총연합은 무기한 농성을 선언한다. 이렇게 그 시작이 모습을 드러내고 정부와 학생들 사이에는 충돌이 끊이질 않았다, 거의 모든 대학을 폐쇄하고 경찰을 모두 투입했으니 그 치열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5월 8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봉기를 일으킨 학생들에게 80% 정도가 공감의 표를 던졌다. 11일에는 정부도 학생들을 진압하려는 방법을 포기하고 사태 진정을 위해 노력했다. 경찰이 철수하고 학생들도 석방이 되었다. 이에 대학도 다시 개방하였다. 프랑스의 대학은 자율성을 굉장히 중요시한다. 이에 대학의 폐쇄는 큰 사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협상 조건은 오히려 대립세력에게는 정당성을 총선 기간에 시위를 금지 시켰다. 또한 관련 단체들을 해체하는 조치를 내린다. 이를 기점으로 부분적으로 업무에 복귀하였으며, 총선을 거치면서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 결과는 드골파의 압승으로 마무리된다. 결국 이러한 운동은 산업화 이 후 프랑스의 풍요로움 속에 청년들은 오래된 관습과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성세대에게 도전을 한 셈이 된 것이다. 소비사회로 흘러가는 시점에서 자신들의 자아를 잃지 않도록 위상을 새로 다짐하는 뜻이었던 것 같다. 또 프랑스의 교원 노조나 노동자들 고등학생의 참여가 없었다면 이러한 대규모 운동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많은 학자들이 학생들의 위상과 프랑스의 오랜 관습으로부터 예상되었던 일이라고 한다. 이제 이 1달남짓의 일이 프랑스에 끼친 영향을 알아보겠다.3. 68항쟁이 끼친 영향프랑스 학생들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운동들과 많은 연관이 있었다. 또한 프랑스를 포함한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베트남 침공에 반대하는 범유럽적 활동이 왕성했었다. 원인이 정부의 잘못도 있지만 세계 적인 분위기도 한목을 했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는 이 대규모 운동이 있기 전에도 많은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제조 산업의 엄청난 성장 대규모 도시이동 등 단기적으로 영국과 독일에 대등하게 발전을 했다. 또 대학교육을 중시하였고 산업발전에 한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교육체계는 그 경직성과 초집중화를 개혁하려했다.정치적은 측면을 넘어서서, 68년 5월운동의 결실들은 70년대를 지나면서 점차적으로 가시화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운동은 끝났지만 청년들의 유토피아적 이념은 10여년이 지난 후에 사회당이 집권을 하고 빛을 보게 된다. 그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결실은 청년세대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강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어떤 나라이던지 청년층의 성장은 나라의 큰 힘이며 기둥이다. 젊은 세대의 위상이 강화되어야지만 사회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된다. 또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여성들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역할이 증대되
    사회과학| 2008.01.08| 7페이지| 1,000원| 조회(282)
    미리보기
  • 장애인 교육의 필요성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멕시코 치아파스의 어느 원주민 여성-*서론“장애인운동”을 주제로 마지막 리포트를 쓰게 되었다. 어떤 주제로 리포트를 쓸까 고민을 하다가 저번에 강의 시간에 보았던 비디오가 생각이나 장애인운동에 눈을 돌려서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당사자 주의나 이동권 보장 등 보다는 다루지 않았던 장애인 교육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나는 장애인 교육의 실태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내가 장애인 교육실태에 생각을 해보게 된 이유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때 IQ도 90~100을 맴돌며 외관상으로는 전혀 문제없는 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약간의 발달 장애가 있어서 말을 어눌하게 하고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을 내가 그 당시 어떠한 생각으로 잘 챙겨주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학생과는 1~4학년 때 까지 같은 반으로 챙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친구 어머니가 나랑 친하게 지내는 것을 알고 학교 측에 부탁을 했다고 그 친구가 말해주었다. 나는 그 친구가 친구들한테 무시당할 때에도 못하게 막아주고 집에 갈 때도 같이 가곤 하였다. 그때 나는 학교를 다니는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생활 할 수 있게 조금 도와주었을 뿐이다. 그 결과 친구는 초등학교를 다니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얼마 전에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났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지만 그 친구는 지금 호남대학교를 다니며 일반인과 크게 다름없이 살아가고 있다. 즉 우리의 시선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이이 학교를 다녀도 대학교도 못가는 학생이 있다. 또 영화 “말아톤”이나 세계 장애인 수영대회에서 일등을 차지한 “진호”가 뒷받침 해주고 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물론 남들과 조금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과 도움이 필요한 것은게 지금까지 받아왔던 차별을 똑같이 느끼게 해줄 것인가? 이제는 제도적으로나 개선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한다. 서론이라는 글자위에 적어져있는 한 글귀는 멕시코의 한 원주민 여성이 한말이다. 장애인을 더 이상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함께 나아가는 것으로 보아주라는 뜻이 담겨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은 무엇이고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알아보도록 하자.*본론◎장애인 교육의 필요성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그 사람 사람마다 생김새와 특징은 다르겠지만 인간의 고유의 성격과 권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장애인도 장애인이기 전에 인간이라는 것이다. 장애인과 일반인이 차별 받지 않고 존중받아 서로 조화를 이루며 평등하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에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장애인교육을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특수교육이며 특수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달리 특수한 요구를 요청하고 가졌기 때문이다. 특수한 요구란 장애인들은 비장애인과 다른 신체적, 정신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비장애인과 그 격차를 최소화하고 무리 속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장애의 종류마다 각기 다른 환경에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하며 필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수교육이란 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장애 정도와 소질에 따라 필요한 교육을 요구해서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특수교육은 장애아동이 일반아동과 통합교육을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분리된 교육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은 무조건 특수학교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정신지체 장애인이나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는 부적합하다고 판단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청각장애인이나 몸이 약간 불편한 장애인들마저 특수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우리의 의식이 문제이며 충분히 그들과 통합교육을 할 수 있다. 몸이 불편한 것이지 지식을 받아들이는 능력에는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또한 정신지체가 정이다. 게다가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다. 게다가 20% 통합학급에서도 그 교육을 담당하는 교원들의 전문성에도 많은 의심을 나타내고있다. 통합학급을 담당하는 교수 중 특수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장애인교육관련 연수를 60시간 이상 연수한 경우는 20%에 불과했다. 이렇게 장애인들은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권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최순영의원은 매년 특수교육 여건이 나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자만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점이 매우 많다고 하였으며 게다가 교육을 받는 장애학생들의 교육 환경 또한 열악하였다고 하였다. 특수학급이 설치된 일반학교의 편의시설 설치비율은 78%이며 특수학급이 없는 일반학교의 편의시설설치비율은 60.2%, 승강기나 경사로 등 이동편의시설 설치율은 50%도 되지 않았다. 2002년도 교육인적자원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특수교육요구아동 출현율은 2.7%로 취학연령 800만 명 중 24만 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이 장애인 중 특수교육 서비스를 받는 취학 장애아동은 5만5천명에 불과하고 장애진단과 조기특수교육을 받아야 하는 장애를 가진 유아들도 4만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지만 이들의 98% 이상 교육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이미 성장을 다 해버린 성인의 경우에도 초등학교이상 교육을 받은 사람의 비율을 극히 적다. 94년 특수교육진흥법이 제정되기 전 학령기에 해당을 했던 성인장애인들은 특수교육제도의 적용도 받지 못했고 뒤늦게 일반학교에 입학하려 했지만 학교장의 입학거부, 편의시설 미비, 특수교육환경 부재로 입학을 거부당해왔었다. 장애인을 가르쳐주는 봉사단체나 야학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정부는 계속 제도적으로 무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이렇듯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대책은 방관이나 다름없었다.◎장애인 교육에 관한 운동1)울산지역의 장애인 교육에 대한 운동*운동의 계기: 장애인 교육예산을 확충한 계수조정안을 최만규 교육감이 반려한 것에 대한항의로부터 시작됐다. 울산광역시 교육위원회가 자체 심의하여 의결한 2005년 예산 계수조정에서 8잘못을 시인하고 여러 가지 대책을 만든다. 교통권을 보장해주고방과 후 수업에 대한 측면을 보장, 특수학급 편의시설 보충, 2008 이후에는 예산을 6% 이상을 할 것을 다짐했다.*의의: 시민들이 일구어낸 결과물이다. 비폭력적이며 그들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기위해 노력한 것이다.2)대전지역의 장애인 교육의 질에 대한 운동*운동의 계기: 장애인들이 매일 그 힘든 몸을 이끌고 30분에서 1시간 개인통학을 하고 있는 실정이고 특수학교의 경우는 통학버스가 노선별로 확보되고 있지만, 지역적으로 편중되어서 통학시간이 최고 2시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먼 거리에서 통학 하는 장애학생들을 위한 통학비 지원의 경우 경북, 경남, 경기 등 많은 시도에서는 보호자까지 통학비를 지원 하고 있는데 대전 지역의 실정은 열악하였다.*정부의 대처: 대전광역시에서는 시민들의 요구에 응답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고 장애학생들이 제대로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특수교육 보조원의경우도 극소수만 배치되어 있을 뿐이었다.*시위와 운동: 지난 9월 19일 대전 장애인 교육연대는 시교육청 현관 옆에 천막을 설치하고 농성에 들어간다. 또한 부모들은 삭발식을 하고 거리선전전 등을 하였다.*결과: 대전지역의 경우 33개 요구사항 중 예산의 문제가 걸려있는 방과 후 교육 활동비 지원, 유급 특수교육보조원 확대배치, 학생 및 보호자에 대한 통학비 지원 등이 쟁점 사항으로 떠오르지만 대책은 미덥지 못했다. 그러나 대전광역시 교육청은 지난 10일 가진 제6차 실무협의회에서 그동안 협의가 진척되지 못했던 3가지 요구사항을 수용키로 했으며 이외 특수교육예산 확보, 직업교육운영지침 마련 등 33가지 요구안을 모두 합의한다. 특히 대전광역시 교육청은 오는 2007년부터 유·초·중·고 모든 특수교육대상자들에게 방과 후 교육활동을 실시키로 했으며 1인당 지원액을 월 5만원에서 7만원으로 상향 조정키로 한다. 또 오는 2007년 실업계 고등학교 내에 장애학생의 전환을 지원하는 전환교육지원센터를 설치하고 특수교육보조원의 배치 중 적절한 교육적 지원을 받고 있는 장애학생은 거의 없다. 통합교육 현장에서도 장애학생은 편의시설, 보조인력 등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고, 치료교육, 직업교육 등의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의 이미지가 올라갈수록 특수학급 설치학교가 부족해 고등학교의 경우 특수학급 한 학급에 무려 25명 이상의 학생이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교도소의 콩나물 방처럼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또한 현재의 특수교육 체제에서는 장애유아의 교육 기회를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유치원의 경우 특수학급이 설치된 유치원이 전체 유치원의 단 1%에 불과하며, 교육을 받는 비율이 단 3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애학생의 조기교육은 그 어느 시기의 교육보다도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장애유아를 위한 교육 현실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장애인 대학생들을 위한 교육적 지원 제도 역시 전무하여 많은 장애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있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가서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해 학업 수행, 대학 생활 등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장애인교육권연대는 현재의 특수교육에 대한 위기론을 제기하면서, 장애학생의 교육기회 100% 달성 통합교육이라는 목표 실현을 주요 골자로 하는 장애인교육지원법제정을 위한 준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 30 여 년 동안 장애학생의 교육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던 특수교육진흥법은 장애인 교육의 현실을 일정한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린 역할을 했지만 위에서 제시한 것처럼 장애학생의 교육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고 있지 못한다. 따라서 장애학생이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며 제대로 된 학습의 기회를 보장받고, 나아가 지역 사회와의 원활한 교류를 보장받아, 한 지역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강력하고 구체적인 제도적 뒷받침은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인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학습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강력한 법률을 제정하는
    사회과학| 2008.01.08| 8페이지| 1,000원| 조회(510)
    미리보기
  • 시대별 한국 영화 속의 여성
    시대별 한국 영화 속 여성 이미지(1960~1990)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의 시기를 지나 후기 산업 사회시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영화 속 여성 이미지는 재현되어 왔다. 각 시대별로 영화 속 여성이미지는 어떠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본다.1. 1960년대이 시기에는 과 같은 불륜의 사랑, 에서는 전통적인 인고의 여인상이, 와 같은 작품에서는 가부장제 하에서의 남녀의 치정 관계를 드러내며 악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1960년대를 즈음해 급격히 변화한 사회 구조는 근대화 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다. 특히 가족을 중심에 둔 묘사와 성적 역할의 변화가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다.대부분의 멜로 드라마에서 멜로성은 여성/남성의 구분에 따라 여성 인물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1960년대 초 한국의 가족 멜로 드라마에서는 성적 구분에 따른 멜로적 선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영화에서 여성의 역할(어머니)은 거의 무시되고 남성(아버지)에게 전이되며 희생적, 신파적 측면은 아버지에게 집중된다. 이러한 점은 여성을 중심에 둔 많은 드라마들과 구별된다.근대화와 더불어 전통적인 가부장적 특권을 상실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남성성의 위기, 남성불안 male anxiety 을 생산했고 그 증후는 1960년대 초반의 멜로 드라마, 이를테면 , , 그리고 등에서 나타난다. 남성 주인공이 새로운 가부장제 장남의 질서를 따른 새로운 질서를 주장하는 반면 여주인공은 그 새로운 가부장제를 확인하는 처벌의 내러티브에 종속된다. 비극적 여주인공들은 전쟁 이후의 불안이나 분단 증후군, 냉전 이데올로기가 낳은 긴장, 저개발의 압박, 혹독한 경제적 궁핍과 같은 국가적 위기의 기표로서 사용되었다. , , 그리고 같은 영화들이 바로 이러한 맥락에 위치한다. 이러한 영화들에서 여성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들의 남편을 사회로 재진출시키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혹은 전쟁이 지나간 국가를 재건설하는 데 헌신한다. 그녀들 스스로를 위한 배려나 관심은 존재성격을 나타나게 하여 이러한 호스테스물들이 나왔다.1960년대를 풍미하던 가족 멜로 드라마는 점차 텔레비전 산업에 의해 장악되었다. 호스테스 멜로 드라마는 그 당시 여성의 문제를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치환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섬유 산업 관련 업체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그 당시 가장 중요한 사회 문제 중의 하나였는데, 그 문제는 영화 속에서 다루어질 수가 없었다. 새롭게 부상하던 도시의 여공들은 영화적 재현이라는 측면에서도 강도 높게 억압된 셈이다. 그 당시 여공들은 그녀의 월급의 상당 부분을 시골 가족들에게 보내야했고,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이 섹스 산업에 포섭되는 이유는 가족의 부양을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했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멜로 드라마는 그녀의 그러한 전락의 동기를 처녀성의 상실이라거나 과도한 성적 충동으로 치환시켰다결론적으로 산업 사회의 메마른 도시의 70년대적인 세태의 일면이 윤리감을 상실한 여인들을 통해서 그려졌다.1970년대의 여성물 흥행작은 여성의 지위를 부재시키고 남성의 지배에 복종하는 패턴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을 당연시하도록 관객의 위치를 관음주의와 도착이라는 관객 심리를 이용한 영화적 장치를 써서 남성의 시선으로 고정시킨다. 본격적인 근대화의 한 가운데 여성은 근대성을 소유하지 못한 객체로서 여성성을 착취당하거나 소외당한다. 결국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 부르주아의 가족 담화가 재생산된다.3. 1980년대1980년대의 한국영화는 정치, 사회적인 혼란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1970년대와는 달리 어느 정도 개방된 환경 속에서 획일적인 계몽물에서 탈피하여 사회 비판적인 문제 의식, 에로티시즘영화, 전통적 소재의 영화등 비교적 자유스러운 소재의 영화가 제작되어진다.에로티시즘영화의 스펙타클과 관음주의, 전통 소재 영화의 여배우 벗기기, 사회 비판적 영화들은 시대의 부조리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풍자하여 현실의 모순을 비판하려 하였으나 여기에서 여성은 소외되었다.1980년대 초기의 과 은 공적 그리고 사적 영역에서, 가족 등 주위 사람들에 의해 갈등이 활성화되던 이전 영화와 다른 것은 주된 관객층인 신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여성들의 고등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고 고도의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환경의 변화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용이하게 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여성을 생산 주체가 아닌 소비 주체로만 설정한 텔레비전 드라마, 광고 카피, 여성 잡지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1990년대의 영화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안고 있으면서 신세대 여성을 지향하는 젊은 여성들의 욕망을 표출시킴으로 소구할 수 있었다.전술한 탈근대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영화에서 보이는 그 징후들은 과거로의 복귀와 향수를 보여주는 일련의 전통주의적 소재를 다룬 영화들(, , , , , , , , ), 고전적 서사체와 형식의 해체를 보이며 파편화, 구조화되어 있는 영화들(, , , ), 모방과 풍자적 개작영화(, , , , , , ),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 굳이 장르를 정할 수 없는 영화, 다양한 소재(음식과 성, 죽음과 장례, 학교의 괴담, 어린이용 영화, 첩보, 일상, 여성의 성......)가 등장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1990년대 한국영화에서는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 타자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의 한 줄기로 여성에 대한 영화들의 등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1990년대 한국영화 관객의 정서는 확실히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변화하였다.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룬 영화도 광범위하게 수용되는가 하면 '익명의 삶'을 사는 주인공을 다룬 영화도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다. 이제 1990년대의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은 더 이상 남자에게 순종하고 희생하는,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여주인공에 대해 동정적이거나 심정적 동일화를 느끼지 않는다.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여성주의는 상업성을 지닌 상품이 되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부각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성영화는 여성 운동 집단에서 뚜렷한 남성성/수동적인 여성성'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로라 멀비의 지적은 영화를 보는 행위가 가부장제의 구조와 유비 관계에 있다는 얘기이며, 그래서 페미니즘의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본다는 것은 바로 관객들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이 얼마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5. 1990년-1998년이 시기 여성이 영화에서 다뤄지는 것은 초기의 로맨틱 코미디와 후기의 돌아온 멜로 드라마들 통해서 그리고 여성영화에서이다.제작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점진적으로 획득해 나간 영화 주체들은 1987년 이후 1996년 까지 10년 동안에 괄목할 만한 변화를 서서히 주도하고 성과를 이룩하였다. 과거의 영화와 새로운 영화의 세대 교체를 성실히 이루어 왔을 뿐 아니라, 관객들의 취향에도 변화가 생겨 그 시선은 점차 한국영화 생산 양식을 주도해 온 멜로 드라마적인 틀에서 벗어나 밝고 건강하며 그래서 희망적인 현실의 삶을 담아 낸 로맨틱 코미디물로 옮겨갔다.1990년대 전반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주요 현상은 영화의 장르에 있어서 전통 멜로 드라마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로맨틱 코미디물의 등장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사의 내적 변동 상황을 대변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억압과 현실적 좌절감 때문에 감상적 낭만주의가 강한 '멜로 드라마' 장르의 '눈물'에 위안을 받았던 것으로부터 사회적 개혁과 함께 열린 페미니즘의 물결이 가부장적 이념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이 과도기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다. 새로운 문화의 창출과 관객들로부터 사실적인 감각의 영화라는 공감을 불러들이게 된 것이다.로맨틱 코미디의 흥행 성공은 결과적으로 관객층의 구도에서 영화 선택권을 적극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신세대 젊은 여성 관객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결과는 영화의 내러티브와 구성에 있어 새로운 정형의 등장에 힘입은 바가 있다. 우선 영화의 내용을 지배하는 배경이 가부장적 사회의 체제에서 페미니즘의 대두를 수용한 점이다. 이것은 을 다하는데 메타적 영화적 상상과 생생한 여성 캐릭터의 재현을 획일시하며 성 정체성의 전략에 인색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을 시작으로 멜로 드라마는 부활하고 이는 로 이어지며 여성의 희생담을 지우고 달리 이야기한다1990년대 돌아온 멜로 드라마가 그려내는 성의 지형도와 그에 근거한 사랑에 관한 담론은 분명했다. 남자를 잘못 만나 무너져 가는 여자의 고생담은 이제 없어졌으며, 남성 역시 사랑의 방관자가 아니라 이해 당사자이자 오히려 과거 여성의 위치이자 기능인 사랑의 주관자로 등장한다. 과거 한국 멜로 드라마에서 사랑을 추구하다가 배신을 당하는 여주인공, 즉 자신이 추구하던 것으로 인해 스스로 억압당하는 모순투성이 존재로서의 여성상은 소멸된다. 전통적으로 여성용 장르였던 멜로 드라마가 여성을 대행자로 내세워 남성의 질서와 시선으로 여성을 삶과 사회 속에 위치시켜 왔던 간접 화법은 이제 노골적인 직접 화법으로 바뀐 셈이다., , , , 은 톡톡 튀는 신세대식 사랑이라기보다는 절제된 미학으로 신파조의, 여성이 정통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녀들은 과장될 정도의 대찬 구석을 보이지도 않으며, 사회적인 위치도 남성에 뒤지지 않으며, 의존적이지 않다. 돌아온 멜로 드라마는 주로 비극적인 개인적 연애담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맥락과 개인적 맥락이라는 점에서 전환점이 된다. 개인과 관습의 충돌이라는 사회적 맥락은 없으나 개인적 맥락에서 남성은 사랑의 완성이나 죽음을 동시에 이루지만, 여성은 단지 사랑받는 대상이라는 한계를 보인다.1990년대의 새로운 기류로서의 여성영화로는, 초창기부터 지배적인 주류영화는 남녀 차별 구조를 재생산하는 도구로 왜곡된 여성상을 전파했으며,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했던 1990년 당시 충무로 상업영화 풍토에서 성폭행으로 인하여 성적, 계급적, 사회적 차별을 당하는 한 여성의 고통과 비극을 묘사한 이러한 영화가 상업대중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이례적이다.여성의 일과 결혼에 관한 , 음식에 대한 상하다.
    인문/어학| 2006.12.13| 10페이지| 1,000원| 조회(830)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25일 토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51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