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딜리버리맨(2013)’개요 : 코미디국가 : 미국시간 : 103분개봉 : 2013. 12. 5. 개봉감독 : 켄 스콧출연 : 코비 스멀더스, 빈스 본, 크리스 프랫등급 : 12세 관람가여자 연예인이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을 한 것이 뉴스에 나왔었다. 사람들은 혼자서 아이를 키워낼 연예인을 보며 ‘대단하다’,‘힘내라’ 등의 응원을 하기도 했지만,아빠도 없이, 아빠가 누군지도 모른채 자라야 하는 아이의 입장은 생각해 봤냐는 질책과가정이라는 사회의 기본적인 구성이 파괴되어 가는 현실을 씁쓸해 하는 사람들도 일부있었다. 불임에 대한 대처를 위하여 시험관을 통한 수정이 날로 늘어나는 요즘이지만,미혼모가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 하나 만으로 인공수정을 하여 임신을 하는 경우는드물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이 많이 발달 했다고는 하지만, 정자와 난자는 임의적으로만들 수 가없고 이를 얻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증이 필요한 부분이기에 일면식도 없는타인의 정자를 받아 임신을 한다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나라 정서적으로도 맞지 않는부분이라 생각한다.‘딜리버리 맨’이란 영화는 자신의 정자를 기증한 한 남성에 대해 그린 영화이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아버지의 가게에서 고기 배달을 하며 살아간다. 뭐 하나 대단한 것 없는 그에게 20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스타벅’이란 가명으로 기증했던 자신의 정자로 533명의 아이가 태어났고 그 중 일부가 생물학적 생부를 찾고 싶다는소송을 걸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여기서 놀라웠던 점은 정자 기증을 통해 많은 돈을벌 수 있다는 점과 대단한 학벌이나 직업을 갖지 않은 그의 정자가 정말 많이 쓰였다는점, 그리고 533명이란 수를 통해 인공수정을 통한 임신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영화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현실성을 반영하여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측면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인공수정에 대한 인식과 문화를 엿 볼 수가 있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소송을 건 생물학적 자녀들의 프로필을 보며 한명 한명 찾아 간다. 우연을 가장한 채 그들을 돕는 데이비드는 본적도 없는 자신의 자녀들을 만나며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생부가 본인임을 밝힐지 말지 하는 고민 말이다. 각종 티비쇼와 뉴스에까지 나오며 국제적인 이슈가 된 ‘스타벅’소송은 결국 데이비드의 승소로끝나게 되지만, 533명의 자식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본 데이비드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영화 ‘딜리버리맨(2013)’것으로 마음 먹게 되고 SNS를 통하여 본인이 ‘스타벅’임을 알리게 된다.영화의 배경이 미국임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든다. 하지만한국의 문화를 놓고 보자면 얘기는 달라진다. 기증받은 정자를 통해 낳은 아이들, 그아이들이 과연 생부를 찾고 싶어할까? 그보다 뛰어난 능력도, 직업도 없는 남자의 정자를 받아 인공수정하려는 여성들이 있을까? 저출산이 가속화 되어 고령화시대로 접어 들어가는 한국에서 낮은 결혼률과 높은 이혼률 등의 갈등이 늘어가는 시대에 또 하나의대한이 될 수도 있는 인공수정 임신이겠지만,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성을 바라보는주변의 시선,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아이, 부친은 있으나 생물학적 친부가 따로 존재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야 하는 아이의 입장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어찌 되었건 그와 별개로 영화는 꽤 감동적으로 전개되어 간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도와주는 낯선 데이비드를 크게 경계하지 않는 모습, 생부에 대한 소송으로 모이게 된 자녀들이 오래 알고 지낸 형제, 친구처럼 여행을 가고 대화를
영화 ‘어메이징메리(2017)’개요 : 드라마국가 : 미국시간 : 101분개봉 : 2017. 10. 4. 개봉감독 : 마크 웹출연 : 크리스 에반스, 맥케나 그레이스,린제이 던칸등급 : 12세 관람가7살의 메리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 삼촌인 프랭크 역시 이미 메리가 여느 평범한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넘겨 버린다. 메리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녀의 천재성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메리의담임인 보니는 어려운 수학문제를 암산으로 풀어내는 메리를 보며 그녀가 천재인 것을알게 되고 이를 삼촌인 프랭크에게 알려 더 좋은 학교로 진학 시키고자 하지만 프랭크는메리가 평범한 아이들 틈에서 평범하게 자라길 바라고 있다. 한편, 세계적인 수학계 저명인사인 메리의 할머니 에블린은 메리가 수학자로 자라나길 원하고 있기에 프랭크와대립하게 된다. 자신의 여동생이던 메리의 엄마가 죽기 전, 메리를 평범하게 키워달라는부탁으로 인해 프랭크는 메리가 영재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결국 에블린은자신의 아들 프랭크를 소송에 걸고 만다. 메리를 둘러싼 소송은 좀처럼 결과가 나지 않고 법원은 메리가 12살이 될 때까지 위탁가정에서 키우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에블린은 자신의 손녀인 메리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관심이 없다. 어릴적부터키우지도 않았고 메리의 천재성이 보이자 그제서야 메리를 데려다 키우려 한다. 위탁가정으로 보내진 메리는 그곳에서 에블린으로부터 몰래 수학 교육을 받는다. 이를알게 된 프랭크가 메리를 다시 데려오게 되고 대학강의와 초등학교 수업을 병행하며삼촌과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된다.육아라는 것은 정말 어렵다. 부모의 마음이야 항상 내 자식이 최고이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영특하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겠지만, 아이의 성장은 마음처럼 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이 자라면서 겪게 되는 과정들을 다룬‘발달 심리학’이란 영역에서 보면 인간은 각 단계별 진행되어져야 하는 과정과 그에 따른 보상, 결핍시 나타나는 문제점들이 명시되어있다. 메리의 경우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에는 이러한 이론이 맞지 않겠지만, 그녀 역시 자신의 좋아하는 것(수학 문제 풀기), 원하는 것(삼촌과 함께 살기)처럼 다른 아이들이 가지는 욕구를 그대로 들어내고영화 ‘어메이징메리(2017)’있다. 다만, 7살의 다른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이타심이나 나라 경제에 대한 관심 등은 확실히 메리가 일반적인 아이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갈등이 될 수있을 것이다. 내 마음같아서는 영재교육을 통해 더 위대한 사람으로성장해주길 바라는 욕심이 생기지만, 내 아이가 원하고 바라는 것을 해주기 위해서는그러한 욕심을 어느정도 누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변의 어른들 (교장선생님이나 할머니)은 메리의 개인적인 욕구, 정서적인 안정 등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이미 본인들의 가치와 잣대로 아이를 평가하고 더 나은 교육을 받는 것이 메리에게도 좋은것이라 단정 짓고 있다. 오로지 프랭크만이 메리를 더 이해하려 하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하는 눈 높이 맞춤식 교육방식을 채택했다. 사실 이것이 중요하다. 아이의 발달 과정 중 심리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결핍은 훗날 정서적인 부분에 있어 심각한 문제 (정신질환과 같은)를 야기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래 친구들과 만나 함께 뛰놀며 성장해 나가는 사소한 과정들이 누락 되어졌을 때도 성인이 되어 대인관계의 불안요소
영화 ‘암살(2015)’개요 : 액션, 드라마국가 : 한국시간 : 139분개봉 : 2015. 7. 22. 개봉감독 : 최동훈출연 :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등급 : 15세 관람가영화 ‘암살’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시대는 문학적으로 낭만주의가 팽배하고 모더니즘이 꽃핀 시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끝없는 독립 운동이 존재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 당시의 독립운동사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실재했던 의열단의 활동 기록을 모티브로 가상의 인물들을 집어 넣어 허구의 ‘암살’사건을 그려냈다. 시대의 비극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겉과 속이 다르게 살아야 했던 사람들...그들을 잊지않고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이 영화 전체에 잘 묻어난다. 그래서 인가 영화의 포스터는 극중 의열단의 기념사진으로 되어있다. 사진이라는 것은 그 때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 이며,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그 시절을 다시 회상하고 추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이 사진을 통해 한 번더 우리에게 그들을 상기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에게는 이제 잊혀져버린 그 시절과 이름 모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 독립 운동가들 재조명 해주는 장치인 것이다.극 중 염석진 (이정재 역)은 입체적 캐릭터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나라의 독립을 위한투사로 등장하지만, 자신의 목숨과 안위를 위해 친일파로 변모하고 영화 전체에 있어관중들의 분노를 끌어 올리는데 한 몫을 하였다. 덕분에 의열단의 비인륜적인 ‘암살’이라는 행위가 어떠한 면에서 정당성을 갖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심판하고 목숨을 빼앗는 것은 어떠한 이유에 있어서도 용납이 될 수 없지만, 극도로 악랄하고 비열한 악역을 통해 관중들로 하여금 ‘살인’행위도 정당화 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느끼게 해준다. 영화는 이를 위해 극중 관중들의 분노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장치들을 준비해 뒀다. 선한 이미지를 가진 주변 등장인물들의 죽음과 카와구치대위의 만행을 보고도 참아야 하는 하와이피스톨 장면, 염석진의 밀정행위로 인해 죽게되는 의열단원들의 모습 등이 그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영화가 흘러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관중들은 더욱 영화에 몰입하며 그에 대한 분노가 염석진과 친일파를 향해 가게되는 것이다.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씬은 매국노 강인국(이경영 역)과 조선 주둔군 사령관 일본 육군영화 ‘암살(2015)’소장 카와구치 마모루(심철종 역)에 대해 주유소를 중심으로 저격하려는 장면과 카와구치의 딸 미츠코(전지현 역)의 결혼식장 총격전이다. 암살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몰래 사람을 죽임’이지만, 대놓고 이뤄지는 총격전을 보면 ‘암살’이 아니라 일본군과 한국독립군의 소규모 전투를 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이 ‘암살’인 것은 살해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제거하기 위한 과정 자체가 비밀리에계획, 진행 됨에 있는 것이라 보여진다. 또한 영화의 분류가 액션으로 되어 있으면서도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넣어 대부분의 관객으로 하여금 ‘암살’의 순간보다는 그것을준비하는 과정과 인물의 심리 변화에 더 주목하고 볼 수가 있어 제목과 영화 내용자체의거리감은 잊혀져 버리게 된 것이다.“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법원에서 증거 불충분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염석진, 오히려 자신은 애국자라며그동안의 매국행위 자체를 부인하는 장면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일상에서도 TV나
생태 여성주의Eco-Feminism생태여성주의(Eco-Feminism)1. 내용* 생태여성주의는 사회생태주의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지배와 자연의 지배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하는데 이는 특히 남성에 의한 여성의 지배가 현재 우리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규정한다고 생각한다. 생태여성주의라는 용어는 1974년 프랑스의 페미니스트인 드본느(Francoise d'Eaubonne)의 저서 페미니즘 아니면 죽음 (La Feminisme ou la Mort, 1974)에서 처음 등장했다. 여기서 드본느는 지구 안에 사는 인간의 운명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하면서, 자연 파괴의 원인을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연결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남성중심주의적 억압과 지배를 종식시킴으로써 여성이 지니는 잠재력을 통해 생태계의 위기와 혼란으로부터 인류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하는 생태학적 혁명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생태여성주의자 중의 한 사람인 와렌(Karren Warren)은 생태여성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의 지배와 자연의 지배 사이에는 어떤 역사적, 경험적, 상징적, 이론적인 중요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런 관련을 이해하는 것이 페미니즘과 환경윤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며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관련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성과 자연에 대한 착취가 계속되고,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든 아니면 환경 윤리의 관점에서든 적절하지 못한 정책, 이론, 관행이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앞서 설명한 사회생태주의는 주로 북친의 이론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지만 생태여성주의는 어느 한 사람, 하나의 이론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는 다양한 이론들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 따르면 사회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여러 가지의 사고방식, 즉 이른바 ‘지배의 논리’가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한 특성을(예를 들면 더 이성적이고, 더 강력하고, 더 진취적이라는 등의) 지니므로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것이 남성뿐만이 아니라 여성에게도 도움이 되며 사회적 분업의 차원에서 효율성도 높다는 주장을 들 수 있다. 이는 앞서 북친이 주장한 ‘지배-종속의 위계질서’의 도식에 지배자로 남성을, 피지배자로 여성을 대입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급진주의적 페미니즘의 관점에 따르면 우리의 사회, 문화, 관행이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인 차이를 곧 사회적 차별의 근거로 인식하여 여성을 오직 어머니, 아내, 성적인 배우자로만 규정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양육 등이 여성에게 적합한 일이며 따라서 여성은 가사 노동에 전념하는 소극적, 감성적 존재로 규정된다. 이는 여성보다 이성적이고 활동적이고 능동적인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여성에 대한 이런 관점이 현재 우리 인간이 자연을 보는 관점과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 생태여성주의의 기본 전제이다.* 생태여성주의는 특히 고대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와 사상, 문화가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전개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고의 예로는, 북친도 이미 지적했듯이,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이성과 감정, 정신과 육체, 주관(주체)과 객관(대상)의 분리를 들 수 있다. 이런 분리는 단순히 전자와 후자의 차이를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페미니스트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인 켈러(E. F. Keller)는 이런 이데올로기가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근대과학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켈러는 근대 초의 과학자였던 베이컨(F. Bacon)을 인용하면서 초기 과학의 많은 모델들이 자연에 대한 지배와 여성에 대한 지배를 정확하게 동일시함을 지적한다. 베이컨에 따르면 ‘과학은 정신과 자연 사이의 정숙하고 합법적인 결혼을 추구한다.’ 과학과 기술은 ‘자연에 이르는 진리를 발견하여 자연을 인간을 위한 존재로, 인간의 노예로 만들 것이다. 자연을 부드럽게 인도할 뿐만 아니라 자연을 정복하고 복종시키고 말 것이다.’ 베이컨이 인간과 자연의 이런 관계를 결혼으로 묘사했다는 것은 고도의 상징성을 지닌다. 이는 바로 당시의 결혼이 남성이 여성을 정복하고 복종시켜 여성을 남성의 노예로 만들었고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학대하는 관행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생태여성주의는 일반적으로 위와 같은 이분법의 사고와 관행을 해소하려고 노력하며 자연을 인간의 착취와 학대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여성을 남성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과 같은 맥락을 지님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남성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와 근거 없는 우월성에서 벗어나 여성성을 회복하는 것을 제시한다.2. 생태여성주의의 대표적 접근법들*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생태여성주의는 ‘여성, 자연, 육체 감정 등 이전의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가 폄하해 왔던 것들을 재평가하고, 찬미하고, 옹호함으로써 대안적인 여성 중심의 문화를 창출하여 생태계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의 치유’를 목표로 삼는다. 그 대표적인 접근법 중의 하나로 ‘배려의 윤리’(ethics of care, 보살핌, 돌봄의 윤리로 번역되기도 함)를 들 수 있다. 길리건(Carol Gilligan), 노딩스(Nel Noddings) 등의 페미니스트들은 기존의 윤리 체계들이 강조하는 도덕 법칙, 권리, 의무, 정의 등은 이기적 개인의 이익이 상충하는 사회, 따라서 정의가 요구되고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일종의 전쟁터와 같은 세계를 전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마치 어머니와 자식과 같은 관계로 보고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고 보살피듯이 세계와 자연을 대하여야 한다는 것이 ‘배려의 윤리’를 바탕으로 한 환경윤리 이론이다. 배려 윤리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갈등 대신에 협력이 있고, 대립 대신에 서로 간의 유대감과 일치감이 있으며, 권리와 의무 대신에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통용되는 사회의 구성을 목표 삼는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도덕적 영역에서 개인의 자율, 통제와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등의 추상적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 드러나며 오히려 모성에 기초한 유대감, 연대감 등이 오히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자연 및 환경에 대해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여 자연을 돌보고 보살피는 - 그것의 결과, 효율성, 이익 등과 무관하게 - 인간의 헌신적 노력을 강조하게 된다.* 배려 윤리에 기초하여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이 왜 특별히 더 여성적이며 따라서 생태여성주의의 한 유형에 속하는가에 대하여 생태여성주의자들은 다양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들은 대표적으로 배려 윤리가 출산과 육아의 직접적 경험을 소유하는 여성들의 관점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즉 어머니가 자녀들을 대하는 방식에서는 권리, 의무, 정의, 규칙, 법의 개념 등은 어색하며 불필요하다. 이런 관찰에 기초하여 생태여성주의자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자애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즉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로 봄으로써 자연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할 수 있다. 배려의 윤리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로부터 자연을 어떤 방식으로 대우하여야 한다는 실천법칙을 이끌어내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결속관계를 중시한다. 즉 인간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입장에서 자연과 관계를 맺을 때 이 관계로부터 다른 많은 내용들이 직접 도출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배려 윤리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나 자연의 권리 같은 추상적인 문제에 집착하기보다는 ‘과연 어떤 방식의 행위가 진정으로 동물을 배려하는 것인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배려와 사랑의 기초는 무엇인가?’ 등의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하여 주로 여성이 지닌 모성을 기초로 답하려고 노력하며 지나친 이론 중심의 접근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근거한 실천을 더욱 중요시한다.* 다른 하나의 접근방식으로 ‘여성 신성(spirituality) 운동’을 들 수 있다. 서양의 주된 종교적 흐름인 유대교와 기독교적인 전통에 따르면 (특히 유대-기독교적 오만의 전통에 따르면) 신은 철저히 자연을 넘어선, 자연의 외부에 있는 초월적 존재이며 이런 신은 임의로 자연을 창조했을 뿐이다. 이로부터 자연은 어떠한 신성도 포함하지 않는 단순한 피조물로서 수동적이며, 비활동적이며, 목적이 없으며, 죽은 존재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런 자연을 신의 가장 뛰어난 피조물인 인간이 지배, 정복하여 수단으로, 도구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이런 창조자로서의 신-피조물, 인간-자연, 정신-물체의 관계가 남성-여성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여성 또한 육체에 의존하며, 감정에 좌우되는, 남성에 비하여 열등한, 수동적인 존재로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자질 및 신성을 지니지 못한 존재로 간주되며, ‘서양의 주류 종교에서 여성과 자연은 항상 함께 추락해왔다.’* 이런 종교적 태도를 반전시키려는 움직임이 여성 신성 운동의 목표이다. 이런 주장을 펴는 생태여성주의자들은 지구를 신으로, 특히 여신으로 간주하는 고대의 종교에 주목하여 여성 신성 운동은 여성적인 신이 곧 자연이며, 자연 안에 영원히 존재하고, 자연 세계를 통하여 자신의 신성함을 드러낸다는 관점을 가질 것을 주장한다. 따라서 자연을 돌보는 것은 자연의 여신을 경배하는 종교적 행위의 차원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그것은 우리의 책임일 뿐만이 아니라 종교적 의무라고까지 생각한다. 많은 고대의 종교들이 주로 생성의 능력의 측면에서 어머니 자연, 대지의 여신 가이아 등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의 여성성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예이며 이런 종교 정신의 회복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전쟁에 의한 상처”? 손창섭의 을 읽고 -비 오는 날, 제목을 보면 비가 내리는 풍경이 떠오른다. 가뭄이 들다가 내리는 봄비는 반갑게 여겨지나 비가 지겹게도 계속 내리는 장마시기에는 몸이 축축 늘어지며 비에 젖은 옷들 때문에 찝찝하고 해를 보지 못하여 기분도 우울해진다. 이 소설에서는 장마는 사십일이나 계속되고 있으며 소설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장마가 진행되고 있다. 비 내리는 배경은 우울한 느낌을 자아내며 비가 올 때면 비가 들이치고 지붕에서는 물이 새는 쓰러진 것 같은 동욱 남매가 살던 목조 건물에서의 생활은 정말로 비에 젖어 있는 인생이다. 해 한 번 들 날이 없는 비극적이고 암울한 인생인 것이다. 이 작품에는 제목 자체를 ‘비 오는 날’로 정하여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배경을 비 오는 날로 설정하였으며 작품을 통해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인지 살펴보도록 하겠다.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50년대 한국 전쟁 시기이다. 한국 전쟁은 한 나라가 분단되면서 같은 민족들이 무 썰리 듯 강제로 나뉘게 되고 한때는 같은 민족이었던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 실제로 전쟁은 전쟁 당시에도 많은 희생자들을 낼 뿐 만아니라 전쟁이 끝난 다음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을 잃은 고통과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남기고 터전을 잃게 하여 가난한 삶을 살게 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6·25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집을 폐가와 같다고 비유하면서 생활과 휴식의 공간이어야 할 집을 끊임없이 침전하는 무기력이 지배하는 밀폐된 공간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장마철, 폐가 집 등 시간적·공간적 배경은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전쟁이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정신적으로 상처를 주어 아무런 희망 없이 무기력하고 암울하게 살아가게 만드는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면서 전쟁 후의 처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있다.또한, 전쟁의 비극성을 그치지 않고 오는 장마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 모습을 구약성경을 구절을 가져와서 언급하고 있다. “사십 주야를 비가 퍼부어서 산꼭대기에다 배를 묶어 둔 노아네 가족만이 남고 이 세상이 전멸을 해 버렸다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홍수를 원구는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노아의 방주에 대한 이야기인데 사십일 동안 밤낮으로 비가 퍼부어서 세상을 잠기게 하였고 노아네 가족만을 남기고 세상을 전멸시켜버린다. ‘비 오는 날’에서도 사십일이 넘게 장마가 오고 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내린 비는 타락한 세계에 대한 징벌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전멸시키면서 정화를 시키기 위함인데 ‘비오는 날’에서의 비도 이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비는 전쟁으로 인해 타락한 세상을 징벌하고 정화하고자 한다. 여기서 전후 상황에 대한 작가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배경뿐만 아니라 인물에서도 역경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없고 방법도 찾지 못한 인물, 동욱 남매를 등장시켜 전쟁으로 인해 절망적이고 패배적 삶에 빠진 당시 서민들의 삶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동욱은 상대방을 조롱하는 것 같은, 그러면서도 자조적인 닝글닝글한 웃음을 짓는 인물로 목사가 되기를 꿈꿔왔지만 전쟁 때문에 목사의 꿈이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목사가 될 것이라는 허황된 꿈을 꾸며 그렇다고 그것을 위한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욱은 불구자인 누이, 동옥을 보살피며 생계를 유지해나가려 한다. 동욱은 동옥이 그린 초상화를 미군에게 팔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동욱은 대학에서 영문과를 졸업하였음에도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존재이다.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방법도 불구자인 동생의 도움을 받아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암울하고 절망적인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라도 보여야하지만 그런 노력 없이 술에만 빠져있다. 이는 군에 다녀온 동욱이 비록 신체적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전쟁을 겪으며 정신적 상처를 입고 인생에 대한 희망을 잃고 무기력증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동욱에게는 막막하고 힘든 현실을 개선해나갈 힘조차 없는 것이라고 보인다. 이렇게 전쟁은 사람에게서 꿈과 희망 앗아가고 인생을 살아갈 의지와 힘조차 말살시키는 정신적 상처를 준다는 것을 동욱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볼 수 있다.또한 전쟁은 동욱에게서 인간성 또한, 잃어버리게 하였다. 동욱은 동옥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운 짐으로 느낀다. 그래서 원구에게 동옥을 떠넘게 버리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인다. 동욱의 절망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는 누이인 동옥에게 향한다. 동욱은 원구에게 동옥이 원구만은 자신을 업신여기지 않는다며 내심 기다린다고 가끔 찾아와서 위로를 해주라고 하지만 모순되게 “이상한 것은 동옥을 대하는 동욱의 태도였다”라고 원구가 말할 만큼 동옥에게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수롭지 않은 일에도 이년 저년이라 욕을 하고 작은 일에도 저것도 못한다고 면박을 주고 노려본다. 그런 동욱에게 원구가 왜 그렇게 사납게 구냐고 묻자 동욱은 “병신 고운 데 없다고 그년 맘 쓰는 게 모두가 틀렸다는 것이다.”고 말한다. “우선 그림 값만 하더라도 얼마 전까지는 받아 오면 반씩 꼭 같이 나눠 가졌는데 근자에 와서는 동욱을 신용할 수가 없다고 대소에 따라 한 장에 얼마씩 또박또박 선금을 받고야 그려 준다는 것이었다. 생활비도 둘이 꼭 같이 절반씩 부담한다는 것이다. 동옥은 자기가 병신이기 때문에 부모 말고는 자기를 거두어 오래 돌봐 줄 사람이 없으리라는 것이다. 오빠도 언제든 자기를 버릴 것이 아니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자기는 자기대로 약간이라도 밑천을 장만해 두어야 비참한 꼴을 면하지 않겠느냐고 한다는 것이었다.” 동옥은 동욱이 자신을 버릴 것을 걱정하며 자신의 돈을 마련해두고자 한다. 이렇게전쟁은 가난하고 비극적인 상황을 만들어서 가족조차 서로를 책임지지 못하고 짐이 되어 버릴 질 것을 염려하게 한다. 전쟁은 친남매가 서로를 못 믿게 하는 비극적인 현상 만들었다. 그리고 동옥의 걱정처럼 동욱은 동생을 남겨두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동욱의 마음의 상처는 동생과 있을 때도 보호해주지 못하고 폭력을 가하거나 막대하고 결국은 불구자인 동생을 짐이라 여기게 되어 동생을 버리게 된다. 이는 전쟁이 가족 간의 애정도 망가뜨리고 도덕과 윤리의식 등 인간성을 잃게 된 것이다.동옥이 역시 전쟁의 피해자이다. 원구가 동옥을 처음 만났을 때 그의 눈은 노려보는 듯하고 까닭모를 모멸과 일종의 반항적 태도까지 서리어 있었다. 동옥은 원래부터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어릴 적 동옥은 원구를 졸졸 따라다니며 ‘중중 때때중 바랑매고 어디가나’를 부르면서 다니곤 했다. 이런 모습을 볼 때 동옥은 적극적이고 활발한 아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른이 된 동옥은 경계심이 심하고 오빠가 밥을 준비하는 중에도 도울 생각 없이 우두커니 앉아있는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두려워하며 믿지 못하고 배척한다. 하물며 오빠까지도. 그녀가 이런 성격이 된 것은 전쟁의 후유증 때문이다. 그녀는 특히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불편한 몸으로 가난하고 불안정한 상황을 살기 어렵다. 그녀가 홀로 남겨지게 된다면 먹고 살기 위한 선택지가 몇 가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족조차 짐으로 느껴지는 전쟁이라는 상황은 그녀가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초상화 그리는 일을 할 때도 자신의 돈을 마련해두어 언제 버림받아도 살 수 있도록 대책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동옥은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겠지만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상황이 사회적 약자인 동옥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동옥은 여성이면서 장애인으로 전후 빈곤하고 자기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들어 가족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시기에 가장 큰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살아갈 방법도 없는 이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보았다. 결말에서 새로운 집 주인이 ‘몸을 판들 죽기야 하겠느냐’의 말처럼 동옥은 아마 살기 위해서 몸을 팔거나 결국에는 죽음을 선택하는 등, 무엇이 됐든 비극적인 결말을 맡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결말은 앞에서 언급한 노아의 방주처럼 비가 끊이지 않게 내려 타락한 세상을 징벌하고 우울하고 살아갈 의지조차 없는 동욱 남매는 비에 휩쓸려 사라져 버릴 것이다. 작가는 역경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도 없고 방법도 찾지 못하는 인물들을 나타내어 패배적 삶에 빠진 전후의 인간들은 비에 쓸려도 아까울 것이 없는 모멸적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