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일본’이라는 국가의 명칭을 듣게 되었을 때 한국인이 가지는 대부분의 이미지는 ‘약탈자’ 혹은 ‘침략자’와 비슷한 성질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의무교육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식민지 지배’의 역사에 대한 반추가 주요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며, 또한 그로 인해 ‘반일’은 이미 개인의 감정적 차원을 떠난, 국가적 담론 즉 일종의 이데올로기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정확히 어떠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며, 또한 그것이 왜 한국인의 민족적 감정을 불편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TV의 뉴스나 신문기사를 통해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반사적으로 부정적 태도를 견지하게 된다는 사실 등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막상 다소 맹목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반일감정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다보면 그 근거가 매우 빈약함을 알 수 있다. 즉 ‘일본사람’이라는 말보다 ‘쪽바리’라는 단어가 훨씬 입가에 편하게 맴돔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부르는 것이 편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이러한 측면에서 정대균 교수가 쓴 ‘일본인은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저서는 많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일본에 대해 맹목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야스쿠니 신사참배 문제나 독도의 영유권 분쟁 등에 대해서는 몹시 단호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일본인이 그러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다 심층적으로는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서는 어떠한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로서 가장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독도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결국 그러한 정치적 사안의 해결이 무력이 아닌 설득과 토론을 통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 볼 때, 그들이 한국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하고 있다 할 것이다.또한 한국인에게으로 했던 한일회담은 그 조약이 체결되기까지 14년이란 오랜 세월이 걸렸는데, 이는 바로 양국이 모두 그 관계 개선에 대한 열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정식 교수의 지적을 빌려 저자가 설명하고 있듯이, 당시 한국은 북한과 미국에 대한 관계의 정립이 보다 선결적인 과제였고, 일본은 패망 이후 부흥에 바빴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무관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두 번째 시기는 1965년 국교 정상화에서 1984년까지 약 20년 동안인데 이 시기의 특징은 ‘일방통행의 관계’라고 저자는 보고 있다. 여기서 일방통행의 관계란 국교 정상화와 함께 수많은 일본 관광객이 한국을 방문하고, 한일조약의 체결과 더불어 자금과 기술과 정보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흘러든 것처럼, 사람과 물건과 돈이 일방적으로 이웃나라로 이동하는 불균형 관계를 말한다.이 시기의 일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뉘어 볼 수 있는데, 첫째가 1965년에서 1973년까지의 무관심과 관심 회피의 상황이다. 물론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 한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지원하는 태도를 취하기는 했지만, 교육이나 문화 등의 영역에서 한국은 여전히 ‘매력 없는 나라’ 혹은 ‘배울 가치가 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1973년에서 1984년 사이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김대중 사건’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은 한국의 독재정치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전후 이후에는 처음으로 이웃나라에 대중적인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이를 다나카 아키라는 ‘정한론적 풍조’라고 정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관심한 태도과 관심의 표현으로 변화하기는 했지만, 이는 여전히 한국에 대해 일본이 일종의 ‘종주국 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기는 세 번째 시기에 일어나는 변화의 준비기간이기도 했는데, 학교 교과서의 한국·조선에 관한 내용 서술 문제, 재일 한국인·조선인에 대한 제도적인 차별에 대한 이의신청 운동,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의 히트 등이 코 하나하나 따로 떨어진 것들이 아니다. 일본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연속적으로 가해 체험을 거듭한 것이며, 조선 민족의 입장에서 볼 때는 연속적으로 피해 체험이 거듭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일본 민족의 역사적 가해행위는 모두 ‘이유 없는 범죄’였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이 범죄는 현실적인 처벌을 받은 적이 없다.위에서 든 예시뿐 아니라, 저자는 고마쓰가와 사건을 통해 생긴 ‘이진우 소년을 돕는 모임’,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잊혀진 황군」, 문학작품으로서 이노우에 미쓰하루의 『허구의 크레인』등 다양한 예시를 열거함으로써 속죄형이라는 관심형태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이데올로기형이 유형은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이웃나라에 관여하는 유형이다. 이 관심형태는 우호·친선의 상대가 북인지 남인지에 따라 진보파와 보수파라는 하위 유형으로 나뉘는데,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쳐 담론의 세계를 지배해온 것은 진보파였으므로, 이 장에서의 관심도 주로 진보파에 맞추기로 한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러한 진보파의 담론의 예로서 저자는 ‘한국 민주화 지원 긴급 세계대회’의 개회 인사의 발췌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이데올로기형이 여타의 관심형태와 비교했을 때 보이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이데올로기형 대부분이 한국인과 한국 문화자체 보다는 ‘한국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의사 관심의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쟁점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그들의 관심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진보파가 한일조약을 ‘동북아시아 군사 동맹’이라고 규정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적대적 입장을 취하는 한편, 북한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동조하는 태도를 취했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반독재 운동의 주요 조정자였던 야스에 료스케가 김일성과의 회견을 통해 그의 발언에 ‘경의를 품었다’라고 표현했다는 것이 이러한 사실을 잘 뒷받침 해주고 있다. 물론 모든 진보파가 야스에처럼 북한에 대해 적극적인 동조자였던 것이 아니었지만, 진보파의 활동이 대 관한 대통령의 선언」을 바탕으로 설정된 것으로, 한국의 해안선에서 최고 190해리에 이르는 주변 수역에 선을 긋고 그 구역 내에서 수산물과 어업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이승만 라인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12월에 한일기본조약이 발효하기까지 14년 동안 “공해 자유의 원칙에 어긋나고 국제 어업 협력의 기본 개념과 서로 맞지 않다”거나 “불법 부당한 것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정부뿐 아니라 야당과 대중매체 등에 의해서도 동조됨으로서 일본에서는 격렬한 반한 캠페인이 벌어지는 등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 강해지게 되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이승만 라인은 단순한 어업 분야에 있어서의 경제적 갈등 관계가 아닌, 한일 양국의 관계 자체를 악화시켰던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 한일기본조약이 발효되기까지 나포·억류했던 선박·선원의 수가 233척·2791명에 이른다는 사실과 이에 대해 끊임없이 항의했던 일본 정부의 태도-당시 일본의 외무위원회에서 있었던 자유당의 사사키 모리오 의원과 오카자키 가쓰오 외무대신의 대화에서 그들의 태도가 단적으로 드러난다-에 의해서 뒷받침된다. 이렇듯 전후 한일관계는 상호 부정적인 시각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또 하나의 시각그러나 첫 번째 시기에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이는 오카 마사오가 “과거 조선 민족의 정치적 운명 때문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반일 감정의 심각함과 새로운 독립 국가로서 안정에 대한 충분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불안감에서 생겨난 과격한 국가적 행동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공감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던 것이나, 일본인이 조선인에 대해 심각한 민족적 편견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저자가 본문에 소개한 스즈키 하지메의 한국의 뒷골목에 대한 이야기나, 소년지에 게재된 시 등은 분명히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호화시켰다고 비판한 것이나, 하기와라 료가 북한을 ‘거짓말 국가’로 묘사한 사실 등에서 잘 드러난다. 즉 인민과 한몸이자 영웅이었던 북의 독재자는 영웅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력을 쇠퇴시킨 주범으로 완전히 역전되어 인식되는데, 그 반증이 바로 가미야 후지가 “김일성의 생물학적 한계가 좀 더 일찍 찾아왔다면 김정일 정권의 연착륙적인 체제 변혁의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던 것이나, 『쇼쿤!』지의 권두칼럼 「신사와 숙녀」에서 “지금 그 사내가 심근경색으로 죽었다. 왜 손바닥을 치며 기뻐하지 않는가.”라고 극단적으로 그의 죽음을 반겼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박정희에 대한 재평가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완전히 부정적인 것으로 돌아섰음에 비해 박정희는 상대적으로 그 평가가 좋아지게 되었다. 이는 도바 긴이치로가 1970년대에 한국이 일종의 ‘열린사회’라고 표현한 것이나, 그를 기원으로 하여 와타나베 도시오가 1980년대 중반에 한국의 군부가 그들 스스로의 정치권력 확대보다는 경제 근대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관료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인정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이들이 담론의 영역에서는 소수파였고, 또한 한국이 경제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서 개발 독재, 재벌 지배, 부정, 대외 종속 등의 사회적 제반 문제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김일성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인 것으로 선회하고,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가 소수에 의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곧 한국에 대한 평가가 확실하게 호전되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제 5장 닮았지만 닮지 않는 나라이질성의 발견세 번째 시기에 들어서면 단기간의 현지 체험을 바탕으로 기록한 다양한 문화론이 급증하는데, 그것은 이전의 독재국가론을 대신해 한국론의 새로운 주류가 된다. 즉 두 번째 시기의 독재국가론을 ‘정치적 한국론’이라 할 수 있다면, 문화를 매개로
서론‘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갈증과 열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인생을 역동적으로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주요동기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랑’이다. 때문에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시와 소설 같은 문학작품들 대다수가 사랑에 대해 찬미하고 있는 사실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사회부적응자들 대부분이 가족이나 또래집단 속에서 관심과 사랑의 부족이 원인이 되어 일탈적인 행태를 보이게 된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인간에게 있어 사랑이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여기 “사랑따윈 필요없어”라고 일갈하는 흥미로운 영화 한 편이 있다. 물론 사랑에 대한 찬미를 그리는 작품이 많은 만큼 그에 대한 배신을 그려낸 작품수 또한 엇비슷하므로 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보고서에서 ‘사랑따윈 필요없어’라는 영화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고 그것을 분석대상으로 하게 된 동기는, 바로 그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나름대로의 특별한 ‘심리적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세상의 어떤 존재도 심리적 상처 하나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안고 있는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그것을 적절히 극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장하여 그것이 곧 그들의 삶 그 자체가 되어버린, 현실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경우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본 보고서에서는 그들의 왜곡된 성격이나 태도 그리고 가치관 등에 영향을 미친 심리적 요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 또한 그들이 어떠한 심리적 치료과정을 통해 왜곡된 자아를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줄거리 요약‘아도니스 클럽’이란 곳에서 명실상부하게 최고의 호스트로 추앙받고 있는 ‘줄리앙’이라는 한 남자게다가 그 여동생은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거액의 유산을 물려받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그를 친형처럼 따르는 미키와 함께 그 집으로 찾아가 그 여동생의 오빠 행세를 하며 유산을 가로채 그의 빚을 갚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어릴 적 앓은 병으로 인해 실명을 하게 된 그 여동생은 세상에 대해 마음을 굳게 닫아버린 상태였고, 그래서 줄리앙은 실제 오빠로서 인정받고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그 여동생의 마음을 어떻게든 열어보려 노력하게 된다.그러나 그러던 과정에 있어 그는 그 여동생을 점차 사랑하게 되고, 결국 “사랑따위 필요없어”라고 외치던 그는 그녀를 병을 고치기 위해 모아둔 돈을 사채업자에게 갚는 대신 그녀의 수술비에 쓰게 된다. 그리고 그 대가로 사채업자에게 칼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게 된다.본론 - 각 등장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심리적 분석1. 류민 - 귀인이론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뜻하지 않았던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장애상황은 인간에 대해 물리적?정신적으로 압박을 가하게 되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내는가가 향후 그의 인생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 극중 여주인공인 류민의 경우에는 ‘시각 능력의 상실’이라는 장애상황이 향후 그녀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어릴 적 피치 못할 집안 사정으로 인해 친오빠와 헤어지고 난 뒤 그녀는 설상가상으로 시력까지 잃게 된다. 즉 그녀는 자신과 밀접한 애착관계에 놓여있었던 친오빠와의 결별로 인한 심리적 박탈감과 시력의 상실이라는 물리적 장애라는 위기상황에서 놓이게 되는데, 이것이 그녀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마인드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그러한 위기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길은 바로 ‘세상과의 단절’이라는 방법이었다. 영화 속에서 처음 줄리앙이 류민을 만나고 가짜오빠노릇을 하려 들었을 때 류민은 결코 그를 달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오히려 자신을 어릴 적부터 길러준 유모에게 “적당히 돈 줘서 보내”라는 말을 내뱉음으로써 오빠란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태ability: 통제가능-불가능)이 그것이다.이를 극중 여주인공인 류민에게 적용시켜 본다면, 그녀가 ‘친오빠와의 이별과 시력의 상실’이라는 상황에 대해 그것이 스스로가 통제 불가능한 외부적 요인이며 또한 그것이 앞으로 거의 변화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심리적 기대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녀는 스스로의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에 의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능동적으로 개선해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귀인을 하는 대신, 세상 속에서 자신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귀인을 함으로써 부정적인 자아정체감을 지니게 되었고 그에 따라 극심한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는 실제 극중에서 기찻길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줄리앙에게 “날 죽여줘”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도 쉽게 알 수 있다.유사하게 극중에서 류민이 줄리앙에게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게 되는 과정 또한 귀인이론을 가지고 설명해 볼 수 있다. 처음의 적대적인 태도와는 달리 후에 류민이 줄리앙에게 서서히 호감을 가지게 되는 상황을 귀인이론에 대입시켜보면, 성취감소를 일으키는 과정을 성취증가를 일으키는 과정으로 바꿔주는 귀인변경프로그램을 줄리앙이 류민에게 적용시킴으로서 그녀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먹은 접시 정도는 자신이 치우라”는 식의 간단한 일거리를 그녀가 직접 행하게 함으로써 그녀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부정적 귀인을 서서히 전환하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그녀의 심리적 경계를 허물 수 있는 계기를 줄리앙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공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동안 유모가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약간이라도 위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일은 아예 시키지 않은 것이 오히려 그녀의 무력감을 심화시켰던 것과는 다르게, 줄리앙이 “앞이 안 보여도 이 정도 일을 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자극하며 그녀가 사소한 일이’이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위선적 인물이다. 진심이야 어찌되었든 그의 모습은 항상 웃으며 여자의 쾌락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그 대가로서 막대한 돈을 받아 인생을 즐기는 방탕한 호스트에 불과하다. 때문에 거액의 빚을 지게 되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한탕주의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결국 사기행각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여동생이 친오빠를 찾는 그 진실함은 외면한 채 “그 아이도 결국 여자”라는 약간의 양심적 가치조차 말살해 버린 듯이 보이는 이기적인 인물일 뿐이다.그러나 “사랑따윈 필요없어”라는 말을 차갑게 내뱉던 그가 결국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한 여자의 이름만을 외치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가 심적으로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서 극심한 자기무력감을 견디지 못하고 “날 죽여줘”라고 말했던 그녀의 말이 결국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듯이 어쩌면 그 역시 “사랑이 필요해”라고 절실한 마음으로 외치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순히 돈을 가로채기 위한 목적으로 만난 여자에게 자신의 끔찍했던 과거를 뇌까리고는 금방 “농담이야”라고 부정해버리는 그의 태도는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줄리앙이 그러한 성격을 형성하게 된 것을 어떻게 심리적으로 분석해 볼 수 있는 것일까.먼저 가정해 볼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위선적인 성향을 보이는 줄리앙의 태도가 그의 성격이라기보다는 그의 기질(temperament)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질이란 유전적 소인으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게 되는 개인 고유의 특성을 말하는 것인데, 이를 줄리앙의 경우에 적용시켜 본다면 그는 원래 사교적이고 활달한 ‘기질’을 타고났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그가 타고난 기질 때문에 ‘호스트’라는 직업이 비록 사회적?도덕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해도 큰 양심의 가책 없이도 방탕한 생활을 나름대로 즐기며 살아갈 수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질이라는 것은 생득적인 것이라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줄리앙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리앙의 성격분석을 위해 본 보고서에서는 특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접근방법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정신분석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사람의 성격구조가 원초아(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되며, 이 세 가지 구조 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개인의 행동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원초아란 성격 중에서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구성성분을 나타내는 것이며, 자아란 외부현실과 초자아의 제한을 고려하여 원초아의 욕구를 표현하고 만족시키는 정신기제를 말하고, 초자아란 프로이트의 성격구조에서 마지막으로 발달하는 체계로서 사회규범과 기준이 내면화된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원초아는 가장 원시적인 것으로 항상 공격적으로 그를 드러내고자 하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원초아와 완벽하게 대립되는 사회규범적인 초자아의 압력을 받게 된다.따라서 자아는 그것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데 이를 정신분석학에서는 ‘방어기제’라 한다. 즉 방어기제란 원초아의 충동의 공개적 표현과 이와 대립되는 초자아의 압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간이 고통스러운 상황에 나름대로 적응하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줄리앙의 경우에는 그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서 그가 주로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 방어기제를 쓰며 자신의 자아를 보호하려고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 반동형성이란 억압된 감정이 실제로 표현되지 않도록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그것을 반대의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하여 자아를 보호하려는 기제를 말한다. 이는 금지된 충동을 차단함으로써 원래의 억압을 보충하려는 노력으로 억압된 소망을 정반대의 것으로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귀한 자식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의 태도가 바로 그것인데, 줄리앙의 경우에는 실제 진실한 마음 없이 그저 쾌락만을 추구하는 여성들이나 그들과 맺는 피상적인 관계를 좋아하지 않았지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