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희대의 사기극 혹은 국가적 음모론 이라고 불리는 황우석교수의 배아복제 진실논란은 최근 추적60분의 문PD잠적사건, 방송불가 판정으로 또 한번 여론을 불 붙이고 있다.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황우석교수의 신화 혹은 신드롬 혹은 공황”은 무엇일까? 진실을 아직도 확신하지 못하는 이 시점에서 황우석 교수의 인간 체세포 배아복제를 둘러싸고 일어난 사태에 대한 나의 의견을 적어보도록 하겠다.(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에서 바라본 황우석 교수)황우석 교수가 2005년 발표한 논문에 대해선 상당히 명쾌하게 결론지어 졌다. 제1저자인 황우석교수도 자신의 “인위적 실수”를 시인하였고 그에 대한 사회적 지위박탈(서울대 교수직 파면, 최고과학자 취소사건 등)은 이루어졌으며 그의 논문은 철회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은 문제가 있다면 조작 범위와 조작책임에 대한 규명이다. 검찰은 김선종 연구원의 단독범행으로 마무리 짓고 수사를 종결한 듯 보인다.진실은 간단하다. 황우석 교수연구팀은 원천기술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것과,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황우석교수가 가지고 있던 원천기술은 그의 첫 번째 해명기자회견의 그의 대답만으로도 모두 밝혀졌다. 이제 원천기술의 주장은 신뢰도 0인 것이다. 시험부정행위를 한 수험생이 원래 자신이 11 문제 중에서 2-3 문제, 또는 최소한 1문제는 풀 수 있었다고 증명한들 0점 처리를 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이것은 황우석교수가 구축한 인프라가 차후에 원천기술을 획득할 능력이 있는가의 문제와도 별개의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밝혀진 과학적 비행만으로도 황우석 팀의 능력은 앞으로도 인증 받기 쉽지 않을 것이다.(언론과 황우석 파문의 밀접한 관계)지난 일부 언론은 사건의 본질이 논문조작이 아니라 체세포 핵 치환 줄기세포의 존재 여부인 것처럼 보도했었다. 급기야 논문조작 사태는 “황우석 VS 노성일 진실게임”이라는 신종 경기로 변종 되었다. 대중은 황 VS 노의 대립에 각자의 팀을 신들의 이중성을 반성하지 않고도 검찰이나, 서울대 조사위의 결과를 보도함으로써 자연스레 “황우석 작별하기”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의 행태는 대중을 교묘하게 주동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브릭의 논문조작 규명 내용을 다루면서도 결국은 이것을 한국과학계의 자정능력의 찬양으로 돌리며, 데이터조작에 대한 진지한 책임 규명보단 그간 이룬 과제들에 대해 기본 능력과 인프라 구축 노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비정상적인 정당화 구조를 보여주었다. 불 관용적 애국주의는 없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소위 “황빠”라 불리는 황우석 교수 지지단체나 인물들의 최근 사건들을 친절히 보도해줌으로써 아직까지도 그들의 잘못된 행위들을 조용히 정당화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생기게 될 때 언론은 분명 국익 앞에 논란을 일으키는 모든 것들에 대해 배격하고 격리해야 한다는 의견을 펼칠지도 모르는 일이다.원천기술에 대한 언론의 편집증은 중요한 문제들을 놓쳐버렸다. 난자파문의 경우처럼 “윤리”에 대한 고민을 버렸으며, 과학자의 진실성 의무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황 VS 노 진실게임”으로 사태를 호도하며 본질을 왜곡하였다. 결국 원천기술의 개념마저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흐지부지 넘어가 버렸다.황우석교수 연구팀이 1000개의 난자를 투입해서 만약 체세포 핵 치환 배아줄기세포 1개를 확보했다 해도 그런 기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다. 2번 체세포 기증자인 10세 어린이에게 황교수가 두 번이나 임상실험을 제안했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줄기세포의 가능성이 과장되었다는 내용을 실을 뿐이었다. 성공여부를 위해 투입된 재원과 논문조작으로 발생한 사회적인 비용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결론적으로 한국사회의 주류는 이 사태 이후로도 큰 반성의 기미나 긍정적인 방향전환은 뚜렷이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다행인 것은 언론의 줏대 없는 행동 가운데서도 상당수의 대중은 끊임없고자 했던 것이다. 나도 한때는 포탈사이트 Daum의 ‘아고라’코너에 즐겨 들어가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보며 이 사회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고자 하는 무형의 노력들을 지켜보았다. 신화 같은 이야기에 솔깃하여 막연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받아들이는 점이야 말로 위험하다 할 수 있다. 마치 고대시대의 신기루나 점성술로 미래를 예측하듯 여론이 대중을 호도하는 상태로 전락한다면 이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 사회의 희망을 위해 반드시 종식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황교수의 화려한 신화 속, 묻혀진 윤리 )우리는 좀더 기본적인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황교수 연구팀의 기술의 결정체라 불리던 배아줄기세포 치료술에 대해서이다. 가수 강원래씨는 상당히 대중적인 설득을 위한 황교수의 좋은 예시가 되었었다.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그의 사연은 황교수 연구팀을 거쳐 불치병의 희망의 마스코트로 대중에게 인식되었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결과는 대중에게 불치병의 훌륭한 솔루션으로 동일화 되었다. 그로 인해 연구를 위해 사용되는 수많은 난자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연구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난자들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이해되지 않을 정도의 파격적인 배려심(?)으로 난자의 연구에 대한 관용이 베풀어졌다.난자획득의 문제는 수많은 여성들의 협조가 필연적으로 따른다. 누구나 잘 알지만 여성에게는 한 달에 한번 정상적인 방식으로 배란되는 난자가 있다. 그러나 실험에 쓰여야 하는 난자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채취가 가능한 것이 아니라 과 배란 방법을 사용하여 마취를 통한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채취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난자매매 문제의 발생여부는 피할 수 없는 논란이 되는 것이다. (노성일씨의 초기 난자 매매관련 이슈는 이 내용과 관련이 있지 않은가.) 이때 여성은 연구물의 제공대가를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성의 상품화에 대한 우려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만약 모든 실험이 성공하여 난자를 통한 치료방법이 가능배아의 파괴문제이다. 인간배아가 인간인지에 대한 논의는 간단히 정리될 사안은 아니다. 수많은 과학계, 종교계의 대립이 지금껏 이루어지는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배아는 인간과 동일한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아 자체는 미래에 존엄한 인간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동물실험으로 죽어가는 흰쥐를 동정하는 수준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치료를 위한 명목아래 실험과제로 인간배아세포를 사용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이번 황우석 교수문제 사태로 부각된 생명공학의 윤리문제는 재정의 되어야 한다. 앞으로도 황교수 연구팀이 아닌 다른 연구자들이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게 될 것인데 명확한 윤리의 선이 법으로나, 사회적 통념으로나 정의되지 않는다면 동일한 윤리문제는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게 되면서 의미 없이 수많은 배아들은 죽어가게 될 것이다.(다시 반복될 수 있는 제 2의 황우석 신드롬)우리는 황우석 교수 열병을 혹독히 치렀다. 예전 한 신문기사에서 다루던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초등학생들의 가치관 형성에 황우석 교수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영웅이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국제적인 사기꾼으로 전락하면서 벌어진 사회의 이면을 바라보며 무엇이 진실인지 믿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지도교사의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는데 이것은 비단 가치관을 형성하는 학생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남녀노소 누구나 약간의 정신적 공황상태를 지나면서 불신과 혼돈의 과정 속에 일종의 두려움까지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통의 이득을 놓쳐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상황에 맞설 수 있고 함께 논의할 수 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지 않았는가.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만을 바라보고 안도하며 넘어가게 되면 제 2의 황우석 사태는 분명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던질 질문은 왜 이런 사태가 일어났는지의 원인과 이런 문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한 언론이 있으며 그에 부응해 반응해주는 대중이 있다. 이번 황우석 사태는 대중의 무차별적인 숭배와 극단적인 언론의 파시즘으로 빚어낸 해프닝이었다. 이런 해프닝이 일어날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 초점은 “경제”인 것이다.황우석 교수는 BT의 별이었다. IT도 이제 수명이 다해간다는 판단아래 대한민국을 실제로 먹여 살릴 수 있는 대안으로 BT가 강력하게 떠올랐던 것이다. 정부와 언론과 각 지방자치단체들은 그 BT를 선점하고 효과를 누리기 위해 그 안에 있는 거품을 보지 못하고(혹은 보았지만 무시하고) 묻지마 지지를 보냈다. 대중 또한 불치병에 대한 희망뿐 아니라 경제부국이 되기 위한 지름길로써 황우석 교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내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미래를 바라본 우리의 열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현재의 불공평한 상황에 대한 불만을 낙관적인 이슈에 투영시킴으로써 대리만족을 느꼈던 것이다.이제 우리는 현명해져야 한다. 단순 현재상황을 잊기 위한 달콤한 유혹에 대해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안에 숨어있는 허황된 진실이 있는지 여부를 우선 판단해야 할 것이고 정부와 언론에 끌려 다니는 우매한 대중이 되어서는 안 된다. 비판적인 사고를 겸비하고 자체 정비가 가능한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언론도 이젠 중립을 지키고 정확하고 진실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양한 상황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보도해야 할 것이며 여론을 호도하여 불명확한 방향으로 대중을 끌고 나가지 않고 작은 소리라도 진실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그리고 앞으로 또 등장할 영웅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각 분야 어느 곳이든)은 우선 정직해야 한다. 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무절제한 모습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아마 처음의 황우석 교수도 지금의 사태를 다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최근 검찰의 조사결과는 김선종박사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어졌지만 분명 황우석 교수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물게 되지 않았는가? 어떤 영웅도 완벽할 순 없다다.
??? 목차 ???Ⅰ. 서론-루소,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 관하여Ⅱ. 본론1. ‘고독한 산보자의 꿈’속의 루소2.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와의 간극, 혼돈의 시기3.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에 관하여Ⅲ. 결론 - 18세기를 살았던 루소의 이유 있는고독한 방랑과 그의 상념.루소, 그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에 관하여18세기 프랑스, 그 격동의 시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루소’이다. 그는 1712년 제네바공화국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시계 제작공 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루소를 출산한 후 9일 만에 숨졌는데, 루소는 아버지의 손에 의해서 키워지게 된다. 루소의 아버지는 루소가 열 살 때 프랑스 군인과 싸운 일로 인하여 제네바를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루소는 외삼촌 집에서 살게 되었고, 열세 살에는 동판공의 도제로 들어가서 일을 배우게 된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루소에게는 그곳은 감옥과 다를 바가 없는 곳이었기에 16살이 되는 해에 제네바를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도망쳐 나오게 된다. 무작정 뛰쳐나와 방황하던 루소에게 희망의 빛이 다가왔는데, 바로 그녀가 바랑 남작 부인이다. 그녀는 10여 년 동안 루소에게 독학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데 매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준다. 그래서 10여 년 동안 그의 인생의 향로는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그때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이 싹트는 무렵이었다. D.디드로, 달랑베르, 뷔퐁, 콩디야크, 돌바크 등에 의해 “백과사전”이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신학이 절대적이었던 18세기 이전의 문화와는 상반된 내용이다. 당대의 지식인, 문인들은 인간에게 초점을 맞춰가기 시작했다. 이성으로 생각하고, 편견이나 미망에서 빠져나오는 철학이 그들에게 빛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루소는 1742년 파리로 나와 디드로와 친분을 맺어 백과전서의 간행에 합류하였다. 또한 1749년 디종의 아카데미 현상 논문에 당선한 학문과 예술론을 출판하게 되었고, 사상가로서 세상에 인정받게 되었다.‘고독한 산보자의 꿈‘속의 루소18세기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서 명성을 얻던 루소가 그의 말년에 집필하여 미완의 작품으로 남겼던 책은 ‘고독한 산보자의 꿈’이다. 이 책 속의 루소의 모습은 지극히 여리고,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 같은 자이다. 이때의 루소는 책 속에서도 자기 스스로도 늙고 쇠약해졌다고 계속 되뇌는 것처럼, 많은 삶을 살고 나서 그의 마지막 여생을 정리하던 때 이다. 그는 상처가 많은 자처럼 보인다. 세상풍파에 찌들기 싫어 마치 세상을 등지고 혼자 고독하고 쓸쓸히 사는 것 같지만, 실상 그는 가장 행복한 것들을 누리고, 찾으며 살고 있었다. 생계를 꾸려야 했기에 악보를 그리며 푼돈을 벌고, 조금은 구차할 지라도 그를 후원하는 몇몇의 후원자들의 덕을 입으며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방랑자로써 자연을 벗 삼아 지혜로운 삶을 살며 생을 마감하고 있었다. 세속의 화려한 문화나 찬사, 그리고 멋들어진 직위와 명성들의 헛됨을 알고, 작은 풀꽃에 감흥하며 자연의 풍요로움에 감사하였다. 그렇게 그는 고독하고 쓸쓸한 산보자로서 그러나 세상의 쓴 뿌리들에게는 날카롭게 비판하는 정념의 사람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루소는 그때그때 시대에 맞춰가며 대세에 편승하는 그런 기회주의적인 삶을 배격하였다. 그는 거듭거듭 진실에 대한 고찰을 하곤 했다. 거짓을 피하고, 참된 나를 찾기 위하여 지혜를 찾았고, 그의 기준에 어긋난 사람이라면 예전에 아무리 친분이 있었다 할지라도 날카롭게 비판하는 자세를 보였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평등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였으며, 자연에 경외감을 가지고 무한한 신 앞에 겸손하였던 사람이었다.계몽주의와 낭만주의와의 간극, 혼돈의 시기루소는 ‘고독한 산보자의 꿈’저서에서도 알 수 있지만, 상당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에 대하여 풍부한 그의 어휘, 수사력을 동원하여 감미롭게 감탄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도 상당히 의식하고, 또 상처받고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루소의 이성 또한 감성 못지않게 뛰어나서 “사회계약론”, “에밀”과 같이 뛰어난 명작들을 남겨놓은 대 철학자이자 문호이다.루소와 함께 18세기 초 백과사전파를 중심으로 하는 지식인들은 이성을 기반으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이론들을 정립해 나갔다. 절대군주의 영향력에서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신앙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생각으로 정립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계몽주의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루소는 이성적인 것에 치중하여 무신론자와 같이 신을 부정하고, 기존의 권력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고독한 산보자의 꿈”에서 신에 대한 강렬한 사모와, 그의 영혼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루소의 명철한 머리는 뛰어난 계몽주의 이론을 지지하면서도, 그의 뜨거운 가슴은 진정한 사랑의 대상에 대하여 쏟아내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계몽주의자이면서 동시에 낭만주의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 함께 뜻을 같이하던 백과사전파의 사상가들과 대립하게 되면서까지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에 대한 뜻을 굽히지 않고 지켜나갔다. 어쩌면 혼돈의 18세기를 사는 대중들에게는 루소의 모습이 올곧게 느껴져 더욱 그의 뜻을 받들어 18세기 민주주의혁명을 이루어 냈는지도 모른다.그 루소는 고독한 산보자의 꿈에서 상당히 많은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모습은 대중 누구에게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인 고민들을 보여준다. 대중과 떨어져서 사상을 외치는 것이 아닌 대중 속에서 함께 호흡하며, 동일한 약점과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자체로도 그는 큰 역할을 감당한 것이 된다. 잠시잠깐의 사리사욕을 이기지 못하여, 명예욕을 사그라지지 못하여 이렇게 저렇게 변하는 사람보다는 손해 보더라도 조용히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멋진가!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에 관하여사람의 행동이나 말은 변하기가 쉽다. 영원히 변치 않고 선한 모습에 서 있을 것만 같던 사람도 어느새 보면 자신이 이익을 위해 조용히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경우는 18세기만 아니라 지금도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계몽주의란 이론 자체는 어쩌면 다수를 위한 올곧은 심지의 영웅들의 소산이 아니라 소수의 이득에서 나온 산유물일지도 모른다. 실제 사회가 변하고 혁명이 일어난 것은 계몽주의내의 몇몇 혁명가들의 입맛에 맞는 이론들이 선택되었고, 또 실행되었기 때문이지 않는가. 계몽주의는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고, 인간 각자가 자신의 자유에 대해 자각하게 되었던 것에 그 힘의 원천이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루소 또한 혁명가도 아니었고, 힘이 넘치는 사람도 아니고, 마치 한나라의 장수처럼 대담하게 자기 몸을 희생할만한 위인도 아니었다. 상처받고 비난 받을 때 약해져서 도망치고 고독하게 삶을 마감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우리 주의의 범인들을 보는 것 같은 익숙함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18세기 프랑스는 변했고, 그 변화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근대 시민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거쳐 전 세계적 으로 퍼져나가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그 산유 물을 함께 볼 수 있지 않은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아동의 복지는 지속적으로 관심 받는 주제이다. 어느 세대에서든지 아동의 연령층은 존재하였으며, 다른 연령층과 다르게 연약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보호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동의 연약함을 무기로 학대하고 착취했던 아픔의 역사도 있었고(현재도 세계 일부의 보석채굴장, 원두재배지 같은 경우에는 여전히 그러하다), 어른의 소유물로 여기어져서 폭력과 학대의 사각지대에 있던 시대도 있었다.우리나라의 사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족형태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발달하였기에 유아, 아동기의 시기가 존중받지 못하고 어른들의 의도대로 다분히 강압적인 삶을 살게 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근대화를 전후로 아동복지의 모습이 상당히 변화되었음을 볼 수 있겠다. 특히 급변하였던 한국의 근대사를 보면 아동복지도 함께 급변하며 발전, 성장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일제시대와 6.25사변 때는 기초적인 삶조차 보장되지 못하던 아동의 상황에서 60~70년대에선 급속한 경제 개발 속 미약하나마 아동복지 프로그램이 발달되었으며, 80년대 이후로는 사회자체의 가치관 변화에 따른 새로운 방식의 아동복지가 이루어졌고, 이에 더하여 져서 90년대, 지금의 2000년대까지 급속한 정착과 발전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우리나라의 아동복지 변천사를 짚고 넘어가보도록 하겠다. 크게 아동복지의 변화 발달사를 3단계로 구분하여 보도록 한다.첫 번째로는 “구호단계”이다. 기초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극빈상태의 아동을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복지를 제공하는 단계인데 이때는 고아와 미아들이 급증하였으며 제대로 보호 받을 수 있는 가정의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던 때이다. 그러나 국가차원에서도 예산과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였으며 물자또한 여건이 빈약할 때였다. 먹지 못해 죽어가는 기아상태의 아이들에게 비상식량을 제공하며, 질병에 걸려서 죽게 되는 아이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여 살려주는, 말 그대로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단계라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외국의 원조단체들에 의해 지원되는 것이 상당수였다.두 번째로는 “선별단계”이다. 60년대에서 70년대쯤이 이 단계에 속하는 시대이다. 이때 처음으로 아동복지가 국가차원에서 법제화된 단계이다. 국가의 경제력이 갖춰지면서 예산과 제도들이 마련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제도적으로 생활보호법을 통해 국가가 아동을 책임지는 형식이 만들어졌다. 고아원에 단순히 아동을 수용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부모 찾기’운동을 통해서 친부모와 고아를 찾아주는 일을 하였다. 또한 탁아시설을 중심으로 극빈가정에서 기아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였으며, 위탁보호제도를 활용하여 일반가정에서도 고아들이 자라나고, 위탁고용의 형태로 기업체 내에서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부차원의 출산조절정책을 통해 아동의 절대숫자를 줄여서 아동복지 대상자가 급격히 늘어나지 않도록 근본적으로 조치하였다.세 번째로는 “보편적 단계”이다. 80년대 이후를 말하는데, 좀 더 세분화적으로 81년도에 아동복지법이 제정되어 다양한 제도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가정위탁 이라든지 결연사업을 통해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으며 91년도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어서 복지가 반드시 필요한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아동까지도 포함하는 단계로써 아동복지가 발달하게 된 것이다. 특히 가치관의 변화가 급격히 이루어지면서 혼란가운데 새로운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는데(약물남용, 학교 내 폭력과 비행, 성규범의 문란..) 이 새로운 아동문제는 극빈층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일반 아동에게까지 발생하고 있었다.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본다면 단순 제도적으로 지원되는 아동복지에 포커스를 맞추지 말고 아동이 자라나고 있는 가정에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은 이에 맞게 아동복지를 지원할만한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사회문제로써 대두되고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아직까지도 아동복지에 대한 범위는 실제적으로 보았을 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보편화된 아동들이 골고루 복지 혜택을 받는 부분은 미흡한 점이 많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족구조의 변화, 취업 모 증가, 양육에 대한 전문분화 등으로 아동보육이 이제 가정의 범위를 넘어 범사회적 지원체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가정이 감당할 수 있는 보육의 범위는 상당한 한계가 존재한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우선시 되고 있지만 경제적 여건이 가능한 가정에서도 아동보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것으로 보아 체계적인 지원체계가 국가, 사회단위에서 지원되어야 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저 출산시대인 요즈음의 상황을 보면 아동보육의 제도 확립은 곧 국가 경쟁력과 결부되어 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보육의 목적은 아동의 최적의 발달을 촉진시키고 가정의 복지를 꾀하는 것으로 볼 때 보육에 대한 사회, 국가의 적극적이고도 세부적인 개입이 요구되었으며, 현재 가속적으로 운영되고 있다.아동복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족 및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아동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서비스 뿐 아니라 아동과 관련된 각종사회제도의 강화나 수정 및 변화에 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동이 인격적으로 존중받는 존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동복지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수반 되어야 한다. 미래의 주도세력으로 성장하는 아동의 인격적 성숙은 청소년기가 지나기 전에 올바른 정립이 필요하다. 인격적으로 존중받지 못한 존재로 자라나게 되는 아동들은 청소년기를 자칫 잘못 보내게 되면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동 개개인에게 올바른 성장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자율적인 방관이나 방임이 이루어진 여러 사례를 보면 우려하던 문제들이 실제로 발생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집중적이고도 효과적인 아동복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현실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방향으로 아동복지제도가 마련되고 있는 것이다.그러면 여기서 정리해봐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올바른 아동복지란 정당히 받아들여지며, 아동에 대한 자기발달의 자유를 존중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써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여 사회복지 정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유아기가 지나고 아동이 되면 점점 독립적인 사고체계가 정립되게 되는데 이때의 아동복지가 능동적이고도 유연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아동복지가 이루어 지기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아동의 사회보장제도의 종류로는 아동복지 정책, 아동복지 관련 법률 및 아동복지 행정과 서비스 전달체가 있다. 이 3가지 방향으로 실제적이고도 유용한 아동복지가 실행되어야 한다.이제 현재의 아동복지 정책은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을 중심으로 한 문제 해결보다는 전체아동을 대상으로 사전 예방서비스를 가족 중심의 형태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제안되고 있다. 짧은 기간 내에 아동복지 제도가 성립되었기 때문에 완벽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제한된 범위의 재정적, 환경적인 지원 안에서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아동복지 시스템이 갖춰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동과 가족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단순히 보호적이고 사후 치료적이 아니라 사건 발생 전, 혹은 적합한 복지지원 시기를 놓치기 전 사전 예방적이며 지속적인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올바른 아동복지 정책이라 할 수 있겠다.사회전체적인 복지 정책의 주요 분야는 일반적으로 소득보장제도, 건강보장, 교육제도, 주택관련 문제, 개별 사회적 서비스가 있으며 사회보장으론 질병관련 복지, 장애관련, 노령화 관련복지, 실업복지, 사망등 사회적 위협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복지 서비스 및 관련 복지제도가 있다. 이러한 각종 분야의 복지 정책 중 아동이 성장하면서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이나 성인의 보호아래에 있어 혜택을 받아야 한다.특히 건강보장, 교육제도, 질병관련 복지, 장애관련, 지속가능한 소득보장 등 기본생활을 영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제도들에 있어서는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는 아동 같은 경우 제도적으로 내에서 지역구민을 대상으로 환경조사를 하여 수혜아동을 확인하여 아동복지가 지원되도록 한다. 또한 민간단체, 사회복지재단과 같은 곳에서도 국가와는 다른 방향으로 그들의 생활을 지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가정이 없는 아동에게만 복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젠 가정의 보호 하에 있는 아동에게도 지속적인 아동복지 혜택이 이루어지도록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성인기의 일환으로 여겨 큰 관심과 세분화된 도움을 주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젠 현대교육의 발전으로 인생주기에서 아동기는 다른 주기와는 다른 특징을 지니는 시기라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아동기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복지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좀 더 전문화된 아동복지와 관련된 지식 습득의 필요성이 점차 중요하게 되었다. 그에 맞추어 편부모 가정환경, 혹은 가정폭력에 노출된 아이들과 같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는 아동들에게도 관심과 제도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변화하고 있다.점점 가정이 인간생활에서 아동들에게 가장 중요한 안식처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우세했던 체계들이 가족에 연계되는 경향으로 전환되고 있다. 가족체계 내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아동에 대해 그들이 직면하게 되는 제반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아동복지 학문이나 서비스가 발전되어야 한다.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서비스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한 제도와 학문이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가정은 사회구성의 기본단위이며 아동의 건강한 발달의 기본터전을 이루고 있으므로, 아동들의 가정생활의 안정이나 강화가 중요한 복지 내용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래서 아동을 보호하는 보호자, 부모들의 복지 또한 아동복지와 연계되어 함께 발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아동의 보호자가 노령인 경우 질병과 사망에 대비한 상황 솔루션이 더욱 필요한 실정이다. 지속적인 소득공급원이 끊기게 되는 경우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가정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최악의 상황까지 연계되는 상황들을 우리 주위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