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주의교육과공교육제도의 발달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1. 스파르타 교육-현대 국가주의 교육의 원형을 제공한 국가 우선 교육(1) 스파르타식 교육이 생겨나게 된 배경① 그리스반도전체의 3분의2가 산지로 이루어진 험악한 자연 조건으로 교통과 통신을 어렵게 하여 자율적 도시국가(polis)로 고립시키고 자체의 이익만 추구② 폴리스의 경제적 생산은 노예노동에 의존(노예가 시민보다 약20배 더 많음)③ 인구에 비해 농산물 턱없이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스파르타는 주변 민족 정복④ 노예의 반란을 경계하여 강한 군사력 키우게 됨(2) 스파르타 교육의 목적① 강인한 군인 양성② 국가적 유용성을 위한 탁월성 강조(3) 스파르타 교육 과정- 체육과 군사 훈련이 주가 되고 도덕적, 사회적 습관 형성을 강조함(4) 여성을 위한 교육① 튼튼한 아이 분만을 위한 신체 단련② 투철한 애국심 기르기 위함2.로마의 교육- 로마의 학교들은 모두 사이었으나 제정시대에 접어들면서 공립화 됨- 제정시대에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황제들이 문법학교과 수사학교에 정부 보조금 을 지급하고 수사학교 교사와 학생들에게 급여와 장학금을 지급-‘안토니누스 피우스’황제: 로마제국 교육체제의 진정한 창시자, 문법학교와 수사학교 공립화- 모순점: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문법과 수학이 비기독교적인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바뀜에 따른 학문가 종교의 갈등발생Ⅱ 중세의 교육- ①, ②, ③은 국가 주도의 교육은 아니지만 교회라는 강력한 체제에서 실행한 공교육(1) 활동내용① 문답학교(초등교육 단계): 이교도에게 세례준비, 아동에 기초적 종교교육(교리문 답, 3R's, 찬미가)② 고급문답학교: 문답학교의 교사양성③ 본산학교(사원학교, 감독학교) : 성직자(목사, 교구장)의 양성, 최고의 고등 교육 기관으로 스콜라철학의 탄생 및 중세 대학의 성립에 영향을 미침④ 수도원학교- 금욕생활을 통한 내세준비, 엄격한 규율과 금욕주의적 방법(순결, 청빈, 복종)-수도원은 도서관, 출판사, 문 필요한 생산 교육, 직업 교육에 중심을 두고 교육함.- 시민학교 중 상류층아이들을 위한 학교는 후에 사립학교의 전신이 되지만 하류층 아 이들을 위한 학교는 후에 초등학교에 전신이 되므로 공교육에 영향을 미침.Ⅲ 문예부흥기와 종교개혁기의 교육1. 문예부흥기- 교육에 있어서 문예부흥운동은 곧 인문주의 교육운동- 인문주의교육은 중세 스콜라주의 교육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교육 경향을 가리키는 말 - 인문주의는 초기 개인적 인문주의와 후기 사회적 인문주의로 구분(1) 후기인문주의 운동① 고전을 공부한 소수의 엘리트 집단이 다수 대중의 의식을 개혁하기 위한 사회 계몽운동으로 전개② 조직적으로 전개③ 중세 후기에 시민계급의 세력이 커지면서 교회부설 학교가 아닌 도시학교들이 생겨남 - 이 학교들은 인문주의 운동을 받아들임으로써 교육과정 속에 인문학 교과를 도입- 학교의 교육활동을 세밀하게 조직하여 여러 학교들이 하나의 체제로서 운영 되도록 함(2) 대표 사상가 에라스무스- 사회 계몽의 성격을 강조하며 교육의 공공성에 대해서 통찰- 교육은 개인적인 관심사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관심사라는 통찰-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무와 젊은이 교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데서 드러남 - 자녀를 훌륭하게 교육하는 것이 부모의 사회적 의무임을 강조-‘여러분의 자녀는 여러분에게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나라에서 태어났으며, 여 러분의 나라에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신에게도 태어났다.’고 말함- 정치가와 종교인들에게는 젊은이들을 교육할 유능한 교사들이 충분히 배출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여 교육을 진흥시킬 의무가 있다고 주장-‘군대를 정비하는 것에 뒤지지 않는 공공의 책임’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2. 종교개혁기- 신교교육의 특성은 성서중심 즉 신앙 중심- 성경에만 권위를 부여하였고 그 목적은 새로운 기독인을 양성하는 것- 주로 초등교육(모국어)에 치중하여 교육- 교육방법은 자유+개별+체벌금지(1) 대표 사상가 루터- 초등교육, 대중교육, 민족교육을 동시에 발전① 교육사상의 특징- 아동크톤① 주요 내용- 멜랑크톤을 유명하게 만든 것을 학문적 업적보다는 독일의 학교교육체제 발전에 끼친 그 의 공헌임- 중요한 점은 작센 학교계획으로 알려져 있는 공립학교 설립 및 운영 방안을 수립함으로써 작센 공국 안의 여러 도시에 학교체제를 확립- 이 학교체제에서는 교육과정을 세 수준으로 구분하여 학생들의 학업 정도에 따라 진급하 는 제도를 채택. 학년제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음- 인문주의자로서 인문적 교양을 갖춘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교육체제를 마련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 결과 인문주의와 개신교 정신을 성공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중등교육과 고등 교육을 개혁하는데 이바지함② 한계- 멜랑크톤의 공헌은 대중교육을 위한 초등교육기관을 설립하는데 까지는 미치지 못했음- 종교개혁의 이상이 실현되기 위해 대중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 이지 못함- 중등교육에서도 고전어 공부는 강조하면서 모국어 교육의 중요성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함(3) 구교의 교육- 보급 운동에 앞장 선 것은 예수회라는 단체- 가톨릭 세력 하에 있는 국가에 자신들의 목적에 맞는 고등학교와 대학체제를 수립- 대부분의 가톨릭 국가에서는 개신교와 맞서는 예수회의 활동을 환영하여 고등교육에 대한 통제권을 넘겨줌- 교황 율리우스 3세는 세계 어느 곳에든지 학교를 설립하고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권한을 예수회에 부여함- 예수회는 가톨릭 국가의 고등학교와 대학 교육 대부분을 통제하게 되었고, 18세기 초에 전 세계에 612개의 중등학교, 157개의 사범학교, 24개의 대학을 운영하게 됨Ⅳ 근대의 교육 (17C-18C)1.실학주의 교육(1) 대표사상가 코메니우스(1592~1670)① 교수방법의 원리합자연의 원리(객관적 자연주의):자연에 따르는 교육을 의미함. 즉, 자연은 적당한 시기가 있으므로 교육도 적당한 시기를 선택해야함. 따라서 교육도 단계를 지켜야 한다는 것(『대교수학』)직관주의 원리 : 직접적인 사물을 통한 교육을 말함. 즉, 모든 경험적 지식을 중시하는 사상② 교육제도아동기(7~12세) 어느 곳에서도 찾거나 세울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을 굳힘.-그래서[에밀]제1부에서 그는, 국가에 의한‘공공교육’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고 함.(4) 범애주의 의 교육론①범애주의의 특징인 보편교육론- 범애주의는 종교의 종파나 경제적 능력에 관계없이 모든 어린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 는 교육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함.- 교회가 아니라 국가가 학교를 관리할 것과 뜻있는 독지가들의 후원을 강조②바제도우의 교육사상: 세속화된 공공교육론- 바제도우는 국가교육체계를 실현해 가고 있던 프러시아의 교육적 전통을 따라 국가적 통 제를 받는 세속적 공교육의 실현을 강조- 이에 입각하여 자신이 제안한 교육계획에서, 학교.도서.연극 등 청소년에 관한 모든 사 항을 관장할‘공공교육에 관한 최고 감독 협의회’ 의설치를 내세움- 이 협의회의 주관 아래 설립될 학교는 종교에 구애됨이 없이 모든 아동들에게 개방되어 있어야 하며, 그 교육내용에는 특정 종파에 관계되는 것은 일체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Ⅴ 근대의 교육(19C)1. 공교육 성립시기본격적으로 19C 후반부터 시작되어 서양 사회에서 근대적 학교제도의 체제로 다져짐2. 근대 공교육 제도의 등장배경① 종교개혁 : 루터와 캘빈과 같은 종교 개혁가들은 교육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해 영혼 의 구원을 얻게 하는 수단이므로 계급과 성에 관계없이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음.② 산업혁명 : 산업혁명으로 인해 많은 공장들이 생기고 수많은 노동자 필요? 도제제도의 한계를 깨닫게 되고 노동자 배출에 적합한 교육제도가 생겨남.③ 시민혁명의 평등사상 : 시민혁명의 만민평등사상을 구현하기 위해 보편적 평등교육이 요구됨④ 근대민족국가의 수립(국가주의)작은 공국들을 통합하여 통일국가를 이룬 근대민족국가는 국가의식의 고취와 통일성을 확 보하기 위하여 새로운 교육제도를 창출하게 됨.3. 서구 각국의 공교육 형성독일1. 초등의무교육제도의 수립①1713년 - 5세부터 12세까지 아동을 의무적으로 취학케하고, 가난한 집 자제에 대한 수업료의 면제와 학날의 문법학교의 상당수가 김나지움으로 지정됨)교육과정의 변화( 고전어와 고전중심의 교육에서 모국어, 현 대 외국어, 과학교육을 강조)-초등교육의 개편 : 학교를 국가 관리하에 두려는 노력은 주로 중등학교를 대상으로 이루어 졌으며 초등학교의 개편은 그다지 큰 성과가 없었다.④ 복선제 정착⑤ 1918년 단선형 통일학교 등장: 1918년 독일의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제정한 바이마르 헌법으로 인하여 이전의 복선제가 초종파, 초계급의 단선형 통일 학교로 변경프랑스1. 근대적 교육개혁 운동① 생 피에르- 교육개혁안 : 교육은 국민전체의 복지향상을 위한 것으로 국가의 통제를 교육분야에서 넓히기 위해 내무부 상설기구로 ‘교육국’ 설치를 주장② 샬롯테의 교육개혁- 제수이트 교단의 추방(1762)- 국가교육론 : ‘교육은 국가의 일이며 , 국가의 어린이는 국가의 구성원에 의해 양육되어야 한다’ ? 국가교육체제 수립 천명2. 프랑스 대혁명기의 교육개혁① 프랑스 헌법의 선언- ‘모든 시민이 필요로 하는 교육기관에 대해서는 무상의 공교육 제도를 조직한다’ (1791년)② 콩도르세의 공교육안- 공교육에 관한 5개의 각서 : ‘공교육은 민중에 대한 사회의 의무’- 공교육의 일반 조직에 관한 보고 및 법안 : 민주적 교육체제의 선언인 헌법에 기초하여 계급과 성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할 것을 주장.3. 나폴레옹의 교육개혁①중등학교 이상의 개혁에 초점 ? 반면, 초등교육에는 무관심②중등학교와 대학에 대한 공영화 : 교육행정기관인 ‘제국대학’을 설치하여 모든 교육기관을 강력한 국가 통제하에 두었다.③학제-초등학교 : 읽기,쓰기,셈하기만 가르치는 정도. 중등과정과는 독립적.-중등학교 : 국립의 리세, 공립의 꼴레쥬, 앵스티튜송 사립의 빵숑 등이 있었으며 주로 역사, 수학, 논리학, 자연과학을 교육.-대학 : 학부가 존재 (신학부, 법학부, 의학부)4. 초등의무교육제도의 확립① 1833년 초등교육법 - 기조법 : 이 법에서는 공립과 사립 두종류의 초등교육을 모두 인정하였으며 공립로 제공
< 리포트 - 민주주의와 시민의식>현대 민주시민의 자세와 역할학 과 : 유아교육과학 번 :성 명 :제 출 일 : 2007.5.1담당교수 :- 목 차 -Ⅰ. 서론 - 시작하는 말Ⅱ. 본론1. 현대 시민의 특징2. 우리나라 시민 사회의 역사3. 시민의 참여로 발전하는 시민사회4. 민주 시민의 자질(자세)과 역할5. 민주 시민이 따라야 할 생활 원리Ⅲ. 결론 - 끝맺는 말Ⅳ. 참고문헌시작하는 말21세기 글로벌 다문화 사회는 인류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과학기술 및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생태계의 교란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을 받고 있고, 국제화의 진전 가운데에서 내셔널리즘과 인터내셔널리즘의 관계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 의해서 그 어떤 정치 형태보다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급변하는 사회와 발맞춰서 우리 민주시민들이 해야 할 과제도 많이 있다. 시민은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면서 의무를 다하고, 공공의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책임 있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사회에서의 그 역할이 중요하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 시민들이 참여를 시작하였고, 자유와 권리를 누리는 다수의 시민들이 공공의 결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사회가 바로 시민사회이다. 시민사회의 주체가 되는 시민은 정부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 또한 해야 한다. 본론에서 우리들이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자세와 역할에 대해서 알아보겠다.1. 현대 시민의 특징현대의 시민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특징은 과거에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뭉쳐서 노력하였고 또한 이를 쟁취하는데 성공하였던 과거의 시민들의 특징과 달리 시민들 간의 연대, 즉 모두 모여 함께 뭉치고 협력하는 것을 통하여 공동체에서의 더 나은 삶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내사회 혹은 심지어 국제사회에서 더 민주화되어진 세상, 더 풍요로운 세상, 종교를 포함한 여러 이데올로기들에 대한 각자의 믿음의 자유가 보장되어지는 세상, 그리고 자연재해 혹은 어느 특정한 인간에 의한 테러 범죄나 전쟁 등의 재해 등으로부터 더더욱 안전한 세상 등을 시민들 간의 연대를 통하여 추구하게 된다. 즉, 이러한 현대 시민사회의 공통 이념은 인간의 존엄성이 보장되어지고, 어떠한 인간이든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혹은 신체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혹은 학습능력에 이상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가축처럼 취급받지 않고, 인간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되어지며, 더 나아가 자신의 재산이나 가족구성원이나 신체 자체가 부당한 이유에 의해서 빼앗기거나 구속당하거나 혹은 생명을 잃거나 하지 않는 정의로운 공동체가 이루어진 세상을 추구하는 것이다.2. 우리나라 시민 사회의 역사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이에 벗어나지 않는다. 시민 사회의 출발은 바로 광복 이후에 민주주의를 국가 이념으로 삼으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시민사회가 건설된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에 의한 독재정치,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되어진 정치, 정의로움이 없는 사회상황 및 경제적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사회상황 등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4.19 혁명이 이루어졌다. 이 후, 경제적 어려움은 어느 정도 해소되기 시작하였으나, 자신들만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의한 권위주의적인 통치체제(권위주의 정권)에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시민들의 활동은 계속되어졌다. 다음으로 1970년대의 유신 체제에 대해서 반대 운동을 벌인 것이다. 1980년대에도 시민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는데 여러 민주화 운동들이 그것이고, 1987년에 이른바 6.29 선언 등이 이루어지면서 민주화는 급속하게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까지 시민 단체 활동으로 민주적인 시민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민들 스스로가 개인적으로 혹은 시민단체(NGO) 등을 통하여 활동하면서 정치, 경제, 국제사회, 국내사회, 문화, 환경, 등 여러 사회 분야에서 점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시민 사회 역사의 특징이라면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성과를 이룬 것이다.3. 시민의 참여로 발전하는 시민사회시민사회는 시민들의 참여로 발전하고 변화한다. 그리고 시민은 참여를 통해서 사회의 주체로 정립된다. 주인의식. 참여의식은 시민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볼 수 있다. 시민이 참여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그 예로 1987년에 시민들의 대통령 직선제 요구를 한 것으로 직선제가 개헌되고 각종 민주적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을 들 수가 있다. 또한 시민들의 동강 댐 건설 반대 요구가 1997년 있었는데 이것의 결과로 동강댐 건설이 백지화 되었고 정부의 정책과 환경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전환되었다. 그밖에도 많은 예가 있다.참여의 형태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적인 참여방법은 선거에 참여하는 것과 정부 기관에 청원하는 것, 그리고 신문이나 잡지 등에 투고하는 것을 들 수 있고, 집단적인 참여 방법으로는 이익 집단이나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것과 시민 단체 활동을 통해서 참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시민들은 여러 형태로서 참여를 하며 시민 사회를 발전시킨다.4. 민주 시민의 자질(자세)과 역할시민사회의 형성은 시민들의 자기 권리에 대한 의식, 혹은 자신의 재산과 생명 등의 “내 것”을 지키기 위한 의지의 생성과 자기가 속한 사회 공동체 및 그것이 처한 문제들 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져 왔다. 그리고 이는 시민들이 자신들이 처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서 발전하여 왔다. 결국, 시민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들 모두가 연대, 즉 힘을 합쳐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터득하게 되었고, 또한 자신들이 뭉쳤을 때 생겨나는 막강한 힘에 대해서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즉, 이렇듯 시민들은 각자가 문제해결을 위한 “뭉치기 활동”에 참여함으로서, 사회의 주체로서 떠오를 수 있었으며, 이 결과 이들은 시민사회를 발전 및 변화 및 개선시킬 수 있게 되면서, “시민참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말 그대로, “시민들의 참여 의식”은 시민들 개개인에게 요구되어지는 시민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인 동시에 시민사회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인 것이다.참여의 회피, 무임승차 그에 따른 결과로 시민들 중 거의 대부분이 시민의 참여가 시민사회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막상 시민의 일원으로서 참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나 하나쯤이야”, “귀찮아서”, “어차피 누군가 대신 할 텐데”, “뭐 나까지 힘들게 왜 나서”, 심지어 “어차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등의 생각을 하면서 다른 시민들이 자신들의 문제까지 해결해주기를 바라면서, 막상 자기 자신은 그 대가만을 누리기를 바라는 말 그대로 “무임승차”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만약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인 시민들 모두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이미 참여한 시민들의 힘만으로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며, 이는 결국 바로 그러한 무임승차를 노리고서 참여를 하지 않은 시민들도 당연히 포함하여 시민들 스스로의 불편 및 고통 등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그 누구라도 지쳐서 자신이 지금 실시하고 있는 시민사회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중단할 것이며, 그 결과 과연 앞으로 누가 나서겠는가. 그렇기에,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시민인 “나”의 참여는 나 자신과 다른 시민들 및 전체 시민사회라는 공동체의 발전 등 모두를 위하여 중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 모두의 자발적인 참여와 동참이 시민 개개인 자신들과 시민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