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행복한 시간- 공지영 著이름 학번나는 나 자신이 행복에 겨워 죽을 것 같았다가도, 또 불행에 겨워 죽을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과 나의 기분, 그리고 비교하는 대상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하다. 문득 TV를 보다가 양친을 잃고 힘들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볼 때 무척이나 측은한 마음을 느끼면서도 나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건강하게 학업에 매진할 수 있는 나를 행복하다고 여기는 한편, 무한해 보이는 농장을 소유한 미국 남부의 대주주가 그다지 큰 노력 없이 부를 쌓고 호위호식하며 한가로이 취미와 여가생활에 몰두하는 것을 볼 때는 우울함을 느끼며 잠시나마 내 생활을 되돌아보며 한숨을 짓기 마련이다. 내가 읽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은 단순하게 본다면 언감생심으로 전자(前者)와 같이 불행한 경우와 자신의 비교를 통해 연민과 행복을 얻어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서로 확연히 다르면서도 유사한 점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은 과연 그 상황에 처하여 진정으로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정, 윤수라는 두 주인공은 처음부터 확실히 다른 인생을 살았다. 유정은 여러 번 자살을 결행할 만큼의 마음의 짐을 지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 범인(凡人)들이 부러워할만한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가수생활로 많은 인기를 얻었을 만큼의 외모와 많은 재산, 그리고 서른의 나이에 대학교수라는 직위에 있는 엘리트였다. 하지만 윤수는 반대의 경우였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고 아이들을 때리고 어머니는 이에 못 이겨 집을 나갔다. 동생 은수가 초등학생이 되기도 전 아버지는 농약을 마시고 자살하고 동생은 시력을 잃어 보육원을 전전하다 어렵게 만난 엄마마저도 두 형제를 외면하자 그은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 스물일곱의 나이에 사형수가 된다. 이렇듯 전혀 다른 삶은 살던 두 사람은 사형수들에게 희망을 베풀고 있는 고모인 모니카 수녀의 권유로.윤수는 누가 보더라도 불행한 경우로써 그가 불행한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불행의 씨앗이 되는 공통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바로‘부모님’이다.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는 몹시 사이가 나쁘고 아버지 이야기는 아예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이유만으로 그녀의 부모님이 부모자격조차 없는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여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어린 게 얼마나 꼬리를 쳤으면..’하고 냉정하게 말하고 사춘기 여중생의 고민이자 걱정거리를 일언지하에 잘라버리며 묵살한다. 그 이후 유정은 비뚤어지기 시작해서 세 번 씩이나 자살을 시도하고, 자신의 주위 환경이 무척이나 좋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삶의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만약 15살 때의 유정에게 어머니가 마음에 없는 말일지라도 다독거려줬더라면, 자기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오히려 그녀는 보호와 위로가 필요했을 텐데 화를 내지는 못할망정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사랑스러운 딸에게 해줬었다면 그녀는 불행하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등을 돌리더라도 끌어안아줄 수 있는 한 사람은 부모여야 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주위의 눈을 심하게 의식한 채 딸의 고통을 외면했다. 사실 우리나라 같이 유교적 정신이 널리 퍼져있는 곳에서는 성(性)문제,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대단히 심각한 경우가 된다. 서양에서는 자신의 딸이 성폭행의 피해자가 되면 부모는 아이를 달래주고 가해자를 찾아내서 담판을 지으면 법적뿐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아무런 하자(瑕疵)가 생기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경우는 다르다. 많이 서구화가 된 오늘날에도 성폭력 문제는 대단히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단순히 가해자를 찾아내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완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성폭행 피해자’라는 결코 숨겨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치심을 느끼고 주위의 힐난의 눈초리를 받기 마련이다. 그녀게 부모로서 역할의 끝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자신의 생각을 아무 말도 배려도 없이 조용하게 실행한다면 자녀는 그 행동을 납득하지 못한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중학생 어린애에게 ‘너무너무 화가 나서 오빠를 혼내주고 싶지만, 사회적 이목이 있으니까 조용히 넘어가자’라는 말은 불필요한 말이 아니고 꼭 필요한 말이었다. 어떻게 사랑스러운 딸아이 에게 그토록 잔인한 일을 상의 한번 없이 덜컥 실행할 수가 있는지, 어떻게 딸아이의 자아를 그토록 무시할 수 있는지 부모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웠다. 그녀의 어머니는 부모의 중요한 덕목인 민감성과 공감(共感), 조망(眺望) 능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부모가 이렇게 단지 배를 채워주는 역할 이외에 자식을 거추장 스러운 존재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으면 그 부모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윤수도 어머니도 없이 자식들에게 손찌검뿐인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버지밖에 없었지만 그의 유년기는 그의 생각에서도 불행뿐인 삶은 아니었다. 그는 동생인 은수가 있었고, 어머니가 언젠가는 돌아올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으며, 항상 술만 마시고 때리는 아버지 아래서 그는 어려운 생활에 대한 인내를 배울 수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자살과 동생의 실명, 계속되는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는 어머니와 하나뿐인 피붙이인 동생 은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어렵게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녀는 그와 그의 눈먼 동생을 차갑게 내몰았고 그들은 서로를 의지할 뿐 더 이상 그 어디에서도 마음의 쉴 곳을 찾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어려운 생활 때문에 동생 은수가 죽자,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바라기보다는 인간관계, 특히 혈연관계에 대한 애착이 너무도 절실 했을 텐데,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기본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다는 것은 그가 춥고 배고픈 것보다 더욱 더 가슴 아픈 일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이렇듯, 이 둘은 너무나 다르면서도 세상에 태어나 누릴 한 맥락마다 조금씩 소개되는‘Blue Note’는 윤수가 태어나서 사형을 당하기 전까지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의식주의 불편함이 전혀 없던 유정의 경우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도 아닐뿐더러 그녀같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도 힘든 성폭력이라는 고통에 시달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그녀를 이같이 폄하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도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생각하지 않은 성격이기에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또래의 친구들 같지 않은, 여자에게만 정숙하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남자 또한 조심해야 한다는 개방적 이면서도 보수적인 소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문제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배를 주려본 적이 없으며 필요한 물건들을 사지 못한다거나 돈 문제로 어떤 갈등이 생긴 적도 없다. 추운 겨울에 모니카 수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10,000원 안팎의 두꺼운 옥색 죄수복을 겨우 돈 만원이 부족해서 사 입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객관적으로 판단해 보면 그녀는 Maslow의 5단계 욕구에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Physiological Needs)와 안전의 욕구(Safety needs)의 발판을 마련해 놓은 상태에서 자신은 단지 어렸을 때 친척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어머니는 그 일을 감싸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를 질책하고 몰아 붙였다는 이유로 나머지의 소유?사회인정 까지 모두 획득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사랑과 자아실현이 되지 못했다고 하여 심한 자기불만족에 빠져 있는 어린아이 같은 이기주의자일 뿐이다. 가까운 지인에게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는 사실은 분명 하찮은 문제는 아니지만, 꼭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아동기에서 청소년기 사이에 가슴속에 묻어두어야 할 정도의 상처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적을까. 그보다 더한 아픔을 가지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했을 리는 없다. 물론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를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윤수가 사형당한 후,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가 누워있는 병실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은 ‘당신을 용서하겠어요..!’였다. 평소에 대화도 나누지 않고 있는척없는척 어머니와의 관계를 거의 단절하고 있던 그녀의 입에서는 고작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하겠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이런 그녀의 행태(行態)를 느끼며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진실로 가슴이 아팠다. 그녀의 행동은 앳되고 어수룩하고 어른스럽지 못했지만 감히 나는 그녀의 행동에 화를 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이 책의 어느 부분을 보고 감명을 받는 것인지 궁금했다. 단지 마음에 안정을 찾고 서로에게서 사랑을 발견한 두 사람이 사형이라는 제도 하(下)에 헤어져야만 했던 슬픈 운명만을 가슴에 새기는 것일까. 윤수의 삶도 정말 가슴을 찡하게 했지만 유정의 삶은 삐걱거리는 금은보화를 가득 실은 수레바퀴에서 나사하나가 빠져 망가져버린 꼴이었다. 돈이 많고 꿈이 큰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의 환경을 잘 받아들이고 정말 표리부동하지 않은 행복하고 당당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불가능했다. 또한 그녀는 삐뚤어졌으며 자살까지 시도했다. 또한 유정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 바로는 그녀가 다른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점이다. 그녀가 다른 성격과 심리를 가졌다면 어떠했을까. 책의 내용에서와 같이 민감하지 않고 낙천적인 사람이었다면 쓰라린 아픔이 있었다 하더라도 아픔을 딛고 주어진 자신의 환경을 백분 활용하여 행복해졌을 테고, 더더욱 예민한 성격이었다면 그녀는 사촌오빠의 성폭력에 휘말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어머니에게마저 버림받은 듯한 기분을 버리지 못하고 투신(投身)하였을 수도 있다. 유정의 삶을 보며 너무나 가슴 아팠던 점은 이런 성격의 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더라도 그녀가 미워지지 않고 불쌍히 여겨진 이유였다.
저는 집이 경기도이고 2학년 때 학교 근처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2학년 재학기간중에 장학금을 반액 받게 되어서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고 자취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취방을 구해 사는 것이 기숙사에서 사는 것과 그렇게 많은 차이가 나지는 않지만 큰 부담없이 자취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장학금을 받아 학교 또한 휴학하지 않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저와 식구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1남 1녀 중 장남으로 위로 누나가 있습니다. 누나도 대학생인데, 제가 대학 입학을 하는 바람에 등록금이 빠듯하여 1년을 휴학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등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서 휴학을 하게 되는 것은 요즘 어려운 경기에 저희집같은 중산층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는 아르바이트도 하며 등록금 마련에 조금 보탬이 될 수 있었지만 적은 액수였기에 그리 많은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내년학기에는 제가 휴학을 하게 될 것 같기에 반드시 장학금을 받고 싶습니다. 지금 가정형편상 집에서 마련할 수 있는 등록금은 한사람 몫을 내기에도 넉넉하지 못합니다. 내년에 학교에 가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누나는 어렵게라도 내년 학기 등록을 할 수 있지만, 저는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면 휴학이 불가피합니다. 겨울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더라도, 등록금의 1/4정도 밖에 구할 수 없습니다. 학교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 겨울방학 때는 제 나름대로의 시간도 가지고 싶고, 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꼭 장학금을 받아서 등록금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고 싶습니다. 1학년 때 동아리 활동과 친구들을 핑계삼아 미처 열심히 하지 못한 공부도 2학년이 되어 학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열심히 하였습니다. 이렇게 2005년을 2학년으로서 알차게 보냈지만 3학년이 되어 학비가 마련될지가 걱정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위로 누나가 한명 있기 때문에 집에서 저의 학비만을 마련하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누나는 제 대학입학 때문에 1년이나 학교를 휴학하였었고 저도 그점을 너무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제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겠지만 부족한 제 힘으로 어느정도의 학비를 벌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자취하는 방도 아직 방세를 절반밖에 내지 않은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장학금을 받아 학비와 여러가지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여, 부모님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 수 있다면 3학년이 되더라도 착실히 학업에 매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Singing in the rain이름 학번언젠가 ‘출발! 비디오여행’ 이라든지 ‘주말의 명화’ 에서 본 듯한 Singing in the rain은 부모님께서 연애시절 보셨다던 영화 벤허나 Sound of music을 생각나게 하는 영화이다. 처음 도입 부분에서 돈의 아이러니한 소개나 마지막 부분에서 리나의 립싱크가 탄로 나는 부분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지루해져 버릴지도 모르는 뮤지컬 영화에 흥미를 더해줄 수 있었다. 또한 어느 영화에도 빠지진 않지만 멋진 남자주인공과 예쁜 여주인공의 사랑이야기도 춤과 노래에 더 큰 감흥을 불어넣어 주었다.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유렵의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미국은 자국 내에서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적 타격을 입지 않았다. 때문에 19세기 말, 사회배경ㆍ과학기술ㆍ경제 체제 등의 조건이 충족되면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헐리우드 영화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또 헐리우드 시스템과 함께 전문적 스타 시스템도 생기게 되었는데 이 영화는 이러한 1920 년대 말 헐리우드 영화계의 분위기를 잘 풍자하고 있다. 1920년대 중반에는 헐리우드ㆍ 스타 시스템과 더불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전환시기가 있었는데 배경은 이러한 전환 시기의 해프닝을 다루었다. 사실이 이렇다 하더라도 나는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발전 하는 전환점을 크게 보지 않고, ‘목포는 항구다’ 라는 영화의 배경이 목포라는 것처럼 영화 배경을 단지 한 영화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간과하여 보도록 노력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러한 옛 헐리우드 영화들을 직접 보기 전에 부모님께 말씀으로 먼저 들었으며,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인지 아닌지, 헐리우드 영화 시스템이 무엇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영화를 바라보니 크게 분석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영화로써 몰입할 수 있었으며 뮤지컬 영화의 진수인 멋진 노래와 역동적인 춤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돈과 캐시의 이완과 긴장의 연속인 흥미진진한 사랑이야기로 빚어지는 감미로운 노래, 너무나 유명한 돈이 비를 맞으며 현란한 춤을 추는 장면들을 이것저것 따질 겨를도 없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크게 보았을 때 내가 가장 깊게 느낀 점은 이 영화가 요즘 영화들이 줄 수 없는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다는 점이다. 천편일률적인 헐리우드 영화지만 1940~50년대의 영화라고 생각하니 정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고, 다소 유치하면서도 흥미로운 내용 구성과 볼거리는 나에게 절로 나오는 웃음과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Blade Runner이름 학번제목도 처음 들어보는 너무나 생소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레이션이 끝난 후 영화가 스크린 위에 펼쳐지자 낯익은 듯한 화려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Singing in the rain이나 馬夫처럼 옛날 영화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오래됐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약간은 고풍적인 영상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장면 한 장면이 의외였다. 비행선, 번쩍거리는 건물들은 터미네이터를 연상시켰다. 인간과 똑같은 복제인간이 등장한다는 점과 지구가 황폐화되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흡사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보다 쉽게 영화를 볼 수 있었고 잘 아는 영화인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주인공 데커드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는 다른 행성을 개척하기 위해 만들어진 4년 수명의 복제인간들을 제거하는 일을 수행하고 있었다. 처음 등장한 그는 한 남자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후로 최신형 인조인간인 레이첼을 만나기 전까지 그가 하는 일에 대하여 전혀 회의감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레이첼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판명한 후부터 변화를 보인다. 그가 복제인간인 레이첼을 사랑하게 되어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인간과 완전히 똑같은 외형을 갖춘 복제인간을 거리낌 없이 없애는 데에 대한 자괴감에서 그런 것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지 그는 강한 자책감과 회의를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의 강한 회의감은 마지막에 복제인간이 자신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그를 죽이지 않고 살려줌으로써 극에 달한다. 그래서 결국 그는 지구상의 마지막 한명의 복제인간인 레이첼을 죽이지 못하고 함께 떠나게 된다. 나는 처음부터 복제인간에 대한 단순한 제거작업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수명이 4년이라면 머지않아 곧 스스로 죽을 것이고 타행성에서 돌아와 대단히 난폭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없는데 왜 굳이 죽이려 하는 것일까? 그들이 살인은 저지르고 우주선을 탈취하여 지구로 돌아왔지만 죽이지 않고 가둬두기만 하더라고 괜찮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데커드가 레이첼을 사랑 하게 되었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들이 외형적으로 얼마나 보통 사람들과 닮았는지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이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심지어 ‘제거’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인권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의심스럽게 만든다. 이러한 사실은 터미네이터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미래와 과거와의 왕래라는 점을 강조하여, 사실성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너무 많은 스토리가 전개되어 뒤죽박죽이 된 듯한 느낌이다. 1980년대 SF영화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미래의 대한 예지적 배경에 흥미로운 스토리를 더하다 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영화의 사회학적인 관점을 반대로 구성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SF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인간과 똑같은 복제인간에 대한 탄압을 통해 그 당시 사라져가던 인권존중사상을 고무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