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실체와임란시 운영실상Ⅰ. 머리말Ⅱ. 거북선의 실체Ⅲ. 임란시 운영실상Ⅳ. 맺음말Ⅴ.참고문헌과 목 : 바다에서 본 동아시아의 역사담당교수 : 김 병 곤 교 수 님학 부 : 연극학부학 번 : 2009113089제 출 자 : 이 재 인제 출 일 : 2009년 12월 07일 월요일Ⅰ. 머리말조선이 개국한 지 딱 200년째인 1592년에 발생한 임진왜란은 17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근대 수백 년 간 동양에서 일어났던 전쟁 중 가장 대규모이자 격렬했던 당시 동북아 삼국(조선, 일본, 명나라) 이 모두 참전한 국제전이었다. 7년간에 걸친 이 동아시아 국제전은 조선의 최후 승리로 끝이 났다.우리들은 대부분 임진왜란이라는 말을 들으면 이순신 장군의 해전 연승을 떠올리고, 이순신과 함께 거북선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며 임진왜란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 이다.이번 레포트를 통해 먼저 거북선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들과 실체를 알아보고자 한다. 거북선에 대한 긍정적인 사실들뿐만 아니라 대부분 알지 못했던 부정적인 점이나 잘못 알려져 있는 것에 대한 통찰을 통해 우리들 스스로가 거북선에 대한 새로운 판단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시의 운영실상을 통해 그것이 전투에 얼마나 훌륭한 효과를 주었는지를 알아보려 한다. 조선이 최후 승리를 거두는 데에는 막강한 화력과 견고한 선체를 가진 수군 전함과 일본군을 압도한 조선군 무기체계가 매우 큰 저력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자세히 알아봄으로써 해양사 역사에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Ⅱ. 거북선의 실체1. 거북선은 조선 수군의 주력 전함이었다?판옥선. 일명 판옥전선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의 대부분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 전함은 거북선밖에 없었던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사실상 조선 수군의 주력전함은 판옥선이었으며, 이 판옥선의 위력으로 7년 전쟁은 조선의 승리를 이끌었다. 거북선 척 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한데, ‘거북선’ 이라는 다.'- 선조수정실록 25년 5월 1일조.'위에는 판자를 덮고 판자위에 십자모양의 길을 내어 사람이 다닐 수 있게 하였다. 그 위로는 칼과 송곳을 꽃아서 사방으로 발 붙일 곳이 없었다. 앞에는....(이하 하략)....'- 이분(李分)의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아래의 사료만이 유일하게 '철갑'을 언급하고 있다.'거북선은 철갑과 같이 단단하여 아군의 철포(조총)이 어떻게도 피해를끼칠 수가 없었다.'- 정한위략(征韓爲略) : 한반도 침입에 관한 일본의 사료.철갑선이 아니라는 근거는 우선 기술적인 점에 있다. 당시 철에 송곳을 붙이는 용접술이 없었다는 점이다. 또한 철판에 스는 녹에 문제가 있다. 당시 페인트나 코팅재가 있었을 리가 없으며, 바닷물에 적셔진 철판은 담수에 젖은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녹이 슬고 철판이 썩는다. 거북선의 나무 뚜껑 위에 씌운 철판은 배의 무게를 생각하여, 두꺼운 것이 아니라 아마 2~3mm 정도의 얇은 철판으로 장갑을 하였을 것이고 녹을 방지하기 위하여 기름 등을 칠했다 하더라도 철판은 바닷물에 금방 시뻘겋게 녹이 슬고 금방 썩었을 것이다. 이는 합금술이나 부식방지기술의 발달이 동시에 이루어져 쇠가 소금기에 부식되는 것을 막아주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거북선은 본래 나무로 만들고 도색을 할 때 진하게 해서 왜군에게 위협감을 준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또 다른 증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장계 중에 새로 만드는 전함에 설치할 지자, 현자 총통을 만들 재료가 부족하여 쇠와 화약을 청하는 장계가 있다. 당시 몇 백 근밖에 안 나가는 대포도 만들 쇠가 없어 벼슬을 주거나 면천을 해주는 것이 어떠냐는 것인데, 거북선 한 척에 덮을 쇠는 최소 수 톤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그런 쇠가 있을 리 만무하다.또 한 가지 의문점을 들자면, 거북선은 일반 전함이 아니라 특수 제작된 돌격선으로써 적에게 곧장 돌진하여 적의 진영을 혼란에 빠뜨리고 적장이 탄 함선을 최우선으로 요격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빨라야 거북선 제작 건의를 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은 것이다.그러나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의 거북선을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이미 왜적을 막기 위해 특이한 구상법으로 귀선이라는 신기한 배들을 만든 것을 이순신이 이어받아 그 위에 보다 더 훌륭하고 튼튼하게, 혁신적인 막강한 전투함으로 재단장한 것이다. 거북선은 이순신의 최초 발명품은 아니었지만, 거북선의 혁신가라고 할 만하다.4. 거북선의 머리는 들락거렸다?우리는 거북선하면 먼저 거북 등위로 목을 쭉 빼고, 입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머리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순신의 한 후손이 대대로 가지고 있었던 아래 두 개의 거북선그림은 같은 시대에 그려진 것인데도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가 있는 거북선과 머리가 없는 거북선, 그것은 거북선의 머리가 들락거렸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된 전라좌수영 거북선용머리 없는 거북선 그림임진왜란 당시 태자를 수행한 이덕홍이 왕세자,광해군에게 올린 상소문이 있다. 그 상소문에는『간재집』이라는 문집에 실린 귀갑선도가 있었다. 귀갑선도는 거북선을 간략하게 그린 것으로 거북선의 머리 부분을 쇠뇌(활을 응용한 무기)처럼 당겼다 놓았다 했다는 기록이 있다.통제영 거북선또한 가장 큰 통제영 거북선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거북선 목 부분 거북 머리와 등 사이의 뚜렷한 빈 공간, 머리와 등판사이 틈 결국 이것은 거북선 머리가 들락거렸음을 의미한다. 왜 이렇게 만든 것일까? 그 이유는 포를 쏘기 위한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용두구방대포'-용머리를 만들고, 그 입으로 대포를 쏘았다. ), (앙방현자철환 - 거북선 머리에서 현자총통을 쏘았다. ) 거북선의 머리에는 포를 설치하는 데에 필요한 각종 장치와 포환을 쌓아두는 공간 등을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성인 남자가 포를 쏠 정도의 활동 공간이 있었다. 그렇다보니 매우 컸던 용머리는 적들의 눈에 쉽게 띄었을 것이고, 그것은 곧 공격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또한 적의 화살이 가능케 해줬다.거북선의 구조는 어떠할까? 거북선 안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널찍한 2층 구조로, 배 밑과 갑판 위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그래서 갑판 위, 2층에 노군과 전투원이 같이 있도록 했다.그러나 이러한 2층 구조는 한 개 층에서 노를 저으며 포사격을 하기 어려워 전함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힘들다. 거북선은 노를 젓고 활과 포를 쏘는 전투 3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전함인데, 거북선이 2층 구조일 경우 2층에서 노군·사수·포수가 함께 활동해야 하므로 원활한 전투행위가 이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같은 공간에 포를 쏘면 포군의 활동과 포 발사에 따른 포성ㆍ포연으로 격군들이 노를 저을 수 없고, 노를 저으면 포수의 활동이 제약을 받아 포를 쏠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고유임무를 수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거북선이 전함으로서의 전투 기능이 약화 되어 적선과 전투가 벌어질 경우 결함이 생긴다. 결국 배가 정지 상태일 때만 포를 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거북선은 포를 쏘며 적진 속으로 들어가는 돌격함이었다. 임진왜란 당시의 기록도 전투원이 사면으로 포를 쏘면서 가로세로 오락가락하는 것이 나는 듯이 빨랐다고 전하고 있다. 이것은 거북선을 3층 구조로 본다면 가능하다. 노꾼과 포를 분리하여 3층엔 포수들의 전투장소로 쓰고 2층엔 노꾼과 함께 화살을 쏘는 사수를 배치했다. 1층엔 창고와 병사들의 휴식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2층 구조인가, 3층 구조인가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이러한 정황들을 볼 때 3층 구조였을 것이란 결론이 나온다.Ⅲ. 임란시 운영실상 - 전투수행능력1. 조선과 왜의 무기와 함선 비교당시 조선군 무기체계의 특징은 중화기 중심이었고, 현대 병기 용어로 바꾸어 부르면 대포·박격포·수류탄·기관총(연발총)·로켓포·다연장 로켓포 등 오늘날에도 군대에서 기본 화기로사용 되고 있는 무기가 거의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천자총통 (총통 가운데 가장 크다)대포류에는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발로 발사되는 다량의 신기전은 약간 무적의 무기처럼 부풀려져 있으나 명중률이 그리 높지는 않았기 때문에 밀집대형으로 모여 있는 적이 아닌 이상 정확히 명중시키기 어려웠다. 다만 불과 연기, 그리고 요란한 소리를 끌며 여러 발이 날아오는 신기전을 본 적들로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대열이 흐트러지거나 사기가 크게 꺾였다.신기전조선군 무기체계가 활과 창, 칼 등 재래식 무기 외에 이같이 중화기 중심이었던 데 반해 일본군 무기체계는 재래식 무기 외에는 조총 등 소화기 중심이었다. 그렇다면 왜 일본군은 조선과 같이 대포를 장착하지 않고 끝까지 조총만을 고집하였을까? 그 이유는 조선의 함선과 일본의 함선의 차이에 있었다. 우선 조선군 전함 판옥선과 거북선은 일본군 전함에 비해 월등히 견후장대 했다. 통나무 골조로 구조가 튼튼했고 선체의 판재로 두꺼웠다. 통나무는 목질이 질기고 단단한 소나무였으 며, 나무못을 이용한 조선함선은 바닷물에 잠기면 퉁퉁 불어 오히려 단단해져 충격에 강했다. 그러나 일본군 전함 세키부네, 아다케, 고바야 등은 판자가 얇고 재질이 약한 삼나무 등을 사용해 내구성이 약했다. 또한 쇠못을 사용하여 바닷물에 부식되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함선과 맞부딪히면 일본군 전함이 부서지는 것은 당연했다. 강도의 차이는 전투력의 차이도 가져왔다. 포의 장작 가능 여부에 있어서 일본 함선은 포를 발사할 때의 충격을 견딜만한 강도가 없어 포를 장착하기 어려웠다. 그에 반해 강도가 높은 조선 함선에서는 장거리포를 여럿 장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일본 수군의 가장 큰 장기인 단병접전을 펴기 위해 조선 함대에 다가설 때 조선 함대가 먼 거리에서 발사하는 포에 격파당하거나 부상을 입기 마련이었다. 또한 일본 함선은 선체의 밑 부분이 V자형으로 속도가 빨라 장거리 항해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 조선 함선은 U자형 형태로 속도가 느려 근거리 항해에 유리했다. 허나 일본 함선의 V자형 형태는 밑이 뾰족해서 암초가 많은 연안에서의 항해나 방향전환이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