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를 보고 나서성경개론 수업 시간에 영화 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가 개봉 되었을 당시에 흥행작이었던 거 같다. 종교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이 영화가 유명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영화를 볼 기회가 없어서 영화를 보지 못했었다. 나에게는 그저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침 성경개론 시간에 영화를 보면서 예수님이 십자가 못 박히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이 영화는 예수님이 로마의 군인들에게 잡혀가기 직전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겟세마네 동산에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자주 기도를 하러가던 공간이다. 예수님과 베드로, 요한, 야고보 이렇게 세 명의 제자와 함께 동산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홀로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다. 예수님은 앞으로 당할 일들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에게 고통스러운 일을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다. 그러나 기도가 끌날 무렵 예수는 모든 것을 조용히 받아 들리셨다. 예수님이 세 제자들에게 가서 말한다.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오고 있소”라고 그 말을 한 뒤에 유다와 로마 병사들이 온다.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도 처음에는 사람인 지라 큰 고통을 면하게 해달라고 하셨다. 그러나 결국엔 조용히 받아 들이셨다.로마 병사들에게 잡혀간 예수님은 대제사장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가 사는 궁전으로 간다. 그곳에는 이미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과 서기관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판을 서두르고 있었다. 내일 모레면 안식일이라서 유대인들이 아무 일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놨기 때문에 교활한 안나스는 빨리 일을 끝내려고 하였다. 이곳에서 예수님이 예견한 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정한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내일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이나 모른다 할 것이오’라고 했던 예수님의 말을 기억해내었다. 이에 베드로는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용서하셨을 것이다.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로마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데려간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죽여 달라고 한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사형시킬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예수님에게서 사형을 당할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빌라도의 부인도 예수님이 사형을 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하였다. 그 외침을 물결처럼 번져서 반란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빌라도는 반란이 일어나게 되면 자신의 총독 자리가 위태롭게 되는 상황이었다.
“沈?의 봄”을 읽고 난 후 나의 견해를 말하자면 이 책은 환경파괴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이 많은데 너무 부정적인 사고라고 처음에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더 깊이 읽을 수록 이 책의 작가가 그렇게 하여서 라도 환경파괴에 대한 인간의 잘못을 인정하게 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려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글이 점점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책의 제목에서부터 환경오염에 대한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침묵의 봄!! 봄이 다가와도 동?식물이 조용하고 환경은 숨 쉬지 않고 새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용 중 지금까지 난 농약이 해로운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은 후 잘만 사용하면 우리에게 농약이 이로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농약은 우리에게 해로움과 이로움을 동시에 주고 있다는 말이 이 책 내용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서 농약의 해로움만 우리에게 직접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바람에 의해서 먼 곳까지 하얀 가루가 이동하여 살짝 스치거나 만지기만 하여도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 내게는 가장 충격적 이였다.그리고 책을 읽으며 환경오염에 대한 국가나 제도에 의해서 제약을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농약표지에다가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크게 써넣는 다면 농약을 사용하는 농부들이나 사람들이 조금 더 생각해서 농약의 사용을 줄이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 책을 읽으며 한없이 놀라며 반성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만행으로 인하여 자연과 동?식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다행히도 이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하여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책 마지막 부분에 가면 이 해결방안이 몇 개 나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고추나무로 인해서 생태계가 회복되는 거였는데 자연의 힘인 천적을 이용하여 살충제 같은 것의 사용을 줄이는 거였는데 책을 읽으며 계속 내가 생각했던 생각과 일치해서 인지 더 기억에 남는다.그리고 마지막으논 같은 것들이었다. 살충제의 리스트 같은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들의 생활에 바로 이 화학약품이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비소는 처음으로 발견된 주요한 발암물질이다. 환경이 비소로 오염되어졌기 때문에 말, 소, 염소, 돼지, 사슴, 물고기, 벌 등이 병에 걸려고 죽은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이 있는데도 비소는 아무렇게나 사용되고 있다. 국립 암 연구의 휴퍼박사 「비소 살충제를 뿌리고 있는 사람들을 본 사람은 누구든지 그 무서운 독약을 아무런 주의도 없이 마구 사용하고 있는 그 무신경적인 태도에 놀람을 금할 길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러 가지 살충제는 다음과 같이 대별할 수 있다. ⑴「유기염소화합물」이라고 하는 DDT ⑵ 유기인산계의 살충제로 말라티온, 파라티온 등이다. 이 두 개의 공통점은 모두가 탄소원자를 골격으로 하여 구성되어있다는 점이다. DDT는 살충효과를 가지 있으며, 곤충전파 질병의 박멸, 농작물의 해충제거에 큰 힘을 가진 것을 발견한 스위스의 파울뮬리는 노벨상을 받았다. 기름에 녹인 DDT는 대단히 위험하다. DDT가 대개는 음식물에 묻어 들어온다. 체내에서 증폭되며 백배이상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아놀드 레만박사는 DDT는 흡수되지 않는 다는 선도 없고, 이 이상이면 흡수되어 축적된다는 선도 없다고 한다. 웨일랜드 헤이즈 박사는 각 개인에는 포화점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을 넘어가면 DDT는 배설되어 버린다고 한다. DDT나 또는 이와 비슷한 화학물질의 가장 무서운 것의 하나는 「먹고 먹히는」 식사의 연쇄반응으로 한 유기체로부터 다른 유기체로 옮아가는 것이다. 「DDT에 감추어져 있는 무서운 독성은 지금까지는 과소평가 되어져 왔다.」레이만 박사에 의하면 「클로르덴은 살충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고 유독한 것 중의 하나이다. 이것을 만진 사람은 누구든지 중독될 가능성이 많다」고 하였다. 랩타클로르라는 것은 클로르덴보다 4배가량의 독성이 더 심한 것이다. < 탄화수소계 중에서 가장 유독한 것 >은 ① 딜드린, ② 알 드린 ③ 엔드 린인데,구성원소인 무기물로 환원시키는 근본적인 물질이다. 만일 이 같은 미세한 식물이 없으면 흙, 공기, 생물조직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탄소, 질소 등 화학원소의 큰 순환운동은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식물의 잔해를 분해시키며, 숲 밑바닥의 먼지와 찌꺼기를 흙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구실을 하고 있다. 흙 중에는 수많은 생물이 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지렁이다. 다원은 「지렁이의 활동에 의한 재배, 토양의 형성 및 지렁이의 습성의 관찰」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이 책은 지렁이가 흙 형성에 기본적인 구실을 한다는 것이 지적되었다. 지렁이가 판 땅굴은 흙을 풍화시키고 배수가 잘되고, 식물 뿌리가 잘 뻗어나가게 해 준다. 지렁이 때문에 흙 박테리아의 질화작용이 잘 되며 흙이 부패되지 않는다. 유기물은 지렁이 소화기관을 통과할 때 분해되고 그 배설물에 의해 흙만 비옥해 지는 것이다. 생물은 흙에 의존하며, 거꾸로 이 흙은 생물 사회가 번영함으로써 살게 되는 것이다. 리덴, 헵타클롤, BHC(벤젠 헥사클로리드)가 흙에 투입되면 불과 2주간에 질화작용을 감퇴시킨다고 한다. BHC, DDT는 사용 후 일 년간이나 유해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 판명되었다. 언제까지나 흙을 오염시키는 고전적인 살충제는 비소이다. 그러나 1940년 중엽부터 유기합성 살충제로 바꾸었다. 앞으로는 작물을 심기 전에 흙을 분석하여 살충제의 함유 여부를 검사할 필요가 있을는지 모른다. 때로는 농작물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 실례로는 워싱턴 주와 아이다호 주의 홉프 재배 자들을 들을 수 있다. 한번 사용하면 그 무서운 잔류물이 언제까지나 흙에 남게 되므로 「인간의 사소한 잘못으로 비옥한 땅이 파괴되고 절족동물이 이 대지를 점령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6. 녹색의 지표 : 지구의 녹색 외투 “Earth's Green Mantle"에서는 이들 화학물질의 남용이 물질문명의 반대급부의 피해를 잘 보여주고 있다.초목이 없으면 인간도 죽을 수밖에 없다. 지구의 식물은 생명의 그물조직의 한 부분이다. 여기 중국에서 수입한 기생 말벌이 가장 효과가 좋았다. 땅속의 알풍뎅이의 유충을 발견하면 암컷 말벌이 이 지방에 정착하고 알풍뎅이 제거에 큰 구실을 하고 있다고 곤충 학자에 의해 확인되었다.8. 그러고 새는 울지 않고 : 노래하지 않는 새 "And No Birds Sing"미국의 많은 넓은 지역엔 새는 돌아오지 않고, 봄만이 오고 있다. 피일드 노우츠에서 「묘하게도 새라는 새가 전부 없어진 공백상태」라는 놀랄 만한 이변이 보도되었다. 네덜란드의 느릅나무병 제거를 위한 살포는 1954년 대학 구내로부터 시작되었다. 바아커 박사의 논문에서 이었다. 1958년 박사는 그의 논문 중에서 울새의 죽음과 느릅나무와 지렁이라는 복잡한 관계를 훌륭하게 분석하였다. DDT로 인해 울새의 생식 능력이 파괴된다고 한다. Olive-hacked, wood, hermit의 새 종류의 새는 그 우는 소리가 가장 아름다운 것들이다. 그리고 숲 밑 관목 사이를 헤매며, 낙엽을 쪼이며 먹이를 찾는 새들 노래하는 참새도 휘파람새도 느릅나무 살포약에 희생이 되었다. 약품 살포는 곤충뿐만 아니라 곤충의 제일 적인 새를 죽인다. 나중에 곤충이 재발 생될 때는 거의 이를 때가 많지만 이 곤충을 잡아먹을 새는 아무데도 없다. 울새의 울음소리 없이 봄만이 온다는 것이 얼마나 쓸쓸하고 흥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이렇게 새를 떨치려고 살포제 같은 것을 뿌리지 말고 이삭이 작은 종류의 옥수수를 심어 바꾸어 주면 새를 피할 수 있다고 하니 그러한 방법을 쓰는 게 좋을 듯하다.9. 죽음의 강물 : 죽음의 강 "Rivers of Death"은 인간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저지른 과실이 동식물 생태계를 어떻게 교란시키는가를 특정 지역의 조류와 여타 생물에 관한 구체적 데이터를 써서 예시한다. 예컨대 먹이연쇄를 통해 새들의 몸속에 축적된 살충제 성분은 알껍데기의 강도를 떨어뜨려 미처 부화하기 이전에 깨어짐으로써 멸종의 위기를 몰고 간다.캐나다 정부가 규모의 약품 살포 계획을 세웠는데 이 미라을 뚫는 것처럼 나서 죽을 때까지 무서운 화학약품에 조금씩 끊임없이 접촉한다면 언젠가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제는 독약의 새다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뜰을 가꾸는데 사용하는 살충제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살충제가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는 일체 말이 없다. 1954년부터 1956년 동안에 일반인의 지방 표본을 만들었을 때, 평균 5.3ppm 내지 7.4ppm정도의 DDT가 검출되었다. 그 평균치도 그 후 차츰 상승되었다고 생각되며, 직업상 살충제와 접촉하는 사람들의 체내 축적량은 그 보다 훨씬 위를 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수상의 DDT, 린덴 등의 살충제로 몇 번이고 소독하는 동안에 살충제가 포장지를 통해서 식품으로 상당량 스며든다. 오랫동안 창고에 저장된 식품일수록 오염도가 높다고 할 수 있다.독성이 적은 농약으로 바꾸도록 해줄 뿐만 아니라. 화학적 방법이 아닌 새 방법의 개척에 힘써야 한다. 어떤 종의 곤충을 습격하는 특수한 세균이 있으므로 이 세균을 잘 이용하여 곤충에 병을 발생시켜 제거하는 방법은 이미 캘 리포이나 주에서 시행되고 있다. 도 약품이 식품에 전혀 잔류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으로 곤충을 제거하는 가능성도 많이 있다. 지금까지의 방법을 버리고 대규모적으로 새 방법으로 바꾸지 않는 한 지금까지의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고 상식 있는 보통 사람이면 그대로 보고 참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고 보니 우리들은 보르지아 집의 손님보다 나을 것은 하나도 없다.12. 인간의 대가 : 인간의 대가 "The Human Price"은 고도의 산업화의 대가로 인체가 부담해야 하는 오염물에 의한 갖가지 증세를 사례별로 흥미 있게 다루고 있는데, 특히 신경계통을 교란시키는 심각한 증세가 주목된다.공업이 발전되면서 새로운 화학약품의 물결이 밀려오면서, 가장 중요한 공중 건강 문제에까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천연두, 콜레라, 페스트 등으로 인류가 떨었던 것은 바로 어제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간 전염병은 하나님의이다.
? 1. 줄거리필자는 “생명공학의 새로운 수단들은 궁극적으로 우리와 다른 생명체들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을 확립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간의 지배력을 의미하며, 우리들에게 우리들 자신과 후손, 세계의 비전을 만들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이다”라고 한다. 유전공학은 역사상 그 어떤 기술 혁명보다도 걱정스러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생물체의 유전적 암호를 재작성함으로써 수백만 년에 걸친 진화적 발전이 중단되는 치명적인 위험은 없는가. 인공 생물체의 창조는 자연계의 종말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복제 생물, 키메라, 유전자 이식 생물들이 우글거리는 세계에서 인류는 외계 생물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지. 유전공학적으로 처리된 수천 종의 생물체가 만들어지고 대량 생산과 거래가 이루어져서 방출되면 돌이킬 수 없는 생태계의 훼손을 초래하여 핵 오염이나 석유 화학 오염보다 훨씬 위험한 유전자 오염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생명을 특허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생명의 신성함과 본질적 가치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깊은 신념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가. 이러한 생명공학의 양면적 측면과 씨름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시험하게 될 것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유전공학을 대중적인 관심사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의 희망과 위험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생명공학 혁명이 제기하는 많은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알고 진지하게 토의해야 할 그 시점에 와 있다. 과거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생명공학 기술만큼 갑작스런 기술적, 경제적 기회와 도전, 그리고 위험을 가져온 기술은 없었다. 전 세계 농업이 역사상 큰 전환점을 맞을 것이다. 땅에서 식용작물이나 섬유용 작물을 재배하는 비용보다 훨씬 싼 비용으로, 옥내에 거대한 박테리아 탱크를 설치하고 그 안에서 조직 배양을 함으로써 식량이나 섬유를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새로운 유전자 이식, 박테리아, 바이러스, 식물, 동물들의 방출로 인하여 어떤 경우는 확산시킴으로써 지구 생물권을 파괴할 수 있다. 미래에는 유전공학 기술도 만들어진 생물 병원균이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인간과 동물을 혼성한 잡종을 포한한 일련의 키메라를 창조할 수도 있다. 유전자형에 근거한 새로운 유형의 악의적인 인종 차별이 출현할 수 있다. 개인, 인종, 민족이 점차 유전자형에 따라 유형화되고 고착화되면서 능력 본위의 사회가 밀려나고 유전자형에 따른 계급사회가 출현할 것이다. 결국 전 세계에 걸쳐 비공식적인 생물학적 계급 제도의 출현을 가져올 수 있다. 오늘날에는 매 시간당 3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동시에 세 가지 위기를 맞고 있다.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매장량 감소, 위험한 지구 온난화 가스의 축적, 생물 다양성의 꾸준한 감소가 바로 그것이다.유전자를 조작하고 변현하는 많은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유전자를 분리, 분류, 저장하는 새로운 방법들도 개발되고 있다. 그 새로운 수단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DNA 재조합 기술이다. 이 재조합DNA 기술은 서로 혈연관계가 없는 유기체의 유전 조직을 서로 봉합하는 데 이용되는 일종의 생물학적 재봉틀이라 할 수 있다. 유전공학 기술은 종이 가지고 있는 제한적 요소를 모두 비켜간다. 다시 말하면 이 새로운 기술을 이용한 조작이 그 종 단계에서가 아니라 그 종의 유전자 단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업 단위는 이제 더 이상 유기체가 아니라 그 유기체의 유전자이다. 과학자들은 이식 개념을 뛰어넘어 만드는 시대로 진행해 갈 것으로 기대한다. 이미 의간의 인체의 부위를 만드는 연구가 상당히 진전되고 있다. 이들은 라고 말한다. 과학자들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장애는 이라고 경고한다. 아직은 아무도 인간의 신경 세포를 자라게 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바야흐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자연을 개조하려 하고 있다. 그 러면서도 우리는 이에 대한 사전 준비가 거의 없으며 그 귀착점이 어디인지에 대한 논의조차도 없다. 그러나 다가오는 생명공학의 세기에는 생물에 관한 우리의 개념마다 생명의 창조와 자연의 작용에 관한 새로운 설명이 동반했다. 종의 기원과 발생에 관한 찰스 다윈의 이론은 1세기 이상 동안 자연, 인간의 본질, 존재의 의미에 관한 우리의 사상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다윈이 구축한 자연에 관한 이론은 모든 점에서 산업 시대를 뒷받침하고 있던 여러 가지 가설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자연의 개념은 항상 다음과 같은 큰 의문에 초점을 맞춘다. 즉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왜 여기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사실 인간은 자연과 생명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어떤 사회가 그 사회의 일상적 활동을 조직하는 방법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자연에 관한 어떤 개념을 충실히 고수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모든 문명은 자연 질서가 자신과 같은 편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자연에 관한 개념은 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인간과 환경과의 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자연의 개념도 변화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많은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각각의 우주론이 단순한 허구에 불과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문제는 과학과 기술을 찬성하느냐 또는 반대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과학과 기술을 찬성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그들은 종종 통합보다는 고립을, 결합보다는 분리를, 그리고 관리, 육성하기보다는 자연에 대하여 힘을 행사하거나 세력을 확장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생태계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생물 사회의 유대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다. 생물과학에 대한 접근 방법이 서로 다르므로 이들은 서로 매우 다른 방법으로 연구한다. 농업 분야의 연구는 더 큰 생물 사회로부터 공격받지 않고, 자체로서 잘 갖추어진 완전한 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의학 분야에서도 유사하다. 과학자들은 인간게놈 프로젝트에서 일련의 병을 유발하는 열성 유전자 형질과 유전자 소인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그 목적은 매우 정교한 유전자와 환경에은 유전병은 발병을 피할 길이 없으며 환경을 조절한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농업, 의학 기타 많은 분야에서 서로 다른 접근 방법을 가진 두 응용 과학 분야가 서로 보완적 관계를 이루면서 발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사람이 무엇을 찾으려고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보는 것도 다른 법이다. 물론 과학은 기술과 함께 발전한다. 우리가 만들어낸 도구는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능력을 증대시킨다. 그 같은 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능력을 행사할 때에는 항상 승리자와 패배자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를 위해서 마련된 어떤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때, 우리가 행사하고 있는 능력이 규모와 범위에 있어서 적절한가 또는 과도한가가 문제가 된다. 원자핵 분열과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것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업적이다. 이제 저물어가는 금세기가 물리학과 원자력 기술의 시대였다면 다가오는 새 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기술은 유전공학기술이 될 것이다. 잠재적 가능성이 매우 큰 유전공학 기술이 결국에는 폐기될지 모른다는 생각은 유전공학 혁명을 이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상상조차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유전공학 기술 중 일부를 폐기한다고 해서 현재 수집 중인 수많은 게놈 정보와 환경 정보를 다른 방법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술 그 자체의 이용을 찬성하느냐 또는 반대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이것이 문제가 된 적도 없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문제는 다가오는 생명공학의 세기에 우리가 어떤 종류의 생명공학 기술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과 생물들을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선택의 여지를 열어놓아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기술의 우선순위를 완전히 바꿔야 할지 모른다. 이제 유전공학 기술은 새로운 생물과학 분야에서 가장 강위를 차지하고, 유전공학 기술 중 어떤 것은1폐기하고 또 어떤 기술은 제한적으로 또는 최후의 선택 수단으로서만 이용하는 것이다. 생명공학 혁명은 역사상 다른 어떤 기술 혁명보다도 우리 개개인에게 좀 더 직접적이고, 강력하게, 그리고 밀접하게 영향을 줄 것이다. 이제 시장과 우리 생활 속에 새로운 기술들이 흘러들고 있으므로, 그 새로운 과학이 주는 편익과 위험에 관하여 훨씬 더 광범위한 토론을 벌일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토론에는 쟁점의 양측면을 대표하는 권위자들이나 전문가들 외에 사회 전체가 참여하여야 한다. 생명공학 혁명은 우리 생활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명공학 혁명은 우리들 각자로 하여금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가치들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즉 존재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궁극적인 의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바로 이것이 생명공학 혁명의 가장 큰 공헌일지 모른다. 그 나머지는 우리의 책임이다.? 2. 다른 전문가들 비평, 의견 정리유전자 계급`이 탄생할지 모른다경향신문 이대근 기자미국의 저술가 제레미 리프킨은 최근 번역 출간된 에서 21세기를 생명공학의 세기로 규정하고 `유전자 계급`이 탄생할지 모른다는 우울한 경고를 했다. 리프킨은 유전공학이 이미 과학자나 생명공학 회사에 맡겨 둘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음을 강조하며 그 위험성에 관해 세계가 진지한 관심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등 과학기술의 변화가 경제·노동·사회·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해온 그는 20여년전에도 이라는 저서에서 유전공학의 위험에 대해 기술한 바 있다. 당시 분자 생물학자, 정책결정자, 대중매체들은 「쓸데 없는 걱정」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그가 예견했던 일은 지금 대부분 실현되고 있다. 금세기의 연금술 생명공학은 우리가 별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 역사상 어떤 기술혁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 인간의 제도, 세상을 개조해 왔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생물의 정의, 인간의 본성, 자연에 대한 가정이 재고되고 성, 출생, 부모뿐 아니라 평등, 민주주의 .
? 1. 줄거리냉전이 끝나고 몇 년에 걸쳐 민족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의 상징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거꾸로 걸린 깃발은 과도기의 징후였지만 국기가 점점 높고 바르게 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이런 국기 혹은 고유한 문화 정체성의 새로운 상징물을 앞세워 행진을 벌이며 또 그것에 동원되고 있다.1부: 사상 최초로 세계 정치가 다극화, 다 문명화되었다. 경제와 사회의 현대화는 의미를 지닌 보편 문명을 낳지 못하고 비서구 사회를 서구화하는 데도 실패했다.2부: 서구의 상대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아시아 문명의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이 확대되고 이슬람권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슬람 국가들과 그 인접 국가들의 세력 균형이 위협받게 되면서, 비서구 문명들은 전반적으로 자기 고유문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3부: 문명에 기반을 둔 세계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문화적 친화력을 갖는 사회들은 서로 협조한다. 한 사회를 이 문명에서 저 문명으로 이전시키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국가들은 자기 문명권의 주도국 혹은 핵심국(core state)을 중심으로 뭉친다.4부: 보편성을 자처하는 서구의 자세는 다른 문명, 특히 이슬람, 중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국지적 차원에서는 주로 이슬람권과 비 이슬람권 사이의 단층선 분쟁에서 ‘형제국들의 규합’을 통해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상존한다. 분쟁을 저지하려는 핵심국의 노력도 두드러진다.5부: 서구의 생존은 미국이 자신의 서구적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자기 문명을 보편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서구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힘들 합쳐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문명간의 대규모 전쟁을 피하려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세계정치의 다문명적 본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유치하는데 협조해야 한다.탈냉전 시대에 사상 최초로 세계 정치는 다국화, 다 문명화되었다. 인류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문명과 문명의 접촉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치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전파력이 크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 빈부, 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종족 전쟁이나 민족분쟁은 한 문명 안에서도 여전히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상이한 문명에 소속된 여타 국가나 집단이 자기네 ‘친족국(kin country)을 돕기 위해 결집하면서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잠재력을 늘 지니고 있다. 탈냉전 세계에서 문화는 분열과 통합의 양면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있지만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던 민족이 다시 뭉치고 있다. 이념이나 역사적 상황으로는 통합되어 있지만 이질적 문명으로 구성되어 있던 사회는 소련,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처럼 다시 갈라지거나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 수단, 인도, 스리랑카처럼 극심한 긴장을 겪고 있다. 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협력한다. 유럽연합처럼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국가들에 토대를 둔 국제 기구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국제 기구보다 휠씬 원활하게 굴러간다. 45년 동안 철의 장막은 유럽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이 되었다.탈냉전 세계는 일곱 내지 여덟 개의 주요 문명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다.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은 국가들의 이익, 대결, 협력 양상을 규정한다.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국가들은 놀라우리만큼 판이한 문명들에서 유래하였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지적 분쟁은 판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간의 충돌이다. 정치 경제적 발전의 지배적 양상은 문명과 문명마다 다르다. 국제 문제에서 중요한 사안에는 문명의 차이도 들어간다. 장기간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 문명으로부터 비서구 문명으로 힘의 무게 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세계 정치는 다극화, 다 문명화되었다. 냉전 종식 이후에 전개된 수많은 사태들은 문명 패러다임에 부합되며 그 패러다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여기에는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의 중국의 지속적인 여괄, 일부 국가의 새로운 민주 체제 사례와 일부 국가의 실패 사례, 동아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군비 경쟁 들이 포함된다.서구는 지금 압도적 우위에 있고 21세기에 가서도 실력과 영향력 면에서 여전히 정상의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문명의 세력 관계에서 냉혹한 변화가 근본적 차원에서 서서히 일어나고 서구의 힘은 상대적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또한 옳다. 이러한 문명 차원의 세력 이동은 비서구 사회의 문화적 자긍심과 서구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확산시킬 것이다. 첫째, 그것은 완만한 과정이다. 서구가 부상하는 데는 400년이 걸렸다. 서구가 퇴장하는 데도 그만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1980년대에 영국의 저명한 학자 불은 “보편적 국제사회에서 유럽 또는 서구가 누리는 우위는 1900년 무렵 정점에 이르렀다.”고 주장하였다. 슈펭굴러가 쓴 책의 첫 권이 1918년에 나온 뒤 ‘서구의 몰락’은 20세기 역사의 중심 주체였다. 몰락의 과정은 금세기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한층 가속화할 수 있다. 둘째, 하강은 직선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서구의 쇠퇴 징후가 나타난 이후에도 하강선은 멈추었다가 다시 위로 솟는 서구의 힘이 일시적으로 증대하는 등 대단히 불규칙한 양상을 보인다. 서구의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는 강한 소생력을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문명들과는 달리 서구에는 세력 중심지가 둘이나 있다. 불이 1900년을 고비로 하강세로 접어들었다고 본 것은 서구 문명 중에서도 본질적으로 유럽이라는 성분이었다. 19010년부터 1945년까지 유럽은 자체분열을 겪었고 내부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셋째, 힘이란 한 사람이나 한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강압뿐 아니라 유도나 권고가 행동을 변할 수 있게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를 요구하는 측이 경제적, 군사적, 제도적, 인구적, 정치적, 기술적,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 국가나 집단의 힘은아지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서남아시아,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유아 사망률은 30년 전에 비하여 3분의 1이나 2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지역의 평균 수명 또한 비역적으로 길어졌다.서구의 생산력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또한 1920년대에 절정에 달하였다가 2차 대전 이후 확연히 줄어들고 있다. 1750년 중국은 전 세계 공산품의 거의 3분 1을 생산하고 인도는 거의 4분의 1을 생산한 반면 서구의 비중은 5분의 1에도 못 미쳤다. 1830년 들어 서구는 중국을 근소하게 앞서가기 시작하였다. 비이크로(Pual Bairoch)가 지적하듯이 그 후 몇십 년 동안 서구의 산업화는 비서구 사회의 탈산업화를 야기하였다. 총 생산은 서구의 질적 우위를 부분적으로 모호하게 남겨 둘 가능성이 있다. 서구와 일본은 첨단 기술 산업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이전되고 있으면, 만일 서구가 우위를 지켜 나가러 한다면 기술 이전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가 만들어낸 긴밀하게 얽힌 세계로 인하여 기술이 다른 문명들로 보급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서구의 노력은 점점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냉전 시대처럼 만인이 동의하는 강력한 단일 위협 세력이 사라진 지금은 기술의 수출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어 기술의 이전 저지가 어렵다.문화의 판세는 힘의 판세를 반명한다. 정복은 교역을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힘은 거의 예외없이 문화를 통반 한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한 문명의 힘이 팽창하면 동시에 문화가 융성하였고 그 문명은 막강한 힘으로 자신의 가치관, 관습, 제도를 다른 사회에 확산시켰다. 보편의 문명은 보편의 힘을 요구한다. 로마의 힘은 고전 세계의 한정된 범위 안에서 준보편 문명을 낳았다. 서구의 힘은 19세기에는 유렵의 식민주의로, 20세기에는 미국의 헤게모니 장악으로 표출되었고, 이 힘은 서구 문화를 세계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유럽의 식민주의는 막을 내렸고 미국의 헤게모니 또한 거대한 문화권으로 묶여가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 그 동안 서로 다른 문명으로 존재하던 기존의 문화권들은 과연 어떤 형태로 자리매김을 하게 될 것인가.우리 환경도 언제부터인가 이른바 도입종 또는 외래종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토종 물고기들이 블루길에게 서식지를 빼앗기는가 하면, 황소개구리는 뱀까지 잡아먹으며 우리가 갖고 있던 생태계의 질서의식 마저 무너뜨린다. 이 같은 외세의 침입은 결코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북미의 호수들은 온통 카스피해 원산인 얼룩무늬홍합에 의해 수로가 막혀 야단이고, 산야는 산야대로 극동에서 건너간 칡덩굴로 질식할 지경이다.그러나 이처럼 생물이 이동하며 정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 중에는 한 가지 우리가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다. 황소개구리나 칡덩굴 등은 대세가 아니라 예외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엄청나게 많은 생물들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하고 사라지는 것이 자연의 참모습이다. 그들 중 극소수가 무슨 까닭인지 모르나 고향보다도 타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따름이다.생물이 이동하듯 문명도 늘 움직여왔다. 다만 지금 더 크고 빠르게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문명이 만나는 과정을 단순히 충돌과 공존이라는 두 개념으로 정리할 수 있을지 자연을 연구하는 나로서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지나치게 단순한 이분법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지만 어디에선가 출발해야 한다. 이 책은 첫걸음에 불과하다.허연 (매일경제 기자)세계정치는 문화적 특성에 따라 재구성되고 문명공동체가 냉전시대의 낡은 블록을 대체한다. 즉 이념의 자리를 문명이 차지하고 그 문명의 단층(fault line)이 세계 정치의 갈등무대로 부상한다. 헌팅턴은 세계를 중화권, 일본권, 힌두권, 이슬람권, 크리스트교권, 라틴아메리카권, 아프리카권의 7개 문명권역으로 나눈다. 헌팅턴이 이야기하는 문명 패러다임은 각 문명국의 핵심국(core state)을 중심으로 각 문명이 이합집산을 거듭한다는 것. 그는 한반도를 서구권, 일본권, 중화권의 각 핵심국 사이에 존재하는 나라로
? 1. 줄거리로마인 이야기 제 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와 제 2권 한니발 전쟁. 제 1권 는 로마의 건국에서부터 로마의 왕정, 공화정에 이르는 로마 이해의 초석을 제공한다. 모든 국가의 건국 신화가 그러하듯이 로마의 건국 신화 역시 인간과 신의 접목으로부터 시작된다. 군신(軍神) 마르스와 왕녀이자 무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로마의 건국자라고 소개하는 이 신화는 곰과 호랑이의 얘기부터 시작되는 한민족의 건국신화만큼 별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민족의 신화는 인내의 苦(고)를 통해 인간이 된 곰과 하늘의 아들과의 합작품이었다면, 그들은 神(신)을 섬기는 무녀와 하늘의 경호자와의 합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들의 뿌리가 신적인 존재를 가진다는 우월감을 표시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뿌리를 창조한 것이 태초 이래 인간이 지속적으로 섬기고 있는 神(신)이라는 것을 강조하여, 그들은 영원히 보호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쌍둥이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7개의 언덕에서 권력 다툼으로 레무스는 도태되고, 로물루스가 로마의 건국하게 된 것이다(기원전 753년 4월). 여기서, 한 배에서 난 쌍둥이가 서로 죽고 죽이게 된 비인간적인 모습을 신화에 담은 로마인을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시오노는 '누가 왕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기가 어려웠다'를 그 이유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해, 고대 사회에서 유일무이하게 제국을 건설한 로마인은 제국을 있게 한 공화정의 장점을 피력함과 동시에, 영원할 영광의 제국에서 제왕의 타당성을 강조하고자 했을는지도 모른다."기원전 8세기부터 6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포강 이남의 이탈리아 반도는 북쪽의 에트루리아와 남쪽의 그리스로 크게 양분되어, 로마는 이 양대 세력권 사이의 골짜기에서 태어났다."로마는 위로는 에르투리아와 아래로는 그리스의 속국에 둘러싸여 서서히 성장해 나갔다. 강력한 세력권에서 목숨부지가 어려웠을 듯 한 로마는 에르투리아의 기술력과 경제력을, 그리스의 예술과 철학을 위치를 확립하고, 다신교의 종교개혁을 실행한다. 로마를 아는 데는 종교가 중요한 사항이다. 그들의 신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일신교가 아닌 그리스와 같은 다신교 체제였으며, 이 신의 역할은 일신교의 절대적인 존재도 아니며, 자신들의 윤리 도덕을 바로잡는 것도 아닌 삶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었다.따라서, 수호신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자신들은 지켜줄 수 있는 무언가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루마는 법률을 정비하여, 별것 아니었던 로마를 세계의 로마로 향해갈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다. 내실을 기한 루마에 이은 3대왕 틀루스는 사비지족인 알바롱가 공략을 통한 영역 확장, 4대왕 마르티우스는 다리를 건설하여 7개의 언덕을 요새화하였고, 이 길을 소금 길로써 이용하였다. 틀루스와 마르티우스를 통해서 로마를 타민족과 구별할 수 있는 특징적인 사항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들의 개방적인 사고를 통한 이민족의 흡수이고, 다른 하나는 한 걸음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느림보식, 하지만 한번 익힌 것은 확실히 다지기다."그리스인인 플루타르코스는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방식만큼 로마를 강대하게 만든 요인 없다' 고 했다."알바롱가 공략은 로마가 패민족에게 대해서 배타적이고, 탄압적이지 않은 관대한 정책을 펼침으로써, 그들에게 동화시켜 로마를 강성하게 만든 다는 것이며, 이것은 사비니족 이후의 로마의 변치 않는 전략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다음 왕인 타르퀴니우스에서 두드러진다. 그리스인 아버지와 에트루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이었던 그는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로마로 들어왔으며, 타고난 피보다는 인간의 능력을 중시했던 로마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이처럼, 로마인은 고대사에서 보이는 신분 중심적 사회에서 개인 능력의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했다. 이러한 점은 선왕들이 라틴계, 사비니계, 라틴계, 사비니계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다지 놀랄 만한 사항은 아니다. 로마인의 개방성은 알맞은 시대에, 알맞은 인재에게, 알맞은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타르퀴니우스와 세르비이하게 로마를 이해하게 하였으며,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의 패권을 차지하게 된 삼니움족과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그리스와 대결을 설명하였다.브루투스를 시작으로, 푸블리콜라에서 끝난 로마 공화정은 이 책의 제목처럼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다. 왕정을 버리고, 공화정을 채택하게 된 그들이 겪은 문제는 마지막 왕이었던 테크니우스와 에르트리아인과 관련이 깊다. 로마 성장의 스승이었던 에르트리아인은 공화정과 더불어 로마를 떠났으며, 이는 에르트리아인은 이젠 로마인에게는 적이었음을 뜻했고, 그들과 함께 떠난 기술은 국력의 약화와 부족들에 대한 권위의 추락으로 이어졌다. 느림보식 학습을 즐긴 로마인은 변혁으로 인한 또 다른 변혁 속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공화정을 이룩했다."기원전 5세기 중엽에 이르러 로마가 비로소 접촉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접촉을 가진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하여 당시의 그리스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그리스를 언급하지 않고는 로마를 이야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글을 시작으로 시오노는 '그리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개방적인 로마인들은 아테네와 스파르타에서, 페르시아 전쟁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이르는 동안 그리스의 성장과 몰락을 통하여, 그들의 발전을 틀을 마련했다. 아테네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열망, 스파르타의 질서와 군사력, 실질강경주의를 배웠고,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국력 합일의 중요성과 국력 분산의 무모함을 배웠다. 또한, 그리스의 배타적인 정책에서 로마의 타민족 수용의 우수성을 발전시켰고, 패권 스파르타의 몰락에서 군사력 중심만의 사회에서 겪게 될 문제점과 정신문화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을 것이다. 그리스 시찰단이 보고 온 페리클레스 시대의 융성은 그들에게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그 뒤로 로마는 정치 개혁, 로마 연합, 귀족과 평민간의 갈등, 시민권 확립의 사업을 이행해 간다.로마의 정치 체제는 왕정, 귀족정과 민주정의 세 가지를 혼합한 정치체제였다. 그 어느 정치체제의 극단을 취하지 않고, 수의 사람이 다수를 다스리는 것이지만, 과두 정치는 소수의 사람이 다수를 다스리는 점은 마찬가지일지라도 그 소수의 혈통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시오노의 말처럼, 로마는 왕정시대부터 이어온 인간 능력과 다양성의 존중을 공화정에 이르러서도 지속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책은 왕정시대에는 타르퀴니우스로, 공화정시대에는 과두정치로 그 결실을 맺어, 로마가 속국을 흡수하는 막강한 전략의 기본이 되었던 것이다. ' 로마의 귀족이 가지고 있던 힘의 기반은 토지가 인간이었다.' 는 것은 귀족과 평민간의 결속력을 설명하는 것이다. 로마의 사회 제도는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귀족인 파트로네스는 경제적으로 그들의 클리엔테스(평민)를 돌봐주었고, 반대로 클리엔테스는 파트로네스에게 정치적인 기반을 제공한 것이다. 이들의 관계는 명예와 신의를 중심으로 어떠한 경우에는 깨질 수 없는 사항이었다. 시오노가들은 케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에서 라비엔누스가 취한 행동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제 2권 는 희대의 명장이라 일컬어지는 한니발. 그는 포에니 전쟁의 영웅이었다. 로마인은 한니발이라는 이름 앞에 얼마나 치를 떨었던지 제2차 포에니 전쟁을 한니발 전쟁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니발은 그만큼 로마에게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명장의 뜻은 아버지의 유언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역시 카르타고의 장군이기도 했던 하밀카르였다. 제 1차 포에니전쟁에서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로마에 무릎을 꿇어야했던 자존심 강한 하밀카르가 죽기 전에 아들에게 한 유언은 로마에 대한 피의 복수. 한니발 전쟁이라 일컬어지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은 한 아비와 그의 대를 이어 내려온 복수심에서 출발하였다.로마에는 한니발과 맞붙어서 이길만한 장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만으로는 그의 천재성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먼저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 한 장수였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진격루트는 위험천만하기 그지없었다. 5만에 가까운 대군과 수십 마리의 코끼리 떼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로 쳐맹 총 전력이 87,200명, 한니발 전력이 50,000명(갈리아 용병 포함). 수적으로는 로마 동맹이 우세했다. 그것도 근소한 차이가 아닌 헤비급대 라이트급의 차이였다. 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결과가 나타났다. 무려 7만에 이르는 희생자를 내고 로마는 완패하고 말았다. 한니발 측의 희생자는 단 5천 5백 명.한니발의 천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세를 몰아 로마로 쳐들어가자는 참모들의 요청을 뒤로 하고 이탈리아 남부 지방에 진을 치고 장기전에 돌입한다. 로마라는 나라의 힘은 로마 동맹에 있다는 점을 간파한 것이다. 설령 로마를 없애더라도 불씨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게 마련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로마의 사지부터 잘라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천재 장수의 뜻대로 흐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로마 동맹이 한니발이 생각 했던 것만큼 약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 멸망의 구렁텅이에 점점 빠져들던 로마를 살린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스키피오였다. 일찍이 한니발에게 아버지와 숙부를 잃고, 복수의 칼을 갈던 그였다.스키피오는 로마를 이끌어 간다고 할 수 있는 원로원에게 한니발에 의해 전사하신자신의 아버지와 숙부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하고, 그는 일찍이 로마에 유례가 없던 25세의 총사령관이 되어, 로마군의 지휘권을 얻는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이 냉정하던 원로원도, 복수를 하고자 하는 한 인간의 눈물어린 호소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한편, 아버지와 숙부를 잃고 실의에 빠진 스키피오가, 원로원에게 간곡히 호소하는 대목은 정말 감동적이었다.스키피오는 당장 한니발과 대결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한니발의 본국, 카르타고에 침공해서, 한니발과 똑같이 카르타고 안에 진을 치고, 카르타고에서 머물며, 전투를 했다.로마는 모든 군 병력이 로마의 시민들이었다. 시민들이 속주의 속 주민들처럼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에, 병역의 의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카르타고 인들은 전투에 나가는 것을 좋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