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탁류’를 읽고일제 치하 상황이 만들어낸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이야기‘일제의 식민지배와 일상생활’이라는 책을 읽던 도중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 이 책의 필자는 소설 ‘탁류’가 근대 소설사를 대표할만한 문제작이며, 동시대의 어떤 소설보다도 생동감 있게 사회를 반영한다고 서술해 놓았다고 한다. 일제 시대의 소설을 아직 찾지 못하던 중 중학교 때 들어보았던 채만식의 소설 탁류가 갑자기 나에겐 크게 조명되어졌다. 근대소설은 단편소설 이외엔 거의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장편소설인 ‘탁류’가 너무나도 읽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류의 소설은 사건이나 상황자체가 특수하거나 흥미 있지 않다면 나와 같은 젊은 층에게는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처음에는 그저 일제 시대의 상황 속 그려진 일반 대중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큰 흥미를 갖지 않고 보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소설 속 인물과 내가 동화되어만 가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아무리 시대와 상황은 다르더라도 사람의 생각과 갈등과 반영된 모습은 변하지 않는 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현재 상황 속의 내가 이 소설속의 주인공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일단 소설 ‘탁류’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해보면 이렇다.상황은 일제 시대이고 배경은 그 시대의 개항장이던 금강과 군산이고 후반부엔 서울로 옮겨진다. 시작은 한 때 양반가의 자손이던 정주사의 미두이야기로 출발한다. 정주사는 학문을 익히고 신학문도 배웠으며 보통학교도 졸업한 사람이다. 그러하여 느긋하게 군서기 노릇을 하고 다니다가 노후로 인해 도태를 당하게 되고 빚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나중엔 돈 몇 푼 못 쥐고 군산 땅으로 온다. 할 것 없던 정주사는 미두라는 투기를 하게 되고 차차 서민층에서 빈민층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무능력한 정주사에게도 자식복은 있었다. 그의 자식들 중 초봉이라는 아주 미모가 출중한 딸이 있었는데 정주사는 그런 자신의 딸을 이용해 장사밑천을 마련하려는 부자인 척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거기다가 정주사의 부인 김 씨와는 불륜의 관계까지 맺고 있던 파렴치한 인물인 것이었다.장형보는 그의 친구이다. 그는 꼽추이며 아주 외양이 추하게 생겼다. 뿐만 아니라 마음도 아주 간악해서 고태수를 유혹하여 은행의 고객 돈을 몰래 유용하도록 만든다. 여기에 동조해서 고태수는 은행거래자의 구좌를 이용해 부정을 저지른다. 고태수는 장형보의 충동질과 태어난 체질도 있고 해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기생과 놀아나는가 하면 도박에도 손을 대는 것이다. 그러한 고태수가 초봉이와 결혼한 다는것을 본 꼽추 장형보는 심사가 뒤틀려서 고태수를 파국으로 몰아넣고자 간계를 꾸민다. 결국 생활은 오래가지 못하고 초봉이를 노리고 있던 고태수의 친구인 장형보에게 술수를 당하게 되어 고태수는 죽게 되고 초봉이는 장형보에게 겁탈을 당하고 실의에 빠져 전전하다가 예전에 일할 때 알고 지내던 약사 박제호에게 꾀임을 당하게 된다. 술수는 장형보가 부렸으나 추수는 박제호가 한 꼴이다.어찌됐건 초봉은 박제호에게 서울에서 잘살게 해준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박제호의 첩이 되어 집에 틈틈이 돈도 부쳐주고 안락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딸을 낳게 되는데 초봉이는 이 딸이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 결혼해서 관계를 갖았던 고태수인지, 아니면 고태수가 죽던 날 초봉이를 겁탈했던 장형보인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박제호의 딸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곱사등이에 추한 몰골인 장형보의 딸임을 서서히 짐작하게 된 초봉이는 딸 ‘송희’를 죽이려다가 박제호의 만류로 그냥 키우게 된다. 키우다보니 초봉이는 딸 송희에게 심한 애착을 갖게 되고 그 애착이 지나친 나머지 박제호에게는 소홀이 대한다. 박제호는 예전 같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도 보이지 않게 된 초봉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아내의 친척에게 돈을 꾸어 써오던 터라 초봉이를 이제는 떼어버릴 생각을 품게 된다.그러던 중 어느날 갑자기 예전 초봉이를 겁간했던 장형보가 찾아오게 된다. 그리고 다짜고짜병원도 차리고 못 만나오던 계봉이와도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 헌데 계봉이는 딱한 언니의 사정을 승재에게 말하고 승재더러 초봉이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췄다. 승재도 안타까운 나머지 첫사랑이었던 초봉이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도와주기로 마음을 먹고 초봉이를 형보의 손아귀에서 빼낼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래서 계봉이와 승재는 초봉이를 만나러 가지만 이미 초봉이는 자기 딸 송희를 괴롭히고 있던 형보를 죽이고 만 후였다. 계봉이는 슬퍼하며 초봉이에게 조금만 기다렸어도 승재가 도와주러 왔을 것을 왜 그랬냐며 눈물을 흘린다. 이에 초봉이는 승재가 아직도 자기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과 자신의 섣부른 행동을 뒤늦게 후회한다. 그러면서도 자수하더라도 승재더러 자신을 기다려줄 수 있겠냐며 묻는다. 이에 거절할 용기가 없던 승재는 그렇게 하겠노라며 대답하고 초봉이는 이에 기뻐한다. 이렇든 슬픈 비극소설은 여기에서 끝난다.이 소설은 이렇듯 일제 치하시대에 미두로 몰락한 가정의 자녀가 어떻게 자본주의와 식민지 상황에서 비극을 겪는가를 표현한 장편 소설이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어 나오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미두인데 미두란 쌀을 가지고 하는 일종의 투기이다. 그 시절 미두로 인해 백만장자든 소작농이든 가리지 않고 패가망신을 당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아마도 그때 불었던 금광열풍과 비슷하게 식민사회를 흥분과 광기로 물들이게 했던 중요한 사건이라 생각된다.미두란 미두장의 준말로 일제강점기 인천, 군산, 부산 등 굴지의 쌀 수출항에 개설되었던 곡물거래시장을 두루 아우른 말인 동시에, 좁게는 미두취인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물 및 선물 거래소’를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주식시장이 자본주의 체제를 상징하는 일종의 ‘표상공간’이듯이, 당시의 ‘미두장’은 식민지 조선의 산업 근간인 농업의 핵심 생산물이라고 할 ‘쌀’의 집하와 거래에 있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상징하는 일종의 ‘표상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주식과 비교하긴 했지만 알아본 결과제 당국으로서는 미두취인소가 지니는 이러한 ‘순기능’적 측면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생산된 미곡은 일부만 국내에서 소비되고 거의 대부분이 일본으로 이출되는 중요한 ‘상품’이 되었기 때문이다.소설속의 정주사가 어떻게 이러한 미두장을 전전하게 되었는가? 그에 대한 물음은 소설 초반부에 드러난다........ 나무도 사 때야 하지, 아무리 가난하기로 등짐장수처럼 길가에서 솥단지밥을 해먹는 배 아니니 소금만 해서 먹을 수는 없고, 하다못해 콩나물 일전어치나 새우젓 꽁댕이라도 사 먹어야지, 옷감도 더러는 끊어야지, 집세도 치러야지.가난하지만 농촌에서 전장을 지니고 자연적인 경제 속에서 살던 정주사집의 일상생활은 군산으로 와서 도시생활로 급변하게 되어 자본주의와 화폐경제 속으로 급속히 휘말려 든다. 정주사 부인 유씨의 자녀교육에 대한 승벽으로 4남매 교육비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밥먹는 것마저 위협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이 정주사를 미두장으로 내세우게 된다. 하지만 미두장이 어떠한 곳인가?미두장은 군산의 심장이요, 전주통이니 본정이니 해안통이니 하는 폭넓은 길들은 대동맥이다. 이 대동맥 군데군데는 심장 가까이, 여러 은행들이 서로 호응하듯 옹위하고 있고 심장 바로 전후 좌우에는 중매점들이 전화줄로 거미줄을 쳐놓고 앉아 있다.일본인들은 일제침략과 함께, 총과 돈으로 호남 평야지대에서 비옥한 전답을 헐값으로 강매 ? 약탈 하여 금강, 만경강 유역을 자기들의 농장으로 만들었다. 이 곡창지대에서의 수확은 곧 군산항을 통해 대판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토지의 상실과 함께 미두시장 거래에서 일체 배제되었던 조선 사람들은 미두거래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의 조작에 원칙적으로 빼앗기게 되어 있었다.시간은 오후 두시 반 후장의 대판시세 이절이 들어오고 나서요....이 부분이 대판시장의 조작을 암시적으로 나타낸 부분이라 하겠다. 저 부분 뒤에는 정주사가 일명 ‘총을 놓았다’ 고 하여 밑천 없이 돈을 걸지 않고 미두를 하여 젊은이에게 봉욕을 당하는 정주사가 사는 동네가 대조적으로 묘사된다. 일본인들의 옥구평야의 쌀을 실어가기 위해 정리한 항구도시의 일인 주택지구가 비교되는 것이다.예서부터가 조선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저 복판에 포도장치도 안한 십오간짜리 토막길이 있고, 길 좌우로 연달아 평지가 있는둥 마는둥 하다가 그대로 사못 언덕비탈이다.그러나 언덕비탈의 언덕은 눈으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급하게 경사진 언덕비탈에 게딱지같은 초가집이며, 낡은 생철집 오막살이들이 손바닥만한 빈틈도 남가지 않고 콩나물 길듯 다락다락 주어박혀, 언덕이거니 짐작이나 할 뿐이다. 그 집들이 너머 둔뱀이로 넘어가는 고개를 콩나물고개라고 하는데, 실없이 제 격에 맞는 이름이다.......이러한 몇 곳이 군산의 인구 칠만 명 가운데 육만도 넘는 조선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어깨를 부비면서 옴닥옴닥 모여 사는 곳이다. 면적으로 치면 군산부의 몇분지 일도 못되는 곳이다.......개복동이니 둔뱀이니 하는 곳은 한 세기나 뒤떨어져 보인다. 한세기라니, 인제 한 세기가 지난 뒤라도 이 사람들이 제법 그만큼이나 문화다운 살림을 하게 되리라 싶들 않다.원래 군산은 역사적으로 한적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자본주의가 칩입하면서 미곡수출의 해항으로 면모가 바뀌었다. 그로 인해 군산 심장부의 시가지는 근대식 건물로든지, 사회시설이나 위생시설이든지 제법 문화도시의 모습을 차리고 있는데 반해 수적으로 절대 다수였던 조선 사람들은 조건도 열악하고 터도 좁은 곳에서 북적대며 살아야 했다. 소설 속 개복동과 둔율동 일대의 산동네는 초가와 생철이 슬레이트와 기와로 바뀌긴 했지만, 게딱지와 콩나물이긴 매일반인 채로 90년대 중반을 통과하고 있다고 묘사된다.이렇게 일본인과 조선인의 차이는 식민 상황에서 나타난 민족별 공간분화현상으로 인한 차별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의 일본인들 거주는 물론 그 이전 시기에도 있었지만, 갑신정변을 겪은 후인 1885년 초 조선정부와 일본 공사관 측의 합의에 의해 그들의 거류 지역이 공식적으로이다.
제목 : 산림환경감시를 위한 시계열적 NDVI 변화지수의 활용1. 연구목적본 연구는 시계열적 식생활력도 변화량 분석을 통하여 산림의 훼손여부 및 부정적인 생육환경 및 건전한 생육조건을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2. 연구목표2003년도와 2008년에 촬영된 LandsatTM 영상에서 NDVI를 추출한 뒤, 식생활력도의 변화량을 분석하여 식생활력 우수지역과 식생활력 불량지역을 도출하는 것이 본 연구의 최종 목표이다.3. 연구의 필요성전 국토의 65%이상을 차지하는 산림에 대해서 광역적인 산림지역의 관리를 위한 효율적인 방안은 아직 미흡한 편이다. 특히 산림의 불법적인 훼손 및 재선충과 같은 해충 또는 자연고사 등으로 산림의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를 감시하기 위한 인력 및 재정적 지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적극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원격탐사의 경우 광역적 공간의 감시 및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산림의 효율적 감시 및 관리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본 연구는 이러한 원격탐사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산림의 건전한 생태환경보전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4. 연구범위공간적 범위는 대구광역시 전체를 그 범위로 하며 산림 및 식생이 존재하는 지역을 추출한 뒤 분석을 실시하였다. 시간적 범위는 2003년 5월 10일에서 2008년 5월 31일로 해당 시기의 NDVI를 추출하여 그 변화량을 분석하였다. 구름에 의한 영향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하여 구름이 거의 없는 날에 촬영된 위성영상을 사용하였으며, 개엽시기에 따른 엽면적지수의 변화에 의한 영향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동월로 그 시기를 일치시켰다.5. 연구방법5.1. NDVI 추출본 연구에 사용된 위성영상은 2003년 5월 10일과 2008년 5월 31일 촬영된 Landsat-5 TM 위성영상을 활용하였다. 디지털 항공사진은 기하보정 및 정사보정의 과정을 거친 후 식생활력도(Normalized Diffenerce Vegetation Index: NDVI)를 추출하였다. 정규화 식생지수라고도 불리는 NDVI는 단위가 없는 복사값으로 녹색식물의 상대적 분포와 활동성, 엽면적지수, 엽록소의 함량 등을 간단하게 파악할 수 있다.NDVI를 추출하기 위하여 PG-STEAMER 4.1을 사용하였으며 산림청에서 제공하는 임상도와의 중첩을 통해서 현존식생도)를 작성하였다(그림 1).그림 . 현존식생도 작성5.2. NDVI 변화량 분석NDVI는 식생이 자람에 따라 그 활력도가 증가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생육조건이 불량하거나 산림이 훼손되었을 경우에는 감소하게 되며, 이는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시계열적인 NDVI 변화량을 분석하였다. NDVI의 경우 연속형 래스터 자료이기 때문에 재분류하여 10단계로 구분하였으며, 단계가 높아질수록 식생활력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재분류된 두 시기의 NDVI 자료를 ArcGIS의 공간분석기능을 이용하여 변화량을 살펴보았다. 2003년도 NDVI 단계에서 2008년도 NDVI 단계의 변화량을 용이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그 증감량을 지도상에 표시하였다(그림 2).그림 . 2003~2008년 NDVI 변화량표 . 2003~2008 NDVI 변화량IDCount03"NDVI08"NDVI변화량1188***************************************82615865*************23*************2070**************************326*************38*************6017185576-11877065-*************0**************************123349440241142-2254143-126763-32712254-*************20**************************85339775-2341253-2352564-2362633037341-3388439639452-340162-441474-342172-543173-444131-*************347186-248187-16. 분석결과분석결과 NDVI의 변화량이 감소한 곳은 47469.96㎡ 였으며, 그 중 NVDI 변화지수가 2단계 감소한 곳 3 곳을 표 2에 나타내었다.표 . NVDI 변화지수가 2단계 감소한 장소분석결과2003년 이전 현황2008년 이후 현황달성군다기읍방천리달성군다기읍세천리북구칠곡2동달성군 다기읍 방천리의 경우 대구환경 자원사업소가 위치한 곳으로 2003년 이전의 현황사진보다 더 넓어진 것을 볼 수 있다. 세천리의 경우 산림을 개간하여 농지화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이에 NDVI 변화지수가 감소한 것으로 판단된다. 칠곡2동의 경우 시설물이 들어섬에 따라 산림의 훼손에 의해 NDVI 변화지수가 감소한 것을 볼 수 있다.7. 결론 및 제언NDVI 변화지수를 통해서 산림의 훼손정도와 장소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계획에 의한 벌목 외에도 무단으로 산림이 훼손된 장소를 원격탐사를 통해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역으로 NDVI 변화지수가 증가된 곳을 파악하여 건전한 생육환경의 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산림육성이 가능할 것으로 사료된다.
지적 및 토지기본정보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과공간모델링을 활용한 해결책1. 목표와 목적효율적이고 통합적인 서비스를 위한 지적측량 및 관리의 RFID 적용 필요성을 제기하고, 현재 포털사이트 등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항공사진 및 지도서비스와 부동산정보통합포털(http://onnara.go.kr)의 온라인 지적 민원서비스를 연계시켜 국민들의 지적관련 민원서비스의 이용을 좀 더 수월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2. 문제점현재의 지적제공 서비스는 필지중심토지정보시스템 구축사업의 추진으로 전산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부동산등기업무 역시 전산화가 이루어져 전산시스템을 통한 온라인망이 구축되었다. 하지만 지적공부와 토지등기부의 등록사항이 상호 일치되지 않아 국가 공부로서의 공신력이 저하되고 지적불부합 문제 및 측량기준점의 망실로 인한 측량성과의 신뢰성저하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에 지적공부 및 토지등기부의 통합적 관리와 측량서비스의 지속가능한 조사 및 관리를 위한 새로운 방안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온라인 지적 및 등기부의 민원서비스에 보다 친숙한 인터페이스를 적용시켜 국민들의 인지도 및 이해도를 높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3. 해결방안기준점이나 도근점 설치시 장거리 위치기반 식별센서를 삽입하여 능동적인 수치측량 및 위상적 공간식별이 가능토록 한다. 또한 항공사진 촬영 시 기준점 및 도근점의 위치식별이 가능토록 하여 지적도면 및 등기부에 항공영상을 결합해 보다 정확한 영상도면 서비스를 제공한다.4. 구체적 내용 및 방법지적 분야에 있어 지적기준점은 지적측량에 사용되는 기준이 되는 점으로, 기준점 전수 검사를 통해 관리되고 있다. 하지만 도로포장 및 상하수도 공사 등에 의해 매년 손실 또는 망실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되고 있으며, 현장에서 기준점이 장애물에 의해 가려져 찾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해 기준점을 조사 관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현행지적도면의 경우 1세기전의 조악한 인력 및 기술, 장비 등에 의해서 측량 작성되어 측량성과의 정확도가 낮고 이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제기 되고 있으며, 지적공부에 등록된 지목, 경계, 면적 등이 실제상황과 부합되지 않아 토지에 대한 각종 정책의 효율적인 추진이 곤란하다.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기준이 되는 원점의 통일성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이하게도 통일원점지역, 구소삼각원점지역, 특별소삼각원점지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의 좌표가 난립하여 중복되거나 연속적인 비교가 불가능한 지역이 빈번히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한 정부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적재조사사업을 추진하고 법적 장치를 새로 마련하는 등, 현행 지적법을 개선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민들의 지적에 대한 인식이 변하지 않는 한 이는 변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따라서 이러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한 지적재조사 사업 및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기술의 개발이 필요하며 국민들의 지적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에 대한 인식과 개선할 수 있는 지에 대한 고찰이 선행되어야 하겠다.현행 지적법이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기준점 및 도근점에 의해 발생된 문제의 경우 원천적인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 이는 정책적인 도구를 이용하여 주민들과의 합의에 의해 지적도의 전면 갱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고쳐지기 매우 힘든 문제일 것이다.따라서 앞으로 더 이상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절대적인 기준점의 공간적 위치결정과 그에 따른 관리방안 마련을 통하여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더 나아가 각 기준점은 수동적인 위치정보의 확인도구가 아닌, 정확한 위치정보의 제공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동형 위치정보제공센서를 삽입한 RS(Remote Sensing)기반 측량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현재 GPS의 발달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정지측량을 대신하여 택지개발지역과 같은 소규모 측량에는 GPS를 이용한 RTK-GPS 측량이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RTK-GPS의 경우 기존의 GPS만을 이용한 측량보다 더 정확한 수치를 제공하여 측량에 효율적인 이용이 가능하다. 연구된 바에 의하면 RTK-GPS를 이용한 측량은 정지측량에 비해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이 적고, 정확도도 양호한 결과를 나타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방법 역시 기준국을 세워 이동국과의 거리계산에 의한 측량이므로 지속적 관리를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이에 RTK-GPS 시스템을 활용하여 기준점이나 도근점 자체에 RFID와 같은 위치기반 센서를 삽입하고 사용자와 기준점 간 위치정보의 실시간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각 위치정보제공센서는 전파에 의해 컴퓨터 또는 PDA와 유기적으로 연동되어 GPS기반의 위치기반서비스보다도 정확한 위치의 정의가 가능해진다. 이러한 시스템의 장점은 RS(Remote Sensing)를 이용해 측량의 효율성을 향상시켜 지적관련 민원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고 효율적인 측량이 가능해 진다는 점이다.또한 지상의 고정된 도근점의 위치정보를 항공영상 촬영 시 인식가능하게 한다면 기하보정과 같은 후보정 시에 더욱 정확한 좌표의 삽입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지적도와 같은 세밀한 도면을 항공영상 상에 중첩할 경우 생기는 오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활용성으로는 지적도면만으로 얻을 수 없는 주변의 현실적인 정보의 획득이 가능해지므로, 이를 온라인상으로 제공할 경우 사용자는 자신의 지적 상황을 훨씬 쉽게 파악이 가능해 진다는 점이다. 기존에 서비스되는 지적도면의 경우 실제상황과 다른 경우가 많이 있고 또한 지적의 경계가 과연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일반이용자로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더욱 세밀한 좌표정보가 삽입된 항공영상을 지적도면과 중첩하여 온라인을 통해 제공된다면 지적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인지도 및 이해도가 향상될 것이다.
- - - - - - - - - - - - - - - - - - - - -수지를 이용한 합판과 PB 제조와 품질기준시험- - - - - - - - - - - - - - - - - - - - -=======================과 목 : 목질재료학 및 실험담당교수 : ------제출일 : ------------학과 : 임산공학과학번 : --------이름 : --------======================- 목 차 -Ⅰ 서론Ⅱ 본론ⅰ : 제조1. 합판의 제조2. 파티클보드의 제조Ⅲ 본론 ⅱ : 품질기준시험1. 합판의 품질기준시험2. 파티클보드의 품질기준시험Ⅳ 본론 ⅲ : HCHO 방산량Ⅴ 결론 : 결과 및 고찰※ 참고문헌Ⅰ 서론: 목재를 이용한 산업은 나날이 발전하여 합판, 섬유판, 파티클보드 제조업체는 지난 2006년 8월 현재 17개 업체 22개 공장으로 합판보드류의 연간 생산능력은 350만㎥이고 연간 생산액은 약 8,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또한 합판마루 제조업체는 21개, 강화마루 제조업체는 2개로 마루판의 연간 생산능력은 1천490만평이며 연간 생산액은 3천740억원이다. 이중 합판은 68만㎥, 섬유판은 165만㎥, 파티클보드 85만㎥, 합판마루 600만평, 강화마루 260만평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주요생산 기업은 이건, 동화기업, 한솔, 유니드, 성창, 선창 등 7개 기업을 꼽을 수 있다. 이렇게 목재를 이용한 보드는 우리 생활에서 점점 밀접하게 파고들고 있다. 하지만 항상 가까이 두고 있는 이러한 건축재료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강도나 안정성과 같은 안전과 관련된 특성이라든지 인체의 건강과 관련된 HCHO방산량과 같은 특성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렇지만 특히 주거용 환경과 관련된 특성에 대해서는 항상 연구되어 왔고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도 현재의 모습이다. 한 예로 지난 2006년 12월 7일자로 KS규격이 바뀌었는데 그 동안 국내생산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던 E2등급이 사라졌다. 그리고 새로운 등급인 밤나무·자작나무·느티나무·참나무 등이 쓰였지만, 오늘날에는 매우 드물다. 미국에서는 미송·서던파인 등의 침엽수, 북부유럽에서는 자작나무 종류, 중부유럽에서는 마크레 등의 아프리카 목재와 포플러 등이 쓰이고, 오세아니아에는 라디아타소나무 합판이 많다. 합판의 특징은 첫째, 강도가 비중에 비해 크고 판면에 고르게 분포한다. 둘째, 함수율 변화에 의한 수축팽창에 대한 이방성이 적다. 셋째, 완전 내수성인 것도 얻을 수 있다. 넷째, 단면의 단판 조합을 바꾸면 어느 정도 그 특성을 설계하여 제조할 수 있다. 다섯째, 할렬성이 적다. 여섯째, 큰 면적 이용의 적용성이 크다. 일곱째, 곡면 가공을 할 수 있다. 여덟째, 공예적인 면에서 미관이 좋다. 아홉째, 목재의 이용률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비교적 값이 싸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2) 합판의 제조공정: 우리가 해본 합판의 제조는 완성된 베니어에 제조한 접착제를 도포한 후 열압하여 적층시키는 것까지였다.▣ Process.(1) 완성된 베니어(Veneer): 실험실에 미리 준비하여 놓은 베니어(Veneer)를 19×17cm 크기로 재단하 였다.(2) 페놀수지접착제(Phenol-formaldehyde resin)의 제조: 페놀수지접착제는 내수성이 뛰어난 접착제로 목재용 접착제로 널리이용된다.? 페놀수지 재료: 페놀 90g, 포르말린(35%) 137g, NaOH 14.5g, H2O 14.5g? 페놀수지 제조 Table① 페놀과 포름알데하이드를 1 : 1.63 비율로 섞은 후 물을 첨가하여 500㎖ 제조② 수산화나트륨을 첨가한다. 이때 발열반응으로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기 때 문에 가열하지 않고 교반③ 첨가 후 온도를 90℃로 설정하고 1시간 반응시킨다.? 페놀수지 NVC 측정: NVC란 고형분 또는 수지분이라고도 하며 접착제를 가열하여 휘발성분을 제거시킨 분을 원중량에 대해 %로서 나타낸 수치이며 높으면 점도가 높아 지고 접착강도는 좋아지지만 도포가 힘들다.NVC =건조전 무게(g)건조후 무게(g)NVC(%)13.02 변질과 토사 등의 선별이 문제가 된다.2) 파티클보드의 제조공정: 우리가 해본 파티클보드의 제조는 준비되어 있는 파티클을 요소수지접착제 를 이용하여 블랜딩한 후 열압하는 공정까지였다.▣ Process.(1) 준비된 파티클(Particle): Face용 파티클과 Core용 파티클이 있는데 Face용 파티클의 경우 Core 용 파티클보다 입자가 작고 가벼운 것을 썼다.(2) 요소수지접착제의 제조: PB를 제조할 시에 요소수지를 사용했는데 요소수지는 값이 싸며, 목재에 대한 상태 접착력이 강하다. 요소수지는 석탄산 수지에 비하여 내수성 ? 내노화성 등이 약하지만 증량을 임의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옥내용 합판, 집성재, 파티클 보드 및 그 밖의 일반 목공용 접착제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요소수지 재료: 요소, formaline(35%), 내수제(파라핀왁스), 경화제(NH4Cl)? 요소수지 제조 Table① u : F = 1 : 1.2 이용해서 u(분자량 60, 190.8g, 1차요 소)와 F(분자량 30, 35%, 617g)을 삼각플라스크에 투입② NaOH(10%)를 이용하여 pH 9.0으로 조절 후 85~90℃에서 50분 반응③ 90~95%에서 10분 반응④ Oxalic acid(10%)를 이용하여 pH5.0으로 조절 후 80℃에서 20분, 90℃ 10분반응⑤ pH 9(NaOH 10%)로 조절 후 10~20℃불에서 백탁확인⑥ pH 9이하에서 90~95℃에서 2차요소 169.2g투입 후 40분⑦ pH 5.5(Oxalic acid 10%) 조절. 90~95℃에서 20분⑧ pH 7.5(NaOH 10%)조절 후 95℃ 40분? 요소수지 NVC 측정NVC =건조전 무게(g)건조후 무게(g)NVC(%)13.351.750.7522.981.5150.6733.181.6250.94평균50.79∴ 평균 NVC = 50.79%임의로 52.67%에서 50%의 NVC로 낮추어 사용하도록 했다.(3) 접착제 첨가: 요소수지접착제의 첨가량은 파티클 전건무게의 13%를 넣었582.23평균2.26? 흡수 두께 팽창률: 흡수두께 팽창률 시험은 미리 시험체 중앙부의 두께를 정밀한 다이얼게이 지 또는 마이크로미터로 측정하고, 이것을 20±1℃수중에 수면 아래 3㎝에 수평으로 두고 24시간 담근 후 꺼내서 수분을 제거하고 두께를 측정하며, 다음 식에 따라 산출한다.흡수 두께 팽창률 =t1 : 흡수 전 두께t2 : 흡수 후 두께흡수 전 두께(mm)흡수 후 두께(mm)흡수 두께 팽창률(%)16.256.747.8426.156.627.6436.236.727.86평균7.782) 합판의 기계적 성질(1) 접착력 시험- 인장 전단 접착력 시험편 -? 접착력(N/㎟) =Ps=최대하중(N)h = 시험편 나비(mm)b : 접착단면 길이(mm)(2) 휨강도 시험: 시험편의 표면에 평균 변형속도 약 10mm/min의 하중을 가하여 최대하 중(P)을 측정하고 다음 식에 따라 구한다.? 휨강도(N/mm2) =P : 최대하중(N)L : span(mm)b : 시험편의 나비(mm)t : 시험편의 두께? 시험편 치수나비 50mm×길이(span)50mm두께(㎜)폭(㎜)최대하중(N)휨강도(N/㎟)탄성계수(N/㎟)16.2350.03405.034.75413926.3747.8342536.46387036.2750.1248541408846.2848.7125522.1378856.3248.88461.539.364223평균406.3034.7340212. 파티클보드의 품질기준시험1) 파티클보드의 물리적 성질(1) 밀도? 밀도 =가로(㎝)세로(㎝)두께(㎝)무게(g)부피(㎤)밀도(g/㎤)12.0434.8730.8446.648.400.7922.0824.8770.8446.58.590.7532.0564.8800.8456.478.480.76평균0.77? 함수율(%) =W1(g)W0(g)함수율(%)16.646.52.1526.506.362.2036.476.351.89평균2.08? 흡수두께팽창률: 흡수두께팽창률 시험은 미리 시험체 중앙부의 두께를 정밀한 다이얼게이 지 또는 마이크로미터로 측정하고, 이것을물에 녹여 1리터④ 0.01mol/l 티오황산나트륨 용액 → 0.1 mol/l 티오황산나트륨용액을 10배희석2) HCHO 표준원액검정① HCHO(37% aq)1ml을 증류수로 희석하여 1리터 → 표준원액② 삼각플라스크에 표준원액(5ml)+요오드용액(20ml)+수산화칼륨용액(1ml)을넣고 마개 닫고 상온에서 15분방치③ 삼각플라스크에 증류수(5ml)+요오드용액(20ml)+수산화칼륨용액(1ml)을 넣 고 마개 닫고 상온에서 15분방치④ 2.5mol/l 황산 2ml을 서서히 가하여 마개 닫고 5분 방치⑤ 마이크로 뷰렛 이용하여 0.01mol/l 티오황산나트륨용액으로 적정⑥ HCHO의 양(mg/ml) =B : 블랭크적정량(ml)S : HCHO 표준원액 적정량(ml)F : 티오황산나트륨 농도 계수3. HCHO 표준용액 조제① 표준원액의 계산량을 메스플라스크에 채취 증류수 희석하여 1ml에 HCHO 0.1mg 함유토록 조제cf) 100ml메스플라스크 사용시 표준원액 채취량② 표준용액 0.125 0.25 0.5 1.0 1.5 취하여 증류수로 25ml되게 희석③ 아세틸아세톤 - 아세트산 암모늄용액 25ml를 가한다.④ 각각에 대한 흡광도 측정⑤ 검량선 작성4. HCHO 농도의 정량법(광전분광광도계, 415nm광전비색계사용)1) 아세틸 아세톤 - 아세트산 암모늄용액① 아세트산 암모늄 150g + 증류수 800ml② ①번용액 + 빙초산 3ml + 아세틸아세톤 2ml③ ②번용액에 증류수 첨가하여 1리터 채움④ 갈색병에 보관2) 정량조작① 마개달린 삼각플라스크(100ml)에 HCHO 흡수액 25ml 첨가② 삼각플라스크에 있는 1번용액 + 아세틸아세톤 - 아세트산암모늄용액 25ml 첨가③ 마개닫고 60~65℃온수에서 10분 가온후 냉각④ HCHO흡수액 대신에 증류수로 비교액 조제⑤ 검사액과 비교액을 흡수셀에 옮김⑥ 비교액 사용하여 흡광도 0d,로 조정⑦ 검사액의 흡광도 측정⑧ 측정된 흡광도로 미리 작성한 검량선으로부터 HCHO농ㅇ도(ml/리터)구함cf) 0.031 : 0.5 = 0.
1. 영화 ‘여왕마고’에 대하여16세기 프랑스는 개신교를 국교로 하는 나바르와 카톨릭을 믿는 프랑스로 나뉘어져 있었다. 개신교군은 콜리니 제독이, 카톨릭군은 기즈 남작이 이끌어 왔고 이들 사이에는 서로 싸우고 죽이는 혼란이 끊이질 않았다. 마고는 샤를르 9세의 동생으로 프랑스 왕실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인이다. 그녀는 구교도이지만 종교전쟁으로 혼란스럽게 나누어진 프랑스를 위해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상대는 신교도로 나바르의 볼품없는 어린 왕인 앙리 나비르. 앙리를 탐탁치 않게 여기던 마고는 결혼 후 앙리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거대한 야망과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의 실질적인 권력자는 샤를르 9세가 아니라 그의 어머니인 까뜨린느 드 메디치이다. 그녀는 왕인 샤를르 9세보다는 동생인 앙주를 편애했으며 그를 위해 평화로운 왕국을 만들어서 왕의 자리를 물려주고 싶어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구교도와 신교도의 종교전쟁으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종교전쟁을 끝내기 위해 구교도 마고와 신교도 앙리와 결혼시켰던 것이다. 마고의 결혼이 끝난 후 6일동안의 축제기간에 구교도와 신교도는 축제의 열기에 휩싸이지만 그곳엔 어머니 까뜨린느의 무서운 음모가 숨어 있었다. 6일동안 축제 후 동이 돋을 무렵 5000여명의 신교도들은 구교도들에게 무참히 살해된다. 세느강은 피로 물들고, 파리는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한다. 이날의 공포스런 밤이 진행되는 동안 상처투성이의 한 젊은이가 마고의 문을 두드린다. 이 젊은이 라 몰르는 신교도로 다른 이들처럼 죽어가야만 할 시간이지만 마고는 그를 숨겨주고 간호해 준다. 그러던 중 마고는 라 몰르에게서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진실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2. ‘여왕마고’에 평가1572년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사건을 배경으로 한 알렉상드르 뒤마의 동명 소설을 54년작에 이어 파트리스 세로 감독이 5년의 기획 끝에 완성한 대작으로, 프랑스 영화계가 헐리웃 영화에 맞서 자존심을 내걸고 엄청난 제작비를 들였니의 암살을 계획, 딸 마고의 결혼식을 기회로 콜리니를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왕이 이를 조사하자 암살 음모가 탄로날 것을 두려워한 카뜨린느 드 메디치는 결혼식을 보기 위해 파리에 모인 신교도 지도자들의 암살 계획을 꾸몄다. 8월 24일 새벽, 구교도들의 무차별 대학살이 시작되고, 다음날 왕이 학살 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해 10월까지 유혈 사태가 지속되었다. 이 사건으로 수천 명의 신교도들이 학살되었다고 전한다.3. 카뜨린느와 관련한 역사적 사실G. F. 영은 저서 『메디치』에서 역사상 카뜨린느 드 메디치만큼 왜곡된 인물도 드물다고 주장한다. 비록 그가 애정을 듬뿍 담아 쓴 『메디치』에서 전반적으로 메디치가 인물들에 대한 미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그만큼 카뜨린느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는 것 또한 부정될 수 없다.대부분의 프랑스 사에 관한 글들에서 카뜨린느 드 메디치가 나오는 부분은 참 애매하기 그지없다. 전반적으로 카뜨린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군데군데 좀 다른 수식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카뜨린느가 정치력이 없었고 신?구교 융합정책에 대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이 프랑스를 더 혼란에 빠뜨리기만 했다' 고 쓰면서도 마리 드 메디치 편에 가서는 '그녀는 카뜨린느같은 정치력을 가지지 못했다.' 라는 말을 한다. 또한 그녀가 사악하고 권력을 잡아 아들들을 제멋대로 휘둘렀다고 하면서도 호위병도 별로 없이 폭동 중인 파리 시내를 가로질렀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한다. 이것은 카뜨린느에 대한 얕은 연구 탓으로, 기본적인 가정으로 깔려있는 그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와 약간의 연구를 통한 역사적 사실들이 애매모호 하게 결합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오늘날까지도 카뜨린느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는 매우 상반된다. 그녀는 1519년 피렌체의 부르주아 출신의 명가 메디치 가에서 태어났다.(아직 귀족은 아니었음. 코시모 1세 때야 토스카나 대공 위를 받음.) 흔히 위대한 자 로렌초(로렌초 일 마니이고는 이후 공개석상에서 사라졌다. 카뜨린느가 프랑스로 시집오면서 재미있게도 프랑스의 식문화가 크게 달라졌다. 16세기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식문화는 그리 풍성치 못했다 한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나이프로 요리를 잘라 손으로 집어먹던 장면에 대한 묘사가 흔히 보이는데, 그랬던 프랑스의 식문화가 지금처럼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에 의해서였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카뜨린느와 앙리의 결혼이다. 그녀가 가져온 많은 식기와 함께 온 요리사들에 의해 궁정 음식이 변하면서 프랑스의 식문화는 달라졌고, 결국 오늘날 가장 우아한 음식으로 칭송 받는 프랑스 요리는 이탈리아외 여러 나라의 것을 집대성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남편은 스페인서의 오랜 포로생활 때문인지 우울하고 무거우며 무능했으며 카뜨린느를 처음부터 싫어하였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지적인 그녀의 외모와 학식도 그를 사로잡지는 못하였다. 그렇기에 카뜨린느에게는 남편 앙리 2세의 무관심이 일생 큰 슬픔이었었다. 궁정에서는 오직 시아버지 프랑수아 1세만이 그녀를 아꼈다. 궁정 여느 귀부인들보다도 재기발랄하고 지적이며 스포츠를 몹시도 좋아하는 며느리가 자신의 르네상스적 취향에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행사에 동행시켰으며 훗날 이혼당할 위기에서도 오직 시아버지만이 그녀를 감싼다. 그러나 이 총애도 귀족들의 질투를 사게 된다.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 대로 이 이탈리아 여자를 환영하지 않았고, 결혼할 때 사람들은 그녀가 제노바, 밀라노, 나폴리를 가지고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교황이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자 모두 교황이 왕을 속였다고 하며 국민적인 증오가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3년 뒤 황태자 프랑수아의 죽음으로 앙리가 왕위 계승자가 되었을 때는 외국 여자가 그들의 왕비가 되리라는 전망에 경악했다. ‘귀족도 아닌 이탈리아 부르주아 출신의 여자가 프랑스의 왕비가 되다니!’ 프랑스 인들은 프랑스의 자존심과 민족의 명예에 커다란 모욕을 끼쳤다고 느꼈다. 이 편견은 점차 이탈리아 여자에 대한 증오로 바뀌어에게 보낸 편지 중 오랜 세월 꾹 눌러 참은 슬픔을 얘기한 대목에서 잘 나타난다.결혼한 지 10년만인 1543년부터 그녀는 거의 매년 출산했고, 1547년에는 프랑수아 1세의 죽음으로 앙리 2세가 왕위에 올랐다. 이태리 출신 왕비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반감은 한층 더해졌고, 왕은 여전히 디안의 수중에 있었지만, 합법적인 왕비의 지위를 디안에게 강탈당한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에게는 나자마자 죽은 3명의 자식 말고도 7명이나 되는 아들딸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매 순간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그녀의 일이었다. 카뜨린느의 아들 샤를이 났을 때 앙리가 사흘 뒤 그녀의 곁을 떠나 디안과 함께 있기 위해 아네로 갔는데 그것은 왕실과 인간으로서의 예절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자녀를 낳았을 때도 디안이 아이들의 유모장이 되겠다고 고집한 것과 산후조리를 맡는 등으로 궁정과 왕에게 "왕비에게 베푼 선하고 칭찬할 만한 행동" 칭찬을 받으며 막대한 돈을 받아 챙겼다는 것은 그녀에게 커다란 고통을 주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카뜨린느는 왕비로 있던 12년 간 따돌림 속에서 남편과 디안이 화려한 아네와 슈농소에서 즐기고 있는 동안 한적한 곳에서 홀로 기거하며 자녀들의 교육에 몰두하였었다. 비록 아들은 불행히도 부친의 무능력을 빼닮아 실망했지만 세 딸과 장래 며느리인 메리 스튜어트도 맡아 왕족으로서 엄격히 가르쳤다. 딸들은 모두 어머니를 경외했으며 그것은 가장 말썽을 피워 카뜨린느에게 매를 맞기도 한 막내딸 마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메리 스튜어트에게 디안은 카트린을 '장삿꾼의 딸'로서 경멸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카뜨린느는 메리를 아껴 '우리의 작은 스코틀랜드 여왕이 미소만 지어도 모든 프랑스인들의 마음은 설렙니다.' 라며 그녀를 칭찬한다. 왕이 자리를 비웠을 때 마땅히 왕비가 가져야 할 섭정권조차도 디안 때문에 가지지 못했는데 프랑스에는 불운이, 카뜨린느에게는 행운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1557년 8월, 왕이 샹파뉴에 간 동안 몽모랑시가 지휘하던 프랑스당해 막강한 구교 국가인 스페인과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딸 마르그리뜨와 부르봉가의 계승자인 앙리 드 나바르를 결혼시킨 것은 신구 양대 세력을 화해시키려는 마지막 시도와도 같은 것이었다.5. 성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 그 이후애당초 그녀가 제거하고자 했던 것은 콜리니 제독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신교도들의 저항을 선동하고 왕마저 부추겨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 그리고 왕에게 섭정이자 모후인 자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그 한 사람만 사라진다면 사태는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암살은 실패했고, 뒤따를 파란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음모는 한밤중의 대대적인 학살을 불러오고 말았다. 사건이 그토록 크게 번지리라고는 그녀 자신도 미처 예상치 못한 터였다. 이듬 해에는 샤를 9세도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아끼던 셋째 아들이 앙리 3세로 왕위에 올랐지만, 각별히 사랑했던 이 아들에게 그녀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왕에게 후사가 없는 터에, 하나 남았던 왕제, 그녀의 막내아들마저 세상을 떠나자, 왕위는 앙리 드 기즈 아니면 앙리 드 부르봉(나바르)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유약한 왕과 늙은 모후는 양대 가문의 대립 사이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뿐이었다. 분별없는 왕이 사람을 시켜 앙리 드 기즈를 암살한 것을 알게 된 카뜨린느의 놀라움은 절망에 가까웠다. 암살 소식을 들은 지 13일만에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 아들 역시 그로부터 반년 뒤에는 그 뒤를 따랐다.6. 카뜨린느에 대한 소문과 진실그녀는 대체 어떤 여자였던가? 그녀는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들 한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은 시대적인 추세였다. 그녀는 "신구교 어느쪽도 믿지 않을 만큼 신앙심이 없었으며, 노스트라다무스를 추종하는 미신가였다"고도 한다. 그러나 비전의 마술에 대한 관심 역시 그 시대의 풍조였다. 그녀가 학살을 주도했던가? 그 점에 대해서는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 외국 출신 왕비에 대한 반감이 억측과 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