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중근의사 생에의 마지막 1년을 돌아보며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하여 일본제국의 심장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의 비장했던 발자취를 따라 밟으며 애국, 애민, 평화정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이번 탐방의 답사지를 지도와 함께 간략하게 소개하도록 하겠다.당시 년도/(안중근의사의 나이)당시 윤봉길 의사의 발자취당시 시대적 상황1909(31세)-엔치야에서 열두 명과 이후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할 것을 ‘단지동맹’으로써 결의하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동공보서를 거점으로 활동을 모색하던 중, 이토 히로부미의 만주시찰소식을 듣고, ‘이토 살해’를 자원하고 우덕순과 함께 하얼빈으로 향하다.-10월26일 아침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이후 뤼순감옥에 수감되다.-국내, 러시아령(연해주 일대), 하와이 등지에서 수많은 동포들이 안중근의 변호 비용을 마련하다.-12월, 옥중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집필하기 시작하다.(이듬해 3월 탈고)?미주 한국인 단체, 국민회로 통합 발족.상하이에서 아편 금지 제2회 국제회의 열림.독불협정 조인.의병군, 국내 각 지역에서 일본에 크고 작은 타격을 입힘.부토감 소네 아레스케, 통감에 임명됨.기유각서 조인. 이후 한국의 사법 및 감옥 사무를 일본정부에 위탁함.국내 의병을 진압하기 위한 일본군의 ‘남한 대토벌 작전’시작됨.청일협약조인. 이후 간도가 청에 귀속됨.이완용, 명동성당 앞에서 이재명의 습격으로 중상을 입음.1910(32세)-2월 7일부터 12일까지 관동도독부 뤼순 법원에서 열린 여섯 차례의 공판에서 이토의 죄악과 거사의 정당성을 당당하게 진술하다.-2월 12일, 사형 선고가 내려졌으나, 항소를 포기하고 『동양평화론』을 집필하기 시작하다.-홍 신부의 면회로 옥중 고해성사를 하고, 성제대례 및 성체성사를 거행하다.-3월26일, 뤼순 감옥에서 서른두 해외 치열했던 생을 마감하다.-5월, 만주일일신문사에서 『안중근사건 공판속기로』을 발행하다.-순국 삼 개월 만에 국내외에서 ‘안중근 전기’가 비밀리에 발해되어 읽히다남아프리카연방, 영국 자치령으로 발족함.이범윤.홍범도 등 연해주 연합의병, 국내로 진공하여 일본군과 교전.유인석.이상설 등,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3도의군 편성.제2차 러일조약 조인.유인석.이범윤 등, 성명회를 결성하여 합방 반대투쟁 전개.총리대신 이완용과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 사이에 한일병합조약 조인. 이후 조서총독부 설치됨.멕시코혁명 발발.- 동양 평화의 사도 안중근 -안중근의 옥중자전(獄中自傳)을 통해 보면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난 어느 시점에, ‘나라 걱정으로 병이 깊어진’ 부친 앞에서 청년 안중근이 시국관을 토로하는 대목이 나온다.“일본과 러시아가 개전했을 때, 일본이 전쟁을 선포하는 글 가운데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고 대한의 독립을 굳건히 하겠다고 해놓고 이제와서 일본이 그 같은 대의를 지키지 않고 야심적인 책략을 자행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이토의 정책입니다.”이 같은 시국관은 그때 이미 그가 단순한 우국청년을 넘어 냉철한 지식인으로서의 자각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하얼빈 의거’는 그로부터 4년 후이다.따지고 보면 ‘안중근시대’ 30년은 원칙적으로는 서구자본주의의 동점(東漸) 야욕으로 해서 아시아 전체가 격랑에 휩싸인 때였고 그 같은 정세의 와중 속에서도 ‘대한’은 꺼져가는 작은 등불이었다. 안중근은 그 등불을 한 몸으로 감싸 지키려했던 외로운 지식인이었던 셈이다. 지식인으로서의 그의 사상체계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애천 애인 애국(愛天 愛人 愛國)으로 집약된다고 할수 있다.일찍이 천주교에 입교해서 깨우친 하늘의 뜻에 대한 외경과 믿음, 부패 무능한 한말정부의 실정으로 해서 고통 받는 민중에 대한 끝없는 연민, 그리고 외세에 의해 스러져가는 조국의 운명에 대한 울분과 비애가 그 사상체계의 형성 배경이었던 셈이다. 스스로 의식하지 않았다해도 옥중자전, 미완의 , 숱한 유묵 등 그가 남긴 모든 기록들을 통해 이는 분명해지는 것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① 옛날 어느 집에 어머니와 오누이, 젖먹이가 살고 있었다. ② 어느 날 어머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 호랑이를 만나게 된다. ③ 호랑이는 어머니가 가진 음식과 어머니의 몸뚱이를 차례로 먹고 어머니로 변장한다. ④ 어머니로 변장한 호랑이는 아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그 집으로 가서 문을 열라고 한다. ⑤ 오누이는 의심을 하지만 호랑이의 속임수에 넘어가 문을 열어 준다. ⑥ 호랑이가 젖먹이를 잡아먹는 것을 보고 오누이는 변장한 호랑이가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⑦ 오누이는 호랑이를 속여 집밖으로 나온 다음 나무 위로 올라가서 숨는다. ⑧ 호랑이가 오누이의 도망을 알고서는 뒤쫓아 와서는 우물 속에 비친 오누이를 발견하고 건지려 한다. ⑨ 누이동생이 웃는 바람에 호랑이는 나무 위에 있는 오누이를 발견하고 올라가려고 한다. ⑩ 오누이의 속임수에 의해 호랑이는 나무에 오르는 데 처음에는 실패하지만 누이가 방법을 알려 주어 호랑이가 나무에 오른다. ⑪ 오누이는 하느님께 동아줄을 내려줄 것을 기원한다. ⑫ 하늘에서 새 동아줄이 내려와 오누이는 그 줄을 타고 昇天(승천)한다. ⑬ 호랑이도 하느님께 동아줄을 내려 줄 것을 기원하다. ⑭ 호랑이는 헌 동아줄을 타고 昇天(승천)하려다 수수밭에 떨어져 죽게 되고, 그대부터 수숫대는 호랑이의 피에 의해 붉은 색을 띠게 되었다. ⑮ 하늘에 오른 오누이는 오빠는 해가 되고 누이는 달이 된다. ? 누이가 밤에 다니기 무섭다고 하여 서로 자리를 바꾸어 오빠는 달이 되고 누이는 해가 된다.▶ 성격 : 민담|신이담|유래담▶모티브유형 : 일월 신화(日月神話)▶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동천리▶정의전라북도 남원시 운봉면 동천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게 된 오누이가 하늘에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전설▶개설「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일월 신화가 민담의 형태로 변이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해님 달님」·「하늘에 올라간 오누이」·「해님과 달님이 된 오누이」·「일월 전설」 등의 동화로 개작되어 읽히고 있다.1. 호랑이와 어머니의 대결2. 어머니를 잡아먹은 호랑이가 자식들을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오누이가 호랑이의 정체를 알고 도망을 시도함3. 호랑이의 공격을 피해 나무에 오른 오누이가 누이동생의 실수로 해서 다시 위험에 처하게 됨4. 오누이는 하늘의 도움으로 동아줄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죽게 됨5. 하늘에 올라간 오누이가 각각 해와 달이 되지만 누이동생의 뜻에 따라 서로 자리를 바꿈「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일월 신화(日月神話)에 속하는 이야기로,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설화이다. 일월 신화의 흔적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설화로는 경북 포항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연오랑 세오녀」를 들 수 있다. 민담 가운데서도 일상적 공간에서 일어날 수 없는 허구적이고 기묘한 이야기를 다룬 신이담에 속한다.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세계적 광포(廣布) 설화로, 대개 호랑이가 적대자로 등장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우가 등장하며, 호랑이가 수숫대 위에 떨어져 수숫대를 빨갛게 물들였다는 유래담으로까지 이어진다.어머니의 귀가 시도와 음식 :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머니는 반드시 손에 먹을 것이 쥐어진다. 이 음식은 노동의 대가일 수도 있고, 자식을 부양하는 어머니의 도리에서 구해진 음식을 수도 있다. 가지고 오는 음식 중 떡이나 묵, 팥죽 등의 경우는 제례에서 사용되는 음식이기에 신화적 속성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인간과 호랑이와의 대화 : 동화적 속성내포.아버지의 부재 : 모계사회에서는 외삼촌이 아버지의 역할을 감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뉘의 관계는 실질적으로나 형식적으로 가정의 중심이 된다. 이 이야기에서 어머니와 오뉘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고 아버지에 관한 언급이 거의 되어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모계사회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 목 차 -1. 머리말12. 뉴 프론티어 해외 문화탐방23. 심은경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 길 600리54. 맺음말61. 머리말보람있는 대학 생활이란 주제에 대해 저는 제가 최근 대학생으로서 보람 있었다고 생각되는 일들에 대해 소개해 볼까 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지난여름 방학동안의 일들을 소개할까 하는데 그것은 학기 중의 대학생활 또한 중요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자기계발을 하는데 방학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학생들 또한 이글을 읽고 무의미 하게 방학을 보내지 않고 좀더 의미있는 방학을 보냈으면 합니다.2.1 뉴 프론티어 해외 문화탐방지난여름 방학 본교의 “뉴프론티어 해외 문화탐방” 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해외여행이란 것을 해보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던 동기는졸업 전까지는 어느 곳이던 해외에 한번 나가보고 싶었고 기왕이면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되어 가게 된다면 비용도 절감할 수 있고 다른 과 학생들과의 인맥도 넓힐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3개의 대륙 중 지중해 지역에 지원하기로 마음을 먹은 뒤엔 자료 수집을 하여 여행계획서와 지원서 작성에 돌입하였습니다. 아래 나오는 글은 제가 지중해 지역 중 터키를 타깃으로 하여 작성했던 지원동기 글입니다.터키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이슬람교와 기독교 등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문화의 복합나라이다. 기원전 2000년 중앙아시아 남부에서 돌궐족 에서부터 시작한 터키에는 메소포타미아,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수많은 문명들이 거쳐 갔다. 다양한 기후와 자연환경,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 이처럼 터키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출한 동서 문화의 접목점인 셈이다. 세계화가 가속화 되면서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지구의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이러한 인구이동과 문화의 공존이 지속되면 머나먼 미래 지구의 모습을 터키라는 나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 여행이 처음이기에 한 번의 해외문화 탐방으로 세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특색이 있는 나라보다, 동서 문화를 집약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터키 탐방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세계인들의 역사, 철학, 다양성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고, 천혜의 자연을 체험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며, 원대한 역사 속의 유적들을 보며 역사 속의 위대한 선조들의 영혼을 느껴보자 한다.위와 같은 지원동기를 통해 최종적으로 뉴프론티어에 선발된 저는 6월 23일부터 12일간 한국에서 약 12시간 떨어진 그리스와 터키로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12일간의 여행기간 중 너무나 많은 곳을 방문했기에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소와 추억들을 소개해 보겠습니다.맨 처음으로 소개할 것은 그리스 공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입니다. 우리는 한국에서 출발하여 터키를 경유하여 그리스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때는 한참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었던 기간 이였고 우리나라는 16강 진출을 확정지었고 같은 조였던 그리스는 탈락의 쓴잔을 마시고 귀국길에 올랐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그리스대표팀의 아테네 입국시간과 저희의 입국시간이 겹쳐 생각지도 않았던 그리스 대표팀을 공항에서 보게 된 거였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당황하여 카메라를 누를 틈도 없이 대표팀이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장면만 지켜봤지만 심사대를 통과하니 대표팀은 짐을 받기위해 대기 중이였고 우리 모두는 용기를 내어 대표팀 주위로 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선수들은 흔쾌히 사진요청에 응해 주었고 저는 현재 기성용과 차두리와 같은 소속팀에서 뛰고있는 사마라스라는 선수와 같이 사진을 찍게 되었습니다. 아래는 사마라스 선수와 찍은 사진입니다.사마라스와 함께터키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장소는 “예레바탄사라이”란 곳입니다. 단어의 의미는 지하궁전이라는 뜻이며 이스탄불에 남아 있는 수백 개의 고대 저수조 중에서 가장 큰 저수조입니다. 이스탄불이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었던 6세기에,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의 부족한 식수를 해결하기 위해 아야소피아(세인트 소피아성당) 옆 지하에 건설했다고 합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교회당과 저수조를 한 장소에 지었는데, 점차 물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황제가 저수조 규모를 확장하고 교회당과 합칠 것을 명했다고 합니다. 1968년 균열된 부분과 기둥들을 수리·보수하였고 1985년 이스탄불 메트로폴리턴박물관이 대대적으로 복원한 끝에 1987년 9월 9일부터 공개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지하궁전이 지하궁전에서 제일 유명한 2가지가 눈물의 기둥과 메두사 조각상입니다.눈물의 기둥은 다른 기둥들과는 다르게 민무늬가 아닌 눈모양의 무늬가 들어가 있고 항상 물이 고여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역사에 남겨져있지 않지만 ,이곳에만 눈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기둥을 만든 이유에는 대략2가지 설이 있는데 그 첫 번째 설이 지하궁전을 만들기 위해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출구쪽을 표시하기 위한 이정표로 쓰여 졌다는 것입니다. 확실한건 알 수 없지만 이 기둥에만 물이 맺히게 참 신기했습니다.메두사 조각상 눈물의 기둥좋은 풍경과 신기한 유물 등을 보는 것도 즐겁고 유쾌한 일이였지만 타지에서 같은 한국사람들을 만나는 것 또한 기쁘고 방가운 일이였습니다. 관광지마다 많은 한국인들을 마주치게 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톱카프 궁전에서 프로축구 팀인 광주 상무를 만난 것은 가장 기막힌 우연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광주 상무팀은 6.25전쟁의 터키군 희생을 추모하는 축구 경기가 이곳 터키에서 열려 한국을 대표해서 광주 상무가 시합을 하러 온 거였습니다. 경기결과는 1:1 무승부라고 선수분이 직접 말해 주었고 기념촬영도 빼놓지 않고 찍었습니다. 사진촬영이 끝나고 선수들에게 육군 예비역의 포스로 남은 군 생활 잘하라는 말까지 빼놓지 않고 해주었습니다.광주 상무팀과 함께12일간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하며 그 자체의 즐거움도 컸지만 웅장하고도 거대한 역사와 문화를 보며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몸소 체험해 가며 이해 할 수 있었고 우리나라와 넓게는 아시아 문화권 비교 하며 생각의 차원을 넓힐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유럽권이며 자국어를 쓰는 국가들이긴 하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들 또한 많았기에 영어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되어 귀국 후에 영어 공부의 자극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2.2 심은경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 길 600리앞에 소개했던 “뉴프론티어 해외문화탐방”으로 방학을 시작했다면 “심은경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 길 600리"프로그램으로 여름 방학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이 행사는 심은경 미국대사와 함께 한국전쟁 60돌을 맞아 낙동강 일대의 전적지를 자전거로 돌아보며 한미관계의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짚어보며, 내일을 생각해 보고자 계획되었습니다. 8월 29일 (일) 여수를 떠나 9월 2일 (목) 경북 칠곡 왜관에 닿을 때까지 닷새 동안 하루 열명씩 모두 50명의 학생들이 선발되었고, 저는 이번 행사가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간접적으로라도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의 수준을 높이고 전쟁에 희생된 국군장병들과 미국장병들 그 이외의 파병되어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할 수 있는 관심과 분위기를 조성해 줄 수 있는 좋은 취지의 행사인 것 같아 이렇게 지원 후 선발 되어 첫 번째 구간 이였던 여수-사천 구간에 참여하였습니다.
통신언어의 실태와 개선 방안- 네티즌들의 통신 언어 사용을 중심으로 -- 목 차 -1. 서론12. 통신 언어의 실태와 분석12.1 네티즌들의 통신 언어 예시32.2 실태 분석43. 통신 언어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54. 결론671. 서론PC가 보급되고,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은 이미 우리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아가고 있다. 날이 갈수록 인터넷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일명 ‘통신언어’ 라는 것이 생겨났는데, 이것은 큰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초기 통신 속도는 너무 느렸기 때문에 단어를 축약하는 경제성의 논리로서 통신언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통신환경이 개선되기 시작하면서 통신언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다양해졌다. ‘새롭다, 재미있다, 자유롭게 채팅에 참여할 수 있다, 빠른 타자, 맞춤법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므로 편하다’ 등이다. 어느새 통신언어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해야 하는 것처럼 인터넷의 새로운 언어로 떠오르고 있다. 마치 통신언어를 구사하지 않으면 혼자 뒤떨어진 사람이 된 듯한 느낌까지 불러일으킨다. 논쟁이 되고 있는 통신언어 이용 찬성의 기본입장은 ‘자기 개성, 기계 문명 속 친밀감의 형성, 새로운 시대의 또 다른 한글’ 이란 것이다. 하지만 위와 같은 이유는 현재 통신언어가 우리 자신에게 미치고 있는 영향을 보완해 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올바르게 우리말을 익혔다고 할지라도 통신언어에 익숙해질 쯤엔 맞춤법이나 표준어 사용 등 올바른 한글 구사에 어려움이 따른다. 통신언어는 보통 ‘띄어쓰기와 문자구성 원칙 무시, 발음 왜곡, 관련 없는 한자 사용, 은어나 비속어 사용’과 같이 일상어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통신언어가 한글파괴와는 상관없다는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까지 통신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일상생활까지 통신언어가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 고유 언어질서에 혼란이 야기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어린아이들까지 인터넷을 이용한다. 자칫 우리말과 글보다 통신언어에 먼저 그래서 필자는 이번 보고서를 통해 통신 언어의 실태를 확인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을 개선 방향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2. 통신 언어의 실태와 분석먼저 통신언어의 실태를 알기전에 통신언어의 정의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권연진(2000)에서는 통신언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통신언어라 함은 통신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사 소통 과정에서 사용되는 음성·문자를 통칭하므로, 본 논문에서는 컴퓨터 통신언어를 채팅 언어(chatting), 도배 언어(emoticon),네트워크 게임상의 게임 언어(game), 전자 게시판 언어(BBS: Bulletin Board System),핸드폰 언어(cellular ) 등 컴퓨터 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뿐만 아니라 문자 메시지까지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으로 정의하였다.이정복(2000)에서 “통신언어란 컴퓨터 통신, 인터넷, 휴대전화에서 쓰이고 있는 문자로표현되는 언어를 포괄하여 말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하였다. 권연진(2000)이나 이정복(2000)에서 내린 정의만으로 보면 의사 소통을 위해 통신상에서 사용하는 일체의 언어를 통신언어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넓은 의미의 통신언어와 실제 우리가 관심을 갖는 좁은 의미의 통신언어를 구별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다. 박동근(2001)에서는 통신언어를 넓은 의미에서 좁은 의미로 나열 하였다.ㄱ. 통신상에서 사용되는 모든 문자언어.ㄴ. 통신상에서 특히 사용 빈도가 높은 문자언어.ㄷ. 통신상에서만 사용되는 일반 언어의 변이형.ㄹ. 통신상에서 만들어진 새말.ㅁ. 통신상에서 새롭게 의미가 부여된 된말.ㅂ. 통신상에서 독특하게 사용되는 문체나 어법.ㅅ. 통신상에서 의미 전달을 목적으로 사용되는 특수한 기호.또 통신 언어의 범위를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볼 수있다. 통신언어의 범위crystal인터넷 언어의 영역(2001)ㄱ. 전자편지ㄴ. 대화방 언어ㄷ. 가상공간)ㄹ. 월드 와이드 웹송민규사이버언어 사전과 사이버언어의 현재(2004)ㄱ. pc통신ㄴ. 인터넷ㄷ. 문자 메시지ㄹ. 기타매체(게임채팅, 게시판, 쪽지신저(messenger)창에서의 대화를 옮겨놓은 것이다.가. 오늘 또 춥다네 딱 이틀 괴안타가나. 그러네 주말에 계속 춥다지가. 날씨 언니가두껍게입었드라구나. 헉 빨랑봄됬으면 조켔으가. 봄 두만만치 안을거.야 구정엔 설오니나. 엉가. 칠이나.나. 근데 아마짧게 울 아들이 유치원 행사하는데가. 엉 글쿠나나. 연습해야한데.--;;;가. 어떤연습나. 춤추고 노래하고가. 행사의 목적이 있을 거 아냐나. 흠....유치원에서학기가 바뀌면 한 번씩 해 재롱잔치 같은거가. 일종의 종강ㅋㅋㅋ나. ㅋㅋ그러치다음은 한겨례 신문사의 정대하 기자가 통신 언어에 대해 집필한 기사이다.강희숙 조선대 국문학과 교수는 지난 2일 564돌 한글날 기념 전국 국어학 학술대회에서 ‘통신언어의 수용과 확산에 대한 사회언어학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비교적 보편적으로쓰이는 80개의 통신언어 중 일상생활에도 사용하는 어휘는 ‘남친, 대박, 빡세다, 쏘다, 열공, 짱이다, 당근’ 등 7개인 것으로 나왔다. 강 교수는 광주광역시에 사는 10~50대 남녀359명에게 80개 통신언어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여 이런 연구 성과를 얻었다. ‘꾸벅, 꿀꿀하다, 넘, 머, 부끄, 셤(시험), 열씨미, 잼있다, 졸라, 훨’ 등 10개 어휘 등 17개통신언어는 전 세대에 걸쳐 80% 이상의 높은 인지도를 보여 일상생활 언어로 진화중이다. 하지만 ‘간지나다(멋지다), 개드립(적절치 못한 붙임말), 귀차니즘(모든 것을 귀찮게 여기는생각), 캐안습(감동적이다), 볼매(볼수록 매력있음),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하다), 흠좀무(흠 조금 무섭군요)’ 등은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어휘들로 30대 이하 세대만 사용하는 것으로분류됐다. (한겨레 IT/과학 12면3단) 통신 언어 실태2.2 실태 분석통신 언어들의 형태를 알아보면 겜방(게임방) 낼(내일) 설(서울) 암거나(아무거나) 등 음절 수줄이기를 줄이거나 강추하다(강력+추천하다) 멜친구(메일+친구) 정모(정기+모임) 등 단어 합성 후 줄이기도 한다. 이밖에 갈께여(갈게요) 남니다(납팅 참여자 사이에 자신을 과시하거나 채팅 분위기를 재미있게 하려는 표현적 동기가 작용한다. 일를꼬야(이를 거야) 이뿌다(예쁘다) 알쥐(알지) 긍대(그런데) 엄따(없다) 등 유희적 비틀기가 대표적이다. 졸라(아주, 매우) 씹혔다(무시당했다) 깔쌈하다(멋져 보인다) 등 은어 비속어도 사용된다. 방가(반가워요) 재밋어요(재미있어요) 소개하져(소개하지요)와 같이 문장 종결형의 무시와 변형도 자리 잡았다.통신언어로 이모티콘도 인기다. 기쁠 때는 *^^*, 슬플 때는 `ㅠ.ㅠ' 등의 단순한 기호를 감성적으로 조합, 자신의 기분을 드러낸다. 컴퓨터 자판의 다양한 기호와 문장, 숫자를 엮은 형태다. 사람의 감정 표현에서 출발해 각종 사물과 간단한 스토리까지 만들 수 있어 제한된 문자의 한계를 넘어서서 사이버상의 커뮤니케이션을 보다 정감 있게 해 준다. 키보드상의 기계적인 느낌을 완화하고 실생활에서와 같은 감칠맛 나는 대화를 가능하게 해 준다.또 통신언어는 10대와 20대에서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현재의 30,40대의 경우 이미 20대 때부터 컴퓨터와 인터에 익숙하기에 직장에서 업무상으로 사용하거나 가정에서도 지인들과 메신저의 사용이 빈번하다. 메신저의 대화창에서 상대방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 소리가 나는 대로 적기도 하며 띄어쓰기나 철자 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문자 메시지와 인터넷 게시판에 널리 사용 되고 있으며 한국어의 통신언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영어권의 문자 메시지 표기에도 빈번하게 출현하고 있다. 다음은 데이비드(Crystal, David)가 언급한 영어권 문자 메시지의 표기 방법이다.cus, cuz -> because fone -> phone luv -> loveomigod -> oh my god ova -> over shud -> shouldskool -> school sum -> some thanx -> thanksthru -> through wot -> what ya -> you (Crystal, 파괴 : 통신언어에서 나타나는 반형식주의적인 특징은 다음과 같은 맞춤법 파괴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실제 나는 소리와는 다른 표기이지만 규범이기 때문에 지켜지던 것들을 소리 나는 대로 적는 연철이나 소리 나는 대로 적기도 있지만, 이와는 역행하는 분철, 된소리로 적기 등으로 나타난다.띄어쓰기 파괴 : 통신언어에서는 띄어쓰기의 규정도 파괴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글자를 빨리 쳐서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경제성의 욕구로 파악하는 경향도 있지만, 이와 반대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따라서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형식적인 것을 거부하고 규범성을 파괴하고자 하는 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문장부호 중복사용 : 통신언어에서는 문장부호를 바르게 쓰는 일은 상당히 드물다. 마침표의 경우는 생략되거나 여러 개의 점을 찍고, 물음표나 느낌표도 여러 개를 사용한다. 말줄임표나 쉼표는 거의 의미 없이 사용되기도 하고, 기존의 문장부호가 아닌 부호들도 함께 사용이 된다.기존의 규칙성 파괴 : 언어의 변화는 화자와 청자 사이의 협상에서 이루어져 왔다. 화자는 가능한 한 쉽고, 편리하고 간편한 언어 표현을 통하여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고 싶어 하는 경제성의 원리를 추구하고, 청자는 뜻을 식별해야 하고, 의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정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별성의 원리를 요구한다. 표현하기에 편리하기 위해서는 조음 작용을 간결하게, 이해하기에 편리하기 위해서는 청취 작용을 분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그런데 이 두 방향은 서로 상충될 수 있어, 두 방향이 조화를 이루면서 언어는 변화한다는 것이 잠정적인 언어 변화의 규범이 되어 왔다. 그러나 통신언어에서 발견되는 언어 변화는 경제성의 원리와 구별성의 원리를 가지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원리들이 지켜지는 반면, 다른 편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원리를 파괴하는 변화의 양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위와 같은 문제를 한 마디로 표현 하자면 한글의 파괴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글 파괴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지원동기터키는 우랄 알타이어계로 한국과 뿌리가 같은 나라로 한국전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전투 병력을 파견했던 한국의 혈맹이다. 그때의 참전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 그들은 한국인을 ‘코렐리’(Koreli)라고 부르며 형재의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3,4위전에서 우리가 이상하게도 경쟁심보다는 유대감을 더 느꼈던 것은 이때문이 아닐까?이러한 점 외에도 터키는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이슬람교와 기독교등 다양한 문화가 살아 숨쉬는 문화의 복합나라이다. 기원전 2000년 중앙아시아 남부에서 돌궐족 에서부터 시작한 터키에는 메소포타미아, 오리엔트, 그리스, 로마, 비잔틴, 이슬람 등 수많은 문명들이 거쳐 갔다. 다양한 기후와 자연환경, 그리고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유적들이 존재한다. 이처럼 터키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창출한 동서 문화의 접목점인 셈이다. 세계화가 가속화 되면서 여러 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지구의 미래의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이러한 인구이동과 문화의 공존이 지속되면 머나먼 미래 지구의 모습을 터키 라는 나라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외국 여행이 처음이기에 한 번의 해외문화 탐방으로 세계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특색이 있는 나라보다, 동서 문화를 집약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터키 탐방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세계인들의 역사, 철학, 다양성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고, 천혜의 자연을 체험하며 호연지기를 기르며, 원대한 역사 속의 유적들을 보며 역사 속의 위대한 선조들의 영혼을 느껴보자 한다.탐방목적①다양한 역사가 공존하던 시대의 숨결을 느껴본다.②서양과 동양 문화를 동시에 체험해 본다.③현지에 x대학교의 이미지를 제고한다.터키의 역사와 문화터키는 북반구에서 적도와 북극점으로부터 거의 같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모양은 직사각형 꼴이며 면적은 81만 4578km²로, 이중 극히 일부분이 유럽에 속해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아시아 지역에 걸쳐 있다. 삼면이 흑해, 에게해, 지중해 등의 바다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일곱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유럽 쪽으로는 그리스와 불가리아, 아시아 쪽으로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과 이웃하고 있다. 흑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과하여 마르마라해로 연결되고 다시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하여 에게해와 지중해로 연결된다.터키는 지형이 다양한 만큼 기후도 다양하다. 중앙 아나톨리아는 무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제한된 강수량등 대륙성 기후를 보이지만, 남쪽과 서쪽의 해안지역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지 않으며 비도 제법 내린다. 북쪽은 사철 온화한 날씨가 계속되지만, 동쪽은 겨울철 온도가 섭씨 -35도까지 떨어진다. 반대로 남동쪽은 한여름 온도가 섭씨 45도까지 올라가 뱀과 전갈이 서식하기에 알맞은 날씨이다.터키인은 11세기에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에서 이동을 시작해 12세기에 아나톨리아에 셀주크 투르크 제국을 건설하였으며, 10세기 무렵부터 이슬람교를 받아들였다. 오스만 투르크라는 명칭은 오스만 공국의 시조인 술탄 오스만에게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1453년 술탄 메메트 2세는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하여 오스만 공국의 수도를 삼았고, 그 후 200년 가량 투르크족은 사방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특히 술탄 술래이만 때에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19세기 그리스와 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하면서 통치권을 잃었고, 19세기 말 소수 민족과 소수 종교 분쟁으로 지방자치를 허용했던 비 이슬람 종교 자치제가 붕괴되면서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함께 제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아르메니아인에 대한 대학살이라는 비극과, 패전으로 해외 영토를 잃고, 연합군측의 터키 분할론을 야기했다.1908년 청년 투르크당의 케말 파샤 장군이 이끈 군부와 지식인들이 혁명을 일으켜 술탄국왕을 해외로 추방함으로써 1923년 앙카라를 수도로 하는 ‘터키공화국’이 탄생 되었다. 케말 파샤는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술탄제와 칼리프제는 폐지를 단행하였고 근대화정책을 추진, 경제, 정치, 대외적으로 발전을 거듭한다. 그 후 케말 파샤는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 받게 된다.1938년 케말 파샤의 사망으로 불안정한 정세와 경제는 어두운 조짐을 보였지만 의회정치 및 다당제를 정착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립을 유지하였고, 1952년 NATO에 가입, 1955년 바그다드 조약을 맺었다. 1959년 그리스와 키프로스 분쟁을 해소하는 한편 1960년 군부 쿠데타를 계기로 불안한 정세를 보였으나 1961년 터키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새 헌법이 채택되었고 1963년에 유럽 공동시장의 준 회원국이 되었다.-터키-위치 - 유럽동남부, 지중해 및 흑해 연안수도 - 앙카라(Ankara)공용어 - 터키어, 쿠르드어, 아랍어통화 - 터키 리라(TL)환율 :1,000원 = 1,325,580 Turkish Lira*이스탄불 관광-(1일 탐방코스)*지하저수지- 입장료(1달러 학생)532년 유스티아누스 황제 시대에 만들어진 지하 대 저수지로 소피아 교회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세로 140m, 가로 70m, 높이 8m, 336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대형 저장고로서, 30km 정도 떨어진 수원지로부터 수로를 통해 물을 공급받았다. 저장고의 구석에는 기둥의 받침 부분에 그리스의 신화에 등장하는 메두사의 두상을 거꾸로 놓고 조명까지 비춰 을씨년스런 느낌을 준다. 지하 궁전의 입구는 그냥 지나칠 정도로 단층의 조그마한 건물이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면 특이한 음향효과와 조명으로 인해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다.지하저수지*지하저수지→그랜드 바자르 (도보 15분)지붕이 돔으로 되어 있는 실내 시장. 4,000여 개의 상점과 67개의 골목길로 이뤄진 이 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시장으로, 출입구만도 20여 개나 된다. 현지인도 많이 이용하지만 관광객들로 항시 붐벼 처음 가는 외국인은 길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그마한 액세서리에서 금은방까지 없는 것이 없다. 관광객이 많아 물건값을 실제 가격보다 높게 부른다. 일반적으로 상인이 부른 값의 절반을 깎고 흥정을 시작해야 한다.그랜드바자르*그랜드 바자르→히포드롬 (도보 12분),블루 모스크의 바로 앞에 위치한 광장으로 비잔티움 시대에 도시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광장. 기원전 200년 경에 로마의 황제 세베루스에 의해 검투 경기장으로 만들어지고 그 후에도 계속 도시의 중심지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