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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제문-문학적 형상화와 작가의식
    哀 祭 文- 「조침문」의 문학적 형상화와 작가의식 -1. 애제문의 개념과 특성애제문은 애사와 제문을 합쳐서 죽음을 슬퍼하거나 죽은자를 애도하는 문장으로 천지. 산천. 종묘. 사직 .조상 등에 제사드릴 때 귀신에게 고하는 문장을 말한다.애제문의 범주에는 망자에게 애도의 정을 표시하는 애사, 제문, 조문, 뢰(?) 등이 있고 산천신에 대하여 기도하는 고문, 축문, 도량문, 재사, 제문을 포괄한다.가장 오래된 애제문은 납제를 창시하였다는 이기의 기도문으로 『문심조룡』 『축맹』에서 보면 “제방은 견고하고, 물은 넘치지 말라. 벌레도 들끓지 말고, 초목은 우거져라” 라는 짧은 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밖에 순임금이 전답의 신이 올린 축사, 주나라 신관이 읽었던 축사도 있다. 신라때 지귀설화에 나오는 축사(祝詞)의 형식도 이러하다.망자를 애도하는 제문은 춘추시대에 기원한다. 즉 진목공이 죽어 대부 자거씨의 세 아들이 순장되자 국인들이 애도하여 지었다는 진풍(秦風)의 편이 그 남상이라고 본다. 한대 이후로 신을 꾸짖는 내용의 축사도 나오게 되고, 망자의 공적을 드러내고 애도하는 뇌(?), 사부(辭賦)에서 파생된 애사(哀辭)와 조문(弔文) 이 발달 하였다.유협은『문심조룡』에서『애조(哀弔)』에서 “애사의 본질은 심정의 면에서는 통상(痛傷)을 주안으로 하고 문사의 면에서는 애석(愛惜)의 느낌을 철저하게 표현함에 있다” 고 하였다. 애제문에는 산문도 있고 운문도 있으며, 사부 형식도 있다.신라에서 경덕왕 때 향가체의 『제망매가』가 나왔으며 최치원은 오방,토지,산신에게 올리는 제문을 남겼다. 그 뒤 한문의 애제문이 많이 나와서 『동문선』에 수록된 것이많다. 유교식 제사가 확립되면서 더욱 망자에 대한 애제문이 발달하였고, 이것이 한문산문에서 주요한 문체로 확립되었다.1) 형식적특성한글 애제류는 운문으로도 산문으로도 가능하여 특정한 형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문 애제류의 경우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애사의 경우 반드시 앞에는 산문의 서가 있고 뒤부분에는 운문을 붙이는데, 전편 이전에 제문에는 서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개인 제문의 경우는 산문으로 된 것이 대부분이다. 축문은 산문으로 짓기도 하고, 운문으로 짓기도 하며, 또 때로는 운문과 산문이 함께 하기도 한다. 애제류의 형식은 일반적으로 산문에 서가 앞에 나오고 운문으로 총괄하는 형태가 있고 다른 하나는 완전한 운문의 경우가 있으며, 또 다른 하나는 완전한 산문으로 이루어진 형태이다.다음은 제문의 서식이다.維年號幾年歲次某年某月干支朔某日干支 親(備要隨所稱)某官姓某謹以淸酌庶羞之尊致祭于某親某官某公之柩云云 (別爲文字以敍情意)尙饗2) 내용적 특성뢰의 경우 먼저 가계를 말하고 다음으로 재주와 덕행을 언급하며, 그 다음에는 관직을 말하고, 그 다음에는 죽음에 대해 언급한다. 애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고, 제문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형식적 특성에서도 이미 언급하였지만, 애제문은 비지류와 비슷한면이 많다. 다시말해서 내용상 전기문적 요소가 많다. 즉 죽은 이의 생평, 업적, 그리고 애도와 추모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이 천지, 산천, 신명등에 대한 문장인 각종 제문의 경우에는 추모나 애도보다는 기원이나 감사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다.2. 문체의 형식과 성격1)제문원래 신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미였다. 일반적으로 죽은 이에 대한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우나, 그에 한정되지 않고 사묘에 알리거나 죽은 이를 보내거나 죽음을 애도 혹은 추모하는 문장을 제문이라 한다. 원래 가까운 사람의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차려 놓았음을 알리는 글이었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제사를 받는 이의 생전의 언행을 찬미하여 애도를 표하는 글이 되었다.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작자의 남녀나 신분의 천귀를 불문하고 한문으로 지어졌고 또 사용되었으나, 얼마 전까지 영남지방의 규방에 널리 퍼져있던 내방가사 일종으로서 한글 제문이 많았다. 이는 부녀자들 사이에서 지어지고 읽혀진 것으로 형식이 가사체임은 물론 연구자에 의하면 내용에 있어서 풍부한 문학성을 띄고 있다. 이처럼 제문은 훨씬 더 남성도 있고, 남편이 부인을 위해 짓거나 부친 혹은 형이나 제가 누이를 위해 짓는 경우와 같이 남성대 여성도 있는데, 이 경우 내용이 다양해 질 수도 있고, 한문은 물론 한글 제문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문학적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 어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경우가 많고, 또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적지 않은 경우가 있다.2)애사애는 슬픔을 마음에 의지한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다. 이 체재는 후반 반고 (양씨애사)에서 비롯되어, 계속 지어져 왔다. 특히 재주가 있어도 등용되지 못하였거나, 덕이 있어도 오래 살지 못하였음을 애통하는 글이다.3)조문조나 제는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제와 마찬가지로 조가 귀신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의미는 죽은 사람의 종말에 대해 묻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제가 죽은 자에 대해 직접적으로 슬퍼하는 것이라면, 조는 인연관계가 없는 경우라도 스스로 슬퍼하는 경우의 문장이 많다.4)뢰사뢰는 쌓는다는 뜻으로 덕행을 열거하여 칭송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뢰는 상세해야하는데, 이는 뢰를 보고 시호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 내용은 죽은 이의 덕행을 열거하여 칭찬하는 것이다. 이 체재는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에 대해 지을 수 없고,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에 대해 지을 수 없다. 그래서 천자가 죽으면 하늘을 칭하여 뢰를 지었고, 사대부가 죽으면 군주가 그를 뢰 하였다. 그 체재를 볼 때 먼저 세계와 행업을 기록하고 뒤에 애상의 뜻을 말하였다.5)재사부처에 대한 기원문이다. 이래 누구나 지내던 일종의 기원 제례에 쓰이던 문장이다.3. 작품의 이해1) 작품의 내용이 작품은 제침문 이라고도 하는데, 애지중지 하던 바늘을 부러뜨리고 그 안타까운 마음을 제문형식으로 표현한 의인체 수필이다.일찍 남편을 잃고 바느질로 소일하며 지내던 조선 후기 양반 가문의 부인이 오랫동안 아끼던 바늘이 부러지자 이에 대한 애석한 심회를 바늘로 의인화하여 표현했다.이 작품은 크게 일곱 부분으로 나이별을, 넷째 단락은 바늘의 외모를, 다섯째 단락은 바늘의 재능을, 여섯째 단락은 바늘이 부러지게 된 과정과 허전함을, 결말 부분에서는 잘못을 뉘우치고 후세에 백년고락과 일시생사를 바람으로써 마무리 짓는다.2) 작가와 작가의식이 글은 조선 순조(1800~34)연간에 유씨(兪氏) 부인이 지은 국문 수필이다. 일찍이 문벌 좋은 집으로 시집갔으나 과부가 된 유씨는 슬하에 자녀가 없이 바느질을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데 하루는 시삼촌에게 얻은 마지막 바늘이 부러지자 그 섭섭한 심회를 누를 길 없어 이 글을 지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늘 하나가 부러진 것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슬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자가 살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그 시대에는 남편 잃은 여인의 재혼이 허용되지 않았다. 이 시대의 여인에게는 자유로운 바깥 활동이나 흥미를 가질 만한 오락 활동의 기회도 거의 없었다. 오로지 삼종의 도에 얽매인 인종의 세월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규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바느질뿐이었을 것이다. 바느질은 조선 여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덕목의 반드시 갖추어야할 중요한 범절이었다. 그래서 바느질 한 땀 한 땀에 여인의 정성과 사랑과 염원이 깃들어 있었고 바느질에 소용되는 용구 또한 정성스럽고 비밀스럽고 귀중하게 간직해 왔다. 그러기에 부러진 하찮은 바늘을 애통해 하는'조침문'이 지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3) 작품의 문학적 형상화가. 형식적인 면작자는 바늘을 섬세하고도 치밀한 관찰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작자는 일찍 남편을 잃고 자식마저 없는 외로운 여성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늘은 작자의 희로애락을 같이 한 동반자였다. 바늘이 곧 남편이었고, 자식이었던 것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에서 작자는 바늘을 통하여 자신을 가다듬고 억눌린 정서를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만큼 작자에게 있어서의 바늘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 지은이가 상식의 한도를 벗어날 만큼 부러진 바늘을 애도하는 것은 자기애라는 관점에서도 해석할 수도 있다. 지은대상으로서 바늘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지은이는 무수한 바늘 중 특정한 바늘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을 받아 줄 남편은 물론 자신의 마음을 담아낼 그 무엇도 주변에 없던 지은이의 처지에서 본다면, 외로움을 토로할 대상을 주위 사물에서 찾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은이는 그 대상으로 바늘을 택한 것이다. 그만큼 조선시대 아낙들은 지독한 외로움 속에 살았던 것이다.나. 구성적인 면제문의 형식으로 된 3단 구성으로 되어있다.기사: 영결의 심회를 적는 취지- 남달리 정회가 깊은 바늘을 이 글을 적어 영결함.본문: 바늘의 행장과 나- 바늘과 동고동락(同苦同樂)①바늘을 얻은 내력②나의 신세와 바늘과의 관계③바늘의 신묘한 재주④바늘과의 동고동락⑤바늘의 최후결사 : 애도하는 심정과 후세에 대한 기약(후세에 다시 만나 동거지정을 잇기 바람)다. 표현적인 면ㄱ. 전통적인 제문의 형식으로 표현함.ㄴ. 대상에 인격을 부여한 의인화 수법ㄷ. 의성어와 의태어의 사용으로 생생한 느낌을 줌.ㄹ. 섬세하고 치밀하고 우아한 필치ㅁ. 과장법과 영탄법의 사용으로 애절함과 안타까움을 더해 줌.ㅂ. 산문이면서도 3 . 4조의 가사체를 곁들여 운문적 요소를 지님.이 작품은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과 우아함 그리고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내간체의 산문이다. 그러면서도 애절한 정서를 운문이 배합된 제문의 형식으로 표현하여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꾀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다.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에는 정서 표출에 적합한 4음보의 가사체 문장을 재치있게 쓰고 있어, 지은이가 언어 구사에 아주 능란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모순적인 면1) 두 얼굴의 화자그러나 유려한 문장 구사와 달리 내용전개 면에서 애절한 정서 표현이 치우친 나머지 몇 가지 모순이 드러나고 있다. 화자가 시삼촌에게 바늘을 받은 것은 ‘연전’인데 그 바늘을 지닌 지 ‘27년’이나 되었다고 한 것이라든지, 바늘을 쌈쌈이 낱낱이 나누어줄 비복들이 있는 화자가 ‘가산이 빈궁하여 침선에 마을을 붙였다.’고 한 것 등은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인문/어학| 2008.12.16| 7페이지| 1,000원| 조회(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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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국인으로서 한국어 쓰기
    쓰기교수- 학습내용최근 언어 교수법들이 문법적인 정확성은 무시하고 유창성만을 중시하는 것에 반대하여, 문법적인 정확성과 유창성을 대립되는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상호 보완적인 것으로 이해하였다. 특히 성인 학습자가 문법형태가 많은 언어를 배울 경우 문법지식은 언어의 효과적인 습득과 올바른 사용에 많은 도움을 준다. 언어의 형식과 의미, 기능을 의사소통의 3가지 요소라 할 때, 이 세 가지 요소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쓰기 교육에 필요한 교육은 문법과 어휘능력을 들수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문법이나 어휘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첫째,바꿔쓰기(격식, 시제, 경어법) 등에 맞게 바꿔 쓰고 둘째 담화를 완성하기(연결 어미를 이용해 앞뒤 문장을 연결하고 문장을 완성하는 것) 셋째 문장의 살을 붙여 정확한 문장을 텍스트 속에 빈칸을 채우거나 이야기를 구성하고 문장성분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 확장하기가 있다. 넷째는 소그룹을 만들어 자신의 생각을 제시하고읽기와 연계시켜 읽고 요약하기와 읽고 논박하기(즉 자신의 견해나 다른 시각에서 글을 쓰는 것) 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일정한 형식에 갖추어 글을 쓸 수 있는지 테스트 할 수 있는 자유 글쓰기가 있다. 또한 담화 상황에 쓸 수있는 능력 그리고 실제적으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텍스트를 이용(이력서나 축하카드) 한다.
    인문/어학| 2007.11.13| 3페이지| 1,000원| 조회(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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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간문
    서간문-형식적 특징과 인간애-1. 개념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각종 내용의 편지를 말한다. 그것은 글쓴이의 뜻을 전달한다는 내용이다. 서설이라는 명칭을 서간으로 바꾸었다. 설이라는 글자가 논변적 성격을 보이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하고 현대적인 이름이 나을 듯해서이다. 서간의 구성요소는 발신인, 수신인, 양자 간에 작용하는 용건 등 3가지이다. 서간은 보통 문장에 비해 독자가 특정되어 있어서 반드시 수신자가 있다. 그래서 서간문은 특정대상의 위치 관계에 따라 적절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 서간문이 실용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많은 유형은 서찰이다.2.서간문의 종류와 특징(1)서간체 산문의 원류오눌에 의하면 『옛적에 신료가 위에 아뢰거나 친구 사이에 오가는 글을 모두 서라고 하였는데, 근세에는 신료가 위에 올리는 글은 표주라고 하고 친구 사이의 것만 서(書)라고 한다.』또한 상서(上書)는 )주의류와 같은 이름이지만, 단지 존귀한 사람에게 올리는 사적인 편지일 뿐이다. 죽간에 쓴 것을 ‘간(簡)’이라 하고, 비단에 쓴 것을 ‘첩(帖)’이라 하며, 목편에 쓴 것을 ‘독(牘)’이나 ‘찰(札)’이라 하며, 종이에 쓴 것을 ‘전(箋)’이라 하고 봉투를 사용한 것을 ‘함(函)’이라 한다. 기러기가 서신을 전한다는 고사에서 서신을 ‘홍(鴻)’이라고도 하며, 척독(尺牘)이니 척소(尺素)니 척한(尺翰)이니 하는 명칭도 있다.또 본래는 군주에게 아뢰는 것이나 친구 사이에 왕복하는 것을 모두 서신이라고 하였다가, 평행 문자만 서신이라고 하게 되었다. 친척과 친구 사이에 왕복하는 것을 모두 서(書)라고 하였다.1)형식적 특성문장의 앞머리에는 주의류에서와 마찬가지로 「모계某啓」라고 쓰고, 끝에는 「모근계某謹啓」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위진시대에 시작되었다. 분량 면에서 보면, 서는 길거나 짧거나 상관이 없으나, 간이나 첩 등은 일반적으로 짧다.2)내용적 특성고전수필 분야에서 서간문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는 체재는 없다.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전하는 가벼운 내용도 있고, 학문이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내용도 있으며, 훈계하는 내용도 있다. 현대에도 편지의 내용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는 것처럼,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친서親書같이 두성씨간에 혼인을 맺을 때 쓰이는 문장도 이에 속한다.3. 여성 서간(내간문)현전하는 최고의 여성서간은 조선전기인 1468년(세조14년)에 ?畢齊(점필제) 金宗直(김종직)의 어머니와 아내가 쓴 한문서간이 있다.15세기의 한글서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한글서간이자 여성서간은 순천 김씨에게서 발견된 192통의 서간중의 하나로 1555년 (명종10년)에 써진 것이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분명하지 않으나 혼인 하여 부모와 벗을 떠나는 슬픔을 편지로 부친 이 서간은 분량도 적지 않고 감정표현도 절실해서 16세기 중반에는 이미 실용적인 수준을 벗어난 여성의 서간이 등장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여성서간의 역사는 한글이 창제되고 한글서간이 보편화된 16세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시골까지 한글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글서간이 본격적으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10세 전후해서 한글서간 쓰는 법을 익혀서 혼인 후에는 타인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대개 서간으로 대신했다.(1) 여성서간의 특질① 일상과 밀착된 정서의 표출여성서간의 가장 포괄적인 특질은 실생활과 관련된 소재를 다룬다는 것이다. 여성서간은 문안, 혼인, 조문 등의 실생활이 사건들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다양한 人名과 地名, 物品名 및 病名이 등장하여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이는 실용문으로서 서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성서간의 경우 글쓴이의 정서가 이러한 일상의 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드러나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런 점은 조선시대 남성서간이 사적인 성격은 물론 철학적 논변이나 정치적 논쟁까지 담아내는 공적인 성격을 가졌던 것과는 구별된다.남성들은 서간을 통해 실용적인 사연을 전하더라도 종종 자신의 이념이나 경물에 대한 감상, 학문적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이곤 한다. 또한 그 표현에 있어서도 다양한 비유와 )전고의 활용 등을 통해 한문학의 전통에 벗어나지 않는 세련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의 서간을 보면 실용적인 목적에서 벗어난 서간일수록 문예미가 드러나는 것이 많다.이런 측면에서 남성서간은 때로는 일상적이지만 종종 일상과 거리가 있는 다양한 소재를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쓸 수 있었다. 반면 여성의 서간은 실용적인 사연의 전달이라는 서간 본래의 목적에 비교적 충실한 가운데 일상의 체념과 관련된 여성의 정서를 표출하는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다.② 제도적 억압과 소극적 자기인식17세기 이후의 조선사회는 가문의식이 강화되면서 가부장중심, 부계중심의 사회로 변모해나간다. 여성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게 된다.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극적인 한편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다는 통념은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만 했던 여성의 사회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여성에게 강요된 고유한 미덕중하나이다. 그래서 인지 여성서간에는 여성 자신이 드러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주로 타인의 안위와 건강을 걱정하고 가정의 대소사에 관해 이야기 할뿐 자신이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이다.③ 내면세계의 기록궁중과 반가의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편지 쓰기를 배워 그것을 생활화하였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편지를 썼다.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이 줄어들어 비교적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소일거리를 찾게 되었다. 조선후기 여성들의 대표적인 소일거리 중의 하나가 소설 읽기였고 여기에 편지쓰기도 그들의 일과에 큰 몫을 차지했던 것 같다.노년의 여성들은 문안지에 대한 답장이나 각종 서간을 통해 평생 닦아온 글 솜씨를 발휘하는 동시에 가슴속이 회포를 풀었다.(2) 여성서간과 남성의 서간의 차이남성은 대부분 한문을 주로 사용하고 여성은 한극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남성의 서간은 당대 ‘作品’으로 통용되기도 한 반면 여성의 서간은 개별적 소통의 산물로만 취급받았다.한문으로 된 남성의 서간만이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조선의 ‘지배적’성별이 남성이며 ‘지배적’문자는 한문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당대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여성의 서간 중에는 남성의 서간과는 구별되는 소박함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다.다양한 한문학 장르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표출할 수 있었던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에게 있어서 서간은 비교적 손쉽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였다. 조선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여성들의 수필이나, 가사, 소설작품도 서간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여성들은 서간을 통해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한편 문학적인 감각을 키워나갔다고 할 수 있다.4. 작가연구다산은 자가 미용(美鏞), 송보(頌甫)이고, 호는 사암(俟庵), 다산(茶山), 태수, 자하도인, 문암일인, 탁옹, 죽옹, 철마산인 등 여러 개가 있다.일곱 살 때 천연두를 앓아 오른쪽 눈썹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하여 스스로 아호를 '삼미자(三眉子)’라 했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다. 아버지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다산을 낳았기에 그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여(與)는 의심할여이며, 유(猶)는 망설일유 자로 역시 두려워하며 못믿는다는 뜻이다. 당호에는 풍진 세상을 떨치고 전원생활에 안주하려는 심정이 담겼다.다산은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다. 15세 때 풍산홍씨 승지 홍화보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홍화보는 문중8강의 하나인 풍산홍씨 가문으로 문경공 홍이상의 5대손이다. 홍화보는 무과 출신이며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홍중후의 아들이며 문과하여 승지를 지낸 홍만기의 손자이다.큰아들은 학연이다. 학연의 자는 치수(穉修) 호는 서산(西山)이다. 1852년 선공감 감역을 지냈다. 작은 아들은 학유이다. 자는 치구(穉求)이며 농가월령가를 지었다.5. 기연아 내용학문을 게을리 하는 아들을 다산은 유배지 강진으로 불러 직접 가르친다. 유배초기 서슬 파랗던 관가의 감시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풀렸다. 이에 다산은 1805년 겨울 유배지를 찾아온 장남 학연과 읍내 고성사의 보은산방에서 함께 묵으며 주역과 예기를 밤낮으로 가르쳤다.유배 중 네 번의 교정을 거쳐 완성한 과 함께 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말하고 라는 책을 인편에 보낼 정도로 예에 대한 연구에 각별하였던 다산인지라 아들에게 직접 예기에 대해 강론하였던 것이다. 이 때 예에 대한 학연의 질문에 답변한 것을 기록하여 모아놓았는데 이름 하여 스님들이 묵는 암자에서 묻고 답했다하여 이라 하였다.유배지를 다산초당으로 옮긴 1808년에는 둘째 아들 학유를 옆에 두고 오경 가운데 과 를 읽도록 하였다.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산은 둘 다 가까이 두고 직접 가르치고 싶지만 가정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며 읽어야 할 책의 순서를 꼼꼼히 적고 있다. 이 외에도 그가 집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옆에서 직접 가르치며 학문의 진척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걱정이 구절구절마다 깊이 배어있다. 다산은 아버지로서아들들에게 참다운 독서법을 일러주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문장가가 되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그 자신도 유배지에서 많은 책을 읽고 저술 활동으로 아들들의 모범이 되었다.6. 서간문에 보여지는 다산의 인간애
    인문/어학| 2010.07.01| 6페이지| 1,000원| 조회(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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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수필론-기연아(형식적 특징과 인간애)
    서간문-형식적 특징과 인간애-20041253 윤혜영1. 개념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각종 내용의 편지를 말한다. 그것은 글쓴이의 뜻을 전달한다는 내용이다. 서설이라는 명칭을 서간으로 바꾸었다. 설이라는 글자가 논변적 성격을 보이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하고 현대적인 이름이 나을 듯해서이다. 서간의 구성요소는 발신인, 수신인, 양자 간에 작용하는 용건 등 3가지이다. 서간은 보통 문장에 비해 독자가 특정되어 있어서 반드시 수신자가 있다. 그래서 서간문은 특정대상의 위치 관계에 따라 적절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 서간문이 실용적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많은 유형은 서찰이다.2.서간문의 종류와 특징(1)서간체 산문의 원류오눌에 의하면 『옛적에 신료가 위에 아뢰거나 친구 사이에 오가는 글을 모두 서라고 하였는데, 근세에는 신료가 위에 올리는 글은 표주라고 하고 친구 사이의 것만 서(書)라고 한다.』또한 상서(上書)는 )주의류와 같은 이름이지만, 단지 존귀한 사람에게 올리는 사적인 편지일 뿐이다. 죽간에 쓴 것을 ‘간(簡)’이라 하고, 비단에 쓴 것을 ‘첩(帖)’이라 하며, 목편에 쓴 것을 ‘독(牘)’이나 ‘찰(札)’이라 하며, 종이에 쓴 것을 ‘전(箋)’이라 하고 봉투를 사용한 것을 ‘함(函)’이라 한다. 기러기가 서신을 전한다는 고사에서 서신을 ‘홍(鴻)’이라고도 하며, 척독(尺牘)이니 척소(尺素)니 척한(尺翰)이니 하는 명칭도 있다.또 본래는 군주에게 아뢰는 것이나 친구 사이에 왕복하는 것을 모두 서신이라고 하였다가, 평행 문자만 서신이라고 하게 되었다. 친척과 친구 사이에 왕복하는 것을 모두 서(書)라고 하였다.1)형식적 특성문장의 앞머리에는 주의류에서와 마찬가지로 「모계某啓」라고 쓰고, 끝에는 「모근계某謹啓」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위진시대에 시작되었다. 분량 면에서 보면, 서는 길거나 짧거나 상관이 없으나, 간이나 첩 등은 일반적으로 짧다.2)내용적 특성고전수필 분야에서 서간문만큼 다양한 내용을 담는 체재는 없다. 안부를 묻거나 소식을 전하는 가벼운 내용도 있고, 학문이나 정치적 견해를 피력하는 내용도 있으며, 훈계하는 내용도 있다. 현대에도 편지의 내용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는 것처럼, 고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친서親書같이 두성씨간에 혼인을 맺을 때 쓰이는 문장도 이에 속한다.3. 여성 서간(내간문)현전하는 최고의 여성서간은 조선전기인 1468년(세조14년)에 ?畢齊(점필제) 金宗直(김종직)의 어머니와 아내가 쓴 한문서간이 있다.15세기의 한글서간은 아직 발견된 것이 없고 현재 확인할 수 있는 최고의 한글서간이자 여성서간은 순천 김씨에게서 발견된 192통의 서간중의 하나로 1555년 (명종10년)에 써진 것이다. 발신자와 수신자는 분명하지 않으나 혼인 하여 부모와 벗을 떠나는 슬픔을 편지로 부친 이 서간은 분량도 적지 않고 감정표현도 절실해서 16세기 중반에는 이미 실용적인 수준을 벗어난 여성의 서간이 등장하고 있었음을 확인시켜준다. 따라서 여성서간의 역사는 한글이 창제되고 한글서간이 보편화된 16세기 이후에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시골까지 한글이 광범위하게 보급되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는 한글서간이 본격적으로 성행하였다. 조선시대 여성들의 10세 전후해서 한글서간 쓰는 법을 익혀서 혼인 후에는 타인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대개 서간으로 대신했다.(1) 여성서간의 특질① 일상과 밀착된 정서의 표출여성서간의 가장 포괄적인 특질은 실생활과 관련된 소재를 다룬다는 것이다. 여성서간은 문안, 혼인, 조문 등의 실생활이 사건들을 내용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다양한 人名과 地名, 物品名 및 病名이 등장하여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 이는 실용문으로서 서간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특질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여성서간의 경우 글쓴이의 정서가 이러한 일상의 체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드러나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런 점은 조선시대 남성서간이 사적인 성격은 물론 철학적 논변이나 정치적 논쟁까지 담아내는 공적인 성격을 가졌던 것과는 구별된다.남성들은 서간을 통해 실용적인 사연을 전하더라도 종종 자신의 이념이나 경물에 대한 감상, 학문적 깨달음에 관한 이야기를 곁들이곤 한다. 또한 그 표현에 있어서도 다양한 비유와 )전고의 활용 등을 통해 한문학의 전통에 벗어나지 않는 세련미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남성의 서간을 보면 실용적인 목적에서 벗어난 서간일수록 문예미가 드러나는 것이 많다.이런 측면에서 남성서간은 때로는 일상적이지만 종종 일상과 거리가 있는 다양한 소재를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쓸 수 있었다. 반면 여성의 서간은 실용적인 사연의 전달이라는 서간 본래의 목적에 비교적 충실한 가운데 일상의 체념과 관련된 여성의 정서를 표출하는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다.② 제도적 억압과 소극적 자기인식17세기 이후의 조선사회는 가문의식이 강화되면서 가부장중심, 부계중심의 사회로 변모해나간다. 여성의 권한은 대폭 축소되게 된다.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극적인 한편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다는 통념은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미칠 영향을 항상 염두에 두고 행동해야만 했던 여성의 사회적 조건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여성에게 강요된 고유한 미덕중하나이다. 그래서 인지 여성서간에는 여성 자신이 드러나 있는 경우가 드물다. 주로 타인의 안위와 건강을 걱정하고 가정의 대소사에 관해 이야기 할뿐 자신이 감정을 표현하는 경우는 오히려 예외적이다.③ 내면세계의 기록궁중과 반가의 여성들은 어려서부터 편지 쓰기를 배워 그것을 생활화하였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편지를 썼다.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사노동과 육아의 부담이 줄어들어 비교적 많은 여가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소일거리를 찾게 되었다. 조선후기 여성들의 대표적인 소일거리 중의 하나가 소설 읽기였고 여기에 편지쓰기도 그들의 일과에 큰 몫을 차지했던 것 같다.노년의 여성들은 문안지에 대한 답장이나 각종 서간을 통해 평생 닦아온 글 솜씨를 발휘하는 동시에 가슴속이 회포를 풀었다.(2) 여성서간과 남성의 서간의 차이남성은 대부분 한문을 주로 사용하고 여성은 한극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남성의 서간은 당대 ‘作品’으로 통용되기도 한 반면 여성의 서간은 개별적 소통의 산물로만 취급받았다.한문으로 된 남성의 서간만이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는 것은 조선의 ‘지배적’성별이 남성이며 ‘지배적’문자는 한문이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비록 당대에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지만 여성의 서간 중에는 남성의 서간과는 구별되는 소박함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많다.다양한 한문학 장르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사유를 표출할 수 있었던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에게 있어서 서간은 비교적 손쉽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매체였다. 조선후기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여성들의 수필이나, 가사, 소설작품도 서간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여성들은 서간을 통해 글쓰기에 익숙해지는 한편 문학적인 감각을 키워나갔다고 할 수 있다.4. 작가연구다산은 자가 미용(美鏞), 송보(頌甫)이고, 호는 사암(俟庵), 다산(茶山), 태수, 자하도인, 문암일인, 탁옹, 죽옹, 철마산인 등 여러 개가 있다.일곱 살 때 천연두를 앓아 오른쪽 눈썹이 세 갈래로 갈라졌다하여 스스로 아호를 '삼미자(三眉子)’라 했다. 아명(兒名)은 귀농(歸農)이다. 아버지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짓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다산을 낳았기에 그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다. 여(與)는 의심할여이며, 유(猶)는 망설일유 자로 역시 두려워하며 못믿는다는 뜻이다. 당호에는 풍진 세상을 떨치고 전원생활에 안주하려는 심정이 담겼다.다산은 1762년 6월 16일에 태어났다. 15세 때 풍산홍씨 승지 홍화보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홍화보는 문중8강의 하나인 풍산홍씨 가문으로 문경공 홍이상의 5대손이다. 홍화보는 무과 출신이며 동지돈녕부사를 지낸 홍중후의 아들이며 문과하여 승지를 지낸 홍만기의 손자이다.큰아들은 학연이다. 학연의 자는 치수(穉修) 호는 서산(西山)이다. 1852년 선공감 감역을 지냈다. 작은 아들은 학유이다. 자는 치구(穉求)이며 농가월령가를 지었다.5. 기연아 내용학문을 게을리 하는 아들을 다산은 유배지 강진으로 불러 직접 가르친다. 유배초기 서슬 파랗던 관가의 감시가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풀렸다. 이에 다산은 1805년 겨울 유배지를 찾아온 장남 학연과 읍내 고성사의 보은산방에서 함께 묵으며 주역과 예기를 밤낮으로 가르쳤다.유배 중 네 번의 교정을 거쳐 완성한 과 함께 를 꼭 읽어야 할 책으로 말하고 라는 책을 인편에 보낼 정도로 예에 대한 연구에 각별하였던 다산인지라 아들에게 직접 예기에 대해 강론하였던 것이다. 이 때 예에 대한 학연의 질문에 답변한 것을 기록하여 모아놓았는데 이름 하여 스님들이 묵는 암자에서 묻고 답했다하여 이라 하였다.유배지를 다산초당으로 옮긴 1808년에는 둘째 아들 학유를 옆에 두고 오경 가운데 과 를 읽도록 하였다.큰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산은 둘 다 가까이 두고 직접 가르치고 싶지만 가정형편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며 읽어야 할 책의 순서를 꼼꼼히 적고 있다. 이 외에도 그가 집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옆에서 직접 가르치며 학문의 진척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걱정이 구절구절마다 깊이 배어있다. 다산은 아버지로서아들들에게 참다운 독서법을 일러주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문장가가 되기를 당부했다. 아울러 그 자신도 유배지에서 많은 책을 읽고 저술 활동으로 아들들의 모범이 되었다.6. 서간문에 보여지는 다산의 인간애
    인문/어학| 2008.12.16| 6페이지| 1,000원| 조회(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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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석사를 읽고
    희망의 길(부석사를 읽고)길을 걷다가 문득 생각에 잠긴다. 이 길 말고 새로운 길로 한번 걸음을 돌려볼까 하고. 하지만 오늘도 겁을 먹은 듯 매일 다니던 그 자리로 걷곤 한다. 누구나 새로운 것에 대한 불안함은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나 역시도 그렇다. 매일 갔던 길만 거닐곤 한다. 재미없게. 변화를 모색하고 궁구하고 싶은데 그것을 두려워 하는건 왜일까?부석사라. 어렵게 내 귓가에 맴돌았다. 어렵고 고리타분 해보이고 고전소설쯤으로 느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버림받은 두 사람은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데 부담감을 느낀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못한다.옛사랑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그러리라..나도 그런 경험을 해본적 있다. 한 4달전, 이젠 정말 그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란 생각보단, 없으면 안될 것 같은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는 내게 그런 인연이 될 수 없었고 내게 크나큰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주었다. 그때 기분을 말로 표현하자면, 분명 내 심장은 뛰고 있는데 심장한쪽이 뻥 뚫려있는 기분이었다. 소설에 빗대자면 나는 낭떠러지를 만난 것이다. 주저앉아서 울기만 할 수도 없었고 딱히 생각나는 방도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 손 내미는 사람이 있었다. 잡을수 없는 손이었지만 잡고 싶은 간절함을 느꼈다. 친구들이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사람으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해야 한다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이 내 곁에 나타나고 그쯤 되면 또 옛날 그를 잊고..세상은 아픔에 연속이면서 그 속에서 성숙됨을 느낀다. 지금도 수많은 과정속에서 살고 있고 또다른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이 글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옛 상처를 잊기 위해 서로 다가가면서 상처를 치유하려고 한다. 전 수업이었던 붉은방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석사는 교체시점을 나타내고 있다. 시점이 교체되면서 시간 속에 인물의 내면은 변화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 서로에게 무의미한 존재였으나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대를 의식하고, 친밀함을 느낀다. 부석사를 찾아가지 못한다. 하지만 작품에서 마지막으로 묘사되어 있는 “차창은 눈에 덮여 바깥이 내다보이지도 않는다.”는 시간이 그만큼 흐를 때까지 그들의 관계가 강하게 밀착되지는 않지만 처음보다는 가까운 사이 라는걸 짐작하면서 우리는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내게도 그런 희망의 길이 열렸으면 하고 오늘도 쓸데없는 공상에 빠져 이 책을 읽었다.
    인문/어학| 2007.11.13| 1페이지| 1,0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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