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만 살아왔다. 성장과정에서는 주로 지역이 비슷한 또래 집단에서만 영향을 받아왔고,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야 다른 지역, 다른 국가의 사람들과 접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도시에서 산다는 것, 특히 서울처럼 메트로폴리스의 단계를 지나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의 단계에 접어든 곳에서의 삶은 치열하고 치밀하며 냉정하다는 평가는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보기 전까지는 전혀 실감하지 못했었다. ‘시골’ 혹은 ‘지방’사람은 순박하고 정이 많으며, 서울사람들은 ‘서울깍쟁이’ 라고 불리는 이유에 대해 짐멜은 ‘The Metropolis and Mental Life’ 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어느 정도 밝히고자 하였다. 과연 메트로폴리스에서의 삶은 정신적으로 어떤 점에서 전원적인, 혹은 지방의 삶과 다른지에 대해 사회의 요소들과 결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분업과 전문화현대 사회의 인간이 추구하는 것은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물질적 풍요, 정신적 쾌락, 효율적 행위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태는 인간이 지구상에서의 삶을 영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기 인간은 자연에 맞서 싸워나가야만 했고, 인간 자체로서의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이자 가치였다. 세월이 흘러 18세기의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전통과 인습, 종교와 도덕 등 기존의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할 수 밖에 없었다. 인류의 추구가 생존에서 자유로 옮겨간 것이었다. 그러나 19세기가 인간에게 요구한 것은 기능적 전문화, 즉 분업이었다. 18세기 중엽 시작되어 융성하게 된 산업혁명은 모든 것이 효율을 추구하도록 부추겼고, 이에 따라 인간은 비록 각각 다른 임무를 수행하게 되면서도 서로가 긴밀히 연결될 수 밖에 없었다. 짐멜은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면서 메트로폴리스에서의 삶은 개인의 삶과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적으로 공통된 맥락에서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밝혔다. 현대 사회의 모습은 이와 같아서, 쉽게 수긍할 수 있었고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지성(intellect)과 감정(emotion)모든 것에 대해 감정이나 사사로운 요소들을 배제 하고 오직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만 판단하여 행동한다는 것이 바로 ‘지성’으로 설명될 수 있는 메트로폴리스 삶의 모습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개개인은 사회로부터 자신의 주관적 삶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살아가며, 외부 환경에 맞서 강한 방어본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작은 마을이나 좁은 지역에서는 반대로 인간관계나 감정을 기반으로 유대가 형성되는 것과는 반대 현상이다. 왜 삶의 영역에 따라 인간의 생활모습이 바뀌게 되었는지에 대해 지성과 감정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명료하게 설명하여 비교적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점점 감정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혹은 지성을 강조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점점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화폐경제와 시장현대 혹은 과거를 막론하고, 대도시는 항상 경제의 중심이 되어왔다. 특히 화폐경제가 도입되면서부터 경제라는 개념 자체는 대도시에 거의 독점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양이나 질을 바탕으로 한 물물교환에서 객관적 가치를 나타내는 화폐로 교환수단이 변환되면서 경제활동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 아닌, 숫자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활동이 된 것이다. 이러한 화폐경제의 특성은 앞서 언급했던 비인격적이고 지성적인 대도시적 삶의 특성과 혼합되어 나타나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간 또한 금전적 원칙에 따라 숫자로서 여겨지고,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생산-소비 활동은 점차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만든다. 현대인들은 갈수록 수량적, 금전적 가치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blasé and nihilism(허무주의)‘blasé’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환락에 지친, 무감각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짐멜은 blasé 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대도시의 생활은 과도한 자극과 지성의 활동으로 인해 무력감과 지겨움을 느끼게 되고, 더 나아가 허무주의나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심리를 가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화폐경제, 시장경제와 무관하지 않은데, 모든 가치가 수량화되고 화폐화 된 상황과 개인으로서의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방어적 행동이 결합하여 결국 자신의 외부의 모든 것들에 대해 허무함, 냉담함, 무관심 등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사고의 흐름으로서 논리적 전개에는 동의할 수 있었지만, 과연 대도시의 삶이 모든 사람들에게 허무주의를 가져오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물론 소도시에서의 삶에 비해 더 많은 냉담함과 허무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여건이 갖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현대 사회의 큰 틀을 이루고 있는 민주주의, 다원주의의 차원에서 볼 때 사회에 대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흥미를 잃는다는 주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표를 포기하는 일부 시민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대도시민들은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이익을 적극 반영하기 위한 다원적인 노력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짐멜은 이밖에도 몇 가지 측면을 들어 설명하고 있었으나, 주된 대도시의 정신적 삶의 기반은 결국 분업화와 전문화, 시장경제와 화폐경제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미래에도 이러한 요인들에 의한 개인의 자기 표현과 주관적 삶은 제한될 것이며, ‘개인’ 고유의 영역을 지켜나간다는 것은 점차 힘들어 질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전, 경제학과 모 교수님에 대해 학우들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교수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시며, 경제 관련 수업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성경 및 기독교 관련 논의로 연결된다는 이야기였다. 심지어는 교수님의 종교모임에 참석하면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는 조언까지 듣게 되었다. 평소 무신론자로서의 입장을 고수해왔던 나는 매우 흥미 있는 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강신청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연 ‘학문’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 전달되어야 한다면, ‘그것을 전달하는 교수의 개인적 생각이나 취향이 반영되는 것은 올바른 것인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을 막스 베버의 논문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강단 가치판단흔히 학문은, 특히 과학분야는 ‘가치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의 가치판단이 배제된 상태에서의 학문적 연구 및 진보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베버는 ‘가치판단’이라는 용어에 대해 우리의 행위를 통해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현상에 대해 그것이 바람직한지 여부를 두고 우리가 내리는 실천적 평가’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식을 전달하는 ‘대학 강단’ 에서의 가치판단의 개입과 교수의 실천적 가치판단을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일까? 베버는 이에 대해 두 가지 입장을 제시했다. 첫째, 순수하게 논리적으로 규명될 수 있는 사안과 순수하게 경험적인 사안, 실천적 윤리 또는 세계관적 가치판단이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둘째, 위와 같은 구분이 일관적으로 논리를 유지할 수 없지만, 모든 실천적 가치 문제는 가능한 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베버는 두번째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선생의 가치판단의 표명을 통해 학생 스스로가 선생의 결함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는 긍정적 역할을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가치판단의 개입으로 학생과 선생과의 정열적 교감이 가능할 수 있지만, 이는 대학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회를 바라보는 큰 틀의 기초를 다듬어가는 대학교육에서는 단순한 지식전달 뿐만 아니라 후에 모든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힘과 가치관을 형성해 주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따라서 개인의 사상 및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교수의 사상적 주입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전문적 지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전문인으로서 교수가 맡은 직분이며, 특히 개인적 신념에 의한 예언은 결코 교수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물론 교수의 가치판단 개입은 강의실 안에서 교수 개인의 재량이자 특권이다. 강의실 안에서의 교수의 권위와 학생의 위치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경험적 가치판단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면, 베버의 주장대로 실천적 문제에 대한 궁극적인 여러 입장들을 생각할 수 있고, 궁극적 입장들 가운데 하나를 택할 경우 고려해야 할 객관적 사실들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명백히 알려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가치중립과 사회적 합의미시경제학에서 ‘한계효용’은 이미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계효용론이란 한 재화의 가치는 개인의 한계효용에 따라 정해진다는 주장을 기본으로 주관적 가치에 대한 논의를 가능하게 했던 학설이다. 인간의 주관적 가치판단들을 객관적 대상으로 다룰 수 없다는 주장을 깨고 효용의 기수적 표현을 시도하여 현대 경제학을 배우고 있는 지금까지도 ‘개인의 만족도를 숫자로 표시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베버에 따르면 오해이다. 하나의 사실이 옳고 그른지를 평가하는 것과, 그 사실 자체에 대해 ‘값을 매기는’ 행위는 이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도시행정학도로서 다루게 되는 여러 사회, 정책적 문제들은 가치판단의 첨예한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한 지역에 노인전문복지센타를 건립하는 일로 인한 지방정부와 지역 주민들과의 대립, 환경보호와 지역발전적 입장의 대립 등이 있다. 학자로서, 전문가로서 제시할 수 있는 가치중립적 견해는 단지 ‘정해진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의 대안에 대해 분석하고 주장하는 것이다. ‘정해진 목적’자체를 결정해야 하는 문제는 가치중립적 견해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치적 논의가 필요하며, 베버는 가치적 논의의 의미에 대해 역설하였다. 가치적 논의를 통해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인식하고 일관된 가치공리를 규명하며, 이러한 가치공리의 타당성을 논의하며, 이를 기초로 한 새로운 입장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예측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도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단지 대립되는 가치문제의 격론에 불을 붙이는 것이 가치적 논의의 역할이 아니라, 그것들의 저변에 있는 공통된 가치를 통해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이는 학문적 논의뿐만 아니라 고도화되고 다원화된 현 시대의 다양한 대립과 논의들의 결론을 찾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많은 ‘가치중립’에 관한 논의를 뒤로하고, 베버는 맺음말에서 ‘사상가’들이 염두 해 두어야 할 의무들에 대해 역설했다. 냉철한 머리, 즉 시대의 패러다임을 거스를 수 있는 용기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합리화’ ‘진보’ 등으로 가장한 가치주입적인 사회 현상, 사회의 힘들에 대해 가치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객관적인 판단을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그가 제시한 ‘사회 및 경제학에서 가치중립의 의미’ 가 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당위성이자 시사점 인 것이다. 사회학자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분야에 가치중립의 의미와 중요성을 일깨워 주었다는 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장이었다고 생각된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체계적으로 주창한 사상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많은 저작 중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는 ‘1844년의 경제학-철학수기’는 오랜 기간이 지난 후인 1932년에 최초로 출간되어 뒤늦게 학계에 소개되었다. 공산당선언, 자본론 등을 통해 공산주의 이념을 알리고 자본주의와 계급갈등 등의 다양한 개념을 소개했던 그는 경제학-철학수기에서 특히 ‘소외’ 라는 개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사회로부터의 소외, 생산으로부터의 소외 등 인류가 당면해야만 하는 소외에 대해 세 번째 초고에서 자세하게 알리고 있다. 세 번째 초고에서 밝힌 사적 소유와 노동, 사적 소유와 공산주의, 욕망과 생산과 노동 분업 등을 통해 그가 생각했던 사적 소유의 의미, 노동의 의미, 더 나아가 인간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사적 소유와 노동농업 사회에 머물렀던 시기에는 농업노동이 노동형태의 전부였다. 토지의 소유자, 즉 지주만이 사적 소유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업사회가 되면서부터 모든 부는 공업적 부, 노동의 부로 전환되었다. 물론 이렇게 전환된 노동의 부는 마르크스가 주장했듯 노동자 자신이 아닌 자본가에게 귀착되었다. 또한 공업자본은 사적 소유의 완성된 형태가 되었다. 이처럼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소유의 구도가 바뀌게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은 인간의 노동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사실 노동은 토지, 자본과 함께 생산요소 중 하나로서 존재하며, 과거 농업사회에서의 ‘생산’ 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생산의 필요에 의해 노동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탈산업사회’ 로 일컬어 지는 현 시대에서도 자본가의 소유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 지식기반 사회로의 변화로 인해 밀물처럼 밀려오는 정보 자체가 생산 요소임과 동시에 노동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도 자본이 존재하는 한, 노동의 가치와 노동자는 가난할 뿐이라는 것은 사실인 듯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사무직 노동자의 2분의 1에 지나지 않으며, 지식이나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생산직 종사자들의 임금 격차 또한 극심하다고 한다.사적 소유와 공산주의공산주의와 구별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하면 흔히 사유재산제를 떠올린다. 공산주의는 계급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사유재산을 없애고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철저한 계획주의 경제제도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철학수기를 통해, 공산주의는 이중적임을 역설했다. 사실 공산주의는 여전히 사적 소유에 의해 촉발되는 존재라는 것이다. 공동체라는 것 자체가 노동의 공동체이며, 공동체적 자본은 보편적 자본가가 지불하는 봉급이 공동체로 주체가 바뀌고 균등화 된 것뿐이다. 그는 특히 사적 소유에 대해 ‘스스로 낯설고 비인간적인 대상으로 전화되는 것’ 이라고 표현하였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통해 자기 소외로서의 사적 소유를 실증적으로 지양하고, 인간을 ‘인간적 인간’으로 자각하고자 하였다. 노동을 통해 인간이 노동으로부터, 생산물로부터, 더 나아가 현실세계로부터 소외된다는 ‘소외론’ 이 바로 그 바탕이 된다. 사적 소유의 생명인 노동, 자본화는 모두 인간을 소외의 상태로 몰아넣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 자신이 만든 것으로부터 조차 소외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공산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 현대사회가 ‘소외’의 사회라는 것은 자명한 것이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등으로 인해 인간 모두가 소외되어 거대한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현실사회에서 임금으로서 소외 당하는 노동자들은 경제적 소외로 인해 소외의 상태가 되고, 자본가들은 스스로를 사적 소유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 소외의 상태가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말 대로, 자본가들은 소외의 상태에서도 행복한 듯 보인다.욕망과 생산과 노동분업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라고도 일컬어지는 아담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으로 매우 유명하다. 필자 또한 자본주의,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경제학을 공부해 오면서 아담 스미스가 주창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시장경제, 분업의 효율, 이기심과 이타심 등에 대한 이론을 당연시 하였다. 그가 산업발전과 경제 개념의 정립 등에 기여한 점은 물론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지적한 수많은 학자들과 이론들 중, 아담 스미스의 분업론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 하다. 분업은 생산에 있어 큰 혁명을 가져왔다. 단순 반복적 노동을 통해 하나의 큰 공정이 이루어 지고, 완제품이 탄생한다는 점은 생산의 효율을 증진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술자가 아니었다. 조립하거나 단순한 부분을 만들어 내는 똑 같은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노동자 개개인은 전체 공정을 파악할 수가 없었고, 완제품 생산에 필요한 중요한 기술들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는 생산과정 자체로부터 소외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효율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간과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고 있다. 분업이 가져온 노동자의 소외는 단순한 기술 부족이 아닌, 인간 자체를 무기력하게 하고 모든 것으로부터 소외되도록 하는 점이기 때문이다. 공장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자본가의 결정에 의해 한 순간 실직하게 되면 특별한 기술 없이 결국 새로운 직업을 구하는 것이 어렵게 되고, 생산 행위 자체로부터 소외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 현실적 예가 될 것이다.마르크스의 저서를 읽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사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공산주의의 실효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학문의 유효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인류의 자유, 평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지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의 평등에 대한 생각, 자본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수용되어야 한다. 특히 이 철학-경제학수고의 경우, 이데올로기적 주장이 바탕이 되고 있긴 하지만 그가 어떤 이론적 배경을 가지고 공산주의를 주장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되었다. 비록 헤겔의 변증법 등 다양한 사회학적 이론들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다면 더욱 심도 있는 이해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 안타깝지만, 그가 주장했던 개념 중 큰 틀 중 하나였던 ‘소외’는 익명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매우 고개가 끄덕여 졌던 부분이었다.
Ⅰ. 서 론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장관이 교체되곤 했다. 그 결과 지난 문민정부 이후 최근까지 장관 평균재임기간이 1년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부 독재시대를 열었던 박정희는 주로 ‘충성도’를 고려한 인사를 행하였고, 전두환 정권 때에는 정실주의와 지역주의가 강조되었다. 그 이후 노태우 정권에서는 지역주의가 여전했지만 문책성 인사가 주를 이루기도 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직관’에 의한 은밀하고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였고, 김대중 대통령은 소수 인재에 대한 지나친 의존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지금까지의 정권은 정무, 고위직 인사에 대한 엄격한 제도와 기준이 있었다기 보다는 대통령의 성향과 의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그리고 현 정부인 노무현 정권은 취임 초에 10대 인사개혁과제를 중심으로 ‘인사개혁 로드맵’ 을 마련하였고, ‘적재적소ㆍ투명성ㆍ자율성ㆍ균형’ 등 4대 인사원칙을 내세웠다. 또한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을 설치하여 강력한 인사행정개혁을 추진하고자 하였다. 체계적인 제도를 통해운영되는 인사, 즉 ‘시스템 인사’를 표방하였다. 그러나 널리 알려졌듯, ‘코드인사’라는 말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대통령과 뜻이 맞는 사람을 곁에 두어 국정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의미로 코드인사라는 말이 쓰이고 있는데, 이는 정치성에 따른 ‘엽관주의(spoils system)’와 학연, 지연 등에 따른 ‘정실주의(patronage system)’적 인사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취임 이후 한동안 잠잠해 졌던 현 정부의 ‘코드인사’에 대한 논란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유전개발의혹과 행담도 개발비리 등에 의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미치는 정무, 고위직 인사제도의 큰 틀을 살펴보고,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코드인사’로 인한 현상들을 소개할 것이다. 코드인사 자체가 기초하고 있는 엽관주의와 정실주의에 대한 이론적 고찰, 그리고 미국 정부의 인사시스템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다.2) 참여정부의 정무, 고위직 인사제도참여정부 이전에는 청와대 내 민정수석비서관실 내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정무직에 관한 중요한 인사업무를 담당하였다. 따라서 비공식적인 영향력이 개입될 소지가 많았으며, 선정절차의 공식화 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참여정부 이후에는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을 설치하여 정무, 고위직 인사를 담당하게 하고 있다. 경력직 일반 공무원의 인사에 관여하는 중앙인사위원회와는 별개로, 정치적 인사를 주로 맡고 있다. 시스템에 의한 공정, 투명한 인사운영, 다양한 채널을 통한 인재의 발굴, 정부 및 산하단체 혁신, 공공부문 인사의 균형 제고 등이 주요 업무이다. 청와대 인사수석비서관실의 구성과 업무내용은 다음과 같다.)인사수석 비서관실인사관리비서관실* 정부, 산하단체의 인사운영쇄신* 고위직후보자의 적격성 평가 강화* 다양한 채널을 통한 유능한 인재발굴인사제도비서관실* 공공부문 인사혁신 프로그램 기획과 개선* 참여정부 인사개혁 로드맵 추진지원, 관리* 산하단체 인사시스템 합리화 등균형인사비서관실* 이공계, 여성, 장애인 등 소외계층 충원* 균형인사 도모 위한 법과 제도보완또한 참여정부에서는 정무, 고위직 현황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정보원을 체계화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정무, 고위직 현황백서인 ‘플럼 북(The Plum Book)’과 같이 우리나라에도 인사수석실 주관으로 ‘국가주요직위명부록’ 이 발간되었다. 6800명에 이르는 정무, 고위직의 직위, 직무, 등급, 직전직위 등이 담겨 있다. 이러한 노력은 인재 풀 (human resource pool)을 확보하는 노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내부자료, 온라인 외부추천, 중앙당추천, 내부물색 등의 공식수집에만 치중하고 있는 편이다.정무, 고위직 인사에 있어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인 후보자 선정기준에 있어서는 참여정부는 객관적인 기준을 중요시 하고 있다. 선정기준을 명시하고, 균형성 중시하며, 정부산하기관들을 개혁성·효율성?공공성 기준에 따라 세분화 하였다. 산 투기와 재산증식 등의 개인비리문제로 사퇴하였다. 예전 같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는 사안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낙마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청와대가 검증 과정에서 알고도 그대로 넘어갔거나, 미처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사안이 불거진 것도 공통점이다. 이러한 현상들에 의해 청와대의 인사검증시스템의 신뢰도는 하락하였고, 대통령의 임명으로 자리를 맡은 장관들의 잇단 사퇴는 노무현 대통령의 ‘코드인사’ 자체를 하나의 ‘부정인사’로 보는 시각이 많아지게 되었다. 이에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왔던 이광재 국회의원이 유전개발사업 의혹에 연루되면서 국민들과 정치권의 코드인사에 대한 불신은 증대되었다.3. 엽관주의와 정실주의1) 엽관주의 (獵官主義.spoils system)엽관주의란 관직의 임용을 정당에 대한 충성도와 공헌도를 기준으로 행하는 인사행정 제도를 뜻한다. 이는 전쟁에서 전리품(spoils)은 승리자에게 속한다는 전시 국제법에 비유되는 것으로, 선거라는 전쟁에서 승리한 정당이 전리품에 해당하는 공직을 차지하는 권한을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 (Nigro & Nigro, 1976:2).① 엽관주의의 발달엽관주의의 발달은 민주정치의 발달과 맥을 같이 하였다. 19세기 초 정치적 자유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된 미국에서는 관료기구와 국민과의 동질성 확보를 위하여 엽관주의를 그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당시는 직업공무원 제도가 확립되지 않은 데다 행정에 전문성이 필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또한 정당정치가 뿌리내린 민주주의에서는 정당의 유지와 선거, 정당원의 통솔 등을 위해 정당 충성도가 매우 중요했다. 특히 미국의 제5대 대통령 먼로는 1820년 고위 공무원들이 자신과 임기를 같이해야 한다며 공직임기 4년을 법제화했다. 1828년 당선된 잭슨 대통령은 엽관주의를 민주주의의 실천원리로 생각했다. 이에 따라 한동안 엽관주의는 연방정부뿐 아니라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다 1881년 가필드 대통령이 엽관인사와 관련돼 암살1714)까지만 해도 유럽 국가들에서와 같은 체계화된 인사제도는 없었다. 당시의 국왕은 총애하는 신하와 반항적인 의회를 조정하기 위하여 자기편의 의원에게 고위관직이나 고액의 연금 등을 은혜적으로 부여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국왕에 의한 은혜적 정실주의는 1688년의 명예혁명을 계기로 국왕에 대한 의회의 우월성이 나타나면서 의회의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의회는 국왕이 관직이나 연금 등으로 의원을 매수 하든가 국왕의 관료가 의원이 되는 것 등을 금지하는 입법을 제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입법조치를 통하여 국왕에 대한의회의 우위성이 현실적으로 확립되었다. 영국정부는 1714년 조지 1세(GeorgeⅠ)의 Hanover 왕조가 시작되면서부터 내각책임제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실권은 점차 의회의 다수당에 의하여 장악되었으며, 그들은 선거운동의 공로자들에게 관직과 연금을 부여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왕에 의한 은혜적 정실주의는 의회의 유력한 정치가들에 의한 정치적 정실주의로 변하여졌고, 이것은 의회주의 및 양당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더욱 촉진되었다.② 정실주의의 폐해정실주의는 은혜적으로 부여되거나 정치적 기여도에 의해 관직이 부여되기 때문에 거의 종신적 성격을 띠게 된다. 적어도 왕이나 정당이 지속되는 한 공직이 유지되기 때문에 그에 의한 부작용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첫째, 능률성이 저해된다. 보직이 보장되는 상태에서는 본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 둘째, 부패 개연성이 심화된다. 엽관주의는 정권이 바뀌기 때문에 불안한 심리에 부패가 늘어나지만, 정실주의의 경우에는 왕이나 정당 등의 유력자로부터 지지를 받아 임명되었으므로 부패 개연성이 심화된다고 볼 수 있다.구 분미국의 엽관주의영국의 정실주의기 준정치성(당파성)정치성 이외 학벌, 지연, 혈연 등정권교체대규모 경질소규모 경질공직보장단기적 보장(4년 임기법)종신적 보장발 달1829년 Jackson 대통령 이후1688년 명예혁명 이후4. 엽관주의와 코드인사엽관주의가 발달된 나라는 위에서 인력 풀(pool)에 대한 접근이원천적으로 막혀있어 정부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다.2) 참여정부의 코드인사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합법적이고 체계적인 선거자금 모금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합법적 후원금에 의한 임명 보다는 계열(정치성향, 이념성향, 사고체계 등)이 같거나 선거운동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을 임명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현 정부의 상황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 그룹들이 대거 정계에 진출해 있다. 참여정부 초기 정부와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던 인사들도 상당수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 이광재, 서갑원, 백원우 등 17대 국회에 진출한 386 측근들은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한 선거과정에서 정당 내 ‘국민통합추진회의’에 참여했던 인사들도 대거 정부의 요직에 자리 잡았다. 공기업의 감사·이사는 ‘대선공신(大選功臣)’이나 여당의 지지를 통해 임명되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거 캠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여권 출신 인사들이 현재 그런 과정을 거쳐 직함을 받았다. 또한 자신의 출신지이자 ‘정치적 고향’인 부산, 경상도지역 관련 인사들도 대거 기용하였다. 이와는 다른 형태로, 17대 총선에서 낙선한 자신의 측근을 다시요직에 기용하는 인사행태도 보였다. 2002년 경남지사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뒤, 작년 총선 때 남해·하동에서 고배를 마신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장관은 ‘대통령 정무특보’로 임명된 것이 그 예이기도 하다. 또 하나 특이한 사례는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장관으로 해양수산부에 재직할 당시 함께 업무를 수행했던 일부 인사들을 요직에 등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발탁인사도 참여정부 코드인사의 특징이다.5. 논 란위에 나타난 미국과 우리나라의 사례를 볼 때, 엽관주의와 코드인사는 일맥상통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정치적 고려를 주로 하는 엽관주의와 더 넓은 의미의 정실주의를 통합하여, 코드인사와 함께 쟁점들을 논의해 보도록 한다.1) 전반적 인식의 문제정무, 고위직에
뒤르켐은 사회학에는 문외한인 나에게도 친숙한 이름이었다. 그의 대표적 저서 중 하나인 ‘자살론’ 이 그만큼 나에게는 큰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콩트 이후로 최초로 프랑스의 학계에 ‘사회학’ 이라는 학문으로서 우뚝 선 인물이었다. 사회학의 대상이 ‘사회적 사실’ 인 것을 주장하면서 사회학은 독립적 학문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종교를 가지고, 산업을 발전시키고, 공동체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은 뒤르켐 이전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사회현상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였고, 더 나아가 콩트가 행했던 것처럼 객관적, 경험적 방법으로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 중 많은 사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였던 자살에 관한 연구를 통계자료와 논리적 분석을 토대로 설명한 것이 바로 ‘자살론’ 이다. 그가 나누어본 자살의 유형과 자살과 다른 범죄와의 관계, 자살과 다른 사회 요인들과의 관계를 지켜보면서 매우 흥미로웠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가정, 종교 등이 아닌 직업집단, 회사 등을 제시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자살은 비난 받아야 마땅한 것인가?각종 매체에서는 자살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런 보도를 접할 때 마다 생명을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경우는 ‘왜 저렇게 쉽게 인생을 쉽게 포기할까,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 이라는 것이 삶에 존재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가져왔다. 도덕적 비난이라기 보다는 정확한 자살의 원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뒤르켐은 각 나라마다 자살을 큰 범죄로 규정하고 공동체의 도덕을 해친다고 하여 처벌한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신 외에는 인간의 생명을 포기할 자격이 없다’고 인식했던 과거의 사회들에 대해 설명하였다. 오늘날에는 ‘인격의 존엄성’을 손상한다는 이유로 자살이 비난 받고 있음을 보여 인식의 미묘한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인격이 그 어떤 것 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면서 인간의 존엄성 자체가 종교화 되어버렸기 때문에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 된 것이다. 그러나 ‘책임의 회피’로 여겨지기도 하는 자살은 때론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관대함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로 정, 재계의 거물들이 비리 사건 등 불명예스러운 일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는 경우 자살을 범하여 사건을 마무리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사회는 죽음에 대해 침묵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자살에 대해 관대해 지는 듯 하다. 자살은 죽음이기 때문에 관대한 대접을 받을 수도 있지만, 확실히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자살은 개인의 문제에 기인하는가?자살을 하는 사람들에게 붙는 수식어는 ‘정신적 충격’, ‘우울증’, ‘정신질환’ 등등이 대부분이다. 으레 누군가 자살을 하면 개인의 문제로 인식하기 마련이었다. 심지어 과거에는 (사회학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에는) 자살은 악령이 씌어 저지르는 짓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자살에 대한 논의는 사회로 옮겨왔다. 특히 한국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로 내수 경기가 바닥을 치자 자살률이 높아졌고, 이는 결국 자살이 사회적 문제임을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본은 자살률이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 할복자살, 카미카제 등 역사 혹은 현대 사회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과연 사회마다 다른 이 자살의 형태들은 어떻게 파악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뒤르켐은 네 가지 유형을 들어 설명하였다. 이기적 자살, 이타적 자살, 아노미적 자살, 숙명적 자살이 그것이다. 그는 흔히 자살이 ‘개인적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파악되지만, 사실은 자살자의 정신적 소인에서 유래한 것이며 정신적 소인 자체가 사회의 정신 상태의 반향이라고 하였다. 현실로부터의 이탈을 위해 주변상황을 비난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모든 것들이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유형을 나누는 것은 어떤 요소가 더 많은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성향, 공동체의 요구, 진보에 대한 민감성 등 때문에 개인의 자살은 결코 사회와는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것은 현재의 사회적 상황을 고려해도 합당한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조건만이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자살과 살인의 상관관계자살과 다른 범죄와의 상관관계를 통계수치를 분석하여 밝혀낸 부분에서 뒤르켐은 자살과 살인은 상반되는 사회적 경향을 형성한다고 보았다. 수치상 자살과 살인은 서로 반비례 하며, 이는 낮과 밤이 다르듯 배타적인 것이며 동일한 사회조건에서 반대되는 표현을 하는 것과 같다. 자살과 살인이 일어나는 원인이 상반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도덕적 환경 속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수치가 반비례 하다고 해서 서로 같은 원인으로 인한 다른 측면의 현상이 라고 볼 수 없다. 관습이 평화적이고 유혈을 기피하는 사회에서는 패배한 개인이 자살을 택하지만, 도덕성이 거친 사회에서는 패배자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살인을 하게 된다고 한다. 결코 살인과 자살은 상쇄될 수 없다는 그의 의견에 동의하며, 남을 죽이는 ‘살인’이라는 범죄와 자신의 존엄성을 해하는 ‘자살’이라는 것이 함께 취급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자살을 막아야 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대한 뒤르켐의 대답은 ‘그렇다’ 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 ‘사회화’를 제시했다. 사회화는 종교, 가정, 교육에 의해서 라기 보다는 직업집단, 회사를 통해 이루어 질 때 자살의 방지가 가장 용이하다는 것이 눈에 띄는 대목이었다. 교육만이 사회화에 있어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매우 큰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교육은 사회의 표상이고 반영일 뿐이며, 사회를 창조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집합적 인격을 형성할 수 있는 직업집단이 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의 이론이 지금까지도 높게 평가되는 것은, 고도로 분업화되고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개인 및 사회 차원에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자살이라는 한 현상에 대한 경험적, 객관적인 그의 연구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하면 다시 통합될 수 있고 건강해 질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