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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혼의 최면치료를 읽고서
    영혼의 최면치료를 읽고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최면치료-1. 영혼의 최면치료‘영혼의 최면치료’라는 책은 비록 과제로 인해 알게 되었지만 나에게 또 다른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즐거움을 주었다. 최면치료라는 것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것이어서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서 너무나 기뻤다. 영혼의 최면치료는 국내 최초로 '전생 요법'을 통해 환자들을 치유하는 데 성공한 김영우 박사가 펴낸 책이다. 책 내용 대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최면으로 환자들을 치료한 사례를 담아놓은 책이다. 다중인격장애, 대인공포증, 강박증, 만성피로 증후군 등을 가진 환자들을 하나하나 치료해가면서 그들과 있었던 대화내용이라던가 어떻게 치료해야하는가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과학’으로서의 미래 정신의학에 대한 내용도 다루었다.2. 최면이란 무엇인가?과연 최면이란 무엇일까? 인터넷 백과사전에 보면 최면은 한 사람이 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그를 그 상태로 만든 사람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고 한다. 이러한 최면 기술은 주로 환자들의 공포를 억제하거나 행동을 바꾸고 고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한다고 한다.나는 텔레비전을 통해서 최면을 거는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다. 중학교 시절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자신의 전생을 알아보는 프로그램도 본 적이 있었고, 최근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어떤 사람이 최면으로 사람을 잠들게도 하고 학생들의 집중력을 높이기도 하고 특정행동을 계속하게 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이 두 프로그램을 볼 때 마다 나는 “우와”하는 소리를 내며 신기해했고 또 어떻게 저렇게 될 수가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하곤 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저게 진짜일까? 사기인거 아냐? 마술과 비슷한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했었다.최면 치료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에 비해 자극적이고 무책임한 마술적 무대 최면을 보여주는 시술자들은 흥미 위주의 방송 기획에 따라 최면의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만을 강조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최면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다. -p. 32내가 본 최면들은 위의 말처럼 흥미 위주의 방송 기획에 따라 왜곡되고 과장된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최면을 생각하면 방송에서 보여준 최면만을 생각할 것이다. 또한 최면은 과학적으로 증명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최면에 대해 믿지 못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밝혀 낼 수 없는 것을 믿는 다는 것은 미신은 것으로 간주되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의심을 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한가지 예로는 죽음이다. 죽음 후에 대한 생각은 누구나 다 다르게 가지고 있으며 어떤 모습이 정답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언 할 수 없다. 여러 가지 정황이나 가사상태를 겪었던 사람의 주장을 들어서도 과학적으로 증명은 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주장들을 그냥 의식 속에서 꾸며낸 상상쯤으로 생각해 버리고 마는 것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최면 상태는 사실인가, 또한 전생은 실제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도 여러가지로 나올 것이다.하지만 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최면에 대해 의심을 품은 것을 좀 풀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면으로 여러 사람의 병을 고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은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만성피로 증후군을 가진 20대 여성의 사례이다. 그녀는 항상 무기력하고 우울하며 온몸에 기운이 없어 오후만 되면 졸음을 참기 힘들고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증상을 보여 학교 공부를 따라가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증상은 예전의 나에게도 있었던 증상이었다. 그래서 일까 유독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친구들과의 트러블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나는 우울해 했었고 항상 무기력했었다. 무엇이든 하기가 싫었고 내 미래가 불투명해 보였었다. 물론 지금은 무기력하고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어 가끔 힘들 때가 있다. 김영우 박사의 최면으로 이 20대의 여성은 치료를 받았는데 전생에 일로 복수를 하고 있는 영혼이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만성피로 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것이 밝혀지고 김영우 박사는 그 영혼의 마음을 풀어주고 하늘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그녀의 병을 낫게 해주었다. 이것을 보면서 혹시 나에게도 못된 마음을 먹었던 영혼이 나에게 들어왔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과 나도 김영우 박사님께 최면치료를 한번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물론 나에게 못된 영혼이 들어오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말이다.“몸의 상태는 언제나 마음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몸 자체에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뭔가 마음속에 숨어 있는 원인들이 있다면 지금과 같은 증상들이 얼마든지 올 수 있죠.” -p.99
    독후감/창작| 2010.11.24| 3페이지| 1,500원| 조회(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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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프터라이프를 보고서
    애프터 라이프를 보고서‘ 죽음의 끝은 없다’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 때의 느낌은 “무섭다”이다. 죽음에 대한 느낌도 이와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처음 죽음에 대해 맞닥뜨리게 되면 무섭다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여주인공 애나도 그랬다. 처음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했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렵고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그리고 죽음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에게도 힘든 일이다. 영화에서 애나의 엄마가 애나의 시체를 보면서 이런 말을 했다. “ 고통은 전부 남겨진 사람들의 몫이죠.” 나의 가족과 가까운 사람이 사고로 죽게 된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슬프다. 내 경우를 이야기해보자면 고3때 친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난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날 가슴이 찟어질정도로 아팠고 하루 종일 울었던 기억이 있다.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함께 죽음에 대해 얘기도 하고 준비했다면 할머니를 좀 더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내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 죽으면 고통같은건 사라질 줄 알았어요. 골치 아픈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끝나는건 없군요.” 영화에서 애나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끝까지 주장하지만 그녀는 마지막 순간 엘리엇이 문을 열어 주었을 때 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오히려 자신이 죽어서 다행이라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죽음보다 삶이 더 겁났던 거다. 어떻게 보면 애나는 자살한 사람들을 비추고 있다.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우울증이 점점 더 심해지면 극단적으로 자살을 실행을 한다. 죽음보다 삶이 더 겁났던 이들은 죽으면 자신의 고통이 끝날 것이라 믿고 자살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틀렸다. 이 고통은 사후세계에도 이어지고 또한 남아있는 가족에게 남겨지게 된다.
    예체능| 2010.11.20| 1페이지| 1,000원| 조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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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역하 광고에 대하여
    식역하 광고에 대하여1. 식역하 광고란?식역하(subliminal) 광고에서 식역이란 의식과 잠재의식의 경계선을 의미한다. 의식과 무의식이 교묘히 공존하고 있는 경계선-이것이 바로 식역이다. 그러므로 식역하 광고란 이러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선 아래(무의식)에서 이루어지는 광고를 의미한다. 굳이 프로이드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잠재의식의 영향은 해수면 아래에 있는 빙산처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억하지 못하고, 의식하지 못했던. 그러나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무언가는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식역하 광고는 이러한 인간의 무의식을 공략하는 광고이다. 인간의 눈이 인식하지 못하는 속도로 끊임없이 특정 메시지를 보여주거나, 인간의 귀가 인식하지 못하는 주파수 영역에서 특정 메시지를 끊임없이 들려준다. 이러한 무의식 영역의 메시지를 들은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광고 메시지에서 보고 들은 대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2. 식역하 광고의 기원과 효과잠재의식 광고는 Subliminal Projection회사에 근무하던 James M. Vicary가 특수 영사기를 팔기 위해 1957년에 처음으로 시도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영사기는 영화를 정상적으로 스크린에 비추면서 동시에 매 5초마다 불과 1/3000초 동안 메시지를 보여주는 장치를 갖추고 있었다.Vicary는 뉴저지주의 한 극장에서 "팝콘을 먹자", "코카콜라를 마시자"는 잠재의식 메시지를 스크린에 비추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팝콘이 57.5%, 코카콜라가 18.1% 더 팔렸다는 것이다. Vicary는 잠재의식 광고를 함으로써 군더더기의 광고를 없애고 좀더 많은 오락 시간을 허용하게 되므로 소비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Advertising Age」 1957년 9월 16일자).한편, 1978년에 새로운 형태의 식역하 지각이 부각되었다. 루이지애나의 Hal Becker 박사가, 상업용 배경음악 속에 감추어진 메시지를 집어넣는 장치(Mark III-B 프로그램 가능형 서브리미널 오디오 프로세서)를 써서 상점 안의 도난 방지에 성공했다고 보고된 것이다. 이 때 쓰인 두 개의 메시지는 "나는 정직하다"와 "나는 훔치지 않는다"였는데, 한 도시의 상점에서 6개월간 실험한 결과 연간 160만 달러의 도난 액이 90만 달러로 줄었다는 것이다.또, 어떤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는 절도가 40% 감소됐고, 절도로 퇴직하는 종업원도 60% 감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병원에서는 대합실에 설치했는데, 환자의 흥분이 60%나 줄었고 주사를 맞고 기절하는 사람도 거의 없어지게 되었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50%에서 30%로 줄어들었다고 한다.Saturday Review」지는 '환영 1984년'이라는 사설을 통해 "잠재의식 광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의지와는 반대되는 음주를 강요하는데 이용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또한, 역하광고의 일종으로 자극삽입이 있는데, 이는 주로 성에 관련된 자극을 독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광고에 삽입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키 박사는 「미디어의 섹스 착취」라는 책에서 리츠 크래커, 정치광고물, 벨 전화광고 등 많은 광고들이 남녀의 성기나 SEX라는 단어를 아주 희미하게 인쇄해서(이를 매몰:'embeds'이라 한다) 사용하고 있는데, 키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런 '매몰'을 무의식적으로 지각하게 되고 또 그것은 광고된 상품 - 그것이 향수병이든 자동차 타이어든 - 을 요구하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그는 "광고 선전은 대중을 조작하고 싶다는 동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일시적인 의식적 지각의 억압 그리고 무의식적인 기억 축적을 위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한 이미지는 인식되지 않고, 의식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경험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실제로, 현대는 "조작의 시대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잠재 의식적 매몰 법을 사용하면 유명인·모델·자동차·식료품을 비롯하여 상품이 될 만한 것을 보다 매력적·자극적으로, 보다 부드럽고 풍부한 맛으로 인기를 끌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파악하는 지각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태는 조금이나마 달라질지도 모른다"고 잠재의식 광고에 대한 경보를 발했다.이미, 잠재의식 광고는 호주 영국,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방송심의 규정에 의해 금지되고 있다. 미국 재무성의 알코올·담배·화기부(ATF)에서는 '새로운 규칙과 조례'에서 "일반적인 잠재의식 기술의 한 형식은 음양과 농담의 사용에 의해 도는 일반적으로 신체를 연상시키는 모양과 형상의 치환에 의해 단어와 신체의 모양을 삽입하는 것(매몰)이다… 소비자는 정상적인 의식의 레벨로는 그것을 지각할 수 없으며, 따라서 통상의 광고에서처럼 메시지를 수용하므로 거부하느냐 마느냐 하는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ATF는 이런 유형의 광고가 부정하고 기만적이라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규정하고 있다.3. 식역하 광고에 대한 논란한편, 잠재의식 광고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인식의 출발점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 둘째 사람이 식역하 지각에 대해서도 반응할 수 있음은 입증되나, 어느 연구도 식역하 지각이 설득을 유도한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한 극장주가 주장했던 잠재의식광고의 효과를 재연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었지만 모두 성공하지 못하였다. 또 이 주제에 대하여 200여 편 이상의 학술적 논문이 발표되었다. 플래카니스와 애런슨은 그 많은 연구논문들을 철저히 분석, 검토한 후 어떠한 연구도 잠재의식광고와 유사한 동기적 혹은 행동적 효과를 보여준 연구는 없다고 결론내렸다.1984년, 잠재의식광고의 존재를 부정하는 압도적인 사실들이 밝혀지자 극장주 제임스 바이캐리는 자신이 처음에 주장한 것은 거짓임을 시인한 것으로 에 보도되었다.또한 미국 광고업협회는 "잠재의식 광고란 없다"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잠재의식 광고에 대한 논란 자체가 광고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고, 광고인들을 사악한 존재로 오해하게 되기 때문이다.또, 키 박사의 주장은 과학적 문헌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는 광고물들에서 '매몰'을 찾아내어 제시하고 있으나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커뮤니케이션 학자들도 많았으며, 자극삽입을 이용한 광고의 경우에도 실제로 효과를 입증하는 엄밀한 연구는 없었다. 오히려, 보키와 리드는 ‘SEX'라는 글자를 삽입한 자극이 전혀 효과가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그 동안 엄격한 방법으로 축적된 실험적 연구의 증거들은 약한 자극보다는 강한 자극이 개인 행동의 변화를 더 야기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절대역 이하의 낮은 강도의 자극을 이용하는 역하광고를 활용하는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 강하고 더 정교한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데도 광고자가 의식역하자극을 이용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어떻든, 우리 광고계에서는, 행여 잠재의식 광고의 '흑마술'과 같은 유혹에 이끌려, 잠재의식 광고를 시도하려는 어떠한 기도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키 박사의 경고를 '기우'로 만들고, "1984년은 1930년대쯤에 일어났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다"라는 마샬 맥루한의 언급을 과장으로 만들며, 광고가 뒤집어쓴 누명 즉 '인가 받은 포르노'니, '숨은 설득자'니, '숨은 신화'라는 등을 떨쳐 버려야 하는 것이다.
    사회과학| 2010.09.29| 4페이지| 1,500원| 조회(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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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를 읽고...
    여성 종군 특파원으로서의 인생- 카트린느 장틸, 한덕화 옮김,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 ,갑인미디어, 2003.내가 읽은 책인 '그들을 기억하는 한 이 길을 가리라‘라는 여성 종군 특파원인 카트린느 장틸이 중동 분쟁지역을 취재하면서 읽어난 일들을 그려내고 있다. 종군 기자란 전쟁터에 직접 나가 전선이나 군의 상황을 보도하는 기자이다. 근대 언론의 초창기부터 전쟁은 매우 중요한 뉴스 거리였고 따라서 전쟁 현장을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종군한다. 그들은 과연 무엇을 얻고자 위험한 전쟁에 뛰어 드는 것일까? 그것은 진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실을 알림으로써 전쟁에 의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의 애환을 풀어주는 것이다.나는 전쟁이 얼마나 무자비한 것인지 이에 대해 실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가에 대해 느끼게 되었다. 여기저기 시체들이 즐비하고, 귀가 멍멍할 정도의 포음이 들리며, 많은 군인들이 총을 들고 돌아다니는 장면들이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그로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눈물이 보인다.세상에 중동지역에서 전쟁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 대해, 전쟁의 진실에 대해 알리고자 노력한 카트린느 그녀는 종군기자이다. 종군기자, 그들의 노력은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여과 없이 전해주었고 가감 없는 역사를 기록하는 증인으로 남아있다.여성이라는 이름 아래옛날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이 있다. 예를 들자면 여성 운전자들이 조금만 자신의 진로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남자들은 가끔 욕설을 한다. 또한 직장동료끼리 결혼을 할 경우 그만두는 사람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처럼 어느 사회에서나 여성은 남성보다 아래라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팽배하다.남자기자가 막내아들이 수두에 걸려서 출장을 못 가겠다고 하면 그는 아주 자상하고 모범적인 아버지라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여자가 같은 말을 했을 때는 이런 소리를 듣게 된다. “거 봐, 치마 두른 것들은 다 똑같다니까!”(43쪽)그런데 카트린느 장틸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지역을 뛰어다니는 종군 특파원이 되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적인 대우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카트린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만약 종군 기자였다면 이 일을 견뎌 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폭발 소리가 들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틀리고 소름이 끼친다.“종군 리포터가 여자인 것이 장점인가 단점인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나는 당연히 단점일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히 장점이라고 말한다. 종교적인 이유로 남자 기자들은 현지의 여성에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지만 여자 기자들은 베일에 가려진 여성들을 거의 무제한 취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마초 기질을 가진 남자 군인들의 보호 본능까지 자극해서 정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절묘한 취재 여건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군 기자라는 일이 분명히 힘이 들고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종군 리포터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만인들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한 그녀가 같은 여성으로서 너무나도 존경스럽다.종군기자로서의 역할우리의 역할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도,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역할은 자신의 신용과 명예, 삶 전체를 저울에 올려놓고 전쟁과 분쟁으로 입은 세상의 상처에 펜을 가져다 대는 것이다.- 알베르 롱드르그녀는 신문에 좋은 이야기, 출생 소식 등의 듣기 좋은 뉴스만을 전하기보다는 이와 반대로 나쁜 일들을 폭로해야 세상이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많은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기사를 전할 때에는 그것이 어느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건 간에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임해야 하며, 결코 분노의 외침을 천박한 궤변으로 전락시키는 푸자디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불리한 처신도 할 줄 알아야 하며, 가끔은 출세의 대가가 행동의 제약이라면 자신의 출세 계획을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나는 이러한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언론개론 시간에 배웠던 기자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서 생각이 났다. 폭넓은 상식과 한 분야의 깊은 지식이 필요하고 민첩함, 즉 감각이 빨라야 한다. 또한 호기심이 많아야 하며 비판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10.09.29| 3페이지| 1,500원| 조회(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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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 다 문화와 청자
    고려시대 다 문화와 청자-목차-1. 들어가는 말2. 다 문화의 발달과 국내 청자 생산3. 고려시대 제다·음다용 청자의 제작과 사용4. 비유적 출토 도자의 양상으로 본 다 와의 관계5. 나오는 말1. 들어가는 말고려청자는 미의 표징이기 이전에 실용을 전제로 하는 생활용품이므로 각기 다른 기능을 가진다. 특히 부식이 더디다는 재료상의 장점을 가진 도자기는 현전하는 유물 중 그 수량이 가장 많다. 따라서 지역과 그 시대에 종횡으로 걸쳐 있는 청자 자료들은 생활상과 제도, 풍습 등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하다.따라서 본 발표에서는 고려시대의 음다, 제다를 포함한 다문화의 유행을 중심으로 새로운 음식문화의 발달과 유행이 도자기와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아름다움에 대한 찬타으로 일관해 왔던 기존의 시야를 넓혀, 청자의 다 관련 쓰임에 주목하고자 한다.2. 다 문화의 발달과 국내 청자 생산생활 유적 조사 결과 통일신라~ 고려시대 생활층 에서는 중국 남방 월요계의 청자나 북방 형요계 백자의 출토가 주목된다. 그 그릇들의 형태와 종류로 볼 때 차를 마시는 다완이 대부분이어서 국내에서 음다용 자기 생산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중국산 도자기의 수입사용 실상을 확인 할 수 있다. 이처럼 의례와 일상에서 다가 중시되고, 나아가다가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존의 수입도자기 만으로는 그 수요가 부족하였을 것이니, 차차 국산 자기의 제작, 요구를 재촉하였을 것이다.이 때 주목되는 다완은 이른바 옥벽저 양식의 다완이다. 이들 다완은 당대 하북성 형요, 절강성 월주요 등지에서 만들어진 백자, 청자로 대표되며 중국내 다의 발달과정에서 매우 유행하였음은 물론 동시대 신라, 일본 및 세계로 수출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도 바로 이들 자기가 수입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우리는 국내 자체 제작을 통해 새로운 음식에 부합되는 자기를 생산하는 단계로 진입한다.음다풍습은 그 도구의 생산에도 영향을 미쳤으니 다배, 다용, 침추, 다검, 다연, 다라, 다대, 다쇄, 다병, 다시, 다선, 다탁, 다작, 다건, 풍로, 도람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다병과 다완 등은 주로 도자기로 제작되었으니 차를 마시는 풍속의 일반화는 자기 산업의 발달을 촉진하였다. 뿐만 아니라 북송대 동기의 주조 금지령은 도자기를 일상 생활용기로 자리 잡게 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3. 고려시대 제다·음다용 청자의 제작과 사용① 요지 출토 청자의 용도와 생산비중- 고려 초기 청자가마터 조사를 통해 생산 청자 가운데 차를 마시는 다완과 같은 다구류가 전체 가운데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확인됨- 그러나 고려중기로 들어가면서 완의 비율이 매우 줄어들고, 대접 혹은 발이라고 하는 용량이 더 큰 기종들이 많은 비율로 생산되었음=> 차 종류의 변화 또는 음다방법의 변화 들을 짐작하게 함- 청자생산량의 상당 부분이 차를 마시기 위한 용구였음- 중국의 용례로 보아도 의외로 많은 기종들이 음다·제다와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차를 위한 각종용구의 생산이 고려 초 청자의 국내 생산을 촉발시키는 주요 원인이자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암시(1) 시흥시 방산동 요지- 방산동 요지는 1991년 김재원 선생과 포동 주민 안병권씨에 의해 발견되어 시흥시에 싱고함으로써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곳은 1997년과 1998년 시흥시의 의뢰를 받아 해강도자미술관에서 2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결과 이 요지는 한반도 중부지방에서 가장 처음 청자요업을 시작했던 가마의 하나로 추정되었다. 이곳에서는 벽돌로 축조한 대규모이 가마구조 및 중국 청자의 모양과 유사한 형태의 도자기들이 발견괸으로써 중국 청자기술이 직수입된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주변에는 통일 신라시대 말까지 토기를 생산했던 가마도 확인되고 있어 토기요업에서 자기요업으로 기숦이 바뀌어간 모습을 알수 있다. 이 가마는 통일신라 말 고려초기 시흥시 일대를 세력하여 두었던 호족이나 세력가에 의해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청자 생산은 도기요업이 선행되던 지역에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시작된 것으로 파악-3의 생산품은 완 54.19%, 발 9.41%, 접시 6.52%, 잔탁 4.65%, 주자, 호, 병 10.88%로 전체 생산에서 다를 마시기 위한 완이 절반을 넘음= 전체 생산에서 차를 마시기 위한 완이 절반을 넘음- 잔탁이나 주자, 병 등을 포함한다면 차 관련 용구는 더 많은 비중을 차지(2) 용인 서리 중덕 요지- 함박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이 백자요지는 이동면 서 리 산 163번지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넓게 위치하고 있 다. 용인관내에는 고려시대와 관련된 유적이 산재하여 있는데, 그 중에서도 고려초기의 백자요지가 특히 유명 하다.- 고려 초기 생산품 중에는 주발의 출토비율이 전체의 50% 차지- 상대적으로 늦은 시기인 Ⅱ유형에는 접시가 가장 많았으 며, 대접비율이 늘어나고 주발은 줄어들었다.- 초기 제작단계에서 차지하는 주발의 비중이 시간이 흐르 면서 점차 줄어들고 용량이 큰 바리때의 비중이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다.← 바리때 : 적당한 양을 담는 밥그릇이란 뜻으로 절에서 부처 또는 비구니가 소지하는 밥그릇.(3) 강진 용운리 10호 요지- 청자요지의 대표적인 예이다.- 고려 초기의 경우보다 청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지지만 비율로 보면 발 31%, 완 11%, 접시 40%, 기타 6%로 접시가 가장 많아 시대가 흐름에 따른 생산품 비중에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 같은 결과는 초기청자 요장 내에서의 시대적인 흐름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실제 청자의 사용측면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이다.고려 초 경기 및 중부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생산 유족에서는 단연 주발이 높은 비율 차지. 고려 중기 주발의 생산 점유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용량이 큰 바리때나 대접이 상대적으로 늘어남 → 한국식 해무리굽 주발의 변화과정과 새로운 기종의 비율증가 → 마시던 차의 종류 내지 음다법의 변화과정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4. 소비유적 출토 도자의 양상으로 본 다 와의 관계차문화의 확산이 청자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 소비유적에서 출토되는 청자들의 종류 및 그것들의 동반관계, 선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1) 분묘고려 무덤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묘주의 신분적 위치와 성별 등에 차이가 있겠으나 크게 금속, 도자, 직물류, 철기, 동전 또는 철전 등으로 구성된다. 그 가운데 청자나 백자로 나타나는 그릇류는 완, 발, 병, 호, 접시 등이 주를 이루는데 이 같은 기종의 조합은 일상에서의 식생활 또는 다예 등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고려 초 정종릉 안릉: 청자화형발, 청자잔탁, 청자주자 뚜껑 등 동반(구리로 만든 쟁반) 출토.⇒ 이 그릇들의 종류는 다분히 중국 오대부터 송대 무덤에 부장되거나 벽화의 다 및 음식관련 장면에 등장하는 자기류와 일치하고 있다.청자잔탁 : 많은 사람들은 고려 시기의 이러한 잔탁들을 술잔 정도로 헤아리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빈약한 사료에 술잔과 찻잔의 개념이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며 찻잔보다는 술잔의 개념을 우선시 하는 데, 같은 시기 중국의 차문화를 살펴보면 그것이 찻잔이었음을 곧바로 알 수 있다. 이 청자 잔은 고려인의 차에 대한 정신문화가 잘 나타난 고려초기의 잔탁으로서 연꽃형상의 잔과 유색은 담록색으로서 매우 아름다운 잔탁이다.-경기도 양평 매월리 고분 : 청자완, 청자반구병, 청자철채백화문침, 청동병, 청동시 등이 일괄 출토되었다.=청자 철채 백퇴화 초화문 : 윗면에 보이는 흰색 문양은 흰색 흙을 찍어 붙여 도드라지게 퇴화기법으로 장식된 것이 분명하고, 흑색 문양은 붓으로 그린 철화기법이다. 상면 장자리를 따라서 빙두른 흰점의 퇴화문양이 매우 볼록하여 손에 잡히는 감촉이 있고 선명하다. 가장자리 톱니바퀴 문양은 일반 청자의 기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이한 문양이다.-경기도 장단군 장도면 인종 장릉: 청자과형병, 방형대, 무문합, 곡화형합, 청자유합완 출토=방형대 : .고려《청자과형병》과 함께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에 있는 고려 인종의 왕릉에서 출토된 청자 유물 가운데 하나로 전해진다. 똑같이 생긴 다른 하나와 함께 한 쌍를 이룬 것으로 짐작되지만 용도는 확실하지 않다. 밑바닥은 틔어 있으의 4능화형대모양으로 제식이 규모있게 짜여 있다. 완과 발 이외에 방형대도 차와 관련된 도구일 가능성이 있다.분묘에 매납 되었던 청자는 질과 기종에 따라 부장품 구색 맞춤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분묘 내에 양질, 조질, 도기, 금속 등 재질면에서 차이는 있으나 동일 기형이 다른 재질로 함께 부장되는 예는 드물다. 즉, 각각의 지역 및 부장자의 지위 등에 따른 매납품의 질적 양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기본 갖춤은 유사하다. 더욱이 동반되는 유물들은 생산유적에서와 같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고 동시대 일상 생활용품과 부장용품 간에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다와 관련해서는 다구였을 완이나 발 등이 빠짐없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은 함께 부장되는 기물들에 비해 고급으로 제작된 것들이어서 다가 일상에서 중요한 것이었음을 짐작케 한다.(2) 관청 및 주거 성지유적분묘 외에 고려시대 관청유적, 주거 및 성터에서도 청자의 사용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전남 장흥 탐진댐 수몰지구, 대전 대덕구 법동 건물유적, 경기도 파주 혜음원지 영암 월출산 제사유적 등에서도 청자완이 발견된다.한편 충주 대림산성 생활유적에서는 유적의 성격에 따라 사용되던 청자의 질과 종류에 차이가 있지만 역시 완, 발, 접시 등이 빠짐없이 발견된다.상한연대가 11세기 전반경인 부산 당감동 동평현성지에서는 유적 최하층에서 한국식 해무리굽의 청자완이 발견되었다.-해무리굽 청자완 : 초기 청자로 9세기 말경부터 서남해안 일대를 중심으로 번조가 된다. 특히, 전라남도 강진 일대에 가마가 분포되어 있고 해안지대를 중심으로 출토되고 있다. 굽의 모양이 해무리와 같다 하여 해무리굽이라 부른다. 빛깔 좋은 비취빛이기 보다는 녹청자에 가까운 색이며 대접의 경사가 급하다. 청자가 경주 지방이나 개성 근방이 아니고 당시로서는 변방에서 시작되는 것은 서남해안이 중국이 가깝다는 지리적 요인도 있겠지만 왕권이 약화되고 호족세력이 커지면서 물산이 풍부한 서남해안이 새로운 기술을 실험하고 정착하는데 알맞았다.
    자연과학| 2010.09.29| 7페이지| 1,500원| 조회(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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