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이데올로기도 내리지 못한 결론- 황석영「손님」을 읽고 -1. 들어가며잘 쓰여진 한편의 문학 작품, 특히 소설은 한 나라의 그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특히 리얼리티를 잘 구성하여 쓰여진 작품이라면, 더더욱 그러한 평가를 받으며 읽혀지는 독자로 하여금 더 강한 감동을 선사하기 마련이다. 또한 역사를 이끌어간 주도적 인물들이 아닌, 마이너리티로 불리는 역사의 감추어진 이들의 일상을 통해 일반 민중들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추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이 소설 ‘손님’은 시대적인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작가 자신이 고민하고 체험한 일련의 내용들을 토대로 당시 사회의 지도층이 아닌 우리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뚜렷한 색깔의 이념들이 자리잡던 해방이후부터 한국전쟁때까지의 시대상황을 잘 그려내 주고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2. 내용살펴보기이 소설은 크게 두가지 부분의 내용전개가 이루어진다. 작가는 이것을 “과거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라는 하나의 씨줄과, 등장인물 각자의 서로 다른 삶의 입장과 체험을 통하여 하나의 사건을 모자이크처럼 총체화하는 ‘구전담화’라는 날줄을 서로 엮어서 한폭의 베를 짜듯 구성하였다.)”고 말한다. 쉽게 설명하면 일반 소설에서처럼 시간적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한 축의 이야기와, 그 소설속 주인공이 영혼들과 대화하며(때로는 과거현장에서) 진행되는 다른 한 축의 이야기가 전개된다.이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인 류요섭이 뉴저지에 사는 형을 만나러 가는 내용을 시작된다. 요섭은 기독교 목사로서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 요한은 그에게 하나남은 형제로 그 또한 기독교인으로 ‘장로)’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었다.요섭은 미국에 일찍 정착하여 백인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지역에서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러한 미국인들의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요한의 집에 교인들과 함께 심방을 가서 형에게 자신이 ‘고방방문단’의 일원으로 고향인 ‘황해도 신천 참샘골’에 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형은 갈 수 있겠냐며 의아해 하지만, 요섭은 이미 결정되어 갈 날형 요한이 갑자기 죽었다는 전화였다. 특별히 병이 있었다거나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형이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와 함께 예배를 드리다가 편안히 죽었다는 것이다. 전화를 받고 급히 요한이 월남하여 얻은 부인에게서 얻은 두 아이들(삼열, 빌립)에게 연락한 후, 뉴저지로 달려가 형의 장례를 주관하였다. 장례를 마치고 요한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요한이 평상시 사용하던 수첩을 발견하게 되고 그 내용중에 ‘내일 박명선과 통화할 것’이라고 쓰여진 내용을 보게 된다.요섭은 박명선이라는 사람과 통화하고 그녀를 찾아가 만나게 된다. 명선은 다름아닌 요섭의 고향 옆마을에 있던 교회 청년부 부회장이었던 여인이었다.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형 요한이 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겼음을 알게 되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와 고향방문을 위해 출국할 준비를 한다.출국을 하고 중국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호텔에서 미국의 어느 대학의 ‘교수’로 있는 사람과 한방에 머물게 된다. 요섭은 그가 맘에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중국에서 시간을 보내고 다음날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평양에 방문한 첫날 고향땅을 갈 수 있다는 기대보다는 눈에 띄지 않는 감시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로 교수 가족이 상봉하는 자리에 요섭이 동승하게 되고, 교수 가족의 만남이 끝나고 요섭은 그 자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던 북한의 안내원들에게 감추었던 자신의 가족력이 드러나게 된다. 생각외로 북한의 안내원들은 호의적으로 접근하며, 요섭의 가족들을 하나씩 찾아주기 시작한다. 먼저 형 요한이 남겨두고 온 형수와 그 아들 단열, 그리고 소메 삼촌(안성만)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북한 당국측의 특별한 베려가운데 요섭만이 고향인 황해도 신천을 방문하게 되고 단열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형수가 살고 있는 집에도 가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요한의 죽음을 안 형수가 요한의 제사를 드리는 자리에 함께 하게 되고, 곧이어 헤어진 후 소메 삼촌을 만나게 된다. 죽은 영혼들을 보게 되는 자신과 같은 현상속에 살고향에 오며 가져왔던 요한의 작은 유골 조각과 단열을 낳을 때에 아이를 받았던 그 속옷을 함께 태우고 그것을 찬샘골 뒷산에 묻는 것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이것이 시간적 흐름에 따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축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이 부분만으로는 그 내용의 전개가 매끄럽지 못하다. 즉, 다른 이야기 축인 주인공과 각 영혼들의 대화들로 진행되는 부분의 이야기가 그 매끄럽지 못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다.작가가 말한 ‘구전담화’의 부분에 나오는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다.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들에는 기독교역사(한국 교회사)에서 다룰 법한 여러 선교사들의 이야기(토마스, 언더우드, 펜윅 등)들부터 그들이 세운 교회는 황해도 ‘솔내교회’를 배경으로 작가가 구성하여 펼쳐놓은 류요한, 류요섭 형제의 가족사가 가지고 있는 종교적 배경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또한 주인공 요섭이 어린시절 미처 알지 못하고 있던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 동양척식주식회사 등이 벌인 일제강제 수탈시기의 고향모습과 광복회와 만주 독립군에 투신한 사회주의 독립투사의 이야기, 가진자와 없는자가 분화되던 현상들, ‘신탁/반탁’에 얽힌 당시 황해도 신천의 분위기, 해방이후 38선 이북에 자리잡은 공산당이 실시한 토지개혁령에 얽힌 내용등 우리가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어떠했다고 배웠던 지배층들의 역사를 당시 그 시대를 지탱하던 우리의 보편적인 피지배층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여주었다. 주인공인 요섭과 아직 정리되지 못한 이 세상의 한(恨)을 가지고 떠돌던 영혼들의 대화를 통하여 그러한 모습들을 그려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영혼들과의 대화 마지막에는 요한이 여러 사람들을 죽였지만, 그 중에서도 요한과 함께 기독청년회의 일을 함께 하던 상호라는 청년의 근본을 잊은 일탈적 행동으로 인해 요한이 명선의 가족들을 죽이게 된 내용이 서술되며 소설 초반에 등장한 박명선이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된다. 또한 그 사건은 요한의 두 누이와 그 가족들이 죽는 요인이 됨도 밝혀진다.3. 역사가가 되어 작품보기역사가가 되 목격담을 통해 그 내용을 구성했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더욱 빛날 수 있었다.문학작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미되어야 하는 문학적인 요소들을 제하여 두고 보아도 이 작품은 해방이후 여러 사건들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인식을 다시금 고쳐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기독교에 대한 것이다. 책에서도 밝히고 있는 여러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정착되고 민중에게 신앙이 전파되어 그들이 계몽되어진 긍정적인 부분은 어떤 부분도 비난할 수 없다. 당시 상황이 북한 정권의 사상이 종교를 인정하지를 않아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극에 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가진 그 근본적인 그 내용이 바르고 완전히 내제되어 지지 않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는지에 대해서는 그 비난을 피할 수 없을 듯싶다.‘죄를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는 예수의 그 가르침을 헛된 가르침으로 만들어버리고 이데올로기에 종교가 이용되는 그러한 모습들은 비록 이 소설이 각색된 내용이기는 하나, 실제인물들의 목격담을 통해 구성되었다는 작가의 말을 빌려 볼 때에 종교도 이데올로기 앞에서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결론을 가질 수 있게 되며,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말한 마르크스의 말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흔히 서양 역사에서 ‘십자군 전쟁’을 그러한 종교성을 띤 대표적인 폭력사건이라고 볼 수 있지만, 우리 역사가운데서도 그런 불행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다음은 내용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에 주목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의 사건이 우리 민족의 농업근간의 당시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던 토지에 관한 것들임에 주목하며, 동양척식주식회사)로 대변되는 일제의 우리 민족에 대한 수탈로 시작된 토지에 관한 당시 민족의 고난을 해방이후 북한 정권이 내세운 ‘토지개혁령)’에 따른 지주들의 몰락과 빈농들의 인권신장 등 당시 사회의 프롤레타리아 간에서도 있었던 계층의 차이를 로 그 가치관이 바르게 적립되어 있던 지식인들이 아닌 이상 그러한 정치적인 문제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음을 평범한 농민의 입장이었던 인물들이 주인공인 요섭과 대화하는 ‘구전담화’부분을 통해 볼 수 있다.이러한 장면을 이해하는 데에는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에서 여주인공이었던 영신(이은주 분)이 밀가루 준다고 하는 말에 서명했던 그 명단이 후에 ‘빨갱이’로 몰려 여러 우익청년들에게 끌려가 총살당하는 장면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4. 생각정리하기「손님」의 내용을 중반쯤 읽어가다가 문득 떠오른 사건이 있었다. 지금은 우리의 머릿속에 거의 잊혀져가고 있지만, 몇 년전 한국 언론에 앞다투어 보도되던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이 소설의 내용에 오버랩되어 계속해서 상기되어졌다. 우리의 시각으로는 항상 정의롭고 선한 이미지로 인식되어 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두운 곳곳에서는 상상치도 못했던 엄청난 사건들을 통해 잔혹한 존재로 남아있기도 한 것이다.이 책의 내용에서도 그렇다. 한쪽 사상에서 본다면 다른 사상은 쓰레기로서의 가치만을 지니는 사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전혀 가치관으로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그 본능에 충실하기도 힘들다고 여기기 때문이다.하지만 역사는 그러한 입장에서 서술되어지지 않았다. 과거 우리 인간은 그런 관점은 남아있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의 본성을 추구하던 그러한 다수가 있었기에 이데올로기를 부르짖던 소수들의 결론이 도출되고, 현실화되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또한 역사는 항상 승자의 관점에서 서술되기 마련이며,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사료들이 승자의 관점에서 조명되고 있다. 그러나 6?25, 한국전쟁은 그 누구의 승자도 없었던 전쟁이고 역사이다. 실제로도 아직 우리는 전쟁 중이다. 다만 휴전상황일 뿐인 것이다. 현실로 본다면 ‘노근리 학살사건’, 문화미디어로 본다면 ‘태극기 휘날리며’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