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me introduce my hobby.My hobby is to take a picture, and I love to pose for a photograph. I loved more my hobby after bought a new cellularphone. Because cellularphone is portable, whenever prepared to take a picture. If I were to took a pictures when I went to something special space that picture will remember the days of special space. So, picture become valuable treasure. A beautiful landscape`s pictures to make me feel wonderful. Photographes of friends to make me laugh.Let me show you some pictures of me.(사진)
저자 “베네딕트” 에 대해 알아보자.[Benedict,RuthFulton, 1887.6.5~1948.9.17]뉴욕 출생. 1909년 배서여자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어학교사·시인으로 지내다가, 1919년 컬럼비아대학교에 입학, 아메리카인디언의 민화와 종교를 연구하여 1923년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30년 컬럼비아대학교 조교수, 1948년 인류학교수가 되었다.학문적 입장은 인간의 사상·행동의 의미를 심리학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으로서 O.슈펭글러나 W.딜타이의 문화유형학과 게슈탈트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문화 양식론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입장은 문화와 퍼스낼리티연구나 국민성연구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주요저서로 《문화의 유형 Patterns of Culture》(1934) 《민족-과학과 정치성 Race:Science and Politics》(1940)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 등이 있다목차 및 요약1. 연구과제 - 日本. 일본은 국화를 가꾸며 탐미 주의적인 동시에 칼을 숭배하는 군국주의라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 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사상, 감정, 습관에 담긴 문화의 pattern을 이해 해야 하고 이러한 행동과 의견의 배후에 있는 강제력을 알아야 한다.2. 전쟁중의 일본인일본이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므로 이 질서의 지도자는 일본이 라야 한다. 일본은 위에서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저마 다의 알맞은 위치'를 갖는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일본의 전쟁 승리의 근거로 정신력을 들고 있다.3. 각자 알맞은 위치 찾기예의가 행해지고 성별, 연령별의 구별과 장자 상속권에 입각한 계층제도가 가정에서 시작 된다.각 계급에는 어떠한 권리의 보증이 주어졌고 신분상승의 가능성도 있었다.4. 과거와 세상에 빚을 진사람일본인은 자신을 과거 사람들의 덕택에 태어나고 양육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일본인의 자기규정은 과거와 세상에 恩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 이다. 恩은 의무(obligation), 친절(kindness), 愛(love)로 번역되지만 원래의 의미 를 전부 나타내지는 못한다.5. '만 분의 일'의 은혜 갚음일본의 항복 시 항전의지가 충만했던 일본인의 천황의 정전명령에는 누구 하나 거역하지 않 았다.6. 가장 쓰라린 보은義理는 자신이 받은 은혜와 같은 수량 분을 갚으면 좋고, 또 한 시간적으로도 제한된 부채다. 이것은 세상에 대한 의리와 名에 대한 의리로 나누어진다. 의리의 규칙은 어떻게 해서든 지켜야 되는 갚음의 규칙이다. 義理의 규칙은 자발적으로 관대한 행위를 하는 것을 요구치 않는다. 義理에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세 상의 소문이 무섭기 때문이다. 義理를 갚지 못할 때는 그 사람은 인격 적으로 파산했다고 여기며 의리를 갚음은 정확히 같은 양이어야 하며 적절한 시 간보다 늦어지면 그 양은 커지는 것이다.7. 오명을 씻는다일본에서는 부자가 되는 것은 무언가 의심을 받지만 합당한 위치를 지키면서 거기에 맞는 존엄을 확보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 된다.8. 人情의 세계일본인은 육체적 쾌락은 좋은 것이고 그것을 즐기기 위해서는 배울 필요가 있다 고 생각한다. 육체와 정신이라는 2가지 힘이 각자의 생활 패권을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서구의 철학을 근 저에서부터 뒤엎는다.9. 德의 딜레마어떤 국민의 인생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배경에서 自重을 잃거나 혹은 획득한다고 말하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인은 치욕감을 그들 의 도덕의 기본체계의 원동력으로 한다. 일본어로 '恥를 아는 사람'은 '有德한 사 람, 명예를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타인의 비평 을 기준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10. 어린아이는 배운다아이들은 커가면서 잘못하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당한다는 사실과 세상에 대한 義理에 따라 행동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도덕적인 교훈을 서서히 연결시켜 가는 것이다. 이제 점차 여러 종류의 구속으로 자신의 의지를 점차로 증대되어 가는 가족, 이 웃사람, 나아가서는 국가에 대한 義務에 복종하게 하는 것을 요구받는다.비록 세월은 지났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무사의 녹슬지 않은 칼이 번쩍이고 있는 것이다. 일본적 의미에서의 그들의 칼이란 공격의 상징으로서가 아니다.내가 느낀 “국화와 칼”국화와 칼이라 언뜻 보기엔 둘 사이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둘은 상반된 뜻을 나타내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칼은 무력, 억압, 전쟁을 뜻하는 어둠을 상징하겠고, 국화는 꽃이므로 평화 또 는 안전을 상징한다고 해석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 국화/칼을 보면 국화는 좋은 이미지를, 칼은 나쁜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상반되었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흔히 우린 장례식 외에서는 국화를 잘 접하지 않는다. 축하행사로 쓰이는 꽃은 국화가 아니란 뜻이다. 이는 곧, 국화를 죽음의 상징과 연관 시킬 수 있겠다.우리 나라 근대사는 맑은 날 없이 언제나 흐림이다. 근대사를 생각하면 회색 빛의 느낌이 먼저 감돈다. '다른 나라에 보여주기에 부끄럽다', '한국인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보다 일단 나부터 우리 근대사가 싫다. 고구려사를 공부할 때의 짜릿한 쾌감, 그 묘한 기분을 우리나라 근대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싫다. 일본도 싫다.우리의 역사ㅡ특히 근대사ㅡ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우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만약 내가 인류학자로서 연구를 하게 된다면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올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의 피해주의적 사관에 사로잡혀, 최대한 주관적으로 '일본 놈은 나쁜 놈'으로 깎아 내리게 될 것 같다.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모두 나와 같지 않을까 한다.(( 세계 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는 정말 이 지구상은 둘 도 없는 대량 학살과 대량 파괴를 주저하지 않는 인간들의 처절한 살육의 실험장이었다. 유럽에서 나치즘을 신봉하는 나치스트인 히틀러와 동양에선 천황 제를 중심으로 하는 군국주의의 대두 격인 히로히토 천황이다.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은 미국이 진주만 폭격 이후 일본과의 전투에서 그들의 독특한 면을 보고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것을 학술적으로 연구하여 풀어 보려고 하는 시도에서 나온 것이다. 서양적 사고로 길들여져 있었던 미국인들에게 그들의 할복자살이라든가 가미 가제 자살 특공대는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처음에 미국이 이러한 일본에 대하여 연구를 시작했을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인 차이에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가까운 우리가 보더라도 지금의 일본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면이 많은 나라이니 그 때 (1940년대)일본이야 미국이 보기에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리라 생각된다. ‘일본인은 친절하고 겸손하다. 그러나 또한 오만하고 불손하다’, ‘일본인은 차갑고 매섭다. 그러나 또한 따뜻하고 부드럽기도 하다.’등등의 다양한 면을 가졌기에 더욱 미국인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러한 단편적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인 생각을 보다 객관적이며 과학적으로 접근하고자 해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연구의 주제는 바로 다름 아닌 “일본인의 인류학적 차원의 의식구조”이다. )) ( 간략의 내용 )
꽃의 아름다움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아름다운 꽃을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사람의 진실 된 사랑을 귀중히 여기는 사람만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바칠 수 있다. 전태일의 삶은 사람이 태어나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되게 사는 것인지 가르쳐 주었고, 죽음으로써 참사랑이 무엇인지 일깨워주었다.먼저 전태일을 이렇게 정의해 보았다.* 전태일, 그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다.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여린 사람이었다. 자신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약하고 힘없는 사람들에 대한 애달픔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할 정도였다.* 전태일, 그는 한없이 성실하고 진지한 사람이다.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어린나이에 여섯식구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구두닦이를 비롯해 신문팔이, 삼발이장사, 껌팔이, 우산장사, 뒤밀이 등등 평화시장의 재단사가 되기까지 숱한 밑바닥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스물 두 해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어쩌면 단 하루도 쉬어보지 못하는 날들이었다. 그렇게 성실히 일했건만 일당은 14시간 노동에 커피 한 잔 값밖에 안되는 50원! 평화시장의 다락방에서 피를 토해내며 쓰러지는 어린 여공들을 바라보며, 잘못된 사회현실에 대해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인간은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에 도달하게 된다.* 전태일, 그는 온 몸으로 사랑을 실천한 사람이다."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감상에 앞서 < 전태일평전 > 이란 책에 대해서 알아보자.-> “전태일평전”은 작가 조영래씨가 옥중에서 책을 저술하기 시작하여 출옥 후에 변호사가 되어 3년의 각고 끝에 완성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전태일의 삶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이다.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는 노동착취의 현실 속에서 전태일은 노동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부모형제, 마지막엔 자신의 목숨마저도 포기한다. 그의 마지막 포기는 전태일 자신의 분신이었지만, 결국엔 이 사회의 부조리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이러한 인물인 전태일이 살았던 시대는 그야말로 노동자들의 지옥이었다. 책 중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는 허울뿐인 근로기준법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 현실 때문이었다. 하루 16시간 이상 악조건에서 노동을 하고도 왕복 차비 밖에 벌 수 없어서 하루 벌어 하루를 간신히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체험하는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지켜지도록 결국 근로기준법 책과 함께 몸을 불사르게 된다. 지금 있는 근로기준법에 비해 그 때의 법이 뒤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삶은 현저하게 낮았다. 단순히 인간다운 삶만을 원했던 그들에게, 이 사회가 준건 과도한 노동과 적은 임금뿐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작가가 1970년대 노동정책이 얼마나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는지 알리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또한 국가권력이 경제적 부유층과 빈곤층에 대해 상당한 차별대우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 중에서 노동자들이 관공서에 탄원서를 보내도 국가는 묵묵부답이었을 뿐이었다. 1970년대에 일어났던 ‘YH 민주노조활동과 신민당사 농성투쟁’이나 ‘동방방직 민주노조 사수투쟁’ 사건을 보아도 그 당시 노동문제가 발생하여도 국가는 눈감아 주면서 소유주를 두둔하였으며 이러한 현실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더욱 무참히 짓밟고 소유주들의 통치방식을 더욱 뒷받침해주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이러한 것들이 1970년대 노동자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또한 공정하지 못한 이익 배분이 얼마나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책 중에서 작업반장들이 200원짜리 밥을 먹을 때, 어린 여공들은 그들의 커피값인 50원으로 하루 세끼를 채워야했고, 심지어 1원짜리 풀빵으로 끼니를 때우기까지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즉 노동한 만큼의 분배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이런 공정하지 못한 이익 배분 때문에 노동자들의 의욕이 떨어지고 불만을 증폭시킨 것이다. 열심히 일한다면 그에 마땅한 대가가 돌아와야 함에도 1970년대의 노동자들은 단순히 열심히 일할 뿐이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 뒤에 따라오는 것은 돈과 나아진 삶이 아니라 만신창이가 된 육체와 피폐해진 영혼이었다. 이러한 노동환경의 빈약성 고발을 위해선 분신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고 느꼈다.인간이 물질화하는 세대,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 전태일의 수기에서전태일이 죽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전태일이 꿈꿔왔던 이상에 아직도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즉, 지난 30년간 우리나라는 상당한 돈을 벌어들여 경제가 급성장했고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이미지 개선을 했으나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꿀 수는 없었다. 결국 이는 전태일이 생각했던 천민자본주의에 불과한 것이며 우리 세대에까지 아직도 풀어 나가야하는 숙제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의 원인은 타율적 근대화 과정에서부터 생각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전통과는 완전히 단절되어 버리고, 우리사회는 반성의 기회나 그 대상조차 없이 무에서 서구의 근대화를 모방하는데만 급급하였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는 천민자본주의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아가게 된 것이고, 특권층은 그들이 가져야만 하는 부스러기들에 대한 근본적인 동질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자신들만의 복록을 추구한다. 따라서 우리가 그 극복을 고민하여야 할 구조는 결국 서구의 제국주의적 세계지배체제에까지 확장되며, 내부적으로는 우리가 반성의 기준으로서 확립하여야 하는 전통과 현재의 단절을 넘어 그 연결을 모색해야만 하는 거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전태일과 같은 인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이렇듯 아직 문제가 해결되고 있지 않기에 정말로 제 2의 전태일과 같은 인물이 탄생했다. 얼마 전, 노동권 보장을 위한 합법적인 투쟁을 벌이던 배달호씨가 분신, 자살한 것이다. 즉, 나중에는 제 3의 전태일, 제 4의 전태일과 같은 인물이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자본주의와 인본주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자본주의와 인본주의는 결국 공존할 수 없는 것인가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전태일이 말한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어, 부스러기가 되는 사람이 없는 사회’가 과연 탈자본주의 즉 공산사회 혹은 아나키적 사회인지, 아니면 인본주의적 인식론에 기초한 자본주의에 의해 돌아가는 사회인지는 답을 확실히 내릴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전태일은 인본주의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공산주의도 아나키즘도 몰랐지만, 근로기준법의 발견과 그를 통해 계발된 그의 신념을 통해 처참했던 시기에 황폐화된 한국 노동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한 활동을 해낼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영웅이 된 것이고 각성의 횃불이 된 것이다. 경제논리로만 작동하는 기계적 합리성에 기반한 천민자본주의에 대한 인본주의자의 투쟁을 전태일의 삶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어찌되었든 제 2의 전태일이 된 배달호 씨의 죽음은 아직 우리사회에는 전태일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기업들이 노동자들의 권익 보장과 그를 위한 노동운동의 목표에 대해서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물론 기업에게, 지금과 같이 신자유주의가 창궐하고 있는 때, 인본주의는 자신의 고유한 자본주의적 논리와 근본적으로 모순되는 것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또 기술의 발달로 인해 대부분의 노동은 로봇에서 맡겨질지도 모르고, 그렇게 되면 자본주의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더 이상 두터운 노동자층이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른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소수의 관리자들만으로 돌아갈 수 있는 20대80의 사회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체제는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 작동된다. 또한 이것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는 인식을 하는 이상, 우리는 그 체제를 변혁하려 할 것이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모든 인간이 죽고 자본주의-기계만이 살아남지 않는 이상 인본주의적 열망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아무리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창궐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사회는 최소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논리 혼자서는 폭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은 자본주의-기계로서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의의를 인정하고 자본주의-기계적인 경제논리가 인본주의보다 우선될 수 없게 해야 할 것이다.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