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1II. 본론11. 백석의 생애11.1 백석 연보11.2 생애 특징22. 문학세계52.1 초기 문학 세계(1930~1936)62.2 백석의 중기 문학 세계(1936~재북이전)122.3 백석의 후기 문학세계(재북~1961)17III. 「定州城」분석25IV. 결론27백석론??Ⅹ?Ⅸ. 서론193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들 중 한명인 백석. 그러나 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지는 불과 몇 년이 되지 않는다. 물론 연구 기간에 비해서는 많은 연구 성과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앞으로 백석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결과가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이제까지 연구 되어 온 백석에 대한 연구업적을 중심으로 시인 백석에 대한 논의를 펼쳐나가도록 하겠다. 우선 백석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의 문학세계를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살펴본 다음에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정주성」을 분석하도록 하겠다.Ⅰ. 본론0. 백석의 생애0.0 백석 연보)1912년(1세)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상면 익석동에서 부친 백시박(白時璞)과 모친(李鳳宇) 사이에 장남으로 출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모친 이봉우는 단양(丹陽)군수를 역임한 이양실(李養實)의 딸로 알려져 있음.1918년(7세)오산(五山)소학교 입학. 남동생 협행(協行) 태어남.1921년(10세)남동생 상행(祥行) 태어남.1924년(13세)오산소학교를 졸업하고 오산 고등보통학교에 제2회(오산학교 통산 18회)로 입학. 오산고보 시절 백석은 문학과 종교(불교)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다고 함.1925년(14세)여동생 현숙(賢淑) 태어남.1929년(18세)오산고보를 3월에 졸업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향에서 보냄.1930년(19세)1월에 발표한 『조선일보』신춘문예에서 「그 母와 아들」로 1등 당선, 4월에는 조선일보사 방응모의 장학금으로 일본 동경의 기독교 명문대학인 청산학원(靑山學院) 영어 사업과에 입학1931년(20세)5월 15일 청산학원 교회에서 세계 받음.1933년(22세)5월,3사슴』간행 : 19361930년대 우리 시단의 신예시인으로 그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며 많은 관심 속에서 중요한 논의의 대상으로 떠올랐고, 우리 시사의 문제적인 시인으로 평가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였다.7.7.7 이직 : 함흥영생고보의 영어교사 (1936년)영생고보는 기독교 정신을 근간으로 삼아 설립, 운영되고 있는 학교였으며, 3? 1운동을 주도했을 정도로 민족주의 정신 또한 강한 학교였다. 이 시기에 백석은 영어교사로서의 탁월한 영어실력, 문학적 능력, 준수한 용모와 열정이 겸비된 젊은 지성인의 자세등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 학생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첫 시집 『사슴』이후의 시세계를 이곳에서부터 준비하기 시작하였고, 첫 시집 이후의 시세계에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왔다. 시인 자신은 뒤로 물러서고 그 대신 외부의 대상이나 정황만이 담담하게 제시되었더 것이 시집 『사슴』의 경우였다면, 방금 말한 바와 같이 외부의 대상이나 정황 대신 시인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등이 적극적으로 전면에 표출된 것이 함흥 시절에서부터 쓰여진 작품의 경우이다.그리고 권번 출신의 김자야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이 김자야와의 만남은 3,4년에 불과한 일이었지만 백석의 생활과 그의 문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8.8.8 조선일보 출판부에 재입사 : 《여성》지 편집일 담당서울로 다시 돌아온 이유를 분명히 찾아내기는 어렵다. 외적으로 보면 1930년대 말이란 일제의 군국주의적 폭력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던 때이고, 그런 폭력은 백석이 근무하던 함흥 영생고보에도 노골적으로 가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내적인 이유는 서울에 머물고 있는 그의 애인 김자야가 그리웠고 그와 함께 지내고 싶었다는 점으로 추정할 수 있다.9.9.9 만주로 떠남김자야의 말에 의하면 백석이 서울을 떠나 만주로 간 것은 그가 부모의 강권에 의하여 이 해에 두 번째 결혼을 치르는 등 복잡한 가정사와 봉건적인 관습 등으로 심각한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설득력이 약하다고 같은 짚신이 둑둑이걸리어도 있었다.녯말이 사는 컴컴한 고방의 쌀독 뒤에서 나는 저녁 끼때에 부르는소리를 듣고도 못 들은 척하였다.이 작품에서는 자신과 대상 사이에 적절한 지적인 거리(미적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주관적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 볼 때 백석은 객관주의 정신이 구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객관주의 정신이 우리 시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백석의 이 정신은 넓게 보아 1930년대의 이미지즘 혹은 주지주의 정신과 같은 선상에 놓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표적인 인물은 김기림이나 김광균을 들 수 있는데 백석은 당대의 문학적 유파에 소속되어 활동할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시정신과 일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석의 시에는 인간들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삶의 모습이 들어있다는 점에서 김기림과 김광균의 시와 차별화 된다고 할 수 있겠다.2.2.2 일상적인 감정과 의식세계백석의 시는 일상인의 정신과 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땅의 전통적인 사회적, 문화적 환경 속에서 살았거나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와도 쉽사리 말길을 틀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이며 일상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백석의 시에는 과격함이라든지, 비장함이라든지, 선동적이라든지 하는 이른바 일상 이외의 특별한 순간에 맛볼 수 있는 그런 감정의 세계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자신의 시를 통하여 우리가 나날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작고 평범하고 소박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중한 세계를 그려 보인다.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어 주는 대표작으로는 「주막」이 있다.酒幕호박잎에 싸오는 붕어곰은 언제나 맛있었다부엌에는 빨갛게 질들은 팔모알 상이 그 상 우엔 새파란 싸리를 그린 눈알만한 盞이 뵈었다.아들아이는 범이라고 장고기를 잘 잡는 앞니가 뻐드러진 나와 동갑이었다울파주 밖에는 장꾼들을 따라와서 엄지의 젖을 빠는 망아지도 있었다이 작품에서 시인은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과거를 회상하는 데는 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이작품은 그가 서울을 떠나 함흥영생고보의 교사로 있을 때에 한 여성을 그리워하며 창작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으며, 백석의 주관적이며 낭만적인 감정이 물씬 배어날 만큼 주정적이다. 뿐만 아니라 대상에 관심을 두었던 이 시인이 그 대상 대신에 자기 자신에 관심을 두면서 바로 나로 표상된 자기 자신을 작품의 문면에 올려놓고 있다.이런 점은 그가 1939년도에 서울을 떠나 아예 만주로 거처를 옮긴 후에 쓰여진 작품에서 더욱더 잘 나타나며, 이것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북방에서」,「힌 바람벽이 있어」,「촌에서 온 아이」,「두보나 이백같이」,「귀농」,「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등이 있다.1.1.1 이방인의 비일상적 감정과 의식세계이때 백석은 가족과 애인과 고향과 조국과 친구와 친척과 직장을 떠나 만주로 어쩔 수 없이 옮겨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백석이 보여준 세계는 안정된 사람의 일상적인 감정과 의식상태가 아니라 불안정한 사람의 비일상적인 감정과 정신 상태이다.이를 잘 드러내주는 작품으로 「힌 바람벽이 있어」가 있다.힌 바람벽이 있어오늘저녁 이 좁다란방의 힌 바람벽에어쩐지 쓸쓸한것만이 오고 간다이 힌 바람벽에히미한 십오촉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때글은 다낡은 무명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그리고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메인다이 힌 바람벽에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을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씿고있다또 내 사랑하는겨 모를 처녀 아니나,더 좋은 것 없다는 이 처녀의 마음,삼수 갑산 갓나물 같어 향기롭구나-노동의 증대와 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과 찬사 속에서 농민들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우회적으로 드러내었다.위의 작품들은 목적지행성과 계몽성 및 교훈성이 매우 우회적으로 드러난데 반해 다른 작품에서는 보다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한 작품으로는 「공무려인숙」,「동식당」,「축복」이 있다.공무려인숙삼수 삼십리, 혜산 칠십리신파 후칭이 삼백 열리,북두가 산머리에 내려 앉는곳여기 행길'가에 나앉은 공부 려인숙.오고 가던 길'손들 날이 저물면찾아 들어 하루밤을 묵어 가누나-면양 칙백 마리 큰 계획 안고군당을 찯아 갔던 어느 협동 조합당 위원장근로자 학교의 조직과 지도를 맡아평양 대학에서 온다는 한 대 학생마을 마을의 수력 발전, 화력 발전발전 시설을 조사하는 군 인민위원회 일'군붉은 편지 받들고 로동 속으로 들어 가려신파 땅 먼 림산 사업소로 가는 작가…(중략)아직 덩실하니 짓지 못한살'골 행길'가의 조그마한 려인숙이라네 스스로 너를 낮추 여기지 말라,참구름 노던 투박한 자리로나마너 또한 사회주의 건설에 힘 바치는 귀한 것이어니.공무 여인숙을 제재로 삼아 사회죽의 건설의 당위성과 위대성 그리고 사회주의 건설을 향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결집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역설한 작품이다.그리고 「동 식당」은 공산주의를 한없이 아름다운 이 상태로 상정하고 그것의 실천이 공동식당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으며, 「축복」은 당과 조국의 품속에서 태어난 한 생명이 바로 그 당과 조국을 위하여 그의 한평생을 기쁘게 바치기 바란다는 내용이 핵심을 이룬다.1) 《조선문학》1959년 9월호의 작품이때 발표한 작품은 「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돈사의 불」의 2편이다. 이 두 작품에 대해서 살펴보자.하늘 아래 첫 종축 기지에서(중략)흐뭇하고 미쁜 마음 가슴에 설레인다,이 풀밭에 먹고 노는 큰 돼지, 작은 돼지백만이요, 천만으로 개마 고원이다.
윤동주론- 목 차 -Ⅰ.서론Ⅱ.본론1. 생애1.1 작가연보1.2. 생애특징2.문학세계2.1. 문학적 변모2.3. 문학적 특징Ⅲ.결론Ⅰ.서론시인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에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으며,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 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러한 대표적인 식민지시대의 저항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 한번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우선 윤동주의 생애를 한번 살펴보고, 그 다음 그의 문학세계,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Ⅰ.본론0. 윤동주생애1917년(1세)12월 30일(음력 11월 17일) 만주국 간도성 화룡현(和龍縣) 명동촌(明東村)에서 본관이 파평(坡平)인 부친 윤영석(尹永錫, 1895~1962)과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규암 김약연(金躍淵)의 누이 김 용(金龍, 1891~1948)의 장남으로 태어났다(호적을 비롯한 각종 기록에는 그의 출생 연도가 ‘1918년’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출생 신고를 1년 늦게 했기 때문이다.윤동주 집안은 1886년 증조부 윤재옥(尹在玉) 때에 함경북도 종성(種城)에서 북간도의 자동(子洞, 도는 紫洞)으로 이주, 1900년 조부 윤하현(尹夏鉉, 1875~1948) 대에는 북간도의 명동촌으로 옮겨 와 살았는데 소지주로서 비교적 넉넉한 생황을 했다. 윤동주가 태어난 명동촌은 외삼촌 김약연 선생이 일찍이 이주해 들어와 개척한 지역으로, 교육과 종교, 독립운동의 신문화 운동이 다른 어느 것보다도 활발하게 일어났던 곳이다.1910년에는 조부 윤하현이 기독교 장로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입교했고 윤동주가 태어날 무렵에는 장로직을 맡게 되었다. 억분에 윤동주는 태어나자마자 유아 세례를 받았다.부친 윤영석은 1895년 음력 6월 12일 출생하여 명동중학교를 졸업한 후 김약연의 주선으로 북경에 유학 갔다가 돌아와 윤동주가 태어날 무렵에는 명동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년》지에 ‘동주(童柱)’란 필명으로 동시 ,등을 발표했다.1937년(21세)8월에 백 석 시집 《사슴》을 베껴 필사본을 만들었으며 광명중학 농구 선수로도 활약했다. 《카톨릭 소년》지에 , , 등의 동시를 발표했다.상급학교로 진학할 때는 의학을 공부하길 원하는 부친과 갈등이 있었는데, 조부 윤하현 장로와 외삼촌 김약연의 중재로 결국 연전 문과에 진학하기로 결정됐다. ,, 등 여러 편의 작품을 썼다.1938년(22세)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 9일 고종 사촌 송몽규과 함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송몽규는 은진중학 시절에 명희조 선생님의 밀명을 받고 중국의 북경과 상해 등지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일경의 요주의 인물로 피체된 적이 있었다. 그는 용정 대성중학을 졸업한 뒤에 연희전문에서 윤동주와 함께 공부했는데, 계속해서 일경의 감시를 받았다. 윤동주는 당시 연희전문에서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고 도서관에서 임시로 근무하던 외솔 최현배(崔鉉培) 선생에게서 조선어와 민족의식을 전수 받으며 정신적 ? 사상적으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양하(李敭河) 선생으로부터 영시(英詩)도 배웠다.이때 , ,,,등의 시와 동시 ,을 썼다.1939년(23세)하숙을 하면서 방학 때에는 김약연 선생으로부터 시전(詩傳)을 배웠고, 《조선일보》학생란에 산문 와 시 ,를 ‘윤동주’ 및 ‘윤주(尹柱)’란 이름으로 발표했고, ‘윤동주(尹童柱)’란 이름으로 《소년》지에 동시 을 발표했다.매달 《문장》, 《인문평론》을 사서 읽는 열성파이기도 했다. 윤동주의 가족들은 그해 가을, 용정의 정안구(靖安區) 제장로(濟昌路)로 이사했다.1940년(24세)8월, 일제의 압력에 의해 양대 민족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폐간되었다. 1939년 9월 이후로 시를 쓰지 않다가 그해 12월 ,등의 시를 썼다.1941년(25세),,,, 등 여러 편의 원숙한 작품을 쓰는 한편 연희전문 문과에서 발행한 《문우》지에 시 ,을 발표했다. 키에르케로르, 도스토예프스키, 발레리, 지드, 몇개의 시기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0) 초기 시 : 1934~1936년0) 특징? 시적 사고와 짜임새의 미숙함 드러남.① 앞으로 그의 시세계가 전개되어 나아갈 방향과 바탕을 드러냄.② 주제에 있어 ‘삶의 모순성, 세계의 어둠과 자기희생, 향수, 시대 현실의 모습’ 등 결핍 ? 혼돈의 의식이 지배적임③ ‘어둠-빛, 삶-죽음’ 등의 대립적 이미지와 함께, 작품의 어조는 침울하고 절망적인 경향이 짙음.④ 전체적으로 강한 자전적 성격을 띠어 시적 객관화에 미흡함.1) 대표작 : ? 성탄 전야에 쓰임① 발상의 근저에 예수의 수난이라는 종교적 연상을 내포한 것으로 보임.)② 촛불을 의인화하여 '어둠'과 맞서는 숭고한 의지의 모습으로 봄.③ 한 대의 초는 그의 모든 것을 불태워 암흑을 몰아내는 제물-자기희생의 상징임.④ 구조상의 결함 - 작품의 총체적 의미 축소에 실패. 지나치게 안이하고 관습적인 수사("깨끗한 제물","백옥 같은 눈물","선녀처럼…… 춤을 춘다."등)ㄱ. 1연부터 4연까지 반복되는 단조로운 서술적 어조ㄴ. 운율의 흐름에 대한 배려가 없어 통사적 어절 단위 만에 의한 행 구분ㄷ. 첫째연과 마지막 연에 나타나는 "나"의 표면적 등장의 불필요성)⑤ 결함의 원인. 윤동주의 일기적(체험적) 진술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ㄱ. 단순한 개인적 체험의 맥락을 넘어서서 어떤 의미를 창출 ? 전달하는 유기적 조직, 특 형식화가 필요함.⑥ 윤동주 이해의 디딤돌. '빛과 어둠의 갈등, 삶-어둠으로서의 세계, '수난과 자기 소모'등의 주제 및 이미지는 앞서 지적된 경향과 일치하여, 이후의 시작을 이끌어감.2) 그 이외의 작품⑦ . 사고의 깊이나 시적 짜임새가 단순하지만 일상적 삶의 과정을 “죽음의 서곡”으로 보는 매우 뚜렷한 의미의 핵을 가짐.ㄱ. 주제의식: 삶과 죽음의 모순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 속에 수용하는 자가 승리하는 인간이다.ㄴ. 시적인 가치의 성취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주제(삶의 모순성), 이미지(죽음과 어둠의 이미지), 세계상 및 도덕적 의식(삶-불안으로서의 세 의지의 소산이라고 보는 것.1) 자기 희생문제의 재도입, 자아와 세계와의 관계 모색② 대표작: 2) 반성적 자기 인식과 이에 따른 혐오 ? 연민? 그의 자기 인식은 부끄러움.)① 원인: 남다른 결벽외유내강, 동주 형을 아는 분이라면 누구나 그를 이렇게 표현하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는 대인 관계에서 모가 나는 일이 없었고 따라서 적이 없었다. 누구도 그를 지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는 엄격하였다.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변명하는 일에는 너그러웠지마는 스스로를 용서하는 일은 없었다.-(정벽욱, ≪크리스찬문학≫5집) 中3) 뼈아픈 상실감? 대표작:< 쉽게 씌여진 시>. 상실감의 단순한 감상에 빠져 들지 않고 자기 성찰의 높이에까지 도달함.ㄱ. "육첩방": "나"를 둘러싼 상황, "나"를 구속하는 한계상황이며 "어둠"의 등가물.ㄴ. 아침: 종말론적인 의미와 민족적인 의지를 모두 내포1.1. 문학적 특성)(4) 그리움과 실향의 비애4) 향수의 모티프어떤 것에 대한 그리움, 즉 향수는 윤동주 시의 모티프가 되어 지속적으로 나타남.5) 실향의 비애향수는 윤동주 시의 원형 심상 또는 정서의 원형질을 이루지만 그리운 것 또는 아름다운 회상의 정서로만 나타나지 않음. 그것은 오히려 어두운 것, 슬픈 것, 잃어버린 것으로서의 실향 의식 또는 실향의 비애라는 정서적 특징을 지니고 나타남.6) 대표작 : 제비는 두 나래를 가지었다.스산한 가을날─어머니의 젖가슴이 그리운서리 내리는 저녁─어린 靈영은 쪽나래의 鄕愁향수를 타고南남쪽 하늘에 떠돌 뿐─1935. 10.平壤평양에서① 제비와 그 날개의 역동적 이미지와 고향 북간도에 대한 향수를 연결함으로써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냄.② “어린 영은 쪽나래의 향수를 타고/남쪽 하늘에 떠 돌뿐-”를 결구로 하여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애정하게 노래하고 있음.(5) 부정적 현실 인식 또는 비극적 세계관7) 부정적 현실 인식? 현실을 부재하는 것 또는 깨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서, 어둠 혹은 밤의 표상성을 지님.① 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이제 다 못 헤는 것은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來日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아직 나의 靑春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 하나에 追憶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憧憬동경과별 하나에 詩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1941. 11. 5.. 대자연의 아름다운 순환질서와 천상적 동경이 잘 어우러져 있음.ㄱ. 계절의 순환이야말로 답답한 현실의 고통을 위무해 주고 청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원천적 힘임. 별빛은 현실의 어둠을 정화해 주고, 하늘은 막힌 현실을 연린 세계와 통하게 하는 천상적 동경의 표상임.ㄴ. 자연의 질서가 순환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내일을 믿고 기다릴 수 있게 하는 힘으로 작용하는 것임.14) 자연 친화⑧ 정신과 서정에 신선한 활력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생명감각을 일깨우고 삶의 용기를 붇돋워 주는 전원 심상⑨ 대표작: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順伊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少年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順伊순이의 얼굴은 어린다.1939.. ‘슬픈 가을? 파란 하늘 ? 맑은 강물’ 등 전원 심상이 ‘사랑처럼 슬픈 얼굴 ? 아름다운 순이 얼굴’ 등 인간적 이미지와 환상적으로 결합되어 인간[소년]과의 친화와 교감을 서정적으로 이루어 냄.ㄱ.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順伊순이의 얼굴이 어린다.” 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