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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밀
    - 목차 -1. 서론2. 본론 - 루소의 교육 방법1) 제 1기 유아기2) 제 2기 아동기3) 제 3기 소년기4) 제 4기 청년기3. 결론1. 서론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18세기의 가장 위대한 교육사상가요 개혁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계몽시대의 주도적 인물이었지만 자연주의와 낭만주의 사상에 동조하는 저술활동을 많이 남겼다. 루소의 지적활동영역은 정치사상과 교육사상 그리고 음악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루소는 자연을 하나의 가치 개념으로 인식한 자연주의 사상가이다. 특히 그의 ‘에밀’은 루소의 이러한 사상적 기초 하에 태어난 시대적 산물의 교육소설이며, 그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자연주의와 유아중심사상 그리고 진보주의 교육사상에 핵심적인 뿌리 역할을 하고 있다.루소가 ‘에밀’에서 강조한 것은 자연의 섭리에 따른 교육이었다. 유아의 본성과 자발성 그리고 흥미 등을 교육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루소의 자연주의 교육은 합자연 교육과 소극적 교육으로 나눌 수 있다.자연의 섭리에 따라 유아를 교육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며 합자연의 교육이라 하며 또한 소극적 교육은 학습자에게 외부적인 것을 적극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안에 내재된 반 교육적인 것들이 유아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을 말한다.루소는 어린이를 작은 어른으로 생각하고 어린이들이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알면서 일부러 저지르는 행위로 생각했던 전통적인 유아관을 정면으로 부정했다.루소는 유아기를 인생의 한 단계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어린이들의 고유한 세계관과 인생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에 의해서 유아를 교육하고 교육은 유아의 개성을 존중하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루소가 시인했던 바와 같이 ‘에밀’ 이라는 소설의 기저에는 그 자신의 교육적 견해가 담겨 있기 때문에 그의 교육사상, 특히 자연주의 사상을 연구 하는데는 ‘에밀’이 가장 적합하다고 본다. 허나 ‘에밀’은 그것을 한 남자 아이의 성장과정을 묘사한 양육소설 정도로 인식하는 독자들에 의해 실현 불가능한 허구라고 비난받아왔다. ‘에밀’을 실제 교육에 대한 구체적 지참서로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며, 철학자를 위한 책으로 분류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것이다. 루소 자신도 “에밀”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구체적인 교육방법을 제시하는 교육실천안이 아니라 교육원리를 논한 철학서라고 말한바 있다.2. 본론루소가 파악한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인간의 발전단계는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유아기로서 감각을 의식하기 이전의 단계이며, 둘째는 아동기로서 제1기의 자연적 성향인 쾌락의 원칙에 의해 행동하는 시기이며, 셋째는 소년기로서 제2의 자연적 성향인 유동성의 원칙에 따라 지적능력이 개발되는 시기이며, 넷째는 청년기로서 제3의 자연적 성향인 이성적 판단에 따라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시기이다. 이러한 4단계 이외에 한 단계가 더 있는데 개인적으로 성숙한 남녀가 만나 사랑과 이성적 판단을 기반으로 하여 가정을 이루는 단계이다. 이 시기를 성년기라 부를 수 있다.1) 제 1기 유아기 - 감각을 의식하기 이전의 단계제1기인 유아기는 출생 후 말을 시작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이 시기의 특징은 동물의 상태와 흡사하다. 아이는 말도 못하고 생각이나 관념도 없다. 오직 감각작용만이 관찰될 뿐이며 반사적인 감각작용에 의해 편안한 것과 고통스런 것을 구분하고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는 우는 것으로 그 의사표현을 한다. 그래서 아이는 어른들의 도움을 청할 때 운다.갓난아기는 주위의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아직 감각을 의식하고 있지는 못하다. 예를 들면 그는 뜨거움과 차가움에 대해서 감각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뜨거움과 차가움의 구별을 알지 못한다. 이러한 갓난아기의 생존은 바로 어머니들에게 달려있다. 갓난아기들에게 최초의 교육 담당자는 어머니가 된다.이 시기에 자연은 자기 보존에 필요한 운동 이외에는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기의 팔, 다리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풀어주어야 한다. 유아기의 양육법에 대해 루소는 이 같이 주장하면서 유모나 어른들의 아기를 강보에 묶어 놓는 일이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른들의 태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고 있다.2) 제 2기 아동기두 번째 발달단계에 들어선 아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한 때이며 이는 아동기의 시작이다.아동기에 들어서 비로소 어린이는 독립적인 개체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아동이 유아와 구별되는 점은 그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그는 자신을 의식할 수 있게 되고, 그의 기억은 자신의 모든 삶을 기억하게 되며 그는 하나의 의식적인 개체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 루소에게 있어서 도덕적 존재의 가장 큰 특징은 자유의지를 지닌 존재라는 점이다. 어린아이가 아동기에 들어서 도덕적인 존재로 나타나기 시작할 때 진정한 의미의 자유교육이 시작되게 된다.‘소극적 교육’은 바로 이 시기에 행해져야 하는데, 소극적 교육이란 인간이 의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아동에게 형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내재해 있는 자연이 스스로 발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러한 발현을 저해할 수 있는 인간적이며 사회적인 영향력을 배제하라는 것이다.이 시기의 특징은 감각 훈련을 통한 각 기능의 정상적인 발달을 들 수 있다. 감각능력은 다른 능력에 앞서 최초로 개발되어야 할 기본적인 능력이므로 어린이 시기의 완성은 이 능력 여부에 달린 것이다. 감각능력의 완성은 다음 단계의 출발점이 되는 것으로 이것은 이성의 능력 배양을 위한 기초능력이 된다.3) 제 3기 - 소년기소년기는 12세에서 15세까지의 시기를 말하며 이 시기의 특징은 체력이 욕망보다 앞서기 때문에 한창 성장기의 동물이 그런 것처럼, 상대적으로 기운이 왕성한 시기다. 즉, 청년기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욕구, 그 중에서도 성욕과 같은 욕망이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이며, 아동기에 속하기에는 힘이 넘치는, 청년기와 아동기의 중간 상태로 보았다. 능력이 욕망보다 넉넉한 상태, 루소는 이 시기를 가장 행복한, 인생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 유일한 시기라 한다. 이 남아도는 힘을 장래를 위한 팔과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팔의 능력은 노동하기 위해 저장하고, 머릿속에 저장하는 것은 배우고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소년기는 감각이 성숙된 시기이며 이성이 발달하기 시작하는 시기, 즉 감각의 지배를 받는 감각적 이성의 다음에 오는 지적 이성을 기다리는 시기를 말한다. 감각적 이성은 말하자면 어린의 이성이며 지적 이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의 이성이다.출생 시부터 15세까지는 ‘어린이 완성기’이며 이 기간은 사회적 존재로 들어서기 이전의 개인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시기다. 루소는 이 기간의 교육을 공적, 일반적 교육과 구분하여 가정교육, 개인교육의 영역으로 보았다.4) 제 4기 - 청년기제4기, 청년기는 반복설의 법칙에서의 ‘문명인’ 단계에 해당된다. 즉, 두 번째 탄생이 바로 청년기의 탄생이다. 처음에 생존하기 위해 인류로 태어나고, 두 번째는 살기 위해 성으로 태어난다. 사춘기를 맞이한 에밀은 남성으로서의 삶을 완전하게 살아야 한다. 완전한 삶이란 신체척, 감성적, 정신적, 그리고 성적으로 성숙한 어른의 인생을 뜻한다.성에 눈 뜨기 시작하는 시기는 마치 질풍노도와 같은 현상이며 넘쳐 흐르는 정열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특히 이성에게 관심을 쏟는다. 지금까지 자기만을 사랑했던 에밀이 비로소 나 아닌 다른 이성, 타인에 대한 애정을 느끼게 된다. 즉, 성을 의식하면서 비로소 생기는 타인에 대한 애정에 의해 사람은 고립된 존재에서 벗어나 사회적, 도덕적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인문/어학| 2007.06.06| 5페이지| 1,0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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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염열전을 읽고...
    내가 “몽염 열전”을 택한 동기는 열전의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있는 사마천의 평가 때문이다.단순히 열전의 내용을 보면 ‘몽염’ 이라는 인물은 진나라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충실한 신하로 표현 되었고, 그러므로 나는 아주 좋은 인물로써 생각하게 되었다.그러나 사마천의 평가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바라본 관점인 나라와 왕의 입장에서 본 ‘몽염’이 아니라, 백성과 민심으로써 그를 평가 하였던 것이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반대의 입장인 사마천의 사관에 흥미를 느끼고, 나는 69편의 열전 중에서 “몽염 열전”을 택하였다.진시황이 통일제국을 이루는 직전과 직후의 인물로써 ‘몽염’은 진나라 명장으로 조부 때부터 소왕, 장양왕, 진시황을 섬긴 북의 수호신이었다. 그는 제나라를 멸망시킬 때 큰 공을 세웠으며, B.C 215년 흉노를 정벌 때 큰 활약을 하였다. 이듬해 만리장성을 완성하였으며, 그의 아버지 몽무는 기원전 223년 초를 공격하여 항연을 죽이고 초를 멸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진이 통일 후 ‘몽염’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북방 이민족을 토벌하여 영토를 넓히었고, 만리장성을 축조하여 흉노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진시황이 죽은 후 사구정변이 일어나 환관 조고의 흉계에 빠져 자살하고 말았다.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제(秦始皇帝)는 `진(秦)나라는 호(胡)에 의하여 망한다(인록도서왈망진자호야:因錄圖書曰亡秦者胡也)'라는 녹도서(錄圖書)의 말을 믿고, 진시황제 32년(BC 215) 몽염(蒙恬)에게 명하여 삼십만 대군(동원 인원은 여러 설이 있다)을 이끌고 북쪽으로 호(胡)를 침략하여 하남(河南 : 구원쪽의 하수 남쪽 지역)의 땅을 얻었고, 33년에 흉노(匈奴)를 서북쪽으로 물리치고 유중(楡中)에서 하수(河水)를 따라 하남지역의 동쪽인 음산(陰山)까지 34현(縣)([資治通鑑] 蒙括逐匈奴收河南地爲四十四縣築長城 : 44현으로 기록하고 있다)([자치통감] 몽괄축흉노수하남지위사십사현축장성)에 城을 쌓고 고궐, 북가(高闕, 北假)의 땅을 취하고 `축정장(築亭障)' 하였다. 이러한 `축정장'의 일 즉 관문(關門)을 만드는 것을 가리켜 만리장성을 쌓았다 말하고 있다.이러한 장장(亭障:관문)을 성(城)이라 말할 수 없고 [사기] 흉노열전에서 장성을 쌓았다는 문장에 기인하여 정장(亭障)을 장성(長城)으로 인식하고 있으나, `정장'은 외적의 주요 침입로에 성을 쌓아 수비하는 곳이므로 이를 장성이라 말할 수 없다.진시황제 32년과 33년 몽념(蒙恬)의 활동은 하남 땅을 얻고, 하남 땅의 서남지역(진나라로 보면 서북지역)의 흉노를 물리쳤을 뿐이지, 하수를 건너 동쪽으로 즉 안문, 운중, 대, 상곡(?門, 雲中, 代, 上谷) 지역까지 활동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몽염(蒙恬)이 장성을 쌓은 것이 아니라 진나라의 서쪽 임조(臨?)에서 동쪽 요동(遼東)까지 북방에 대한 경계이고 이곳에 관문(關門)을 만들었을 뿐이다.진시황제 26년(BC 221)에`地東至海?朝鮮西至臨?羌戎南至北嚮戶北據河爲塞幷陰山至遼東'이라 하므로`지동지해기조선서지임조강융남지북향호북거하위새병음산지요동'진나라의 국경은 이미 서쪽은 임조이고, 동쪽은 요동이므로 진시황제 32, 33년경에는 동호東胡(호胡, 호맥胡貊, 북이北夷) 흉노(匈奴)를 침략했을 뿐이다. 몽염(蒙恬)이 출정한 해는 215 - 210 BC이므로 약 6년 동안에 이루어진 일이고 B.C 210년에 진시황제의 명령으로 구원(九原)에서 운양(雲陽)까지의 직도(直道)를 개설하였으므로 만리장성과 관련된 햇수는 5년 동안이었다. 이 5년을 몽염열전에 `몽염으로 30십만을 거느리고 장수를 삼아 융적(戎狄)을 쫓아버리고 하남을 평정하였다. 몽염은 장성을 쌓음에 있어서 지형에 따라 험한 곳을 이용하여 관새(關塞)를 만들었으니 임조에서부터 시작하여 요동에 이르는 연장 1만여 리 였다. 이에 하수를 건너 양산(陽山)에 의거하여 구불구불 굴곡을 이루면서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 공사를 위하여 노숙시킨 10여 년 동안 몽염은 상군(上郡)에 있었다. 이때 몽염(蒙恬)의 위엄은 흉노(匈奴)에 떨치었다.' )이때의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면 B.C. 247년 진(秦)에서는 재위 3년만에 급사한 장양왕의 뒤를 이어 정(政)이 뒤를 이었다. 후에 시황제라 칭해지는 그는 당시 13살이었다. 당시 국정의 실권은 본래 한(韓)의 대상인 출신이었던 여불위(呂不韋)가 장악하고 있었다. 진은 이미 상앙변법 이래 구래의 씨족제를 타파하고, 귀족의 특권을 배제하여 중앙집권체제의 확립을 꾀했다. 이와 동시에 부국강병책을 실시한 결과 전국 이후 진의 영토는 전 중국의 1/3에 달했고, 그 부는 1/2이 넘었으며, 기마전술로 무장한 군단은 갈수록 무적을 과시했다. 반면 나머지 6국은 정치개혁에 실패하거나 불철저하였기 때문에 진과의 국력차는 갈수록 벌어졌다.21세가 된 진왕 정은 노애(奴 )의 난의 계기로 여불위를 제거하고, 유능한 인재를 국적에 관계없이 발탁하여 동일정책을 추진하였다. 한나라의 정국(鄭國), 위나라의 위료(慰 ), 초나라의 이사(李斯)가 그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이사는 유가인 순자의 제자로서 진왕 정을 보좌하여 진의 정책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진왕 정은 내정을 공고히 함과 동시에 각국에 간첩을 파견해 군신을 이간시키는 방책을 채용해 교묘한 외교술과, 기마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무력을 통해 B.C. 230년 한나라를 멸망시킨 것을 필두로 조(B.C. 228), 위(B.C. 225), 초(B.C. 223), 연(B.C. 222), 제(B.C. 221)의 6국을 불과 10년만에 평정하고 통일을 달성했다.천하를 통일한 진왕 정은 먼저 통일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정책을 단행하였다. 가장 먼저 천하에 오직 하나 군림하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권위의 확립에 나서 왕이라는 칭호의 개명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채택된 것은 황제(皇帝)라는 칭호였다. 청조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약 2,100여년 동안 중국 역대 왕조에서 군주의 정식호칭으로 쓰여져 내려온 황제라는 용어가 이에 탄생되었다. 또한 이와 동시에 군주의 사후에 생전의 업적에 따라 추칭(追稱)하는 시호(諡號)를 불경(不敬)하다고 하여 폐지하였고, 초대는 시황제(始皇帝)로 시작하여 이후 2세황제, 3세황제로 만세에 영구히 전할 것을 선언하였다. 이와 동시에 황제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스스로를 짐(朕)이라 부르며, 황제의 명령을 제(制)라든가 조(詔)라 하여 황제의 전용어로 삼았다.진왕 정이 자신의 칭호를 황제로 택한 이유는 두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황제란 황황(煌煌)한 상제(上帝) 즉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절대신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 일찍이 없던 위업을 이룬 진왕은 절대자가 된 자신을 지상에 출현한 상제게 비견하였다는 것이다. 자신이 상제라면 하늘의 명을 받아 지상을 통치하는 인물 즉 천자(天子)보다 한단계 위인 것이다. 둘째 견해는 삼황오제라는 상고의 군주 칭호에서 따온 것이며, 지상의 최고군주를 의미한다는 것이다.그리고 시황제는 이사의 견해를 받아들여 군현제를 채택하고 전국을 36군(郡)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 현을 두어 통치하였다. 군에는 지방관으로서 수(守), 군수의 보좌역으로서 문서와 사법을 관장하는 승(丞), 군의 군사를 주관하는 위(尉), 군수를 감찰하는 감어사(監御史)을 두었으며, 현에는 령(令)을 두고 그 아래에 현승(縣丞)과 현위(縣尉)를 두어 현의 업무를 관장케 하였다. 군현의 관리는 중앙에서 파견하였고, 국가로부터 봉록을 받는 관리로서 세습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그들의 임면권은 황제가 장악하였다. 군현제라는 이 통치방식은 중앙집권체제를 의도한 것이었다. 또한 이와 병행하여 전국을 통치하는 중앙정부의 기구로서 삼공구경(三公九卿)제를 정비하였다. 군현제의 시행과 동시에 지금까지 민(民)이라는 호칭을 검수(黔首)로 바꾸었다. 검수란 민이 검은 두건으로 머리를 두르고 있다고 해서 나온 명칭인데, 인민이 황제의 직접 지배하에 있게 된 것을 확인하는 이 작업을 통해 모든 정치권력이 황제에게 집중되는 전제적인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되었다.군현제의 실시와 더불어 각종 통일정책이 시행되었다. 먼저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전국시대에 각 국가마다 달랐던 도량형을 통일해 진량(秦量)·진권(秦權)이라 불리는 승(升)이나 분동(分銅)을 각지에 반포했다. 화폐도 각지의 포전(布錢)이나 도전(刀錢)을 모두 폐지하고 무게가 반량(약 8g)인 원형방공(圓形方孔)의 반량전(半兩錢)으로 통일하였다. 그러나 최근 출토된 진의 반량전은 크기와 중량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며, 그 출토지도 사천과 섬서를 중심으로 한 옛 진의 영토에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진이 화폐통일을 추진하였지만 철저하게 이루어지기 전에 멸망해 버렸음을 의미한다. 6국의 병합이 불과 10년 정도만에 급속히 추진되었던 만큼 여러 제도의 통일에는 시일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수레의 폭을 6척(약 135㎝)로 통일하고, 전국에 걸친 도로망을 정비하였으며, 문자를 통일하였다. 또한 치도(馳道)를 건설해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를 강화하였다. 이와 함께 중앙집권적 통치체제의 유지에 필수적인 것이 문서의 행정이기 때문에, 문서의 행정에서의 의사소통을 원할히 하기 위해 이사가 고안했다는 소전(小篆, 진전秦篆이라고도 한다)으로 통일하였다.또한 도로망의 건설에서도 나타나듯이 군사력을 국가가 독점하고 지방 반란 가능세력의 근절에 노력하였다. 민간의 병기를 몰수하여 함양에 모아 종거(鐘 )의 금인(金人) 12개를 만들었다. 종거란 악기인 편종을 걸어두는 지주를 말하는데, 그것을 청동으로 만든 인간의 모습이었고 하나의 무게가 약 30톤이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전국의 부호 12만호를 수도인 함양의 주변에 강제로 이주시켜 세력을 약화시킴과 동시에 함양을 번영시키려는 정책을 폈다.
    독후감/창작| 2007.06.06| 4페이지| 1,000원| 조회(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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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태평양조산대
    환태평양조산대 (環太平洋造山帶 Circum-Pacific orogen)요약고생대 말부터 현재까지 조산운동을 거듭하고 있는 환태평양지대.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과 코르디예라에서 시작되어 북아메리카 서부 산맥군·알래스카로 이어지고 다시 알류샨열도에서 쿠릴열도·일본열도를 거쳐 필리핀·뉴기니섬·통가 등의 호상열도(弧狀列島)에 이르는 지대를 가리킨다.설명고생대 말부터 현재까지 조산운동을 거듭하고 있는 환태평양지대.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과 코르디예라에서 시작되어 북아메리카 서부 산맥군·알래스카로 이어지고 다시 알류샨열도에서 쿠릴열도·일본열도를 거쳐 필리핀·뉴기니섬·통가 등의 호상열도(弧狀列島)에 이르는 지대를 가리킨다. 판(板, plate)이 충돌하여 조산운동을 받는 알프스-히말라야조산대와는 달리, 해양 지판의 침강(沈降;해양 지각의 함입)에 따른 조산운동을 받아 형성되었다. 이 지대에는 다른 조산대처럼 거대한 습곡산맥(褶曲山脈)이 형성되어 있고, 격렬한 폭발과 함께 안산암질(安山岩質) 용암을 분출하는 화산들이 모여 있다. 또한 세계 대부분의 지진이 이 지대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중력이상을 나타내는 등 현재도 활동 중인 조산대이다.즉, 태평양 주변에 나타나는 산맥과 화산열도들로 구성된 총길이 4만km의 대규모 조산대로써환태평양 조산대의 형성은 판구조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판구조론에서는 태평양 해저에 놓인 해양지각들이 태평양 연안의 대륙주변부로 섭입(攝入)하면서 일어나는 화산활동과 이에 수반되는 각종 조산운동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환태평양 조산대를 형성한 조산운동은 중생대에 시작되어 신생대 제3기까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태평양 조산대는 분포지역과 특성에 따라 크게 두 지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태평양 동쪽 연안에 발달하는 환태평양 조산대는 주로 안데스 산맥이나 로키 산맥과 같은 대산맥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태평양 서쪽 연안은 주로 쿠릴·알류샨·일본·인도네시아 열도 등과 같은 일련의 화산열도로 구성되어 있일치해 지진 활동도 활발한 ‘지진·화산 다발지역’이다. 2004년 20만명 이상이 희생된 남아시아 지진 해일이 발생한 곳도 이곳이다.환태평양 지진대에서 일어난 대재앙으론 2004년 말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22만 명을 숨지게 한 쓰나미(지진해일)와 1883년 인도네시아 해안을 덮친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이 있다. 이 밖에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80년 미국 세인트 헬레나 화산 폭발, 95년 일본 고베(神戶) 지진도 큰 인명 피해를 냈다.또한 지난 1월 남태평양 통가섬에서 리히터 규모 7.8의 강진을 시작으로 올 들어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만 무려 33차례의 지진이 발생했다. 특히 캄차카반도에서 뉴질랜드에 이르는 환태평양 화산대 서부지역에서 발생한 29건의 지진 중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6회나 됐다.화산지질학자인 손인석(제주도동굴연구소장) 박사는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인근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환태평양 지진대에서 약간 비켜나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안전지대라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그럼 여기서 환태평양조산대의 각기 지형에 대해서 알아보자.안데스산맥북쪽의 마라카이보 호(湖)에서 남쪽의 티에라델푸에고까지 남아메리카 대륙을 따라 뻗어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장엄한 지형으로 꼽히며, 7개국의 상당 부분에 걸쳐서 남북으로 펼쳐져 있고, 베네수엘라·콜롬비아 산계와 에콰도르안데스·페루안데스·센트랄안데스·파타고니아안데스 산맥 등 6개의 주요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베네수엘라 산계는 오리노코 강 유역과 마라카리보 호 및 카리브 해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 뻗어내려 콜롬비아의 산맥(오리엔탈 산맥) 동쪽 부분으로 이어진다.3~4개의 산맥으로 구성된 콜롬비아 산계는 에콰도르 국경에서부터 손가락처럼 북동쪽으로 굽어지면서 콜롬비아 전체의 윤곽을 이루는 지형을 형성한다. 에콰도르안데스 산맥은 화산성 산지인 옥시덴탈 산맥과 센트랄 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남북방향으로 펼쳐지면서 거대한 고원을 형성하고 있다.페루안데스 의 일부를 이루는 산맥으로 현재도 지진·화산활동·지각운동이 활발한 지역이다. 판구조론(지진이나 화산 발생을 판의 상대적 운동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설) 입장에서 보면 남아메리카판과 남태평양나스카판의 접점에 해당하는 변동대로서 남아메리카판 밑에 남태평양나스카판이 가라앉은 곳이다. 지질적으로는 각 산계마다 고유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서부산계는 중생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으로서 주로 안산암질 및 유문암질의 화산암과 화산쇄설암으로 구성되어 있다.로키산맥로키산맥의 동쪽은 가파른 절벽을 이루면서 그레이트플레인스에 면하고, 서쪽은 컬럼비아고원, 그레이트베이슨, 콜로라도 고원 등의 내륙분지와 고원을 사이에 두고 해안산맥, 시에라네바다, 캐스케이드산맥 등 태평양 연안의 여러 산맥과 대한다. 로키산계는 병행으로 뻗은 여러 산맥과 종곡(縱谷)으로 분리되고, 북부의 캐나다 부분에서는 로키산지 지구(地溝)가 로키산맥 바로 서쪽을 달린다. 남부에서는 세 줄기로 뻗은 산맥 사이에 파크라고 부르는 산간분지가 전개되고, 와이오밍과 콜로라도 부근에는 동서 방향으로 뻗은 지맥이 있다.록키산맥지역은 중생대 말기의 백악기(白堊紀)에는 북극해로부터 멕시코만에 걸쳐 퍼져 있는 천해지역(淺海地域)의 일부였으나, 백악기 말의 조산운동(造山運動)으로 대산지가 되었고 그 뒤 하천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준평원 상태가 되었다. 신생대 제3기가 되자 다시 한번 큰 곡륭·단층운동이 일어나 융기했을 때 화산활동까지 겹치게 되어 현재의 높이로 되었다. 이 조산운동은 알프스산맥·히말라야산맥을 형성한 것과 같은 시기에 발생하였으며 환태평양조산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알래스카[ Alaska ]면적은 153만 694㎢, 인구는 62만 6932명(2000)이다. 주도(州都)는 주노이다. 1959년에 49번째의 주가 되었다. 북쪽은 북극해, 남쪽은 태평양에 면하고 또한 길이 약 760km. 반도 기부(基部)는 북위 59°이며 남서쪽으로 돌출해 나가다가 끝이 북위 55°에 이른다. 환태평양 조산대 의 남북으로 통하는 직선 국경)있다. 빙설로 덮인 화산이 많으며 카트마이산(山)을 비롯한 활화산(活火山)도 적지 않다. 브룩스산맥의 북극해쪽 저지(低地)는 툰드라 지대이며 중앙의 유콘강(江) 유역에는 침엽수림대(針葉樹林帶)와 습지가 펼쳐져 있다.알류산 열도러시아의 시베리아와 미국의 알래스카 사이에 있는 베링해 남쪽에 있는 열도를 말하며, 대부분은 알래스카주에 속하고 일부가 러시아에 속해있다.그림에서 보듯이 베링해 남쪽을 감싸듯이 펼쳐져있다.쿠릴열도러시아 동부 사할린주(州)에 딸린 열도로써 면적 1만 5,600㎢. 태평양 북서부 캄차카 반도와 일본의 홋카이도[北海道]와의 사이에 줄지어 있으며 태평양과 오호츠크해를 나눈다. 30개 이상의 섬으로 구성되며, 파라무시르섬을 주도(主島)로 하는 북부, 시무시르섬을 주도로 하는 중부, 구나시리섬·에토로프섬을 주도로 하는 남부로 크게 나뉘며 치쿠라치키산(1,816m)을 비롯하여 활화산이 16개나 솟아 있다. 기후는 한랭습윤하며 여름에는 안개가 많이 낀다.일본열도일본열도는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의 일부로 세계의 불안정육괴(不安定陸塊)에 속한다. 태평양 북서부의 융기대(隆起帶)의 정상부가 해면 위에 드러난 것이 일본열도로, 홋카이도,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규슈[九州] 등 4개의 큰 섬과 그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난세이제도 및 혼슈 중부에서 남쪽의 태평양으로 이어져 내리는 이즈[伊豆]·오가사와라제도로 구성된다. 호상(弧狀)으로 이어지는 이들 열도의 동쪽에는 각각 일본해구, 난세이제도해구(또는 琉球海溝), 이즈·오가사와라해구가 따르는데, 다같이 깊이 6,000m가 넘는다.산지·평야는 조산운동의 지사(地史)를 반영하고, 또 습윤온대의 기후 조건에도 영향을 받아 그 배열과 지형이 극히 복잡하다. 일본열도의 지형구분은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서남 일본과 동북 일본의 2개로 크게 구별되는데, 그 경계는 혼슈 중부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이토이가와-시즈오카 구조선[漁川-靜岡構造線:新潟縣漁川市에서 靜岡縣靜岡市로 이어지는 단층구조선]이다 규슈산지 등 외대의 산지들이 높고, 주고쿠[中國]산지, 단바[丹波]고지 등 내대의 산지는 고원상을 이룬다. 혼슈 중앙부에는 통틀어 ‘니혼 알프스’라고 통칭되는 히다[飛]산맥·기소[木曾]산맥·아카이시[赤石]산맥이 고도 3,000m급의 고봉들을 이고 솟아서 일본의 지붕을 이루며, 일본의 최고봉 후지산[富士山:3,776m]도 이 중앙부에 있다.호상열도노끈에 꽃을 묶어 늘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화채열도(花綵列島:festoon Is.)라고도 한다. 호상열도는 환태평양 조산대 중에서 서태평양에 잘 발달되어 있다. 알류샨열도 ·쿠릴열도 ·일본열도 ·필리핀 군도 등은 태평양을 향하여, 또 인도네시아 제도는 인도양을 향하여 철면(凸面)을 내밀고 아시아 대륙의 동쪽과 남쪽의 가장자리를 이룬다. 다시 오스트레일리아의 북동쪽에는 뉴기니에서 솔로몬 군도를 거쳐 뉴질랜드에 이르는 호상열도가 발달해 있다.환태평양 조산대의 동쪽에서는 서인도 제도의 앤틸리스 제도가 호 모양으로 대서양쪽을 향해 심하게 곡선을 이룬다. 열도의 대양쪽에는 해구(海溝)나 주상해분(舟狀海盆)이 열도에 병행한 것을 많이 볼 수 있으며, 대륙쪽에는 배후분지라고 한는 연해(沿海)가 발달해 있다. 또 호상열도는 화산대와 지진대를 수반하는 속성을 가지기 때문에 지구상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대이다.[인터넷기사발췌]· 환태평양 화산대에서 발생한 주요 지진지진과 화산 폭발이 빈번해 일명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화산대가 연일 꿈틀거리고 있다. 2006.05.27일 새벽(현지시각) 리히터 규모 6.3 지진이 일어나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의 족자카르타 일대를 뒤흔든 데 이어 2006.05.28일에는 남태평양 통가 섬과 파푸아뉴기니에서도 각각 리히터 규모 6.7,6.2의 지진이 일어났다.1980년 5월에 폭발을 일으켜 57명을 사망하게 한 미국 워싱턴주 세인트헬렌스 화산도 2006.05.29일 리히터 규모 3.1의 지진이 일어난 후 화산재와 수증기를 공중에 뿜어냈다고 캐스케이드화산관측소가 밝혔다.2006.05.30일 정오께에다.
    인문/어학| 2006.11.25| 10페이지| 1,000원| 조회(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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