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회저의 밤』1. 발효2. 반죽3. 이끼 푸른 욕조목 차1. 들어가며….최승호 『회저의 밤』2. 작품 분석1) 발 효2) 반 죽3) 이끼 푸른 욕조3. 나오며…. 그곳으로 돌아가리라….1, 최승호 『회저의 밤』최승호의 시 속에는 아픔과 상처들이 있다. 80년대의 정치적 억압 속에서 살아 왔던 그에게 욕망과 기계문명에 대한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다른 동시대의 시인들과 자신을 구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에 있다. 기존의 여러 시인들은 시 속에서 투쟁의 의지를 불사른다. 하지만 최승호는 그의 시대를 관찰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묘사하고 있다. 당시의 모순된 상황 속에서 함께 싸우고 비난하기 이전에, 그 모순된 사회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 해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언어는 매우 직설적이며 그로테스크하다. 그는 관념의 세계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결부 시키면서 우리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준다. 그의 시에서 등장하는 여러 종류의 쥐와 핏빛의 잔인한 상징물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승호의 시들을 생각하면 그 언어들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그의 다섯 번째 시집『회저의 밤』에서는 기존의 강하고 잔인한 언어들이 많이 줄어들었음을 느낄 수 있으며 또한 모든 것들과 이별하고 어디론가 떠나 버릴 것 같은 시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라는 것은 온 몸이 썩어 문드러져 버리는 병을 말한다. 죽을 때까지 고통스럽고 추한 이 라는 병명을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것 자체가 그로테스크 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끔찍함 이면에 왠지 모를 서글픔과 처연함이 묻어 나온다. 회저함으로써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인간의 욕망. 그리고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집착까지도 모두 벗어던지고 완전히 자연으로 동화되어 버려야 한다는 시인의 목소리가 깊은 밤의 이면으로 서서히 다가온다. 이런 의미에서 『회저의 밤』은 최승호에게 다른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인간의 욕망은 그 육체와 함께 회저해 버리고, 그것들이 껑이 성긴 그물이었음을 깨닫는다물왕저수지라는 팻말이 내 마음의 한 변두리에 꽂혀 있다나는 그 저수지를 본 적이 없다긴 가문 날 흙먼지투성이 버스 유리창을 통해물왕저수지로 가는 길가의 팻말을 얼핏 보았을 뿐이다그 저수지에물의 법이 물왕의 도가아직도 순환하고 있기를 바란다그 저수지에 왕골을 헤치며 다니는 물뱀들이춤처럼 살아 있기를 바란다그리고 물과 진흙의 거대한 반죽에서 흰 갈대꽃이 피고잉어들은 쩝쩝거리고 물오리떼는 날아올라발효하는 숨결이 힘차게 움직이고 있음을내 마음에도 전해 주기 바란다인간의 몸은 성스러움과 동시에 세속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들은 인간의 몸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으며 최승호 또한 인간의 몸을 색다른 이미지들로 표현해 냈다. 기존의 최승호는 시 속에서 인간의 몸은 끔찍하게 물화된 인간과 욕망을 상징하는 이미지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은 병치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최후의 은신처가 바로 인간의 몸임을 말해왔었다. 하지만 『회저의 밤』에서는 그러한 욕망의 대상을 나타내는 몸이 아닌 새로운 세계에 대한 다른 몸을 보여주고 있다.우선 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에 기존의 것이 아닌 새로운 것을 위한 다른 차원의 상승이 느껴진다. 시인은 첫머리부터 자신의 의도를 강하게 드러내놓고 있다.가 있다. 이 저수지는 지금 부패해가고 있으며 화자의 마음속은점차 부패되어 간다. 썩어가는 것은 소멸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것으로 순환될 수 있음을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썩어가는 몸이 특유의 최종 산물로 변화될 수 있기를 바라는 화자는 그동안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화자는 묵은 관료들은 숙변을 화자에게 들이부었고 화자는 낮은 자로서 치욕을 받아들였다. 여기에서 묵은 관료들이란 화자가 살아왔던 사회 속에서의 지배계층을 의미한다. 80년대의 정치적인 상처들을 경험했던 시인에게 그들의 숙변(즉 욕망의 배설물)은 받아들여야할 존재였다. 그들과 맞서 투쟁할 수도 있었지만. 화자는 그런 식의 투쟁 보다는 썩은 욕망과 불행을 그대로 게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까? 화자는 물왕저수지로 눈을 돌린다.물왕저수지는 화자의 마음 속 한 변두리에 자리 잡고 있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저수지에는 인간의 얽히고설킨 세속적인 도시가 아니라, 자연이 순환하는 도가적인 장소가 바로 물왕저수지이다. 그 저수지에는 물뱀과 잉어들이 살이 있으며 물오리 떼는 날아오른다. 이 물오리 떼의 날아오르는 상승의 이미지는 발효하는 저수지의 숨결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동시에 새롭게 태어나는 화자의숨결이기도 하다. 최승호 시인은 여기에서 구체적인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새롭게 날아 가고자 하는 본인의 마음을 물왕저수지로 표현하고 있다. 어찌 보면 너무 포괄적인 대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물왕저수지 안에는 많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계산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순수하고 깨끗한 자연물들을 통해서 화자는 발효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과 진흙의 반죽에서 흰 갈대꽃이 피길 원한다. 이 시에서 유일하게 색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흰 갈대꽃이다. 은 발효의 결과물이다. 물왕저수지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발효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깨끗하고 소박한 갈대꽃의 이미지를 통해서 물왕저수지에 가면 이 갈대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갖게 만들어 준다.이 시를 읽으면 비장미가 느껴진다. 이시의 절대적인 분위기를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비장함이라 할 수 있다. 전체적인 어조를 보았을 때 강렬하고 압도적인 시어들이 사용된 것은 아니지만, 자기 고백적인 내용들이 그 비장미를 드러내게 만든다.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자신의 고백과 입장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독자에게 화자의 감정을 노출 시킨다. 또한 이 비장미는 구체적인 대상들을 통해서 말할 수 있다. 우선 화자의 지난 삶에 대한 고백을 생각해보면 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뚜껑이 있는,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는 대상으로 비유하면서 오물(욕망)을 잡아둘 수 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그 성긴 그물로 만든 뚜껑을 깨닫게 되면서 이제 로 간다. 이 물왕저수지는런 것들이 여기서는 물렁물렁하게 녹는다늪은 거대한 반죽통이다수렁, 혹은 황갈색의 즙그 즙을 마시고 물풀들을 게우고 싶다나는 갈라터지면서 살아온 것일까조각조각 개어져 널이 있는 질항아리가내 초상의 파편들일까나의 내장들이 철사가 아니라넘쳐 흐르는 샘물과 속삭이기를나의 꿈들이 샘물과 속삭이기를나의 꿈들이 사해(死海)가 아니라낮은 풀들과 두루미와 성스러운 영혼들과 속삭이기를한 자세를 고집하고 있는 마네킹이야말로오랫동안 바짝 구워 말린한 남자의 뒷 모습이 아닐는지여기는 어딜까? 여기에 도달하면 모든 것들이 물렁물렁하게 녹는다. 감히 녹을 수 없을것 같은 등도 이 반죽 통 안에만 들어오면 고스란히 녹아들어 간다. 모든 것을 녹게 만드는 반죽의 힘. 화자는 이 반죽의 힘을 늪에서 찾는다. 우선 화자가 늪에 넣어서 반죽하고 싶은 것들을 알아보자. 누런 햇빛에 말라버린 말잠자리의 늙은 허물과 고무장화에 꾸겨넣어진 탯줄은 욕망 속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되었던 것들을 이야기 한다. 경쟁 사회에서 퇴물로 처리될 수밖에 없는 노인들의 모습. 자신의 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낙태를 당한 아이들(혹은 그러한 생명들). 그리고 노동자의 얼굴을 한 당나귀의 대가리는 밀가루 자루란 욕망에 빠져 허우적댄다. 그리고 세상의 편견 속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어미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은 곱사등이 아이도 있다. 그러한 아픔과 상처들이 늪 속에서는 물렁물렁하게 녹는다. 화자는 이 늪의 즙을 마시고 고 말한다. 자신이 그동안 느껴왔던 아픔들을 바탕으로 물풀들을 일어서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2연부터는 화자의 고백이 시작된다. 화자는 갈라터지면서 살아왔다. 질항아리의 파편처럼 그렇게 세상 속에서 힘겹게 살아 왔다. 그 힘겨움을 모두 뒤로하고 이제는 바라고 있다. 자신의 힘겨웠던 삶을 쉽게 깨지는 질항아리에 비유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존재가 해제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경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승호의 해체는 단순히 조각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들을 한그래서 더욱 솔직하다. 이 시에서는 시어들은 잔인함과 동시에 서글픔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반죽」은 서글프면서도 잔잔하게 가슴을 적시는 무엇인가가 있다. 서정의 울림으로 인해 가슴을 적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화자의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서글픈 모습이기 때문에 더욱 가슴에 다가오는 것이다. 화자가 확실하게 딱딱했던, 혹은 더러웠던, 상처받았던 세상을 물렁물렁하게 반죽했는지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화자는 성공했을 수도 있고 또다시 세속적인 것에 물들어 실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커다란 늪(반죽통)안에서 그 모든 것들을 반죽하여 순환하고자 하는 화자의 의지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성공의 유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는 자각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자각이 있을 때 화자는 언제든지 새롭게 순환할 수 있는 말랑말랑함을 갖게 되는 것이다.3) 이끼 푸른 욕조이끼 푸른 욕조텅 빈 욕조가큰 뱀이 울고 있다왜 그런 생각이그 날 아침 고개를 쳐들었을까그리고 육 년이 지난 지금도 왜그 욕조의 뱀을 떨쳐버리지 못하느냐 말이다욕조 바닥에는푸른 이끼들이 덮여 있었다살덩어리 없는 욕조에이끼 꽃을 피우겠다는 듯이반쯤 오려낸커다란 자궁 모양의 욕조녹슨 파이프로 질처럼 하수구로 연결된욕조의 구멍그 구멍에서 솟아오르는 쥐 썩은 시궁창 냄새보다도내 머리 안에서 울고 있는 큰 뱀보다도나는 때로 이끼들이 두렵다망상으로 짜여진 뱀은 허물어지고욕조는 티끌의 잠으로 돌아갈 것이지만이끼들은 긴 잠을 자다가도 슬며시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다고분 속 청동기의 푸른 칼 옆에턱뼈가 떨어진 채 누워 있지 않아도이끼들은 어느 날 질겨빠진 우리네 혓바닥을조용히 덮칠 것이다베옷보다 섬세한 이끼들바위옷처럼 육신을 덮는연둣빛 수의들죽은 듯하다가 다시 살아나 꽃을 피우고계절을 따라 흘러가고 죽은 살 속으로 흘러드는 이끼들을나는 죽은 뒤에나의 새살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인간의 욕망은 세상을 다 뒤덮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문학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장르의 변화와 특성소설 『위험한 관계』와 영화『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 목 차 ◎1. 들어가며…소설 의 위험한 각색2. 작품 비교 분석18세기 프랑스와 조선의 모습 :원작에 충실한, 하지만 너무도 다른…….3. 한국적 정서 : 이재용 1) 주제의 차이허무주의 VS 사랑의 재발견.2) 영화 속의 이미지와 영상미3) 잘 만들어진 시대극4. 나오며…* 참고 문헌 목록 *문학 텍스트를 바탕으로 한 장르의 변화와 특성소설 『위험한 관계』와 영화『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1. 들어가며 : 소설 의 위험한 각색다양한 매체들이 영화로 그 모습을 바꾸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특히 소설들이 영화로의 변화를 꾀했던 것은 비단 오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영상미가 이제는 다른 장르보다 사람들에게 큰 힘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그런 점에서 라클로의 는 영화로 만들어 졌을 때 흥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먼저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을 영화화 했을 때 내러티브를 편하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는 서간체 소설로서 각 편지의 끝에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1신에서 175신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17○○년 8월 3일부터 17○○년 12월 26일에 그 끝을 맺는다.(영화 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시간적 배경을 여름에서 시작하여 겨울로 끝맺고 있다.) 얼핏 보면 순차적인 사건 중심의 소설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라클로는 내러티브의 변형을 위해 편지의 순서를 뒤섞기도 한다. 5~7신은 순차적으로 따져본다면 5-7-6신이 되지만, 내러티브의 연속성을 위해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또한 연결돼서 나와야 할 답장들이 한참 지난 후에 등장하기도 한다. 141신에서 메르테유 후작부인이 발몽에게 트루벨 부인와의 절교를 원한다고 말하고 142신에는 발몽이 트루벨 부인에게 절교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142신에는 그런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발몽이 이미 절교편지를 보냈다고 메르테유에게 보고하는 내용의슨 훈장이라도 받은 것처럼 까발리고 있다는 것이다.( 메르테유가 발몽에게 승리의 증거로 요구한 것은 트루벨 부인의 편지였다.) 이렇게 지체 높은 귀족들이 느끼는 자부심이란 정말 하찮은 것이었고, 이것이 18세기 귀족들의 퇴폐적이며 가식적인 삶의 한 모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소설 속에는 성적인 코드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성적 코드들이 영상으로 표현되었을 때 관객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실제로 영화 은 홍보 과정에서 그냥 넘어가기 힘든 고급스러우면서도 자극적인 에로틱한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포스터와 홍보물만 봐도 이는 쉽게 알 수 있다. 더욱이 조선시대 양반들 하면 떠오르는 우아하고 고상한 겉모습과는 달리, 퇴폐적이었던 혹은 음란했던 모습이 어디까지 표현되었을 지가 관객들에게는 큰 궁금증이 되었을 것이다.2. 작품 비교 분석18세기 프랑스와 조선의 모습 : 원작에 충실한, 하지만 너무도 다른…….위험한 관계 혹은 사교계에서 수집하여 사람을 교화하고자 간행한 서간집우리 시대의 풍속을 보고 이 서간집을 세상에 내놓는다.-소설 부제-이 화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다수 품행이 심히 방탕하고 난잡하여 과연 실제로 존재했을까 의심치 않을 수 없다. 널리 알려졌듯 유교로서 나라의 근간을 세우고 남자들은 군자의 예를, 여자들은 현숙한 부인의 예를 따르도록 하는 이 조선에서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여기 소개되는 내용이 설사 실제 사건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인물들은 실명이 아닐 수도 있는 법. 특정인이나 가문에서 문제 삼지 않길 권고하며 혹 자제력이 약하거나 읽기에 두려움이 앞선다면 당장 책을 덮고 뇌리에서 지워버리기를 충고한다.-영화 의 도입부 내레이션-재미있게도 이 소설과 영화의 앞부분에는 위에서 인용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책에 등장하는 부제에서 살펴보면 ‘사교계에서 수집된 편지’는 이 소설이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임을 암시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하지만 책의 첫 페이지에 등장하는 발행인의 말은 이 소설이 허구임을 이유교적 제한 때문에 자신의 기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조씨 부인에게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한인 동시에 세상에 대한 불만이었다. 또한 그녀와 반대되는 성격을 지닌 숙부인은 천주교 집회에 나가면서 가난한 백성들을 돕는, 어찌 보면 단순히 정절을 지키며 사는 ‘청상과부’가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메르테유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트루벨과 절교하는 발몽과, 천주교숙청 사건의 위험성과 자신의 명성을 고려해 숙부인과 헤어지는 조원의 모습 또한 약간의 차이가 보인다.하지만 우리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속에 드러나는 조선 사회의 모습이다. 18세기 서구 상류 사회와 조선말의 양반 사회는 그 토대와 시대적 배경이 다르다. 당시 서구 문물이 조선에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영화 속에서도 시계, 망원경 등이 등장한다.) 봉건적 사고와 질서는 여전히 견고했으며 상류층을 포함한 대부분의 여성들은 가부장적 체제 속에 구속되어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욕망과 바람을 절제해야 했던 것이다. 가문이 청상과부가 되어 평생을 수절하려는 며느리를 위해 열녀문을 세워준다고 하여도,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잔인한 처사는 없을 것이다. 만약 라클로의 원작을 알고 있는 서양인이 을 보았다면 이러한 가부장적 제도에 희생된 여인들의 한을 인식하지 못 한 채, 이 작품을 단순히 원작에다가 한복만 입혀놓은 모습으로 이해했을 것이다.3. 한국적 정서 : 이재용 1) 주제의 차이허무주의 VS 사랑의 재발견.은 원작소설인 쇼데를로 드 라클로의 를 충실히 옮겨놓았다. 사랑할 때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가 된다고 생각하여, 자신은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서 상대방을 유혹하는, 그래서 순수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조씨 부인과 조원은 첫사랑의 실패를 통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다. 사촌남매 사이면서, 서로의 첫사랑이었던 조원과 조씨 부인은 조선시대에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었다. 한 번 뒤틀린 사랑으로 인해 둘은 순수한 사랑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된다. 하지만 메르테유는 보들레르의 표현을 따르자면 순수성이 없는 지극히 악마적인 이브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18세기 귀족사회의 허무주의와 퇴폐주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하지만 영화는 조금 다르다.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악마성이 아니라 사랑의 존재에 대한 고민들이다. 첫사랑의 실패 후, 사랑을 비웃으며 살아온 조원과 조씨 부인은 결국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조원은 숙부인을 만나면서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알게 되고, 죽기 전에 조씨 부인이 아닌 숙부인을 만나기 위해 강화로 간다. 숙부인은 9년간 수절하면서 자신의 의지로 욕망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자만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이모(좌의정댁 부인)에게 한 말은 실로 압권이다. 숙부인은 사랑에 대해 너무 몰랐다고 말한다. 조원과 하나 되는 일체감을 통해서 그녀는 삶의 의미를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항상 타인을 위해 봉사하며 살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감정엔 무지했던 그녀의 고백은 관객들에게 왠지 모를 슬픔을 남겨 준다. 또한 연경으로 도주를 하는 조씨 부인은 마지막에 조원이 봄에 꺾어 주었던 꽃을 가슴 속에서 꺼낸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잡기위해 허공으로 뻗은 손은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어 준다. 그 뭉클함이 조씨 부인의 악행을 고스란히 사라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에는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의 과정은 온갖 암투로 진행되었지만 그 귀결점은 항상 진실 되고 순수한 사랑이다. 그것은 한국 관객의 마음을 동하게 했으며, 이 영화가 기억에 남을 수 있는 멜로물로서 성공을 거두게 한 원인이라 생각된다.2) 영화 속의 이미지와 영상미영화는 관객에게 이미지로 다가간다. 전반적인 스토리를 떠나서 제일 먼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단연 이미지일 것이다. 이미지라는 것은 시각적인 것과 더불어 청각적인 것을 함께 포괄한다. 영상에서 보여주는 미감이라는 것은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작품을 만들 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점이다. 약 이 영화가 몇 십 년 전에 개봉을 했더라면 음악과 영상의 이질감을 관객들이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관객들은 색다른 것의 조합에 익숙해져 있다. 퓨전에 익숙해 있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클래식 음악은 영화의 분위기를 더욱 고급스럽게 만들어 준다. 클래식을 들음으로써 서양의 귀족사회를 떠올리게 되고, 그와 연결되어 고급스러운 비단한복의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이 영화의 화려함은 더욱 증가한다. 더불어 세련된 클래식을 이용하여 감정의 극한 몰입을 방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내용은 슬픈 멜로물이 되었지만 흔한 신파극으로 빠지지 않게 되는 효과가 발생한다.소설 와 영화 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관객이 주인공들의 행동을 훔쳐보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서간체 소설의 특성상 남의 편지를 몰래 읽는 즐거움과 흥미를 독자들은 갖게 된다. 다음 편지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상상하는 것은 마치 우리가 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볼 때 느끼는 희열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서간체 소설의 장점을 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스캔들에서는 주인공들의 은밀한 눈빛교환이 중요하다. 이 은밀한 눈빛은 공모자인 조씨 부인과 조원이 뱃놀이를 할 때에 그 미묘한 속내를 잘 포착하게 한다. 숙부인 정씨를 사이에 두고 서로 교환하는 조씨 부인과 조원의 눈빛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숙부인을 하나의 사냥감 정도로 밖에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조금 더 드러나는 것은 조원과 조씨 부인의 감정이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드러나는 애절한 사랑이나 왠지 모를 신뢰감 같은 것은 둘 사이에 미묘한 무언가가 있었음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게 만든다. 또한 냉소적인 조원의 눈빛과 비웃음은 마치 관객에게 하는 냥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사실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많이 쓰이지 않는 기법이다. 이럴 경우는 관객과 배우가 서로 비밀을 공유하는 공모자가 되어 버린다. 배우와 관객의 눈이 한 번 이상 마주침으로써 관객은 배우들이본다.
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특징영화 『헤드윅』을 중심으로◎ 차 례 ◎1. 영상의 시대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란 무엇인가.1) 상호텍스트성2) 패스티쉬와 패러디2. 영화 “헤드윅”에서 나타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1) 수평적 사고 방식 : 다원화, 다양성, 비결정성2)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경계 허물기 : 패러디, 패스티쉬3) 다양한 장르의 혼합4) 시공간의 재편성5) 금기시된 주제의 사용3. 결론1. “영상의 시대”포스트 모더니즘 영화란 무엇인가20세기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문화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단연 영화일 것이다. 기존의 미술이나 문학과 달리 이 움직이는 화면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동시에,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을 꿈꾸게 만들어 준다.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받는 어떤 느낌. 충격. 혹은 감동은 다분히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지만 영화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 다시 말하면 영화의 특성에 관한 철저한 분석과 이의 철학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미학적 이해가 있어야만 의미 있는 영화의 비평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 분석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 현상을 살펴보는 데에 있어서도 중요하다.영화라는 매체는 사실 모더니티의 기술주의가 낳은 산물이다. 인간의 현실재현 욕망이 과학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발명해낸 이것은, 다른 문화 장르가 앞서 오랜 세월을 두고 실험해왔던 다양한 사조들을 짧은 시간 내에 수용하며, 오늘날 대중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예술 장르로 성장했다. 영화를 문화의 중심적인 장르로 성장시킨 것은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기법을 차용한 고전적 내러티브 스타일이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더니즘의 시기에 태어난 영화는 오히려 문학과 역사적 내용을 중심으로 모더니즘과 반대되는 성향을 보였던 것이다. 이후의 영화사는 60년대까지 이 고전적인 내러티브 영화에 대한 유럽과 아시아 영화의 역사이면서, 고전적 미국영화에 전 세계의 영화들이 비슷한 모양새로 흡수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즉 이 개념이 맨 처음 도입된 것은 1960년대 프랑스의 )쥘리아 크리스테바에 의해서이다. 그녀에 따르면 모든 텍스트는 마치 모자이크와 같아서 여러 인용문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텍스트는 어디까지나 다른 텍스트들을 흡수하고 그것들을 변형시킨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의 상호텍스트성이 급격히 위세를 떨치게 된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라는 포스트모더니스트적 입장을 들 수 있다.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더 이상 없을 때 독창적인 창조의 개념은 사라진다. 더구나 텔레비전과 비디오의 확산으로 영화 텍스트들이 보편화 되면서 많은 대중들이 영화와 더욱 가까워 질 수 있게 되었다. 즉 리메이크의 원텍스트에 대해서 대중들이 많이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타클의 시기에 방송에게 자신의 영역을 빼앗기고 있다는 위기의식의 하나로 보인다. 영화는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구경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영화 한 편에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이 상호텍스트성은 현대 한국 영화에도 상당히 많이 드러난다. 영화 ‘올드보이’도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왕의 남자’도 연극 ‘爾’를 바탕으로 제작으로 다양한 면모를 보인다. 이처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상호텍스트성은 점차 새로운 것을 요구하는 관객의 모습에 반응하기 위함이며, 빠르게 변모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2) 패스티쉬와 패러디패스티쉬, 즉 혼성모방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는 거대담론들이 해체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의 언어가 심하게 분해되었으며 서로 이질적인 작은 이야기들만이 남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체계적으로 흉내냄으로 자기 주장을 하는 패러디는 그 역할을 상실하게 된다. 대신 그 자리에 패스티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흉내내기에 불과하며 패러디가 가진 궁극적인 동기, 즉 풍자성과 유머, 해학과 웃음이 잘려나간 것이다.장르의 패스티쉬는 ‘스타워즈’에서 적극적으로 나니즘의 징후들을 토대로 왜 우리가 이러한 작품에 열광하며, 우리에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것인 “영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제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문제이다.1)수평적 사고 방식 ; 다원화. 다양성. 비결정성헐리우드 영화의 고전적인 형식이라는 것은 1917년경부터 1960년까지 헐리우드라는 거대한 영화 공장에서 제작된 영화들의 일관된 형식을 일컫는다. 이것은 단지 헐리우드에서 나온 영화들의 일관된 형식을 뜻할 뿐만 아니라 영화 역사상 또 국제적으로 하나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통하며, 따라서 이 지배적인 양식을 고전적이라고 칭한다. 이 고전적인 형식은 우선 전형적인 서술 형식을 갖고 있다. 어떠한 안정된 상태가 설정되고 그 상태를 위협하는 위기와 갈등이 생긴다. 그 위기와 갈등을 풀어내는 절정이 있고 그리고는 새로이 정립된 안정된 상태로의 구축을 대단원으로 한다. 이 서술 전개를 이끌어 가는 것은 개인적인 인물이다. 심리적 요인이나 특성을 지닌 개인적인 인물이 주된 서술을 이끌며 자연이나 역사적인 인과 관계는 다만 부수적인 것이다. 특히 서술을 이끄는 것은 주인공의 욕망이며, 그 욕망은 인과 관계의 중요한 근원이 되고, 그에 따라 목표가 설정되고 서술 전개는 그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다. 모더니즘 영화에서 애매하거나 해결되지 않은 갈등은 거의 없다.그러나 ‘헤드윅’은 다르다.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산만하다. 산만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하기 매우 불편하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혹은 사건의 방향에 다른 순차적인 전개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한센’이란 이름을 버리고 ‘헤드윅’으로 살아갈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아버지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할 때부터 영화는 혼란스럽다. 표면적으로 남들과 다른 자신의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주인공의 모습이 두드러지지만,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단순히 헤드윅의 삶을 조명하는 데 의의를 두지 않는다. 헤드윅은 자신의 이야기를 40여년에 걸친 서구 역사듯하다. ‘벨벳 골드마인’과 ‘로키 호러 픽쳐 쇼’는 이미 많은 매니아층을 두고 있는 영화이다. 이 두 영화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헤드윅’을 접한다면 그 비슷함에 혀를 내두를지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앞의 두 영화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 조악할 정도로 요란하고 얄팍한 외피와는 달리, 굉장히 강한 감정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은 헤드윅의 거창한 화장과 의상도 일종의 위악적 절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게 만들어 준다.3) 다양한 장르의 혼합포스트모더니즘 영화의 특징은 단연 다양한 장르의 혼합이라 할 수 있다. 이전의 모더니즘은 예술 대상이란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흐름이었지만 지금은 그것과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장르의 경계가 사라졌으며 감독이 의도하는 것만 보여준다면 그 어떤 장르라도 마다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벨벳 골드마인’이 외면적으로는 동화적 구조 뿐 아니라 공포영화. 고딕영화. 싸구려 스릴러물의 키치적 요소들을 섞어 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헤드윅”역시 다양한 장르들을 섞어 놓았다.우선 제일 먼저 두드러지는 장르는 “애니메이션”이다. 이 친숙하면서도 동화같은 장르는 심각한 상황을 부드럽고, 동시에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이 애니메이션은 헤드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처음 등장한다. 헤드윅의 성교 모습을 간단하게 표현하면서, 어쩌면 자극적이고 불쾌감이 드는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묘사한다. 헤드윅의 가장 근본적인 상처들 오히려 무덤덤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더구나 헤드윅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표현한 “The origin of love"를 노래할 때, 이 애니메이션은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가사를 보면, 태초에 사람은 세 종류였는데, 그들은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가 서로 등이 붙은 채 살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신의 노여움으로 인해 서로 분리되었고 그들은 원래 자신의 짝을 찾기 위해 지구를 떠돌게 된다. 그 중에서 헤드윅은 자신이 남자와 남자가 붙어 있던 종류의 인간이기 때문에 남자를 사랑할 수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관객에게 함께 부르자고 말을 한다. 이때 더 재미있는 것은 프레임 아래에 마치 뮤직비디오 화면처럼 가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발한 감독의 상상력이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첫번째 남편에게 버림받은 ‘헤드윅’은 (과거 회상속에서)좌절한다. 하지만 그때 갑자기 현재의 밴드 멤버들이 등장하며,공연을 한다. 노래를 부르던 중에 그들은 창문 밖으로, 즉 관객들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관객에게 노래를 부르자고 권유하면서, 마치 노래방 비디오 같은 프레임 안에, 가사들이 펼쳐진다. 이 사각의 프레임은 우리를 정겹게 한다.마지막으로 헤드윅에 등장하는 장르는 “뉴스”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이 합쳐지는 장면은 실제의 뉴스화면으로 표현된다. 이 블랙화면은 영화 중간에 삽입됨으로써 당시 독일에서 태어난 헤드윅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변하게 될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뉴스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사실만을 다룸으로써, 이 사건이 주인공의 삶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과 서독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의 통일일뿐 그들에게는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동독 출신이 헤드윅의 어머니는(그녀의 본명이 ‘헤드윅’이다. 한센은 성전환 수술후 어머니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자신의 아들이 자유의 땅이 미국에서 새 삶을 살아가길 바라며, 그에게 성전환 수술을 시킨다. 결국 여성도 남성도 아닌 헤드윅의 모습은 그가 떠났던 독일의 모습과 닮았다. 통일은 됐으나 이도 저도 아닌 모습의 독일이 바로 그것인 것이다.이와 같이 “헤드윅”에는 다양한 장르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장르들은 이전의 모더니즘 영화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해프닝적 요소와 해체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4) 시공간의 재편성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고 있다. 이 흐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이 유기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루를 살아간다. 어제와 오늘을 넘어서 내일이 시작된다는 것은 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