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핑포인트의 설계자들1. 서두뉴턴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멀리 내다볼 수 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했다. 이는 자신의 업적이 과거 많은 사람들의 업적의 연장선 상에 있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뉴턴 이전의 과학자들의 업적보다 뉴턴의 업적을 더 칭송하고 뉴턴만을 기억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부터 이어져 오던 흐름을 정리하고 하나의 일관적 기준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스마트 폰과 관련하여 기존의 연관된 기술들에 대한 기억보다 스티브 잡스 한 사람만 기억하는 것과도 같다. 이처럼 작은 일, 또는 작은 한 명의 사람이 큰 차이를 만들고 상황을 반전시키며 폭발적 흐름을 이루어 내는 지점을 ‘티핑 포인트’라고 한다. 그래서 말콤 글래드웰은 약간만 밀어서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면 어디를, 언제 밀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진정한 힘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의 『티핑 포인트』이후로 그것에 대해 새로운 관점과 더 넓은 시각, 확장된 해석을 더하여 『티핑 포인트의 설계자들』에 담았다. 세상의 큰 흐름을 만드는 것은 우연이 아니고 계획적인 것일 수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악용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그러한 큰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알아야 일방적으로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오버스토리, 슈퍼전파자, 매직 서드’ 라는 세 가지 법칙으로 설명한다.2. 오버스토리오버스토리의 원래 뜻은 ‘숲을 이룬 나무들의 맨 윗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오버스토리는 그것의 크기와 밀도, 높이에 따라서 그 아래의 생물 종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동일하다. 즉,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상위에 자리잡은 어떤 이야기, 관습, 관행 등으로 인하여 그 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암묵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저자는 이에 대해 동일한 심장 전문 의사가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다른 치료법을 적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는 각 지역마다 선호하고 통용되는 치료법이 존재하고, 거기에 속한 의사는 결국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빅 트렌드, 즉 대유행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어떤 큰 흐름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그러한 흐름이나 유행이 빠르게 퍼질 수 있는 환경인 ‘오버스토리’가 특정 지역이나 사람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티핑포인트의 설계자들은 바로 이 지점을 선택하고 공략해 들어가기 시작한다.3. 슈퍼 전파자오버스토리의 환경 아래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은 ‘슈퍼전파자’이다. 이는 우리가 코로나 사태에서도 익히 경험한 바이다. 각각의 환자들이 동일한 비율로 전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한 사람이 압도적인 전염성을 일으킨다. 저자는 1990년대 초 LA 은행 강도와 관련한 예를 든다. 그 당시 LA는 타 지역에 비해서 폭발적인 범죄 증가가 있었고 ‘범죄의 수도’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그런데 그 폭발적 범죄 증가의 이면에는 바로 ‘슈퍼전파자’가 있었다. 범죄의 상당수를 ‘캐스퍼와 C-도그’라는 집단이 벌인 것이다. 물론 이는 안 좋은 슈퍼전파자의 사례이지만 긍정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많은 마케팅 집단들이 특정 인플루언서나 파워블로거 등을 동원하여 홍보를 하는 것도 같은 이유가 된다. 더불어 어떤 이슈에 대해서 사람들의 긍정적 참여를 유도하고 독려하기 위해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들을 앞세우기도 한다. 이처럼 티핑포인트의 설계자들은 ‘슈퍼전파자’를 중심으로 빅 트렌드의 큰 물결을 만들기 시작한다.4. 매직 서드‘매직 서드’는 하나의 비율이다. 어떤 흐름이든 관련된 집단의 대략 4분의 1에서 3분의 1 사이에 이른 비율이 관심을 가지고 흐름을 타면 극적인 변화로 넘어가게 된다. 이는 특별하지 않아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비율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어떤 한 사람이 아무 이유없이 하늘을 쳐다보는 중에, 함께 거기에 동참하여 여러 사람이 하늘을 보기 시작하면, 마치 눈덩이가 불어나듯 어느 구간이 넘어섰을 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이 ‘매직 서드’의 구간을 이해하고 그 구간까지 강력하게 흐름을 퍼뜨리면서 밀고 간다면, 그 이후에는 특별한 노력 없이도 이미 큰 변화의 흐름은 퍼지게 된다. 예전에 ‘허니버터 칩’이라는 과자도, 처음에는 그냥 새로나온 과자 정도의 인식이었지만, 슈퍼전파자에 해당하는 유명인들이 먹기 시작하고 품귀 현상이 보도되면서 급격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고, 결국은 하나의 대유행을 만들어 냈다.이 내용을 보면서 일반 개인이 큰 흐름이 계획된 것이고 아무런 이유 없이 유행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구간은, ‘오버스토리’의 존재 여부보다는 ‘슈퍼전파자’의 단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즉, 뜬금없이 유명인들이 새로운 아이템이나 흐름을 소개하고 알리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 뒤에 의도적 계획이 있음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서 잠시 애매하게 생각하거나 적당한 무관심으로 흘릴 수도 있다. 하지만 ‘매직 서드’의 단계에 이르러 하나의 큰 흐름이 형성되는 것을 인지한다면, 이성의 경계심을 세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그 큰 흐름이 긍정성을 기반으로 한다면 동참해도 된다. 하지만 아무 긍정적 이유도 없고 오히려 안 좋은 영향력의 확장성을 보인다면, 큰 흐름에 감정적으로 동요하기보다 이성적 상황 판단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1. 서두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것은 절대적 가치이다. 그래서 옳고 그름이 분명하게 갈리고, 선택과 보상이 명확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학교에서 배우는 절대적 가치가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선과 악이 명확하게 갈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선이고 때로는 악이 되기도 하는 상대적 가치가 적용되는 것이다. 더불어 세상은 논리적 사고에 의해 합리적으로 돌아갈 것처럼 배우고 성장하지만 역시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적 가치의 등장처럼 비논리의 모습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 중에서 정치적인 것이 특히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정치 상황을 근간으로 하였지만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문제들을 우리나라에 적용해도 거의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친재벌정책과 반노동정책을 지향하는 보수정당을 왜 하위 노동자 계층은 지지하는가’, ‘미국의 하층 백인은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복지제도 확대를 주장하는 미국 민주당을 왜 지지하지 않는가’, ‘여성 유권자 일부는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는 트럼프 대통령을 왜 지지하는가’ 라는 식의 이 책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비논리적 선택을 하는 이유와 그것을 타파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 책은 설명하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 ‘코끼리’는 미국의 보수 정당인 공화당을 상징한다. 그래서 제목의 의미 자체는 ‘공화당의 프레임에 갇히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책은 제목 자체의 의미에 준해서 설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거기에서부터 확장적 논의를 시작한다.2. 진실이 전부가 아니다이 책의 부제목은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이다. 보통 진보라 하면 부의 재분배와 복지 향상을 추구한다. 그리고 보통 그것을 통해 혜택을 받는 국민들이 대다수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 세력이 종종 선거에서 패배하는 이유는 인간 사고의 프레임이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진보 정당에서 아무리 진실을 외치고 사실을 나열해도 사람들이 반응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이득과 반대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편으로 진보가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에 대해 사람들은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가르치려는 자세와 복잡한 정보 나열 때문이다. 반면 보수는 대중을 굳이 계몽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놓고 단순하게 접근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수 정당이 부자들이 부자들을 대변한다고 해도 한편으로 그 속에 자신들을 투영하거나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게 된다.3.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이 책의 제목인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라는 것은, 어떤 특정 단어나 그 특정 단어가 의미하는 상징성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공화당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의 말이든 그 자체에 갇히지 말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특정한 말이나 단어, 생각의 논리에 빠지면, 계속해서 그것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름의 프레임이 되고, 어느 순간 생각의 기준이 되면서, 그것을 근거로 다른 것을 보게 된다. 더불어 그것을 입 밖으로 이야기하여 다른 사람 앞에 공론화하면 그 파급력은 더욱 커진다. 본인은 그 프레임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시작으로 그 말을 꺼냈다고 해도, 결국은 그 말을 시작한 자체 속에서 이미 스스로를 공개적 프레임 속에 가두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때, 본인이 사기꾼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는데, 그 순간 바로 그는 ‘사기꾼’의 프레임에 갇히게 된 예를 언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예가 있었다. 과거 대통령 후보자 토론에서 특정 정당이 씌운 프레임이 계속 퍼지자, 그 해당 프레임의 당사자가 토론장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더욱 확실한 프레임이 형성되고 스스로 그 안에 갇혀버렸다. 이처럼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구조화하는 정신적 틀이라 할 수 있다.4. 프레임은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다.프레임은 우리의 목적, 계획, 행동 방식과 세상에 대한 가치 평가를 함에 있어 하나의 기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자체로는 선과 악이나 좋고 나쁨의 가치는 정해져있지 않다. 특히 ‘프레임’이라는 단어 속에 어떤 가시적 느낌이 형성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심리적 프레임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마음의 프레임에 대해 인지과학자들은 ‘인지적 무의식’이라고 말하고, 이에 대해 그 존재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을 통해 펼쳐내는 결과물이다. 즉, 그 사람의 선택과 결정, 각종 발언 속에서 그 사람만의 ‘프레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프레임이라는 것은 자체적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객관적 기준과 사실을 근거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정 프레임을 근거로 때로는 이익과 어긋나는 선택을 한다.
우리 본성의선한 천사1. 서두이 책의 부제목은 ‘폭력이 왜 감소해 왔는가?’ 이다. 이 부제목이 이 책의 주제의식이고, 이 책의 제목인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그에 대한 답이다. 즉, 인류는 내면의 선한 본성을 근간으로 결국은 폭력이 감소하는 역사를 일구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뜻 이해하기 어렵기는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근 100년 전후로 두 번의 세계 대전과 셀수 없이 많은 국가 간의 전쟁, 나아가 거기서 파생된 각종 테러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언론을 통해 접하는 세상의 모습은 아름다움보다 각종 살인, 폭행, 방화 등이 난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분명히 역사적으로 폭력은 감소 추세로 가고 있다고 단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근간으로 그에 대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하면서 우리를 설득한다.2. 좋은 것만 기억하고 보여지는 것만 보는 인간의 특성저자는 ‘현재를 비난하고 과거를 찬미하는 경향이 인간의 본성에 뿌리 깊이 박혀 있어서 학식을 갖춘 사람들도 이러한 특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데이비드 흄의 말을 빌어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사건에 대해서는 폭력 마저도 미화하는 반면 현재에는 좋은 점은 옆으로 밀쳐두고 폭력에 대해서는 과거의 폭력보다 더 크게 비난한다고 말한다. 특히 과거를 더 좋게 추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이 아무리 좋은 학식을 갖추었다고 해도 수학을 못하기 때문에 통계학적 추론을 배제하고 감정적 해석에만 충실하는 것이라 비판한다. 더불어 근래 언론의 방송편성정책은 자본주의적 특성과 결탁하여 자극적인 것이 아니면 크게 보도하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즉, 각종 강력 사건 등을 더욱 부각시켜 다룸으로써 시청률을 올리려 하고, 그러한 방송에 계속 노출된 사람들은 인지적 착각에 빠져 역시나 과거가 더 안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3. 인류의 역사를 움직이는 내외부의 힘저자는 수많은 데이터를 근간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전에 인간 본성의 악마와 천사, 그리고 역사의 다섯 가지 힘에 대해 구조적으로 정리한다. 인간의 본성에 잠재된 다섯 가지 악마는, ‘포식적 폭력(도구적 폭력 포함), 우세 경쟁, 복수심, 가학성, 이데올로기’ 이다. 그리고 네 가지 천사는, ‘감정이입, 자기통제, 도덕감각, 이성’이다. 더불어 외부적인 다섯 가지 역사적 힘은, ‘리바이어던 , 상업, 여성화, 세계주의, 이성의 에스컬레이터’이다. 이처럼 인간 내면의 본성과 외부의 힘들이 어울리고 충돌하고 상호작용 하면서 결국은 내면의 악마에 승리를 거두고 서서히 폭력의 감소를 이루어냈음을 보여준다.구조적으로 인간 내면의 악마적 성향과 각종 이데올로기는 강력하게 폭력을 조장한다. 이는 한 개인에게 작용하기도 하고 집단에게 함께 작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특정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한 우세 경쟁이나 복수심이 생기고, 이데올로기로 뭉치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과 집단의 폭력성에 대해, 다시금 균형을 잡으려는 역반응이 생긴다. 그것은 바로 인간 내면의 천사와 같은 선한 본능이다. 이 본능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감정을 이입하고 폭력 앞에서 자신을 억제하며 도덕적 원칙을 고려하고 최대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합리적 접점을 찾으려 한다.여기에 더하여 토마스 홉스가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에서 주창한 것처럼 국가의 공권력이 강화되어 사적 폭력을 억제하고,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를 점령하는 대신 온건한 상업주의를 통해 서로 더 큰 이득을 공유하며, 남성성이 강했던 시대에서 여성성의 조화로움이 부각되고, 자신의 부족과 민족이 우월하다는 우생학적 논리를 넘어서서 세계화를 이루며, 무지에 근거하여 발생하는 편견과 공포, 그리고 자기 방어적 폭력에 대해 이성적 합리주의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면서 결국은 폭력의 감소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저자는 증명합니다.4.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에 대한 반대의 해석보통 과거보다 현재가 더 폭력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로는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의 기술 발전을 꼽는다. 그런데 스티븐 핑거는 이러한 주장을 오히려 반대로 해석한다. 즉, 인류 역사에서 핵무기의 사용은 단 두 발에 불과했으며, 그 이후로 각국이 경쟁적으로 핵무기를 비롯한 각종 살상 무기 개발과 생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핵 억제와 상호 존중이 커지면서 폭력의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핵무기의 사용은 적국에게 승리하는 것을 넘어 결국은 인류의 공멸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여러 전쟁을 펼치는 중에도 결코 핵무기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핵무기가 유지비는 많이 드는데 정작 사용은 못하는 아이러니함 때문에 ‘인출해서 사용할 수 없는 통장 속의 잔고’라고 말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저자인 빅터 프랭클은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겪은 고통의 경험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통해 풀어냈고, 그 경험 속에서 얻은 삶에 대한 의미를 본인만의 치료 이론인 ‘로고테라피’로 발전시켰다. 이 치료법의 핵심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바로 삶의 원동력이라 말한다.저자가 수용됐던 아우슈비츠는 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하기 위해 건설한 수용소다. 그 안에서는 잦은 구타와 기아, 그리고 심리적 고통 등의 인권 유린이 자행됐고, 더 비참하게 만들었던 건 인간성의 바닥이 드러나면서 선과 악 극명하게 드러난 것이었다. 평범한 환경에서 사람들은 보통 크게 악하지도 크게 선하지도 않게 적당히 어울려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 하나도 살아남기 힘든 환경이 되면, 결국은 한 사람의 본질이 제대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자괴감이 들게 하는 요소가 된다.그런데 비참한 환경에 처하면 사람들은 단순한 의미 하나로도 삶을 이어갈 동기를 얻기도 한다. 아우슈비츠에서 사람들은 자기를 기다리는 가족을 위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나 곧 가스실로 끌려가야 하는 친구의 목숨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 등으로 하루하루를 더 이어갔다. 자신의 이름과 살아온 이력 등 모든 것이 지워지고 단지 죄수도 아닌데 죄수 번호 하나 부여받고, 그 죄수 번호로 비굴한 존재가 증명될 뿐이지만 그러한 밑바닥의 환경은 다시금 딛고 일어설 힘을 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러한 모습들을 보면서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꾼다는 것을 깨닫는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아우슈비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름에서 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는다. 그리고 그러한 고통과 좌절은 적당히 감당할 정도로 나누어서 오지 않고, 보통은 한 번에 몰려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멘붕’에 빠지고 하나가 어그러지면 연이어서 다른 것도 연이어 어그러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순간적으로 삶의 의미에 대한 방향성을 잃게 만들고 극단적으로는 삶을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저자는 이러한 경험과 느낌들에 대해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라고 말한다. 외부의 압박이나 자극에 대해 처음에는 저항하고 분노하며 벗어나기 위한 발버둥을 친다. 하지만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한계를 느끼게 되면 반항의 화살은 자기 내면을 파고든다. 그리고 이는 자기 모멸감으로 이어지면서 외부의 탓이 아닌 자기 탓을 하고 심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자해하는 지경에 빠진다.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자포자기의 혼돈 상황에서도 뻗어나갈 희망이 있음을 가르쳐준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인간의 자신의 태도와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그것을 대하는 마음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순간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도 나름에서의 삶의 의미를 찾아갈 수 있다. 이에 대해서 저자는 한편으로 환경적인 자포자기 상태에 처하면 사람의 마음이 감정적이기보다 오히려 객관적이 되고, 주변 환경 속에서 자기 마음을 분리시킬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의미에 대해 자신이 질문을 던지기보다, 역으로 삶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한 답을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의 의미를 찾아가게 된다.이렇게 주어진 환경과 삶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생각하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시련에 대한 의미를 깨닫고 결국은 그 시련이 시련이 되는 것을 멈춘다. 일단 의미를 찾는 것에 성공한 사람은, 그것을 통해 행복을 불러오고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얻는다. 더불어 저자는 굳이 불필요하게 고통을 감수하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코 영웅적인 행동이 아니라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때로는 고통 앞에서 몸을 벗어날 수 없다면, 마음이라도 벗어나서 상황과 자신을 객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면 살아야 하는 의미를 서서히 깨닫게 되고 다시금 어떤 상황에서도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다. 이를 보면서 인간의 마음과 환경에 대한 적응력 등이 상당히 유연함을 알 수 있었다. 일상적 상황에서는 보통 자신은 특정한 모습으로 규정되고는 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전체이자 유일한 모습인 양 살아간다. 하지만 시련을 경험하고 그것을 이겨내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자신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조건 지어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도 나름에서 어떤 판단이든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 책은 자연과학 책으로 분류가 되어 있지만 제목만 보면 상당히 철학적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이 단순히 자연과학 책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라는 부제를 통해서이다. 더불어 이 책의 결말에서 정말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자연과학적으로 증명이 될지도 상당히 궁금했다. 이 책을 다 읽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물고기와 관련한 학자의 전기이면서, 다윈의 진화론과 생물의 분류학을 아우르는 과학책이고, 나아가 인생의 철학과 함께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준다.저자인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과학자였지만 룰루 밀러에게 어떤 명확한 삶의 기준과 방향성을 정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혼돈만이 유일한 지배자이고, 혼돈은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으며, 혼돈 속의 인간은 중요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삶에 대해 어떤 의미 부여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부모를 통해 인생의 시작에 있어 작은 방향성이라도 찾길 원했던 저자에게는 상당히 잔인한 조언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룰루 밀러는 살아가는 중에 좌절과 절망의 경험을 하면서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의미를 잃게 된다. 그러다가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할 수 있는 인생의 지표와 같은 인물을 발견한다. 그는 바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였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초기 학장이었고 우리가 아는 물고기 이름의 5분의 1을 지었으며, 두 번의 큰 재난 중에 자신의 모든 학문 자료와 표본이 파괴되었지만 다시 꿋꿋하게 일어서서 해야 할 바를 해 나간 인물이었다. 이러한 그의 인생 역정을 확인한 룰루 밀러는 그를 통해서 삶에 대한 좌절과 절망을 극복하고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을 갖는다.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에 대한 조사는 일방적 긍정으로만 흐른 것은 아니었다. 저자는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라는 그의 말 속에서 자신이 그를 선택한 것이 맞았다라는 생각을 갖기도 하지만, 그가 저자의 아버지처럼 ‘무의미성’, 즉 혼돈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만이 인간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 것을 통해서는 모순적이고 기만적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의지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역으로 세상의 어쩔 수 없는 혼돈을 인정하라고도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결국은 정반합의 원리처럼 이러한 상반되는 마음가짐이 나름에서 적당히 포기할 건 포기하고 의지로 밀고 나갈 건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그의 삶을 통합적으로 수용하게 된다. 적당한 자기 기만과 오만함이 세상에 대한 낙천적인 마음과 위기 앞에서의 당당함으로 이어지는 면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나름에서의 긍정적 수용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먼저 저자는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해고하려 했던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인 제인 스탠퍼드를 살해하고 은폐했을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열등한 유전자는 박멸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열열한 ‘우생학’의 신봉자이고 했고, 그러한 이력을 바탕으로 '우생학적 강제 불임화'가 합법화되는 것에 큰 기여를 했다. 이는 저자가 공부한 찰스 다윈의 이론을 철저히 악용한 사례였다. 다윈은 ‘한 종을 강력하게 하는 것은 변이이며, 변이를 제거한 동질성은 그 종이 자연 앞에 취약함을 노출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결국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극악한 행태들을 발견하고 더 이상 긍정적으로 그의 삶을 수용할 수 없었다. 그렇게 저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고, 자신이 믿고 지표로 삼고 싶었던 사람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은 더욱 저자를 다운되게 만들었다.그런데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조사가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다. 그에 대한 실망감을 뒤로 하고 저자는 역으로 그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중에서 지능검사에서 부적합자로 간주되어 어린 시절을 거의 수용소에 갇혀 보냈던 우생학의 피해자, 애나를 찾는다. 그리고 그 수용소에서 애나가 보살폈던 메리도 함께 만났다. 저자는 그들의 끔찍한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질문한다. 그런 경험을 하고도 어떻게 계속 살아가냐고. 이에 그들의 대답은 서로가 서로에게 삶을 살아가는 이유였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한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챙기면서, 그렇게 사랑의 힘으로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웃으면서 농담식으로 말한 그 말들 속에서 저자는 문득 깨달음을 얻는다. 누군가에는 필요없고 의미없을 수 있는 존재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가 되고 삶의 이유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바로 자연을 온전히 보는 방식이며, 소위 말하는 ‘민들레 법칙’이라고. 이는 무엇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던 아버지의 말고,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우생학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들의 생각이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믿었던 그들이, 결국 가장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이었음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