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 론1. 승기천에 대하여2. 승기천 조성 사업 현황Ⅱ. 승기천 개선 전Ⅲ. 승기천 개선 과정1. 수질 모니터링2. 생태 모니터링1) 식 물2) 어 류3) 조 류3. 수문, 수리 현황 모니터링4. 개선 과정 모습Ⅳ. 승기천 개선 후1. 부동산 가치 변화2. 사진 자료3. 설문 조사Ⅴ. 결 론Ⅵ. 참고 자료Ⅰ. 서 론1. 승기천에 대하여인천광역시 남동구와 연수동 사이에 흐르는 2급수의 하천으로 옛날에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마을이 다시 생겨나면서 이어졌다고 하여 ‘승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인천 남동공업단지에서 황해로 유입되는 인천의 하천 승기천은 인천시내에서 가장 넓고 자연적인 유량인 가장 많은 하천입니다. 하지만 오른쪽에는 연수택지개발지구가 왼쪽에는 남동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어서 하천의 오염뿐만 아니라 황해의 오염까지 초래하였습니다. 2003년 심각한 오염과 하천으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해버린 승기천이 379억원 사업비와 시민들의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생태형 하천으로 거듭났습니다. 과거 승기천의 심각한 오염과 개선과정, 자연하천으로 거듭난 승기천의 모습과 현황을 통해 하천의 중요성과 개선 가능성을 연구, 조사하였으며 이러한 자연환경의 변화가 부동산의 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2. 승기천 조성 사업 현황인천광역시 중심가를 관통하고 있는 승기천을 개선함으로써 수질개선, 생태계 복원, 시민에게 쾌적한 공간을 제공함으로 자연과 시민이 어우러지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위?????치 : 남동구 구월동 구월농축산물 도매시장 ~ 남동유수지*테?????마 : 도심지에 철새가 날아드는 하천*규?????모 : 자연형하천 조성 6.2㎞???????????????하도준설, 자연형 호안조성???????????????습지, 자전거도로 및 산책로, 횡단목교, 여울, 하중도 등 조성???????????????유지용수 (만수하수처리장 처리수) 공급*사업기간 : 2007년 5월 ~ 2008년 10월*사업 추진 내용2003년 5월 : 승기천 정비사업 1승기2교승기천-2선학교승기천-3연수교승기천-4남동대교승기천-5동막교승기천-4승기천-2승기천-3승기천-4승기천-5단위: mg/kg항 목6월9월승기천-3승기천-5승기천-1승기천-3승기천-5카드뮴0.1600.1830.1440.0950.419구리11.61244.3435.88711.15665.318비소0.0100.0230.1100.0500.090수은0.0310.1220.0640.0360.216납8.08712.2284.97311.33532.5076가크롬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아연129.874243.065156.33194.081285.328니켈23.34247.80322.61116.96545.435불소387.451459.859594.682311.047661.475유기인화합물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시안0.104불검출불검출불검출0.122페놀류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BTEX2.6402.9611.7011.5651.210TPH56.09574.97964.51185.491209.554트리클로로에틸렌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테트라클로로에틸렌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PCBs0.0270.0480.2190.1070.171수분함량(%)11.86010.0609.65012.99014.030월측정지점Cu(mg/L)Pb(mg/L)Cd(mg/L)Cr(mg/L)As(mg/L)Hg(mg/L)6월승기천-3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승기천-50.440불검출불검출0.020불검출불검출9월승기천-10.017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승기천-30.010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승기천-50.016불검출불검출불검출불검출0.0008승기천은 도심 및 공단지역을 지나 유수지로 흘러가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오염원의 유입이 예상되었으며 수질분석 결과 또한 동일한 양상을 보였습니다. 6월 측정시 승기천-3, 승기천-5 지점은 유속이 거의 없이 정체된 상태였으며, 7월은 공사 후 상류부의 유량은 증가하여 수질은 약간 개선된 결과를 보였습니다. 8월의 분석결과에서도 항목별로 미세한 차이는 있었으나 7월과 거의 유BOD, COD, T-P는 전월 대비 상승한 반면 SS와 T-N은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유량 증가와 함께 유기물의 유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입니다. BOD는 3.75~5.57mg/L로 8월과 비슷한 수준이나 하천 정비 초기인 7월과 비교하면 악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T-P도 0.456~0.817mg/L로 7월의 0.231~0.278mg/L와 비교하면 하?폐수의 유입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10월은 전반적으로 수질의 안정된 양상을 보였습니다. 지점에 따라 차이는 있었으나 SS를 제외한 모든 항목에서 큰 편차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SS는 하류로 갈수록 큰 폭으로 증가하였으며, 승기천-5 지점에서 34.0mg/L로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상류로부터의 부유물질 유입과 유수지로부터의 역류로 부유물질이 정체되어 하류에서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승기천은 유수지가 하류 수질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유수지의 관리를 포함한 종합적인 수질관리대책이 수립되어야 할 것입니다.2. 생태 모니터링선학교 일대를 1구간, 원인재역부근 일대를 2구간, 남동대교 상류에서 동춘교 사이를 3구간으로 하여 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1) 식 물출현종은 총 29과 95종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멸종위기종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귀화식물은 31종이 확인되어 귀화율 32.6%, 도시화지수는 10.8로 나타났습니다. 식물구계학적 특정식물은 참느릅나무와 사철나무가 확인되었지만 모두 식재종이어서 큰 의미는 없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2차 조사와 비교하면 과는 1과가 감소하였지만 종수는 5종이 증가하였습니다. 식생은 수변부에 환삼덩굴군락, 명아자여뀌군락, 단풍잎돼지풀군락, 미국가막사리군락 등이 출현하였으며, 고수부지와 제방사면을 중심으로 갈대군락, 환삼덩굴군락, 돌피군락, 강아지풀군락 등이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식재종인 수레국화군락, 서양벌노랑이군락 등은 쇠퇴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는 2차 조사시기와 비교하여 큰 차이는 없었지만, 수변부의 환삼덩굴군락과 돌피-강아지풀군락, 비단잉어, 미꾸리, 대륙송사리, 밀어참개구리 1종 확인되어 현재까지 누적 확인된 종은 2종이며 조사하천 중에서 다양성이 가장 낮은 하천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토목공사 및 식재 직후 안정화가 안 된 상태이며, 성토 또는 절토된 지역이 있고, 본류에 강우 시 안정되지 않은 토사 대량 유입과 방류에 의한 유량이 증가되었으며, 일부 구간의 수질은 향상되었습니다. 토목공사 직후 식생대 및 하천 본류에 교란요소가 안정화되지 못한 상태이며, 하천에 침전된 오염물질의 영향으로 하천수가 매우 불량한 상태로 하천수의 고도의 오염으로 양서?파충류의 이용에 적합하지 않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3) 조 류출현종 및 개체수는 총 14과 22종 227개체로 확인되었으며, 개체수가 많이 관찰된 종은 참새(165개체), 붉은머리오목눈이(35개체), 까치(9개체), 멧비둘기(8개체) 순이었다. 하천을 주된 서식지로 이용하는 백로과 조류는 왜가리(1개체), 중대백로(3개체), 쇠백로(3개체), 흰날개해오라기(1개체), 오리과 조류는 알락오리(6개체), 흰뺨검둥오리(5개체)가 각각 관찰되었습니다. 하천 주변 수변림에서는 참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까치가 우점하였습니다. 3차 조사와 비교하여 볼 때, 종수와 개체수는 9종, 100여 개체 증가하였으며, 종수는 3지점에서 다양한 종이 관찰되었고, 개체수는 참새가 많이 관찰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지점의 다양한 종의 관찰은 하천의 수변부에 갈대군락, 환삼덩굴군락이 잘 발달되어 있어 사람의 활동으로 인한 방해요인을 저감하였기 때문으로 사료됩니다.조사시기조사지점출현종수출현종*1차St. 110과 13종 64개체흰뺨검둥오리, 꿩, 알락도요, 괭이갈매기, 집비둘기, 멧비둘기, 직박구리, 쇠유리새, 딱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참새, 어치, 까치St. 26과 7종 24개체흰뺨검둥오리, 깝작도요, 괭이갈매기, 노랑발갈매기, 직박구리, 쇠박새, 참새St. 38과 11종 34개체꿩, 꼬마물떼새, 청다리도요, 알락도요, 괭이갈매기, 노랑발갈매기, 집비둘기, 멧비둘기, ()07월 08일0.61013.5008.240.0100.046007월 27일0.3799.4603.590.2600.971008월 21일0.3329.3603.110.1400.292009월 08일0.2759.4002.590.1150.201010월 09일0.2939.4002.750.2070.5701승기천 하류측정일자평균수심(m)하천폭(m)단면적()평균유속()유량()07월 08일0.18825.0004.700.0100.024007월 27일0.18425.5004.690.0100.026008월 21일0.15326.5004.050.0100.022009월 08일0.13126.5003.460.0100.018710월 09일0.14326.5003.700.0100.0370승기천에 대한 유량 조사 성과를 분석하여 표로 나타내었습니다. 승기천의 평균유량을 살펴보면 중류의 경우 0.04 ~ 0.2, 하류의 경우 0.02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천 폭 을 고려하여 볼 때 상당히 낮은 하천 유량으로 하천유지용수 부족으로 판단됩니다.4. 개선 과정 모습수질개선 및 산책로 정비 등 공사 외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승기천이 개선 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Ⅳ. 승기천 개선 후1. 부동산 가치 변화승기천 사업의 구간을 역세권 주변으로 살펴보면 선학역, 신연수역, 원인재역, 동춘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각각 아파트가 많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선학역 부근에는 금호아파트, 대동아파트, 건영아파트, 선학 뉴서울 아파트 등이 있고, 신연수역 부근에는 선학아파트, 대림아파트, 연수1차 풍림 아파트, 연수 2단지 주공아파트, 인천 연수 경남 아파트 등이 있습니다. 원인재역 부근에는 연수1차 시영아파트, 연수1차 우성 아파트, 연수2차 우성 아파트 등이 있고 동춘역 부근에는 연수대우삼환아파트, 연수1차 현대 아파트, 연수2차 풍림 아파트 등이 있습니다. 승기천 개선 사업이 2003년부터 추진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완공 후에 엄청난 지가 상승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지가상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
목 차1. 카론의 동전 한 닢 저자2. 도서 정보 요약3. 시작하는 말4. 카론의 동전 한 닢5. 다시 비상하는 한국6. 나의 생각1. 카론의 동전 한 닢 저자정 갑 영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석사, 코넬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교무처장과 정보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정부투자기관 운영위원회와 전기위원회, 통신위원회 등의 위원을 역임하며, 정부 주요 부처 및 여러 금융기관과 민간기업의 자문에 참여하였다.세계 저명 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해왔으며, 『산업조직론』, 『한국의 산업조직』, 『민영화와 기업구조』, 『미시경제학』, 『동아시아의 정치와 경제』(공저) 등 다수의 전문서적을 저술했다. 이외에 ‘알기 쉬운 경제학, 살아 있는 경제원리’를 전파하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열보다 더 큰 아홉』, 『나무 뒤에 숨은 사람』, 『재미있는 두루누리 경제』(만화), 『잘 나가는 기업, 경영비법은 있다』(공저) 등의 저작에서는 경제 현상을 시, 오페라, 연극, 영화 등 이해하기 쉬운 소재로 설명해 독자들로부터 커다란 호평을 받았다. ‘매경 이코노미스트상’(1993)을 수상한 바 있으며, MBC ‘손에 잡히는 경제’와 KBS ‘경제 포커스’를 비롯하여 국내 경제 관련 방송에 전문 고정 패널로 출연하였고, 주요 일간지에 다수의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2. 도서 정보 요약고대 그리스인들은 망자의 입에 동전을 물렸다. 저승의 강을 건네주는 카론의 배를 타기 위해서는 동전 한 닢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죽은 혼령을 실어 나르는 조각배 속에서도 시장은 움직이고, 뱃사공 카론에게 건네는 동전 한 닢은 시장경제의 본질을 웅변해준다. 시장과 경제의 역사가 이러할진대, 과연 우리 사회는 기업이 추구하는 카론의 동전 한 닢에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 혹여 장삿속이 지나치다며 카론을 비난만 하려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혼동하는 경 있다.3. 시작하는 말이 책은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을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하기에 적합하다. 책 제목부터 풀이해보자. 카론(Char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길의 늙은 뱃사공 이름이다. 그는 바닥이 없는 소가죽 배로 혼령들을 저 세상으로 실어 나른다. 그 작업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동전 한 닢이라도 받지 않으면 배를 태워주지 않는다. 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은 망자(亡者)의 입에 동전을 물렸다고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뜻이다. 이것이 ‘시장경제 원리’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사회는 기업이 추구하는 ‘카론의 동전 한 닢’에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을까? 혹여 장삿속이 지나치다며 카론을 비난만 하려는 정서가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사회의 일부에서는 기업의 목적이 무엇인지조차 혼동하는 경우가 많고, 이윤에 대한정당성조차 제대로 부여하지 않으려 한다. 많은 이들이 ‘시장보다 강한 정부’를 믿으며, 정치논리로 경제를 풀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도 시장보다 더 유용한 도구를 찾아내지 못했으며, 시장친화적인 정책과 정서는 21세기 부강한 나라들의 첫 번째 공통점으로 꼽힌다. 이 책 『카론의 동전 한 닢-정갑영의 新국부론』에서 저자는 오랜 경륜과 그것에서 우러나온 통찰력으로 한국경제의 현실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시장에 대한 바른 이해가 뿌리내려야 한국경제의 제2의 비상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이 책은 국민정서의 거대한 벽에 막히고 정치의 덫에 걸린 한국경제를 위한 ‘21세기 신국부론’이다.1964년 서울의 낭만을 그리워한다면, 그때의 가난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먼저 한국에 태어난 것을 축복이라고 말한다. 개구리가 벼랑을 뛰어오르는 것과 같이 천신만고 끝에 한 발짝 겨우 올라도 한 번 잘못 디뎌 몇 길 아래로 추락하기 십상인,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 많은 경제사례에서 40년간의 지속적인성장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잘사는 나라보다 못사는 나라가 훨씬 더 많은 것이 현실이며, 바로 그 나라 중에서 인도 다음으로 가장 못사는 나라였고, 그 가난한 시절을 낭만으로 추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때의 빈곤과 배고픔의 아픔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인다.국민정서의 함정에 빠진 한국경제, 가장 절실한 것은 ‘카론의 동전 한 닢’에 대한 이해 ‘운명론적 경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예측하고 대비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미래 경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미래 경제를 대비하는 대응 주체로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을 내세우고, 이 중에서도 민주적 과정을 무시할 수 없는 현재의 정치 제도상 국민들이 만들어내는 여론, 즉 국민정서라고 하는 큰 조류가 미래 경제를 결정짓는 강력한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역설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지금 우리 사회가 어떤 조류를 타고 있는지 살피고자 한다. 그리하여 시장과 효율보다는 형평과 분배를 중시하고, 글로벌 패러다임보다는 아직도 나라 중심의 폐쇄성을 선호하는 국민정서가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기업과 기업인을 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본질적으로 기업은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마저도 크게 왜곡시키고 있음을 우려한다. 저자는 한국경제가 이러한 ‘국민정서의 함정’에 빠져 있으며, 이것이야말로‘2만 달러를 향한 항해’를 가로막는 높은 파고라고 말한다.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경제가 다시 성장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을까?4. 카론의 동전 한 닢1964년은 우리 경제의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해이다. 반만년의 한국 역사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처음으로 100달러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1964년 서울. 대부분의 국민들은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하루를 걱정하거나, 허기진 배를 달래며 가난한 날의 행복을 찾아야만 했다. 이제 상황은 변했다. 아직도 상대적 빈곤은 많지만 젊은 세대들의 인식 속에 ‘가난’은 이제 ‘우리’의 얘기가 아니다. 그들은 ‘가난’의 시대상을 이해하기도 힘들게 되었다. 오늘의 이러한 풍요는 바로 1964년 겨울을 힘들게 이겨냈던 앞선 세대들의 노력으로 일구어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66년 우리보다 두 배나 많은 소득을 가지고 있었던 필리핀은 20년의 장기 독재와 경제 정책의 실패로 아시아의 전형적인 실패 사례가 되었다. 반면 1980년대 말까지도 빈약한 자원과 열악한 입지조건으로 서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수준이었던 아일랜드는 사업 환경의 개선 통한 투자유치 성공, 경제정책의 일관성, 안정적인 노사관계 등으로 현재 유럽 연합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부상했다. 이 두 국가의 공통적인 교훈이라면 경제에는 미리 정해진 운명이 없다는 것이다. 풍요로운 나라, 그것은 결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패와 성공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축복받는 땅의 풍요가 지속될 수 있을까?오늘날 한국은 어떤가 진보성향의 정부가 집권하게 ·1998년 이후다. 30여 년간 강력히 추진되어 오던 성장위주의 경제정책의 열기가 식어들기 시작했다. ‘성장을 바탕으로 한 분배’라고 표방하고 있지만 전체 관점에서 보면 분배 쪽으로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은 점차 떨어지고 있으며 성장엔진의 강력한 가동음향도 낮아지고 있다. 단지 성장률만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기업가정신이 허약해지고 있으며 기업전반에 활력이 사라지고 있음을 절감할 수 있다. 창업자의 2세,3세들은 온실 속에서 자라 오너십을 물러 받아도 제몫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치열한 창업정신을 가진 젊은이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부 청년 창업자들은 ‘벤처 광풍’이 불 때 머니 게임에 몰두한 나머지 제대로 된 창업문화를 이 땅에 심지 못했다.각 계층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생기고 있는 것도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사람 사는 사회에 동서고금을 통해 계층 간 갈등이 없었던 때가 있으랴, 하지만 최근 한국 사회가 겪는 갈등의 수준은 위험수위를 넘나들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빈부계층 끼리의 반목, 여전한 지역 갈등, 세대 간의 불신..., 그 중에서도 세대 간의 불신을 나타낸 두 단어졌다고 그 책임을 청년층에 돌리기도 한다.이처럼 상황에서 한국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야 한, 더욱이 언젠가 남북통일을 이루면 그 엄청난‘통일비용’을 마련하려면 국부를 어떻게 축적해야하나. 이 물음에 대한 해결책을 시원하게 밝혀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그 동안 읽기 쉬운 대중용 경제학 서적인 ‘열보다 더 큰 아홉’‘나무 뒤에 숨은 사람’ 등을 펴낸 정교수가 쓴 또 하나의 역작이다. 어려운 경제이론을 읽기 쉽게, 흥미진진하게 쓴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저자의 깊은 내공이 없어서는 이루기 힘든 일이다. 그러기에 대중용 경제서적을 쓰는 것은 경제학자 가운데서도 상당한 내공을 쌓은 분들이 시도하는 일이다. 이는 한국 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그렇다. 이 책은 얇아서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곱씹어 읽을수록 내용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하는 책이다. 한번 읽고 덮어둘 책이 아니라 밑줄 그어가며 두고두고 의미를 되새겨야할 양서이다 특히 경제에 대해 잘 모르는 분을 위한 안내서 역할을 하기에도 적합하다.이 책에서는 잭 웰치, 노키아, 도요타 자동차 등 다양한 성공사례와 객관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어느 상황에 도달해 있는지를 반문한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부유한 나라의 공통점에 집중한다. 앞서 부자가 된 나라들은 다양한 동인에 의해 성공한 것 같지만 ‘공통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톨스토이가 ‘안나카레리나’에서 “불행한 가정은 수없이 다른 사연이 있지만, 행복한 가정은 모두 어떤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행복한 가정’의 공통된 특징을 외면하고 선진한국을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저자가 찾아낸 ‘21세기 부강한 나라’의 공통된 비법은 ‘시장 친화적 정책’,‘정부정책의 일관성과 효율성’,‘개방화’,지속적인 생산성 증가‘등으로 요약된다. 자저는 더 이상 자원이 국부를 결정짓지 못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어떻게 제공하느냐’가 새로운 국부창출의 메커니즘으로 .
- 베이비붐이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 -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베이비붐의 정의2. 베이비붐 세대 은퇴의 장점과 단점3. 경제적 사회적 파급효과와 문제점1) 경제적 파급효과2) 사회적 파급효과4.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1) 베이비붐 세대와 부동산 가격의 변천2) 베이비 붐 세대의 부동산 자산 보유 비중3)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5. 한국 & 미국 & 일본의 베이비붐과 부동산 시장1) 인구변화가 자산시장에 미치는 영향2) 베이비붐에 따라 출렁이는 한국 부동산시장①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화 추이② 한국 베이비붐의 특징3) 7700만 명의 미 베이비붐과 부동산시장4) 부동산 버블의 붕괴와 함께한 일본 베이비붐6. 고령화와 출산율하락에 빠진 한국7. 정책적 대응 방향1) 투자자들의 자산배분 선호의 개선2) 금융 부문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제고3) 인구 고령화 추세에 맞는 장기 금융 및 부동산 상품을 개발4) 국민연금의 제도적 보완책 마련5) 부동산시장 전반에 걸친 상시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8. 정책 대안 - 외국 사례Ⅲ. 그림으로 보는 인구·부동산 시장Ⅳ. 결 론Ⅴ. 참고문헌Ⅰ. 서 론10년 후 한국 경제의 성장률은 어느 정도 수준이며, 부동산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경기 전망’이나 ‘히트상품 예상’ 수준을 넘어서는 장기간의 추세 요인을 살펴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회와 경제의 장기적인 추세를 결정짓는 요인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PIMCO의 운용책임자인 빌 그로스(Bill Gross)는 “만약 내가 향후 몇 년 동안 아무런 통신수단도 없는 외딴 섬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 단 한 가지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인구 구성의 변화에 대한 정보일 것이다”라며, 인구 통계를 모든 정보의 가장 앞에 세울 것이라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피터 드러커(Peter Druker)도 “미래 사회는 고령인가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진행되는 젊은 인구의 급속한 감소로 인해,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상상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고령화로 인한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감소분은 매년 0.25-0.75% 포인트 정도 된다. 이처럼 경제 성장 둔화가 불을 보듯 뻔한 데다 노동력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력 저하, 이로 인한 성장 잠재력 손상도 피할 수 없다.저출산은 사회를 이끌 동력을 잃게 한다. 노동력 규모가 줄어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예컨대 생산 가능 인구(15~64세)는 2016년 3,650만 명을 정점으로 급격히 줄어들고, 이들의 평균연령도 훨씬 고령화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생산인력이 줄게 되면 그 여파로 저축률이 감소하고, 투자가 위축되면서 재정수지가 악화할 수밖에 없다.2) 사회적 파급효과노인들과 젊은층 사이의 `세대간 전쟁'도 사회적 긴장도를 높이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산 가능 인구의 노인에 대한 부양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이와 함께 실질적으로 취업 가능한 사람(25~49세)이 2005년 2,066만 명에서 2020년에는 1,839만 명으로 11%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20년에는 노인 인구가 초등학생의 3배에 달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도 있다. 당장 2020년이 되면 생산가능인구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하고 2040년으로 가면 2명이 노인 1명을 책임져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저성장으로 인해 파이가 줄어들면서 파이의 분배와 재분배를 둘러싼 경쟁과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후 보장의 골간인 국민연금만 하더라도 후(後) 세대의 과중한 부담과 장기 재정 불안으로 존립위기에 처할 수 있다. 정부 재정에도 노인에 대한 복지ㆍ의료비 지출 부담이 불거진다.4.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부동산 시장에 미칠 영향1) 베이비붐 세대와 부동산 가격의 변천(1) 1986~1991년 주택 가격 상승기1950년대 출생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30대 중반에 이른 1986년부터 40대 초반에 이른 1991년까지 주택 가격은 상승하였다. 이 당시 평균 주택 구입 연령은 36세 이다.(2) 1991~1999년 주택 가격 하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호황이 시작됐으며, 미국의 부동산시장은 1946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가 평균 45세를 넘긴 1990년부터 호황구간에 진입했다.베이비부머가 60세 전후인 은퇴 연령에 도달하면 자산시장은 서서히 반환점을 돌게 된다. 일반적으로 40대 중반의 사람들이 주택을 업그레이드하는 이유는 자산 축적의 목적 때문만이 아니라 일생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수입을 올리기 때문이다.하지만 60세를 넘어서면 그렇게 고생해 마련한 집이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소득은 꾸준히 줄어드는 반면, 자녀가 결혼 적령기에 도달하면서 지출은 오히려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더욱이 직장에서 퇴직한 이상 굳이 대도시 인근에 비싼 집을 소유할 필요도 없는 데다, 관리비나 대출이자는 날이 갈수록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당수의 은퇴자들은 보유하던 집을 팔아 은행예금으로 갈아타는 모습을 보인다.2) 베이비부머에 따라 출렁이는 )한국의 부동산 시장① 우리나라의 인구구조 변화 추이통계청이 2005년 1월 발표한 장래인구 특별추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인구증가율이 2000년의 0.84%에서 점차 하락하여 2022년에는 0%, 2050년도에는 -1.18%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였으며 인구 규모는 2020년 49,956천명을 정점으로 점차 감소 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총인구 및 인구성장률 추이(단위 : 천명,%)**************************2020302050총 인 구32,24138,12442,86947,00848,29449,22049,95649,32942,348인구성장률2.211.570.990.840.440.340.01-0.28-1.18주: 인구성장률은 전년대비 인구증가율임총인구 중 유년인구와 노령인구의 구성비 변화를 살펴보면 0~14세 유년인구는 2005년 현재 총인구 중 19.1%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출산율 감소로 인하여 2030년 11.2%, 2050년 9.0%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며, 15~64세 생산가능 인구는 2005년 현재 총과거와 같은 주택시장의 급격한 파동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최근 메아리부머들도 성년이 되면서 대학 진학, 취업 등으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사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오피스텔과 대학가 소형 임대 주택이 크게 증가했다. 또 베이비부머들은 앞으로 10년 안에 은퇴 세대로 접어들 것이다. 그동안 인구수가 가장 많아 치열한 생존 경쟁의 1세대였지만 점차 대규모 은퇴 세대로 변화할 것이다.2) 7700만명의 )미국 베이비부머와 부동산시장베이비부머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197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주택 가격이 들썩이고, 경제 전체의 물가상승률이 상승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1946년부터 64년 사이에 태어난 미국의 7700만 베이비부머들은 20~30대에 도달하면서 노동시장에 뛰어들었고 처음으로 집과 자동차를 구입하게 됐다.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미국 부동산시장을 주도한 것은 도심의 저가?다가구 주택들이었다. 저축한 돈이 없는 젊은 베이비붐 세대들로서는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도심에 위치해 교통이 편리한 다가구 주택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 이다.그러나 80년대 중반, 다가구 주택시장의 인기는 급격히 하락해 주택시장의 애물단지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당시 다가구 주택 가격이 폭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역시 베이비부머들이 40~50대에 접어들며 자산을 축적하자, 도시 외곽의 고가?단독주택으로 이사했기 때문이었다.90년대, 미국 등 선진국 경제는 저물가·저금리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게 됐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인구 구성의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먼저 65년 이후에 태어난 저출산 세대가 경제에 진입하면서 자동차 등 내구재에 대한 신규 수요가 줄어들어 경제 전반의 물가압력을 크게 떨어뜨린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46∼64년에 태어난 7700만 베이비부머가 40~50대에 진입해 경제전반의 노동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된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산성은 근력과 숙련도에 의해 좌우되는데, 40~50대의 근로자들은 근면, 일본은 24년, 이탈리아는 61년, 독일은 40년, 스웨덴은 85년이다. 고령화 속도에서 한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선진국에서는 과거 경제 성장기에 축적된 탄탄한 경제력이존재하였기 때문에 부동산시장의 버블이 붕괴되고 지가가 하락하였어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존재하였다. 하지만, 한국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과는 달리 부동산에 치우쳐진 경제구조를 띄고 있다. 미국은 총자산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이 70%이고 30%정도가 부동산이다. 그러나 한국은 가계자산 중에서 부동산 비중은 83.4%에 달하며 금융자산은 평균 10.2%에 불과하다. 부동산 버블 붕괴를 경험한 일본 역시 1990년까지만 해도 총자산중 63.3%가 부동산에 치우쳐져 있는 구조를 띄고 있었으나 부동산시장이 붕괴되고 나자, 그 비중은 현재 28.9%로 격감했다. 반면에 금융자산 비중은 현재 70%까지 기록하는 등 가계 자산의 구성이 큰 변화를 맞이했다.한국보다 10~25년 일찍 베이비부머가 시작된, 게다가 인구 고령화 속도가 한국보다 더딘 미국과 일본. 2008년 현재, 한국은 늙어가는 인구구조 속에서 그리고 10여 년 후에 대거 은퇴를 맞게 될 베이비부머의 등장 속에서 부동산시장을 어떻게 재편하고 구성해야 할 것 인지 다가오는 파국에 대해 대비하여야 한다.7. 정책적 대응 방향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향후 10~20년 안에 지속적으로 국내 자산 시장의 수급 구조를 교란할 개연성은 매우 높으며, 이에 대응해 장기적 시야에서의 정책이 필요하다.1) 투자자들의 자산배분 선호의 개선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기에 집중적으로 보유 자산을 처분해 자산 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부동산시장과 여타 자산시장 간의 균형을 유도하는 것이 시급하다. 즉, 부동산 가격이 조속히 안정돼 부동산과 여타 자산 간에 기대 수익률 격차가 줄어들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가계의 부가 주로 부동산으로 이루어져 있는 만큼
목 차Ⅰ. 서 론Ⅱ. 본 론1. 한국 전쟁이 각 나라에 미친 영향1) 북한2) 남한3) 미국, 일본 外 여러 나라2. 한국전쟁 후 전쟁 복구 사업1) 한국의 피해 정도2) 복구 사업3. 미국의 경제 원조4. 한국전쟁 하의 경제1) GNP2) 인플레이션5. 한국전쟁 후 경제 상황의 변화1) 마이어 협정2) 농지 개혁3) 실업문제6. 50년대 한국 경제의 문제점1) ‘더 많은 원조’ 이데올로기전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2) 실업, 자본 부족, 재벌7. 한국전쟁과 경제의 함수관계8. 제1차 세계대전과 경제의 함수관계1) 제1차 세계대전 전의 세계 경제2)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3)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세계 경제의 변화9. 제2차 세계대전과 경제의 함수관계1) 제2차 세계대전 전의 경제상황2) 세계 각국의 공황 타개책과 전쟁의 서막(序幕)3)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4) 제2차 세계대전 후의 경제10. 베트남전과 경제의 함수관계11. 걸프전과 경제의 함수관계1) 미국경제 상황과 걸프전2) 종전(終戰)과 미국 경제의 회생(回生)12. 이라크전과 경제의 함수관계1) 미국의 패권유지와 세계적인 반발2) 이라크 전쟁의 원인과 결과13. 전쟁의 참혹한 모습Ⅲ. 결 론Ⅳ. 참고문헌Ⅰ. 서 론한 순간에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전쟁은 경제적으로 피폐함과 황폐함을 주는 동시에 어느 누군가에게는 경제적 이익을 주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갖고 있다. 러셀은 전쟁에 대해 ‘수천 년간 인간과 공존해온 습관’이라 하였다. 이를 뒷받침하듯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인류는 길고 긴 진화과정을 거치는 동안 ‘경제력의 확보와 소유’를 위해 전쟁을 일으켰으며 또한 ‘획득한 경제력의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서 전쟁을 치러왔다고 한다. 즉 구석기 시대 → 신석기 시대 → 청동기 시대 → 철기 시대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의 전환기에는 소가족 중심의 씨족이 이웃한 다른 씨족과 ‘족외혼’이라는 평화적 수단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부족을 이루었으나, 그다음 단계인 청동기 시대로의 전환기에는4.4%를 제외한 나머지 8.0%를 차지하여 미국의 대한원조가 한국의 총 투자액의 64%에 달했다. 따라서 미국의 대한원조의 내용과 규모가 한국산업구조의 변화 내용을 결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원조(I.C.A.원조 총액 17.4억 달러)의 내용을 보면, 산업시설 복구와 건설에 직접 투입되는 시설재의 비중이 27.6%인데 반해 원자재의 비중이 72.4%로 소비재 원조에 치중하였다. 시설재 원조는 주로 교통부문과 교육후생부문에 치중되었고, 광공업에 대한 원조는 27.3%에 불과하였다.이러한 산업의 전후복구와 건설에 대한 투자의 결과로 1954~60년간 우리나라의 실질GNP는 연평균 4.9%의 성장율을 보였다. 전후복구와 재건으로 특징 지워지는 1955~1960년간 전국과 강원도의 산업구조와 성장을 보면 〈표 1〉과 같다.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55~1960년간 강원도의 산업구조는 산업의 성과를 나타내는 경상가격표시 부가가치를 기준으로 보면 1955년에는 제1차 산업이 44.4%, 제2차 산업이 12.1%, 제3차 산업이 43.4%를 나타내 농림어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당시 전국의 산업구조와 매우 유사했음을 알 수 있다. 5년 후 1960년에는 제2차 산업의 비중이 25.1%로 1955년의 12.1%에 비해 2배 정도 크게 높아지고, 상대적으로 제1차 산업의 비중은 35.6%로 10% 포인트 낮아지고, 제3차 산업의 비중은 39.4%로 약간 낮아졌다. 이와 같이 강원도의 제2차 산업 비중이 급격히 높아져 마치 산업의 고도화가 진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강원도 광업의 비약적인 성장이 초래한한 결과였다. 즉 강원도의 제2차 산업에서 광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960년 73.9%인데 비해 제조업은 26.1%에 불과하다(1960년 강원도의 광업이 전국의 광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2.9%).1955~1960년간 강원도의 산업별 실질 성장율(이하 제1절에서 특별한 언급 없이 ‘실질 성장율’이라 함은 불변가격표시 부가가치 기준으로 계으로 인하여 이 기간 중에 공급된 총통화액은 335억 9천만원이었으며, 이 가운데는 유엔 군대여금이 52.9%, 정부대여금이 43%인데, 이를 합하면 95.9%로서 거의 모든 통화가 전시재정 및 유엔군대여금으로 공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5. 한국전쟁 후 경제 상황의 변화미군정의 경제정책 실패로 인해 엄청난 인플레이션과 쌀을 비롯한 생필품 부족에 시달리던 38선 이남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 계속된 정치적인 혼란과 1949년의 38선 충돌은 경제적 혼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1950년에 들어서 이러한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1950년 1월에 발표된 재정안정계획을 통해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통제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ECA 원조도 1950년에 들어서야 미국 의회의 승인을 받을 수 있었고, ECA 한국지부는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던 1950년 5월의 시점에서 ECA 원조액의 사용을 승인하였다. 농지개혁은 법안의 통과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1950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한국전쟁은 남한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안겨 주었다. 그나마 1950년 봄부터 경제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는 상황에서, 또한 농지개혁과 ECA 원조를 통해 경제부흥을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전쟁이 발발하였기 때문에 경제구조 전반에 준 피해는 상대적으로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경제부흥의 기초가 될 수 있었던 적산공장들은 공장의 가동을 또다시 늦출 수밖에 없었고, 비료와 전력, 석탄산업 건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였던 ECA 원조는 백지화되었다.1) 마이어 협정한국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준 것은 인플레이션의 재발이었다. 유엔군에 대한 대여금 때문에 시작된 통화팽창은 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엄청난 것이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유엔군에서 요구하는 원화를 공급하무부의 일부 관리들은 군축으로 인한 실업자의 증가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였다. 민주당 정부에서 국토 건설단을 설치하고, 군사정부에서 국토건설사업을 계속 추진하며, 미국이 이에 대해 적극 지원한 것은 공공근로 사업이 실업문제 해결을 위한 효과적인 방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정작 실업문제가 1960년대 이후의 경제개발의 방향을 규정한 것은 공공근로 사업의 확대가 아니라, 노동집약적 보세가공 수출산업의 확대에 있었다. 민주당 정부와 군사정부의 국토건설사업이 실패하면서 실업문제는 계속 중요한 사회문제로 남아 있었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미국은 중소기업 중심의 노동집약적 수출 공업을 발전시켜야 함을 제기하였다. 군사정부는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개발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국내의 자본이 부족한 상황에서 노동집약적 보세가공 수출산업을 통한 경제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둘째로 국내 자본의 부족이다. 1950년대를 통해 2차 산업이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53년의 7.2%에서 1957년 10.3%, 1961년 11.9%로 증가하였다. 그러나 제조업의 성장이 국내 자본의 축적을 이루어 졌다기보다는 원조와 특혜 대출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대기업들의 자기자본 비율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들은 국내의 수요시장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천을 독점, 이중 환율제, 수입 등에서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외원을 통하지 않고서는 경제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어냈다.1958년부터 미국의 무상원조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는 산업개발위원회를 조직하여 경제개발계획의 작성에 착수하였다.) 1959년 산업개발위원회가 발표한 산업개발 3개년계획에서부터 군사정부가 발표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이르기까지 경제개발을 위한 핵심적인 자금은 외원으로부터 메꾸어 지도록 계획되었다. 국내 자본이 부족한 자본에서 경제재건을 위한 자금을 외부로부터 가져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외원을 위주로 경제개발을 부문 생산의 40% 이상을 지배하는 거대 독점체가 되었다. 이로써 1890년대 후반부터는 주식회사에 의한 기업합동인 콘체른(Konzern)이 등장하였다.독점자본의 성립으로 인한 폐해가 드러나자, 철도운임의 적정화를 요구한 서부농민들의 그레인저 운동(Granger Movement)이나 노동자들의 연대운동(Populist Movement) 등이 나타났으며 이는 결국 1890년 7월 '셔먼 反트러스트법(Sherman Anti Truat Act)'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조차도 가속화된 독점 자본주의를 억제하지 못했고, 모건(J. P. Morgan) 등 투자 은행가들의 금융자본 형성은 결국 특수회사(Holding company)를 성립시켜 1904년에는 미국 공업자본의 3분의 2 이상을 지배하게 되었다.- 제국주의 정책 -건국 이후 초기에는 해외 식민지 개척보다 ‘서부개척’을 통한 자국 영토의 개척에 힘을 쏟았다. 그러나 1869년 5월에 대륙횡단철도의 완성과 나날이 성장하는 독점 자본은 해외 식민지 개척의 필요성을 재촉하여, 1898년 스페인과의 전쟁 이후 하와이를 필두로 필리핀(1898)?쿠바(1902)?파나마(1914) 등을 식민지 내지는 보호국화 하여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하였다.④ 프랑스의 뒤늦은 독점 자본 형성과 식민지 개척프랑스의 독점 자본 형성은 영국보다도 더 늦었는데, 그 이유로 첫째, 공장제 공업제품으로 표준화가 어려운 예술품과 사치품 생산에 주력했고, 둘째 소규모의 가족적 기업이 일반적이었으며, 셋째 1830년의 7월 혁명과 1848년의 2월 혁명 등 국내 정치의 혼란으로 독점 기업의 성립과 같은 경제적 문제의 해결이 어려웠으며, 넷째 은행들이 산업금융보다도 주로 단기상업금융을 수행함으로써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지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그러나 1852년 제2제정을 전후로 미미하지만 제철업?섬유업?광산업을 중심으로 카르텔이 진행되었으며, 이로 인해 1880년 이후 콩고와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를 중심으로 식민지 개척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⑤
♣ 자금성이 만들어진 이유자금성이 만들어진 이유는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가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면서 지어진 것으로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까지 왕성으로 Tm이며 증축이 계속되어 지금의 거대한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당시 세계의 중심으로써 세계 각국에서 사신이 끝이질 않았는데 그 사신들의 거처등도 자금성 안에 있었습니다.궁녀, 후궁, 환관, 궁정수비대 등 수 많은 사람이 거처하고 직무를 하던 장소도 모두 자금성 안에 있었기에 그렇게 클 수밖에 없습니다.다시 말하자면 지금의 청와대, 시청, 대법원, 국회의사당, 외무부공관, 지금 과천에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부 청사, 국빈이나 외교관이 오면 머무는 호텔 및 식당, 역사편찬소 등 모든 것이 한곳에 다 모여 있다고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그 시대 중국의 자금성은 모든 것을 다 갖추었습니다.♣자금성紫禁城자금(紫禁)이란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위치한 자금성이 천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는 데서 유래된 말로, 베이징의 내성(內城) 중앙에 위치합니다. 1407년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천도하기 시작할 때부터 건립하여 1420년에 완성하였습니다. 그 후 명·청 시대를 통하여 궁전과 궁문을 여러 차례 보수·개축하였으며 명칭도 바뀌었습니다. 남북 약 1,000m, 동서 약 760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1구획으로 둘레에 도랑을 파놓았습니다. 성벽 주위 4곳에 각각 1개씩의 궁문이 있는데, 남쪽의 오문(午門)이 정문으로서 특히 웅대하며, 동쪽을 동화문(東華門), 서쪽을 서화문(西華門), 북쪽은 신무문(神武門)이라 부르며 네 모퉁이에 각루(角樓)가 서 있습니다.성내는 남쪽과 북쪽의 두 구역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으며, 남쪽은 공적(公的)인 장소의 바깥부분으로 오문에서부터 북쪽으로 태화문(太和門)·태화전(太和殿)·중화전(中和殿)·보화전(保和殿)이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그 동서에 문화전(文華殿)·무영전(武英殿) 등의 전각(殿閣)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 중 태화전은 남북 약 33m, 동서 60m의 당당한 건물로서 자금성의 정전(正殿)이며, 중요한 의식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바깥부분, 즉 외조(外朝)의 북쪽은 황제의 사적인 생활을 위한 내정(內廷)으로서 보화전 북쪽에 있는 건청문(乾淸門)으로부터 건청궁(乾淸宮)·교태전(交泰殿)·곤녕궁(坤寧宮) 등이 한 줄로 늘어서 있으며, 그 좌경(左京)에 많은 건물이 있습니다. 내정은 1925년 이래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중국 문화재의 전당이 되고 있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습니다.午門자금성의 남쪽에 있는 정문으로 궁성의 중추선상에 있습니다. 문의 양측 성벽이 앞쪽으로 펼쳐져 있고, 문 위에 5개의 누각이 나란히 세워져 있기 때문에 五鳳樓라고도 부른다. 가운데 정면 누각에는 옛 황제의 옥좌가 마련되어 있고,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황제는 항상 몸소 성루에 올라 전쟁포로를 받는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정면 누각의 좌우 양측에는 鐘鼓를 연결한 회랑이 있고, 천자 알현이나 축전 등의 의식에서 종과 북을 쳤습니다. 또 오문에는 황제를 위한 전용 통로가 있습니다.太和門명대에는 매일 봉천문(奉天門)[지금의 태화문]에서 알현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황제가 문으로 나오면 대신들은 예를 표하고, 이어 조정의 일을 상주하며 상주가 끝나면 물러난다. 청대에는 매월 음력5일, 15일, 25일은 알현일이고, 황제가 어전에 나타나면 태화전에서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만약 황제가 어전에 나타나지 않으면 황족이나 대신들은 태화문앞, 관리들은 午門밖에서 기다렸습니다.太和殿웅대한 태화전은 금란전이라고도 부릅니다. 높이는 27미터, 면적은 2370평방미터이고, 3단으로 이루어진 토대의 높이는 8.13미터, 내외장식이 화려한 태화전은 자금성내의 중심을 이루는 건축물이며, 청나라의 황제가 성대한 의식을 열었던 곳입니다.中和殿태화전에서 의식을 거행하기에 앞서 황제가 쉬는 곳이자 의식에 참가하는 중요한 관리가 먼저 황제를 알현하는 곳입니다.保和殿매년 대회일(大晦日)에 티베트, 靑海, 新疆, 몽고 등의 왕이나 제후에게 연회를 베풀고 또 부마등에게 연회를 베푸는 곳입니다.乾淸門건청문은 內廷으로 통하는 정문으로 청대에서는 천자가 정사를 듣는 곳, 정사를 듣는다는 것은 즉 황제가 몸소 건청문을 나서 대신들의 상주를 듣고, 명령과 교지를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乾淸宮명대의 황제가 머무른 곳, 청대의 황제도 이곳에 머무르면서 정무를 처리하고, 제신을 부르고 관리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기도 하며, 궁중에서의 알현과 연회를 열고, 또 학문에 힘쓰기도 하는 곳입니다. 옹정(雍正)년간에는 황제가 養心殿으로 옮겨 머무르게 되자 정무를 처리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전내의 보좌(寶座) 상부에는 '정대광명(正大光明)'이라고 써 있는 커다란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청조는 강희제(康熙帝)이후 황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후계자를 발표하지 않았고 황제가 서거한 후에 유서가 담긴 함을 열어 그 유서 내용에 따라서 후대 황제를 결정하도록 하였습니다.交泰殿교태전은 축제일에 내관 등의 알현을 받는 곳으로 청대에는 또 황제의 옥새를 보존하고, 옛 시계 및 대형 자명종 등이 있습니다.坤寧宮곤녕궁은 명대에 황후가 거주하는 중궁이었지만, 청대에는 바뀌었습니다. 즉 동난각(東暖閣)이라고 불리는 동측은 황제의 신혼 침실이고, 중간과 서측은 하나로 관통되어 궁중에서 신을 제사지내는 곳이 되었습니다. 중요한 날에는 황제와 황후가 함께 신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養心殿양심전은 명대에 건축된 것으로 황제의 휴식처에 해당하는 편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대 순치년간에는 침궁으로 삼고, 옹정년간이 되면 前殿은 정무를 처리하는 곳으로, 後殿은 침궁으로 이용하였습니다.長春宮西六宮 가운데 하나로 乾隆帝의 효현항후와 자희태후는 모두 이곳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궁내의 보좌는 여기에 머무는 황후, 황비가 축제일에 알현을 받기 위한 좌석입니다.軍機處건청문내의 우측에 있으며, 1729년 청나라 조정의 용병에 대한 통일적인 지휘를 위해 설립한 것으로 이후로 성격이 차츰 변하여 내각을 능가하는 중추기구가 되어 만청에는 조정의 정치를 좌우하였습니다.老虎洞건청궁의 섬돌아래의 환관을 위한 통로로 속칭 ""노호동""이라 불립니다. 명말의 희종 천계황제 [熹宗 天啓皇帝](1620 - 1627)는 밤에 자신의 환관들을 데리고 이곳에서 숨바꼭질을 하였습니다.暢音閣창음각은 자금성 안에서 궁중연극을 하던 공연장입니다.御景亭태호석으로 만든 인공산으로 만든 퇴수산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그 산위의 정자가 어경정입니다. 황제와 황후는 매년마다 중추절과 음력 9월 9일 중앙절 때 어경정 에 올라 자금성의 경관을 감상했습니다.?賞亭자금성 내 건륭화원 에 위치한 계상정. 건륭황제 는 이곳에서 대신들과 시를 지으며 술잔을 도랑에 띄워 마시며 풍류를 즐겼습니다. 경주의 포석정과 같은 원리입니다.♣ 자금성 형성 시기현재의 자금성의 원형은 원나라 때 형성됩니다.1.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시절, 유병충(劉秉忠, 그는 원래 도사였다가 나중에 쿠빌라이에 발탁된 쿠빌라이의 1급참모입니다)이 카라코룸에서 북경으로 천도할 것을 건의하고 쿠빌라이가 이를 받아들입니다. 유병충은 북경성을 건설합니다. 이 때 곽수경(郭守敬)이라는 걸출한 과학자에게 북경성의 물(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합니다. 곽수경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대운하를 북경성 남쪽 바깥까지 연결하도록 하고, 북쪽의 불을 끌어들여 현재의 곤명호(이화원내에 있는 인공호수)에 모았다가 북경시내로 흐르게 만듭니다. 현재 북경의 수리는 모두 곽수경에 의하여 설계된 것이 그대로 이용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