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상사]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제사의 혁명가, 케인즈.《 케인즈의 일생과 사상》'나는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겪은 모든 수고와 어려움에 대하여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인생의 역정에서 나를 계승할 사람에게 나의 칼을 줄 것이고 나의 용기와 기술은 그것들을 얻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질 것이다.'2006280271경상대학 김민진목 차1. 케인즈의 일생1-1). 케인즈의 성장배경1-2). 케인즈의 정치적 성향2. 케인즈와 대공황3. 케인즈의 일반이론3-1).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3-2). 현대 경제학에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의 의의4.케인즈의 주요 저작4-1). 통화개혁론, ≪A Tract on Monetary Reform;1923≫4-2). 자유방임의 종언, ≪The End of Laissez-Faire;1926≫4-3). 화폐론, ≪A Treatise on Money;1930≫4-4).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1936≫-(1). 승수이론-(2). 유동성 선호이론5.맺음말1. 케인즈의 일생1). 케인즈의 성장배경케인즈는 마르크스가 죽은 해인 1883년 6월 5일 조용하고 독가적인 케임브리지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존경받는 경제학자였고 훗날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대학 행정관이 되는 사람이며, 진보적 성향을 지닌 장관의 딸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여학생 중 한 사람이었다. 이 같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케인즈는 상류계급이 누리는 문화적 혜택 속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다.케인즈는 상류층과 중상류층의 자녀들에게 제공되는 전통적인 교육과정을 이수했다. 사립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학교인 이튼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그는 다소 예민한 기질을 지니고 있었고, 운동에는 소질이 없었으나 수학과 고전문학에서는 탁월했다. 그는 클뤼니의 베르나르, 스튜어트 군주의 특성 동방무대의 배우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이튼을 졸업한 후 케인즈는 킹스 칼리지에 진학하게 된다. 그의 천재성은 각종 토론회에서 확연히 드러났는데, 자유주의 클럽, 학생클럽 등의 활동에서 여러 학생들에게 많은 호감을 샀다. 이 때쯤 케인즈는 학내 비밀 결사였던 사도회의 멤버가 될 것을 요청받았다고 한다. 12명 이하의 회원만이 참석 할 수있었던 이 회는 화이트헤드와 같은 철학자와 당시의 쟁쟁한 지성들이 가입되어있는데, 1학년 생의 선발은 거의 전례가 없는 명예였다고 한다. 이후 사도회 멤버들과의 교류는 케인즈의 사상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졸업 후 사도회 멤버 중 케인즈를 비롯 몇몇은 블룸즈베리라는 클럽을 결성해 계속해서 활동하게 되는데 블룸즈베리는 사도회와 마찬가지로 배타적인 엘리트 집단이었다. 신성적인 도덕과 기존체계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이 쏟아졌다.케인즈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이 아닌 수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케인즈는 졸업을 압두고 “나는 내 지성을 탈진시키고 내 감성과 천성을 썩히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졸업시험 후 케인즈는 마샬(Alfred Marshall, 1842-1924)을 만나게 되는데, 마샬이 케인즈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케인즈에게 경제학을 권했다. 그러나 이 때 케인즈의 관심은 학문을 떠나 있었다. 인도청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지만 자유분방했던 그와는 맞지 않았다. 결국 케인즈는 마샬의 권유를 수락, 킹스 칼리지의 강사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1차대전이 터지면서 케인즈의 케임브리지 생활은 마감된다. 그는 재무성 관리로 복직, 전쟁기간 내내 그 곳에서 일했다. 그의 탁월한 업무 처리 능력은 그를 영국 대표로서 파리강화회의에 참가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돌아와 경제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가 남긴 경제학의 유명한 저서들은 대부분이 이 시기에 출판되어졌다. 그 유명한 일반이론도 이시기에 출판되어 진 것 이다. 언제나 학구적이고 실천적이었던 케인즈는 1946년 갑자기 재발한 심장마비 때같은)에 대한 평등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케인즈는 블룸즈베리와 같은 회에 열성적이었던 것처럼 철저한 엘리트주의 의식도 보여준다. 그 자신과 같은 엘리트만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끌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양면성은 그가 내린 영국정당에 대한 평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케인즈는 자유당의 당원이었는데, 보수당에 대해서는 “장래가 없다. 어떤 이상을 만족시키지도 않고 어떤 지적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며, 안전성을 주지도 못하고 우리가 이미 달성한 정도의 문명을 약탈자로부터 보호하지도 못 한다”고 비판했고, 노동당에 대해서는 “노동당은 계급정당인데 노동자계급은 나의 계급이 아니다. 계급전쟁에서 나는 교육받은 부르주아지의 편에 설 것이다”고 말했다. 그가 내린 각 당의 평가는 그 또한 극단적인 평가를 받게 했다. 레닌을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그를 철저한 부르주아라고 비난했고 보수진영으로부터는 공산주의자라는 의혹을 샀다.2. 케인즈와 대공황1930년대 케인즈는 그에게 불멸의 명성과 명예를 가져다 준 경제적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미증유의 초 인플레이션을 겪게 된다. 유럽 각국은 심한 경기 침체에 시달렸다.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는 그날 뉴욕증권가는 붕괴됐고, 400억 달러에 이르는 투자금이 휴지조각으로 변했다. 그 후 4년 동안 이 대공황은 전세계 경제를 휘청거리게 했다. 금융 시장을 위시한 모든 시장은 마비되었다. 미국의 실업률은 2-3%에서 25%(약 1400만)를 웃돌고, 세계 전체의 실업자는 5000만을 육박했다. GDP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미국에서는 약 870억 달러의 국민소득이 약 390억 달러로 떨어졌다). 창고에는 판매되지 않은 상품이 쌓이고, 석유는 바다에 버려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풍요속의 빈곤(poverty in plenty)이라 했다.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이었던 고전학파와 정부 관리들은 이런 대공황의 상황에서 그 어떤 경제적 처들의 기대는 무참히 깨어졌다. 어느 부문에 있어서도 개선될 상황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을 공약으로 세우고, 그 대통령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했다는 것은 자유방임주의의 정치적 패배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새로운 정책과 새로운 이론이 요구될 때 케인즈는 그것을 제공했다. 바로 J.M.케인즈의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1936) 이다.3. 케인즈의 일반이론1). ≪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케인즈의 이론은 1929년 대공황 당시의 주요 경제문제이었던 만성적 실업에 대해 기존의 고전파 이론이 만족스러운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눈에 비친 30년대의 시장경제는 극히 불안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정부가 개입하여 이를 조정해주지 않는다면 위험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식하였다.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구매력부족에 따른 실업과 살업에 기인하는 구매력 약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경기침체를 벗어 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그는 가능한 정부가 직접적으로 재고를 소비해 줄 수 있는 재정정책을 제시 하였다. 고전파 이론에 따르면 임금인하는 생산비의 하락을 통해 고용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만약 실업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노동조합 등의 압력에 의해서 임금을 하락시킬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반면에 케인즈는 임금을 생산비로만 파악하는 이와 같은 개인주의적 방법론은 총체로서의 경제사회를 분석할 수 없다고 보았다. 즉, 개별기업 차원에서 보았을 때 임금 인하는 생산비를 낮춰 고용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기대될 수 있지만 사회 전체 차원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임금소득 하락과 이에 따른 총수요 감소로 인해 오히려 고용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즉, 케인즈에 따르면 공황이 발생하게 되었을 때 실업을 줄이기 위한 방법은 그 이전의 고전학파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임금을 인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임금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케인즈의 이론은 2차 때문이라 분석된다.2). 현대 경제학에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의 의의케인즈의 이론은 제 1차 세계대전은 각국의 정부가 ‘전시통제경제’를 통해 자기 나라의 자원을 최대로 동원함으로써 생산과 고용 그리고 소득을 엄청나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줌음로써 증명되었다. 또한 그의 이론은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온 지침서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 이래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이 급속히 진행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케인즈 이론의 타당성이 도전 받게 되었다. 이는 정부가 비대해지고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경제의 활력이 소멸되는 한편 고임금 정책은 저임금 국가와의 경쟁에서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일반이론’은 고전파 이론과 통합되면서 가격의 경직성을 강조하는 특수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일반이론’은 총체적 방법론의 유용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필독경제서’라고 할 수 있다.4.케인즈의 주요 저작1). 통화개혁론, ≪A Tract on Monetary Reform;1923≫기계적 금본위제 대신 관리통화제도를 주창한 책으로 순수이론서라기 보다는 현실문제에 대한 정책제안적 서적의 성격이 강하다(물론, 화폐이론서로서도 높게 평가받고 있는 저서이다). 케인즈는 이 책에서 이 시대까지만 해도 당연하게 생각 되었던 금본위제도에 대해 강력한 반론과 비판을 제기했다. 그는 국내물가수준과 금 가치의 안정 즉, 환율의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어렵다고 주장했다. 둘 중 한가지만을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온다면 물가수준의 안정을 우선시 해야한다는 것이 케인즈의 생각이었다. 금가치의 안정만을 추구했을 때 화폐구매력의 불안정성(인플레이션 혹은 디플레이션의 발생)이 생기고 이것은 경제에 큰 해약을 끼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불안정성이 끼칠 경제적 해악을 예방하기 위해 그는 금본위 제도로부터 탈피, 경제의 상황에 맞게 융통성있는 통화량의 공급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화폐가치의 보장에 대한 신뢰를 되었다.
슈퍼스타시티와 강남 명품론사고와 표현 소논문2006년 12월 24일고려대학교 경상대학2006280271김민진목 차Ⅰ. 서론Ⅱ. 본론ⅰ. 강남과 도쿄의 부동산 경제의 차이ⅱ. 슈퍼스타 시티론과 강남의 부동산ⅲ. 강남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한 방안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어떤 부동산 대책에도 끄떡하지 않고 계속해서 상승하는 강남을 ‘강남 명품론’이라는 근사한 이름으로 비꼬았다. 명품같이 특수한 수요가 있는 지역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말해 주어진 공급량보다 수요가 과다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다시 말하면, 지어지는 주택에는 한계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특정지역의 선호도가 높아 그 곳으로 진입하려는 수요인구가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현재 우리 부동산 경제가 일본의 버블 경제와 유사하다고 말하는 것에 비해 미국의 슈퍼스타시티들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슈퍼스타시티란 뉴욕, 샌프란시스코, 혹은 시애틀 같이 집값이 미국의 다른 지역보다 비싼 미국판 명품도시들을 말한다. 이런 도시들을 연구하여 나온 이론을 슈퍼스타시티론 이라고 하는데, 이 이론은 미국 특정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할 뿐 하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현재 서울 강남의 집값도 마찬가지다. 강남의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중상류층들은 강남에 살고 싶어 하고 또한 그에 따라 고소득을 보장하는 직업군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강남개발은 도시 개발 규제나 혹은 주택을 건설할 땅 자체가 모자라는 등과 같은 이유로 공급은 팽창하기 힘든 상황까지 왔다. 이것은 강남과 슈퍼스타시티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이에 강남과 도쿄의 부동산 시장의 차이점을 밝히고 슈퍼스타시티들과의 유사성을 부각시켜보고자 한다.Ⅱ. 본론ⅰ. 사람들은 가격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구매 당시 가격보다 되팔 때의 프리미엄을 생각하여 너도 나도 부동산을 산다는 측면에서 강남의 부동산 시장을 일본 도쿄의 버블 경제와 비교하지만 이것은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서울의 인구와 주택 수는 일본의 그것과 상황이 분명히 다르다. 통계자료를 살펴보면 현재 서울은 인구 1000만 명에 232만 채의 주택을 가지고 있지만 과거 도쿄는 인구 850만 명에 350만 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서울은 도쿄보다 인구는 작지만 주택수가 훨씬 적다는 결과를 알 수 있다. 또한 양 도시의 주택 선호도 역시 크게 다르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단독주택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핵가족화와 고층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의식 때문에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나 그 구매 선호도가 훨씬 높다. 특히, 한창 버블 붐이 일고 있을 때의 도쿄의 배경을 살펴보면 일본 금융기관의 공격적 대출 마케팅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전제를 토대로 집값의 120%까지 대출을 감행했다. 이것은 부동산 가격을 약 5년 사이에 무려 400%이상 올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부동산 투기를 관리해야할 정부마저 투기에 가담하면서 그 관리시스템은 전무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것은 버블 경제를 더욱 악화 시켰고 일본에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고통스러운 결과를 남겼다. 일본의 주택 담보 비율이 높아질 수 있었던 이유는 체감경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체감경기가 좋은 만큼 기업들이 주식이나 부동산에서 올리는 시세차익도 컸다. 거짓호황 경제 사이클이 돌아가면서 일본의 주택 담보 비율에서는 계속 버블이 쌓여만 같다. 그러나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의 주택 담보 비율이 1.2배였다는 사실에 반해 우리나라의 주택 담보 대출 비율은 최고 0.6배까지이다.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일본보다는 훨씬 덜 공격적이며 일본 버블 경제를 교훈삼아 현 정부는 여러 가지 부동산 대책을 마련하여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우리의 체감경기는 전혀 좋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기 사이클은 5년 주기로 돌아가는 것이 정석인데 호경기일 때는 제조업 분야에서 3~4%, 불경기에는 1~2%가 성장한다. 문제는 제조업 산업분야에 국민의 80%가 몸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지금 같은 불경기 상황에서는 그 체감의 경기도 더욱 낮아질 수밖에 없다.ⅱ. 슈퍼스타 시티론은 특정 도시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집값 상승률이 지속적으로 높다 라는 사실을 밝혀낸 이론이다. 이 이론을 설계한 조셉 그르코와 토드시나이, 크리스토퍼 메이어 교수는 그 근거로 두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 번째는 이유에 불문하고 그 도시에 살기를 원하는 부자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호하는 슈퍼스타 시티에 살기 위해 높은 진입비용과 임차료 등의 매매가격을 지불 할 능력을 가지고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고소득층이 끊임없이 유입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슈퍼스타 시티에 살기를 원한 이런 고소득층들의 이사 수요는 늘어나지만 건축 규제 등과 같은 법률적인 규제로 주택이 수요에 충족될 만큼 충분히 공급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리하자면 슈퍼스타 시티에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들이 살 수 있는 주택의 공급이 비탄력적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의 상승이 꾸준히 유지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슈퍼스타 시티에 사는 것은 마치 희귀한 사치재를 소유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메이어 교수의 말에서도 잘 나타나있다. 미국의 슈퍼스타시티들과 강남은 여기서 유사성을 보인다. 슈퍼스타시티들은 지난 40년간 집값의 하락이 없다. 이는 그 도시에 살기 원하고, 상승한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상류층들이 지속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슈퍼스타 시티는 사회의 주도층이 진입을 희망하는 가장 인기 있는 도시이며, 한번 전입하면 거의 전출하지 않는다. 시장에서의 가격이 높으면 높을수록 경기가 호황일 때의 인플레이션은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러나 가격이 최고점을 지나 둔화되기 시작하면 시장의 가격 하락 폭 역시 가장 크다고 예측 된다. 그러나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인플레이션의 감소, 즉 불황의 영향으로 가격의 상승폭이 작아지기는 했지만 가격이 하락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강남도 이론에서 제시한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다. 부자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이며 또한 고소득 일자리의 중심지가 바로 강남이다. 또한 강남 역시 도시법상의 규제를 통한 재건축과 건축할 땅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집값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비싸고 계속적인 상승만 있을 뿐 하락하지 않는다는 예측을 내놓을 수 있게 한다.ⅲ. 위에서 다루었던 논의들을 토대로 현재 강남 집값의 정확한 실태를 알아보면 단순히 부동산 문제를 버블로만 생각해 신도시나 분양가 인하로 강남아파트 가격 상승을 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희망사항일 뿐이다. 슈퍼스타 시티와 노말 시티를 도일하게 취급하려는 것은 단순히 행정편의를 위해서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리에 어긋난 해결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부동산 문제의 실질적인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 키우는 일임을 확실하게 알아야한다. 물론 강남의 집값은 슈퍼스타 시티와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주택 수요 가격과 인구통계학적 사이클이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슈퍼스타 시티에 전입하려는 세대 층과 강남에 전입하려는 세대 층이 다르다는 것은 다시 한 번 뒤돌아봐야 할 문제이다. 슈퍼스타 시티에서 기준이 되는 상류층은 청년층보다 은퇴하면 여생을 보내기 위해 머물고 싶은 곳에 따라오는 뭉칫돈이 더 큰 영향력을 미친다. 오히려 청, 장년층의 유입인구가 훨씬 많은 도쿄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을 볼 때 서울은 뉴욕과 도쿄가 혼합된 부동산 경제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느 한 측면만을 보고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 버블로써만 인식되어온 한국 부동산 경제를 똑바로 보게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또한, 부동산 경제 대책 마련의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더 폭넓은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집값의 추가상승이나 버블붕괴나 모두 서민경제에는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는 직격탄과 같다. 그러나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까지 집값이 올라가는 도시에 포함되려는 욕구는 갈수록 커질 것이다. 이와 비례하여 집값 또한 계속해서 상승 할 것이다. 진입장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에 진입하려는 욕구도 커진다. 또한 부동산을 구매했을 때 얼마나 더 높은 가격을 측정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기대심리도 집값이 하락하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다. 이는 좁은 안목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와 특정한 나라와 닮아있다고 그 나라를 쫓는 것보다 더 큰 시선으로 다양한 나라의 부동산 상황과 유사점을 발견하여 좀 더 복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