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나타난 미래 사회지난 2004년, 우리나라에서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다. 당시 이 영화는 가장 많이 흥행했던 영화중에 하나였으며, 이 영화를 본 후에 사람들은 SF의 흥미를 모두 갖춘 영화라고 평하기도 했었다. 그렇다면 SF영화의 흥미란 과연 무엇일까? SF란 Science Fiction을 줄인 말로서, 말 그대로 공상 과학 소설, 즉, SF 영화는 공상 과학 영화를 뜻한다. 공상 과학 영화는 현실세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나 문제를 제시하기도 하지만,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들을 과학적 근거 하에 영화 속에 그려내기도 한다. 당시 ‘아이 로봇’이라는 영화가 바로 미래에 일어날 법한 일들을 묘사한 영화였으며, 사람들 또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물론 미래를 그린 영화라고 해서 그 영화의 주제가 단순히 미래 사회의 모습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실제로 ‘아이 로봇’도 미래 사회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이 하나의 주된 목적으로 묘사되었었다. 그렇게 인간의 미래 사회를 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로봇의 모습은 인간을 위한 로봇이었지만 결국에는 인간이 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현재 사람들은 미래에 로봇이 있다면 인간을 좀 더 편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영화에서도 서두부분에서는 인간을 위해 일하고 인간이 편히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거의 완벽한 존재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중에 로봇은 인간을 위해서 인간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인간을 죽이게 된다. 물론 이 사실은 인간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면 미래 사회의 로봇이 계속적으로 발달한다면 어떤 상황이 올 지 생각해볼 수 있는 한 장면일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닐지라도, 로봇의 지능이 너무 발달하여 인간의 특성과 많이 닮을 경우 인간보다 우월해지려는 경향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즉, 인간이 자신의 안녕만을 추구하다 못해 결국 자신의 화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라는 우 윤리적 문제를 비롯한 많은 문제를 제공하기도 한다. 유전자 공학 기술로 원하는 품종의 재료를 생산하여 얻기도 하지만 GMO 식품이 많은 소비자의 불만을 표출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현재는 동물 복제가 가능해져서 실제로 복제양 돌리가 탄생하는 등, 원숭이, 개 등도 복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 복제라는 문제가 미래 사회에 대두되고 있는데 이러한 인간 복제에 관한 문제도 영화 속에서 많이 다루고 있다. 대표적인 영화로서 ‘아일랜드’가 있는데, 여기서도 역시 미래 사회에 나타날 인간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렇듯, 로봇과 인간 복제와 같은 미래 사회에 나타날 법한 일들을 영화 속에서 최근 많이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이 이로운 것만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미래 사회가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실현된다면 그것이 정말로 이로운지, 아니면 해로운지를 실제 몇몇 영화를 통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미래 사회가 반드시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모습 그대로의 형태로 실현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미래 사회의 모습이 영화 속의 모습을 닮을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고려해 보아야 할 사항이 있다. 영화 속 미래사회란 아직 전개되지 않은 미래 사회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는 그 모습을 추측해서 그려내어지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 사실은 현재 미래 사회를 향해 계획하고 있는 사실을 그려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일부분은 영화를 비롯한 다른 매개체를 통해 드러나는 미래 사회 모습을 우리가 실제로 따라가려고 노력하기도 한다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우리가 영화 속에 드러나는 미래 사회 모습을 본 후에 그 미래 사회의 모습을 잣대로 삼아서 사회를 변화시켜나간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을까? 이것을 좀 더 파악하기 위해서는 영화 속에 드러난 문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은 현실의 인식이다.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읽거나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는실에 관한 문제이다. 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그대로 실제 세계가 이루어진다면 인간의 정체성을 상실할 가능성이 큰 경우가 많다. 실제 영화에서는 인간이 주체가 돼서 전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로봇이나 인간이 아닌 또 다른 정체의 무언가가 주체가 돼서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흔히 그런 경우 인간의 편함이 추구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즉, 로봇과 같은 존재가 인간이 원래 수행해야 할 많은 일들을 대신 수행하고 인간은 부귀영화만을 누리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인간의 역할을 로봇이 대신 하는 것이 되고, 단지 편한 것만을 추구하는 현실세계의 사람들은 그러한 변화가 좋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는 문제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또 하나 영화 속에 드러난 미래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은 인류의 멸망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스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영화중에서 우주, 지구, 또는 인류를 멸망시키거나 파괴시키는 영화가 적지 않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러한 멸망을 그려낸 영화를 보고 그것을 우리의 미래 사회의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핵, 전쟁 등이다. 이러한 사상이 대두되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깊이 자리 잡는다면 다시는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적절한 선에서 영화의 허구성 및 사실성을 구분하고, 그것을 적절히 받아드릴 필요가 있다.이렇게 영화 속에 나타나는 미래 사회 모습의 세 가지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위의 세 가지 문제점은 영화 속에 나타나는 미래 사회 모습이 미래에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가정 하에 제시한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영화 속에 나타나는 미래 사회는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이 사실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과거의 생각이 현재 실현되고 있고 현재의 생각이 미래에고 있을까?첫 번째로 서두 부분에서도 소개했던 아이로봇에 대해서 살펴보자. 아이로봇에서는 미래 사회에 로봇이 인간의 필수품처럼 여기지면서 거의 모든 집에 로봇이 존재한다. 로봇은 계속적으로 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목적 하나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러한 로봇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법칙을 지켜야만 한다.법칙 1. 로봇은 인간을 다치게 해선 안 되며,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이 다치도록 방관해서도 안 된다.법칙 2. 법칙 1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법칙 3. 법칙 1, 2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한다.이것들만을 본다면 로봇이 존재하는 미래 사회는 인간에게 매우 이로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도 결국 로봇이 인간을 죽이게 되는데, 그 이유가 인간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아니라 일부만을 나머지를 위해서 죽이는 것이지만 과연 이것이 미래 사회의 옳은 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몇 년 전에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휴보’라는 로봇을 만들어 선보인 적이 있었다. 휴보는 비록 지능이 매우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약속된 언어를 알아듣고 행동할 줄은 알았다. 비약적인 과학 기술 발전을 하고 있는 현재, 몇 년 후면 충분히 고도 지능의 로봇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 문제 중에 인간 정체성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언제 로봇이 인간을 앞서 나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아이로봇과 같은 영화를 단순히 SF 영화가 지니는 재미만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미래 사회의 문제점과 관련해서 비판적으로 받아드리는 것도 우리의 실제 미래 사회 설계 과정에 있어서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일 것이다.미래 사회에 영향을 미칠 요인 중 또 하나가 유전자 조작이다. 이에 관련된 영화는 많지만 닥터 모로의 DNA, 아일랜드, 그리고 가타카, 이렇게 세 가지 영화를 살펴보도록 하자. 유전자 조작 역시 서두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계속적으실 자체가 위기감을 조성할 뿐이다.이처럼 DNA 조작을 통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영화도 있지만 조금 다른 방향의 영화도 있다. 가타카는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미래 사회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영화에서는 ‘유전자 조작보다도 노력이 더 강하고 값진 것이다’라는 것을 전달해주고 있지만 영화의 내용 중에 유전자 조작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우성 유전자만을 가진 자들이 열성 유전자를 가진 자들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조작을 통해 사람을 태어나게 한다. 물론 미래 사회의 계층 구조가 어떨지는 모르지만 어떤 사회에 알맞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유전자 조작을 한다는 것은 과연 좋은 결과일까? 미래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도 보여주듯이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보다 노력을 하는 것이 미래 발전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또 비슷한 영화중에 아일랜드라는 영화가 있다. 이것은 인간 복제의 폐해를 보여주는 절대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지구상에 일어난 생태적인 재앙으로 인하여 일부만이 살아남은 21세기 중반에 자신들을 지구 종말의 생존자라 믿고 여러 주민들과 함께 부족한 것이 없는 유토피아에서 빈틈없는 통제를 받으며 살고 있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부터 몸 상태를 점검 받고, 먹는 음식과 인간관계까지 격리된 환경 속에서 사는 이들은 모두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에 추첨이 되어 뽑혀 가기를 바라고 있는데 주인공 링컨은 어느 날부터 그곳 생활에 의문을 품게 되고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실제로 링컨을 비롯한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모두 복제된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일랜드로 간다는 것은 자신이 복제되기 전의 원래 사람에게 장기를 주기 위해 죽으러 간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것을 알고 링컨은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이 영화는 실제로 현재 사회에 대두되고 있는 인간 복제의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하고 있다.
역사와 문화민족의 강인함, 삶의 이유-‘아리랑’을 읽고-왜 한국인이 일본인한테 지배받아야 하는가. 외적으로 한국인보다 열등한 일본인이 한국인을 지배하는 것은 왜인 것일까. 서양인 님 웨일즈가 동양에서 한국이 일본에게 지배받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모든 한국 사람들은 한국이 일본 치하에 있었던 그 사실 하나만으로 굴욕감과 치욕을 느낀다. 하지만 서양인들은 실제로 그런 정서보다도 단지 의아해했던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부분이다. 저자, 님 웨일즈가 김산을 만나서 여러 이야기를 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쓴 아리랑을 통해서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님 웨일즈는 우연히 김산을 만나 자신이 바라본 한국이라는 곳을 실제 조선을 위해 운동하는 김산의 입을 통해 자세히 알고 싶었던 것이다. 만약 이 책이 단지 위인전의 성격만 띄고 있다면 조금 더 객관적이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첫 머리말에 김산이 한 이야기를 직접 쓴 것이라는 문구를 본 후 한국의 그 당시 상황의 모습을 김산의 눈을 통해서 본 것을 서술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실제로 김산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글로서 내가 읽으면서 별로 좋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내가 김산의 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느낌을 전달받아 그 자체를 사실로 느끼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러한 그의 관점에 의한 서술은 한 방향으로 치우쳐진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내가 깨닫지 못했었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것 같다.나의 나이는 20살, 만으로 18살이다. 김산은 40세가 되기도 전에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13살, 14살 즈음부터 혁명 활동을 시작하였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시대가 다르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정신과 내가 가지고 있던 또는 지금 가지고 있는 정신은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인가. 김산은 어린 나이로 인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혁명운동을 하여 나라를 구하겠다는 정신 하나만으로 군사학교에서 공부하고 훈련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지금 대한민국 남자들은 20살이 지나면 군대를 가야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군대를 가지 않기 위해 해외로 도피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뇌물을 쓰는 사람도 있다. 물론 나도 곧 있으면 군대를 가야될 지도 모른다. 김산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런 다짐과 결심을 했던 것일까. 그의 강인함과 민족 정신은 나 뿐만이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점이다. 군대의 의무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조국을 멸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의 여러 방면의 정책에 대해서 다 동의하고 무조건 따르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시위를 하거나 교육 정책 같은 것들을 피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산다든지 등의 행동은 옳지 못한 것이다. 이런 점은 김산의 행동에 반하여 질이 낮은 행동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김산의 아름다움과 조국애를 더욱 깊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김산의 투지를 통해서였다. 물론 중국, 만주, 조선 등의 여러 곳에서의 혁명 활동을 통해 그의 투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그가 백사에서 뇌양으로 행군할 때의 그의 정신은 잊을 수가 없다. 물론 옛 삼국 시대, 고려시대, 또는 과거의 조선시대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 그리고 한반도의 많은 장수들의 정신은 매우 뛰어났다. 그러한 것들은 책이나 텔레비전과 같은 것들을 통해서 얻은 것이지만 그들은 심지어 충성심을 가지고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었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김산이 수백명의 사람들과 병을 앓으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몇 십년간 이러한 정신을 가진 자의 사례를 본적이 있는가. 기침이라는 것은 참기 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예전에 폐렴을 걸려본 적이 있어서 기침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김산 뿐만이 아니라 수 백명의 그들이 일부러 기침을 참고 이겨내면서 행군을 했다는 것은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이다. 물론 과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한다. 하지만 그렇게 서술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의 엄청난 민족을 향한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그렇지만 이러한 활동을 한 것만 가지고 본다면 김산이 인간답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하자면, 아무리 그러한 훌륭한 일들만 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인간미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산이 여자 문제로 갈등을 겪었던 일화를 통해서 김산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인격적으로, 인간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는 이러한 문제에서도 굳은 의지를 보여주었었는데, 아무리 자기를 유혹하는 다른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감옥에 같이 갇혔었던 그의 부인을 믿고 끝까지 따라줬던 모습이 그의 모든 일에서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과학과 인간과학의 접근과 새로운 발견의 의미-‘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과학)’을 읽고-과학과 관련된 서적을 읽는 목적이 과연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과학자를 알기 위해서 그 과학자에 관한 책을 찾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과학 이론을 알기 위해서 그 이론을 쉽게 설명해 놓은 책을 찾기도 한다. 이렇게 사람마다 과학을 접근하는 목적에 따라서 찾는 책의 종류도 다르다. 전자의 경우는 그 과학자에 대한 위인전을 읽으면 그에 대한 정보 및 배경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반면 후자의 경우에 가장 접근하기 쉬운 방법은 이론이 쓰여져 있는 과학 교과서를 보는 경우이지만, 너무 어렵거나 따분하다면 그것을 스토리 형태로 풀어놓은 책을 찾아보게 된다. 내가 본 책들 중에서 과학 교과서가 아닌 다른 과학 서적을 보면 대부분이 후자의 경우와 일치한다. 나의 경우는 내 목적이 과학자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과학 서적 몇 권을 찾아서 읽다보니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서적이 대부분 골라졌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기억에 남는 책들은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정재승의 과학콘서트, 그리고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등이다. 물론 이 책들 역시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과학)’이라는 책은 나에게 하여금 과학으로의 새로운 접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가끔 어떤 과학자의 이름을 듣고 그 과학자가 궁금하면 그 과학자에 대해서 인터넷을 통해 조사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완전히, 처음부터 끝까지 과학자들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앞에서 언급한 책들은 어떤 사건이나 이론 등을 중심으로 거기에 관여한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그 사건이나 이론 등을 설명해 간다. 하지만 이 책은 시대에 따른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그 시대에 그 과학자가 발견한 것을 설명하면서 과학자에 대해 좀 더 따분하지 않게 만들어준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은 과학자들에게 있었던 각종 사건이나 일화 등을 재미있게 소개해 주어서 다가가기가 쉬웠던 것이다.누군가 물어볼 수도 있다. “너는 뉴턴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러면, 나 같으면 뉴턴의 운동 법칙에 대해서 설명하고, 부가적으로, 뉴턴은 중력이라는 것을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통해서 발견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 누군가가 나에게 “뉴턴의 성격이나 일화에 대해서 더 아는 것이 있는가?”라고 물어보면, 나는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모르고 있던 뉴턴은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삐뚤어진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뉴턴뿐만이 아니라 다른 과학자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과학 이론보다도 그 과학자들의 숨겨진 이야기 같은 일화를 짤막하게 언급하면서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가령 베살리우스는 고위급 관리가 해부용 사체를 공급해주어서 피의 순환기를 정립했고, 갈릴레오가 경제적으로 압박에 시달렸었다는 등이 그것들이다. 실제로 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러한 과학자들의 부모와의 관계, 경제적 상황 등을 반드시 알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단지 이론만 알고 그 이론을 가지고 응용해서 논문을 쓰거나 새로운 발견을 하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인 존 그리빈 역시 한때 과학을 공부했던 학생이고, 지금은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이기에 그러한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왜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의 발전의 업적을 이룬 과학자들의 그런 배경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려고 한 것일까? 나는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을 더 설명하거나 비판하는 것보다도 그 배경의 중요성에 대한 나의 생각을 좀 더 보태고 싶다.우선, 위대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들은 그들이 진정 천재적 기질만 타고났던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천재적 기질을 가진 자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도 많다. 오히려 그들은 머리가 좋다기 보다도 저자가 말했듯이 우연의 일치이거나 또는 엉뚱했을 수도 있다.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중에 한 명이라도 존재하지 않았거나 그들이 천체에 관해 관심이 없었더라면 갈릴레오는 과연 지동설을 주장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못했을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다. 만약에 하비가 왕실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의사 경력을 쌓을 수 있었을까? 왕실 주치의로서 그러한 의사 경력을 쌓지 못했더라면 그는 ‘피의 순환’이라는 연구를 할 꿈이라도 꾸었을 것인가? 아마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다르게 생각하면 오히려 다른 누군가가 그러한 동등한 상황에 처해 있었더라도 아무것도 발견을 못했을 수도 있고, 더 창의적이고 똑똑했다면 더 훌륭한 것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사회와 사상의식의 존재와 그 기준-‘마음의 진화’를 읽고-철학자들은 어떤 물음에 대해서 항상 명쾌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그 물음에 대해서 이 방향, 저 방향에 대해서 논의를 해보고 한 방향으로 자신의 생각의 무게를 싣기도 하지만 명확한 답안 제시는 발견하기 힘들다. 이전에 읽어본 몇몇 철학자들의 책에서도 그랬듯이,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 역시 그러한 부분에서 난해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부분은 철학자들이 그들의 생각을 나열하는 것이므로 그것보다도 ‘단지 그러한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구나.......’라는 식으로 해석하려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대니얼 데닛이 제시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 몇 가지만을 내 생각과 함께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우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생각할 때 ‘사람’이라고 보이는 존재와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하고, 때때로 자신의 마음을 보여줄 때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누군가는 지적할지도 모른다. 내가 ‘자기 자신이 생각할 때 ‘사람’이라고 보이는 존재’라는 어구를 사용했다. 이것을 가지고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가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결국 누가 되었던 간에 내 자신이 생각할 때 ‘마음’이라는 것을 정의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데닛은 이 ‘마음’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많은 말을 하였다. 우선 제시한 것이 흔히 ‘사람’이라고 말하는 존재를 제외한 나머지 존재들(여기서 말하는 존재(存在)란, 이 세상에 현존(現存)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은 생각을 하는지, 생각을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등이다. 그러면서 제시하고 있는 것이 ‘지향계’라는 것이다. 말 그대로 지향(指向)은 어떤 방향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지향적 자세 역시 정의하는 것마다 다르고, 그 정의하는 것이 그 존재하는 것의 행동이나 다른 여건에 맞는다면 그 존재 역시 생각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 다음으로 물어볼 수 있는 것이, ‘나와 같은 사람은 그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가?’ 이다. 데닛은 이 물음에 대해서 그 존재와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이해하려 할 때 아무리 여러 사람의 이론을 가지고 분석을 해도 직접 경험하고 이해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나는 여기서 내가 직접 겪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나는 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운다. 이 강아지는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개체 중에서 동물에 해당하며 수많은 동물 중에서 한 마리에 해당할 뿐이다. 그보다 덜하지도 더하지도 않는다. 단지 나와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같이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강아지는 마치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다. 물론 혹자는 이 강아지가 나라는 사람과 오랜 기간 보아왔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을 세우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판단된다. 내가 키우는 강아지는 청소기를 매우 많이 싫어한다. 청소기 소리만 나도 쏜살같이 달려와서 강아지에게 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청소기에 짓는다. 그런데 강아지의 인식이라는 것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은, 강아지 앞에서 ‘청소’라는 단어를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이 말해도 먼저 청소기로 달려가서 짓는 것이다. 즉, 강아지가 단지 익숙함이 아닌 ‘단어 인식’이라는 것을 통해서 다른 존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이다. 추가적인 예로서, 이 강아지는 기억력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기억력이라는 것은 결국 그 존재가 지각하고 그 무언가를 지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인간이 말하는 의사소통이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 한 번 강아지에게 고무줄을 당겼다 놓아서 맞춘 적이 있다. 그 후로 고무줄만 사람이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달려드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것을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행동을 인식하고 그에 따라 과거의 기억을 꺼내어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강아지와 사람 사이에는 데닛이 말한 지향계의 조건이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해서 강아지가 아닌 다른 동물, 또는 심지어 식물이 사람이나 강아지처럼 생각을 하고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러한 차이는 ‘뇌’라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뇌도 내가 위에서 정의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존재물(存在物) 중에 하나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을 하고 마음이 있다는 것이 뇌 때문이라고 했는데 혹자는 뇌가 생각을 하고 마음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물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오직 나의 생각으로는 뇌는 단지 과학적 사실로 볼 때 신호를 전달해주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뇌를 통해서 생각을 하고 마음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다음으로 논해볼 가치가 있는 것이 의식의 기준이다. 물론 바로 위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의식의 기준이다. 물론 인간이란 태아 중에서 의식이 있는 것을 말하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자면 태아가 언제 의식을 가지냐는 것에 대한 기준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이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예전에 태아, 수정란 등에 대해서 프로젝트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 피터싱어의 ‘실천 윤리학’이라는 책을 읽고 그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피터싱어 역시 윤리학자, 철학자 이어서 내가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깔끔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것을 의식을 가지느냐 않느냐의 기준으로 정할 때에는 윤리적 배경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 하나만은 사실이다. 데닛은 태아가 15주에서 16주 후면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그 자신만의 생각을 암시하는 내용을 책에 담고 있다. 물론 피터싱어의 책을 보아도 그 비슷한 주장도 있지만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무엇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태아를 인간으로 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실제로 수정란 때부터 인간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18주 후에는 태아가 고통을 느낀다고 보고 그 고통이라는 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서 그 이후를 인간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모든 것들을 태아가 최종적으로 인간으로 태어날 잠재성에 기반을 두고 분석하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이라는 것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을 하지만 그 기준은 여전히 통일시킬 수 없는 것이다.
지나친 욕심과 악의 결과물- 레오폴드왕의 유령 -1890년부터 1910년 사이에 콩고에서 현대의 국제적 스캔들이라고 볼 수 있는 노예무역과 관련된 사건은 벨기에의 왕, 레오폴드 Ⅱ에 의해서 일어났다. 또한 그것을 바라보고 반대한 운동은 어떻게 본다면 이 시대의 초기 인권 운동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다.‘레오폴드왕의 유령’에서는 과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단순히 레오폴드왕의 일생을 그려내는 전기 형태인 것인가? 아니면, 레오폴드왕의 업적? 아니면, 다른 숨은 뜻이 존재하는 것인가? 이 책에서 정말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나의 관점에서는 한 마디로 서술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레오폴드왕의 업적 및 비판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뜻이 숨어있다는 것을 책을 다 읽은 후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제목에 나타나지 않은 이 책에 숨겨진 뜻은 레오폴드 왕만이 아닌 이 책을 같이 써 나가는 주변 인물들의 행동의 자세한 묘사로 인해 알 수 있었다.우선, 중점적으로 레오폴드왕의 부패한 행동을 비판하고 있다. 레오폴드왕은 한 국가가 부강해지거나 국가로서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식민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많은 유럽 국가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에 많은 식민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벨기에의 경우 나라 자체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작을 뿐만이 아니라 식민지를 하나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레오폴드왕은 이 때문에 식민지를 가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무작정 식민지를 가지려 하면 주변 국가에서 승인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위선적인 말과 행동을 통해 독일, 프랑스를 비롯하여 많은 나라를 묵인시켰다. 즉, 그는 타국의 방해 없이 식민지를 보다 쉽게 손에 얻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이 때 왕이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결심한 국가는 아프리카의 콩고이다. 나라의 크기도 벨기에의 수십 배에 달하며, 타국의 관심이 없었던 국가여서 쉽게 식민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무자비한 탐험가로 유명한 스탠리의 도움을 받아서 콩고에 대한 주거, 지리 및 각종 정보를 얻게 되고, 그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콩고에 식민지를 세우게 되었다.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레오폴드 왕을 비판한 것 이외의 다른 이미지 및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만들어준 사람들은 그에게 반대하는 세력들이었다. 모렐, 케이스먼트, 워싱턴 윌리엄스, 셰퍼드 등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레오폴드 왕의 비행(非行)에 대해 비판하고 직접 사회에 그것들을 알리려고 노력한 자들이다. 어떻게 본다면 악이라는 단어를 비추어주는 레오폴드 왕의 사악한 행동에 반하여 선이라는 단어를 비추어주는 것은 바로 왕에 반대하는 그 세력의 운동 및 행동인 것이다.레오폴드 왕의 부패적인 행동을 엿볼 수 있는 좋은 또 다른 사건은 바로 콘래드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콘래드는 폴란드 사람으로서 그가 동경하던 곳을 찾아가고자 했고, 결국 콩고에 가게 되었다. 당시 대다수의 유럽인들은 벨기에의 레오폴드 왕이 지와 덕을 갖추었을 뿐더러 몇 안 되는 훌륭한 왕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것 또한 레오폴드 왕이 콩고를 식민지화 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 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좋은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위장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못된 인식이 박혀있는 것이었다. 결국 콘래드는 직접 콩고를 경험한 후에 레오폴드 왕이 콩고에 식민지적 지배를 통해 벌인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어둠의 심연’이라는 책을 통해서 이 사실을 비판하고 사회적으로 알리게 되었다.모렐의 인권 운동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더 자세히 알아볼 필요성이 있다. 모렐 역시 위에서 말했듯이 레오폴드 왕에 반대하는 자이지만 원래는 그를 신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콩고와의 무역이 이루어지는 배에서 벨기에로는 많은 물자가 공급이 되는 반면에 돌아가는 배에는 대부분이 군수 물품 또는 군인들인 것을 보게 되었다. 그 후 그는 의심을 품게 되었고 결국 레오폴드 왕이 콩고에 행하는 부패를 알게 되었다. 모렐은 ‘서아프리카 통신’이라는 신문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리게 되고 직접 미국 등지를 가서 연설 등을 통해 사람들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모렐은 끝까지 레오폴드와 경계하게 되고 결국 레오폴드의 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이러한 많은 개혁가들의 헌신 및 인권운동뿐만이 아니라 나중에 스탠리도 레오폴드왕의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고 많은 자들이 레오폴드의 부패 행각을 알리려 하다 보니 레오폴드 역시 그것을 막기 위해서 기자들에게 돈을 주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사를 쓰게 한다는 등 더욱 악한 행동을 저지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각종 국제적 연합을 만들어서 형식상 국제적 연합일 뿐,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서 자기 자신이 그 연합의 장으로서 자신이 하고 싶고, 자신에게 유리한 일을 벌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점점 더 심화된 레오폴드의 행각은 결국 더욱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그렇다면 과연 사람들에게 잘못된 사실을 알리고 콩고에는 식민지를 세워 사악한 결과를 낳게 한 레오폴드는 어떤 행위를 했던 것인가? 결국 사건의 피크는 노예무역을 비롯하여 고무 생산을 통한 노예 노동 및 그것을 통한 착취 행위이었던 것이다. 처음에 레오폴드는 단순히 흑인 노예들을 이용해서 무역을 하기도 하고, 그들에게서 필요한 이것 저것을 빼앗었었지만, 당시에 그는 그러한 행위를 할 타당한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특히 콩고에서 고무나무가 잘 자란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 그는 고무 생산을 이용해서 심한 착취 행각을 저질렀다. 이 때 고무를 이용해서 타이어를 만들면 좋다는 것을 알고 고무 생산을 더욱 철저히 강화시켰으며, 여자를 이용해서 고무를 지정된 양 만큼 가져와야만 여자를 되돌려 주는 등의 생각하기도 힘든 저질스러운 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벨기에에서 넘어온 많은 사람들은 콩고에서 장교를 비롯한 고위 관리 등의 직업을 갖게 되었고 수도 없이 많은 심한 착취를 하였다. 그런데 더욱 문제가 되었던 것은 콩고에 원래부터 살았던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벨기에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시 여기고 그것들이 잘못된 행동인 것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실태는 레오폴드가 벨기에의 왕위에 있을 때로 끝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앙금이 되어버렸다. 결국에 레오폴드가 죽은 후에 콩고에 대한 식민 활동은 많이 수그러들었으며, 콩고의 많은 고위 관리들 역시 콩고 사람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전의 생활 패턴이 좋지 않은 패러다임처럼 작용하여 레오폴드의 간섭이 사라진 후에도 콩고의 흑인들끼리 계속적인 착취를 비롯한 질서 없는 행위가 이루어져왔다는 것이 레오폴드가 남겨주고 간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