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 론1. 포석정이란?Ⅱ. 본 론1. 포석정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2. 유상곡수3. 포석정의 연회장설4. 포석정의 위치로 본 포석정의 역할5. ‘포석’의 진정한 의미Ⅲ. 결 론1. 왕들의 놀이터라는 견해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참고자료Ⅰ. 서 론포석정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경애왕이 이 곳에서 신하들과 놀다가 후백제의 견훤에게 기습을 받았다는 설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면 정말 포석정이 신라의 운명을 재촉한 놀이를 하였던 곳으로 각인되어 있는 현재, 이 사실을 확인해보기 전에 포석정이 어떠한 곳인지 살펴보기로 하자.1. 포석정이란?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호로 지정된 이 포석정은 현재 경주 남산 서쪽 계곡의 포석계의 계곡가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배거에 물을 채워 술잔을 띄워 한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그 유배거의 형태는 굴곡진 타원형으로 긴 지름이 6.53m, 짧은 지름이 4.76m이며 수로의 너비는 약 30cm, 깊이는 20cm이며 타원형의 수로의 길이는 약 22m에 이른다. 이 유배거에 물을 담아 술잔을 띄워 본 결과 술잔의 크기에 따라 흐르는 속도가 다르고, 술잔 속에 술을 담은 양에 따라 다르며, 절묘한 수로의 굴곡진 곳에서 물이 돌면서 흐르기 때문에 타원형의 수로를 술잔이 흐르는 시간은 약 10여 분이 걸리었다. 이 시간이면 오언시(五言詩)나 칠언시(七言詩) 한 수는 쓸 수 있는 것이다.이 포석정에서 경애왕이 놀이를 하다 갑자기 들이닥친 후백제의 견훤에게 잡혀 죽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유배거의 머리 쪽에 있는 큰 느티나무 뿌리가 물이 들어오는 입구 쪽을 밀어 올려서 높아진 상태이며 흘러나가는 배수구 쪽은 포석계의 개울에 유실되면서 급속히 낮아져 있다. 포석정지의 전복같이 된 유배거는 그간에 보수하여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Ⅱ. 본 론1. 포석정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이 포석정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2회 기록되어 있다.우선 첫 번째 기록으로는 제 49 헌강왕(재위 876-886)의 기록이다. 이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신하들과 향연을 베풀었다는 것이다.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더니 남산의 신이 왕 앞에 나와 춤을 추었다. 좌우 신하들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왕만은 홀로 이것을 보았다. 신이 앞에 나타나 춤을 추었으니 왕 자신이 춤을 추어 그 형상을 보였다. 예부터 지금까지 나라 사람들이 이 춤을 일러 어무상심, 또는 어무산신이라고 전한다고 한다.두 번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실로, 신라 제 55 경애왕이 연회를 베풀다가 후백제 견훤에게 자결을 강요당한 비운의 현장으로 나타나 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견훤이 신라를 침범하여 고을부까지 이르렀다. 경애왕은 고려 태조에게 구원을 청해 태조는 군사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게 했지만 미처 이르기 전에 견훤이 불시에 서울로 쳐들어 왔다. 이때 경애왕은 비빈 종척들과 포석정에서 잔치를 베풀고 즐겁게 놀고 있었다. 적병이 오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갑자기 닥치자 후궁에 숨지만 비첩들과 왕비는 그들에게 욕보였으며 경애왕은 억지로 자결해 죽게 했다. 이처럼 [삼국유사]의 기록은 천년 신라의 종말을 포석정에서 내리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여러 시인 묵객들의 글에도 마치 포석정 때문에 신라가 망한 것처럼 되어 있다.2. 유상곡수포석정에서 어떤 일이 행해지고 있었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실하게 알아보기에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유적의 형태로 보아 유상곡수가 행해졌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이에 일단 유상곡수에 대하여 알아보자.유상곡수의 시작은 중국에서 부터였다. 왕희지 외 41명이 절강성 남서 회계산에 모여 개울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결제사를 올리고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읊는 놀이를 하였다. 이후 중국에서는 유배거를 만들었고 우리나라에도 조선시대의 창덕궁 옥류천에 소요암을 만들었고 일본의 경우에도 곡수연을 베푼 기록이 남아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신라시대에도 유상곡수연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고 그 유적이 바로 포석정이라 짐작된다. 따라서 포석정에서는 유상곡수의 연회도 열렸지만 단순히 연회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고 특별한 의례를 행하는 성스런 장소로 여겨진다.3. 포석정의 연회장설[삼국유사]에 나타난 기사만을 가지고 보면 포석정은 임금을 비롯한 신하들이 술잔치를 벌이는 유상곡수 장소에 불과하다. 이렇게 포석정이라는 곳이 단순히 술잔치를 벌이는 곳이라고 한다면 하필 나라를 지키는 병사들이 머물고 곡식과 무기를 저장해 둔 남산신성 바로 밑에 있을까 하는 점은 의아하다. 이에 대해 포석정이 단순한 술잔치를 벌이는 곳이라는 종전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는 견해들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첫째, 곡수연은 몸에 배인 부정을 냇물로 씻는 일종의 제사에 부수된 계음이 놀이의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둘째, 이 계욕은 기원전 수백 년 전 중국에서 시작된 연중행사의 하나로서 음력 3월 3일에 실시되었다. 셋째, 계욕은 일종의 제사로 흥을 돋우기 위해 잔을 물에 띄운 것이 유상곡수의 형태로 발전한 것이다. 넷째, 포석정을 향해 흐르는 윤을곡의 계류 속 암반에 미역감기에 알맞은 크기로 인위적인 웅덩이가 조성된 것이 남아있어 이것을 보면 곡수연에 앞서서 계욕도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섯째, 중국의 곡수연지는 그 거의 모두가 석거각 유배정, 유상정 등 단적으로 곡수연을 가리키는 정자명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유점이라고 하는 곡수연지가 현존한다. 이 외에도 많은 견해들이 있으며 특히나 경애왕이 연회를 베푸려고 포석정을 찾은 시기는 음력 11월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 12월이었을 텐데 그 때에 유상곡수가 가능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날씨가 추워 불을 피웠다 하더라도 굽이치는 물이 얼었을 것이고, 그러면 술잔이 제대로 돌았을까? 어찌되었건 겨울에 술잔치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곤란한 일일 것이다.4. 포석정의 위치로 본 포석정의 역할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포석정은 남산신성 바로 밑에 있다. 이 포석정이 있는 남산과 그 주변을 살펴보면, 먼저 신라의 첫 임금인 박혁거세의 탄생지로 알려진 나정이 500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첫 궁궐터로 알려진 창림 사지도 이 근처에 있다. 포석정에서 1km 거리에는 오릉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산은 불교가 수용되면서 많은 불교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또 '유포석정'에서 '유'의 해석을 놀았다가 아니라 갔다는 의미로 새기는 것이다. [삼국유사]가 고려시대의 기록으로 신라 멸망의 당위성과 새 왕조인 고려의 정당성을 부각시킨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왕들의 놀이터로 임해전과 안압지가 있었다는 것도 포석정이 놀이터였다는 것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것이다.신라시대에 이루어진 팔관회에 대해서 살펴보면 삼국유사의 헌강왕 관련 대목을 살펴보면 왕권의 안정과 특권을 보장해준다고 여겨 왕이 직접 참여하는 제사가 열렸는데 포석정에서 팔관회가 열렸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신라의 팔관회는 토속신앙과 불교의식이 결합된 것으로 호국 제사의 성격의 띠고 있다. 기록을 보면 팔관회는 신라 때나 궁예시절이나 고려 때 모두 11월에 이루어졌다. 경애왕이 포석정을 찾은 것도 음력 11월이다.또한 동경통지에 보면 기원사와 실제사라는 절 사이에 포석정이 있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삼국사기는 팔관회가 외사에서 열렸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포석정이 외사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근래에 포석정 동쪽과 서쪽에서 절터가 확인되었다. 또 포석정 바로 옆 개울에서 몸을 씻는 계욕 장소로 추정되는 웅덩이가 확인된 것으로 미루어 계욕 의식이 있었던 장소로 추정할 수 있다. 계욕은 제왕에서 부터 뭇 백성에 이르기까지 흐르는 물에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졌으며 포석정 또한 방탕한 놀이터가 아니라 성스러운 의식이 있었던 곳이라 할 수 있다.5. ‘포석’의 진정한 의미최근에 700년경 신라의 학자인 김대문이 쓴 [화랑세기] 필사본이 처음 공개되었다. [화랑세기]에는 포석정을 포석사 즉 사당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1998년 포석정 인근 발굴지에서 건물터와 많은 토기와 조각들이 나왔는데 그중에 ‘砲石’이라고 새겨진 명문 기와도 나왔다. 이 ‘포석’이라는 명문기와를 찾아냄으로써 포석정 주변에 확실히 건물이 있었고 그 규모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포석정을 9세기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해 왔지만 이 명문 기와가 7세기경 유물들과 함께 출토되면서 같은 시기에 써진 화랑세기 필사본의 사료적 가치는 한층 높게 되었다.포석정이 사당이었을 가능성은 바로 옆에서도 확인되는데, 경주사람들은 지금도 이곳에서 마을과 개인의 안녕을 비는 동제와 당제를 지낸다. 제사를 지낸 흔적도 곳곳에 남아있고, 제단에 소원을 빌었던 성혈자국도 남아있다. 이것은 포석정에 남산신이 나타났다는 얘기가 민속신앙으로 계승되고 있는 셈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여러 가지 주변상황을 정리해보면 포석정이 놀이터가 아니라 호국제사를 지내는 성스러운 공간이라는 해석들이 제기되고,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소속 발견되면서 포석정은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아직도 많은 비밀을 간직한 포석정. 아직 포석정 근처의 일부 건물터만 발굴됐지만 이 일대의 발굴이 좀더 진행되고, 그 실체가 드러날 때 우리는 비로소 포석정의 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목 차1) 들어가기2) 내 용- 1. 합리론적 철학의 실체① 데카르트② 스피노자③ 라이프니쯔- 2. 경험론적 철학의 실체① 로크② 버클리③ 흄1) 들어가기경험론이란, 영국에서 발달한 견해로, 인간의 외부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이 감각적인 경험에서 시작한다는 견해이다. 반면에 합리론은, 유럽에서 발달한 견해로, 경험이 인간을 기만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같은 온도의 샘물이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차갑게 느껴지듯이, 경험은 지식의 원천으로 적당하지 않고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사용해야만 외부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견해이다.합리론적 철학에는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라이프니쯔가 있으며 경험론적 철학에는 로크, 버클리, 흄 등이 속한다. 이 철학자들이 말하는 실체에 대해 알아보자.2) 내 용1. 유럽대륙을 중심으로 한 합리론적 철학- 합리론자들은 실재 자체가 논리구조를 갖고 있으며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진리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지식은 감각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는 경험론에 맞서 이성이 감각인식의 한계를 초월하여 진리를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합리론은 경험론과 모든 비합리주의에 대립한다.- 세계는 합리적으로 조직된 하나의 전체이며, 세계의 구성부분들은 논리적 필연성으로 연계되어 있어서 인식할 수 있다. 결국 합리론자들에 의하면 논리학·수학 등의 지식은 정신이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식이다. 이러한 선천적 지식은 어떠한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필연적·보편적이다. 인간 정신이 경험에 생득적인 범주와 형식을 부여한다고 한 비판철학은 인식론적 합리론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이성을 지식의 중요한 근원 및 검증 수단으로 보는 철학 견해.→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쯔① 데카르트 : 이성주의 (=심신이원론)- 근세 최초의 합리론자. 데카르트의 방법론을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쯔가 계승.-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철학의 제 1원리로 삼았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사회적 지위도 이름도 육체도 아닌 ‘생각하는 것’ 자체, 즉 사유(思惟)의 존재일 뿐 이다 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 한다’라는 자신의 힘만으로 진리를 탐구할 수 있다고 한 ‘이성의 독립선언’이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정신)와 육체(물질)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정신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 물체는 스스로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즉 정신과 물체는 모두 실체이지만 정신의 속성(본질)은 사유하는 것이고 물체의 속성은 연장(延長)하는 것(장소를 취하는 것)이므로 이들은 전혀 차원이 다르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물질세계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정신은 자유라는 것인데,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 관찰자와 관찰대상으로 나누는 이러한 이분법적 접근이 세계를 바라보는 서구인의 보편적인 인식이 되었다.② 스피노자- 스피노자의 철학적 작업들은 "최고의 선"을 얻으려는 노력.'영원한 것(최고선)'이 무엇인가란 물음은 형이상학적 관조에 의해 획득 : 형이상학적 관조의 방법 = 인식론 (→여기에서 시작)- 유일실체로서의 '신' 또는 '자연'- 무엇이 존재하는가? - 존재하는 것은 '실체'거나 '속성'이거나 '양태'이다.존재하는 것이 있는데, 그렇다면 그 근원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그 근원은 그 자신을 넘어서 어떤 것도 지시하지 않는다. 그것이 근원인 한 그것은 다른 근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실체" = 자기 원인. 자기가 자기 자신의 원천인 근거(causa sui)실체란 자기 자신 안에 있으면서 자신을 통하여 파악되는 것, 즉 그것의 개념이 그것에서 형성되어져야 할, 다른 사물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실체가 비존재다 ⇒ 자기 모순실체가 자기가 원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 본질이 자기 안에 존재를 포함한다는 말.- 속성지성이 실체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사유와 연장 - 인간이 실체에 대해 파악할 수 있는 속성.양상 : 실체의 변용, 타자 안에 있으면서 타자를 통해 파악되는 것.ex) '이 꽃', '저 나무', 개별적 사고 방식(분노, 기쁨).- 데카르트 비판데카르트가 '정신'과 '물체'를 실체라고 했을 때 이는 자신의 정의를 이탈하는 것이다.실체 - 자족하는 것은 한 밖에 없다.동일한 속성의 두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 - 상호제약을 하므로.그러므로 서로 다른 속성의 두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 - 상호 부정을 하므로.∴ 실체는 오직 하나이고,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실체" = "신" = "자연" : 그 의미들.신이란 절대적으로 무한하게 존재하는 것,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한 속성으 로 이루어진 존재.③ 라이프니쯔모나드(Monad) - 모나드의 본질 규정.(실체는 단순하다 = 나누어지지 않는다.)- 모나드는 연장이 없다.물체는 단자들의 집적물이다. 모나드는 물체를 성립시키며, 그 기초이고 실체이다. 자연 물의 "참된 원자"이다.- 원자론자들과 다름 : 원자는 물질이기 때문에 가분적이나, 단자는 최소의 물질적 단위가 아니다. 단순 실체로의 단자는 물체의 분할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최소 단위가 아니다.- 데카르트 비판 : 연장적 실체도 실체라 부르고, 길이, 무게, 위치, 가분성을 제시했으나, 이는 데카르트가 "실체"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실체는 절대가분적일 수 없기 때문.)- 물체의 본성은 '연장성'이 아니라 '힘'이다.- 데카르트와 다른 점(당시 물리학과 다른 점)모나드는 '형이상학적 점'이다.수학적 점처럼 연장성이 없고, 물리적 점처럼 실질적이다.(힘이 있다.)- 모나드는 창이 없다.모나드는 실체로서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자족성을 가진다. 모든 모나드는 근원적 단자(신)에만 의존하지, 서로 의존하지는 않는다.- 유일신의 입증1) 모든 존재자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2)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자들에게는 동일한 원리가 있어야 하며, 이 존재자들은 모두 우연적 존재들이다.3) 이 우연적 존재들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 근거가 있어야 한다.4) 그 최고 근거는 우연적 존재들 밖에 있어야 한다.5) 그것이 바로 "신"이다.- 신의 본질이 근원적 실체인 신은 모든 것을 다 포섭하며, 이것에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신은 모든 가능한 실질성을 포함한다. 신은 최고의 실질 존재이다.신은 어떤 제한, 규정, 결여가 없다.2. 영국의 경험론적 철학- 인식론에 있어서 지식의 기원을 경험에 두는 학설을 말한다.역사적으로는 고대의 소피스트, 키레네 학파, 스토아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등과 중세기의 유명론 등은 경험론적이라고 볼 수 있으나, 합리론에 대립할 수 있는 확고한 지반은 18세기에 이르러서 확립되었다.- 선구를 이룬 것은 17세기 후반의 로크(Ldcke, J.). 그의 사상은 영국의 버클리(Berkeley, G.)와 흄(Hume, D.)에 의하여 발전되어 영국의 경험론을 형성하였다.- 인식˙지식의 근원을 오직 경험에서만 찾는 철학적 입장 및 경향. 따라서 초경험적 존재나 선천적인 능력보다 감각과 내성(內省)을 통하여 얻는 구체적인 사실을 중시하여, 전자도 후자에 의해 설명된다는 사고방식이며, 지식의 근원을 이성에서 찾는 이성론˙합리론과 대립된다.→ 로크, 버클리, 흄① 로크 : 형이상학적 불가지론- 로크는 본유관념에 근거한 이성적 추론만으로 세계에 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합리론에 반대했다. 세계에 대한 인식은 감각경험에서 시작되며 자신에 대한 인식은 반성에서 시작된다. 감각경험과 반성은 그 자체가 인식은 아니지만 정신에 인식의 소재를 제공한다. 이 소재가 관념이다. 관념은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물리적 대상을 표상한다는 뜻에서 정신 앞에 있다.- 감각경험이나 반성을 통해 인식되는 관념은 모두 단순관념이다. 단순관념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한 개의 감각으로부터 취득하는 색, 소리 등의 관념 둘째, 두개 이상의 감각으로부터 동시에 취득하는 공간, 운동 등의 관념 셋째, 반성에 의해서만 취득하는 분별, 믿음 등의 관념 넷째, 감각과 반성 모두로부터 취득하는 쾌락, 존재 등의 관념들이다.- 단순관념들은 비교되고 통합되어 복합관념을 형성한다. 복합관념들은 양태와 관계 그리고 실체나 물체 등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이 중에서 실체나 물체는 사물들 자체로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실체에 부착된 우연성들이나 성질들만을 인식할 뿐 실체 자체는 불가해하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형이상학적 불가지론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