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포석정은 왕들의 놀이터였나?
- 최초 등록일
- 2007.06.15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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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모두들 알고 있는 역사. 신라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놀다가 후백제 견훤의 기습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것. 그럼으로써 포석정은 신라 멸망의 상징으로 각인되어 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며 정확한 역사일까?
목차
I. 서 론
1. 포석정이란?
Ⅱ. 본 론
1. 포석정에 대한 [삼국유사]의 기록
2. 유상곡수
3. 포석정의 연회장설
4. 포석정의 위치로 본 포석정의 역할
5. ‘포석’의 진정한 의미
Ⅲ. 결 론
1. 왕들의 놀이터라는 견해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 참고자료
본문내용
Ⅰ. 서 론
포석정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경애왕이 이 곳에서 신하들과 놀다가 후백제의 견훤에게 기습을 받았다는 설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다면 정말 포석정이 신라의 운명을 재촉한 놀이를 하였던 곳으로 각인되어 있는 현재, 이 사실을 확인해보기 전에 포석정이 어떠한 곳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1. 포석정이란?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호로 지정된 이 포석정은 현재 경주 남산 서쪽 계곡의 포석계의 계곡가에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배거에 물을 채워 술잔을 띄워 한시를 지으며 술을 마시는 곳이었다. 그 유배거의 형태는 굴곡진 타원형으로 긴 지름이 6.53m, 짧은 지름이 4.76m이며 수로의 너비는 약 30cm, 깊이는 20cm이며 타원형의 수로의 길이는 약 22m에 이른다.
참고 자료
- 네이버 백과사전
- “오마이뉴스” - 2005.08.29 (월) 오전 9:00 기사
- [원작 KBS 역사 스페셜] 역사스페셜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