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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음의정수그리스도의십자가를 읽고 요약 및 평가 평가A+최고예요
    인사말(1:1-5)갈라디아서는 보내는 자의 이름, 수신자, 인사말로 시작하는 바울 당대의 서신 형식을 따르고 있다(1-3절). 하지만 바울은 당시의 관습적인 서신 형식을 따르기는 하지만 자신의 사도직을 열정적으로 변호하는 내용을 인사말에 포함시켰다. 보통 바울서신의 인사말에서 독자들에 대한 감사와 기도를 먼저 언급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울은 처음부터 자신의 사도직의 신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갈라디아 교인들 중에는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의 선동에 영향을 받아 그의 사도직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시고 그에게 복음 전할 것을 위임하셨다.특별히 바울이 이방인들 가운데서(2:2) 전파하는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을 전파하는 메시지다(4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인류를 구원하는 구원사건으로 세 가지 특징을 가졌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계획된 사건이었다. 둘째, 그것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어준 사건이다. 셋째, 그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자들을 이 악한 세대에서 건져난 사건이었다.바울은 악한 현세대에서 종노릇 하는 사람들을 건져낸 그리스도에게 영광이 세세토록 있도록 찬양한다. 결론적으로 바울의 인사말은 두 가지 주된 이슈들을 다룬다. 하나는 바울의 사도직의 신적기원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 복음의 구원론적 성격이다. 따라서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은 정당하다.제1부 바울의 신학적 변증Ⅰ. 갈라디아 교회의 위기적 상황(1:6-10)바울은 간단한 인사말을 통해 자신의 사도적 신적 기원을 강조한 뒤 곧바로 갈라디아 교인들이 직면한 위기의 사실들을 지적하는 데로 향한다. 그는 단순히 갈라디아 교인들이 직면한 위기의 상황을 제시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유대주의 선동꾼들의 그릇된 주장을 성급하게 받아들인 갈라디아인들에 대한 강한 논조로 자신의 실의 백성이 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이었다.2.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한 바울의 권위(1:18-2:10)본 단락은 이방인을 위한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이 예루살렘에 방문했을 때 그곳의 사도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을 해설한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이 결코 예루살렘 사도들에게 의존해 있지 않고 그들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자신의 복음과 사도직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 의해도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그의 실질적인 답변은 소위 자서전적인 부분이라고 불리는 1:11-2:10에 담겨 있다. 특히 1:18-2:10은 다메섹 사건 이후에 두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한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데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보고하고(1:18-20), 둘째는 그의 수리아와 길리기아 방문을 보도하며(1:21-24), 셋째는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하여 그곳 사도들과 만나 합의한 내용을 보도한다(2:1-10). 이 세 단락은 모두 '그 후에'(επειτα)란 술어와 함께 시작되기 때문에 바울의 여정이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첫 번째 단락은 바울의 첫 예루살렘 방문에 대해 서술한다. 결과적으로 바울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은 단지 그곳 사도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 짧은 기간 동안 머물었던 극히 사적인 방문이었기 때문에, 그가 예루살렘 사도들을 통해서 복음 핵심내용을 배우거나 넘겨받았다는 유대주의 논적들의 주장은 그릇된 것이다.두 번째 단락은 바울의 수리아와 길리기아 여행을 다룬다. 결론적으로 바울이 수리아-길리기아 여행을 이야기한 것은 그가 핍박을 피해 급히 다소로 떠났기 때문에 유대교회들과 친분을 맺고 그들에게 가서 그의 복음의 핵심적 내용을 배울 만한 기회가 없었음을 지적하기 위한 목적 때문일 것이다.세 번째 단락은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을 묘사한다. 이 부분도 바울의 복음과 사도직이 예루살렘 사도들을 통해서 받지 않고 고자 했던 유대인들의 시대착오적 오류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둘째, 바울의 이신칭의 교훈은 그렇다면 1세기적 상황에서 사회 변혁적 성격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옛 시대의 율법의 행위들은 언약백성으로서 유대인의 독특한 신분과 행위를 나타내는 행위들이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도래한 새 시대의 그것들은 기껏해야 표면적 유대인들의 인간적 삶의 유형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하지만 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을 말하는 문맥에서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니라"(갈 3:28)고 선언한다. 이것은 이신칭의 복음이 당대의 종교사회에서 인간적인 전통 가치와 사상을 뒤엎고 믿음이라는 공통근거 위에서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한 가족으로 결속시키는 사회 변혁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셋째, 안디옥 사건은 '신분'과 '행위'의 문제가 둘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제기된 본질적인 질문은 이방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하는 그들의 '신분'(status)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신칭의 복음은 사람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만 말하지 않고, 그가 이제 하나님 백성답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요구한다. 그렇다면 신분과 행위는 두 개의 다른 원리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다.2. 재정의된 아브라함의 가족(3:1-4:31)첫 번째 단락에서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의 성령경험에 호소하여 그들의 새로운 신분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인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이 성령을 받을 때 가졌던 믿음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다. 십자가 복음에 대한 믿음만이 성령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조건이다.갈라디아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선물을 경험하고 아브라함의 참 가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복음을 듣고 믿을 때였다(3,5절). 다시 말해서 그들은 처음 회심 때시되었고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 속에서 성취된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사는 율법을 통한 구원의 원리가 적용되어 오다가 이제 믿음을 통한 구원의 원리로 대체된 것이 아니다.둘째, 만일 율법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원사의 원리가 아니었다면, 율법은 과연 무엇인가? 율법은 약속에 덧붙여진 것이나 그것을 보충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이던 관점에서 율법과 약속은 상호 모순된 구원사의 두 경쟁원리가 아니다. 그것들은 통일된 하나님의 구원계획 속에서 서로 다른 차원 또는 영역에서 작용할 뿐이다.셋째, 죄를 알게 하고 정죄하는 율법의 기능은 '초등교사'(πκδαγωγο?)의 역할과 중첩되어 묘사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바울 당대의 '파이다고스'는 대부분 주인의 아들을 위협하고 때리거나 그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바울이 여기서 지적하려고 한 것은 감독하고 통제하며 자유를 제한하는 율법의 기능, 율법의 그러한 감독과 통제를 받는 자의 열등한 신분, 그리고 궁극적으로 노예화시키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후에 몽학선생 역할을 했던 율법의 기능은 폐지되었다.결과적으로 루터주의와 개혁주의는 바울의 율법관의 전체적 측면을 밝혀내지 못하고 특정한 한 측면을 부각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율법이 구원사 중간에 끼어들어온 것은 죄를 깨닫게 하고 범죄를 많아지게 하며 죄를 정죄하는 부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율법의 이 부정적 기능은 그리스도 안에서 무효화되고 폐지되었다.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율법의 이러한 부정적 기능을 그리스도 안에서 무효화시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십자가 사건의 역할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율법이 하나님의 의롭고 거룩한 계시로서 긍정적인 자리를 찾을 수 있는 자리는 오직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 있을 때뿐이다.5)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새로운 신분(3:26-29)본 단락에서 바울은 앞서 주장한 것들에 기초해서 결론짓는 형식으로 세 가지를 해설한다. 첫째, 바울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바울이 본 부분에서 말하는 요점은 두 상반된 개념들을 활용한 다음과 같은 대칭구조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하갈/사라, 종/자유자, 시내산 언약/아브라함 언약(=새 언약), 현재의 예루살렘/위에 있는 예루살렘, 육신적 출생/약속과 성령을 통한 출생, 핍박을 받는 자, 쫓겨난 자/상속자.이런 대칭구조를 통해서 유대주의자들의 주장과 바울 사도의 주장은 서로 상반되는 언약신학의 특징을 지녔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이런 식의 신학적 주장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브라함 이야기를 혈통 중심적으로 협소하게 해석하려는 유대주의자들의 시도를 거부하고 아브라함 가족의 참된 성격과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것이다. 사라-하갈 이야기에 대한 바울의 알레고리적 해석은 할례와 율법을 기독교 신앙에 반드시 덧붙여져야 할 필수조건으로 삼음으로써 여전히 유대교 중심주의를 붙들려고 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선동을 무너뜨리는 데 관심과 초점을 두고 있다.3. 자유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5:1-12)바울 서신에서는 교리적 교훈 부분이 끝난 뒤에 흔히 윤리적 권면 부분이 뒤따른다. 얼핏 보기에 교리적 교훈 부분과 윤리적 권면 부분은 서로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윤리적 권면은 교리적 교훈에 기초하고 거기에서 추론된 것이다. 본 단락 처음부터 '자유'의 주제가 부각된다.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는 추상적인 선물이 아니고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하는 유대주의자들과의 논쟁적 상황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바울은 그의 갈라디아 독자들이 만일 할례를 받고자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이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할례 받은 각 사람은 누구나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3절). 그러면 할례를 받게 되면 왜 그리스도께서 갈라디아 신자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가?오히려 새 시대에는 할례나 무할례의 옛 구분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직 성령 안에서 믿음, 소망, 사랑으로 특징화되는 새 존재만이 중요하다. 그가 곧 '새로운 피조물'이다(6:15). 칭의의다.
    독후감/창작| 2010.09.16| 10페이지| 1,500원| 조회(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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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크로 해석과 설교
    **매크로 해석과 설교 레포트**총회신학원 2-7 2007222045이 범준1. 산상수훈의 본문을 단락별로 나누고 각 단락에 대해 요약된 제목을 쓰라.15:1-2말씀의 상황105:43:48원수를 사랑하라187:1-6판단하지 말라25:3-12팔복(구복)116:1-4은밀한 구제197:7-11구하라35:13-16소금과 빛126:5-8은밀한 기도7:12너희에게 해주길 바라는 대로 해주라45:17-20율법의 성취136:6-13주기도문2055:21:26살인146:14-15용서217:13-14좁은 문65:27-30간음156:16-18은밀한 금식227:15-20열매로 안다75:31-32이혼166:19-24하늘에 쌓는 재물237:21-23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85:33-37맹세176:25-34근심하지 말고 그의 나라를 구하라247:24-27반석 위에 지은 집95:38-42잘 대해 주라257:28-29말씀의 반응2. 산상수훈에서 단락 5 - 10을 구분하고 이 단락들이 어떻게 묶여져 있는지 관계도를 그리고 설명하라5. 5:21:26 살인 A6. 5:27-30 간음 -7. 5:31-32 이혼 -8. 5:33-37 맹세 -9. 5:38-42 잘 대해 주라 -10. 5:43:48 원수를 사랑하라 -대인관계를 다루고 있는 이 부분은 모두 여섯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섯 단락(단락5~10)이 동일한 패턴(~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을 사용했고 한 단락(단락7)은 조금 변형된 패턴(~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을 쓰고 있다. 다시 말해 단락7은 단락6의 주제에 부속하여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특정한 변형 패턴(‘너희가 들었으나’를 빼고 다른 어구는 그대로 사용함)을 사용하여 이 단락 또한 어느 정도는 독립된 단락이 될 수 있게 하였다. 단락 6에 부속되면서도 동시에 개별 단락의 역할도 한다는 뜻이다. 단락 9와 10은 주제에 있어 서로 연계되는 데도, 서로 독립된 단락으로 이해하도록 동일패턴(‘...들었으나...말한다...’)이 주어 모두와 연계된다.3. 마5 : 3 - 12의 팔복(구복)은 어떤 짜임새(상관성)로 되어 있는가? 그리고 이 부분이 주어진 목적은 무엇인가?123456789가난한심령애통함온유함의의주림긍휼함깨끗한마음화평의의핍박주님의고난A-마음A-마음B-관계C-의/믿음B-관계A-마음B-관계C-의/믿음C-의/믿음▲ ▲‘이런 자는 복이 있다’는 듣는 자들의 주의를 주님의 말씀에로 이끌기에 매우 적합한 표현법이다. 듣는 자의 마음을 열어 그 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게 하는 기능을 했을 것이다. 듣는 자는 누구나 주님의 말씀과 같이 그 같이 복 있는 자가 되길 원할 것이다. 본문은 산상수훈의 서론으로 그 기능상 청중의 마음을 열어주며 선한 가치와 바른 신앙을 추구하여 복 있는 자의 길에 들어서도록 이끄는 역할을 한다. 세속의 길로부터 선한 길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4. 6 : 9 - 13의 주기도문이 왜 본문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 될 수 없는지 그 이유를 구성된 단락들의 짜임새에 근거하여 설명하라.단락 5 - 10이 대인관계를 다룬 것이라면, 단락 11 - 17은 대신, 즉 하나님과 좀 더 직접적으로 연롼된 주제 단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대신관계의 단락들은 하나님에 대해 말씀하는 바가 상대적으로 많다. 단락 11 - 15의 주제는 앞 부분인 6 : 1에 요약되어 있다. 단락13(주기도문)이 본문에서 핵심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단락 11 - 15는 다섯 단락으로 되어 있으나, 주 단락은 11(구제), 12(기도), 15(금식)로 구성되어 있고, 중간단락 13(주기도문)과 14(용서)는 단락 13이 단락 12에, 단락 14는 단락 13에 부속된 단락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 부분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천부에 대해 세 가지의 ‘너희 의’(1절)를 주의해서 행할 것을 강조하셨다. 그것은 구제, 기도, 금식이었다. 그리고 단락16과 17은 앞의 단락 11 - 15와 구별된다. 앞 단락이 은밀한 중에 보시는 천부에 대해 주의해야 할 세 가지를 강조했다면 이 부분은 각람에 대한 경우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경우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이제까지 주신 말씀(단락5 - 19)을 모두 요약하고 있는 말씀이다. 또는 최소한 대인 관계의 모든 말씀(단락5 - 10, 18)에 대한 최종적인 결론이다.6. 마 23 - 25장과 그 앞 부분(19 - 22장)과 뒷부분(26-28장)의 관계에 대해 쓰라. 또 23 - 25장이 마태복음 내에서 관계가 있는 다른 단원은 어디이고, 어떤 관계가 있는지 쓰라.마23 - 25는 마19 - 22의 내용을 이어주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있는 말씀과 사역이 기록되었다. 이 가운데 뒷부분인 21 - 22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대립했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관련하여, 그들에 대한 경고말씀을 기록한 10단원의 앞부분(23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단원 10의 메시지는 그릇된 삶을 사는 이들을 질타하시는 주님의 말씀과 이 부분과 관련하여 다른 한 가지의 메시지가 제시되는데 예루살렘의 종말과 세계의 종말이 섞여 제시된다. 늘 깨어 있게 하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 날이 어떻게 임할 것인지, 그리고 그 날을 대비하는 자세(삶)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23 - 25장에 걸쳐 말씀하셨다. 25장까지 예수님의 전반적인 사역이 다 마무리가 되신 상태이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단원인 이 단원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의 마무리를 소개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승리의 부활을 알려주고 또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얻으신 주님께서 왕으로서 하신 명령이 무엇인지 알려줌으로서 앞 단원에서 마무리한 사역의 새로운 시작이 최고의 섬김임을 보여주셨다.그리고 역교차구조로 볼 때 23 - 25장(단원10, B)과 관련이 있는 본문은 5 - 7장의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법을 말씀하는 산상수훈(단원 2, B)과 연계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7. 23 : 1 - 8의 관계도를 그리고 종교 지도자에 대한 주님의 책망의 내용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쓰라.1. 23:1-12 위선의 태도, 자기를 높이려는 태도2. 23: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을 예고하시는 말씀들(7화, 단락2-8)이다. 여기에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단락9가 단원10을 세 분류로 나눈 것 중에 1단원의 종결부로 보고 있는데 그 분량으로 보아, 서론이라고 보기 보다는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씀들에 대한 총론이라 할 수 있다. 7화의 단락 2-8은 다시 세 개의 단락과 네 개의 단락으로 분류된다. 단락 2-4(A)는 그릇된 지도자들에 대한 주제를 담고 있고, 단락 5-8(B)은 그들의 위선에 대한 말씀을 주로 하고 있다. 결국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문제는 그들이 잘못된 지도자라는 점과 그들이 위선자라는 점, 이 둘이다. 잘못 이끌고 잘못 산다.8. 24 : 27 - 28과 24 : 32 - 33의 의미를 밝히되, 마 23 - 25장의 단락 12 - 18의 관계도를 그리고 단락들의 연계적 측면에서 이 두 단락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쓰라.*************824:4-1424:15-2224-23-2624:27-2824:29-30a24:30b-3124:32-33마지막 때의 조건들마지막 때의 극심한 환란거짓그리스도,거짓선지자들의출현번개와 독수리의 비유인자 재림의 전조들인자의 재림무화과 나무의 비유번개와 독수리 비유 주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 알 수 있게 임하지 않고 번개의 번쩍임같이, 그래서 동일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그 번개 친 것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처럼, 인자의 임함도 모두가 알 수 있게 그렇게 오실 것이다. 번개 친 것을 예로 드신 것은 이 비유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적합했기 때문이며 그 뜻은 모두가 보 수 있고 알 수 있게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시체(주검)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다’는 말씀은 먼저 재림 전에 예고된 분명한 징조(앞의 단락 12-14)가 있고서야 그 재림의 일이 일어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고 시체가 없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지 않듯이 먼저 있어야 할 것(마지막 때의 징조)이 있고 그 후에야 그 다음일(재림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무유)이 단락 15(번개와 독수리 비유)와 단락의 기능과 그 주제가 비슷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단락 12-14의 일이 예고된 후 단락 15가 주어졌고, 단락 16-17의 일이 예고된 후 단락 18이 주어졌다. 병행적 구조를 중시하는 이런 배열은 마태의 특징이다.9. 단락 20 - 25이 어떤 부분인지 밝히고 이들 단락이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밝히라.단락 19에서 반드시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님의 확언은, 그러나 그 일이 언제 일어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단락 20의 말씀으로 이어진다.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제자들은 깨어 준비하도록 요구받는다.(단락 21과 23)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바른 준비인가, 그에 대한 말씀이 단락 22와 24에서 주어진다. 물론 단락 25도 그런 말씀의 맥락에 있다. 그러면서 단락 25는 후반부 단락들(12-25)의 종결부 기능도 하고 있다. 한편, 단락 23-25로 이뤄진 25장의 세 가지 말씀은 그 날에 있을 주님의 평가가 둘로 나타나게 될 것을 강조하신 것으로, 주인(또는 신랑)의 뜻대로(기대하고 있는 대로) 행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뉠 것을 예고하신 말씀이다.연계 - 단락 20에서 아무도 알 수 없게 하신 이유는 모든 이들로 깨어 그 날을 준비하게 하려는 것으로 그와 관련된 말씀들이 이후의 단락(21-25)에서 주어진다. 단락 21과 22는 종말의 자세를 말씀하는 양 축이 되는 본문이다. 단락 23-25의 세 단락은 상관성이 짙은 말씀들이다. 첫째, 이들 셋이 모두 종말을 다루고 있다. 둘째, 이 세 단락이 모두 주님이 돌아오실 때 있게 될 일을 말씀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그 때의 평가가 둘로 나뉠 것을 말씀하고 있다. 넷째, 양쪽으로 나뉜 대상들이 서로 대조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단,s 것이다. 세 단락의 말씀이 25장에 함께 있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그런데 각 단락의 기능이 조금은 다르다. 단락 23의 열 처녀 비유와 단락 24의 달란트 비유가 그 앞의 단락 21-22를 각각 이어받아 반복이다.
    인문/어학| 2010.10.06| 5페이지| 1,000원| 조회(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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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
    Ⅰ. 들어가는 말이 책의 저자 루돌프 불트만은 20세기에 활동한 현대 신학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이다. 특히 그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눈부신 활동을 하였으며 그는 신약 성경 학자였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성경적, 기독교 신앙을 현대의 지성에게 이해시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신약 성경에 대한 실존주의적 해석을 채택했다. 그것은 고대 문서의 메시지가 개인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개인의 신앙적 반응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는 신약 성경의 주해와 조직신학 사이에 격차가 없는 것으로 보았으며, 오히려 양자의 임무는 신약 성경을 통하여 그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함으로써 인간의 실존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신학이 실존주의 쪽으로 흘러가면서 급기야 그의 신학 사상은 1941년에 비신화화를 주장하기에 이르게 되고 당시에 유행했던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젊은 세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도 사실이다. 심지어 조직신학자 폴 틸리히도 성서의 "비신화화를 요청하는 불트만의 메시지에 영향을 받았다. 나름대로 당시 유럽에 신학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각종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왜냐하면 개혁주의의 3대 사상 중의 하나가 바로 “오직 성경”인데 인간의 실존을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유일하신 하나님 중심사상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역할을 감당하는데 큰 공을 한 그의 신학사상 때문일 것이며 이 사상이 당시 시대의 신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불트만이 가지고 있는 최우선적 관심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마다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실재와 실존적으로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비신화화 작업은 이러한 만남이 가능하도록 해주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다 라고 한다.실존주의로 신학을 끌고 간 불트만의 열심어린 노력으로 인해 그들의 신학의 중심에서 대속사상이 결여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가 인간에게 신학적 발전은 자유주의 신학적 배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궁켈, 하르낙, 헤르만등 당대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신학자 맡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일어난 변증법적 신학운동에 참여한 이후에도 자유주의 신학의 합리적인 방법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하이데거 철학을 도구로하여 자신의 독자적인 신학인 실존 신학을 형성했다. 불트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현대인에게 어떻게 전달해야하는가 하는 문제를 신약성서 학자로서의 자신의 평생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초기에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양식사 비판(form criticism)과 종교사적 접근 방법을 수용했으며, 이에 기초하여 후기에는 비신화화와 실존론적 해석 방법을 개발했다. 양식사 비판은 구전 전승들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문학 해석의 방법이다. 성서중에는 문학 양식과 고대 근동의 문헌들을 문학 및 역사적 비교, 검토하여 그 사상의 유래가 어디에 있는가를 결정하는 것이다. 궁켈이 이 방법을 구약 성서 연구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그는 근동 문화를 연구하여 창세기의 배후에는 당시의 이교문학이나 신화로부터 유래된 것이 많으며 시편 양식들이 종교 의식상의 특정 축제난 마술적인 제례에서 근원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불트만의 신학적 배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5가지를 살펴보면,첫째, 루터 신학의 영향이다. 불트만은 자신의 신학에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의 강조, 즉 케리그마의 강조는 루터의 하느님의 말씀의 강조에 근거하고 있다고 했다.둘째, 종교사학파의 영향력을 들 수 있다. 종교사학파의 영향력은 불트만에게 지속적이고 지대한 것이다. 불트만은 종교사학파의 영향아래 바울사상의 헬라적 배경을 강조하고, 바울은 헬라교회의 케리그마에 의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며, 이방적인 헬라교회의 신학적 대표자라고 불트만은 주장한다.셋째, 불트만에게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관념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난다.넷째, 알버트 슈바이쳐의 영향이다. 알버트 슈바이쳐의 ‘임박한 종말론’ 사상은 불트만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것에 대한 질문을 던지되 이미 알고 있는 개념들로 그 본문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그 본문을 다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문제에 기인한다고 본다. 불트만은 다만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이 해석학적 원리로서 유일하고 적절한 것이라고 보았다.또한 불트만은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이데거는 그에게 소위 인간에 대한 객관화 된 견해만을 제공할 뿐인 전통적인 존재론들과 맞서는 하나의 대안을 제고해 주었다. 전통적인 존재론들은 인간을 볼 때 각각의 인간이 인격적 결단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인간됨을 결정하는 한 개인으로서 그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는 개념으로, 즉 역사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 그 인간을 보편적인 측면에서 본다. 그러나 불트만은 자신이 하이데거의 신약 성경 해석을 슬그머니 도용하고 있다고 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실존주의에서 발견되는 기본적인 방향성이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는 믿음의 구조들 속에 내재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불트만은 실존주의를 신학에 가해지는 외부적인 영향력으로 보지 않고 신약 성경의 메시지 자체의 핵심 정수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이 복음의 메시지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제기하는 기본적인 방법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 답이 주어지는 틀인 기본적 개념의 체계, 즉 인간 실존의 영역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 철학을 신학적 작업을 위한 유용한 도구로 편입시켰다.불트만은 기독교적 선포에 제시된 하나님의 은혜에 오직 믿음의 반응을 보임으로써만 나타나며, 그 반응 자체는 하나님이 일으키신 하나의 기적이라고 주장했다.바울의 말에 따라 그는 ‘케리그마’가 구원 사건으로서의 십자가의 부활에 대한 설교라고 주장했고, 이 두 사건은 불가분리의 연합을 이루고 있는 하나의 사건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때 그는 단순히 나사렛 예수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우리가 주목해 본 바대로, 불트살아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거나 예수가 피안의 생명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십자가의 구원의 효력을 믿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불트만은 주장했다.3. 루돌프 불트만의 신학사상의 문제점불트만의 프로그램의 중심에는 주요한 신학적 문제가 놓여 있다. 이 문제는 세 가지 주요한 약점들로 확인된다. 첫 번째는 주해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는 생활에, 세 번째는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첫째 불트만은 실존주의라는 여과망을 신약학에 적용함으로써 지나치게 단순화된 주해를 하는 경향을 낳았고, 그것은 또 한쪽 측면만을 말하는 신학을 낳게 되었다. 신약 성경의 ‘케리그마’는 본질적으로는 실존적 강설이라는 그의 주장이, 한편으로 그 문서가 말하려는 주요한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 문서에서 제시하려는 바를 거두절미한 왜곡이다. 많은 본문들이 단순히 불트만이 공식처럼 제시한 인간 실존의 이슈를 다루지 않고, 다른 주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예수의 십자가가 신앙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예수의 생애에 관한 내용을 별 무관한 것으로 여겼는데, 이는 그가 신앙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동했다는 메시지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보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몰트만이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그렇게 보면 “구체적인 역사성이라는 것은 항상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를 통하여 드러나고, 가능해지고, 일정한 한계가 정해지는 것이지, 그 역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하지 못한다.” 우리 신앙의 표현으로서 예수의 역사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은 그 역사 때문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트만에게 있어서 인간 실존의 자기 이해야 말로 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성서에 나타나는 인간 실존의 자기이해를 해석하고 밝혀서 오늘날의 언어와 술어로 다시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필자가 바울신학을 논의함에 있어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한다.둘째로 불트만의 신학적 접근법은 복음 메시지에 대한 은 그의 실존주의적 여과망의 영향 아래 무한한 질적 차이라는 주제를 급진적으로 적용한 결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왜곡되기에 이르렀다. 신학적 강화를 인간 실존의 차원에만 국한시키다보니 하나님의 영원한 실재라든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행동 등에 대한 주장을 배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불트만은 하나님이 내 안에서 행동하시는 경우에만, 즉 그 분이 본래적 실존을 창조하시는 한에서만 그 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학을 본래적 실존으로 이끌어 가는 하나님과의 체험적 만남에 대한 성찰로 만들어 버리는 실수를 했다. 우리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한에서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수 있다고 한 불트만의 주장은, 하나님의 영원한 본질을 인간의 신학적 주장의 한계 밖에 놓이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영원한 신적 실재로는 알 수 없게 된다. “신앙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신비는 하나님이 그 자체로서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인간과 더불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러한 주장이 하나의 중요한 진리에 대하여 지적하고는 있지만, 신약 성경과 신학사 등과 비교할 때 한마디로 신학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을 너무 축소시켰음을 알 수 있다. 불트만은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대부분의 진술들을 신화적이라고 분류하는 한편,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을 위하여 단번에’ 행하셨다고 단호하게 주장했다.넷째로 불트만이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신학사상 중에 영지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불트만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근본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에 있다는 것이다. 영지주의는 이 세상을 인간 영혼의 감옥이며 타향으로 본다.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자아인 영혼의 고향은 바로 이데아(idea)의 세계 즉 영원의 세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의 세계인 이 세상은 인간의 진정한 자아인 영혼의 감옥이고 타향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영지주의 사상은 기독교를 하나의 철학사상으로 저하시키려 했으며, 기독교를 자기들 나름대로의 곡해한 구약성서해석에 뜯어 맞추고 심지어 이방 종교아들)
    인문/어학| 2010.09.16| 6페이지| 1,000원| 조회(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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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로교 정치 사상사 요약 및 서평-존 칼빈 평가A좋아요
    서론이 책은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와 치리 제도를 역사적 발전 과정을 따라 연구한 것으로 만인제사장으로서 교회 정치에 참여하는 대의적 제도를 장로교회의 정치 원리의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책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장로교의 정치가 칼빈이 기독교 강요와 제네바교회 규정서를 통해 밝힌 장로교 정체 제도와 치리회의 구성, 그리고 이러한 영향을 이어받은 존 낙스에 의해 뿌리내리게 된 스코틀렌드 장로교회를 주목하여 보며 제 1치리서의 부적합성을 수정 보완하여 ‘제2치리서’를 작성하는 계기점에 대하여 의미 깊게 살펴볼 수 있었던 책이다. 그리고 장로교회가 칼빈이 제네바에서 사용했던 ‘하나님의 법’사상을 영국의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에 의해 채택됨으로 인해 유럽과 미국,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의 장로교회가 있기까지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조명하고 살펴볼 수 있는 책이라고 판단이 되어졌다. 이제 앞으로 다루어질 존 칼빈과 장로교 정치의 파트를 필자가 읽고 심도 있게 고민하고 느꼈던 부분들을 책 내용을 중심으로 밝혀보고자 한다.Ⅰ. 존 칼빈과 장로교 정치1) 이 책에서는 칼빈의 교회론을 기독교강요 초판과 최종판을 통하여 비교하고 있는데 먼저 초판을 보면 칼빈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표현으로 선택반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칼빈은 보편교회가 선택반은 자의 전체수라고 표현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체인 하나가 되어 한 머리를 가진 자들로 함께 자라며 함께 결합된 한 몸의 지체들과 같은 것이 보편교회라는 점이다. 이러한 칼빈의 주장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볼 것은 이 교회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있다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강조되는 교회, 즉 불가본리적 관계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여기서 칼빈은 선택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불가시적 교회에 대하여 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를 비교하면서 불가시적 교회는 영원부터 택한 자들이며 영원까지 보호받을 자들임을, 그러므로특성을 ‘어머니’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어머니의 입장으로 신자들을 보살펴 주고 지도해 주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두 번째로 초판에서는참교회와 거짓 교회에 대한 원리만을 제시한 반면 최종판에서는 참교회의 회원이 된 신자들 가운데서도 도덕 생활이 불완전한 자들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참교회 신자들과 같은 신앙을 교백하지 않는 자들을 거짓 교회로 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정죄된 자들이라고 보며 참교회와 거짓 교회를 명확히 비교하여서 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칼빈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거짓 교회가 무엇인지 참교회와 자세하게 비교하면서 주장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2)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개혁자들이 ‘가시적인 교회’와 ‘불가시적인 교회’라는 전문용어를 도입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도입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루터는 라이프치히 논쟁에서 후스의 견해를 공개적으로 채택했으며 사도신경에서 의미하는 진정한 교회에 ‘불가시적’이라는 용어를 처음 적용시켰다.쯔빙글리는 두 용어를 처음으로 도입하였다. 그는 가시적인 교회는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의 공동체를 의미하고 불가시적인 교회는 모든 시대의 전정한 신자 전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그는 모든 경건한 이교도들과 세례를 받았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유아기에 죽은 모든 아이들까지도 불가시적인 교회에 포함시켰다. 이어 칼빈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데 칼빈은 다른 어떤 개혁자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이 구별을 정의하였다. 칼빈은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에 의존하는 것이지 은혜의 가시적인 수단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며 사랑의 판단 안에서 우리와 동일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모든 사람을 교회의 지체로 인정해야만 한다고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에서 계속 말하고 있다.3) 교회의 권위예수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 준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열쇠끈다; 이번에는 직제론에 대한 비교이다. 초판에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리고 신자들을 양육하기 위해 조직된 교회는 직분자들인 ‘말씀의 사역자’가 존재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두 가지의 견해를 펴고 있다. 첫째로 칼빈은 초판에서 무엇보다도 성경이 하나님의 교회에 허락하신 직분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가장 먼저 그리고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둘째로 교회의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 임명받았기에 여기에 따르는 구체적 임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교회의 사역자가 행해야 할 일에 대하여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칼빈은 조직교회가 필요로 하는 기초 문서들을 만들면서 칼빈은 개혁교회의 정치제도와 직제에 대하여 세밀하게 언급하고 있다.초판과는 반대로 최종판에서는 초판에서 간단하게 다루었던 교회의 직제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칼빈은 지상의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도적 목회적 직분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칼빈의 교회론은 직분자들을 중심에 세워 섬기게 하는 교회론이다.칼빈은 성경에 근거하여 직분자를 임시직과 항존직으로 구분한다. 임시직으로는 선지자직, 사도직,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직분이다. 칼빈은 1541년 에서 교회 직제를 목사, 교사, 장로, 집사라는 네 직분으로 구분하였다.2. 장로교 치리회의 역사적 발전 과정1) 칼빈 이전의 제네바 상황1536제네바의 종교개혁은 1536년 제네바 시민들은 정치적 결정에 의하여 개신교를 받아들이기는 하였으나 제도적으로 카톨릭과 결별했을 뿐 성경적인 신앙과 삶의 방식에 대하여서는 백지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게다가 제네바가 개신교를 수용한 것은 스위스 지역의 종교개혁의 흐름 속에서는 이웃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디게 반응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 문화적 각성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변혁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고 이 책은 기술하고 있다.1526년부터 제네바 시민들은 사보이 공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의회를 조직하여 투쟁하였다. 제네바 시는 스주의, 경제적으로는 부의 옹호와 물질적 방종이 교묘하게 이루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제네바 종교개헉의 과업은 전체적으로 타락한 기독교 사회를 개선하고 시민들에게 신자로서의 삶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그는 이 과업의 중심을 교회에 두었다. 칼빈은 교회를 교육적 구조로 개혁하는 한편, 제네바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학교를 통한 기독교 교육의 영역을 확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교육적 사역을 수행하는 기관으로서 먼저는 신앙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동체로 만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교육 제도의 기반을 갖추기 위하여 교사의 직제에서 교사의 직분을 재발견하고 회복시켜서 교회가 바른 신앙을 전승하는 교육의기관이 되도록 착안하였다. 또한 칼빈이 성경에서 발견한 교회의 직분론을 따라 제네바교회의 지도자로서 그의 목사직은 목사와 교사의 직분을 겸한다는 모델을 보여주었다.3) 제네바의 권징칼빈은 제네바에서 1차 사역을 시작할 때(1537년) 이미 출교를 포함한 교회 권징의 독립성을 주장했으나 그의 주장이 너무 과격해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1541년 제네바 시의 간곡한 요청으로 제네바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칼빈은 교회의 훈련과 권징에 대하여 명백한 입장을 밝혔다. 복음의 가장 중요한 적은 나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며 준엄한 법이 교회를 다스리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빈은 목회에서의 주된 내용은 철저한 교육과 엄격한 권징이었다.3. 정치제도에 대한 칼빈의 견해1) 장로교 정치 원리칼빈이 주장한 그리스도의 주권 직무의 분배 및 평등성 그리스고 대의정치 정치사상은 칼빈의 기본적인 정치원리의 뼈대와 골격과 같다. 즉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모든 지체들이 누리는 평등성 직분자들을 통하여 스스로 운영되는 자율성 그리고 대표를 통하여 실시되는 연합성이다. 교회 직분자들에 대한 그의 평등사상은 신약성경에 근거한다.칼빈은 ‘기독교 강요’(1536) 6장에서 “그리스도의 자유 교회의 권능 그리고 국가의 정치조직”에 대하여 논한다. 칼빈의 그리스도인은 이신칭의와 성화의 차원에서성경적 정치제도가 교회 정치의 골격으로 유지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한다.칼빈은 성직자 중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도 반대했으며 전 회중이 직접적으로 교회 행정에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고 대의 정치를 강조한다. 칼빈은 전제군주적 제도에 의해 무너진 그리스도의 왕권을 회복하므로 교회를 개혁하고자 했다.2) 교회정치제도의 필요성칼빈은 교회가 정치조직이나 직제를 논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규정과 교훈을 우선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3) 교회 정치제도의 기초인 법칼빈은 교회법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제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주장하였다. 특별히 칼빈은 교회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예절에 대하여 두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 책임자들은 훌륭하게 다스리는 법을 알아야 하고 다스림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올바른 권징에 순종하는 습성이 있어야 한다. 둘째 질서 정연하게 교회를 세운 후에는 교회의 평화와 평온을 마련해야 한다.4. 제네바 교회 규정서와 정치제도1) 1536년 제네바 신앙고백서제네바 신앙 고백서가 언급하고 있는 칼빈의 주장은 “우리는 그의 거룩한 복음이 순수하고 신실하게 설교되고 선포되며 청종되고 지켜지며 그의 성례전들이 바르게 집례되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표지라고 믿는다. 칼빈의 제네바 신앙고백서는 ”신앙고백“이라는 단어가 강조되어 있다. 그러나 기독교 강요는 복음 설교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청종과 순종의 측면이 강조되어 있다.2) 칼빈의 ‘기독교 강요’1535년에 완성된 칼빈의 기독교 강요 초판은 총 6장으로 되어 있는데 첫 4장은 율법(십계명 해설) 신앙(사도신경 해설) 주기도 성례 전으로 되어 있고(루터의 요리 문답 순서에 의해 배열) 5장과 6장은 논쟁적인 기술 법으로 거짓 성례와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기록을 했다. 5장에서 그는 이제까지 성례 전이라고 불리는 케도릭의 견신례 고해례 안수례 결혼례 종유례등이 성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6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개념을 해설할 뿐 아니라 교회와 국가다.
    독후감/창작| 2010.09.16| 6페이지| 1,500원| 조회(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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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로교정치사상사 요약 및 서평-존 낙스 평가A좋아요
    Ⅲ. 존 낙스와 장로교 정치1. 존 낙스와 장로교 정치제도대륙의 종교 개혁자 마틴 부셔가 장로교 제도의 기초를 놓았다면 존 칼빈은 장로교 제도의 이론을 체계화 시켰고 그리고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 제도를 구체화 시킨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낙스는 1554년 3월에 스위스로 와서 칼빈을 만난 후 계속 칼빈과 교제했다. 낙스는 제네바에서 칼빈의 영향을 받으면서 개혁교회의 조직에 대하여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1555년 제네바에서 공중 예배 규정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이 공중 예배 규정서는 제네바의 영국인 난민교회 교인들에 의하여 채택되었다. 스코틀랜드 개혁교회가 장로교 정치 제도의 틀을 마련할 수 있는 근거를 ‘공중 예배 규정서’가 제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2.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와 장로교 정치원리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는 스코틀랜드 국회 회기 중에 4일 만에 존낙스의 주도하에 6명의 존에 의해 작성되었고 1560년 8월 17일 의회 인준하였다. 이에 대해 벨포는 “의심없이 존 낙스와 그의 조력자들은 이미 전부 아니면 적어도 신앙 고백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작성했다.”고 말한다.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는 대체로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르며 고대 공의회가 작성한 교리 그리고 구원과 하나님과 말씀과 성령의 사역에 대한 종교 개혁자들의 가르침을 진술한다. 브라운은 새로운 신학과 종교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와 제1치리서 안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보았다. 신학적 내용은 칼빈이 후반기에 추했던 완전히 발전된 형태의 칼빈주의 신학의 요약이다. 이 신앙고백서는 총25개 조항으로 구성되었는데 대다수가 유럽대륙의 개혁교회부터 교회가 수용하고 있는 교리적 가르침이며 나머지 조항은 당시 가장 논쟁점이 된 칭의 성화 믿음 성경의 최종 권위 그리스도의 직임 세속 권력 교회의 권위 그리고 성례문제를 다룬다.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에서 말하는 장로교 정치 원리는 성경의 원리를 토대로 한 개혁주의 정치 제도이다. 스코틀랜드 교회가 국가교회이면서도 개교회의 자유합하는 것이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원리와 방법에 따라 교회에서ㅗ 선출된 합법적인 말씀 사역자들에 의해 시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세례는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는 것으로 설명한다. 특별히 로마 가톨릭 교회의 성례를 강하게 비난한다. 가톨릭교회의 사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성례를 불순하게 했다. 미사의 제사 교리는 비난 받아야 한다.2) 스코틀랜드 신앙 고백서와 교회정치세속적인 정부 지도자들에게 주어진 능력과 권세 역시 하나님의 의해 주어진 것이며 시민들은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리고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들을 국가의 정치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바른 종교의 보존을 위해 임명된 자들로 본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교회직제와 교회 정치에 대한 내용은 제1치리서에 더 상세하게 언급되어 있다. 전체 16장으로 된 제1치리서 가운데 4.5.6.장은 목사와 임무와 선출, 목사의 대우, 그리고 감독관에 대한 언급이다. 모든 직분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소명받은 자들이기에 일생을 통해 섬겨야 한다.3.존 낙스의 제1치리서(1560)1) 제1치리서에 나타난 교회직제제1치리서에 나타난 교회직제에 관하여 스크틀랜드교회는 1556년 존 낙스가 제네바의 영국 난민교회에서 사용하던 ‘공중 예배규정서’에 정한 목사, 박사, 장로, 집사 네 직분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러나 ‘제1치리서’ 가 작성되면서 그 직제를 변경하였다. 목사와 집사직은 교회의 항존직으로 인정하였으나 장로의 임기는 1년으로 정했다. 그리고 종교 개혁 직후으 특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감독관과 독경사의 직분을 임시로 첨가했다. 첫째는 목사에 대한 것이다. 목사직을 평가하는 내용은 성경본문해석에 대한 후보자의 역량 교리적 논쟁에 대한 후보자의 견해, 설교자의 능력 그리고 목사의 사생활 등이었다. 한편으로는 위임받은 목사에게는 회중들을 위한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강조한다. 성도들은 위임받은 목사가 하나님의 책으로부터 선포하는 말씀로 목사를 권유하고 시정하며 면책이 합당한 경우에 교회 법정에 소송하도록 되어 있다. 이 결정은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목사와 장로의 동등권을 부여한 것이다. 셋째, 집사직이다. 집사의 직무는 칼빈의 교회규정에 정한 대로 재정을 관리하고 구제금을 모아 어려운 신자들에게 분배하는 일이다. 넷째는, 감독관과 독경사직에 대한 것이다. 목사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총회는 독경사를 임명해서 주일날에 성경과 공중 기도서를 읽도록 했다. 그들은 설교의 능력을 인정받기까지 설교할 수 없었으며 성례도 집행할 수 없다. 이러한 독경사들의 감독관으로 선정했다.2) 제 1치리서에 나타난 치리 제도스코틀랜드 장로교의 본질적인 원칙은 업무에 목사들 외에 장로와 집사들이 참석한다는 것이다. 멕그레고에 따르면 1560년까지 스코틀랜드교회는 네 종류의 치리회들, 즉 지교회 치리회 혹은 당회, 성경토론회, 지역 순회 감독자회의 그리고 총회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 지교회 치리회 또는 당회는 모든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제도이다. 스코틀랜드 지교회 치리회는 목사, 장로, 그리고 집사로 구성되었다.스코틀랜드 지교회 치리회의 세 가지 주된 직무들은 교회 치리권 행사, 개교회의 업무 관장, 그리고 지교회 목사를 선출할 대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통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 등이다. 멕그레고는 이 치리 제도를 체택한 개교회들은 이것을 시행하는 치리회의 구성에 다라 차이점을 보이고 있는 것을 지적한다.4.앤드류 멜빌의 제2치리서(1578)그는 자신이 쓴 치리서를 통해 네 개의 치리회를 제안했는데 당회, 노회, 대회, 총회가 그것이었다. 따라서 이 문서는 교회의 치리회를 네 개의 기관으로 규정하여 치리를 주관하게 하였다.1) 앤드류 멜빌의 ‘제 2치리서’의 특징제2치리서는 1572년 이후 완전히 정립되지 않았았던 교회 정치 문제를 매듭지은 문서이다. 특징은 로마 가톨릭의 직제론이나 감독제와는 다르게 성겨에 근거한 ‘장로들과 집사들’ 에 관해서만 언급한다. 이 점을 강조한 것은 아직례권이 목사에게만” 있다고 규정하며 목사를 ‘pastor’‘episcope’ 혹은 ‘bishop’ 그리고 ‘minister’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목사는 양무리를 먹이고 지키고, 섬기는 사역이기 때문이다.장로는 제1치리서와 마찬가지로 1년에 한 번씩 선출했고 교구민들을 돌아보는 영적인 일에 목사를 보좌하며 성도들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들을 감독 하도록 했다. 교사직은 교회에서 성경과 신학을 가르치는 교사 이외에 정합대학 들과 단과 대학들에서 성겨의 의미를 해석해 주고 기타 학교를 책임지고 기독교에 대하여 가르치는 교사로 언급한다. 집사직은 교회의 항존직으로 명시하고 그리고 구제와 재무관리를 담당하도록 규정한다 집사의 직분에 있어서는 다른 직분의 선출과 동일하며 “당회의 판단과 회중의 동의”에 따라 선출되었다. 감독직에 관하여는 “다른 목사들과 동등하고”우월성이나 군림과는 거리가 멀며 감독하는 직책이다.3) 제 2치리서에 나타난 치리회 구성본 문서는 당회, 노회, 대회, 총회로 규정한다. 당회는 특정 개교회 안에 있으나 “상호 동의하에 전체 교회의 힘과 권위와 법적 관할권을 행사한다.”고 명시하며, 교회의 크기가 매우 작을 경우에는 두 세개의 교회들이 하나의 당회를 가질 수 있다.노회는 해당 지역의 목사들, 교사들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대회는 대회 지역 안에 특별한 조사를 실행하기 위해 시찰회원들을 보내고 그리고 그 지역에 있는 대의원들 중에 1명이나 그 이상의 회원들을 총회에 의해 파송된 시찰원들과 연결시켜 주는 권한을 가졌다. 1582년에 대회는 그 지역안에 있는 노회원들로 구성되어져야 한다고 선포했다. 총회는 나라 전체의 교회들의 합법적 회의이다. 스코틀랜드 장로교 총회는 스코틀랜드 국민들의 의회보다 더 잘 드러내는 교회의 최고의 상회였다.4) ‘제 1치리서’와 멜빌의‘제 2치리서’ 비교제 1치리서는 공식적인 개혁교회의 정치 제도가 설립되는 초기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교회의 의무들과 활동들이 강조되었다면 제 2치리서는 q8h다 엄격해진 교회 헌법으로결된 문서들은 공 예배 지침서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와 교회정치조례가 있다. 웨스트민스터 정치 조례에 나타난 직제론과 치리제도에서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국가 위정자의 종교 회의 소집 권한에 대한 문제이고, 둘째, 장로 정치의 치리 권한에 대한 문제이다. 웨스트민스터의 직제론은 목사, 교사 혹은 박사,장로 집사로 나눈다. 치리회는 당회, 노회, 준노회, 총회, 에 둔다.Ⅴ. 미국 장로교 정치와 치리 제도1.초기 미국 장로교 정치 제도의 형성과 정치 원리미국 장로교의 정치의 형성의 배경에 영국에서 이주한 청교도들을 빼놓을 수 없다. 칼빈과 낙스와 청교도들부터 개혁주의 사상을 전수받은 영국교회 신자들이 북아메리카에 정착한 것은 1607년이다.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102명의 청교도들이 대서양을 횡단하여 매사추세츠주의 케이프 캇에 도착하여 신대륙에 신앙적 기초를 놓았다. 1611년 청교도 신학자 윌리엄 휘태거의 아들 알렉산더가 토마스 데일의 지도 아래 버지니아에 정착하여 장로교의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위그노 목사들이 프랑스 왕루이13,14세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와 교회를 세우고 칼빈주의 교리와 장로교 정치체제를 채택하여 장로교 신앙을 고백한 것은 청교도들의 영향이 아니라 프랑스 개혁교회의 영향이었다. 1700-1770년 사이에 독일의 많은 신교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여러지역의 같은 뿌리를 가진 신앙인들이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대륙에 정착한 이주자들은 흩어져 있는 장로교회를 하나로 연합할 필요성을 느끼고 최초로 뉴저지주의 프리홀드에서 필라델비아 노회가 조직되었다.2.대각성 운동과 미국의 장로교 정치미국의 대각성은 운동은 1930년대 중반에서 1740년대 초반에 일어났던 영적 부흥운동이다. 이 운동을 주도한 자들은 장로교적인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이 부흥운동은 데오도르 프레링하이젠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네델란드 개혁교회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독일의 경건주의 영향을 받았도 엠덴과 프.
    독후감/창작| 2010.09.16| 5페이지| 1,500원| 조회(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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