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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열과사교육비
    Ⅰ. 서 론우리나라의 교육열은 교육정책 전반에 걸쳐 부단한 영향을 미치면서 우리교육의 모습을 특징지어 왔다. 이러한 교육열은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사회에 여러 가지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게 되었다. 예컨대 전인교육의 실패, 학교교육의 비정상화, 사교육비로 인한 가정의 부담감 등이 빗나간 교육열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더 나아가 과잉된 교육열은 공교육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사교육의 팽창을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교육 팽창은 과외 퇴치를 위한 온갖 대책들을 시도하게 하였으나, 아직까지 과외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주요 대책들은 과외를 직접적으로 유발하는 것으로 보이는 제도나 행위를 행정적?법적으로 철폐하거나 금지하는 것이었다. 즉, 초등학생 과외를 유발한다 하여 정부는 "중학교 입시"를 철폐하고 중학생 과외를 유발한다 하여 "고교 입시"를 철폐하여 추첨제로 신입생을 배정하였다. 그래도 과외가 번성하자, 대입전형제도도 수차 개혁하였는데 대학별 본고사가 과외를 유발한다 하여 그것을 폐지하고 암기?찍기 위주의 과외를 유발한다 하여 선다형 객관식 "학력고사"를 폐지하고 과외로 대비하지 못하도록 사고력중심의 수능시험으로 바꾸었다. 최근에 난해한 수능시험 대비 과외와 논술과외가 번성하자, 정부는 수능시험은 더욱 쉽게 출제하며, 논술고사도 폐지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 그 동안 지속된 불법 과외 단속 방침도 재천명하고 있다. 이처럼, 입시 자체를 없애는 과외대책, 그 분야 과외만 생기면 그 과외를 없애고자 그 분야를 입시에서 제외하고 과외를 규제하는 대책들은 실패를 거듭하였다. 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과열과외 현상은 온갖 혁신적 대책에도 불구하고 더욱 격화되고 있다. 초등학생 과외를 유발한다고 "중학교 입시"를 제거하고 중학생 과외를 유발한다고 "고교 입시"를 철폐하여 추첨제로 중등학교를 평준화한 것은 가히 획기적이었다. 그래도 과외가 번성하자, 과외를 규제하며 일부 과외는 불법화하고 있다. 게다가, 능 과목의 경우, 사교육에 의한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학생들의 예체능 특기가 신장될 수 있다. 초등학교 과정에서 예체능 과목은 일주일에 40분 수업 2~4단위에 불과하며 겨우 가장 기초적인 부분을 배우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학교에서 이러한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도 많은 경우에 전공교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 교육의 질도 그다지 높지 못하다. 학교에서 예체능 과목을 위해 전공강사를 고용하는 경우도 있으나, 영리를 위한 과외학습에 비해서는 그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둘째, 학습부진아의 부족한 학습의 보완이다. 학습부진아 및 지진학생들의 경우, 사교육에 의한 개별적인 훈련을 통해 학생들의 학력이 보충될 수 있다. 공교육의 경우, 학급당 인원이 워낙 많기 때문에 부득이 중상위 그룹 학생을 중심으로 수업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학습부진아 및 지진학생들에 대한 개별적 지도는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또한 일률적인 교과서, 교사들의 잡무, 교육계에 만연한 권위주의 및 관료주의 등의 문제로 인해 학습부진아 및 지진학생들은 교과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으며 지속적으로 수업에서 도외시되어 학습의욕을 잃어버리는 상황을 만들었다. 현재의 교육환경에서 과외는 이러한 학생들이 학교 교과학습의 과정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셋째, 공교육에 비해 개별교육의 가능이다. 공교육의 부실한 학습환경을 보완하며 일반학생 개개인의 개인차를 고려한 개별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 공교육은 학급당 인원이 많으며 교육기자재와 학교시설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학생들에 대한 개별교육이 불가능에 가깝게 된다. 이에 반해, 공교육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사교육에서는 비교적 개별교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 담당자는 공교육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학생집단을 지도하게 되며, 따라서 학생들의 학습능력과 특성을 파악하여 각자의 수준에 맞는 학습을 이루어 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교육육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 교육의 경쟁력이 국민의 기대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2) 늘어나는 사설학원교육부가 발간한 2002년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사설 학원수와 학원 수강자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2년 사설 학원 수는 6만 206개로 전년도 5만 8951개에 비해 1250개가 늘어났고(부산의 경우 4070개), 학원 수강생 역시 422만 437명(부산의 경우27만 8250)으로 전체 학생수 1106만28명의 38.2%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강 수는 실제로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수강자 수를 제대로 신고하는 학원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수강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문리분야 학원(학원수 1만 9857개) 수강생 199만 5258명(부산의 경우, 1499개에 14만 3999명)으로 전체 학원 수강자의 47.3%에 이른다. 문리계열 학원 수강자의 증가는 입시 위주로 진행되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여실히 반영하는 조사 결과라고 보여진다.3. 사교육 실태에 따른 문제점1) 과외비 부익부 빈익빈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과외금지 위헌 결정이래 과외비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지역간 소득계층간 격차의 심화로 소액과외 비중은 오히려 줄어든 반면 일부 지역의 고액과외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를 뒷받침하듯 서울 시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서울대 진학률이 10배나 차이가 나며 이는 과외비 지출과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보고서가 나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다시 거세지고 있는 8학군 열풍도 이같은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소위 명문학교와 일류 학원들이 집중돼 있는 8학군 학교들은 밀려드는 전학생들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때아닌 콩나물 교실이 재연되고 있다고 한다.덩달아 집값도 뛰고, 학원에 들어가려해도 경쟁이 심해 몇개월씩 대기하는 것이 다반사다.실질적으로 과외를 하는 수요가 줄었다고 하나 고액과액의 수요가 증가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위화감이 증가하게 되고 사회적 형평성도 깨지게 되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2) 하는 주범은 학력주의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력은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는 데에 중요한 발판이 된다. 고졸자와 대졸자 사이에 현격한 임금 격차가 있으며, 더 심각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학 졸업장이 없이는 행세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임금 격차가 상당히 완화되고 있지만, 임금격차가 없어도 자녀를 대학까지 보내겠다는 학부모가 다수인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학교 간판"이 지니는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러한 학력주의의 이면에는 실업교육정책의 실패라는 요인이 있다. 학력주의 때문에 실업교육이 부진한 측면도 있고 또 실업교육을 진흥하지 않은 결과 학력주 의가 득세한 측면도 있어서 어느 것이 원인이라고 말하기 어려우나, 많은 학생이 일반계 고 교에 진학하여 대학에 가기 원하며, 우리 사회에서 실업계 고교에 진학하는 것은 낙오자로 인식되고 있다. 대다수 학부모들은 중등교육을 대학 입시를 위한 준비단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많은 학부모들의 이해 부족과 모든 사회적, 경제적 경쟁이 교육 경쟁으로 집중되어 첨예화되고, 사회 생활의 성패가 학력이 주된 결정 요인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팽배한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 학력주의가 빚어낸 사회문제가 고스란히 교육문제화 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입시 제도, 교과 성적 위주의 선발 기준, 공교육 부실, 학교의 서열화 현상, 학부모의 과열 경쟁, 교원의 역량 약화 등의 문제들이 파생되어 나타나는 것이다.2) 불충분한 공교육의 서비스미흡한 교육여건, 과밀학급, 이질화된 학습집단 등으로 인해 공교육(학교교육)은 그동안 교육서비스에 대한 학부모의 수요를 충분히 채워주는 데에 실패하였다. 공교육은 국가의 재정지원 뿐 아니라 여타의 다양한 법률적 보호를 받는다. 반면에 사교육과는 달리 공교육부문에는 상당히 많은 제약이 가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학생선발, 교육과정 운영, 수업료 결정, 기타 학교운영 전반에서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제도 속에서 운영해야만 한다. 는 부모는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문화적, 심리적 중압감과 과열 경쟁이 야기할 정서적, 인격적 손상에 대한 인식이 미흡한 것도 큰 원인이다. 그리고 맞벌이하는 부모의 경우, "일하는 엄마가 나쁜 엄마로 낙인찍힐까 두렵다"고 하면서도."공부를 시키려는 것보다 밤늦게까지 혼자 있어야 하는 아이가 걱정돼 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경우도 있다. 혹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취미활동이나 자기발전을 위해 자녀를 맡기고자 하는 가정이 늘고 있지만, 아이를 마땅히 맡길 만한 곳이 없어 몇 군데 학원을 전전하게 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다5) 평가지향의 학교문화사교육을 부추기는 요인 중의 하나로 경쟁 지향적인 학교평가의 문제를 들 수 있다. 학교의 일차적 기능이 '교육'이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학교는 평가기관으로서의 기능이 앞서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초?중등의 각 교과 및 예체능 교육의 상당 부분이 학교평가에 대비한 것이다. 정규교과에 들어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학교 밖에서 미리 배워 학교의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고자 한다. 때로는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을 평가하기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 바깥에서 배우고 학교에서 평가받게 된다. 학교에서 평가는 꼬박꼬박 이루어지며, 시험문항이 지나치게 세세하거나 어려운 경우도 있어서 학생들이 따로 부교재나 사교육에 의존하도록 하는 경향이 있다.5. 사교육의 축소와 개선에 대한 대책1) 학력주의의 폐해 완화 방안 구축앞서 제시한 대로 문제의 핵심은 학력주의이다. 학력주의는 근본적으로 교육 문제가 아니라 사회 문제이다. 그래서 이러한 경향을 사회 저변에서부터 철폐하는 길이 가장 좋은 방안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그 일이 단순하지가 않다. 다만 완화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점진적인 변화를 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력주의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학력보다는 학력과 자격증을 고려하는 능력주의의 고용 관행이 정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
    교육학| 2010.07.13| 9페이지| 1,500원| 조회(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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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공스포츠/레포츠
    Ⅰ. 패러글라이딩1. 패러글라이딩이란기체 조작이 쉬워 세계적으로 동호인 수가 가장 많은 항공스포츠다. 배낭 속에 접어 넣은 무게가 약 4kg으로 가벼우며, 산 정상이나 능선에서 약 10m 정도 도움닫기 후 비행한다. 평균시속은 20∼40km이며 해발고도 10m 높이에서 이륙하면 평균 40m 비행한다. 비행에 적당한 바람은 초속 1∼5m 정도이며, 헬멧을 쓰고 하네스(Harness:기구와 몸을 연결하는 장비)를 입은 뒤, 좌우측 조종줄로 방향을 전환한다. 착륙은 브레이크 손잡이를 사용한다. 국제대회로는 세계 패러글라이딩 챔피언십대회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생선수권과 클럽별 전국선수권, 육군참모총장배 대회 등이 해마다 열린다. 경기종목은 지정된 목표물 통과하기와 표적 던져 넣기, 먼 거리를 비행하는 크로스컨트리 등이 있다. 그 밖에 패러글라이딩을 응용한 레저스포츠로서는 착지 순간 스키를 타는 패러스키, 패러글라이더를 짊어지고 산에 오르는 불편을 없애기 위해 프로펠러 추진기를 장착, 이륙하는 모터패러글라이더, 엔진이 조종석에 있어 앉아서 비행이 가능한 패러플레인, 커넥터를 연결해 전문 조종사와 비행자 2명이 함께 비행하는 텐덤비행 등이 있다.2. 패러글라이딩의 역사패러글라이딩은 파라슈트와 글라이딩의 합성어로써 “인력 활공기”로 해석하며 이를 이용해서 활공하는 것을 “패러글라이딩”이라고 한다. 파라슈트는 1783년에 불란서의 몬페리 천문대 탑에서 처음 낙하산 강하에 성공한 불란서의 물리학자 세바스챤.루.놀만 교수에 의해서 명명된 것으로 「낙하산 기세를 꺽는다」는 의미의 프랑스어이다. 라슈트는 그 조작 기술과 함께 두 번의 세계 대전을 통하여 주로 발달 하였다. 격추된 비행기로부터 파일러트(조종사)의 탈출용으로, 낙하산 부대용으로 나아가서는 스카이다이빙의 스포츠용으로 각각 발전을 계속 하였다. 히 제2차 세계 대전후 미국의 NASA연구소에서 우주선의 회수를 목적으로 한 일련의 발명(로갈로 박사에 의한 행글라이더의 원형)에 의해서 패러글라이딩의 원형이 되는 네모꼴의 날개를 배낭 크기로 접어서 운반 할 수 있는 특성을 갖고 있다.3. 안전수칙기체의 사용 횟수에 따라 정기적인 장비 점검을 지도자를 통해 받을 것음주비행(비행 전날의 음주 포함), 단독비행은 절대 불가비행에 필요한 신체조건 및 체력관리에 무관심하지 말 것.공인된 사람에게 지도 받도록 할 것.감항 검정이 확인된 기체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것낙하산 등의 안전장비는 필히 착용하도록 할 것치료보다 예방에 당신의 경제력을 투자하라충분한 훈련 없이 비행하지 말 것불완전한 기체로 이륙하지 말 것충분한 이륙 달리기가 없이 기체에 올라타지 말 것자만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비행을 하지 말 것파일럿에게 있어 설마 라는 불확실한 단어는 없다.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비행은 하지 말 것성장하는 적란운에 접근하지 말 것보이지 않는 곳에 불시착했을 경우 기체를 접지 말고 구조를 기다릴 것착륙장을 벗어날 때 착륙장의 위치 연계도로망을 확인하고 안전한 장소에 착륙할 것사나운 짐승이나 새끼가 있는(또는 임신한) 가축 근처에 착륙하지 않도록 한다.기체 및 하네스 등의 수리는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하며, 임의로 변경해서는 안된다.불완전한 장치나 전문가나 경험자의 조언 없이 토우잉 하지 말 것기체 및 장비의 피로도, 점검 및 수리에 대한 내용을 기체 상태 점검란에 기록한다.기체의 양도자는 인수자가 비행 수첩의 기체 상태 점검란 확인을 요구할시 이를 제시해야 한다.4. 비행수칙써멀 또는 리지 소아링을 여러 대가 동시에 비행할 때는 선행자의 선회방향을 확인하고 진입하며 선행자와 같은 방향으로 선회 할 것항상 다른 비행자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어야 한다.서로 마주쳤을 때는 우측 비행추월 시 우측으로직각으로 마주쳤을 때는 좌측의 비행자가 양보능선이나 절벽의 사면에서 마주치게 되었을 경우 산의 바깥 방향으로 선회하기 쉬운 기체가 선회하여 피한다.고성능기와 저성능기가 마주쳤을 때는 고성능기가 양보한다.상승풍을 받아 상승하고 있는 기체 쪽으로 진입하지 말 것위에 있는 기체가 먼저 피한다.Ⅱ. 열기구1. 열기구란커다란 공기행에 필요한 장비로는 연료로 쓰는 가스통과 소화기·고도계·승강계 등이 있다.2. 열기구의 역사열기구는 지금으로부터 220년 전 프랑스의 조세프 미셸 몽골피에(Joseph Michael Montgolfier, 1740~1810)와 조세프 에티앙 몽골피에(Joseph Etienne Montgolfier, 1745~1799) 형제에 의해 발명되었다. 리옹에서 가까운 아노네이 마을에서 태어나 제지공장을 운영하던 몽골피에 형제는 어느 날 화롯불에서 힘차게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는 뜨거운 연기를 보고 더운 공기는 일반 공기보다 가벼워 상승한다는 원리에 착안하여 하늘에 띄울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기로 했다. “연기를 큰 주머니에 담으면 주머니가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1782년 11월 실크를 소재로 한 체적 1㎥의 원형의 기구를 제작하여 그 내부에 나무와 젖은 밀집을 태워 발생한 뜨거운 공기(연기)를 채워 지상으로부터 50여 미터 상승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것이 최초 열기구의 탄생이었다. 이후 몽골피에 형제는 좀더 크고 높이 날 수 있는 기구 제작에 골몰했고, 이듬해인 1783년 6월 3일 아노네이에서 1,000미터 상공까지 열기구를 띄워 올릴 수 있게 되었다.3.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1783년 9월 19일 몽골피에 형제는 파리의 베르사유 광장에서 루이 16세가 참석한 가운데 오리와 양 그리고 닭을 열기구에 탑승시켜 8분 동안 3킬로미터를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2개월 뒤인 11월 21일, 물리학자인 로지에르(Jean Francois Fiatre de Rozier, 1756~1785)와 육군 장교 다란드(Marguis d’Arlandes) 두 사람이 탑승한 대형 열기구가 불로뉴 숲 상공에 떠올라 하늘을 날고자 했던 인류의 오랜 꿈을 실현시킴으로써 인류 최초의 유인 비행에 성공했다. 그때의 비행 기록은 고도 1,000미터, 체공 시간 25분, 비행 거리 9킬로미터였다.4. 우리나라의 열기구 역사우리나라에 열기구가 처음 소개된 것은 1983년 주한 독일대사저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기존의 육상 및 수상레포츠에서 항공레포츠 쪽으로도 기울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열기구는 향후 발전가능성이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충족시켜 줄 만한 국내 대회나 조직이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5. 한국기구협회1989년 12월 한국기구협회가 정식 발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기구협회는 국제항공연맹 정회원인 대한민국항공회(FKA)의 산하 단체로, 국내의 모든 열기구와 열기구인들에게 국제항공연맹 및 국제기구위원회의 규정과 규칙을 준수하여 안전하게 비행할 수 있도록 각종 지도를 하고 있다.Ⅲ. 행글라이딩1. 행글라이딩이란?행글라이더는 가벼운 알루미늄합금 골조에 질긴 나일론 천을 씌운 활공기로서, 쉽게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으며, 약 20∼35kg의 경량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운반할 수 있다. 또한 조립 후 사람의 주력으로 언덕 아래로 달려가면서 양력을 얻어 이륙하고, 두 발로 사뿐히 착륙하기 때문에 인력활공기라고 하기도 한다. 행글라이더는 종이비행기가 나는 원리와 똑같다. 즉 종이비행기를 손으로 가볍게 던져 주듯이 사람이 행글라이더를 들고 달려주면 양력이 발생되어 이륙이 된다. 조종은 몸의 중심을 이동해주는 방향으로 기체 조작이 일어나는데, 몸을 좌 또는 우로 이동하여 방향전환을 하고, 몸을 전 또는 후로 이동하여 속도조절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비행이 지속되는 원리는 중력을 동력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행글라이더는 산에서 달려서 이륙하여 어느 정도의 고도를 가지고 공중에 뜬 상태에서 중력이 아래로 끌어당기는 힘을 날개의 구조를 통해 앞으로 전진 하는 힘으로 바꾸게 된다. 즉 위치에너지가 전진력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엔진이 없어도 공중에서 뚝 떨어지지 않고 비행을 유지할 수가 있다.2. 역 사행글라이더의 역사는 1948년부터 시작된다. 스탠포드대학 항공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의 전신인 NACA 방계의 Langley 연구소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던 로갈로(Frances M. Rogallo)는 대중들실험한 미국의 Barry Hill Palmer나, 모터보트 견인으로 떠올라가는 평판 연을 로갈로 이론에 따라 삼각날개로 만들고 여기에 조종을 위한 삼각 콘트롤바를 단 ohn Dickenson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John Dickenson은 호주 시골 구석에서 잡지에 난 로갈로 윙의 사진 한 장을 보고 만들어보기로 하고 63년에 "Ski Wing"이라는 모터보트 견인비행용 날개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은 이전까지 없던 콘트롤바를 장착하였고, 오늘날 알려진 초기 로갈로타입 행글라이더의 모양을 처음 구현해 낸 것으로 매우 중요한 업적을 이루었다. 로갈로의 삼각날개 이론과 디킨슨의 엔지니어링이 결합함으로써 오늘날의 스포츠 행글라이딩이 탄생된 것이다. 디킨슨은 1967년 빌 베네트(Bill Bennette)와 빌 모이스(Bill Moyes) 등에게 수상스키를 신고 모터보트로 견인되어 비행하는 기술을 전수하였다. 그들은 어느 날 우연한 사고로 견인줄을 끊고 자유비행을 하게 됨으로써 로갈로 날개의 기막힌 활공성능을 알게 되었고, 이것은 그들로서는 보트 토잉에 의한 연같은 비행에서 자유 활공의 세계를 처음으로 경험한 일대 사건이었고, 신세계의 발견이었다. 그들은 1969년 미국과 유럽으로 각자 옮겨 이 새로운 비행기술을 보급하기 시작하였는데, 미국에서 먼저 크게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한편 이들과는 별도로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언덕에서 발로 뛰어 이륙하는 전형적인 비행실험들이 여러 사람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71년도에 접어들면서 이들은 서로 뜻을 모아 활공대회를 갖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1971년 5월 23일 세계 첫 행글라이딩대회인 릴리엔탈대회가 미국에서 개최되었고, 1975년에는 국제항공연맹(FAI) 산하에 국제행글라이딩위원회(CIVL)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CIVL이 창설된 이듬 해인 1976년에 오스트리아 쾨센에서 첫 세계선수권대회가 개최되었고, 79년 2회 대회(프랑스 그레노블)에 이어 매 2년마다 한번씩 열려 99년으로 12회째 개최되고 있다. 우리 나라에었다.
    예체능| 2009.12.09| 6페이지| 1,000원| 조회(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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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상스키 평가A+최고예요
    수상스키의 유래수상스키의 기원과 발전은 1920년대 발생되었다고는 하나 뚜렷한 근거는 없으며 미국의 어린소년 Palph Swamvel에 의해서 1922년 창안되었다는 주장이 강하다.이 소년은 스노우 스키를 좋아했기 때문에 여름에도 스키를 즐길 수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모색한 것이 물위에서 서게 하는 것으로 비행정을 이용하여 27m길이의 판자를 스키처럼 이용하여 모험을 결심하고 연습한 것이 오늘날의 스키형태로 이끌었으며 진입로를 설치해서 점프스키로 연습하고 수차례 반복한 결과 좀 더 속력이 있어야 하므로 쾌속정을 이용하여 시작한 것이 오늘날의 수상스키가 창안된 기원이라고 볼 수 있다.초기의 수상 활주판에서 변화를 거듭하여 50여년이 지난 현재에 과학적으로 설계되고 강력한 엔진을 부착하여 저렴한 값으로 배를 개발함에 따라 세계적으로 수상스키가 보급되었으며 경제여건이 향상되고 여가시간의 여유로 레저스포츠 활동에서 확대되었으며 수상스키의 인식도가 높아져 스포츠로 전환되고 신체적인면과 정신적인면의 건강증진에 미치는 영향이 크게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초기의 아쿠아프레인 (AQAPLANE)이라는 장방형의 판자위에서 낮은 속도의 비행정에 이끌려서 타던 수상스키는 이러한 쾌속정과 길고 폭이 좁은 스키, 핸들과 로프의 출현으로 발전적인 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단순한 판자에서 로프를 잡고 보트에 이끌리는 스키로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동안에도 스키는 무겁고 유치했으며 보트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이후 50여년이 지난 최근에 이르러서야 강력한 엔진을 장착하고 비싸지 않은 보트가 개발됨으로써 세계적으로 경기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세계 제 2차대전 전까지 수상스키방법과 기술 그리고 경기규칙들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서히 발전적인 단계를 거치다가 세계대전이 끝난 바로 이듬해 1946년에 세계수상스키연맹(WORLD WATERSKI UNION:WWSU)이 유럽의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창설되었다. 이 세계연맹의 창설로 수상스키의 국가 간의 조직 및 규칙은 급속도로 발전되었으며, 마침내.25m, 10.75m, 로 줄여서 경기를 하여야 하며 이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통과한 부이 의 갯수가 자신의 총점이 된다.2. 점프 경기장점프경기는 높이 1.8m 폭 6.7m의 램프 위를 통과하여 공중에서의 비행거리를 경쟁하는 경기이다. 보트는 GUIDED BUOY사이를 직진하고 선수는 점프 램프위로 올라가서 비행하며 또 안전하게 착수하여야 한다. 그러나 선수는 착수 후에 100m전방에 표시된 BUOY까 지 활주하여야 성공으로 인정한다. 착수 후 전복된 경우는 득점이 되지 않으며 3회의 시기로서 제일 좋은 기록을 인정한다. 보트의 스피드는 남자 57km/H이하 여자51km/H 이하에서 선수가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다.3. 트릭 경기장직선거리 175m의 경기장에서 선수는 20초 이내에 수면상에서 회전하거나 자기의 발끝 에 로프를 걸어 연기를 행하며 되돌아오며 연기를 행하여야 한다. 이때 성공 적으로 행한 연기의 종류에 따라 점수를 얻게 되며 난이도 높은 기술을 연속적으로 빨 리 많이 할수록 높은 점수를 얻게 된다.우리나라의 수상스키우리나라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들이 한강에서 시범경기를 가짐으로써 도입되기 시작했다. 1963년에는 문교부(현재의 교육부)가 수상스키를 대학생 체육 종목으로 장려함으로써 급격한 붐을 이루어 내었다. 1970년 대 후반부터는 모터의 수입규제 완화정책에 따라 많은 모터가 국내에 수입되어 이용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현재 수상스키는 서울의 경우 잠실대교와 광진교 사이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서울근교의 경우에는 청평, 팔당댐, 양수리, 남이섬 등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외에도 충청도의 충주호, 대청호, 부산 광안리, 낙동강 하구 등 전국 각지에서 수상스키가 이루어지고 있다.198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적 발전과 여가시간의 증가, 새로운 스포츠에 대한 관심 등으로 인하여, 수상스키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동호인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인 동시에 전국 각 지역의 강줄기, 호수는 동안 몸 전체의 균형을 잘 유지해야 하므로 균형 감각을 발달시키는데 유용하며, 간단한 기초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지만, 고급 기술을 배우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종목이기도 하다.수상스키는 모터보트와 함께 물에서 행하는 스포츠이므로 안전을 제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수영을 잘 할 필요는 없지만 수영에 자신을 가져야 하며 구명복을 항상 착용하여야 한다.- 낚시꾼이나 수영하는 사람, 암초, 교량 등이 있는 곳에서는 절대 스키를 타지 말아야 한다.- 끈으로 몸을 감고 타지 않는다.- 물깊이가 너무 얕거나 물 밑의 상태를 모르는 곳에서는 스키를 타지 말아야 한다.- 파도가 높을 때에는 스키를 타지 말아야 한다.- 밤에는 스키를 타지 말아야 한다.- 한 보트를 가지고 두명 이상이 할 때는 줄의 길이를 똑같이 해야 한다.- 보트에는 운전하는 사람과 수신호를 하는 보조자가 함께 타야 한다.- 같은 장소에서 여러 대의 보트를 운행할 때에는 앞 보트의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과의 거리를 70m이상 유지해야 한다.- 물에 빠져 있는 스키어에게 접근할 때는 천천히 반원을 그리며 접근한다.- 넘어질 때는 잡고 있는 줄을 과감히 놓는다.- 출반전에 운전자와 반드시 신호에 대해서 확인하고 실시한다.수상스키는 앞에서 모터보트가 끌어주는 운동이기 때문에 모터를 운전하는 운전자와 수상스키어 사이에 의사전달을 할 수 있는 수신호가 필요하다.모터보트에는 자격을 가진 운전자와 신호 법을 아는 보조자가 함께 타며보조자는 뒤로 돌아서서 스키 타는 사람을 항상 주시하고 스키 타는 사람의 신호를 운전자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스키를 타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신호는 다음과 같다.- 속도를 낮춰라 : 엄지손가락을 아래쪽으로 내린다.- 속도를 올려라 : 엄지손가락을 위쪽으로 올린다.- 속도가 적당하다 :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고 나머지 손가락은 가지런히 모아 편다.- 안전신호 : 스키어가 물에 빠진 후 안전하다는 신호로 두팔을 들어 올려 악수하듯이 잡는다.- 다.- 스키자에게 이론을 바탕으로 이러한 자세를 시도해 보도록 한다.자세의 중요함을 재인식 시킨다.- 스키자에게 이끌어 주는 줄 손잡이를 주고 줄을 서서히 당겨서정확한 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지도자는 스키자가 만족스럽게 실행할때까지 이 훈련을 반복시킨다.③ 스키자가 기술을 숙달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④ 출발- 스키자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도와준다.- 지도자는 피교육자 보다 물속에 먼저 들어가서 피교육자가 들어오는 것을 도와준다.- 지도자는 물속에서 피교육자를 뒤에서 받쳐준다.- 줄이 팽팽해지고 스키자가 준비를 갖추면 지도자는 운전자에게 출발 신호를 보낸다.⑤ 감지 및 교정증상 이유 교정뒤로 넘어지거나 줄을 느슨하게 함 팔로 잡아당김 팔을 곧게 펴게함옆으로 넘어짐 힘의 불균형한 분포상태 두 무릎을 평행이 되도록 구부리고 균형 자세를 취한다.앞으로 넘어짐 다리를 곧게 펴고 급히 일어남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서서히 일어난다.물결 가르기 하중을 스키 뒷부분에 가함 하중을 앞에 둔다.스키의 뒷부분으로 하기 배의 가속 시 다리를 이용하지 않고 일어난다.출발 시 배가 가속하면 더 빨리 일어선다.균형의 상실 너무 경직된 상태의 신체 허리에서 약간 앞으로 무릎을 구부린다.출발 다리의 벌어짐 기본적인 출발 자세의 상실 무릎 밖으로 팔을 위치하여 가슴에서 무릎을 당겨 올리고 지도자는 앞에 서서 스키의 선단을 잡을 수 있다.⑥ 암록 방법- 지도자는 동일한 길이의 줄을 사용하며 피교육자 옆에서 스키를 탄다.- 출발자세에서 지도자는 피교육자의 팔꿈치 바로 윗부분을 잡는다.- 안정감을 제공하여 피교육자의 팔을 펼 수 있도록 하여 준다.- 피교육자가 전혀 균형을 잡이 못하면 지도자는 피교육자에게 접근하여반대편 팔의 팔꿈치 위를 잡아 준다.- 일어선 상태에서 지도자는 스키자가 적당한 자세를 취할 때까지옆에서 슬며시 그를 지탱시켜 준다.⑧ 보디록 또는 스트래들- 지도는 약간 더 긴 줄을 사용하여 피교육자 바로 뒤에서 스키를 탄다.- 출발하기 위하여 지도자는 자신의 스키를 피교육자의 스키 들어준 상태로 유지한다.- 스키자로 하여금 어느 쪽의 발이 스키타기에 편안한지를 결정해준다.- 스키자에게 한쪽스키의 감각을 알수 있는 기회를 준다.② 회전 및 항적가로지르기- 회전하는 방향으로 살며시 몸을 기울인다.- 정확한 몸의 자세를 유지한다.- 항적내에서 이리저리 움직인다.- 항적 가로지르기를 유연하게 하기 위해서 무릎을 충격 완화기로 사용한다.- 야구공 잡는 방법을 사용한다.③ 한쪽 스키로 출발하기④ 깊은 물속에서의 출발⑤ 한쪽 스키의 몸의 자세- 스키를 신고 있는 다리는 무릎이 가슴에 닿도록 완전히 굽힌다.- 스키가 없는 발은 뒤로 뻗는다.- 팔은 약간 구부리고 몸의 하중은 스키위에서 동일하게 분포시키며 머리는 들어준다.- 스키가 하중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빨리 움질일 때까지 출발을 다소 지연한다.- 몸이 물 밖으로 올라오는 동안에 어깨는 스키를 신은 다리와 일직선이 되도록 하기위하여 계속 뒤로 움직인다.- 균형을 잡을 때까지 스키가 없는 발은 계속 물에 끌리게 한다.- 보트와 일치하도록 스키의 선단을 계속 위로 향하게 하여야 한다.⑥ 출발지역에 앉아서의 출발- 스키자가 출발지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으면 배는 천천히 전진한다.- 줄이 팽팽해지고 스키자가 신호를 보내면 배가 속력내기 시작한다.- 스키자는 배의 견인력을 어깨와 등으로 저항한다.- 팔을 굽히고 무릎도 굽히며 머리는 들어준다.- 출발지에서 출발해 나가는 동안 스키자는 균형을 잡을 때까지- 스키가 없는 발을 물에 끌리게 한다.⑦ 얕은 물이나 해변가에서의 출발- 무릎깊이 물에서 스키가 있는 다리는 구부리고 스키의 선단은 물 밖으로 들어 올 리며 스키가 없는 발을 바닥에 댄 상태로 서있는다.- 스키자의 닫힌 면은 약간 배를 향해야 한다. 팔을 견인력에 저항하기 위하여 구 부리고 머리는 든다.- 줄은 스키자로부터 배에까지 일직선을 유지한다.- 시선은 항상 수직 또는 15 상방으로 본다, 허리는 유연성을 최대로 활용하여야 한다.⑧ 스키한쪽 벗기- 스키자가 측면에서 볼 수 있도록 상기 기술을 시범보
    예체능| 2009.06.04| 9페이지| 1,500원| 조회(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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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테뉴의 교육사상과 의의 평가A+최고예요
    16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사상가 가운데 하나였던 몽테뉴는 수상록의 저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인문주의 사상가답게 인간 삶의 여러 영역에 대해 자유롭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그런 이유에서 그는 교육사상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몽테뉴의 교육사상 만큼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그 성격이 다양하게 규정된 예도 드물다. 어떤 사람은 그를 인문주의자로, 어떤 사람은 그를 실학주의자로, 어떤 사람은 그를 자연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들은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수용되어 몽테뉴는 사회적 실학주의를 대표하는 사상가로 이해되고 있다.몽테뉴의 생애와 저술몽테뉴는 1533년 프랑스의 보르도 근교 몽테뉴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젊었을 때 이탈리아에서 살았으며, 비록 학자는 아니었지만, 거기서 학문의 중요성과 정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얻어 고국인 프랑스로 돌아 왔다. 그의 맏아들인 몽테뉴가 태어났을 때 그는 갓난아이를 먼 시골 마을에 보내어, 그 아이가 농부들 사이에서 살면서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 태도를 배우게 하였다. 한 두 해가 지난 뒤에 아버지는 아이를 자기 집에 도로 데리고 왔다. 여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어린 몽테뉴는 학문과 교양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면서 추호의 강요나 노력도 없이 학문의 첫발자국을 떼어 놓을 수 있었다. 그 아버지는 교육에 관하여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통상의 교육방법에 불만을 품고 아들의 교육문제에 관하여 여러 부류의 친지들과 상의했다.그가 여섯 살 때 아들을 보통 방식대로 교육시키려고 보르도에 있는 지옌 중등학교에 보내었고, 몽테뉴가 13세가 될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며 수학했다. 그곳에서 몽테뉴는 처음에는 여러 훌륭한 선생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부에 진척을 보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서 오비드, 버질, 등을 읽으면서 공부에 다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점차 수많은 글들을 섭렵하면서 방대한 양의 문헌에 관한 지식을 얻게 된다.13세가 되던 해인 154저술하기 시작한다.1580년 그는 낯선 세계의 삶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그들로부터 배우기 위해 독일과 스위스 그리고 이태리 등을 여행한다. 여행을 통해 그는 인간 세계의 다양한 모습을 체험하게 되었고, 이 점은 그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낯선 것에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듬해인 1581년부터 1585년까지 그는 보르도 시장으로 봉직하고 1592년 세상을 떠났다.몽테뉴의 생의 최대 업적은 인간의 본성과 그들의 삶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정리한 수상록이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수상록은 세계의 명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애독되었다. 그 안에는 우정, 결혼, 사랑, 독서, 풍속, 습관, 돈, 병, 의학, 건강법, 전쟁, 식욕, 술, 자유, 죽음 등 인간 삶의 수많은 모습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는 그의 삶을 통해 스스로 관심 갖고, 체험하고, 검토하고, 정리한 슬기로운 사실을 적고 있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몽테뉴의 교육사상교육비판몽테뉴가 16세기에 살았다는 것이 말해주듯이, 사상사적으로 그는 르네상스와 인문주의의 영향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그가 성장하면서 배웠던 것들 가운데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다. 중세의 신 중심사회에서 탈피하여 인간의 이성과 자유를 바탕으로 한 인간의 삶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 인문주의자들은 그것의 사상적 기초를 고대의 인본주의 사회에서 찾았고, 고대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고전어를 중요한 통로로 파악했다. 때문에 근세 인문주의자들은 언어교육을 강조했고, 인문주의 교육은 곧 언어교육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언어와 언어교육에 대한 인문주의자들의 이러한 강조는 근세 교육이 지나치게 언어 그 자체만을 강조해, 언어적 지식을 암기하고 습득하는 것만이 교육의 모두를 차지하는 문제점도 낳게 되었다. 고대 인본주의 정신과 사상을 받아들이는 통로요 수단이었던 언어와 고전어 교육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시킬 때 그러한 지식은 삶의 지혜로 드러날 수 있다고 그는 본다. 즉 교육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그에게 있어서 지식이 아니라 지혜요, 앎이 아니라 삶이다. 지식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고, 그러한 지식이 삶에서 지혜롭고 유용하게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학생들이 단순히 지식을 쌓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을 통해 실제적 삶에 지혜롭게 적용하도록 이끄는 교육을 그는 교육의 기본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의 현학론에서 몽테뉴는 지식과 행위 앎과 삶의 단절이 아니라, 그것의 밀접한 관련성을 강조하며 바로 여기서 지식과 학식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고 본다.그는 교육이 본질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에 대한 논의에서, 그는 언어 보다는 사물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언어를 배우는 것을 통해 사물을 익힐 수 있다고 보지 않고, 먼저 사물을 파악했을 때 그러한 것이 언어로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언어도 그는 현학적이고 규율에 얽매인 언어를 반대하고,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생활언어이면서도 그것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러한 진실된 언어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당시 인문주의 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비판과 함께 몽테뉴는 자신의 새롭고도 진보된 교육관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먼저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자신의 교육사상을 전개하고 있다.인간이해몽테뉴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성된 하나의 전체로 보고 있다. 인간 존재를 사고하는 존재와 행위 하는 존재로 나누고 있는데 이두가지는 동등하고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등하고 서로 나눌 수 없는 하나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몽테뉴가 인간이해에 있어서의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인간이해 방식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의 플라톤 이후 중세의 아우구티누스, 근세의 데카르트 근대의 칸트에 이르기 까지 주요 사상가들은 인간을 영과 육의 두 가지로 나누어 보고, 영혼과 정신을 영원한 우월한 것 완전한 인간이란 그에게 있어서 더 나아가 주체적 인간을 의미하나다. 전통이나 관습에 따르기 보다는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적극적으로 행위 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이렇게 몽테뉴는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도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촉구하고 있다.교육목적이상적 인간인 완전한 인간이 갖추어야 할 목록을 몽테뉴는 그의 글 아동교육론에서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덕, 지혜, 양심, 판단력 등 이라한 것들은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자질들이다. 이러한 목록 가운데 몽테뉴는 특별히 두 가지 점을 강조했는데, 하나는 덕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이다 덕은 그의 아동교육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교육목적이다. 덕에 대해 몽테뉴는 “억의 가치와 고귀함은 편안함과 유용성, 그리고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의 기쁨에 놓여 있다. … 덕의무기는 강력함이 아니라 온건함이다. … 덕은 삶을 사랑하고, 아름다움과 영광과 건강을 사랑한다. 그러나 덕의 숭고하고도 특별한 임무는 이들 모든 좋은 것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이용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이 임무는 어려우나 대단히 고귀한 것으로, 그 것 없이는 인생의 전 과정은 부자연스럽고 무질서하고 추한 것이 된다.”덕과 함께 몽테뉴는 지혜를 교육의 목적으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지혜는 몽테뉴에게 있어서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바르게 판단하고 살아가는 능력을 의미한다.교육내용몽테뉴의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은 ‘삶과의 관련성’이다. 이 점은 그가 당시 지식주의 교육을 반대하는 것에서도 확인될 뿐 아니라, 그의 교육목적에서도 지식이나 학식 보다는 덕과 삶의 지혜가 강조된다는 것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그의 교육원칙은 그의 교육내용에 대한 이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삶과의 관련성’이란 교육원칙은 그가 교육내용을 대단히 포괄적인 것으로 생각하도록 이끈다. 즉, 그는 삶과 관련된 모든 것, 삶의 세계 전체를 교육내용으로 보고 있다. 이 점 때문에 그의 교육사상은 후에 학교교육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받아 들여 지기도 이루어 져야한다. 이런 뜻에서 그는 남자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여행을 하고 세상 견문을 넓힐 것을 권한다. 세 번째는 삶의 풍습과 역사적 사건들이다. 세계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 관한 지식과 함께, 역사상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 관한 지식을 몽테뉴는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역사를 배우는 것을 통해 학생들은 최고의 시대에 살았던 위대한 영혼들과 접하게 된다. 오로지 사실과 날짜만을 가르치고 그것을 암기만 한다면 역사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지만, 플루타크가 그 훌륭한 보기를 보여 준 대로, 판단을 구사할 자료로 사용된다면, 역사는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곳에 빛을 던져 주는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공부라고 그는 본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학생들로 하여금 현명하게 하고 잘 사는 방법을 가르친 다음에 몽테뉴는 논리학, 물리학, 기하학, 수사학 등 일반적인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할 때 비로소 그러한 일반적인 교육은 교육의 목적에 맞게 이루어 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교육방법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삶에 유용한 교육내용을 가르치는 방법을 몽테뉴는 몇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먼저 당시 교육방법으로서 성행하던 체벌교육과 훈련교육을 강력히 비판한다. 몽테뉴는 이러한 교육을 담당하는 학교를 감옥으로 학생들은 죄수로 비유하고 있다. 그가 체벌교육과 훈련교육을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부드럽고 고귀한 어린이들의 영혼을 조화롭게 성장시키는 데 방해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과 함께 그는 학습이 유쾌한 분위기에서 이루어 질 것을 강조 하고 있다. 몽테뉴에게 있어서 교사의 과제는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을 때로는 가르치고 이끌며, 때로는 학생들이 스스로 해 보도록 하고, 판단하도록 하고, 배운 것을 적용해 보도록 하면서, 그들의 자발적이고 자유적인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할 때 학생들은 주체적인 자유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탐구 학습을 강조하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법이다.
    교육학| 2009.06.04| 6페이지| 1,500원| 조회(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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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밀에 대한 나의 첫인상하루에 몇 시간씩 머무는 곳이 도서관이지만 책을 빌려본 기억은 거의 없는 거 같다. 임용이란 핑계로 학습서외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겐 시간낭비이고 사치라 생각 했었는지 모른다. 의도야 어째든 난 책을 빌렸고 이제 겨우 한권을 다 읽고 그 느낌을 글로 옮기려 한다.처음 도서관에서 에밀을 만났을 때 딱딱하고 어딘가 모르게 거부감이 느끼는 겉표지 결코 얇지 않은 책두께 게다가 18세기의 대표적 교육자이자 철학자인 에밀의 저자 루소 이 모든 것 이 날 부담스럽고 피곤을 불러왔다.저자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내가 생각하는 루소루소라 하면은 성선설, 자연으로 돌아가라 민주주의 사상의 혁명적 기초가 된 철학자로써 과학 예술 교육에도 거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책을 읽기 전 그를 조사하면서 과연 그가 교육자로써 도덕적이며 과연 교육을 논하는 자격이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그는 5명의 자신의 아이를 모두 고아원에 버렸다. 고백론7~8권을 보면 그는 이렇게 변명을 한다. “어쨌든 난 그러한 이유로 아이를 키울 수 없었고 그들을 공공 교육에 위탁해서 건달이나 사기꾼보다 차라리 노동자나 농민이 되도록 하면 시민으로서나 아버지로서의 행위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믿고 나 자신을 플라톤의 공화국의 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자시 부모를 증오하고 어쩌면 배신하도록 키워 진다면 차라리 자기 부모를 전혀 모르는 편이 백배 낫다” 이러한 변명은 자기 자신은 추잡한 협잡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과 무엇이 틀리지 않다는 건가? 고백론에서 그의 아버지는 상당히 훌륭한 아버지로 묘사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아버지로서의 의무를 회피했던 사람이며 루소는 아버지와 함께 산 불안한 유년 시절은 평생 그를 짓눌렀다고 한다. 그런 루소로서는 차라리 아이들이 가족에게서 떨어져 양육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심리적 나약함은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변명해줄 수는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다시 방랑과 피신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778년에 파리로 돌아와 급사하였다.루소의 업적장자크 루소는 자신이 살던 계몽사상시대에 주장된 합리주의적 통념, 즉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진보를 가져온다는 생각을 공격하고, 낭만주의적 감수성을 제창하여 지배적인 합리주의에 대항시켰으며, 근대적 정치의 기치위에 민주주의 정치와 전체주의정치라는 상호 대립하는 슬로건을 처음으로 적어 넣은 혁명적 사상사였다.그의 책 ?에밀?교육의 대상과 목적에밀은 여러 가지 면에서 혁명적인 작품으로 뽑힌다. 그 혁명적 성격은 우선 교육의 대상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되었다. 전통적인 기독교 교육관은 원죄설에 입각해 어린이를 바라본다. 세상은 악이고 어린이에게는 그런 악과 싸울 힘도 의지도 이성도 결핍되어 있으므로 종교가 이를 지켜주어야 하며 교육의 목적은 이렇게 악에 물들기 쉬운 성향을 갖고 있는 나약한 어린이를 그리스도의 모방을 통해 구원의 길로 인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교육관은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 이후에 강력한 도전을 받는다. 르네상스의 본질적인 특징 중의 하나인 자연과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를 근거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명구를 교육의 좌우명으로 삼았다. 이러한 보편적인 인간을 대상으로 해서 보편적인 인간을 창조하려는 교육의 시작은 루소의 등장을 기다려야 했다. “어린이의 발견” 또는 “어린이의 복음서”로 알려진 에밀은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 하였다.인간은 만물의 질서 속에 제자리를 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도 인생의 질서 속에 제자리가 있다. 어른은 어른으로,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 바라보아야 한다.자연은 어린아이가 어린이 되기 전에 어린아이로 있기를 원한다. 만약 우리가 이 순서를 뒤바꾸려고 한다면 다 익지 않아 맛없는 곧 썩어버릴 설익은 열매가 맺게 될 것이다.(에밀 2권)루소는 여기서 자연의 선성을 최대한 간직한 채 현재의 타락한 사회 상태에서도 악에 물들지 않고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상을 의 내부에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과 기관을 자연의 원래 의도에 따라 발달시키는 것이다. 이는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이 단계에서는 오직 자연의 순조로운 발달을 위해 그 발달을 방해하는 것을 막는 소극적 교육이 주가 되어야한다. 사물에 의한 교육은 사람이 외부 세계의 사물과 접촉해 얻는 체험 또는 경험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의 편견이 아니라 오직 유용성을 통해 인간이 사물과 맺는 관계를 판단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말이나 책을 통하지 않고 실물을 직접 보여주면서 사물을 공부시키는 경험 교육이 주요한 교육 방법으로 제시된다. 인간에 의한 교육은 교육자의 재량이 가장 자유롭게 발휘될 수 있는 교육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시작되는 단계인데 이 과정에서 비로소 사회의 인간관계를 적극적으로 가르치는 사회 교육이 시작된다. 이성을 발달시키고 도덕적 미덕을 갖추게 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자연인이 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전환될 수 있는 가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핵심적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5권으로 나뉜 에밀은 연령에 따른 교육의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을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1권1권에서는 출생에서부터 말을 배울 무렵인 5세까지를 다룬다. 에밀에 등장하는 교사는 자신의 교육을 위해 상상의 제자를 둔다. 교사는 이 아이에 대해 모든 권리를 갖고 있으며 출생할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그를 지도할 것이다. 제자인 에밀은 부자이고 귀족 출신이며 보통의 지능을 지닌 어린아이인데 이러한 조건은 순전히 교육의 편의를 위해 설정한 것이다. 루소는 우선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사람은 어머니이고 아이에게 교사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버지여야 함을 천명한다. 배내옷 등을 비롯해 젖먹이의 자연적인 신체 발달을 저해하는 모든 것들은 배제되어야 하고 자연이 젖먹이에게 가하는 모든 시련은 가능한 한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적인 욕구는 즉각적으로 충족시켜주어야 하지만, 변덕이나 고집에서 오는 욕구는 결코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 너무 말을 일될 수 있는 한 사회적 관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지만 사회에서 독립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미 모든 도구들을 다룰 줄 아는 에밀이 선택할 직업은 비교적 혼자 독립해 일할 수 있고 정신적 능력도 함께 배양할 수 있는 목수 일이다. 이러한 직업 교육과 더불어 에밀은 인간들의 상호 의존성, 교환의 유용성, 평등, 노동의 필요성 등을 깨달아갈 것이다.4권4권은 사춘기를 포함해 15세부터 20세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기간을 루소는 제2의 탄생이라고 말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전까지는 성으로 존재하지 않고 그냥 인간이었던 존재가 비로소 남성과 여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사회적 관계에 대해 공부할 시기도 바로 이때다. 이 시기에 인간의 자기애는 이웃에 대한 동정을 통해 자신의 바깥으로 확산되어 나가기 때문이다. 이성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상상력을 진정시켜 격렬한 정념을 될 수 있는 대로 늦추어야 한다. 반대로 인간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우정이나 동정같은 감정은 조장해야 한다. 마침내 사랑의 욕구가 그의 마음을 지배할 때, 무분별한 욕망을 경계하면서 그에게 이상적인 여인을 묘사해 그 맹목적인 욕망이 지향할 목표를 제시해주어야 한다. 에밀의 내면에서 사회적 욕구가 깨어남과 더불어 그는 사회를 공부해야 한다. 에밀은 역사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읽는 훈련을 하게 될 것이다. 종교 교육은 권위에 근거한 논증이나 계시 신학을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충분히 자율적이 된 의식에, 그리고 유물론의 부정적인 주장을 물리칠 정도로 충분히 감성적이 된 영혼에 부과되어야 한다. 사부아 보좌신부는 에밀에게 양심의 소리와 내적 감정의 필요에 기초를 둔 자연종교를 설교한다. 우주만물은 서로 조화를 이루는 질서 안에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이 질서를 지배하는 의지는 신이다.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신은 그 속성이 선하므로 신에 의해 만들어진 인간도 선할 수밖에 없다. 악은 인간이 모여 사는 시회에서 만들어진 것이을 파악하는 것이다. 루소는 사회가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정신적 욕구에 의해 성립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 사회를 형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되는 언어가 물직적 욕구가 아닌 정신적 욕구, 즉 정념에서 나왔다는 루소의 발언에서 확인된다.사실 우리가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 고통스러워하는 동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디시 말해 우리의 존재를 떠나 그의 존재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동정심에 마음이 동요되겠는가? 우리는 그가 고통스러워한다고 판단하는 한에서만 고통스러워한다.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서가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든 상상력이 활해져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할 때만 감성을 갖게 된다.(에밀 4권)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 타인과 동화된다. 동정심을 느끼는 인간은 자신이 체험한 과거의 고통과 앞으로 체험할 수 있을 미래의 고통을 환기하면서 현재 자신의 고통이 아닌 타인의 고통을 동정한다.나의 에밀은 지금까지는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았지만, 자신과 동류인 인간들에게 최초로 시선을 돌리면서 자신을 그들과 비교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비교가 그의 마음에 일으키는 최초의 감정은 제1위를 차지하려는 욕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기애가 이기심으로 변하며, 비교에서 기인하는 모든 정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에밀 4권)이기적인 인간에게 타인은 결코 내면적으로 동화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로지 외면적으로 비교되는 존재다. 즉 타인은 외면적으로는 자기와 같은 존재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자기보다 열등한 존재 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심은 실제로 실현 불가능한 정념이다. 왜냐하면 이기심이라는 감정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를 더 좋아하면서,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들 자신보다 자기를 더 좋아하기를 요구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인간의 유일한 목적은 타인을 정복하고 그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격성이 극단적인 상태로 가면 이기적인 인권)
    교육학| 2009.05.04| 9페이지| 2,000원| 조회(1,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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