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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오 순더마이어의 선교신학의 유형과 과제 1부에 대한 서평 및 독서평
    선교신학의 유형과 과제반성으로부터 성숙으로들어가는 말테오 순더마이어 교수는 교회의 본질이 곧 선교라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아직도 교회의 여러 역할들 중의 하나로 선교를 여기고 있는 많은 한국 교회의 현실에 대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더마이어는 오히려 한걸음 더 나아가 복음을 증언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그 실존권리를 상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 시대, 우리의 종교적 사회적 콘텍스트에서 교회의 선교적 차원을 새롭게 숙고할 것을 요청한다. 그는 선교에서 타자와 파트너로서의 만남을 중시한다. 그는 만남에 있어서 주체와 타자, 주체의 문화와 타자의 문화와의 관계가 고정되어 있다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며, 교회는 자기 위치의 불변성을 고수하고자 하는 욕심을 벗어버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가 말하고 있는 문화의 자리는 주체만의 일방적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와 객체의 상호간의 참여와 의존에서 이루어지는 만남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께하는” 파트너로서의 관계와 그 위치에서의 상호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서로에게 배우며 진리를 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타문화와 종교에 대한 열린 마음을 견지하는 자세를 오늘날 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로 제시하고 있다.이 책에는 순더마이어의 논문이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묶여있다. 그러나 나는 제1부 선교신학의 유형과 과제를 그 안의 소제를 따라 살피면서 과거 선교학의 지배적 패러다임과 그에 대한 비판적 대안들로 제시되는 몇몇 패러다임들을 정리하고 결국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할 선교 패러다임을 순더마이어의 입장을 빌려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본론순더마이어는 선교신학적 유형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 유형들을 크게 회심유형과 이식유형, 구원사적 유형, 약속사적 유형, 의사소통적 유형으로 구분한다. 순더마이어는 먼저 선교가 비그리스도교인들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의하는 바르넥의 주장을 “회심유형”으로 소개한다. “사적 유형이 하나님 자신의 파송만이 중요시되고 아들의 파송과 성령에 의한 교회의 파송이 중요시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원사적 모델과 다르다는 것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의사소통적 유형에 대해 저자는 니다의 입장을 소개하면서 의사소통이 비그리스도교인들에게로의 선교적 보내심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예수의 비하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도 타인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으로 정리한다.순더마이어는 오늘날 선교신학에 제기되는 문제들을 두 가지 측면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적이라는 서구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세속화 과정의 문제, 서구 국가의 세계 지배와 서구 문화의 지배력의 종말, 종교들의 자의식 강화와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 새로운 종교 혹은 유사종교적 운동들, 효과적인 도움을 주면서 많은 사람들의 윤리적 방향성을 규정하는 새로운 종교운동들의 문제 등의 밖으로부터 제기되는 문제들과 성서 해석학의 입장, 가톨릭 교회측에서도 제기된 타종교 안에서의 구원 가능성 문제, 교회가 선포하는 사신과 그에 상응하지 못하는 교인들의 삶의 모순, 그리스도교인의 비그리스도교적 삶 등 내적 문제, 특히 선교를 문제시하는 신학적 문제들이 그것이다. 이어서 저자는 구약성서와 예수, 복음서들과 사도행전들을 살피면서 각각의 선교신학내용을 정리한다. 저자는 구약성서를 다루면서 모든 민족은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였고 아브라함은 보내심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의 보내심에 대해서저자는 예수가 사람들 가운데서 함께 살았으며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에 관심을 두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예수의 선교를 정리한다. 이어서 저자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선교신학을 검토한다. 마태복음에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 존재 자체로서 선교적이고, 마태에게는 예수의 선포가 그 제한을 넘어서서 언제 어디에서나 가르쳐져야 할 표현임이 중요했다. 마가복음은 예수가 선교사들을 어떻게 양성하였는지를 서술한다. 복음을 믿는 자가 세 가지 유형을 소개한다. 첫째 유형은 적극적 개간을 지향하는 예언자적 위임, 두 번째 유형은 바울의 입장인 선택적 수용, 세 번째 유형은 성육신 유형이다. 저자는 타종교와의 만남, 상호 문화 간의 만남을 신학적으로 평가하는 데 있어서 다른 문화의 주체성이 존중되고 고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함께 사는 삶이 선교적 증언의 가능조건이라는 것을 고려하면서 타종교와의 대화가 형제들의 대화와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윽고 저자는 한국의 민중신학과 아프리카와 남미의 해방신학을 탐구하면서 함께 사는 삶의 경험이 언제나 상호의존적인 사건, 즉 실존의 권리를 격려하면서 타인의 인간적 존엄성을 조건없이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보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순더마이어는 2장에서 오늘의 오이쿠메네 실존의 기본구조로서의 콘비벤츠를 다루고 있다. 순더마이어가 말하는 콘비벤츠란 “함께 서로에게서 배우는 사람들의 배움공동체”이다. 따라서 콘비벤츠에서 만나는 타자는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자신을 배우는 공동체로 이해함으로써 교회는 권력욕에서 해방되어 소수로서 자신의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일을 자기 자신의 일로 만드는 것”을 배운다. 또한 콘비벤츠는 협동적인 공동생활의 창조에서만이 아니라, 떠들썩한 잔치 속에서 표현된다. 잔치를 벌이는 동안 사회적 차이들은 지양되며 이때 사람들은 옛 전통 안에 머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종교를 받아들이면서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저자는 “타인을 위한”교회가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는 권력 집중에 따른 우월감을, 도움을 받는 사람에게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하는”교회를 요청한다. 저자는 콘비벤츠의 개념을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서 해석, 발전시키면서 콘비벤츠가 상호타자성에 의존하여 진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 과정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특히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삶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새로운 삶의 이해와 모든 사람이 구원에 대한 의 역사와 패러다임의 전환, 문화간 다양성과 정체성, 타자와의 만남 속에 있는 선교에 대한 주제들을 다루면서 이해하는 선교학을 위한 변론을 한다. 저자는 선교적 과제를 비그리스도교인이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고 확대하는 것으로 규정했던 바르넥으로 부터 사회?윤리적 참여를 중시한 호켄다이크에 이르기까지 선교학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1950년대까지는 바르넥의 국가교회적 선교패러다임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52년 빌링엔 선교대회에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개념이 호켄다이크에 의해 제시되면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구원사적/약속사적 모델의 논쟁이 일었다. 구원사적 모델에서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행동이, 약속사적 모델에서는 하나님의 해방하는 활동이 중요하다. 전자는 가난과 억압, 해방의 문제를 가장 나중에 거론하였지만 후자는 사회분석과 해방하는 사회적 참여를 가장 먼저 거론하였다. 이 두 모델이 화해할 지점을 찾지 못하자 선교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호소가 더욱 커지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서구 문화와는 다른 문화권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면서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경청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약성서학자들은 신약성서의 ‘어떤 것’에 대한 하나의 문자적 의미나, 영원히 고정된 의미는 없다고 지적한다. 있는 것은 다만 새롭게 읽고 들음으로써 각각의 이해의 틀에서 다르게 조명되고 해석되는 증언뿐이다. 우리는 단지 텍스트 안에 있는, 곧 증언자의 텍스트 안에 있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나 텍스트에 대한 ‘내 자신’의 이해를 만날 뿐이다. 텍스트의 유일한 의미를 나는 만나지 못한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려고 한다. 이 진리는 언제나 나 자신의 통찰보다 크고, 고백을 통해 걸러진 진리이해보다도 더 크다. 성서의 말씀과 문장들은 아람어에서 그리스어로, 로마언어와 로마 문화로 번역되고 이전될 때에만 변한 것이 아니라, 줄루, 나마, 타밀 문화로 이전될 때 새로운 ‘의미’를 객체이며 동시에 메시지의 주체이다. 정체성이란 자기 자신이나 자기 나라 사람들과의 일생생활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하여, 다른 민족을 통하여 발견된다. 다른 부족과 다른 민족들이 있기 때문에 바로 내 민족, 내 부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그의 다름 속에서 우리에게 삶의 권리와 삶의 공간을 준다. 이해하는 선교학은 그 사고에서 다른 사람, 낯선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향하기 때문에, 증언과 해방의 양 진영 간의 대립을 잘못된 것으로 인식한다. 중요한 것은 증언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 속에 있는 인간과 관계되는 것이다.순더마이어는 4장에서 토착화와 혼합주의의 관계규정에 대한 문제를 거론한다. 가톨릭 전통에서 나온 ‘문화토착화’라는 용어는 기존의 문화적 전통이 교육과 사회화를 통하여 내면화되는 과정을 서술하는 개념을 말한다. 이것은 ‘성육신’개념을 지향하는데, 뮐러는 문화토착화의 과정을 “말씀이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또 이 구체적인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가 되었던 것처럼, 예수의 사신도 새로운 문화 속에 성육신해야 한다. 즉 새로운 형태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토착화라는 개념이 성육신사건을 지향한다면, 문화토착화의 주체는 육체가 된 말씀에 관한 복음일 뿐이다. 그러므로 문화토착화 개념은 ‘케노시스’개념을 통하여 해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자기 모습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케노시스적인 문화토착화의 길에서는 누구도 옛날의 모습으로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러나 복음은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변화시킨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자신의 문화적인 한계 안에 갇혀 있었는지를 인식하고 그것을 변화시킨다. 혼합주의는 ‘공생적 혼합주의’와 ‘종합적 혼합주의’로 나뉘는데, ‘공생적 혼합주의’는 일차적이고 기존적인 종교경험과 이차적이고 새로 들어오는 종교적 경험 사이에서 수직적으로 나타난다. 즉 어떤 상태보다는 과정을 묘사하고, 본래의 난다.
    독후감/창작| 2008.10.18| 5페이지| 2,000원| 조회(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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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주의 시장 경제론과 사회주의 초급단계론
    사회주의 시장 경제론과사회주의 초급 단계론과목명: 현대 중국학담당 교수: 이벽규학번: 199803278성명: 김태욱모택동 이후의 중국지도부는 정치 경제전반에 걸친 개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경제적으로는 마르크스이론을 수정하면서 자본주의를 수용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전통을 유지하려는 이른바 사회주의 `체(體·substance)' -자본주의 `용(用·function)'의 정책을 선택하였다. 이는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한 마르크스 이론과의 결별은 불가능하며 사회주의를 고수하지 않고는 일당통치를 정당화할 수 없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들 중에서 가장 먼저 사회주의 재해석과 개혁을 추진하였고 개혁도 비교적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중국에서의 사회주의 재해석은 1978년 중반부터 1979년 3월 말까지 `진리의 표준'에 대한 논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등소평그룹은 모택동의 “실천은 진리의 표준”이라는 논리를 사용하여 모택동사상에 대한 화국봉의 교조주의적 추종을 실천보다 이론에 치중하는 `형이상학적 이상주의'의 죄악이라고 비난하고 실천의 우위와 이론과 실천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새로운 `변증법적 유물론' 접근으로 이를 대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등소평을 중심으로 한 중국지도부는 `사상해방(思想解放)'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구호 하에 개인숭배와 교조주의의 정신적 굴레에서 해방되고자 했다.1987년 중반부터 1989년 중반까지 중국에서는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개념인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이 표방되었다. 중국은 1950년대에 생산수단 사유제를 사회주의적으로 개조하는 기초를 완성한 때로부터 앞으로 사회주의를 기본적으로 실현할 때까지 최소한 1백년 이상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 모두가 사회주의 초급단계에 속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발전된 사회주의제도와 비교해서 후진적인 물질적 기초에 의해서 정의 내려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은 생산력의 일관된 발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시된 것이다.고르바초프가 사회주의사상의 중심은 인간이라고 주장한 반면에계에서 상품경제를 허용함으로써 경제영역에서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중요한 이탈을 했다. 그러나 정치적 영역에서는 최소한의 조정을 했다.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의 기본노선은 `하나의 중심 두개의 기본점(一個 中心, 兩個 基本點)'으로 경제발전을 중국의 최대 당면과제로 삼되, 이를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개혁·개방과 4항 기본원칙(1 사회주의노선 견지 2 무산계급독재 견지 3 공산당지도 견지 4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모택동사상 견지 등)을 견지한다는 것이다.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은 1989년 6·4 천안문사태를 계기로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1992년초 등소평이 남방을 시찰하면서 발표한 중요담화와 1992년 10월 중국공산당 제14차 전국대표대회를 지표로 삼아 중국의 개혁, 개방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여 절정을 맞게되었다. 등소평은 남방시찰을 하면서 사회주의의 본질은 생산력을 해방 발전시키고 착취를 소멸시키며, 양분화를 없애서 결국에는 공동부유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혁명은 생산력을 해방하는 것이고, 개혁도 역시 생산력을 해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이용에 관해서 등소평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해 비교우위를 획득하려면 반드시 인류사회가 창조한 모든 문명의 성과를 대담하게 흡수하고 본받아야 하며, 현재 자본주의가 발달한 국가를 포함한 세계 각 국의 모든 현대사회화의 생산규칙을 반영한 선진경영방식과 관리방법을 흡수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제14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사회주의 시장경제(socialist market economy)'를 강령에 채택하고 사회주의초급단계와 중국식 사회주의를 본격화하였다. 동 대회는 등소평의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건설이론을 전체 당의 지도적 위치로 확립하고 이 이론으로 전체 당을 무장하도록 제기했으며 당의 기본노선은 1백년 동안 동요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등소평은 경제특구, 도시 등 “특정지역이 먼저 돈을 벌어 나머지 지역을 돕게 한다”는 내용의 `일부 선부론(先富論)'에 따라 개혁·개방정책을 본격화했다. 그 결증가를 가져왔는데, 이 시기를 전후해서 농업생산액을 살펴보면 1975∼1980년의 농업생산액 증가는 16.9%(연평균 3.2%)였으나 사영화가 전개된 1980∼1985년의 생산액은 48.3%(연평균 8.2%)의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여기에 힘입어서 중국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비효율성의 대표인 국유기업의 개조, 금융체제의 개선, 정부기구의 전환 등에 대한 개혁정책을 통하여 자본주의 사회의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개혁과정에서의 정책 변화는 中國共産黨全國代表大會의 報告와, 지도자들의 공식석상에서의 발언, 중국공산당의 기관지인 인민일보 등에서의 발언을 통하여 국내외에 알려져 왔다.1978년 중공11기3중전회에서 실용주의 노선의 개혁개방정책이 주창된 이래, 특히 시장경제 체제의 도입과 관련하여 '시장경제'에 관한 발언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1982년 9월의 제12차 당대회에서는 '계획경제를 주로 하고 시장의 조절을 부수적으로 한다'고하여 '시장'의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이 된다. 1984년 10월의 중공12기3중전회에서는 '사회주의 경제는 공유제를 기초로 한 계획적 상품경제'라 하여 '사회주의상품경제' 개념을 도입하였고 중국의 경제개혁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로써 시장체계의 점진적인 정비를 통한 개혁의 심화를 거론하였다.1987년 10월의 제13차당대회에서는 '사회주의의 계획적 상품경제 체제는 계획과 시장이 내재적으로 통일된 체제'라고 하여 사회주의 경제에서 시장기능의 강화를 주장하였고, 1992년 10월에 열린 제14차당대회에서는 드디어 중국의 경제체제 개혁의 목표는 '사회주의시장경제의 건설'에 있다고 강택민이 선언하였다.2.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이론적 근거'상품경제'와 '시장경제'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87년에 개최된 제13차 당대회에서 체계화되어 발표된 '社會主義初級段階論'이 그 배경이 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 '사회주의초급단계론'을 '사회주의시장경제'의 이론적 근거로 삼는다. 당시 공산당 총서기였던 趙紫陽은 당대회의 보고에서 "우리가 현 단리나라는 소유제 면에서 비록 사회주의 개조가 이미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고는 하지만, 또 혁명시기에 대규모 急風暴雨式 군중 계급투쟁은 이미 기본적으로 끝났다고는 하지만, 그러나 전도된 지주매판계급의 잔재가 아직도 존재하고 자산계급이 아직도 존재하며 소자산계급은 방금 개조되었다. 계급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무산계급과 자산계급간에 존재하는 의식형태 면에서의 계급투쟁은 장기간에 걸친 것이고, 곡절이 있는 것이며, 때로는 매우 격렬한 것이다. 무산계급은 자기의 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개조하고자 하고, 자산계급은 자기의 세계관에 따라 세계를 개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면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간에 누가 승리하고 누가 패했느냐 승부문제는 아직도 진정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睦貞均(1991), 《中國社會主義建設理論》)위의 모택동의 주장과는 달리 조자양은 제13차당대회에서 報告를 통하여 사회주의초급단계와 계급투쟁에 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의 초급단계는 어떠한 역사적 단계인가? 그것은 어떠한 국가라도 사회주의로 진입할 때 거치는 최초의 단계를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특별히 우리나라가 생산력이 낙후되고 상품경제가 발달하지 않은 조건 아래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특정의 단계를 지칭한다. 우리나라가 1950년대에 생산자료의 사유제를 사회주의로 개조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완성을 한 때로부터, 앞으로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할 때까지 적어도 1백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 모두가 사회주의초급단계에 속한다. 이 단계는 사회주의 경제기초가 확립되지 않은 과도시기와도 다르고 이미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한 단계와도 다르다.우리가 현 단계에서 직면하고 있는 주요 모순은 일익 증가하는 인민의 물질, 문화적 수요와 낙후된 사회생산력 사이의 모순이다. 계급투쟁은 일정 범위 내에서 장기적으로 존재할 수는 있지만 이미 주요 모순은 아니다. 현 단계의 주요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상품경제 발전에 전력하고,주체로 여러 경제요소와 다양한 경영방식', '전민소유제에 있어서 정기분리', '다양하고도 정확한 분배원칙', '상품경제발전과 사회주의 시장체제 배양' 등 낙후한 경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국가의 개혁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어야 함을 주장하였으며, 경제제일주의가 국가 건설의 기조가 되어야 하고 생산력의 발전이 국가의 제일의 과제가 되어야 함을 제시하였다.3. 사회주의시장경제의 발전개혁개방 정책이 시행되면서부터 종래의 사회주의 체제에서 일관되게 시행되어 오던 계획경제와는 전혀 상치되는 시장경제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자, 기존 체제와의 이질성 때문에 정부의 정책 수립과 시행 과정에서 혼란이 적지 않았는데, 특히 천안문 사태와 관련하여 개혁개방 정책이 후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민대중의 염려도 있었고,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 유지 및 정부의 정책 추진과 관련하여 학자들은 물론 정부정책의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혼란이 많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만 하였다.또한 90년대에 들어와 시장경제 도입을 위한 개혁이 점차 심화됨에 따라서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 체제의 공존 가능성에 대한 혼란을 피하고, 경제·정치학자들간의 이론적인 논쟁도 종식시키기 위해서 중국의 지도부는 시장경제의 도입에 대한 필요성과 당위성을 역설하게 된다.1992년 등소평은 남순강화에서 "시장경제를 좀 하면 자본주의의 길로 간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런 일은 없다. 계획의 요소가 더 많은가, 시장의 요소가 더 많은가 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 구분이 아니다. 계획경제가 바로 곧 사회주의는 아니며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다. 시장경제가 곧 자본주의는 아니며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 계획도 시장도 다 경제수단인 것이다."라고 하여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사회주의에 속한다' 또는 '자본주의에 속한다'하는 논쟁에서 해방시켰고, 또 "사회주의의 원칙은 첫째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다같이 부유해지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지키는 것은 "투쟁과정이고 설득교육 과정이기도 .
    사회과학| 2007.01.04| 7페이지| 3,000원| 조회(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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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패한 교육과 거짓말을 읽고
    많은 이들이 진실로 믿고 있던 일들이 누군가의 새로운 시각을 통해 거짓과 위선으로 드러날 때 사람들은 충격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믿고 있던 진실을 전복시켜 버린 그 누군가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내게 된다.(물론 거짓으로 드러남으로써 불이익을 당한 이들은 열렬한 비난을 보내겠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 교육의 현실에 대해 애통을 비감하도록 읽게 해 준 촘스키씨에게 난 감사를 느낀다. 미국의 양심, 지성으로 칭송받고 있는 노암 촘스키는 진실 찾기에 끊임없이 몰두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비판적 안목을 견지하여 사회 구석구석을 바라볼 줄 아는 존경하는 진중권씨처럼 촘스키는 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의 교육은 일부 집단이 미리 규정해 놓은 지식을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함으로써 기존의 권력구조를 지탱하도록 사회화하는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교사는 권력층에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커다란 이익을 취하는 전문가 집단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한다. 그는 또 교육 현장인 학교가 대중의 통제, 지배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 선전의 도구로 전락함으로써 학생들은 진실을 보는 비판적 안목을 갖지 못하게 되고 이는 국가나 일부 특권층, 언론의 거짓말에 대중들이 휘둘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 구체적인 현상으로 미국이 제국주의적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학살에 직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어도 많은 대중들은 이것이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한 것이라는 정부와 언론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또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중산층이 소멸되어가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되어도 대중들은 집단최면에 걸린 듯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점을 적시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그러면 이쯤에서 한국의 교육을 촘스키의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구체적으로 가부장적 군사문화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분단 현실에 따른 징병제라는 군사제도와, 박정희를 비롯한 군부 독재를 경험한 우리사회는 뿌리 깊은 내면에까지 가부장적 군사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학교에서도 고스란히 재연된다는 것이다. 학사행정, 각종 학칙들에서부터 학생과 선생님의 실생활 관계에서 나타나는 작은 부분의 모습들까지 말이다. 획일적인 관리를 위한 두발제한, 제식훈련을 방불케 하는 각종의례 절차들. 또는 다수의 인격체인 학생들과 선생 1인의 이른바 황국신민씩 인사법(엄밀한 의미의 인사는 인격체 대 인격체, 즉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개인과 집단-다수의 학생들-의 인사는 인사가 아니라 "경례"인 것이다. 반장이 일어나 차렷, 경례를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라)이나 깍듯한 인사를 강요받는 선후배 관계들 말이다. 이런 미시적인 차원의 문제 말고도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도 심각한 것이다. 이 외에도 모든 것을 점수로만 판단하려는 천박한 결과주의가 시험이라는 제도로 나타난다는 것도 들 수 있겠다. 수치로(이는 필연적으로 물질화 된 것으로 귀결된다. 돈이나 점수 같은 것으로 말이다)만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고방식은 알다시피 부르주아적 자본주의 사회의 상징 중 하나이다.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주위친구들 모두를 경쟁상대로만 인식케하는 면학 분위기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상 대부분의 우리들 학교는 가장 큰 목적을 명문대 입학 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에서 학교 교육은 ‘명문대 간판 따내기 위한 기계’ 로써의 기능밖에 수행하지 못한다.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은 주입된 지식을 재잘대고,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기보다 사회질서에 조용하게 순응하는 기계적인 인간이 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학교 교육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은 결국 학교가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아주 모순적으로는 순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역설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상상해 보아라. 이런 현 사정에서 학생들의 참된 인성의 궤적을 찾는 것은 당연히 모순아니겠는가? 또한 중?고등학교에서 무언인가 잘못했을 때 '선착순으로 뛰어 갔다오기' 같은 기합을 받아보았을 것이다. 이것이 당사자들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게 할까? 한 번 생각해보자. 이런 것들은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기에 긴 말은 하지 않겠다.또한 최근 한국의 이라크 파병은 어떠한가? 석유를 위한 미국의 침략전쟁임이 이미 명백해졌고, 이라크의 많은 민간인들이 잔인하게 학대받고 죽어가는 것을 똑똑히 목도하면서도 국익을 위한 불가피한 파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은 여전히 한국의 교육이 국가중심의 극우적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촘스키는 교육의 목표를 "지배가 아니라 사물에 대한 가치 감각을 길러주는 것이고 자유로운 공동체의 지혜로운 시민을 양성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며, 자유와 개인의 창의성을 시민의식과 결합시키도록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교육이 교육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권력집단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현상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촘스키의 비판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01.04| 3페이지| 1,500원| 조회(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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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후감]모택동의 사생활
    모택동의 사생활I. 책을 읽으면서먼저 모택동의 사생활 1권을 읽으면서 민국 초기부터 지금에까지 중국 인민들에게 거의 신격화된 모택동의 실상과 허상에 관해 짚어볼 수 있음에 무척 흥미로웠다.내가 보기에 모택동은 춘추나 전국 시대에 태어났다면 뛰어난 모사로 활동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처세와 뛰어난 상황 판단에 따른 임기응변은 저 삼국시대 때 백성들의 마음을 덕으로 사로잡았던 유비에 비할 정도다. 비록 유비처럼 의도하지 않는 덕은 아니더라도 모택동은 그 당시 새 시대를 위한 요구가운데 몇 수를 앞선 치밀하고도 계획적인 사고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그렇지만 이러한 모택동을 모택동의 주치의였던 리 즈쑤이를 통하여 비교적 객관적(?)으로다시 바라보고자 한다. 즉, 그의 실상과 드러나는 허상에 관해 문제 의식을 갖고 그를 재조명하려고 한다.처음부터 이 책을 접할 때 몇 가지 제시된 문제를 갖고 바라보았다. 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내 생각을 기술하겠다.II. 문제점을 통해 본 모택동1. 모택동의 이상과 휴머니즘의 충돌에 관하여- 알다시피 모택동은 막스-스탈린, 레닌을 잇는 사회주의자이다. 애초에 막스의 완성되지 않은(완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는 막스의 사회주의 이론이 사회 문제 현상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그 대안이 수행된 이후의 행보에 관해서는 거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권(자유, 평등, 박애등을 위시한 인간의 존엄적 가치)을 향한 자본주의와 다른 하나의 주의였다. 그렇지만 스탈린, 레닌에 이르러 기형적으로 평등이 강조됨으로써 자유와 박애등의 권리가 상대적으로 박탈되었다. 모택동도 이러한 스탈린, 레닌주의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평등의 가치를 가장 상위의 개념으로 여겼다. 결과적으로 인민의 평등 (재산의 공산화, 토지의 공유화 등등)을 위해 인민들은 자유와 박애를 박탈당해야 했다.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싶고, 평등하게 대우되기를 원하며, 사랑을 원한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하나의 약속된 국가를 이루고 그 국가를 유지시키려면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모택동은 평등의 이념을 강조함으로써 다른 가치들에 대한 인간의 요구를 거세시켰다고 할 수 있다.더군다나 마오가 혁명의 대의를 위해 생명은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니 그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가치판단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2. 양심의 자유와 충돌하는 부분- 리 즈쑤이가 사실상 주치의로 있던 곳은 중국이 아닌 모택동의 왕국이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만큼 모택동의 권력과 인민들의 그에 대한 신임은 절대적이었다.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의 저자인 리 즈쑤이도 정치 권력 다툼에 희생되는 동료 의사들에 대해 양심적 변호를 포기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가 왜 양심의 소리를 내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그의 신변의 안전과 가족의 생존이 당과 모택동에게 관련되어 있었음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당시 중국에서는 개인이 자신의 의지를 가질 수 없고 사소한 이견도 허용되지 않았으며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상관에 대한 반항으로 해석될 수 있고, 전체 조직의 분노를 자아낼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양심의 소리를 외친다면 분명 당과 모택동의 심기를 건드리게 되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밖에 없다. 마치 중국 이전의 전제 황권 시대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3. 모택동이 주장한 애국, 민족주의를 세계 시민으로서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애국 = 인민에 대한 충성 => 모택동에 대한 충성 이라는 생각을 가진 모택동이 주장하는 애국, 민족주의란 애초부터 내 민족, 내 국가를 초월하여 범 세계적으로 모든 사람이 자유, 평등, 박애등 인간의 기본적이고 존엄적인 가치를 누려야 한다는 세계시민으로서 바라보는 애국, 민족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모택동은 고전들을 읽으며 중국이 예전의 웅대함과 찬란함을 누리기를 바랬는데 이러한 바램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시대라는 말에 역행하는 민족주의적 사고라고 할 수 있다.4. 지도자로서의 권력욕과 민족, 애국주의의 함수 관계- 당시 중국으로 대변되는 마오의 권력에 있어서 마오가 권력욕을 없앨 수가 있겠는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는 당 내에서 그에 대한 충성심이 의심스러운 자가 있으면 은밀하게 그들의 충성심을 테스트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렸던 사람이다.자! 그렇다면 마오의 통치기동안 그의 권력이 꾸준히 그토록 강했을까? 아니다. 마오의 급속한 집단화와 공업 생산력의 강화를 라 비판당하며 마오는 권력에 대해 도전당한 적도 있었으며 백가쟁명 , 백화제방 으로 불리는 정풍운동도 행한 바 있다. 정풍운동 중에 우익 지식인들을 비롯하여 인민들에게까지 비판을 받은 적도 있었다. 마오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들은 마오에게 권력에 대한 불안감을 불어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되었을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01.04| 3페이지| 1,500원| 조회(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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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복음서 요약 평가A+최고예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4복음서 -신약성서 가운데에서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는 예수님의 행적을 그의 제자들이 지켜보면서 적은 책으로 다른 책보다 더 직접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각각의 복음서는 저자의 관점에 따라 크게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와 요한복음서로 나눌 수 있다. 앞의 마태, 마가, 누가복음서는 흔히들 ‘共觀福音(공관복음)’으로 말하여지는데 그것은 성경 각각의 저자가 공통적인 시각을 가지고 성경을 기술하였기 때문에 중복되는 부분이 매우 많이 있는 것이 그 특징이다. 한편 요한복음은 공관복음서와는 구별된다. 그것은, 한가지로 예수의 생애를 소재로 하면서, 그 선택과 해석에 있어서, 매우 다른 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관점에서 기록한 복음서라 할지라도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은 각각의 저자의 특성을 잘 나타내면서도 그 대상이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각 복음서의 저술 성향을 간단히 설명해본다면마태복음은 이 땅에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고마가복음은 이 땅에 섬기는 자로서 오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고 있고누가복음은 주 예수님의 인성(인간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요한복음은 주 예수님의 신성(신적인 면)을 강조하고, 성자 하나님으로서의 영광된 부활과 그 권능, 영적인 면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렇지만 4복음서를 관통할 뿐만 아니라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관점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 즉 ‘은혜’이다. 은혜의 관점에서 복음서를 대할 때 예수님의 말과 행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복음서에서 직접적으로 ‘은혜’에 관하여 거론된 곳은 없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로 여겨지게끔 비유된 곳은 적지 않다. 그 중 하나를 예를 들자면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빚을 탕감해 주는 주인의 비유를 들 수 있다.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주인이 종을 불러 빚을 갚으라고 하였지만 그것이 엄청난 빚인 까닭에 갚을 수 없었던 종은 주인에 게 너그러움을 구한다. 주인은 종을 긍휼이 여겼기 때문에 종의 빚을 탕감해 주었다. (마태복음 18:23~27)이러한 은혜의 관점으로 성경을 대하고 복음을 대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예를 든 마태복음의 비유를 하나님의 은혜의 관점에서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 말씀 다음에 나타나는 명령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 말씀을 요약해본다면 이렇다.주인으로부터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은 자기에게 빚진 친구로부터 빚을 받아내려 한다. 그것은 자신이 탕감 받은 빚에 비에 너무나도 보잘 것 없는 조그만 빚임에도 불구하고 그 종은 친구에게 독 하고 모질게 대한다. 그 얘기를 들은 주인은 이렇게 말하면서 종을 옥에 가두고 만다. “악한 종아 네 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 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마태복음 18:28~34)이것은 은혜를 깨달은 자들이 행해야할 용서의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묻는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했습니다. 몇 번을 용서해야 하나요. 일곱 번을 할까요?" 예수가 답한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을 해라.” 이것은 수치의 개념이 아닌 것이다. 무조건 용서하라는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위와 같은 말씀을 하신 후에 천국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용서할 때에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용서는 기독교인들의 도덕적 가치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게 마련인 것이다.은혜는 예수님의 사역을 설명해 준다. 중풍병자의 치료와 같은 병자들의 치유사역이나 세리, 창녀들처럼 소외되고 천시된 자들과의 벗되심 등 하나같이 그들의 어떠한 행위나 지위에 관계없이 조건 없는 사랑을 전제로 하는 은혜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으로 인하여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행적을 본받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도 은혜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실 복음은 이렇게 주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깨달은 자들을 통하여 전파되어 진 것이다. 은혜를 깨달았을 때 그들의 정체성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 비유를 살펴보자.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 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 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 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태복음 19:21~23)여기에 나타나는 청년은 살아오면서 모든 율법은 다 지킨 사람이다. 하지만 은혜를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가진 재물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치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로 은혜를 경험한 자들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7-9)고 믿었던 바울처럼 가진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될 수 있다. 바울이 이렇게 고백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의 정체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체성의 깨달음에 관한 내용도 역시 성경 곳곳에서 나타난다. 위의 예와 비슷한 비유로 누가복음 16장 19-25절에 나타나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있다.“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 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 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 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 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 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이 비유도 역시 은혜의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왜 부자가 지옥에 갔어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은혜의 관점에서의 도덕적 의무를 배울 수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5:40)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을 가지고 궁핍한 이웃을 돕는 것이 의를 행하는 것이요, 그는 의인이 되는 반면, 하나님이 맡기신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궁핍한 이웃을 돕지 아니한 자들은 불의를 행하는 자들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사실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앞서 말한 바울이 경험한 은혜를 경험하였을 때에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복음서에서는 사람이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 할 윤리적 가치만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각 복음서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부활과 증인으로서의 제자된 삶을 사는 것에 있다.(마태복음 28:18~20, 마가복음 16:14~15, 누가복음 24:46~48, 요한복음 21:11~19) 이것은 누구나가 목회자나 선교사가 되라는 그런 말씀은 아니다. 마태복음 25장14~30에 나타나는 달란트의 비유는 자신의 재능을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 그것은 마음가짐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지 마음이 동의하지 않는데 억지로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외식하는 자로 생각하셨듯이 외식하는 자와 같은 것이다. 삶의 모든 범위에 적용되는 그것은 ‘소명’으로 불릴 수 있는데 무엇을 하던지 간에 항상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져서 생활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인본주의적인 세상의 가치관과는 전혀 다른 신본주의로 볼 수 있겠다. 오해하면 이것은 이 세상의 삶을 방관하는 것으로 여겨질 테지만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마태복음 5:13~16)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오히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마다의 직업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방안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 또한 그 방법대로 기꺼이 사는 것이 제자된 삶일 수 있을 것이다.
    인문/어학| 2007.01.04| 4페이지| 2,000원| 조회(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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