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장의 유래 및 제조과정담당교수:과 목 명:학 과:이 름:제 출 일:고추장)이란사전적인 의미의 고추장은 메줏가루에 질게 지은 밥이나 떡가루를 익혀 버무리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어서 담근 매운 장이란 뜻으로, 단맛 ? 매운맛 ? 짠맛 등이 조화된 독특한 색을 가지면서 영양적으로 우수한 발효식품이다.즉, 고추장은 콩으로부터 얻어지는 단백질원과 구수한 맛, 찹쌀·멥쌀·보리쌀 등의 탄수화물식품에서 얻어지는 당질로 영양은 물론, 단맛, 고춧가루로부터 붉은 색과 매운맛, 간을 맞추기 위해 사용된 간장과 소금으로부터는 짠맛이 한데 어울린, 조화미가 강조된 세계적으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의 독특한 식품이다.고추장은 조선시대 중엽, 고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이후 고추재배의 보급으로 일반화 되면서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된장을 만들던 콩 가공기술과 새로운 고추라는 식품이 만나면서 그 시대의 퓨전음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서양의 드레싱은 채소류에 첨가하여 먹는 반면에 우리 고추장은 채소류는 물론 각종 찌개와 양념으로 그 사용범위가 대단히 넓은 것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고추장은 그 역사에 비해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고 독특하고 자극적인 맛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기호에 따라 그 쓰임새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고추장의 유래전통장류 중 가장 늦게 우리 식생활에 도입된 고추장은 세계에 그 유래가 없는 우리민족이 스스로 일구어낸 독창적이고 고유한 향신 조미료의 하나이다. 고추가 전래되기 전에는 산초(山椒), 천초(川椒), 호초(胡椒) 등을 이용, 매운 맛을 내는 것을 초장(椒醬)이라 하였으나 고추가 도입되면서 고추장으로 정착되었다.우선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역사를 고찰해 보면 1613년 지봉유설(芝峰類設)에 따르면 고추를 일본에서 온 겨자라는 뜻으로 '왜겨자(倭芥子)'라 불리었다 하여 그 이전에 들어왔음을 추정할 수 있고, 조선개화사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을 독살키 위하여 가져왔으나 우리 민족의 체질에 맞아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임진왜란 무렵에 고추가 들어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추라는 이름은 훈몽자회(訓蒙字會)에 의하면 고(苦)가 지금은 쓴맛을 가리키지만 여기서는 불꽃에서 탄다는 뜻을 가리키고 있으니 고추를 초(椒)에 고(苦)를 붙여 고초(苦椒)라 적고 고추 라 하였다고 한다.이렇듯 고추장은 고추가 유입된 16세기 이후에 개발된 우리나라 전통의 식품으로, 임진왜란을 전후로 일본에서 고추가 전래되기 시작한 16세기 이후에 개발된 장류로서 조선 후기 이후 식생활 양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초기 고추의 사용은 술안주용으로 고추 그 자체를 사용하거나, 고추씨를 사용하다가 17세기 후기 경에는 고추를 가루로 내어 이전부터 사용했던 향신료인 후추, 천초(川椒, 초피나무 열매 껍질)를 사용하였다. 천초를 섞어 담근 장을 '초시(川椒醬)'라고 한다. 점차 고추 재배의 보급으로 일반화되어 종래의 된장, 간장 겸용장에 매운맛을 첨가시키는 고추장 담금으로 변천 발달하게 되었다.이런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고추가 도입되었고 육식보다는 채소위주의 우리 식생활에서 자극적인 맛이 미각을 돋우는데 크게 기여함에 따라 고추장이 다양하게 발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고추장의 효능고추장은 단백질 급원식품이라 할 수 있다. 고추장은 특히 고추장 메주로부터 유래된 고활성의 전분 분해효소와 단백질 분해효소 등의 작용으로 소화를 촉진시켜준다. 고추장의 연분이 자동 산화 억제 및 증가를 도와준다. 고추와 고추씨의 함유성분 균에 대한 항균 작용이 있다고 하며, 베타 카로틴, 비타민 C가 다량 함유된 고춧가루는 항돌연변이 및 항암작용이 있다. 고춧가루에서 추출한 회분은 돌연변이효과를 저해하며, 또한 고춧가루는 건위제로 피부를 자극하여 혈액순환을 돕는 역할도 한다. 또한 자연에서 유래된 다양한 균종 속에 들어 있는 미생물은 정장작용 효과를 발휘하며 고추의 매운 맛 성분의 적당량 섭취 시 비위를 가라앉히고 안정감을 주기도 하며 땀이 나도록 하여 노폐물의 배설을 촉진하여 감기 등 각종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또 한편 고추장이 비만방지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최근의 연구발표도 있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성분이 체지방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고춧가루 외에 고추장 재료인 메주나 숙성 때 생긴 성분이 체지방을 태운다고 한다.과거 문서로 본 고추장 담금법고추장 담금법에 대한 최초 기록은 조선 중기의 (1766년)에 기록되어 있다. 막장과 같은 형태의 장으로, 여기에는 고추장의 맛을 좋게 하기 위해 말린 생선, 곤포(昆布, 다시마)등을 첨가한 기록이 있다. 영조 때 이표가 쓴 (1740년) 중 식치방에 '순창 고추장 조법'에는 곡창지대인 순창지방의 유명한 고추장 담금법으로 전복·큰 새우·홍합·생강 등을 첨가하여 다른 지방과 특이한 방법으로 담갔는데,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순창 고추장)은 옛 부터 나라 임금님께 진상(進上)하였다고 하는데, 순창 고추장의 맛과 향기는, 순창에서 사용하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타지방에 가서 담궈도 순창 고추장의 맛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순창 고추장의 맛은 오염되는 않은 순창의 물맛과 순창의 기후와의 조화(調和)일 것이라고 생각된다.(1800년대 중엽)의 고추장 담금법에는 보리쌀을 섞는 고추장 담금이 보여 지며, 청장을 이용하여 간을 맞추는 방법을 이용하였다.(1815년)에 기록된 고추장은 좀 더 진보된 형태로서, 고추장 메주를 따로 만들어 담그는 방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는 방법 등 현재의 고추장 담금법과 같은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꿀·육포·대추를 섞는 등 현재보다 더욱 화려한 내용의 고추장 담금법을 제시하고 있다. 소금 대신 청장으로 간을 맞추는 방법은 보다 질이 좋은 고추장을 만드는 방법이라 하겠다.그 이후 점차적으로 고춧가루의 사용량이 늘어나 현재와 같이 식성대로 넣도록 권장하고, 또한 청장을 이용하여 간을 맞추던 방법이 점차 소금물로 바뀌어, 현재는 소금물로 간을 맞추는 방법이 주류를 이룸을 특징적으로 알 수 있다.
지역경제 통합담당교수 :과 목 명 :학 과 :학 번 :이 름 :― 서 론 ―- 경제통합의 정의― 본 론 ―- 지역경제통합의 형태1) 자유무역지역2) 관세동맹3) 공동시장4) 경제연합5) 완전경제통합- 지역경제통합의 경제적 효과- 지역경제협력기구― 결 론 ―- 본인이 생각하는 지역경제통합과 세계무역과의 관계― 참고 문헌 ―삼성경제연구소 http://www.seri.org/db/dbReptV.html?g_menu=02&s_menu=0201&pubkey=db20030522003http://www.seri.org/db/dbReptV.html?g_menu=02&s_menu=0203&pubkey=db200410250021. 경제통합의 정의경제통합(Economic Intergration)이란 지리적으로 인접한 2개국 또는 그 이상이 국가들이 대등한 지위 하에서 공동구축을 목적으로 동맹을 결성하며 각 회원국은 어떠한 차별적인 대우도 받지 않는 하나의 경제권을 이루는 것이다2. 지역경제통합의 형태1) 자유무역지역(Free trade area)- 참석 국가들 사이에 무역에 관한 모든 장벽을 제거하는 것(제3국에는 독자적인 무역정책 수립)- ex) 미국, 캐나다 및 멕시코가 참가하여 1994년부터 발효되기 시작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2) 관세동맹(Customs union)- 자유무역지역이 논리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된 것(대내적 무역장벽철폐 관세 및 쿼터제 공동설정)- ex) 1996년 유럽연합과 터키와의 사이에 맺은 관세동맹을 들 수 있다.3) 공동시장(Common market)- 경제적 통합을 위한 전 단계(가맹국간의 노동, 자본, 기술등의 생산요소의 이동 허용)- ex)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으로 이루어진 메르코수르(Mercosur)가 있다.4) 경제연합(Economic union)- 공동시장에서 더욱 발전한 단계(가맹국간의 외환, 무역 산업, 재정, 금융, 통화 등을 상호조정)- ex) 유럽연합이 경제연합에 가장 근접해 있다.5) 완전경제통합(Complete economic integration)- 가국의 주권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초국가적 기구의 설립을 목표로 하여 통화, 금융, 재정, 사회정책 등을 통일화. 정치적 통합이 수반3. 지역경제통합의 효과― WTO의 회원국이 동시에 무역장벽을 철폐하기 어려우므로, 일단 합의하기 쉬운 국가들끼리 우선 지역경제통합을 이루어 WTO체제에만 의존할 때 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무역장벽을 철폐하여 자유무역의 효과를 빨리 실현할 수 있다.- 국가간의 경제를 통합함으로써 정치적인 유대관계를 높이고 국가간 정치적인 갈들이나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4. 지역경제협력기구- 유럽연합(EU) ~ 역내 무역과 투자증가, 경쟁력 있는 대기업 증가, 무역창출 효과, 유럽번영에 기여-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 무역과 고용의 증대, 미국 의존도 심화- 남미공동시장 (MERCOSUR) ~ 1991년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4개국 출범- 아세안 자유무역지대 (AFTA) ~ 동남아지역에서 출범, 역내관세인하, 부분적 자유무역실시- 아시아 - 태평양 경제협력체 (APEC) ~ 동아시아, 대서양주, 북미 국가들의 경제협의체로 출범- 동북아 지역협력 ~ 중국과 국교정상 → 무역 및 기업투자량 크게 증가지역경제통합이전과 이후 한국의 수출 추이- 2002년 10월 누계기준 중화경제권과 NAFTA지역이 최대시장 형성경제통합이후 중국의 아세안 수출입 현황- 중국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싼 가격경쟁력으로 개방화 및 통합 정책이후 아세안지역들에 수출점유율을 점차 늘리고 있는 추세이다.ASEAN 및 중동 지역으로의 수출 현황― 결 론 ―지역경제통합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서로의 통합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장벽을 철폐한다는 의의를 가지고 추진 중이지만 과연 이 협정이 회원국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맺어지고 있는 것인가??지역경제통합과 세계경제와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먼저 생겨난 의문점이다.EU 나 NAFTA, APEC등 모두 개방성과 상호협정성을 유지해 각 국의 후생증진을 목적으로 출범되어진다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배우고 들어왔다. 그렇지만 과연 그 중에 몇 나라가 이런 협정들로 인해 이익을 보며 발전을 거듭해 나가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내가 너무 이런 협정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본다면 오히려 이런 반응이 당연 할지도 모른다. 얼마전까지도 쌀개방과 스크린쿼터문제로 몸살을 앓지 않았던가... 우리나라도 무역장벽철폐와 관세인하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도 수출입을 통해 상당히 이익을 얻고 있으며, 다른 나라와의 외교에도 유연하게 대처 할 수 있는 외교적 유연성도 생겨났을 것이다. 이런 긍정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지역경제통합은 어쩌면 우리에게 필연적인 상황 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긍정의 면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부정적인 면도 분명 존재 한다. 내가 위에서 예를 들었듯이 쌀개방문제 들이 바로 그것일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켜 부정적인 면을 축소하여 협정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보안하여 국민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통합이야 말로 진정한 통합 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러한 방법의 사용이 지역경제가 세계무역의 발전과도 이어지는 튼실한 지지대가 되어 줄 것이다. 지역경제를 통합하고 각 국간들간 협정을 맺어 함께 발전하고 서로 이끌어 보안해 준다면 세계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기틀이 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선진국이 자신의 이익만이 아닌 다른 국가들(여기서는 개도국이라고 지칭)의 이익을 생각해 그에 맞게 협정을 하고 그 협정에 따라 적극작인 지원을 펼친다면 자국 이기주의가 넘쳐나는 세계 지역경제의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세계경제를 위해서는 지역경제통합은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과정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 과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통합체제에 속해 있는 회원국들이 서로의 이익을 주장 할 것이 아니라 서로 이해관계를 맺고 함께 발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이 지역경제통합이 곧 세계경제의 발전이라는 공식이 성립 될 것이다. 지역경제통합은 이젠 어쩔 수 없는 대세이다. 꼭 대세를 따라야 한다면 결과에 앞서 어떻게 대세를 따르는지 과정을 더 중요시해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3년전....23 years ago...난 서울 한 작은 동네에서 보수주의적 성격이 강한 아버지와 평생을 한결같이 자식사랑과 남편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신 어머니의 축복을 받으며 1남 1녀 중 둘째로 이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다. 당시 툭 튀어나온 이마에 동그란 눈을 가진 특이한 생김새로 인해 ‘초롱’ 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었고, 23년 동안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다.I first stepped out to this world as a second child of 1 son and 1 daughter blessed by the father who has strong conservative personality and the mother who has practiced love towards her children and husband all the time throughout her life. Due to my specific appearance, projected forehead and round eyes, I came to be called as 'Chorong' and I am living a life which is never ordinary.유년시절에 나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 용돈을 벌어쓸 정도로 자립심이 강했고, 나이에 맞지 않게 일찍 철이 들었다는 소리를 종종 들을 정도로 또래와 비교해 어른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적부터 부모님께 배웠던 경제관념들이 이 후 내 삶에 적지않은 영향을 준게 아닌듯 싶다. 한 살 터울인 오빠와도 다른집 형제들처럼 다투지 않고, 다정하게 지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 챙겨 주기 좋아하고, 다정다감한 내 성격은 오빠가 있었기 때문이 거란 생각이 든다.I was very independent to the extent earning allowances helping my parents who ran a small factory when young, and I wasafterwards. I didn't fight with my 1-year-older brother and got along with him well. Thinking of that now, I think my considerable and kind personality came out from my brother.초등학교에 입학해서는 1학년을 제외한 6년동안 학급반장을 역임할 정도로 리더쉽이 강했고,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정도로 똘똘한 소녀였다.중학교에서도 역시 학급반장과 학교 생활지도부 부장을 맞으면서 나름대로 성실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3때에는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다른 아이들처럼 인문 고등학교 진학이 아닌, 상업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고 그로 인해 내 삶에 많은 것들이 변화하게 되었다.After entering primary school, I worked as a class leader for 6 years except the 1st grade, and had strong leadership, and was a clever girl maintaining top grades all the time. At middle school, I was a class leader and the manager of school life guidance dept. and spent a sincere youth. When I was a 3rd grader, I advanced to a vocational high school, not an academic high school just as other kids by the recommendation of my class teacher, and due to that, many things came to change in my life.고등학교 3년 동안 인문계 고교에서 배우는 일반 과목 뿐만아니라, 사회 생활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실기 교과목을 많이 배우게 되었고, 그로 인한 여러 관련 자격등도 취득할 수 있게 sefully in social life, not just the general courses which academic high schools teach, and I came to acquire many related certificates.Also, by the feature of the school which had to prepare getting job, not advancing to college, I prepared to get a job from the time I was a 3rd grader, and I came to work at a company from summer vacation in the same year. That company was 'Hyundai Investment and Security Co.'(It is now Prudential Investment Security)'.회사에서 2년여 동안 근무하면서 증권투자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사회생활의 방법, 대인관계등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또 내 힘으로 대학교에 다니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한 결과 이천만원이라는 큰 돈을 내 힘으로 모아 저축을 할 수 있었다. 2년여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고등학교 졸업만으로는 만족한 직장생활을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깨닫고 틈틈이 진학공부를 해 04년 수능시험을 그 다음해 건국대학교에 진학 할 수 있었다.As I worked for about 2 years at the company, I came to learn many things such as overall contents of security investment, methods to live a social life and interpersonal relations. Also, having the object to attend college by money, and working sincerely, I could save 20 million won on 늦게 학교에 입학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 1학년때 부과대를 지원해 낯선 대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고, 2학년이 되어서는 국제통상학과에 지망하여 공부 함으로서 내 미래를 위한 걸음을 내 딛고 있다.To overcome the late entrance to school than the ordinary students, I applied assistant dept. representative when I was a freshman, and adapted to a strange college life, and when I became a sophomore, I applied to international trades dept. and studied there, and is stepping forward for my future.제때 대학공부를 시작하지 못해서 인지 시간이 허투루 보내는 것을 무척이다 싫어하게 되었다. 또 한가지가 아닌 여러 가지를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커져 지금도 여러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며, 자격증 시험도 준비 중이다.Owing that I couldn't start studying at college at the appropriate time, I came to hate wasting time. And I came to have a bigger desire to learn many things, not just one thing, I am studying many things and am preparing for the certificate test.앞으로의 꿈............My Dream in the Future....다른사람이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 냐고 물어 온다며 정확하게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너무많고, 배우고 싶은 것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무엇을 하던지 그 미래에 부족함이 없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I think I cannot accurately answng and do whatever I can.앞으로 작은 목표가 있다면 먼저 1~2년 안에 일본으로 연수나 유학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일본이란 나라에 어릴적부터 관심이 많았고 친척도 살고 있어 기회가 좋아서 뿐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체험해 보기 위해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부터 간단한 일본어 회화를 공부 중에 있으며, 내년 연말까지 일본어 능력시험인 JPT시험의 850점이상을 목표로 삼고 지금보다 좀 더 매진할 생각이다.For my small goal in the future, I want to go training or studying to Japan in 1~2 years. I was a lot interested in the country Japan, and my relatives live there, so it is a good opportunity. I am also preparing it to experience many things. So, I am studying simple Japanese conversation, and I am to study more setting 850 score or more in JPT test till next year end.그리고 또 한가지!!! 앞으로 남은 2년의 대학교 생활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계속 장학금을 받는 것이다.And one thing more!!! I will get scholarship continuously just as till now for the 2 years to come.여태까지는 일부장학금은 받았지만 전액장학금은 받은 적이 없는데 앞으로의 2년동안 적어도 한번이상 전액 장학금을 받아보자는 것을 목표로 학과공부에 성의를 다할 생각이다. 또한 지금 준비하고 있는 한자 능력시험과, 국제무역사시험의 합격도 가까운 미래의 내 목표이다.Till now, I got partial scholarships, but I have not received the whole one, b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