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삶 ...말 그대로 “ 죽음 ” 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객관적으로 볼 때에 어쩌면 지극히도 종교적이기도 한 나의 이 궁금증들은 “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 이란 책을 읽으며 무수히 나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 들이다. 그리고 난 나에게 답을 해주지도 못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죽음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다.내일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몸도 마음도 가벼운 “ Friday night " 에 째즈 음악이 내 방안을 은은히 가르고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볼륨을 높인 채 켜두고 베란다로 나와 큰 창을 열어두고 난간에 걸터앉아 이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나는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해 본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 죽음이란 개념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물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아니다. 발을 씻을 때 물에 발가락만 담궈 보는 식으로 가볍게 생각해 보고 넘어갔던 적이 대부분이었다. 사흘간 잡고 있던 이 책의 종지부를 찍은 날 밤 자기 전에 누워 죽음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죽음이란 생각과 행동은 물론 내 몸의 흐르던 피가 멈추고 내 심장이 뛰지 않고, 자라던 손톱 발톱도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이별해야 하는 것, 다신 생각하고 느낄 수 없는 것.저절로 고개가 좌우로 흔들린다. 절대 유쾌하지 않다. 혼자 여러 생각들을 하고있을 때 침대 맡에 놓아둔 얼마 전 에 읽었던 미치 앨봄의 “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이란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팔십 평생을 놀이공원의 정비공으로 살아온 주인공 “ 에디 ”가 어느 날 사고로 죽임을 당한 뒤 천국에서 다섯 사람을 차례대로 만나 자신의 삶과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다는 내용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 갑자기 한 부분이 떠올랐다.“ 죽는 것 ? 그게 모든 것의 끝은 아니라네. 우린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지상에서 일어난 일은 시작일 뿐이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할 거야. 아담과 이브 이야기 말일세. 아담이 지상에서 맞은 첫날밤과 비슷할 걸 ? 그가 자려고 누웠을 때 말이지. 아담은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했을 거야. 잠이 뭔지 몰랐으니까. 눈을 감고서 이 세상을 떠난다고 생각했겠지 ? 한데 그게 아니 였지. 다음날 깨보니 새로운 세상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에겐 또 다른 게 있었다네. 그는 어제를 갖게 된 거지. ”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 이 책에서도 죽음은 갈등 , 고통 , 사라져 버리는 것 따위의 부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워 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었다.죽음 앞에서 만나는 새로운 삶이란 말처럼 , 정말 죽음이란 새로운 삶을 만나게 해주는 매개체로 보고 있다. 조금 더 다르게 생각해 보자면 이 책은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을 쓴 책이 아닐까 한다.죽음의 준비 , 죽어가는 사람과의 관계정립 , 죽음을 맞으면서 못 다 해결한 인간 관계등 을 해결함으로써 안심하고 평안한 가운데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또 죽음에 직면해서도 절망이 아닌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기술하고 있다. 죽음과 죽음 이후의 형태에 대해 알고 대처함으로써 죽어가는 자와 그를 떠나보내는 자 모두에게 평안한 이별과 존엄한 죽음을 맞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러니까 “ 죽음 ” 에 대한 본질적인 것 보다 죽음 주변에 여럿 해결해야 할 이해해야할 받아들여야할 것들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죽음 , 받아 들여야 한다. ” 라는 나의 태도에서 “ 죽음 , 준비해야 한다 ”로 방향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조금 마음이 ‘ 유 ’ 해졌다고 해야 하나 ? 죽음은 반드시 겪고 가야할 과정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줄이고 받아들이기 위해 나 주변 그리고 나와 나가 좀 더 품위 있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나는 20년밖에 살지 않았다. 그러나 짧다면 짧은 고작 20년 동안에도 난 한 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자랐고, 많은걸 깨닫고 느낄 수 있고 이미 벌여 놓은 것들이 많이 있다. 생각해 보면 앞으로 나는 80년 여년을 더 살아갈 터인데 그 인생과 세월을 천국으로 가기 전에 정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 한가 ? 죽음이라는 큰 행사를 맡기 전에 마음정리와 내 심정을 차곡차곡 쌓아 정리하는 일은 어쩌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인데 지금껏 나는 너무 죽음을 무섭고 맞기 싫고 피할 수 있다면 끝까지 피하고 싶어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즉 , 죽음의 숨겨진 아니 죽음의 다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 내려놓음 ”이 책은 나에게 주님께서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얻게 하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분이 원하시는 내 삶 속의 내려놓음과 어떻게 적용하길 원하시는지에 관하여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비록 건물 안 에어컨 바람을 조금만 벗어나도 숨이 막히는 찜통 더위와 함께 청년부에서 만들어준 기회를 빌어 읽은 책이지만 이 책은 나에게 온유함과 더불어 재정관리에 관한 개념까지 심어주었다.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두고 묵상하던 중 ‘ 뛰지 않으면 넘어 진다 ’ 는 전승철 작가의 말처럼 느림의 미학에 관하여서는 전혀 무지한 현대인들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되었다.교회의 공동체 안에서만 관계를 맺을 뿐 캠퍼스 내의 선교단체 활동과 그 단체의 몸 안에서 누릴 성장과 강의에 대한 필요를 인식하지 못했을 때에는 ' 내려놓음‘ 이란 단어 자체가 굉장히 생소했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함과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고 선교단체 몸 안에서의 양육을 하루하루 받으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와 그분이 우리 에게 주신 것들 또 우리가 그것을 진정 우리 것으로 만드는 방법에 관하여 훈련 받으면서 ’ 내려놓음 ‘ 이란 단어와 친숙해져 갈 때쯤에 이 책을 만났다.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가슴에 와 닿았고 마음뿐만 아니라 머리로 까지 느낀 큰 구절은 나를 비우고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 책을 쓰신 이용규 선교사님께서 가장 우리들에게 말씀하려고 하신 것도 이 말이 아니 였을까 감히 짐작해 본다.지난달에 내가 섬기는 선교단체인 예수전도단에서 3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전국 연합 수련회 ( Mission Conference )에 운이 좋게도 대학교 1년차인 내가 참석할 기회가 있었었다. 그때 TV로만 보던 간사님들께서 주옥같은 말씀과 함께 재정이란 한 주제에 비중을 크게 두시고 강의 하신 적이 있었다. 그때들은 말씀들을 잊어버릴까 포스트 잇에 적어 내 성경책 맨 뒷장에 붙여놓았었다. 이 책을 읽다 그때 들었던 강의가 생각나 지난달의 그곳에서의 나의 도전받음과 열정들을 생각하며 벌써 꼬깃해진 때 묻은 포스트 잇을 떼서 침대머리에 붙여 놓았다. 형광펜으로 긋고도 모자라 빨간색 펜으로 몇 번이나 줄 그어놓은 말씀 중에“ 너는 네 자식에게 더 주고 싶지 않겠냐 .. ?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열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에게 열을 주시고 모두 주었다고 우리에게 영광받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라 열을 주고도 하나를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 라는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은 항상 주고 싶어 하시는데 우리의 욕심이 아버지가 주신 것들을 가려버려 우리는 볼 수 없고 눈 앞의 것들만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나를 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깝고 아프실까 .. ? 항상 손해 보지 않으려고 아둥바둥 대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가여우실까 ? 나의 죄를 모르고 똑같은 죄에 매일 넘어지는 나를 아버지는 얼마나 일으켜 세워 주시고 싶으실까 ? ... 하지만 나의 죄를 알면서도 회계하지 않은 나의 교만함으로 아버지는 속이 상하셔서 내가 조금 밉기도 하셨을 거야 ...책을 읽다 묵상하다 .. 읽다 묵상하다... 를 반복하며 내 머릿속에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생각이 자꾸만 넘쳐 흘렀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과 조금이라도 닮으려고 했던 나의 모습을 내가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 책에서 받은 나의 소망과 지혜를 삶 속에 적용해 보려는 나의 모토에 비중이 점점 실려 갔던 것 같다.나는 기억 속에서 책에서 보았던 그리고 설교시간에 목사님께서도 해주신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한 아이가 새 장난감을 하나 샀다. 그것을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계산을 해야 하는데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면 뺏기는 줄 알고 포장도 뜯기지 않은 새 장난감을 품안에 안고 계속 울부짖기만 했다는 것이었다. 그 장난감을 계산을 하면 자기의 것이 되고 그때 비로소 포장을 뜯고 자기가 가지고 놀 수 있도록 ... 진정 자기의 것이 되는데 그 장난감을 잠깐 내려놓는 시간의 의미를 알지 못한 그 아이의 어리석음에 관하여 설명하는 말씀이었다.나는 그 모습이 혹시 나의 모습이 아닐까 .. 라고 생각하면서 우선 나는 친구와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내려놓음을 시도했다. 질투와 욕심의 화신으로 불리던 고기쁨이 단순히 책이 아닌 .. 책 속의 향유 같은 말씀과 경험담으로 진정 변화되길 원하고 있었다.사람 관계가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없으나 그 관계 속에서 항상 질투와 불만으로 모든 사람을 갖고 싶어 했던 내 욕심부터 내려놓기 위해 기도했다.죄 인줄 알고 , 알면서 항상 똑같은 죄에 넘어지는 내 자신이 너무 싫다며 주님께 관계 속에서 내려놓기를 원한다고 기도했다. 그 안에서 그동안 공동체 속에서 관계를 이어가며 나의 순전한 욕심으로 인해 내 안의 상처받은 것들을 치유받길 원했고 내가 회계하고 변화되길 원한다고 기도했다.언제나 처럼 항상 진부한 얘기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까지 변화되길 기도했다. 그날부터 정말 거짓말처럼 하나님의 역사하심들이 나타났다. 내 안의 온유함이 깨어나 주님께서 내 마음 속을 사랑으로 가득 채우시고 나를 변화 시켜 주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때 같았으면 또 혼자 미워하고 상처받고 말았을 내가 관계 속에서의 형식으로 상처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욕심을 내려놓음으로써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이 사랑은 주님이 주신거란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이 책안에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미래의 계획을 내려 놓는다 ” 라는 챕터와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이란 부제가 처음엔 어쩌면 참 거창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 구절들이 그리 허황 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 수있게 되었다.
각자 자신의 삶의 모토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는 교수님 말씀에 그날 하교 길에는 항상 애용 하던 지하철을 버리고 이리저리 둘러 족히 40분은 더 걸리는 버스에 올랐었다. 가만히 앉아 사람들 재잘거리는 소리도 들으면서 창밖 풍경을 보며 나 혼자만의 썰을 풀고 싶었다. 난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좌우명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자 이다.참 매력적인 것이 “ 좋은” 이란 한 단어 속에는 무궁무진한 그야말로 끝도 없이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감이란 단어를 던져주면 감화 , 감회 , 감사 , 감격, 감동 등 수많은 감을 ‘ 좋은’ 이란 나무에 달 수 있고, 바른 마음 건전하고 사랑이 많은 , 그리고 그 사랑을 나눠 주려는 마음까지 모두 ‘ 좋은 ’ 이란 단어에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버스 안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난 몇 번이고 서 있기 힘든 할머니에게 진심 된 마음으로 자리 양보를 했던 것 같다.나는 사람을 사귈 때에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편이다. 내가 마음을 제끼고 진지하게 들어가면 그렇더라. 사람들은 그렇더라. 사람들은 기다리고 있더라. 누군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주기를 기다리고 있더랬다. 근데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더라. 그렇게 스쳐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정작 나의 진가를 알지 못하고 단지 겉으로 하하 호호 크게 웃고 항상 밝은 내 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하고 사라져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한다.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의 친절이 나날이 조금씩이라도 넓어지고 깊어지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비록 수치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미미한 것이라 해도 내가 사랑을 주는 그 일이 세상 어느 한사람의 주름을 지워줄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에 충분히 의미를 두기 때문에 충분한 일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또 나는 바위를 다듬기 보다는 바위를 깍는 물방울을 다듬는 사람이고 싶다.난 험담 자체를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나에게 누군가가 험담을 할 때 그 험담의 대상인 객체가 미워지는 것이 아니라 험담을 하고 있는 그 사람 그 주체가 미워진다. 난 그런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향기 나는 사람이고 싶다.살아가면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또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나를 단련시키고 투자하고 노력한다. ( 자주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지만 .. ) 한 사람에게 있어서 영향력이란 얼마나 커다란 부분일지를 생각해본다. 내가 현재 이루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언론계 잡지사 에디터가 되는 것이다. 광고 카피라이터도 항상 머릿속을 맴도는 나의 로망. 삶의 모토를 생각하다 내가 왜 희망하고 있는 그것들이 되고 싶은지에 관해 생각해 봤는데 잠정적으로 내린결론이지만 물론 내가 되고 싶고 바라는 것이라서 라는 말이 이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두 직업 다 모두 영향력이 상당한 직업들이다. 예전부터 생각해 왔다.내가 광고 기획자가 되어 온 국민이 단지 15초 만이라도 내가 말 하려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고 , 내가 발간하는 잡지를 구독하는 몇 만 명의 사람이 나의 글을 읽고 내 영향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상당히 흥미롭다고.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또 다른 나의 모토이다.큰 시험에서 실수를 하고 고통을 받던 그 때. 고통을 축복이라 말하는 책을 한권 읽었었다. 당시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지만 공감하지는 못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았지만 고통은 겪을수록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리고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단련시키기 위한 말 그대로 정말 축복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용기는 필요하다. 고통도 감사하게 여기는 오픈마인드 긍정적 마인드가 나를 바꾸고 내 영향력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살을 꼭 빼겠다는 작은 다짐도 끝까지 지켜본 적 없고 내일은 꼭 등산을 가야지라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잠이 들어도 아침에 되면 내 게으름에 이기지 못해 미루고 미루다 ‘ 자기가 한 말은 책임져야지 사람이 뭔가 하려고 했으면 .. ’ 이런 식의 싫은 소리를 아버지로 자주 듣는 나지만 , 그리고 또 20살이니까 이제부터 다듬어 가면 되는 거야 라고위로식의 말을 나에게 건네지만 , 나는 믿는다. 노력이 나의 완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그리고 변화할 필요를 느끼고 변화해야 한다고.
흔히 금발에 대한 미국 내 인식은 박학다식과는 전혀 관계없는 겉치장만 할 줄 아는 예쁜 여자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헐리우드의 패리스 힐튼이나 린지 로한 같은 대표적인 금발 스타는 같은 또래이지만 제시카 알바나 스칼렛 요한슨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로 인식 되어 있으며 타블로이드지에 끊임없이 얼굴을 비추는 대표적인 금발의 스타다.금발 가십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이 싫어 린지는 잠시 금발이었던 머리색을 그녀의 본래 머리색인 흑갈색으로 바꿔버렸고 , 오죽하면 패리스 힐튼은 " Blond with the Brain " 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까지 제작해 입고 다녔을 정도다. 그녀들은 자신의 행실을 고치려는 노력 보다는 외모의 변화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놓으려 하고 있다. 금발이 아니면 그나마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이 처럼 금발이라는 어떤 외형적인 특징만을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고 , 그리고 또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외모지상주의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러한 스타들의 행동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 ? 아니 우리가 자연스럽도록 만들지는 않았을까 ? 라고 생각해 보았다.이 영화는 세 번째인데 의상을 전공하는 극 중의 엘 우즈 덕분에 눈이 즐거웠고 극 중의 엘 우즈 역할을 맡은 리즈 위더스푼의 사랑스러운 연기도 보는 내내 기분을 들뜨게 했다.이 영화는 현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이지만 제목만 크게 다룰 뿐이지 사실상 오히려 더 부추기고 있는 외모지상주의라는 주제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 문제를 크게 드러내고 있지는 않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만 보이지만 교수가 학생에게 몸 상납을 요구하며 변호사가 되게 해주겠다는 대사에서도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아직까지 얼마나 잡히지 않았는 지 그리고 외모가 예쁜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의 사회적 차별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
항상 책장에 꽂혀있던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는 책을 지나치면서 언젠간 읽어야지 빨리 읽어야 될 텐데 라고 몇 번씩 생각했었는데 과제를 준비하는 도중에 책장에 2권이나 꽂혀있던 이 책이 생각나 집어 들어 읽기 시작했다. 비록 따뜻한 바람 부는 봄에 과제를 빌어 읽은 책 이지만 이 기회를 통해서 이제라도 이 책의 첫 장을 넘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제목에서부터 먼저 말해주듯이 책의 저자는 “ 우리나라의 역사적 위기인 한일합방, 한국전쟁 그리고 최근의 경제위기 등의 원인은 유교문화에 바탕을 둔 신분질서와 가부장의식 , 혈연적 폐쇄성 등에서 기인 한다 ” 며 “ 이러한 유교문화의 잘못을 떨쳐야 한다 ”고 주장했다. 우리 민족의 지난 100년간의 역사 속의 1910년 한일합방 , 1950년 6.25 1997년 IMF 라는 민족적 위기를 우연이 아니라 우리 사회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유교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세계화의 시대 속에서 아직도 유교적 사상을 토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동안 우리를 지배해온 시대착오적인 사상인 유교를 과감히 버리라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주자학을 ‘ 위대한 사기극 ’ 이라 부르고 유교를 ‘ 곰팡이 ’ 공자를 ‘ 바이러스 ’ 라고 까지 말한다. 유교의 종주국인 중국이 유교를 버리고 새로운 길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고 , 100 여 년 전 유교를 버리기로 결심하고 메이지유신을 완성시킨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서 그에 반해 유교에 유린되고 세뇌되어 ‘ 유교적 한국인 ’ 이 되어있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직시하고 , 지금까지의 유교문화에 대한 반성과 그런 허세에서 벗어나서 나아가기를 주장하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가 강력히 주장하는 유교의 위선과 불합리 , 그 체제적 모순과 사회적 병폐를 읽으며 공감하는 부분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우선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 하자면첫째로 ,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토불이 사상에 심취한 한국인과 출세에 집착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등 한국인으로서 가장 문제시 되는 의식들을 열거했다.둘째로 , 유교가 끼친 악영향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유교가 우리나라 발전에 끼친 악영향과 사대주의 등을 비판하고 셋째로 일본과 중국 그리고 한국을 비교함으로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유교 문화를 어떻게 버리고 다시 도래할 것인가 ? 일본으로부터 배울 점 들은 무엇일까 ? 에 대해서 작가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넷째로 , 잘못된 유교관을 타파하고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갈 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젊은 사람과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언쟁을 할 때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논리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흔히 “ 너 몇 살이야 ? 집에 가면 너 만한 아들이 있다 ” 라는 말을 한다. 지금 이야기 하는 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 상대방과 비슷한 나이또래의 아들이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 나이가 많은 사람이 옳다는 것인가 아니면 너도 내 아들처럼 나를 공경해야 한다는 이야기 인가 ?그렇지만 이러한 형태의 말이 우리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억지들이 도덕, 전통이라는 이름아래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라는 다소 전투적인 (?) 제목의 책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경일 교수가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 문화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하는 논리의 출발점은 유교문화가 예를 중시하는 가진 자 , 힘있는 사람 , 나이 든 사람 , 남자를 위한 윤리일 뿐 약자를 위한 어떤 배려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저자는 통계자료들을 사용하여 한국사회에서 유교문화가 자리 잡고 있는 비중을 설명하므로서 보다 신뢰성을 주고 있다. 1996년에 KBS와 일본의 < 마이니치신문 > 이 실시했던 ‘ 한중일 국민의식 조사 ’를 소개하며 우리나라와 중국의 일본 , 동양 3국을 비교하며 이혼에 대한 긍정과 부정 , 남성 우월주의 장남이 부모를 모셔야 한다는 등의 질문 항목을 만들어 보다 체계적으로 한국에는 아직까지 뼛속까지 유교가 박혀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들을 보여주면서 이것은 자신에게만 국한되어있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한국의 현 주소가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이다.저자는 유교는 출발부터 잘못이라고 봤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제목에서부터 직접적인 비판 의식이 드러나 있다. 책을 대하는 순간 주목 받은 만큼 비판도 많이 받겠다 라는 생각이 확연히 들었다. 갑골문을 전공했다고 하는 젊은 교수가 맨발로 노트북 컴퓨터 앞에 편한 자세로 앉아서 미소 짓고 있는 표지도 그렇고, 온갖 권위와 기성 질서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 "공자"를 죽인다는 섬뜩한 표현이 들어있는 제목도 시선을 이끌게 했다. 역시나 이 책은 문화 논쟁의 화두를 제공하여 많은 공방을 불러일으켰고 저자는 베스트셀러가 된 만큼 청학동의 유생들에게 대가를 치루고 있다는 소문이다.교수님께서는 비판과 동의하는 부분 양쪽 모두의 시선을 가지고 글을 쓰길 원하셨는데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렇다 하는 공감은 별로 가지지 못했다.물론 어느 부분은 공감했지만 저자는 유교의 출발부터 그 자체를 문제시하면서 유교의 해악을 올바로 찾아내고 솎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하고자 한다. 유교적인 사상에 사로잡혀 현 흐름에 맞추지 못하고 따라만 간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책에는[ 효도는 자식들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해드려야 하는 일방적 희생의 위험 부담이 있는가 하면 , 받는 사람도 자신의 처지에 걸 맞는 적절한 처방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희생 당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효도는 그것을 하는 사람 , 받는 사람 모두에게 있어 적절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무한 책임론이다 ] 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유교의 핵심개념은 인이다. 효도는 인을 실천하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덕목이다. 저자는 효라는 개념이 생긴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효라는 개념은 노인들로부터 노후대책을 세우지 못하게 해서 지금 노인들은 갈 곳을 잃었으며 개인의 효는 양심에 맡긴 채 국가적 대책을 세우지 못해 노인들의 처지는 한 여름 노래를 부르는 베짱이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