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설 : 땅의 형편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학설, 일종의 동양적 자연관에 기초(자연관 또는 생명관에 근거) 한국 전통 사찰의 입지에 영향을 미친 요소 중, 가장 커다란 역할을 담담했던 것은 풍수이다. 이를 통해 풍수지리설을 바탕으로 불국사의 입지선정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 원리속에 내재된 자연의 본질에 대한 이해와 함께 풍수지리설과 사찰의 입지선정에서의 합치점을 찾아봄으로써 사찰의 입지선정의 과학성과 풍수지리설의 과학적 근거를 규명하는데 목적을 둔다.연구의 범위 1) 이론적 배경으로 가람의 개념과 시대별 가람배치의 변천과정을 살펴본다 2) 참선수행을 위한 명당의 개념과 사찰의 입지적 특성, 사찰입지의 선정방법 및 사찰의 배치와 구성에 풍수지리의 적용에 대해 고찰 3) 불국사를 대상으로 풍수지리 이론에 따라 살펴보고, 양택이론에 의한 사찰위치, 배치, 구조에 대해 현대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2. 연구의 방법 1) 본 연구는 상기한 바와 같이, 다양한 풍수이론을 문헌연구를 통해 사찰의 입지 조건이 무엇인가를 고찰하고 실제 사찰의 구성에 있어서 풍수지리와 관련해 건물을 어떻게 배치하였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주목적이다.가람의 개념 1) 가람의 어원 상가람마(Samgharama) 승가람마(僧伽藍摩) 절, 가람 승가란 중(衆), 람마(藍摩)란 동산의 뜻으로 중원(衆園), 즉 여러 승려들이 한데 모여 불도를 닦는 곳 가람의 시작은 석가모니사리를 안치한 탑이 중심이 되어 가람이 구성되었으나, 불상이 조성되면서 석가모니를 비롯한 불상이 불당에 안치되어 가람배치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2) 가람의 유형 사찰은 크게 평지가람형, 산지가람형, 석굴가람형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고 발전되었다.평지가람 - 황룡사황룡사 추정 복원도 황룡사지터산지가람 - 불국사석굴가람 - 골굴사마애여래불좌상 관음굴2. 가람의 구성 가람 : 석가모니사리를 안치한 탑이 중심이 되어 구성 불상의 조성에 따라 석가모니를 비롯한 불상이 불당에 안치됨으로 가람배치에 변화가 시작 불상이 종교적 신앙의지게 되었고, 7세기 중엽 선덕여왕 때 자장에 의해 5대 적멸보궁이 창건되었다. 신라의 가람배치는 전체적으로는 백제의 일탑식을 따르고 있지만, 금당 좌우의 동서 금당이 놓인 것은 고구려의 일탑 삼금당식을 띄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와 백제와 같이 금당 건물의 수가 획일화되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난다.2. 통일신라시대의 가람배치 통일신라의 7~8세기는 동아시아의 고대문화가 불교문화로서 그 분수령에 오른 시대이다. 불교가 중국에 수입된 이후 발전해 오다가 스스로의 불교문화를 만들 수 있는 역량과 여건을 갖추게 되는 시기였다. 통일신라시대로 접어들면서 가람형식에도 변화가 있는데, 쌍탑식이라는 독특한 가람배치가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 이전에는 금당 앞에 하나뿐이던 탑이 좌우 두개로 나눠지면서 두 개의 탑이 가람의 중심부에 자리잡는 쌍탑식을 취하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불상을 모신 금당이 사리를 모신 탑보다는 더욱 중요한 예배 대상이 되었음을 뜻한다.감은사지3.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가람배치 통일신라시대를 전후해서 평지 쌍탑(병렬형)과 이러한 격식을 다소 벗어난 변형(직교형)이 함께 고려시대까지 경영되고, 사찰들이 평지에서 구릉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평지 쌍탑형과 변형이 통일 신라를 대표하는 가람 형식이 되었다.보림사- 쌍탑과 석등, 쾌불대의 배치는 사찰의 전형적인 배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3.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가람배치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사찰은 꾸준히 세워지는데, 기본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쌍탑식 가람배치를 계승하지만 주로 일탑식 가람배치를 따른다. 또한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모든 가람이 자연 지세와 어울리는 터에 자리 잡고, 풍수에 기초를 둔 가람배치를 한다.풍수지리의 개념 풍수지리 –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순환원리를 땅과 바람과 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풍화작용의 과정에 따라 인간의 길흉화복을 예견하고자 연구하는 학문이다. 풍수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원리로 장풍의 풍(風)자와 득수의 수(水)자를 따옴.음인 땅은 양인 바람과 물을 만나면 풍화작용으로 상태를 살피는 것을 말하고, 협의의 간룡법은 주산에서 혈자리까지의 내맥을 살피는 것을 말한다. 조화와 균형 속에서도 변화, 생기를 함께 갖춘 모양의 산이 길한 용으로 간주되는 것이다.2. 장풍법 명당 주변의 지세에 관한 풍수이론을 통칭하여 장풍법이라고 한다. 땅에서 발생하는 생기를 흩어버리므로 생기를 포용하고 음양의 원기를 지닌 바람을 잡아 모을 수 있다면 풍수가 추구하는 목적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에 장풍의 필요성이 생긴다. 혈장 주위를 산이 둘러싸고 그 중앙의 요지에 음양이기의 결합과 생기의 활동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3. 득수법 풍수에서 물의 개념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실제로 물이 흐르고있는 곳을 말하고, 또 다른 하나는 관념적 물이다. 관념적 물은 계곡과 들판, 내, 하천, 강 등이 모두 물에 속하는 것이다. 산을 제외하고 낮은 것은 모두 물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득수는 음양의 화합에 필요불가결한 존재로 인식된다. 명당은 물의 흐름이 산의 기운과 마주치는 역수를 이루는 곳이어야 한다.4. 정혈법 혈이란 풍수에서 요체가 되는 장소이다. 혈은 음택의 경우 시신이 직접 장에 접하여 그 생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며, 양기의 경우 주거자가 실제 삶의 대부분을 얽혀 살게 되는 곳이다. 풍수지리의 최종 목적은 지세를 분석해서 명당 혈을 찾는 것이다. 산의 형태는 기운이 중심에 모여 있는 형태를 이상적인 것으로 보고 기운이 좌우로 분산되어 있는 형태는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 형태가 좋은 산은 길사라고 한다. 기운이 모여 있는 산은 생기를 받아 명당을 이루면서 혈토가 형성되고, 기운이 분산된 산은 생기가 모이지 않아 명당을 이루지 못한다.5. 형국론 형국론은 지세의 외관에 의하여 그 감응여부를 판단하는 법을 말하며, 때로는 물형규국론이라고도 하며 그 혈의 형체와 역량과 기세를 어떠한 물체의 형상에 비교한 말이다. 풍수지리는 승생기(乘生氣)를 위한 혈자리를 찾는 것이 목적인데, 이에 대한 이론이 형세론과 형국론이다.6. 좌향론 정혈을 하고 난 후에 택지 대국사의 명칭이 진흥왕 때인 574년에 중창될 당시 '화엄불국사', '화엄법류사'등으로 명명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화엄불교의 성지로 여겨졌던 것으로도 생각된다.불국사의 입지 분석 초기의 평지사찰에서 그 후의 산지사찰이 출현하는 시기를 고찰해 볼 때, 산지로 사찰이 입지하게 되는 단계가 시기적으로 크게 세가지 단계로 나누어진다.민간의 산악숭배신앙과 불교의 영지신앙이 결합하여 산에 대한 불교측의 의식이 형성의상에 의한 화엄종의 개창으로 산지에 사찰이 입지하는 시기신라말 선종의 도입과 성행으로 초기의 산지보다 더욱 깊숙한 산악지대로 입지하는 시기불국사가 산지사찰의 초기형태라고 볼 때,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 화엄사상을 기반으로 신라의 정신적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가 강했다. 이에 따라 불국사가 가지는 배치형태는 기존의 산지구릉형 이라는 외형적 특징과 함께 창건당시의 입지선정요인과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독특한 배치구성을 취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불국사와 풍수이론과의 관계는 의상의 화엄 불교와 관련지어 살펴봄으로써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의상과 풍수사상과의 관계는 당시 지리선택 개념으로서의 풍수사상과 그 이전의 도참사상이 결합된 도참풍수 개념이 의상에게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하며 한국고유의 지리관으로서의 풍수사상이 사찰입지에 반영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처럼 불국사의 입지선정에는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불교신앙을 비롯한 여러 개념이 상호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불국사의 가람 배치 산지사찰의 경우, 평지와 산지의 입지형태가 나뉘게 됨에 따라 전각의 배치도 평지의 좌우 대칭적인 형태에서 산지의 불규칙한 형태로 나뉘어진다. 산지라는 불규칙한 지형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할 수 있는데, 각 사찰이 입지하는 지형에 따라 그 배치도 각 사찰 나름대로의 독특성을 갖게 된다고 할 수 있다.불국사가 입지한 지형은 산라의 수도 경주를 둘러싼 세 개의 산 가운데 토함산 기슭에 위치해 있으며, 지형은 서쪽을 향하여 완만하게 흐르는 경사지로 네 방향 모두 여유있게분맥된 산줄기는 동북으로 달리다가 힘찬 봉우리를 이루니 불국사의 주산인 토함산이다. 토함산에서 또 한번 분기하여 대덕산, 형제봉세우고, 신라 천년고도 서라벌의 진산인 낭산까지 이르는 용맥을 뻗어내렸다.주산과 용세에 의한 분석 주산, 즉 조종이 되는 산은 모양이 다락집이 치솟은 형세라야 좋다. 주산이 수려하고 단정하며, 청명하고 아담한 것이 으뜸이다. 용맥의 흐름인 용세의 분석이란 생기발랄 여부를 근원지인 태조산에서부터 혈장까지 살피는 것을 말한다.불국사는 토함산이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 줄기의 남쪽 등성이에 축단을 쌓고 정남으로 향해서 놓여있다. 토함산의 논이는 745m로서, 불국사가 있는 지형의 등고선은 220m~230m이다. 불국사 앞으로 토함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내가 흐르고 낮은 산줄기가 또 한줄기 절 앞을 지나 서쪽으로 뻗어 내려서 불국사는 두 산줄기의 산 사이에 들어있는 격이다.2. 혈장에 의한 분석불국사의 명당은 토함산의 주룡이 비로전,관음전을 잉으로 하여 1차 지맥은 대웅전으로, 2차 지맥은 극락전으로 지맥을 연결시켜 주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좌청룡인 다보탑이 여러가지 모양의 석재로 이리저리 조합을 하고 있고, 우백호인 석가탑은 단순히 삼층석탑의 몸짓만 보여주고 있다. 토함산에서 생기맥이 관음전에서 내청룡, 우백호가 불국사를 포근히 감싸앉고 있고, 내청룡,내백호면은 깨끗한 앞면으로 명당의 바람막이 기능과 곡면 반사경 기능을 갖추고 있다.3. 사격에 의한 분석 혈을 원근, 전후, 좌우에서 둘러싸 생기의 융취 여부와 관계되는 모든 산과 언덕 및 바위를 사(砂) 또는 사격(砂格)이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현무, 청룡, 백호 및 주작의 사신사이다.불국사는 옥녀봉 생기를 받는 사찰이다. 옥녀봉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는 불국사에 이른다. 이때 불국사는 산줄기를 타고 내려온 옥녀봉 생기를 담아야 하기에, 생기를 멈추게 하는 계수즉지를 필요로 한다. 천왕문을 지나면 해탈교를 만나는데, 계수즉지, 즉 명당의 생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물줄기가 막아주는 형국}
1.계단의 구성디딤바닥 또는 디딤면 : 계단의 한단의 바닥챌면 : 수직면계단참 : 중간에 단이 없이 넓게 된 다리쉼과 돌림에 쓰이는 부분계단 측판 : 계단 층계에서 디딤면과 챌면의 가장자리를 벽에서 지탱하는 판재계단코 : 계단의 디딤판에서 챌면보다 튀어나온 둥근 가장자리*계단은 기본적으로 높이와 폭을 갖고있다.폭과 치수를 모두 더하면 계단의 전체길이를 얻게되고 높이를 모두 더하면 층의 높이를 얻게 된다.층고=계단의 한계단높이X갯수2.계단의 종류-계단을 종류별로 분류할때는 두가지의 기준이있다.한가지는 형상에 대한 분류이고 한개는 재료에 의한 분류이다.곧은계단 돌음계단 경사로꺽은계단돌계단 철골조계단이외에도 목조계단. 철근코크리트조 계단 등 많이 있다.3.계단의 사례로마 바티칸미술관의 출입구로 쓰이는 달팽이 모양의 아름다운 나선계단이다. 이 계단은 건축가 주세페 모모가 1932년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주 오르비에토에 있는 깊이 약 62미터 우물의 나선형 계단에서 착안해 설계했다. 미술관 계단의 모델이 된 이 우물은 1527년 독일 용병의 로마 점령 때, 적을 피해 오르비에토로 피신한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시민들의 안정된 식수 공급을 위해 계획하고 건축가 안토니오 다 상갈로 조바네가 실현했다.
건축물은 어떻게 해서 서 있는가?1.과학과 기술이 최선의 상태로 우리의 순수한 인간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 결국 도시에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이 건물내에서도 인간의 노력이 자연의 법칙 때문에 좌절되고 있는 것이다.구조적 미는 구조적인 정당성 없이는 존재할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2.어떤 의미로는 피라밋이 빛의 형상을 돌로 영구화시킨 것이며 태양신을 향하고자 하는 인간의 야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피라밋의 붕괴원인이 된 구조적 결점을 보완하여 대표적인 52 각으로 시공했다. 역사적인 중요성과 기술적인 매력이 있다. 피라밋의 매력은 크기 만큼이나 많은 신비가 잇다. 우리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변화되지만 피라밋의 신비로운 매혹인 여전히 남을 것이다.3.하나의 구조물은 우선 자중, 소위 고정하중을 지지해야 하는 기둥, 보, 바닥, 아치, 도움등과 같은 중량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현실적으로 건축업자는 구조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4.구조의 목적은 건물에 실린 하중을 지반까지 전달하는 것이다. 모든 구조적인 작용은 인장력과 압축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구조재는 그 중 한가지 혹은 두가지에 모두 강해야 한다. 플라스틱의 재료는 철근 콘크리트 강재 석재 목재 만큼 구조적 작용에 잘 적은하고 또한 풍부하고 값이 저렴한 재료가 되기까지는 수년이 지나야 할 것이다.5.민감한 구조적 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공학적 판단, 알맞은 형장과 지지요소 강한재료 세심한 공사감리등이 필요하다.6.대부분의 원시시대 주택은 대개 환경에 따른 기후나 구조재의 이용에 따라 지배를 받았다. 미국은 어디서나 전통주택은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재룔 축조하고 있다. 사람들은 뭐가 끌리지 않는 건물에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날 건축의 가장 위대한 도전중의 하나는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요구 조건과 현실적이고 성공적인 설계를 부합시키는 것이다.7.마천루는 우리의 현대 대도시의 인구 조밀 지역의 총아인가 아니면 기술목적을 위한 비인간적인 기술의 성과인가? 또한 이들 마천루는 재정 대가로 얻는 지대한 이자 아니면 자연적인 장애를 정복하고자 하는 우리의 정신적 열망의 상징인가? 광적인 물질 문명이나 오해 지속되는 인간의 꿈을 실현한 표현인가? 이 마천루들의 공기조화적인 군거지는 현대인을 위한 이상적 공간인가? 아님 이들은 우리 개성과 자연과의 전달소통에 관한 부동의 단정인가? 우리가 마천루를 신뢰하든 그렇지 않든 인간의 열망과 현실이 시대가 다르면 다른 형태를 가지듯이 마천루도 시간적으로 사멸할 때가 되면 확실히 사라지리라는 것을 기억해 두자.
건축의 외부 공간1.외부공간의 기본 개념1-1외부공간의 형성-공간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물체와 그것을 지각하는 인간 사이에서 생기는 상호관계에 의해서 생성됨.-건축공간은 바닥, 벽, 천정의 3요소로 구성(바닥은 꼭 필요)-외부공간(인간에 의해서 창조된 목적있는 외부환경이며 자연이상으로 의미있는 공간)-외부공간의 설계(대지전체도 하나의 건축이라고 생각하며 설계할 때 건축의 외부공간으 의미가 살아남)-건축의 외부공간은 자연 속에서 자연을 한정하는데서 시작. 자연에서 불에 의해 따낸 공간이며 무한하게 퍼지는 자연 자체와는 다른 것 (예 : 이탈리아 캄포광장) 한마디로 건축의 3요소중 지붕이 없는 건축.1-2적극적 공간과 소극적 공간-적극적 공간(공간에 인간의 의도가 충만되어 있는 것 또는 계획성이 있는 것을 의미. 우선 외부의 프레임을 정하고 안쪽으로 향하여 질서를 잡아감. 수렴성)-positive space-소극적 공간(공간이 자연발생적이며 인간적 의도가 없는 공간. 발산성)-negative space-공간의 P-N-P-N....의 반복은 계속되는 것이며, 건축가에게 있어서 어디에 한계를 둘것 인가를 가늠해 둔다는 것은 외부공간의 형성에서 중요한 과제가 됨.2.외부공간의 요소2-1스케일(scale)-건물이 하나밖에 없을 때(건축은 조각적, 원초적 기념성 또는 N적 기념성, 소박, 불침투, 인간적 등의 성질을 지님)-건물이 2개 이상일 때(복합적 기념성 또는 N+PN적 기념성, 복잡 명암, 침투 등의 성질을 지님)-D=건물과 관찰자 사이의 거리 : H=건물의 높이D/H=2, 양각 (올려다 보는 각)=27‘ 일때 건물이 가장 잘 관찰됨.D/H=1을 경계로 D/H 1의 공간은 공간의 질에 있어서 역질적임-D/H> 1,2,3 이 널리 응용되며 D/H> 4이상일 때는 건물사이의 영향력이 희미해짐. D/H
1.건축가 : Richard Meier (미국, 1934~ )1934년 미국 뉴 저지에서서 태어나 코넬대학에서 건축 교육을 받았고, 1963년에 뉴욕시에 사무소를 개설, 최근에는 로스엔젤레스에도 사무소를 열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에는 50년대의 건축학도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르 코르뷔지에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이론에 심취했구요. 개인주택 뿐 아니라 상업건축, 공장, 병원, 교육시설, 미술관, 사무실 등 다양한 공간 건축을 시도했으며 A.I.A 상, 미국 아케데미 주택상, 프리츠커상 등 다양한 건축 관련 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스미스 하우스, 더글라스 하우스, 프랑크푸르트 수공예박물관, 애틀란타 현대미술관 등이 있습니다.2. richard meier 의 건축특성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마이클 그레이브스(Michal Graves), 찰스 과스미(Charles Gwathmay), 존 헤죽(John Hejduk)과 함께 1960년대 ‘New York 5’라는 칭호로 불렸던 건축가. 백색 건축의 대표자로 불리는 리처드 마이어는 빛에 의해 전달되고 변화하는 백색을 사용해 조화로운 공간과 채광 실험을 통해 개성있는 건축을 만들어 냈습니다.마이어는 건축을 통해 실용적이면서도 명료하고 복합적이며 고도로 세련되고 절제되고 위엄 있으면서도 편안한 시적인 공간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마이어는 형태를 추구하는 르 꼬르 뷔제의 예술성, 즉 5원칙과 “벽은 공간을 둘러쌓는 수단으로서 구조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라고 말한 구조를 존중하는 미스 반 데르 로에의 정신을 조화시켜 본받았습니다.마이어는 르꼬르뷔제의 영향에 대해 스스로 “내가 르 꼬르 뷔제의 작품을 모르고, 애정이 없었다면 나의 건축물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고 고백했습니다.3.richard meier 의 작품Jubilee Church - 건축년도 2003년리처드 마이어 설계로 주빌리 교회는 요한바오로 2세의 즉위 25주년을 기리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에 건축된 것이다. 주빌리 교회는 로마 중심지에서 동쪽으로 6마일 정도 떨어진 외곽도시 또르뜨레 떼스떼 에서 주거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고 있는 폐허지에 있다. 공식적인 이름은 Church Dio Padre Misericordioso로서 로마 근교에 지어진 50번째의 새교회이자 커뮤니티 센터이다. 주빌리교회는 또르뜨레 떼스떼지역의 동떨어진 주거 지역을 위한 새로운 중심이 되고 쇠퇴하는 이 주거 지역을 활성화 시키는 것을 목표로했다. 인접한 아파트 빌딩들이 펼쳐진 곳에 위치한 교회와 커뮤니티 센터는 부근의 8000명 이상의 주민과 함께 그보다 훨씬 많은 또르뜨레 떼스떼지역 사회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사회적, 문화적 중심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