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2022-교육학과-이은실퇴계 이황어떤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교육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교육은 한 사회를 반영하는 가장 기초적인 또 전형적인 제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육을 하는 교사가 되기를 꿈꾸고자 하는 나 자신이 선인의 교육사상을 더듬어 보는 과제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능을 위해 윤리를 공부했었다. 이황과 이이 두고 각각의 ‘이’와 ‘기’에 대한 문제는 늘 출제되는 유형이었지만 헷갈리고 틀리기 일쑤였다. 순전히 외운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이황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Ⅰ. 퇴계 이황의 생애이황은 조선왕조 중엽 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조선시대 도학사상을 이론적으로 확고하게 정립하고 철학적 수준까지 이끎으로써 한국유학의 특성과 방향을 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불과 7개월 되던 때에 부친을 여의었다. 이황의 학문과 인격 형성에 모친의 영향이 컸다. 그는 당시 숙부 이우의 가르침을 받았다. 이황은 그에게서 12살에 논어를 배웠다. 하루는 이(理)에 대하여 묻기를 “모든 옳은 것(是)이 이(理)입니까?” 하고 물으니 숙부는 기뻐하면서 “너는 이미 글의 뜻을 이해하였다.”고 하고 “돌아가신 형님이 이 두 아이를 두고 가셨으니 가셔도 안 가신 것과 같다. 가문을 지킬 자는 반드시 이 아이다.” 라 하며 이황을 극찬하였다. 그러나 과유불급의 말이 이황에게도 그랬던 것 같다. 주역을 연구하는 데 몰두하다 건강을 해쳐 평생 마르고 쇠약해지는 병에 시달렸다. 34세에 대과에 급제하고 관직은 7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관직에서 은퇴하려는 그의 뜻과 어디까지나 그를 놓아주지 않으려는 임금으로 인해 한낱 '문서상의 임명과 사퇴'만이 계속되었다. 만년에 그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은 후학을 가르치고 사풍을 일으킨 일이었다. 60세 때 도산서당을 낙성하고 비로소 강학의 터전을 삼음으로써 동방유학의 빚은 도산에서 빛나기 시작한다. 이 무렵에 그의 대부분의 중요한 저술이 이루어지고 졌다. 한 시대를 바로 잡는 일보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인간의 올바른 삶의 도리를 밝혀 후세를 위한 표준을 제시하는 데 자신의 역할이 있음을 자각했던 것이다. 진정한 그의 원하는 바는 그것인 것 같다.Ⅱ. 이황의 사상적 경향이황하면 생각나는 것들 주자학, 거경궁리가 떠오른다. 앞에서 이황의 학문적 성격은 주자를 표준으로 하여 도학의 철학적 근거를 밝히고 인격적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에는 성리설의 개념적 분석체계와 더불어 수양론의 실천방법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상호 조명하고 있다. 학문방법으로는 거경(居敬)과 궁리(窮理)을 두 축으로 한다. 거경궁리…….주자학에서 중시하는, 학문 수양의 두 가지 방법이라고 배웠었다. 거경은 내적 수양법으로 항상 몸과 마음을 삼가서 바르게 가지는 일이고, 궁리는 외적 수양법으로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일이다. ‘거경궁리’는 익숙한 말이다. 제자들은 그의 학문적 특징을 지적하며 "공경과 의리를 함께 지키고, 지식과 행위를 함께 나아가게 하며, 겉과 속이 한결같고, 뿌리와 가지를 함께 들어올리며, 큰 근원을 꿰뚫어 보고, 큰 근본을 일으켜 세운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지적은 퇴계의 학문이 거경(居敬)과 궁리(窮理)라는 두 축을 상호 연관시켜 포괄하면서 그 근원을 확립하고 있음을 제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Ⅲ. 이황의 생애에서 도출된 교육이황의 스승이었던 숙부 이우는 글을 읽을 때는 원문뿐만 아니라 주석까지 한 자도 빠트림 없이 그 의미를 철저히 탐구해서 이해하게 했다. 한 권의 책을 다 배우고 나면 반드시 그것을 다 외우고 나서야 그 다음 권으로 넘어가게 한 것이다. 논어 를 책을 덮고 초장부터 종장까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외우게 되었다. 순전히 ‘반복과 암기’라는 상구방법에 그치지 않았다. 여기서 상구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그는 논어를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뿐만 아니라 메타교육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하여 이황은 글을 읽는 방법은 익숙하도록 하는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글을 읽는 사람이 비록 글의 뜻을 이해하더라도 익숙하지 못하면, 읽으면 곧 잊어버려서 마음에 간직할 수 없다. 배우면 반드시 다시 복습하는 공력을 들인 뒤에야, 비로소 마음속에 지닐 수 있어서 흠씬 젖어드는 맛이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찍이 스승의 부재로 인해 퇴계가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스승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상구활동이 맞는 것인지, 어떠한 방향이 더 나아지는 방향인지를 확신할 수 없는 답답한 상태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옳고 그름을 스스로 체득하려는 노력이었다.Ⅳ. 이황의 교육목적 및 교육방법이황의 교육의 목적은 유교교육의 일반 목적인 인을 체득한 사람, 즉 성현에 두었다. 이때 성현이라 함은 지와 행이 통합된 인격체를 의미한다. 이황은 입지를 출발점으로 하여 많이 배우고, 깊이 생각하고, 차근차근 생각하고, 바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문장의 단순한 암송이나 형식적인 해석을 피하고, 숙독하고 정독하는 교육방법을 강조하였다. 이황은 그 뜻을 깊이 체득하는 공부를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단지 앎이 아닌 진정한 학문연구의 자세라 할 수 있다.Ⅴ. 내가 이황을 알아가면서.... 부제 : 현대교육에 대해 시사하는 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