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을 보고나서..2007291082 이영주원래 현대사회의 법과 권리를 선택했다가 나하고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변경기간에 현대사회의 종합적 이해로 바꾸게 되었다. 이 시간에 영화를 보고 감상문을 써야 된다는 말을 들어서 최근 영화는 아니더라도 많이 알려진 영화를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시간에 보게 된 것이 바로 ‘라쇼몽’ 이다. 작품성 있고 유명한 영화라고 하는데 솔직히 난 듣도 보지 못한 영화였고 더불어 매우 오래된 1950년대 작품인 것에 상당히 놀랬다. 그래서 그런지 흑백이었고 배우나 목소리 등이 현대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더군다나 내용도 상당히 난해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당혹스러웠고, 끝날때도 시원치 않은 기분이 계속 되었다.이 영화의 내용은 여러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복잡하게 꼬이는 것이 아니고 한 짧은 사건을 여러 사람의 진술 형식으로 전개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진술이 산적, 부인, 사무라이, 나뭇꾼 각각 달랐다. 즉, 각각의 인물이 무언가를 위해 거짓말을 조금씩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나뭇꾼을 제외한 세명은 자신이 범인이라 주장하며 나름대로의 이유 아닌 이유(바람 때문에-산적, 남편의 차가운 눈 때문에-사무라이의 아내, 그렇게 아름다운 아내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사무라이)를 대고 있다. 왜 이들은 자기 자신을 범인이라 주장할까? 영화에서 그들은 허영심(남자다움-산적, 가련함-부인, 명예-사무라이)을 위해서 살인자를 자처하고 있다. 이 모습을 현대사회에 투영시킨다면 우리들의 허영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체면이나 사회적 지위에 집착하며 이를 얻기 위해 무수한 노력들을 한다. 그런데 그 노력들이 정당성을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이다. 개개인들은 정당하지 않음을 알아도 영화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합리화 시킬 이유들을 만든다. 물론 각각의 이유들이 어떤 같은 사건에 대해 해석이 다르기 때문인 것도 있다. 현재 자신의 위치, 사고방식, 패러다임이 있기에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고 때문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심(조금 과장하여 이기심이라 표현) 때문에 인간에 대한 믿음이 현대 사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 같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에 나뭇꾼이 아기를 데려감으로써 회복의 가능성을 열어두기는 하지만 말이다.이 영화에서는 증인들의 엇갈린 진술들만을 제시하면서 사건은 해결 되지 않는다. 만약 현대 사회였다면 어떻게 됬을까? 당연히 결론을 내렸을 것이고, 그에 대해 처벌을 내렸을 것이다. 분명 진실은 있겠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판결에 따라 실체의 진실이 밝혀 질수도 있고, 판결 과정에서 생긴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판결 과정에서 생긴 진실이 되는 경우 억울한 사람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판결 과정에 권력이나 뇌물 등이 영향력을 미쳐 소수 또는 다수(대부분은 소수)가 손해를 입게 된다. 이 생각을 하면서 나는 최근에 본 미국 드라마인 ‘프리즌 브레이크’가 떠올랐다. 대강의 줄거리는 어떤 큰 단체의 힘 때문에 조작된 증거로 형이 살인 누명을 써 사형을 선고 받게 되자 동생은 형을 탈옥 시키고 진실을 밝혀 내는 내용이다. 여기서도 분명 살인사건의 진실은 따로 있으나 권력의 힘 때문에 형이 살인자가 되는 진실이 발생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동생 및 여러 사람의 노력에 의해 실체의 진실이 밝혀 지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꼭 실체의 진실이 밝혀진다는 보장은 없다. 아니, 밝혀지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흔하다. 때문에 판결 과정(수사 과정을 포함)에 관여하는 사람들 모두가 실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하며 그러도록 최대한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좀 더 정직하고 올바른 사회가 되지 않을까 ...